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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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7일 은퇴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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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해설자, 예언자다!

성명이영표 (李榮杓 / Lee Young-Pyo)
생년월일1977년 4월 23일
국적대한민국
출생지강원도 홍천군 내면 창촌리[1]
종교개신교[2]
포지션풀백
신체 조건174cm, 66kg, O형
주로 쓰는 발오른발
선호하는 등번호12번
가족부인, 슬하 2녀
프로입단2000년 안양 LG 치타스
소속 클럽안양 LG 치타스 (2000~2002)
PSV 아인트호벤 (2003~2005)
토트넘 핫스퍼 FC (2005~2008)
BVB 도르트문트 (2008~2009)
알 힐랄 (2009~2011)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2012~2013)
국가대표127경기, 5골
트위터[1]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Our all. Our honour.[3]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4]
"K리그가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신은 축구보는 수준이 높아서 유럽축구만 본다는 사람들...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사람... 누가 더 미식가입니까?
"선진리그는 경기력이나 환경, 선수도 좋지만 좋은 팬도 있다. 팬이 없이는 좋은 리그가 될 수 없다. K리그의 수준 안에는 팬도 포함이 된다. 수준높은 팬 의식을 갖춰야 한다. 팬들도 자신이 K리그의 수준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 제가 박지성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까? 어쩐지 항상 시원하다 했습니다. 저는 그늘을 좋아합니다. 그늘은 서늘해서 낮잠을 자기도 좋습니다. 누군가 제게 그늘을 허락한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해 할 것입니다."[5]
재능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나이키 광고 너를 외쳐 봐 CF 공식 인터뷰(40초부터)

1 개요

초롱이.

나가토모와 함께 아시아 축구 올타임 넘버원을 다툴 레프트백.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現 축구 해설자. 그리고 예언가

박지성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역대급 선수. 황금세대라 불렸던 2002년 멤버 중 1명이며, 2002 월드컵에서도 예선 최종전 포르투갈과의 결승골 어시스트,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결승골 어시스트를 올리며 활약했다. 이 때 구축한 좌영표-우종국 라인은 지금도 회자되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윙백 라인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이후 박지성과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축구는 무려 10년 동안 박지성과 이영표가 버티고 있는 좌측라인은 걱정할 일이 전혀 없게 된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공격을 이끄는 화려함이 박지성의 몫이라면 이영표의 강점은 기복없이 안정되고 항상 수준급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무척 유명한데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폼이 떨어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은 결코 보여준 적 없을 정도로 기복없는 플레이하면 이영표로 정평이 나있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 개인기도 유명하다.[6] 한국 축구에선 보기 힘든 윙어가 드리블로 상대팀의 수비 한 축을 허무는 모습도 이영표식 드리블 플레이는 축구팬들이 항상 즐거워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축구계 성실함의 대명사로서 그의 축구인생 역시 매우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 후배들이 본 받을만 하다. 대학교를 완전히 졸업하고 K리그에 입단, 이후 월드컵을 거쳐 네덜란드 명문팀에 진출한다. 이후 바로 주력 주전으로 팀의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 등을 이끌다 빅리그인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토트넘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 진출하여 활약한다. 노장으로 접어든 이후는 중동팀을 거쳐 북미리그에 진출 36살의 나이로 전 경기 풀타임 출전 기록을 세우며 축구인생을 마무리한다. 항상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이룬 안정된 축구인생의 한 전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항상 냉철하고 철두철미했던 현역 선수 시절 모습을 해설자로서 보여주고 있다. 경기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날카로운 안목으로 경기를 연이어 정확히 예측해내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대표팀에 대해서 따뜻하면서 가끔은 따끔하게 짚어낼 것은 짚어내는 해설로 해설자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는 명언까지.. 경기장의 초롱이는 TV에서 이제 초롱도사로서 팬들과 만나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안양 LG 치타스

2000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했다. 월드컵 종료 후 한 달 후 벌어진 2002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올스타전 최초로 자책골을 기록했다.

