이슬람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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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mophobia

1 개념

본 단락에서는 이슬람공포증에 대한 학술/이론적인 접근을 하며 가치판단 없이 이슬람공포증을 서술한다.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는 이슬람 + 포보스(Phobos: 그리스어로 공포)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한국어로 풀이하면 '이슬람 공포증' 혹은 '이슬람 혐오증'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슬람 문화권과 무슬림, 혹은 이슬람 그 자체에 공포를 느끼거나 그 공포심이 발전하여 혐오감까지 느끼는 것 까지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1]

학술적으로 이슬람공포증(이슬라모포비아)이 정확히 무엇인가, 인종차별, 반이슬람, 반무슬림, 반아랍인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단순한 인종주의에 불과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존재하며,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등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심리, 유럽에서는 자국의 무슬림 인구 증가에 따른 경계심리라는 세 의견이 가장 강세이다. 그 밖에 프레드 할리데이는 무슬림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를 포괄적으로 "반무슬림주의(Anti-Muslimism)"로, 롤랜드 임호프와 줄리아 레커는 편견과 정당한 비판을 구분하고자 "이슬람 편견(Islamoprejudice)"으로 명명하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일례로 1996년 러니메이드 트러스트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열린 시각'과 '닫힌 시각'으로 구분하여, 이중 아래와 같은 닫힌 시각을 이슬라모포비아로 정의하였다.[2]

다음은 이슬라모포비아의 실태이고 아래는 각각의 반박이다.

  • 이슬람은 모노리스적 존재이며, 고정적이고 변화를 거부한다.
-> 코란을 제외한 나머지는 변화가 가능하며, 코란도 원문을 바꿀 순 없지만 해석 방법을 조금씩 바꾸면 현대 사회에 근접할 수 있다.
  • 이슬람은 다른 문화와 분리되어 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 다른 문화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으며,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영향을 주고받는다. 명예살인만 해도 그렇다.
  • 이슬람은 서구에 비해 열등하며, 야만적이고, 문란하며, 원시적이다.
-> 아직까지 서구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사실이나 해당 표현을 쓸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다.
  • 이슬람은 폭력적이며, 공격적이고 위협적이며 테러를 옹호하고 문명의 충돌을 주도하고 있다.
-> 이슬람 교리를 자기들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특정 집단이라면 맞는 말이나 이슬람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 이슬람은 정치적, 군사적 우위를 얻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다.
-> 종교적 이데올로기다.
  • 이슬람은 서구의 무슬림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며 비판만 하면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 와하브파나 살라피스트들, 광신도들이라면 맞다. 하지만 모든 무슬림이 그렇지는 않다.

또한 이런 실태를 보인다.

  • 이슬람에 대한 공격성이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나 사회의 주류에서 무슬림을 배제, 적대하면서 정당화되며, 이는 범죄 행위를 저지르거나 옹호하는 특정 무슬림이 대상이 아니라 무슬림 그 자체가 대상이다.[3]

이상과 같은 닫힌 시각은 무엇보다 일부 무슬림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한다는 점에서 "비이성적"이라 할 수 있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원리주의자들과 달리 이슬람 종교법에 바탕한 국가나 사회에 이념적으로 열성적이지 않고,[4] 법체계 상으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샤리아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적용하지 않는다.[5]

학술적으로는 이슬라모포비아는 근본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과 더 나아가서는 혐오심이 정의이며, '단순한 포비아' 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차별 등의 행위'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롤랜드 임호프와 줄리아 레커의 주장대로 코란의 교리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자들이나 샤리아를 개정할 수 있음에도 밀어붙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 무슬림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이슬라모포비아에 포함되지 않는다.

ECRI(유럽 인종주의 및 불관용 인권위원회)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비판을 제외한 나머지 이슬라모포비아를 그 형태 및 강도와 무관하게 반인권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유럽인권위에서도 2011년 ECRI의 2010년 연례보고를 인용,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 증가 추세에 대해 경고하였다. 2015년 4월 21일 UN에서 개최한 관용과 화해를 위한 고위 주제 토론 개회 선언에서도 "반유대주의, 이슬라모포비아, 인종차별 등 모든 불관용의 형태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을 규탄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2 근대 이전의 이슬람 공포증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용어는 심리학의 발전과 민족주의의 대두 이후인 1918년에 생긴 것이지만 개념 자체는 역사상에서 여러 가지 유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서구의 이슬라모포비아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한 손엔 칼, 한 손엔 쿠란"인데, 이는 이슬람의 전파가 전쟁을 통한 정복 행위와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속설이다. 즉, 이슬람 제국이 세력을 키울 때마다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첫 유럽 진출은 우마미야(옴미아드) 왕조 시대로, 771년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현재 프랑스 남부지역까지 쳐들어가 유럽을 위협했다[6]. 1096년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어 1099년 일시적으로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이슬람으로부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듯 했으나, 살라딘이 이끄는 아유브(아이유브) 왕조가 일어나 1187년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였고 이교도들의 성지순례를 금지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메트 2세는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 일대를 점령, 이후 오랜 시간 유럽과의 대치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슬람권은 정복 전쟁을 통한 세력 확장 과정에서 점령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자 학살이나 추방 대신 기존 거주민의 종교를 인정하되 차별을 두고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이른바 '지즈야')을 취했다.[7] 이는 이슬람과 인접한 유럽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유럽, 이베리아 반도 등 이슬람권과 상대적으로 많은 접촉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전쟁의 위협은 있었어도 이슬람 자체에 대한 반발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슬림 지배하 비무슬림이 병존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8]

하지만, 오랜 세월 이슬람 해적들에게 습격당하던 중부 유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크게 자리잡았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만 해도 100만명 이상의 유럽인들이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노예로 끌려 갔다.[9] 이슬람 해적들의 습격은 8세기 부터 시작되었는데 8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노예로 끌려갔을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이슬람 해적의 주요 습격지는 남부프랑스와 남이탈리아였는데, 동유럽은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였으니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힘든데다가, 비잔티움 제국 멸망 뒤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베리아 반도는 오랜기간 무어인들이 지배했으므로 만만한 상대였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집중되었던 것.[10] 또한 16세기 후에는 해상 활동을 활발히 했던 영국인들도 많이 노예로 끌려갔다. 참고로 정말로 이슬람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스칸디나비아 같은 북해 쪽의 유럽인들은 아예 20세기 이전까지 이슬람에 대해 관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라는 항상 프랑스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바르바리 해적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십자군 전쟁 무렵 장편 서사시인 무훈시(chansons de geste)들이 일반인 사이에 유행하였는데, 일부 학자는 이를 이슬람을 상대로 무기를 들도록 기독교도들을 독려하는 프로파간다로 해석한다. 예루살렘 재함락 위기가 감돌던 1145년에는 프레스터 존의 전설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까지 유럽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발단이 단순히 비가톨릭을 배제하려는 중세교회의 배타성과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광기가 원인인 것으로 보던 이전 세대와 달리, 현재 학계는 십자군 전쟁이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배경에서 일어났다고 평가하고 있다.[11] 예루살렘 성지의 수복은 십자군 원정에 순례의 성격을 더해주기 위해 추가된 것이었지, 십자군의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슬람의 공격으로 심각하게 수세에 몰린 비잔티움 제국의 원군 요청에 의한 응답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 지배되던 일반인들과는 달리 학자들은 이슬람권과 비무슬림권 모두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이슬람권에서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라 인종을 불문하고 학자들을 우대하였고, 중세 교회법과 스콜라 철학에서도 관용(tolerantia)에 대한 관심이 커서 이슬람권의 철학과 학문을 배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그 결과 아바스 왕조에서 꽃을 피운 당대 최고 수준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각지에서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유입되었고, 이러한 학술적인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는 이후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3 현대의 이슬람 공포증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이슬람권과 서방세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오스만 제국이 참여했던 동맹군이 패전함에 따라 영토의 대부분이 연합군에 편입되면서 서방세계가 무슬림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1915년 맥마흔 선언에서 전후 아랍인들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으로 프랑스, 러시아와 중동을 분할 통치하기로 밀약하였고,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1917년 밸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현재 중동 문제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고,[12]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내세운 무슬림 형제단이 1928년 결성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나타났다.

다수의 무슬림들이 연합군 국민으로 유입되면서 프랑스 혁명산업 혁명 등을 거쳐 근대화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 유럽인들과의 가치관 차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어휘 자체도 이 무렵 발생하였으며, 문학,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아랍인에 대해 테러리스트(bomber), 졸부(billionaire), 윤락녀(belly dancer) 등 3B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묘사가 시작되었다.[13]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들의 우경화 및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이슬람권에서의 유럽 이민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후 복원을 위해 노동력 수요가 급증하였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아프리카 식민지를 독립시키며 해당 국가 출신 혼혈들의 이민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식민지가 없었던 독일의 경우도 초청노동자라는 개념으로 터키, 폴란드, 이탈리아, 아시아계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치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으로의 이민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당시 유입된 문화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지역사회에 흡수되고 융합되었다.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는 이러한 이문화간 융합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한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됨에 따라 중동 문제는 크게 악화되었으며, 그 외에도 중동의 각국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친미/친소 정권을 심으려 하는 정치적 영토싸움 대상이 되었다.[14] 파키스탄에서는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 친소 성향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를 1977년 실각시키고 1979년 사형시켰다. 이로 인해 우파 이슬람 정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키스탄 인민당이 추진하던 사회적, 경제적 개혁은 무산되었고, 그 결과 현재 파키스탄은 거의 무정부 상태로 탈레반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란에서는 친미 성향인 팔라비 왕조의 전제군주제를 탈피하려 노력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자헤디 장군의 쿠데타 지원을 통해 실각시켰고, 이란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팔라비에게 갖은 지원을 하였으나 결국 반미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였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은 이란에게 경제제재를 날려 이란 경제가 그전보다 더 악화되게 만들었다. 이란의 경제제재는 2016년 이란이 핵포기를 하기로 합의하여 해제될때까지 가해졌다. 경제제재가 해제되었다해도 군사 분야의 제재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아 이란은 군사력 강화를 못하는 형편이다.

그 후로도 미국은 중동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3,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였고, 이란 견제를 위해 이라크를 지원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소련 해체 및 냉전 종식 후 쿠웨이트를 침공하였고, 결국 이를 막기 위해 걸프 전쟁에 미국이 직접 참전하여 실컷 패주고 쿠웨이트에서 쫓아내었다. 이는 그간 미국의 각종 개입에 대해 반미 감정이 팽배했던 중동권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 선포"로 해석할 여지를 제공하였으나 미국을 상대할 힘이 없다보니[15] 분노만 삭히다 결국 9.11 테러로 폭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테러"라는 개념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의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을 계속하였다. 미국 및 유럽, 비이슬람 친미 국가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는 유럽과 달리 전쟁 상대에 대한 적대감 및 잠재적 테러집단에 대한 공포감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서방국의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이슬람 국가의 침략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극단주의가 부각되었다. 이들은 스페인 열차폭탄 사건, 런던 지하철 폭탄 사건을 자행하여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였고 유럽국가의 반이슬람 분위기가 고조되어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 폭행, 사회참여 거부 및 탄압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다. 유럽내 무슬림 비중이 적지 않고 사회 일각의 화해와 동반자의 관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에 대한 테러는 자행되었다. 2005년 프랑스 시외곽에서는 경찰의 검문에 불응하여 도주하던 무슬림 청소년들이 변압기에 감전되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무슬림과 아프리카 저소득 계층에 대한 괄시를 받던 이들은 무슬림의 탄압을 금지라는 구호하에 시위, 폭동으로 번졌다.[16] 이후 프랑스 사회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고 무슬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기조를 보였다. 물론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여전하며 이슬람 무장단체들과 광신도들의 테러 때문에 이게 더 심해지고 있어 프랑스 내의 골칫거리다.