2.2 PSV 아인트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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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후 거스 히딩크 감독에레디비지PSV 아인트호벤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과 함께 이영표를 네덜란드로 데려간다.[7] 이적하자마자 맹활약. 2004년에는 에레디비지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한다. 2006 월드컵 당시 BBC에서 선정한 세계 수비수 8위에 오르기도 했다.[8] PSV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4강을 견인하는 등 박지성과 함께 맹활약한다.

2.3 토트넘 핫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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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진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표도 같은 리그의 토트넘 핫스퍼에 입단하게 된다. 초기에는 뛰어난 기량과 과감한 오버래핑으로 토트넘의 주축으로 자리잡았으나 수비능력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9] 2번째 시즌초부터 베누아 아수 에코토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4개월동안 벤치멤버로 전락 하였으나 에코토는 겨울에 열린 아스날전에서 상대 공격수들에게 유린당하며 멘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 경기 후반 이영표로 교체되었다. 이영표는 그 경기에서 전과는 달라진 수비능력을 보여주면서 스카이스포츠로부터 "IMPROVED" 라는 호평을 받으며 이후 주전자리를 공고하게 지켜냈다.

하지만 이영표의 공격 능력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원래 크로스 킥력이 부족하고 정확도가 낮아서 드리블 돌파후 이어지는 낮고 빠른 크로스라면 몰라도 상대를 제치면서 올리는 높은 크로스는 위협적인 경우가 많지 않았다. 높은 크로스는 EPL은 커녕 K리그에서도 좋지 못했다.(일명 아리랑 크로스. 또는 두둥실 크로스) 가장 큰 문제점은 왼쪽 윙백이면서도 왼발로 크로스를 못올렸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리그에서 뛸때는 분명 왼발로도 크로스를 올린적이 적지 않은데 EPL로 가면서 갑자기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오버래핑후에 왼발로 바로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고 뒤로 방향을 바꾼 다음에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니 공격템포가 죽고 성공할 리가 없었다. 상대방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공간으로 크로스를 못올리니 이영표의 오버래핑 공격은 성공할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를 데려온 마틴 욜 감독 시기까진 어떻게든 경쟁이 가능했으나 2007/08 시즌에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완전히 전력 외로 낙인찍힌다. 토트넘 부임 이전 세비야에서 다니엘 알베스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형 풀백과 함께한 라모스 감독에게 이영표는 성에 차지 않았다.

2.4 BVB 도르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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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당시 도르트문트 감독 노말 원 클롭.
장기 부상 당한 주전 레프트백 데데의 대체자를 찾던 BVB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게 된다. 2008/09 시즌 초반에 도르트문트에서 꾸준히 출전했고 1년 재계약에[10] 성공했지만 뛰어난 공격가담 능력을 가진 도르드문트의 레전드 데데가 복귀하여 팀내 입지가 흔들리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로 이적했다.

2.5 알 힐랄

클래스가 훨씬 낮은 사우디리그에선 축구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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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6일에 벌어진 FA컵인 크라운 프린스컵 8강전 알 아흘리 경기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득점에 실패했다.[11] 다행히 골키퍼 활약으로 겨우 4:3으로 팀이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팀의 크라운 프린스컵 결승 경기에서도 활약하며 팀은 대회 우승했다. 그 당시 결승이 이교도는 들어갈수 없는 메카에서 치루어 지는거여서 이영표를 포함하여 알 힐랄의 외국인 선수들이 참가를 못할뻔 했으나 왕자의 중재로 들어갈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메카에 들어간 최초의 한국인 이교도 일지도 모른다.

2.6 벤쿠버 화이트캡스

2011년 6월 알 힐랄과의 계약만료 이후 알 힐랄과 재계약하지 않고 거취를 고민하다 12월 6일 미국프로축구(MLS)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와 1+1 계약을 확정짓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였다.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장래 지도자로의 변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자신의 트위터에 티켓 필요한 밴쿠버 유학생들 연락달라며 새 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2012년 4월 29일에는 7년 만에 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프리킥 골이다.

2012년 7월 20일에는 대한민국 기준 나이 36세임에도 불구하고 북미 프로축구 리그(MLS) 전 경기 풀타임 연속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12] 이영표 선수의 몸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방증한다. 대한민국의 하비에르 사네티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2013년 10월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됐다. 그리고 2013년 10월 28일 공식 은퇴전을 치뤘으며 이 경기에서 주장 밴드를 차고 나와 90분을 소화한 뒤에 추가시간에 교체되어 나왔다. 교체사인 뜨자마자 박수 처주는 피치위의 동료들과 한번씩 포옹한뒤 마지막에 교체선수와 포옹하면서 피치 위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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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보자, 이영표 선수가 뛰었던 안양 LG 치타스, PSV 아인트호벤, 토트넘 핫스퍼 FC,보루시아 도르트문트,알 힐랄,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의 엠블럼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엠블럼이 이영표선수의 얼굴과 나란히 실려있다.

건국대 홍보모델이 됐다.

3 국가대표 경력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던 허카우터의 눈에 들어 그해 6월 12일 코리아컵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룬다. 예나 지금이나 대표팀 선수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고 U-17, U-20, 올림픽 팀(U-23)을 차례로 거쳐 대표팀에 뽑히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에 비하자면 무척 희귀한 경우다.[13][14]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대표팀 대표팀에선 박지성과 더불어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이 시절 이영표는 윙백이 아닌 윙어로서 공격력이 상당해 득점도 곧 잘 기록했다. 특히 중국에게 강했는데, 중국 대표팀과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지옥훈련도 무난히 통과하여 월드컵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선 쓰리백을 사용한 대표팀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서 대회 기간 내내 맹활약했다.[15] 특히 예선 3차전에서 루이스 피구가 이끌던 포르투갈 대표팀을 좌영표-우종국의 미칠듯한 컴비네이션으로 도륙내 버렸다.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골로 기억되는 그 날의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영원히 잊을수 없는 추억이다. 뿐만 아니라 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의 헤딩 골든골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만 결승골 도움 2개를 기록한 것.

2008년 11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이운재에 이어 센추리 클럽[16]에 가입했다.

2011년 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박지성과 함께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특유의 '헛다리' 개인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실제로 그는 개인기를 통해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데서 재미를 느껴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무던히도 개인기를 연습했다고 한다. 소위 '헛다리'라 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중심축을 잃지 않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성기 시절 그의 헛다리 드리블만큼은 월드클래스라 할 만 했다. 그러나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는 "프리스타일" 에 대해서는 그리 좋게 보지 않는 듯하다. 프리스타일 외국인 유망주가 개인기가 뛰어난 토트넘의 이영표 앞에서 자신의 기술을 시연한 적이 있는데 축구에서 저런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며 혹평한 적이 있다.

프리미어 리그 이적 첫 경기였던 대 리버풀 FC전에서는 측면에서 리그 탑 클래스 리버풀 수비 두 명, 스티브 피넌제이미 캐러거를 보란듯이 제껴버리고 크로스를 올리는 등 리버풀의 오른쪽을 경기 내내 제 집 드나들듯 유린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이날 이영표는 MOM에 선정되었다. 그 외 PSV 시절,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대 AC 밀란과의 홈 경기에서[17] 레전드급 수비수 카푸를 완벽히 제치고 멋진 크로스를 올려 코쿠의 헤딩골을 돕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영표의 전성기 시절 클래스를 대표하는 명장면.

전성기가 지난 뒤로는 그 때의 폭발력은 더이상 보여주지 못했지만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관록으로 김동진, 장학영, 김치우 등등 뛰어난 왼발잡이 풀백들이 즐비한 한국 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직전까지 부동의 주전자리를 지켰다.[18] 특히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 위치할 때는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최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있는 동안 대표팀 왼쪽 측면은 아르헨티나를 만나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 때문에 공격적인 윙백으로 인식된적도 있지만 실상 이영표의 진가는 공격보다 수비에 있었으며, 네덜란드 리그 시절 이후론 공격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다.[19] 수비는 상대와의 수싸움을 통한 자리 잡고 막는 방식과 피지컬로 커버하는 방식이 있는데 전성기 이영표는 상대와 수싸움도 능하고 스피드도 빨라서 어지간하면 위험한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상대방을 기본적으로 잘 읽는데다가 혹시나 제껴지더라도 금방 다시 따라와서 공격수를 막았다. 거기에 체력이 좋아 시즌 내내 기복이 없었다. 이렇게 전성기의 이영표는 부상도 없고 기복도 없고 실수도 별로 없는 안정적인 수비수로 감독들이 좋아할만한 선수였다. 피지컬이 중시되는 EPL 이적 초반에는 강력한 압박과 빠른 템포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특유의 영리함으로 빨리 적응했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킥력과 왼발 크로스를 못 올린다는 단점이 두드러져서 뛰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른발 크로스는 괜찮았지만[20] 왼발로 올리는 크로스가 붕 뜨는 아리랑 크로스였기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파고들어서 날리는 중거리슛이 강한 것도 아니었기에 상대 입장에서는 접고 올리는 오른발 크로스만 조심하면 되었던 것.