2008년에 미국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유럽지역의 경제도 둔화되었고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경제가 붕괴수준으로 넘어가면서 유로존 붕괴 위험이 높아지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실업률도 높아져갔다. 이에 저소득 직업군을 무슬림과 같은 제3국에서 유입된 민족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자국의 부를 유출시킨다는 편향된 논리가 퍼져 나왔다. 자국 경제의 회복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의 화살을 무슬림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돌린 것이다.[17] 더불어 무슬림=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논리로 혐오감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이는 고스란히 무슬림에 대한 탄압으로 진행되었고 탄압에 못 이겨 스스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18]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사건으로 인해 중동의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개입으로 개혁이 앞당겨 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서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중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대도 하였다. 하지만 비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대한 탄압과 혐오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남고 있다. 특히, 무슬림 사회가 기독교와 달리 관용이 부족하고 폐쇄적이다보니 비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대한 탄압과 혐오를 버리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19]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칼리파 국가 수립 선포는 일개 이슬람 무장 단체의 행위를 전체 이슬람의 본질인 것인 양 매도하는 세력들에게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슬람 내부에서는 종파를 불문하고 이들을 반이슬람적이라고 규탄하고 있으나, 일부 석유재벌들에 의한 물질적 지원이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20] 이슬람권 내부적으로 이러한 반인도적인 행위를 지속적으로 견제하여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극우 세력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반발로 반대 시위가 커지고 있다. 이슬라모포비아가 이슬람에 대한 피해망상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이슬람의 문화에 대한 부정의 근거 또한 고유 문화를 해치는 이유를 근거로 들고 있다.자유, 박애, 평등 따윈 개나 줘버려라는 논리 해당 국가에서도 표현하다시피 해당 트렌드는 그릇된 시점에 그릇된 대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프랑스의 이슬람 이민자 반대를 주도하는 극우파의 대표격인 르펜의 민족전선은 악시옹 프랑세즈로 대표되는 구 왕당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연히 자유, 평등, 박애를 핵심으로 삼는 대혁명 이래 프랑스 공화국의 보편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본에 깔고 있는 것이다.

3.1 배경

이슬라모포비아는 비무슬림[21]의 피해의식에서 근원한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이슬람공포증인 사람들의 '포비아'적인 논리적 배경은 실질적인 이슬람에 대한 본인의 자유 침해가 아닌[22]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에서 시작한 대처임을 기인한다. 상기 문서와 하위 구술한 문서를 보더라도 무슬림의 비무슬림의 탄압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는 비무슬림인 일부 세력의 무슬림의 편견과 배타적인 대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수의 비무슬림들은 무슬림과의 화합과 공존을 요구하고 있으나 특정 종교나 지역에 기반한 세력들이 이슬라모포비아를 조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월요시위"이다. 이들은 "독일의 유대 및 기독교·서방 문화의 보존을 원한다"라는 주장과 함께 동조자들을 규합해 세를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은 애국이라고 표방하고 있으나 명백한 종교적 배타적인 이기심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 반면 기독교 사회당(CSU)의 메르켈 총리는 이러한 편협한 사회불만세력에 대하여 "독일을 찾는 모든 이들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피력하며 화합을 내세웠다.# 그러나 무슬림의 테러와 범죄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화합은 날이 갈수록 빛을 잃고 페기다의 이슬람모포비아가 독일에서 지지를 받고 있으니 큰 문제다.

이슬람공포증을 외치면서 테러리즘으로 일관하는 세력은 상당수가 종교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 이후 기독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정치세력화로 인해 본인들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1/3은 무교라고 대답하고 있고 90년대의 1/5에서 1/3으로 무교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이는 특정 종교단체의 과도한 타인에 대한 관념 개입으로 일어나는 반대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즉, 상당수의 무교 및 타인의 종교를 존중하는 입장에서는 본 문제에 대하여 중립적이거나 화해와 협력을 표방하나 특정 가치관념에 빠진 세력들의 정치적 이용으로 볼 수 있다.

이슬라모포비아는 전세계적인 국제정세 변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슬람 자체의 종교적인 특징 내지는 문제점을 그 원인으로 보는 데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세력을 키운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행동이 미디어의 발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결정적이다. 더불어 서방 국가들의 경제에 이민족들의 세력화와 부의 증가를 견제에서 시작하여 증오로 변모하게 됨을 보인다.

이슬람에 대한 포비아의 주요 배경은 2차 대전 이후 냉전시대를 접어들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제3국가들의 성장과 교류가 늘어나면서 상호간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지역에서 여러 인권신장운동[23]이 발생하면서 인식의 개선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으나 상대적으로 중동지역은 신정일치라는 특유의 문화로 개선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짐에 의해서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신정일치의 문화는 중동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 중동 지역은 어떤 지역보다 낙후되어 있어 오일머니 외엔 별볼일없고 테러와 폭력, 광신이 난무하는 막장동네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물론 중동의 막장스러운 현실을 보면 이게 틀린것만은 아니지만.

3.1.1 국제정세 변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중동의 각국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친미/친소 정권을 심으려 하는 정치적 영토싸움 대상이 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 친소 성향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를 1977년 실각시키고 1979년 사형시켰다. 이로 인해 우파 이슬람 정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키스탄 인민당이 추진하던 사회적, 경제적 개혁은 무산되었고, 그 결과 현재 파키스탄은 거의 무정부 상태로 탈레반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란에서는 친미 성향인 팔라비 왕조의 전제군주제를 탈피하려 노력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자헤디 장군의 쿠데타 지원을 통해 실각시켰고, 이란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팔라비에게 갖은 지원을 하였으나 결국 반미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였다. 그 뒤 미국은 이란 견제를 위해 이라크를 지원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였고, 그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은 이후 중동 정세를 크게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 냉전체제 종식
자유주의 진영 대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진영 논리가 소련의 붕괴로 무의미해지면서 진영간의 벽이 허물어진 대신, 개별 국가 또는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세계 정치 흐름이 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쿠웨이트 침공이 발생하였고, 미국이 걸프 전쟁에 참전하면서 이를 "이슬람에 대한 전쟁 선포"로 해석한 이슬람 극단주의의 주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서방국가의 테러와의 전쟁
미국이 주창한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이슬람을 공산주의 이후의 주적으로 삼기 위해 뉴스, 영화 등의 매체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과도하게 부각시켰고, 일반인의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대부분은 이와 같이 미국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정보들에 기반한다는 주장도 있다.[24]
  • 이슬람 급진단체의 테러 및 이슬람인에 대한 규제와 공포
2004년 스페인 열차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2014년 파키스탄 초등학교 테러로 인해 이슬람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공포심리는 극대화되었다. 각국 정부는 자국내 테러 위협에 대하여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대대적인 조사 및 파악에 들어갔고 당연히 이슬람인에 대하여 인권침해소지가 높은 행동들이 자행되었다. 아랍어의 경우 서방세계의 경우 아직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비이슬람 시민들에 대하여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25] 언어적, 문화적 장벽과 함께 테러라는 공포감으로 인해 시민 사회의 접근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유럽 내 이슬람 노동자 유입 증가
한편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후복원에 있어 남성 노동자의 필요로 인해 제3세계 국가의 노동 수입을 하였는데 상당수가 동유럽/이슬람 사람들이었다. 이후 냉전체제 종식으로 인해 구 소련의 제어에서 벗어난 동유럽 및 중동에서 서유럽으로 이민이 급증하였고, 중동 지역의 연이은 내전으로 이를 가속시켰다.[26]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이민자들이 특정 지역에 밀집하여 거주하면서 이슬람 문화를 지역 사회에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27] 이에 대해 기존 지역민들이 반발함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각국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이민자들에 의한 문제는 이슬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이민자들은 서로 모여 살기 때문에 게토가 형성되며, 선진국의 경우 이민자들은 기존 국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수준을 가지기 때문에 빈민가 형태로 나타나 주변 지역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1세대 이민자가 받아들여진지 반세기가 지난 현재 이민자 2세대, 3세대로 넘어감에 따라 초기 이민자의 소수 민족에서 뚜렷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 한국등 선진국에서는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로 각국은 이민법 개정 등을 통해 기존 국민과 이민자 사이의 갈등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시 이주한 노동자들은 본국에 비해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이유로 다소의 차별을 감내하였으나, 2세/3세의 경우 비교 대상이 부모의 모국에 살고 있는 또래가 아닌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또래이기 때문에 민족간 소득 격차와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절감하고 있으며, 이는 소수민족 젊은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취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 이후 냉전체제 종식과, 국지전 및 내전으로 인한 난민 발생으로 인해 다시 유럽으로의 이민이 증가하였으며, 특히 중동 지역으로부터의 이주자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일상적 만행과 각종 테러의 위협이 이러한 이슬람 이민자 및 2세/3세들을 서방세계에서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사회가 다른 종교들과 달리 이런 극단주의자들을 통제를 못하니 서방세계는 갈수록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적대가 커지고 있다.