신체능력이 정점에 있었던 네덜란드 시절엔 현란한 드리블과 강인한 체력을 활용한 무한 오버래핑으로 맞은편 상대 윙백을 밀어붙히곤 했다.[21] 그러나 신체능력이 하락하기 시작한 토트넘 3년차부턴 순발력이 떨어지면서 수싸움에서 지레 지고 들어가는 장면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상대팀은 이영표가 있는 왼쪽 측면을 공격에서 일단 쉬어가는 전진기지로 삼곤했기 때문에 은퇴 직전 시점 받았던 공수겸장으로서의 칭송은 사실 과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도 은퇴하면서도 프리미어리거라는 간판덕에 칭송받은 경향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5 해설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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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KBS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초롱팍 도사 활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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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 중 KBS 뉴스 웹사이트에 메인에 걸려 있는 배너 이미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한국인.

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활약을 예고하며 마찬가지로 해설자로 데뷔한, 같은 2002 멤버인 송종국, 안정환과 경쟁구도가 성립되어있다. 2014년 1월 30일(현지시간 1월 29일)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해설자로 데뷔전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대표팀은 0:4로 대패. 처음에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실드쳐주던 이영표도 결국 경기 종반에 가서는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마지막까지 보여줄 의무가 있다.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가나전에서도 4:0 완패를 당하자. 우리가 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네요.라는 명대사와 함께 최강 돌직구를 날렸다.

한편 월드컵 본게임 시작 이후부터는 다른 해설자들과 차별되는 작두탄 족찝게해설가(...)로 각광받고 있다.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몰락을 혼자 예견했는데,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5대 1로 완패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영표의 예측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러 해외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한 경험과 국가대표로서 여러 국가의 팀들을 상대로 경기를 치러본 오랜 경험으로 상당한 수준의 해설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정석적인 해설이라는 것. KBS 따봉월드컵의 빅매치 전망을 보면 해당 동영상의 4분 44초부터 5분 40초까지는 네덜란드의 선전을, 18분 30초부터 21분 10초까지는 스페인 몰락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D조 이탈리아 vs 잉글랜드 경기의 스코어와(2:1 이탈리아 승) 코트디부아르vs일본 경기의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히는 신들린 모습을 보여줬다.(2:1 코트디부아르 승) 코트디부아르 경기에서는 국가대표로서 한일전 특유의 국민감정을 겪으며 뛰어야했던 선수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머리는 일본의 승리를 말하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원한다"라며 2:1 승리를 예측하고 해설중에도 코트디부아르를 노골적으로 응원하는 해설을 했다. 윌프리드 보니가 동점골을 성공시키자 너무 흥분해서 득점자를 제르비뉴로 일순간 착각했는데, 뒤이어 나온 "제르비뉴면 어떻고 보니면 어떻습니까!!!"가 이 경기의 백미. 코트디부아르의 찬스가 무산될 때마다 무의식중에 새어나오는 나라잃은 한숨소리는 덤이었다. 동료 해설위원 김남일이 장난삼아 코트디부아르에 임대라도 다녀왔냐며 장난스레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사실 대부분 한국인들이라면 한일간 특유의 감정탓에 일본이 지기를 바라는 입장이기도 하고, 크게 거슬리는 내용도 없었기에 그다지 크게 문제될게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네티즌들은 이영표의 해설 실력과 정확한 예상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는 반응이다.