3.1.2 이슬람 문화적 특징

이슬람권 문화라면 이슬람 극단주의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페인 남부, 터키, 이집트 등 과거 무역항들의 주요 종교가 이슬람임을 알아야 한다. 당금의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중동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로 인해 발생하고 있기에 이슬람에 대한 문화와 풍습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포비아를 주장하는 이들은 아래와 같이 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래 배경은 이해와 타협의 배경이지 포비아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 정교 일치와 원리주의
이슬람에서는 정신과 육체를 따로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이 그대로 실생활을 다스리는 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존재한다. 즉 과거에도 현재에도 세속적 인권보다 전근대적이고 반인권적인 종교 규범이 우선하는 정교일치 성향이 대단히 심한 종교라는 것. 다른 종교는 경전을 어겨도 처벌받지는 않으나 이슬람에서는 경전을 어기는 것이 현대에도 상당수 지역에서 엄청난 권위를 갖는 샤리아법에 의거해 실질적 처벌이나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타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28] 더구나 이는 샤리아 법이 실정법으로서 유효하지 않은 국가에 거주하는 무슬림들도 마찬가지여서 간혹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명예살인이라며 떳떳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9]
  • 기존 거주 비무슬림들의 높은 실업률과 패배주의의 반발심리
대다수 선진국에서 겪고 있는 제노포비아(미국-라티노/아시아/이슬람, 한국-중화권/북한/기타 비백인 국가, 일본 - 비서구권 국가와 비백인계 특히, 반일감정이 강하다고 인식되는 대한민국, 북한, 중화인민공화국)들의 주된 논리는 이들 후진국에서 유입된 이민계층이 자국내 하위 계층을 형성하면서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직업군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높은 청년 실업률[30]기존 청년계층의 취업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저임금 기반 직업을 선택하려고 해도 하위 계층과 동등한 수준을 선택하기는 힘들다보니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져만 가는 것이다. 이에 반발심리로 인해 유입된 하위 계층에 대한 저항심리가 나타나게 된다. SNS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슬라모포비아를 비롯한 제노포비아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이다.[31]
  • 전근대적 인권 의식
이슬람 사회에서는 주인과 노예 관계, 남자와 여자의 관계, 신자와 불신자의 관계 등의 세 가지의 불평등을 경전 상에서 공인하고 있으며, 이 중 불신자의 경우는 개종을 통해 극복 가능한 관계라고 해석하고 있다. 중세 이슬람이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전파된 원동력은 "신자에게는 법적 혜택을, 불신자에게는 법적 불이익을" 줌으로써 피정복민들의 자발적인 개종을 유도한 것이었다.[32][33] 하지만 이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규정이며 오늘날의 완전한 개인의 종교 선택의 자유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이 부분에서 이슬라모포비아가 이슬람을 비난/비판하는 가장 큰 논지가 이슬람을 버리고 타종교로 개종하는 이른바 배교행위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보복이 따라온다는 점이다. 일례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임산부에게 수단 정부가 사형을 선고한 것을 국제사회가 구한 사건이 2014년에 있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의 인권 탄압은 엄청난 악명을 자랑한다. 무슬림 이민자들도 인권 의식이 낮다보니 이민 와서도 장소를 구분못하고 인권침해 범죄 저질러서 처벌당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 교리에 근거한 범죄
가장 심각한 것은 교리를 빙자한 남녀차별 및 그에 기반한 명예살인 등의 비인도적인 범죄이다. 하지만 여성 인권 문제가 대두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20세기 초중반에 불과했고, 세속국가인 터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인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도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는 이슬람권만은 세속주의의 후퇴와 함께 계속해서 여성 인권이 실질적으로 악화되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슬람 자체의 개선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슬람계 이민자 여성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계몽하는 등 서방세계의 도움도 필요하다 할 수 있다.
  • 유일신교 특성 및 타종교 배척
종교적인 견해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데, 이는 같은 유일신교인 기독교, 유대교보다는 아시아권의 불교, 힌두교 등과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슬람은 불교, 힌두교를 우상숭배 종교로 보고 철저하게 박해하기 때문에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34] 불교의 경우 당장 눈에 보이는 불상 문제를 제외하고 최대한 원시불교적인 교리로 간다고 해도, 이슬람 측에서는 불교가 인간의 가르침 만을 숭배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는 이슬람 대 타 종교 대립 구도가 빈발하고 있다.
  • 두드러진 이슬람 구교영웅에 대한 모욕과 모독

살라딘, 마수드.

이 두 사람이 이슬람교에서 어떠한 위치인가를 안다면, 이 두사람을 모독한 이들 및 세력 중에는 서구에 맞선다고 신앙자라고 추앙받는다는 빈라덴, 후세인, 다에쉬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서구에 대응한다라는 주장에 환호하는 기류는 사실상 이슬람이 콩가루 사이비들이란 비아냥도 아깝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각기 서유럽과 동유럽의 패자들한테 대응하거나 이들을 격퇴한 이슬람이 마땅히 존경을 표해야 함에도 소수 민족이란 이유로 무시하는 처사는 반대로 미국이 이들을 사실상 존경을 표하는 이미지로 바뀌어가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 만일 미국 대통령이나 정부가 이들 구교영웅에 해당되는 살라딘과 마수드를 신앙의 수호자이면서도 신앙의 존경과 보호를 받지 못 하는 비극적 존재로 추대한다면, 세계 어떻게 이슬람을 바라보는 것일까? 만일 신앙을 대놓고 주장하는 이슬람교도들 중 이들한테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면, 이슬람의 존재는 타 세력들한테는 거래할 가치도 없는 집단으로의 인식이 첫걸음은 분명 나아간 것이다.

4 이슬람공포증의 현황

본 단락은 앞선 이슬람공포증이 바깥으로 표출되어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나 배척이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에 걸쳐 진행된 각종 갤럽 설문조사 결과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확인되었다.

  • 편견이 있다는 의견
    • "서방세계가 무슬림 사회를 존중하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에서는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단 독일의 경우 예외적으로 2008년 조사 결과에 비해 2011년 조사결과 9%정도 긍정적 답변이 감소하였다.
    • "서방세계와 무슬림 사이의 긴장은 어떤 요인으로 인해 초래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남아프리카에서는 종교적 문제라는 답변이, 유럽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중동 및 북아프리카, 북미, 아시아에서는 두 답변이 비슷한 비율로 나왔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상황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종교 및 문화적 문제는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큰 우려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 미국에서 절반 이상이 "미국인이 무슬림 미국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특히 유대교도와 무슬림의 경우 각각 66%, 60%로 편견을 더 높게 체감하고 있다.
  • 차별이 있다는 의견
    •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5개 차별 금지 행동의 중요성 중 "무슬림 상징에 대한 훼손 금지"에 대해 약 80%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변하여, 약 60%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변한 다른 행동들인 동등한 대우, 미디어에서의 정확한 묘사 등에 비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 중동 지역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서방세계의 무슬림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고, 중동 이외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등에서 무슬림이 차별받느냐는 질문에 대해 약 1/4의 응답자가,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약 1/3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 미국 내 무슬림 중 48%가 인종차별이나 종교차별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여 타 종교의 20~30%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 그렇지 않다는 의견
    • 2009년 스위스에서 가결된 이슬람식 첨탑 건축 금지 법안과 관련하여, 대다수의 스위스 국민들은 종교적 자유가 중요함에 동의하면서도, 응답자의 약 2/3은 "해당 법안으로 인해 스위스 내의 무슬림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할까"라는 질문에 부정하였고, 응답자 대다수가 첨탑 금지 법안이 무슬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스위스의 국제적 위상을 격하시키지 않는다고 답했다.[35]

4.1 서방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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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주요 유럽 국가 국민들이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 동·남유럽 지역의 반(反)이슬람 감정이 두드러진다.

2000년대 이라크전, 스페인 열차테러, 런던 지하철 테러 이후 서방세계의 무슬림에 대한 경계가 강화된 틈을 타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과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2011년 7월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폭탄테러, 우퇴위아 섬에서 총기난사로 각각 8명, 69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동일범이 집권당인 노동당을 노린 범행이었고, "다문화 지지세력으로부터 노르웨이를 구하기 위한 자기 방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범인의 신원이 파악되기 전까지 언론은 이를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단정짓고 보도했으나, 정작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자 침묵했다.
2015년 3월 노르웨이 진보당은 모스크들을 교외로 이전하는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벌어진 보스포러스 연쇄살인사건 수사결과 범행 대상 명단에 하원의원 2명과 터키-이슬람 대표자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2009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재판에서 히잡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받았던 인신모독을 증언하기 위해 참석한 이집트 여성이 법정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
2014년 HoGeSa(Hooligans gegen Salafisten, 살라피스트에 맞서는 훌리건들)란 시위가 열렸으나 무분별한 증오발언과 나치즘 발언 및 폭력행위가 자행되었다.
같은 해 드레스덴에서 PEGIDA가 조직되어 독일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였다. 상세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난민 신청자들이 집단 범죄를 저지름에 따라 독일 내 반이슬람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36] 해당 사건의 반대급부로 3월 13일 지방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3개 주에서 의회에 진출하고 지지도가 상승한 배경에 이슬람 혐오 정서를 부추겼다는 평가가 있고, 급기야 5월 1일 전당대회에서 "이슬람은 독일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2016년 6월 6일에 라이프치히대학 연구팀이 시행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이들의 41.4%가 무슬림 출신의 이민자를 금지하는 데 동의했다. 7년 전인 2009년에는 21.4%보다 두배로 증가한 숫자다.
러시아 역시 이슬라모포비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대개 체첸 지역의 존재와 이츠케리아 체첸 그리고 그 후신인 캅카스 에미레이트 반군[37] 극단주의적 행동[38]으로부터 기인한다. 여기에 IS의 등장 이후로 이쪽 출신 반군들이 IS로 모여들면서... 체첸 공화국은 람잔 카디로프가 러시아 편에 서면서 독재로나마 체첸을 안정화시켜서 불똥이 전부 옆동네 잉구시와 다게스탄으로 가서 토착 수피즘의 샤리아 같은 인권 문제가 지적되긴 하나[39]그나마(소련 시절에 비하면 멀었다) 중동에 비하면 양반이다. 물론 체첸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은게,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자헤딘 이븐 알 하타브와 그를 통해서 전염된 와하비즘에 물든 샤밀 바샤예프 같은 놈들이 똘아이짓[40]을 해서 체첸을 다시 러시아 연방 자치공화국으로 전락시켰기 때문. 상세 내용은 체첸 사태 항목 참조.
2006년 Moscow Bureau for Human Rights의 여론조사 결과 러시아인 절반이 제노포비아 및 인종차별적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013년 11월 모스크바 신임 시장이 모스크바 시내 모스크 증축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러시아 내 이슬람계에서는 모스크바 10개 구에 하나씩 모스크를 둘 것을 제안하였다.
2013년 11월 이슬람 종교집단인 Tablighi Jamaat 소속 회원이라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 혐의를 받은 경우가 있었다. 해당 집단은 인도에서 설립되었고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합법이나 구 소련 소속 지역에서는 불법이다.
2015년 1월 12일 보수 성향인 미국 폭스TV의 테러전문가 스티븐 에머슨은 영국 버킹엄의 인구중 23%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무슬림의 도시라고 평하면서 테러위험이 있다는 발언을 하였고,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트위터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버킹엄의 병원에 후원금을 내겠다고 하였다.
2015년 2월 11일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백인 남성 크레이그 스티븐 힉스가 같은 아파트 단지 거주자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치대생 바라카트와 그의 아내 유소르 아부 살하, 살하의 여동생 라잔 무함마드를 총으로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미국 경찰은 주차문제로 인한 분노범죄라고 하지만 범인 힉스가 평소에 이슬람을 증오한데다 피해자들이 모두 무슬림이라서 이슬람모포비아로 보고있다. 이 때문에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이 범죄를 크게 비난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학생 수십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
2015년 4월 22일, 미국 연방지법은 친 이스라엘 단체인 미국자유수호협회(AFDI)의 이슬람 비방 광고를 버스에 부착할 것을 허용하도록 뉴욕시 교통 주무기관인 MTA에 명령하였다. 2013년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유사 광고가 있었다.
2015년 5월 유나이티드 항공 비행기를 탄 무슬림 여성 이맘에게 따지 않은 캔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며 스튜어디스가 차별적 대우를 하고 다른 승객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때 피해를 입은 여성 이맘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화를 위한 모임을 촉구하던 사람이라는 게(...). 이 사건에 대하여 미국 언론도 이슬라모포비아 하나로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2016년 8월 5일에도 터졌는데 미국 마이애미에서 워싱턴DC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한 무슬림 여성이 승무원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했다가 항공사에서 부른 경찰에 의해 기내에서 쫓겨났다. 경찰과 항공사는 기내 안전 때문에 이 여성을 쫓아냈다고 했지만 이 사건도 이슬람모포비아로 분석한다.
2016년 7월에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올랜드 사건과 니스 테러를 계기로 미국 내 무슬림 가운데 이슬람 율법 신봉자들을 가려내 추방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6년 8월 15일에 미국 뉴욕에선 대낮에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이맘과 보조 사제가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사제들이 소지한 돈을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경찰은 증오 범죄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 무슬람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16년 9월 8일에 뉴욕 브루클린 배스비치에서 30대 백인 여성이 각각 11개월, 15개월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중이던 무슬림 여성 두 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범인인 에미르제타 제릴리는 극렬 이슬람 혐오자로 평소에도 인터넷과 페이스북에 이슬람 혐오를 드러냈고 범행시 이슬람 혐오 발언을 하며 피해자들을 폭행하였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유모차를 뒤집으려고 하기까지 했다. 물론 범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피해자들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미국의 이슬람 단체인 아메리카·이슬람 관계위원회는 9일 성명을 내고 이 사건에 대한 검찰 기소와 이슬람 사원 등에 대한 경찰의 경계 강화를 요청했다.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감이 어찌나 확산되었는지, 유튜브 등지에는 소위 "Muslim bomb prank" 라고 해서 공연히 행인들이나 가옥, 상가 등에 정신나간(?) "장난"을 치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중동 사람처럼 변장한 공모자가 검정 가방을 휙 던지고 내달리면 행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41] # ##

2005년 벌어진 런던 자폭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것으로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2006년 프레스톤의 자미아 마스지드 모스크를 백인 젊은이들이 벽돌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청소년 1명을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
2007년 런던 중앙 모스크의 성직자를 대상으로 한 연쇄폭행사건이 있었고, 이집트 축구선수인 미도를 상대로 반무슬림 구호를 외친 뉴캐슬 유나이티드 훌리건 두 명이 체포되었다.
2009년 이슬람 릴리프의 글래스고우 지부가 방화로 크게 손상을 입었고, 그린위치 이슬람 센터에도 방화 공격이 있었다.
2011년 북웨일즈 플린트셔 지방에서 모스크 건설 계획 발표 직후 관련 기관에 방화 공격이 있었다.
2015년 파리 테러의 영향으로 런던에서 이슬람 증오범죄가 증가하여 런던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2016년 6월 27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행된 직후인 주말 동안 100여건의 무슬림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 국립경찰서장협회는 무슬림 증오에 따른 언어폭력이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달 전 같은 시기보다 57%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영국의 무슬림 공격사건 감시단체 '텔 마마'(Tell Mama)'가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무슬림에 대한 혐오범죄 사건사고는 437건으로 2014년에 비해 326%나 증가했다. 이러다보니 영국 정부는 굉장히 우려하여 대책에 나섰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보스니아계 무슬림들이 정교회 신도가 대다수인 세르비아계에 의해 대량학살당해, 사망 추정자 20만명에 5만여명의 여성이 강간당했고 22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서방세계에서는 이를 인종분쟁으로 해석하고자 하나 포차 지역 모스크 전부를 포함한 대다수의 모스크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손상된 것을 통해 그 배경이 종교분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코소보 전쟁은 알바니아계 무슬림의 자치권을 세르비아계가 일방적으로 박탈함에 따라 일어난 해방전쟁으로, 역시 다수의 알바니아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이슬람 대 비이슬람 분쟁의 근원으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이슬람 진영의 테러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이슬라모포비아도 크다.
2005년 팔레스타인과 적대적 관계 종결을 선언한 후에도 2006년 하마스가 집권하자 적대행위를 계속하고 있으며,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있다. 특히 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을 통해 이슬라모포비아가 극에 달하면 사람이 아닌 악마가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단, 이쪽은 이슬라모포비아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원래 적대 세력 자체를 미리 눌러서 세력 확장을 막는 예방전쟁에 가깝다는 평가다. 왜냐면 이스라엘은 이슬람만 탄압하는게 아니라 기독교도 악랄하게 탄압하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이단으로 찍혀있는 상황이다. 해외의 유대인들과 유대교도 기독교와 이슬람을 탄압을 하는 이스라엘을 굉장히 싫어하고 비난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이슬람공포증은 인종차별에다 적대 세력을 박살내려는 예방전쟁이 맞다.
2005년 10월 27일 저소득층 거주지인 파리 북동쪽 외곽마을 클리시수부아에서 검문 검찰을 피해 달아나던 소년 2명(15세, 17세)이 송전소 변압기에 감전하여 사망하여 아프리카 저소득층과 무슬림들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사고"라며 폭동을 일으켰고, 이에 반발하여 프랑스 내 무슬림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였다.
2005년 파리 모스크에서, 2009년 카스트르 모스크에서 반달리즘이 행해졌다.
2008년 아라스 지방에서 무슬림 무덤을 훼손하고 돼지머리를 묘비에 다는 범죄가 자행되었다.
2010년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승용차 내부 및 모스크에서 예배시 외에는 무슬림 여성의 니캅 착용이 금지되었다. 르 몽드지 조사 결과 무작위 설문 응답자의 74%가 이슬람을 참아줄 수 없다는 결과까지 나오고 있고, 이에 힘입어 우경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5년 1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 이후 닷새 사이에 프랑스에서 이슬람 시설 등을 겨냥한 공격이 50건 이상이나 발생하였고, 마린 르펜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등, 프랑스 내에서 이슬람의 입지가 매우 위태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프랑스 최악의 테러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증오 범죄가 평소의 8배나 증가했다.
2015년 12월 25일 프랑스 코르시카 섬 아작시오 시의 저소득층 임대주택단지 일대에서 주민 600여명이 며칠 동안 반 이슬람 시위를 벌였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소방관 2명과 경찰관 1명이 시위장소 인근에서 후드를 쓴 괴한 수 명에게 습격당해 다치는 사건이 터졌다. 그로인해 이 시위는 과격해져서 인근 이슬람 사원을 습격하여 기도실의 유리문을 깨부수고 난입해 쿠란 등 이슬람 경전 50여권을 빼앗아 거리에 내팽개치고 이 중 일부를 불에 태웠다. 게다가 사원과 인근에 살던 무슬림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이로 인해 현지 경찰이 출동해서 막았고 이슬람 사원에 경찰력을 배치했다.
2016년 4월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가 무슬림 여성에게 대학교에서 머리카락 등 신체를 가리는 스카프(히잡)를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6월 코르시카에서 다시 이슬람 사원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예배당이 크게 손상되었다. 프랑스 경찰은 증오범죄로 보고 있다.

2016년 8월 14일 프랑스 마뉘엘발스 총리와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프랑스 내 모스크와 이슬람 기도실에 대한 외국 자금 지원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즉 모스크들이 극단주의 세력의 자금 지원을 받나 감시하겠다는 소리다. 게다가 카즈뇌브 장관은 증오를 부추기는 사람은 모스크에 서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여 이맘들이 극단주의 설교를 하나 감시하겠다는 강경발언을 하였다.그래서 프랑스의 ‘이슬람혐오 반대연합’(CAIF)의 마르완 무하메드 사무국장은 모스크 전체를 테러리스트와 연계돼 있다고 매도한다며 비판했다.

호주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으나, 시드니 인질극 사건 이후로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 #illridewithyou 운동 등 이슬람을 두둔하는 운동도 전개되었지만 호주 전역에 히잡 착용 여성들을 상대로 폭행 사건이 수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슬람 사원에 돼지고기(...)가 투척되는 반달리즘 사건이 보도되는건 물론 카페나 버스등에 히잡을 쓰고 다니면 많은 사람이 조용히 나가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4.2 제3세계