굳이 족집게해설이 아니라도 해설 능력 자체도 호평을 받고있다. 일단 발성이나 발음에서 다른 해설자와 비교했을때 큰 차이가 있다. 발음이 뭉개지지 않고 발성이 또박또박하고 큰 편이라 듣기 편하고 차분해서 전문적인 해설같다는 평가. 어쨌거나 이미 일부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문어 영표, 갓초롱으로 불리고 있으며 문어 파울의 후계자이자 이번 대회의 예언자 자리에 등극했다. 코트디부아르 전에서는 해설 도중 드록바가 투입되는 장면에서 드록바라면 전세를 뒤집을수 있다고 하고, 10분 안에 동점골이 나오면 이후 코트디부아르가 추가골을 넣고 역전할 것이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 말을 내뱉은 후 정말로 본인의 말대로 되자 본인도 "이래도 되냐"며 놀라워하다 곧이어 "제가 뭐랬습니까"라 하였고, 함께 해설하던 조우종 캐스터 역시 "문어가 빙의한 것 아니냐"라고 드립을 날렸다. 여기에 킥오프할 당시 일본의 좌측 - 코트디부아르의 우측면, 나가토모 유토세르주 오리에의 매치업이 승부의 관건이라 전망했는데, 정말 오리에가 우측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트위터에서 특별한 예지능력이나 통찰력이 있는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 외의 예측 성공 사례들은 아래의 예측 목록 문단을 참고.

그리고 홍명보호의 첫 경기인 러시아전에서도 "경기 70분쯤부터 기회가 날 것이다" "이근호가 한 건 할 것이다"라는 예상을 했는데 정말 68분에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었다. 평가전에서의 졸전으로 인해 이전까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정확한 예상을 해냈다는 것에 많은 팬들이 놀라워하는 중. 러시아전 후 이근호는 "가장 힘들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엔트리 탈락 당시 함께 숙소에서 울어 줬던[22] 영표 형에게 감사한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014년 6월 23일 브라질월드컵 한국vs알제리전를 앞두고 2:1로 한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그 예언의 반만 실현되었다. 전반 0:3, 후반 2:1. 결국 2:4 대패. 다만 이건 예측이라기보다는 립서비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느나라의 해설이 자국민들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알제리전 주목해야할 선수로 손흥민을 꼽았는데 1골을 넣기도 했고 멸망 수준의 한국팀에서 혼자 빛났다. 사실은 류현진 경기 예측한거라 카더라(...)

2014년 6월 27일 알제리vs러시아가 무승부를 하면서 16강 진출의 마지막 희망인 한국vs벨기에전에서 0-1로 패배하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월드컵은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해설 스타일은 모범생. 시청자들을 빵 터뜨리는 의도적 멘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 송종국, 안정환과 달리 본업인 해설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며, 나쁜 말 못하는 성격 때문에 직접적인 비판이나 구체적인 해결책 제시가 없었던 차범근 해설위원과 달리 촌철살인 멘트나 이렇게 해야한다 지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목소리 톤도 한준희 해설위원처럼 중장년층이 듣기에 다소 시끄럽거나, 이용수 해설위원처럼 젊은층이 듣기에 좀 심심한 톤이 아니라 어느 연령대든 무난히 받아들일 만한 적당한 톤이다. 즉, 본인이 계속 공부하고 노력만 해나간다면 전연령을 아우르는 해설자로 대성할 조건이 충분하다. 하지만 골을 넣을때 무작장 소리만 지른다거나 대부준의 경기 내내 비판적인 태도로만 임해서 보기 싫다는 여론도 있다. 대표적으로 메시의 활동량에 대한 드립. 메시라는 선수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메시에게 짊어줄 짐을 덜고 메시가 전방에 있으므로 상대방이 받는 부담감과 확보되는 공간, 비축된 체력으로 폭발적인 드리블을 보이는게 주특인 메시인데 이는 바르셀로나 펩때도 그랬고 사베야체제의.아르헨도 마찬가지다. 메시가 수비를 도우는것 보다 이점이 많으므로 사베야 역시 메시에게 공이 안가므로 메시에게 프리롤을 부여했고 이는 바르샤의 메시와 비슷하다. 이는 팀으로서의 이점이 크다. 별세한 크루이프의 어록에도 많이 뛰는것보다 효율적이고 지능적인 축구를 원했고 그를 기반으로 하게 포지셔닝 축구인데 이를 가장 잘 따른다는게 메시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다 무시하고 본인이 축구선수의 경험으로만 토대인 시선으로 메시의 활동량에 무작정 비판만 하였다. 결과적으로 한국 내에서 메시가 대장축구를 한다는 잘못된 사실이 퍼졌다. 이에 대한 내용은 더 팀 바르셀로나란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이처럼 이영표 해설의 가장 큰문제점은 대체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는데 그것또한 본인의 선수 경험을 토대로 한다는것이다.