이슬라모포비아는 일반인들[42]과 무슬림들의 생각과 달리 절대로 서구만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다. 서구권의 이슬라모포비아와 달리 언론에서 부각되고 있지 않아서 그렇지 비서구권의 비이슬람 지역 나라들 역시 세계와 단절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타 종교 집단에 대한 박해 뉴스는 들어오고, 국내에서 소수 통제 받지 않는 무슬림들의 악랄한 만행이 때때로 벌어지기도 한다(이슬람 근본주의 항목 참조). 이런 경우에 일반 주민들이나 타 종교를 믿는 주민들이 가지는 반발심리와 불안심리가 매우 격렬하게 확산되는데 이 역시 쉽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이쪽 비무슬림의 상당수가 서구와는 비교도 안되는 극렬 반이슬람, 이슬라모포비아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슬람 혐오가 서구와는 달리 조금도 관용 의식을 가지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43]
서구에서는 국가에서 무슬림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기에 대놓고 못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낮은 제3세계에서 이슬람이 소수인 국가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주도한 테러가 일어나서 몇명 죽으면 당장 비이슬람 집단도 폭동을 일으켜서 무슬림 거주지로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집이고 가게고 가리지 않고 때려부수는 등 처참하게 짓밟아버린다. 그야말로 한 대 때리고 100대 맞는 꼴.
그리고 경찰 같은 공권력에서도 애초에 이슬람 집단을 좋게 보지 않고 사회 불만을 이쪽으로 돌릴 수 있다보니 이런 폭동이 일어나도 제대로 법적 처분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백배로 보복당한 이슬람 집단 역시 증오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게 된다. 제3세계의 이슬람 무장 단체들이 미이슬람 국가들한테 심하게 얻어맞아도 잘 버티는 게 이것 때문이다.
여기 인구 절반 가까이가 기독교이니 이슬람과 인구가 비슷한 만큼, 그 내전 여파로 서로 죽고 죽이고 테러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여기처럼 이슬라모포비아와 크리스티아노포비아가 비슷한 인구층 수준으로 극단적인 나라도 없다. 특히 인간 쓰레기 집단인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행패로 이게 더욱 커지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수단과 한 나라였을 당시 온갖 차별과 억압을 받았기에 그 증오가 깊게 남았다. 하지만 단순히 이슬람 자체로만 그랬더라면 차라리 이 나라가 적어도 통합이 되기는 쉬울 듯(...). 항목보면 알겠지만 여러 부족 문제에 기독교조차도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 소수 남은 무슬림보다는 다수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내전 중이다. 물론 소수 무슬림도 언제라도 공격받고 그래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동티모르는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92%)이다. 필리핀과 더불어 여긴 포르투갈의 오랜 지배를 받아 이렇게 된 거였다. 사실 여긴 이슬람 인구는 겨우 2% 수준이다보니 그다지 테러를 벌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뒤 인도네시아에게 강제 병합되어 30년 가까이 지배받으며 무슬림 위주 정책을 벌인 점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남게 되었다. 그나마 여긴 인도네시아가 무슬림을 이주 정착하게 하지 않았지만.[44]
불교도 비율이 높은 미얀마의 경우 무슬림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각하다.[45] 이들의 선조가 7세기부터 미얀마에 정착했다는 학설과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다수가 미얀마로 이주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주자"라는 의미의 '벵갈리'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1982년 아예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군부 독재 시절인 1978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로힝야족을 탄압, 해외탈출과 송환을 반복하고 있으며, 민주화된 이후로도 2012년 테인 세인 대통령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하는 난민캠프에 정착시킬 것"을 주장하면서 "만약에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며 추방 의사를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미얀마 불교도들 대부분은 이슬람 사회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시간이 지날수록 불교가 이슬람에게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고, 극단주의적 불교도들은 이를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재생산한다. 특히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주변에 이슬람 국가들이 많다는 점도 이들의 불안요소를 상승시킨다.
미얀마에서의 박해를 견디지 못한 로힝야족은 보트피플이 되어 이웃 국가로 입국을 시도하지만, 동족인 방글라데시는 인구문제 및 경제적 문제로 미얀마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까지 수용할 여유가 없고, 태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은 제공하지만 기본적으로 반이슬람 정서가 강해 상륙은 불허하고,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도 받아주지 않아 머무를 곳이 없는 신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조차도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침묵하다가 국제사회의 비판과 압력이 거세지자 마지 못해 유감 표명을 한 차례 했을 뿐이다.
2013년 3월 불교도들이 메이크틸라 인근의 이슬람 기숙학교를 습격하여 36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형량이 10~15년이었던 것에 비해 같은 시기 살인혐의로 기소된 무슬림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어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2013년 7월 정체불명의 집단이 미얀마 인기 여배우의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하여 인종/종교 차별적인 발언을 퍼뜨린 사건[46]이 발생하였다. 이는 아신 위라투(Ashin Wirathu)[47]의 유튜브 비디오가 세계적 주목을 받던 시기에 벌어져 더욱 문제가 되었다.
2015년 5월 불교도와 무슬림 결혼 금지 및 여성의 출산 간격을 규정하는 가족법을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불교도 집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하여 입법하였으며, 이는 무슬림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같은 법안이 통과 예정 중이다.
불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법률상 불교를 우대하는 스리랑카에서는 소수파인 무슬림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48] 스리랑카의 무슬림들은 무슬림 비율이 높은 방글라데시에서의 불교도 탄압을 비난하는 등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론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의 소수종교 탄압과 파키스탄 및 아랍권에서 온 극단주의 무슬림의 행동들로 굳어진 이미지때문에 차갑게 보고 있다.
2012년 4월 20일 스리랑카 중부 도시 담불라(Dambulla)에서 약 8천명이 넘는 불교 승려들과 불교도들이 불교 성지 위에 이슬람 성원과 힌두 사원이 세워졌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이슬람 성원에 난입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난동을 부리다 정부 관리가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해산했다. 이에 스리랑카 내 이슬람 단체는 항의하였으나 여론은 "그러는 너희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다른 소수종교를 어떻게 대했냐?"
2013년 8월 불교도가 이슬람 사원을 공격해 적어도 5명이 부상했고, 뒤이어 불교도와 무슬림이 거리에서 충돌하면서 가옥 여러 채가 파손되고 사원을 지키던 경찰 2명도 다쳤다.
2014년 6월 강경파 불교 집단의 폭력과 방화로 무슬림 3명이 사망, 8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만큼(약 1억 7,700만 명) 이슬람과의 갈등이 매우 심하다. 거기에 카슈미르 문제(인구 대다수가 무슬림인데도 인도가 자기 영토라고 포기하지 않아[49] 카슈미르 다수에게도 인도는 극도의 증오를 받고 있다. 단 그렇다고 파키스탄에게만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에서부터 이웃 파키스탄과 여러 전쟁을 벌이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문제도 인도에게는 골치.
동투르키스탄 지역의 독립 요구와 테러로 인하여 그 지역에 거주하는 한족들이 꽤 경계를 갖고 있지만 평소 아랍권 눈치를 보며 아랍측 대변인이라고 나서는 중국 정부는 이로 인하여 이슬람에 대한 문제로 비쳐질까봐 일부 지역에서 갈등 수준으로 적게 보도하고 언론적으로 감추려 든다. 되려 중국은 신도 수가 나날이 늘어나는 기독교를 더 견제하고 법적으로 온갖 차별을 가하지만 일단 이슬람에 대해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이슬람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정부의 입장일 뿐이고[50] 최근에는 다에쉬들의 행각들도 널리 알려지면서 언론 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인터넷에서는 이슬람 혐오 정서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더욱이 (미국식) 정치적 올바름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국내 뉴스들에 달리는 댓글이 그러하듯 수위 높은 폭언들도 많다. 위구르 지역에서만 갈등이 심하다고 하는데 당연히 아니다. 2014년 쿤밍역 테러가 좋은 예. 온 중국이 경악할 스케일의 사고였기 때문에 쿤밍 지역만이 아닌 전 중국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굳이 테러가 아니더라도 이미 상당수의 무슬림들이 중국 다른 지방까지 퍼져 있으며 그들과의 충돌, 갈등에 대한 체험담 내지는 괴담들이 떠다닌다.[51] 게다가 언론은 이런 일들에 대해 덮어 감추려 하고, 지방 정부는 이슬람 자극하기 싫어서 이슬람 편향적으로 처리하다보니 한족들의 분노 게이지는 지속적으로 차오르고 있다. 한족 세속주의 뿐만 아니라 칭하이 성 등 지역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족들과도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장회충돌) 다만 실제 이슬람 혐오의 심각성은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상기한 내용은 공식적인 집계가 아닌 인터넷 언론에서 많이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국내 인터넷 뉴스 댓글에 이슬람 혐오 댓글이 많이 달린다고 현실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든 상기한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민주화가 실현될 경우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여과 없이 대중들의 귀에 전해질 것이며 이슬람에 적대적인 기독교도 숨통이 트이면서 정부의 보호를 잃은 이슬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더 나빠질 것이다.
태국도 갈등이 심한데, 여긴 원래 이슬람이 다수이던 여러 작은 나라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갈등이 깊다.
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빠타니·얄라·나라티왓 주는 말레이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거의 95% 이상이 무슬림이었으나, 태국이 강제로 차지한 게 고작 100년 남짓이었다. 불교 국가인 태국은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화하고 1920~30년대에 군대를 주둔시켜 모스크를 강제로 절로 개조하면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차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데 인구 80% 이상이 무슬림인 이 곳은 공무원 90% 이상이 불교도이며 공립학교 또한 불상을 두고 불교 교육만 배우게 한다. 무슬림 다수는 실업자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런 이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는 깊어져 가고 결국 과격 이슬람 세력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려버렸다. 주둔 태국군은 막장으로 테러 의심되는 무슬림을 재판도 없이 참수하지 않나, 그 보복으로 역시 대다수 불자 민간인을 참수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2014년 10월 관공서에서 폭탄이 터져 소방차 및 시청이 파괴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슬람 국가이고 동족을 옹호하는 말레이시아는 태국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문제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태국 측은 자기들 잘못은 생각안하고 이 모든 게 말레이시아 탓이라고 반발하며 두 나라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국경과 접한 가운데 이 3개 주가 말레이시아와 마주보고 있으며, 여기서 분리독립하는 이들이 차라리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는게 낫다고 선언까지 하고 있기 때문.
인구 90%가 기독교(80% 이상이 가톨릭)인 필리핀이지만 10%가 채 안되는 무슬림과 사이는 극도로 나쁘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들은 같은 동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는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필리핀 역사를 봐도 알겠지만 위에 태국처럼 독립을 요구하는 민다니오 섬을 비롯한 지역은 대다수가 무슬림이고 320년이 넘는 스페인과 50년 가까운 미국 지배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던 만큼 많은 학살과 수탈을 당해 왔기에 기독교에 대하여 이가 갈릴 역사와 증오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필리핀은 대다수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니[52] 서로 역사도 종교도 다르며 동족으로 여길 수가 없다.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외세에 잘도 굴복하고 굽신거리는 기독교 색히들이 우리 땅까지 쳐먹으려고 한다며 거부감을 보이며 독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허나 자국 땅을 포기 못하는 필리핀은 독립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응징하니 당연히 내전이 터질 수 밖에.[53] 이 와중에 아부 사야프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나타나고 외부 이슬람 극단주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더더욱 악랄하게 무차별 기독교인 테러로 나서면서 필리핀에서도 이슬람 혐오증이 커졌다.
필리핀이나 태국에서도 하도 짜증나다보니 '골치아픈 놈들 땅을 가지면서 고생만 한다. 차라리 저 색히들 요구대로 독립시키고 무슬림을 죄다 내쫓으면 된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둘 다 군대 보내고 강제로 핍박하고 기독교인 및 불교인을 이주시켜 정착하게 하므로(이건 이스라엘도 똑같다!) 갈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민다니오 섬에 자원 봉사하러 간 이가 본 바에 의하면 필리핀 측에서 일부러 그런 건지 도시 개발도 엉망이고 그나마도 도시 개발이니 뭐니 하는 것도 죄다 기독교인 거주 지역에 우선권을 주니 현지 무슬림들이 이가 갈릴 법하다고. 자기들을 도우러 온 외부 기독교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답답한 듯 하소연하길 "온갖 차별을 가하고 이젠 우리 땅에까지 필리핀 기독교놈들이 정착하니 우리가 그들을 대체 곱게 보겠어요! 차별없이 잘 대해줬다면 적어도 극단주의 과격파 지지는 훨씬 줄었을 겁니다."라고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나마 오랫동안 내전을 벌이던 이슬람 모로 민족 전선(MILF)은 우리도 지겹다며 필리핀 정부와 협상에 들어가 자치권 보장을 받으며 무력충돌을 멈추고 있다. 하지만 아부 사야프같은 극단파는 완전 독립 아니면 NO 인정! 하며 맞서고 있어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필리핀 정부는 MILF라도 자기편으로 만든것에 만족하며 극단파들을 족치는데 주력하고 있다.

4.3 대한민국

유럽에서와 같은 "이문화간 융합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계층의 반발"과 미국에서와 같은 "잠재적 테러집단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두 유형이 동시에 발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슬람권에 대한 여론과 정책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동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문민정부 이전까지의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을 넘어 찬양 수준이었던 학교 교육과, 미국이 적대 관계를 취한 이란, 이라크 등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묘사들이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친미냐 친소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부 종교단체를 제외하고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고 단순히 이국적인 이미지로만 받아들였다. 일반 국민들은 9.11 테러 이전까지는 이슬람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안감을 갖지는 않았고, 중동 지역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경제적 협력이 가능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보거나,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맨체스터 시티로 대표되는 리얼부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21세기, 그리고 2010년대 들어 아래와 같이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 외국인 노동자 유입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국내 단순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진 데 이어 다수 기업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활용함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우리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잘못된 현실인식이 제노포비아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데, 개인이 저지른 크고 작은 사적인 범죄는 있었을지언정 서구에서 일어난 것같은 무슬림들의 집단적 행동이나 종교적인 동기에 의한 테러 또는 범죄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54]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송출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해 달라는 민원과 제안이 2010년 한해 178건 접수되었고, "이슬람 국가의 유학생을 받지 말라”,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을 승인하지 말라”는 등의 민원도 발생했다. 하지만 서구와 비교해 봤을 때 한국에는 파키스탄 정도 외에는 과격한 이슬람 국가 출신 이민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55]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에 군부대를 파견한 결과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대한민국도 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김선일씨 참수사건,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시나이 반도 버스 폭탄테러 사건, 한국 청소년 이슬람 국가 가담 사건 등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피해를 입는 사건들로 이어졌다. 중동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슬람 서울 중앙성원에 항의, 협박, 혐오발언 전화 등이 폭주하는 것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2015년 10월 코엑스 테러 협박, 11월 IS를 추종하는 불법체류 인도네시아인 검거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여러 국가 기관에서 대한민국 내에서의 테러 발생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 자극적 뉴스와 댓글문화
9.11 테러, 다에쉬의 등장, 중동을 중심으로 한 전쟁 및 테러 등 어두운 뉴스들은 이슬람과의 종교적, 문화적 교류를 통해 장단점을 모두 배우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이슬람은 테러종교"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적인 뉴스에는 원색적인 댓글들이 달리면서 일반인들 사이에 이슬람 혐오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일베, 오유, 보배드림, 뽐뿌, 82쿡, 클리앙 등등 좌우, 성향, 남녀노소 구분 없이 거의 모든 유명 커뮤니티에서 이슬람을 욕하는 의견은 다수의 지지를, 옹호하는 의견은 다수의 반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고치려는 여러 단체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또 이슬람 극단주의가 사고쳤다는 뉴스가 하나 뜨면 말짱 도루묵이다. 과거에는 주로 극우 성향이나 종교적 성향의 사용자들이 돼지고기, 술, 개 등 한국 사회와 일치하지 않는 이슬람 교리 및 무슬림 문화를 빌미삼아 무슬림을 열등한 인간으로 묘사해 저급한 우월심리를 자극하는 형태로 이를 주도했으나, 2014년 ISIL 등장 이후로는 주로 테러 및 잔혹행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를 일부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IS 및 알카에다 테러들로 인해 인식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한국으로 유학온 이슬람 학생들을 위한 기도실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대학교를 비난하는 등, 이슬람포비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댓글에 볼 수 있듯이 비공감의 수도 적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귀화하거나 한국인과 혼인해 이들의 2세가 한국사회에서 자라면서 문화적 갈등이나 사회적 부적응을 겪을 우려가 조금씩 점쳐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많이 겪는 문제에 더하여, 이들 가정에서 이슬람 교육에만 힘을 쏟고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속적 지식이나 교육을 등한시하거나 종교적 이유로 한국 교육을 거부하면서 이들 자녀들이 일반 한국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빌미로 일부 극단적 다문화 반대주의자들은 반이슬람 국민정서를 완화시키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아예 무슬림들의 장기 국내 거주를 금지해 "외로운 늑대" 형태의 무슬림 2세대의 일탈을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국 많은 개신교회에서 이슬람 나라 선교를 부르짖고 온갖 민폐를 가서 끼치다가 난리를 부리면서 정작 한국에 무슬림이 하나라도 오면 우리처럼 선교하러 온다고 하고 왜곡을 더해 신도들에게 가르친다. 이슬람 선교를 지지하면서도 한국 개신교의 선교 정책은 최악이라고 비난[56]하는 김동문 목사(아랍어에 능통하고 아랍권에 오래 거주하며 무슬림 지인들을 많이 둬 아랍 정보통 목사로 유명하지만 근본주의 개신교계에서 빨갱이 목사라는 개소리로 비난하고 있다...)는 이런 한국 개신교계의 이슬람 공포증 조장은 기독교 공포증 못지않게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한국 여러 교회에서 터키에서 이슬람 선교단을 수백여명 한국으로 보낸다고 난리법석을 부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터키는 이슬람권에서 세속적인 나라이고 터키 안에서조차 이슬람 선교는 불법화된 나라이다. 그런 터키에서 대놓고 선교단을 보낸다? 김동문이 알아보니 진실은 고작 터키 대사관 측에서 직원 2명이 새로 왔다는 것. 당연히 무슬림이지만 이들은 대사관 직원이니 선교하러 온 게 아니었다. 이 사례를 이야기하며 허구헌날 이슬람권에 묻지마 선교, 땅밟기 등 아주 개신교 망신을 자행하면서 닥치는 대로 선교하자는 이들이 정작 무슬림 대사관 직원이 새로 오는 것만으로도 지들처럼 선교하러 온다고 공포에 질리고 이슬람을 왜곡하여 공포증을 부르짖으니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 우호적 시각
이슬람에 대한 옹호나 무슬림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도 상당히 존재하는데, 이는 정치적 입장에서 미국이나 서구 강대국들이 짜놓은 반이슬람 프레임을 경계하고 균형적인 시각을 갖자는 견해,[57]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이슬람을 문화적 차이로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견해, 또는 특이하게도 한국에서 근본주의 개신교가 일으키는 여러가지 병크들에 대한 반감으로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특히 적극적으로 반대하는[58] 이슬람을 옹호하는 견해 등이 있다. 한국인이 피해를 입은 각종 사건들 중 일부는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의 공격적 전도와 배타적 성향에 따른 자업자득이라는 여론도 있었다.

5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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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극복을 위한 노력

이슬라모포비아에 기반하여 반이슬람행위에 빠져들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와 허용, 그리고 이슬람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 비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자국에 유입된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하여 배척하지 않고 이해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노포비아 자체가 해당 인종에 대하여 막연한 공포감을 토대로 형성되었음을 인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도록 하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 문화권은 오랜 기간동안의 율법에 의한 통치와 남성 중심의 율법적 해석이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중동 세계도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개혁 요구와 함께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기존 관습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비이슬람 진영에서 경계하고 배척해야 할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지 무슬림 전체 또는 이슬람 문화 자체가 아니다. 이슬람계 출신이면서도 다른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그저 문제아들과 같은 민족, 같은 종교라는 것만을 이유로 무조건적인 차별을 일삼으면 오히려 멀쩡하던 이들도 반발심리로 진짜 문제아들인 극단주의자들에게 가담할 수 있다. 실제로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지하드, 즉 이슬람 대 반이슬람의 전쟁이라고 정당화하여 이슬람 사회 내에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이슬람에 대한 비이슬람 진영의 차별이 늘어날수록 일반 이슬람 교도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자발적인 지하드 가담이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궁극적인 방법은 비이슬람 진영에서 이슬람에 대한 열린 시각을 넓혀 일반 무슬림들이 비이슬람 진영과의 전쟁 상태가 아니라고 스스로 느끼고 극단주의를 이슬람 내에서 배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슬람은 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전쟁상태가 아니라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일반 무슬림들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는 이슬람 대 비이슬람 사이의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된다.

5.1.1 이슬람 외부의 노력

일단 서방의 방식은 세속주의를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존중하는 무슬림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무슬림은 적극 적발, 추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즉 이슬람의 전근대성을 약화시키면서 세속에 편입시키는 식이다.

각국 정부에서 아래와 같은 조치들을 취한 바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아래와 같은 활동들이 전개되었다.

  • 오타와 총기난사 사건 직후 이슬람 혐오자들이 모스크에 낙서를 하는 등의 비이성적 행위를 했지만 이후 지역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스크의 낙서를 지우고 "이곳이 너희 집이다"라는 문구를 달아주었다.
  • 시드니 인질극 사건의 여파로 호주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호주인들 사이에서 무슬림, 특히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린치 당하지 않도록 동행하자는 #illridewithyou 운동이 전개되었다.# 토니 애벗 총리 역시 "IRA가 종교적인 의도로 테러를 한다고 해서 교황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며 이번 사건과 이슬람과의 선을 그었다. 다만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를 저지를 경우에는 가차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 프랑스에서도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사건의 여파로 국민전선 등의 일부 우익 활동가들이 이슬라모포비아 활동을 재개하고 있으나 공화당원 주도의 추모시위에서 르펜과 강성 우익인사들을 초대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이슬람 그 자체를 적대시하려는 시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59] 프랑스 대통령 역시 "우리는 종교가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근대성을 고집하는 무슬림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 대한민국에서는 수능을 응시하는 수험생들이 제2외국어에서 아랍어를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찍음으로써 등급컷을 낮춰, 더 많은 수험생들로 하여금 아랍어를 접하게 하고 있다.

즉 이슬람 자체를 적대시하지는 않되, 이슬람의 전근대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시정 요구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시정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1.2 이슬람 내부의 노력

2010년 튀니지를 비롯한 아랍의 봄을 시작으로 이슬람 내부의 자성과 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동 지역의 기존 정권에 대한 개혁 요구로 인해 시작된 시위는 그동안 이슬람 문화의 자성을 보여준다. 정책적으로 터키는 2004년에 명예살인은 살인죄로 적용키로 하여 자행되던 악습의 피해자를 감소시켰다.[60] 사우디아라비아는 높아져 가는 이혼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율법에 따르면 이혼은 가능하나 되도록 피해야할 사항이나 부부간의 갈등 표출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61] 이란의 한 여성은 히잡에 반대하여 페이스북에 히잡 쓰기 반대 운동목적의 사진을 게시하였고 국제 NGO는 인권상을 수여하였다. [62]

5.2 한계

문제는 국제정세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스라엘-미국-이슬람 세계와의 이해관계와 증오의 연쇄 문제다. 단순히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라고 쉽게 단정지을 문제가 아니다.

  •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지하드 상태로 보고 있으며,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중동에서의 두 세력의 존재 자체가 화해할수 없는 문제라고 간주하고 있다.
  • 이스라엘의 경우 본래 단순히 유대인 거주구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세속 국가를 지향했지만 제1차 중동전쟁과 제2차 인티파다 등 아랍측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전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지금의 상황은 이슬람측이 먼저 유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벌인 일이며 현재 이스라엘의 대응은 이에 대한 '대응'임을 주장한다.
  • 미국의 경우 이스라엘과 아랍의 왕족들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보복테러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는 것이 미국 이슬람포비아의 주류이며 실제로도 9.11 테러에 의해 고조된 반이슬람주의는 테러와의 전쟁 후유증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가 ISIL의 등장으로 다시금 여론의 50% 이상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이슬람 극단주의가 서구를 위협하는 이상 반이슬람주의는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면 이슬람-이스라엘-미국 3자가 풀어야 되겠지만,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라 현재로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또다른 중요한 사실, 이슬람공포증을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은 극단주의 조직들의 테러 행위인데, 이게 바로 그러한 조직들이 원하는 바라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배척이 심해질 수록 이슬람 2세대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가게 되고, 이는 손쉬운 '전사' 공급원이 된다. 포용은 어렵지만, 증오와 혐오는 쉽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셈.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충돌 사례들이다. 동영상 제목부터가 "이슬람이 유럽과 미국을 망치고 있다"며 비무슬림측 입장에서 샤리아 경찰, 폭력 폭언 사례 등을 묘사하고 있으나, 비무슬림들이 무슬림을 상대로 욕설과 모욕을 퍼붓는 영상들도 포함되어 있다.

5.2.1 이슬람측의 문제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교리에 있다. 지하드는 기본적으로 이교도에 대한 살해를 인정하는 등 전근대적인 측면이 많고 설사 샤리아를 전면부정한다고 해도 쿠란에도 독소조항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교리 자체를 고칠 수는 없어도 전면적인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63] 또한 와하브파살라프파 같은 일부 종파는 반드시 추방해야만 한다.[64]

또한 종교계를 넘어 정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원리주의가 큰 영향을 끼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양대종파 수니파와 시아파의 수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과 같이 원리주의 신정체제 국가의 경우 정치계학계가 원리주의를 엄수하기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고, 무슬림이 절대 다수로 있으나 샤리아 법이 실정법으로서 작용하지 않는[65] 세속 국가에서도 무슬림 인구수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언론계 내 원리주의 확대 및 말레이시아 B1A4 팬미팅과 관련하여 발생한 성추행 논란은 샤리아 법정의 처벌에 따라 결국 이벤트 주최자가 자격정지되었다.그 외 다수 非이슬람 국가에서도 인도, 미국에 샤리아 법정이 존재하는 등, 원리주의는 다양한 지역,형태,계층에 자리잡고 있다. 원리주의와 극단주의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극단주의의 폭력적 행위는 원리주의에 그 근거를 두는 것이 현실이고, 테러리즘의 형태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서구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의 가치에서 탄생한 UN 인권헌장의 관념에 신본주의적 가치가 충돌하며 물러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66] 즉, 인도 이슬람 학자 집안 출생의 유명 미국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역시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가진 피비린내 나는 믿음은 무슬림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온건한 무슬림조차 신성모독과 배교는 이슬람에 대적하는 범죄로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라는 오피니언으로 정리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장애는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 및 배척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 이는 서로 융화하기를 꺼려하는 무슬림만의 책임도 비무슬림만의 책임도 아니다. 양쪽 모두 문화적으로 100% 융화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종교관습을 명목으로 자행한 위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러한 행위를 경계하는 측도 선을 지켜가며 맹목적인 혐오가 아닌 비판의 영역에서 머물러야만 한다. 그러나 각각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못할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가 문제인데, 대표적으로 샤리아 법[67]이 무효하다는 점에서 물러 설 수 없는 비무슬림과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듯, 샤리아 법에 따른 신성모독 금지와 표현의 자유란 현대 시민사회의 가치가 충돌할시 샤리아 법에 따른 가치를 비무슬림이 받아들일수는 없는 법이고 반대로 평범한 무슬림 조차도 받아들이기에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인 경우극단주의화 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다시 말해 비무슬림 측에선 발생한 갈등현상에 대해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는 마키아벨리즘식 대응으로 정치적인 귀결[68]이 나기도 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해결 비용(사회적/경제적)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심리와 경계 심리가 만나 이슬람권 전반에 대한 효율적인 경계를 넘어 비이성적인 공포증,혐오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반대로 무슬림 측에서는 다소 관용적인 세속주의부터 IS[69]와 같은 극단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를 정의하는 방식의 범위가 다양하긴 하나 앞의 사례들로 소개되었듯 원리주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한편으로는 그것이 구조화, 확대화, 심지어 극단화까지 되기도 하여 갈등의 원인이 재생산되는 상황이라 이슬라모포비아란 갈등 현상의 해소를 기대하기에 부정적 전망이 내세워지기도 한다.

이슬람의 문화와 제도, 규범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그 반대로 비이슬람의 문화와 제도, 규범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율법과 제도, 문화는 비타협적이고 다른 문화와 국가, 종교의 규율과 규범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이슬람측이 관용적인 태도로 수용하고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태도를 취해야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슬람의 정교일치 사회, 종교적 규범이 일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속성상 절대로 타협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 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사람과 비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사람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슬람-비이슬람 사이의 충돌의 원인은 과거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고, 서구 유럽사회 또는 자본가들이 저임금 노동력의 활용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개발국가의 외국인노동력을 수입해 자국내의 임금억제-자국민 노동자 견제를 해왔고, 하필이면 그렇게 수입된 외국인노동자들의 다수가 무슬림이었다는 점에 있다(유럽의 경우).

이 문제의 해결의 키는 오직 이슬람 측만 가지고 있다. 왜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불교에 대한 비판, 기독교 경전 또는 예수에 대한 비판과 불경 또는 부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 그 종교의 창시자 등에 대한 비판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 문제는 이슬람측의 종교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비이슬람측의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오직 모든 인류가 이슬람을 믿거나 단 한 명도 이슬람을 믿지 않는 두 가지 극단 외에는 결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5.2.2 비이슬람측의 문제

한편 이슬람 내부의 전근대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70] 극단주의자들이 와하브파 및 그들의 후원을 받는 자들이나 테러집단에 속한 자들 혹은 신념적 과격주의자들임을 무시하고 전체 무슬림과 전체 비무슬림 사이의 갈등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극단적 반이슬람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슬람을 비난하는 행위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하는 언론인과 정치인들로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각종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다. 현재의 반이슬람 정서는 우익 활동가들의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캠페인의 결과물이며, 특히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진영이 자유진영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반이슬람 운동을 활용하여 정치적, 당파적 이득을 챙긴 것으로 분석된다.

반이슬람주의 네트워크는 미국의 티파티 운동에서 유럽 극우세력, 이스라엘의 극우 시오니스트, 교회 복음주의자들, 영국의 인종주의자들인 축구 훌리건들에 이르기까지 대륙간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고, 국내에서도 이슬람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미국의 기독교 언론 기사들을 그대로 번역한 기독교 언론들의 기사들이 난립하고 있다. (다만 기독교 언론의 기사라 하여 사실왜곡을 전하는 것이 아닌 이상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 계열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며, 대다수의 언론은 무슬림 내부에서의 테러 비판에는 침묵하고 테러만 발생하면 무조건 이슬람 배후설부터 기사화하는 등,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언론인은 물론 그러한 편향적 기사들을 접하는 일반인들의 이성적 판단과 객관적 비판을 방해한다.

6 결론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 및 배척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이고, 특히 대부분의 종교가 갖는 이교도에 대한 배타성은 이를 더욱 극복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에 의해서만 살아가서는 안되는 존재이며, 문화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100% 융화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서로 인정하고 다른 문화와 공존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각 국가는 개인이 신봉하는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각종 위법행위를 엄단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제안하는 보편적 가치를 법률에 점진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슬라모포비아를 가진 사람들은 이슬람측의 문제를 이유로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나,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오히려 무슬림이 사회에 융합하는 것을 방해하고 소외와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극단주의를 선택하게 만든다는 의견이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이후 유럽 내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라모포비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관계에 놓여 있으며, 양쪽 모두 반세계화를 바탕으로 한 우경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부 무장 단체들에 의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 극단주의적 범죄들이 지하드나 순교라는 명목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가 크게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요에서도 언급하였듯 이슬람공포증에 의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나 비하는 반인권적인 불관용 행위로 국제사회에서 규정된 바, 어느 쪽이 더 나쁘다를 따질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공존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문제이다.

7 여담

나무위키 역사상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위키위키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긴 토론이 지속된 문서이기도 하다.[71] 그 토론을 중재하느라 갈려나간(...) 전 임시관리자들은 이 문서만 보면 노이로제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닫힌 토론 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72]

8 관련 문서

  1. 이슬람의 상징이 초승달이긴 한데, 별은 아니다.
  2. 프레드 할리데이는 이에 대해 국가 및 문화에 따라 이슬람에 대한 편견의 형태가 다르다며 부정하였으나, 말콤 브라운, 로버트 마일즈 등은 차별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하였다.
  3. 범죄자가 비무슬림일 경우 그 범죄자의 종교에는 관심도 없이 범죄자만 비난하지만, 무슬림이라면 이슬람까지 함께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4. The Britannica Guide to Political and Social Movements That Changed the Modern World, 2009, 317쪽
  5. 종합경제사회연구원 중동 지역연구, 3-3)
  6. 농담이 아닌 것이, 만약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슬람군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 유럽은 이슬람 문화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7. 오스만 제국의 경우 1831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1/3 가량이 그리스 정교회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8. 이슬람과 타 종교의 병존 흔적은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레반트 지역 기독교 등으로 남아 있다.
  9. 서양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므로 출처는 필요없겠지만, 일단 참고 바람#
  10. 프랑스는 중앙집권이 확립되지 않아 왕과 귀족 간의 다툼과 분쟁이 잦았고,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힘이 없었다.
  11. Jonathan Phillips, The Crusades 1095-1204, pp. 17-23
  12. 9.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의 성명에서 언급된 "80년 간의 굴욕과 불명예" 발언이 이를 겨냥하고 있다.
  13. 이는 이후 유태계 자본이 언론 및 영화계를 지배하면서 더욱 강화된다. 단, 9.11 테러 이후로는 반대로 무슬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14. 친소 진영은 사회적 유물론에 입각, 집권 성향에 따라 종교를 탄압하거나 적어도 권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오히려 원리주의자들을 무신론에 맞서 싸우는 숭고한 종교인으로 포장하고 지원했다. 람보 3에서 공산정권에 맞서 싸우는 무자히딘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15.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에서 중동의 전 국가들이 연합해도 미국을 못이긴다. 당장에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한테 경제 제재만 내려도 입는 타격이 장난 아니기에 미국의 의견은 절대 무시못한다. 이란과 시리아가 중동에서 반미국가이지만 미국을 이길 힘이 없어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다.
  16. 이는 싱가포르의 인도/인도네시아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일으킨 폭동과 유사하다.
  17. 이는 실업률이 높아지거나 사회의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국가에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
  18. 미국과 유럽에서 이슬람에 대한 탄압을 막는게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제일 좋은 예인데 테러 발생한다고 이슬람을 심하게 탄압하여 무슬림들이 더욱 증오하게 되어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한다.
  19. 당장에 이슬람 풍자나 욕 한마디만 해도 벌떄같이 일어나 당사자를 죽이겠다는 소리를 하니 누가 좋은 눈으로 바라볼까. 그러면서 자신들은 다른 종교 욕을 마음껏 하니 비이슬람권에서는 적대시할수 밖에.
  20.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13년 테러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법적으로 금지하였고 미국과의 합동 공습에 동참하는 등 태도를 바꾸었다. 하지만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이에 따르지 않고 있다.
  21. 다만 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그 내부에서 박해받고 있는 소수파인 비무슬림의 경우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다수파인 무슬림들이 오히려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소수파가 가해자인 경우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흔하고 오히려 다수파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허나 현대에 종교를 이유로 박해하는 지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이슬람권이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이슬람권의 경우 인종, 경제적 가치보다 종교적 가치가 더 높고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인종차별이 차지하는 위치를 종교적 차별과 탄압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미국과 같은 경우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종교적으로 차별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유럽도 마찬가지. 그러나 인종차별은 아직도 남아 인종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강도의 경우 이슬람이 더 심각한 것은 맞다. 이유는 서구 선진국의 국민들이 경제적, 의식적 측면에서 더 나은 상황에있기 때문이다.
  22. 그러나 실제 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의해 종교적인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포함한 박해를 당하고 서구권에서 이슬람포비아 활동을 하고 있는 인사(소말리아 출신의 아얀 히르시 알리나 레바논 출신의 브리지트 가브리엘)도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전적으로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23. 미국의 흑인인권운동, 영국/프랑스의 전쟁반대, 여성/아동의 인권 신장
  24. 모든 정보가 날조된 거짓정보라는 의미가 아니며, 무슬림 진영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통제하지 못해 국제사회에 무수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며, 과거 냉전 시기 공산주의의 부정적 측면 역시 많은 부분 실재했다. 중요한 것은 편중된 정보에 의해 "이슬람이 무조건 나쁘네"라는 결론으로 유도되지 않도록 개개인이 각 사안마다 비판적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다.
  25. 버스 안이랑 공공장소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하면 테러 공포감에 '테러범 잡아라' 하며 집단 린치를 당할 수 있다. 경찰에게도 테러범으로 간주되어 체포당하여 조사받게 된다. 기독교가 '하느님이 위대합니다'라고 하면 '저 사람 민망하게 왜 저래'라며 무시받는것과 차원이 다른 조치다.
  26. 각국 총 인구 기준 무슬림의 비중은 영국 4.4%, 프랑스 5~10%, 독일 1.9%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프랑스의 경우 제대로 된 인구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 독일의 경우는 이전 조사 결과인 5.9%에서 급감했는데, 이는 독일 내 이슬라모포비아 현상의 증가로 무슬림들이 불이익 당할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종교를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7. 이 요구는 작게는 히잡착용이나 할랄푸드 영업허용 등과 같이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샤리아법 도입 및 종교경찰활동이나 이슬람 거주구 에미레이트 분리독립 등과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다. 어느 선까지를 요구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해 이슬람과 비이슬람 사이에 합의가 필요하다.
  28. 유교나 타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경전에 명시된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법적 처벌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그러한 법적 처벌이나 삶의 제약의 정도가 세속화 추세나 정교분리에 따라 이슬람권과 달리 현저히 감소했다. 더욱이 유교를 종교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9. 하지만 이슬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남성에 대하여서는 상당히 유연한 자세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
  30. 그러나 2016년 현재 미국과 영국의 실업률은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임금 기반 직업군을 이민자들이 차지해서 청년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의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1.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의 증오 심리로 인해 홀로코스트가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자.
  32. 이슬람이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쿠란의 "불신자들의 목을 쳐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전쟁 중에 국한된 것이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불신자인 피정복민(딤미)에게는 "이슬람이 보호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소위 인두세라 불리는 "지즈야"라는 세금을 징수하였을 뿐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오스만 투르크 초기에는 세금도 동로마 제국에 비해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와 유대교도들은 세금만 내면 종교의 자유를 누렸던 것으로 평가된다.
  33. 그러나 이러한 관용은 이슬람과 같은 신을 믿는 유일신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으로 다신교도들과 무신론자들은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하기도 했고, 무신론자-신을 믿지 않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다.
  34. 인도랑 동남아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러운게 이것때문이다. 특히 무슬림들은 인도와 동남아인들의 종교만 박해한게 아니라 그들을 야만인으로 멸시하게까지 했다. 그러니 이쪽의 이슬람 혐오는 서방 세계의 이슬람 혐오만큼 심하다.
  35. 하지만 이에 대해 UNUN 인권위 모두 "명백한 차별"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36. 반이슬람 외에도 메르켈 정부의 난민 수용 정책과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 의견들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37. 이게 본진이라 할 체첸 지부(러시아어로는 "빌라얏 노흐치최(Vilayat Nokhchicho)"의 문제만이 아니고 잉구시 공화국 지부인 "빌라얏 갈가이체(Vilayat Galgaycho), 다게스탄 공화국 지부인 "빌라얏 다게스탄(Vilayat Dagestan)" 같은 타 지부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체첸 쪽은 카디로프가 밟아 놔서 그나마 괜찮은데 오히려 다게스탄이 더 극성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 하부 조직 주제에 상부도 쌩까고 지들끼리 IS에 충성맹세를 한다는 것부터가(...)
  38. 물론 이 극단주의적 행동에는 나무위키 규칙상 링크 금지인 납치 및 참수 같은 막장짓들도 해당된다. 체첸 사태 때도 하타브에게 지원 받더니 결국 유유상종됐다
  39. 체첸전 시절에 수피즘 계열 세력도 잔학행위는 했다.
  40. 이놈들이 체첸 내부에서도 난장판을 친 것도 있고, 다게스탄 침공(그 악명 높은 1999년 다게스탄에서 벌어진 "체첸 클리어"도 다게스탄 침공 부대 지휘관 "살라투딘 테미르블라토프(salautdin temirbulatov)"가 벌인 짓거리였다. 인과응보인지 투옥된 이후 의문사를 당해서 문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증발했다) ,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으로 벼르고 있던 러시아에게 명분만 신나게 줬다.
  41. 물론 여러분이 우려하듯이, 둘러보다 보면 어지간히 짓궂은 길거리 몰카 장난도 웃어넘기는 미국인들조차 빡쳐서 "야이 개새꺄, 웃기냐? 웃겨?"하며 작정하고 쫓아가서 공모자에게 그라운드 기술을 거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장난이 마냥 웃고 넘기기에는 사회적으로 선을 넘은 부분이 있다는 것. 당연히 무슬림들은 이 장난을 매우 싫어한다.
  42. 여기서 말하는 일반인은 비서구권의 비이슬람 지역의 주민을 의미한다.
  43. 단, 서구에서도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외로운 늑대에 의한 다수 소프트 타깃 테러, 브렉시트 결정에 이민자 문제가 미친 영향 등으로 인해 이성적인 관용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44. 인도네시아 지배 하에서도 무슬림 수는 4% 정도가 최고였으며 동티모르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줄었다.
  45. 미얀마 주류인 버마족이 영국 식민지 시절에 불교에 깊이 의지하여 불교 자체가 민족의 정체성이 된 한편, 로힝야족 등 무슬림들은 침략자인 영국의 부역자로 미얀마에 유입된 제국주의의 산물로 인식한다. 일각에서는 이슬라모포비아는 그냥 간판이고 실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로힝야족을 배격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며, 다른 측에서는 종전 카렌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반란 명목으로 학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굳건한 군부의 지배력 및 내부 불안을 이슬람 탓으로 돌려 민주화 흐름 속에서도 군부의 경제적, 정치적 입지 및 언론이나 종교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기도 한다.
  46. 미얀마 인기 여배우의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한 집단은 미얀마의 극우단체인 마바타(민족과 종교 수호 위원회)로 추정된다.
  47. 자칭 미얀마의 빈 라덴이라고 주장하며 공공연하게 무슬림 말살을 외치고 다니는 불교 승려로, 90년대에 반이슬람 선동 및 폭동 주도 혐의로 징역 8년을 산 적이 있다.
  48. 힌두교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며, 각각에 대해서는 스리랑카 내전 항목과 크리스티아노포비아 항목 참고
  49. 사실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서 지도자 하리 싱이 인도를 선택해 버렸기 때문. 인도 입장에서는 우리한테 붙겠다고 했는데 왜 그러냐? 하는 것이다. 카슈미르가 큰 땅덩어리이기도 하니.
  50. 이 정도면 중국 공산당이 체제유지의 일환으로 무슬림들을 배려해주고 편의를 봐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51. 단적인 예로 중국어 실력이 된다면 바이두에서 切糕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안다.
  52. 지배에 순순히 응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당연히 그랬을리 없다. 애초에 19세기부터 스페인이 급속으로 쇠락하면서 반격을 꾸준히 해왔다. 스페인이 처음 식민지배 했을때는 무기가 워낙 우수하기도 했고 그당시 워낙 강대국이라서 강하게 눌려있을수 밖에 없었고 이후 스페인이 쇠약해진 후에도 스페인은 쿠바처럼 꿀맛 같은 요충지인 필리핀을 놓아주질 않았고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53. 근데 필리핀 입장에선 독립시켜주었다가는 다른 섬들도 독립하겠다고 난리칠것이 분명해서 독립시켜줄수가 없다.
  54. 2004년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라는 방글라데시인 500여명 규모의 종교 모임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반한 테러단체로 오인하여 공개한 바 있다. 경찰 수사 결과 어떤 테러 연관 증거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해당 단체 방글라데시인과 방글라데시 대사가 항의하였다.
  55. 한국에 있는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는 2015년 6월 기준으로 인도네시아(39,303)-우즈베키스탄(35,537)-방글라데시(11,749)-파키스탄(9,124)-키르기스스탄(2,721)-카자흐스탄(2,409)-말레이시아(2,146) 순이고, 압도적으로 다수인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은 세속적이다. 다만 인도네시아에서도 민주화 이후 날뛰는 강경 무슬림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고, 우즈베키스탄도 IMU 같은 원리주의 단체들을 세속적 독재정권으로 억누르고 있는 형편이다.
  56. 김선일 참수 사건 겨우 몇 달전에 순복음교회 계열 신문인 국민일보에 컬럼으로 아랍이나 이슬람권에 닥치고 선교하는 한국 교회를 비난하며 이대로 가면 한국인이 아랍에서 목이 날아갈 참극이 벌어진다. 국민일보에 얼마전 이라크 선교 기회라고 어느 목사 글이 올라왔는데 위험하다. 지금 이라크는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할 정도이다. 같은 무슬림도 종파 분쟁으로 마구 죽어나가고 현지 기독교와 온갖 소수 종교도 마구 죽어나간다. 그런데 선교라고? 자살하러 가자고 하는 소리다! 라고 했는데 정말로 몇 달도 안가 들어맞았다....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때도 탈레반이 악랄하고 비난받아야 하지만 왜 그런 곳에 가지말라고 해도 가서 선교라고 하고 죽으면 순교라고 포장하는 짓이 정말 한국 교회를 위한 길이라고 보는가? 라고 맹렬하게 비난했다.
  57. 이 중에는 반미, 반서구 성향이 짙은 경우도 상당하며 심지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까지 옹호하는 부류들도 있다.
  58. 천주교의 경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슬람을 형제교로 인정했으며 개신교 온건주의의 경우에도 같은 유일신교로써 존중한다.
  59. 다만 마린 르펜은 이슬람 적대이기보다는 반이민 적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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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히잡 벗기 캠페인 이란 여성에 국제 NGO 인권상 - 연합뉴스
  63. 프랑스 이슬람의 경우 이맘 자격제 실시 등의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64.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테러집단 및 극단주의자들의 절대다수가 와하비즘이나 살라피즘와 연계되거나 그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원래라면 그럭저럭 현실적이던 무슬림 집단들이 갑자기 미쳐 돌아가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알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의 오일머니가 배후에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65. 실정법과 샤리아 법이 병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분야별로 어느 법이 우선되는지가 실정법에 의해 정해져 있다.
  66. 말레이시아 사례에서 연방 이슬람 종교부의 “K팝 아티스트들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며 K팝 문화가 무슬림들에게 기독교 정신과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위험한 문화”라는 반응에서 기독교 문화와 더불어 자유주의 문화 역시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7.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성모독과 같은 사안 외에 자국인 비무슬림에게 샤리아 법 예외를 적용하기도 한다.
  68. 물론 마키아벨리즘에 따른 결정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도덕적 비판을 받고 있다.
  69. IS는 수니파 극단주의로 원리주의 국가의 대표격인 이란마저 시아파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 탄압 국가라 평한다.
  70.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슬람이 전근대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개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71. 사실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한 쪽 사용자가 차단당해 토론이 종결되었으나 나무위키에서 토론이 되살아난 것이다.
  72. 요약하자면 1. 이슬람공포증 항목에 이슬람에 대하여 부정적인 서술을 하는것이 차별인가 아닌가 2.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목적의 위키에서 편집자들이 주관성이 담길수 있는 결론이란 것을 기술하는것이 위키의 취지에 타당한가 였다. 1의 경우 리그베다 시절과 달리 이슬람공포증 내에 반이슬람 적인 내용을 적는것은 문제시 되지 않으며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인 서술의 근거가 보강되고 몇몇 단어가 중재되는 선에서 관리자에 의해 종결되었고, 2는 소수였긴 해도 당시 토론에 참여하던 인원중 다수가 결론 항목 생성에 찬성하여 새로이 기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