사소한 단점으로 외국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간혹 아나그램화시켜 버리는 특징이 있다. 발레토리라던가, 샤리키라던가, 카예바라던가... 물론 해설의 본질에 영향을 끼칠만한 실수는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를 개그 요소로 받아들여 웃어넘기는 편이다. 한편 이영표 해설의 예측 적중이 지나치게 큰 관심을 받고 KBS도 이를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다보니 이영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통찰하고 예측하는게 아닌 KBS의 요청에 의해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날카롭기보다는 이상적인 축구 이론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이영표 본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나친 요구를 하는 KBS와 팬덤의 문제.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는 시청자라면 이영표의 예측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해설에 관심을 쏟는 편이 더 적절한 시청이 될 것이다. 이영표의 통찰은 예측에서도 빛이 나지만 순간 순간의 해설에서도 충분히 발휘된다.

한편 이영표는 단순한 해설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서 K리그에도 공헌하였다. 이영표는 월드컵때 해설 계약을 하였지만 계약 조건으로 K리그의 공중파 중계 확대를 내걸었고, 결국 2015시즌에 이르러 주말 고정 편성을 이끌어냈다. 사실 방송사 입장에서 K리그 중계가 적은 이유는 케이블 채널의 경우 거의 매일 경기하는 야구와 겹쳐서 중계가 어렵고, 중계를 해도 아직까지는 타 종목에 비해 시청률이 낮아서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는 두 가지 문제가 가장 큰데, 어차피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이 문제를 광고 없이 공익적 성격이 강하게 운영하는 KBS 1TV에서 중계하는 것을 통해 해결한 결과였다. 이런 사정때문에 K리그 시즌 중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5.1 적중한 예언 예측 목록

위에서 이미 설명이 되어있지만, 말만했다하면 죄다 반대로 이루어지는 누군가와는 달리, 이영표는 그야말로 '작두 탔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히게 예언예측을 잘 한다. 게다가 그렇게 적중한 예언예측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 당시 유명세를 타고 영국 BBC에서도 인터뷰했다고 한다. # 앞으로도 이영표 해설위원이 예언예측을 성공시킬 경우, 지속적으로 추가바람.

5.1.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네덜란드는 쉽게 지지 않을 것."
▷네덜란드는 이 대회에서 스페인과의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 리매치를 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의 강세를 예측했으나, 이영표는 저렇게 발언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어 네덜란드는 스페인에게 5대1로 대승을 거두면서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서의 패배를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갚았다. 게다가 이케르 카시야스는 이후 카성룡이라 불리는 굴욕을 당한다. 또한 네덜란드는 4강전인 아르헨티나 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끝에 패배하였으나, 3~4위 결정전 상대인 브라질에게 3대 0으로 대승을 거두면서 3위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4강전 승부차기를 패했다고는 하나, 공식적으로 승부차기까지 갔을 경우에는 무승부로 인정하므로, 대회 전적은 총 5승 2무 0패가 되어 이영표의 예언대로 결국 한번도 패하지 않은 팀이 되었다.

"스페인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많은 팀들이 스페인의 축구에 익숙해져있다."
"2000년대 최강의 팀은 스페인이다. 하지만 2014년에는 축구팬들이 스페인의 몰락을 보게 될 것."
"칠레가 스페인을 이길 것."
▷칠레와 스페인의 경기에 대해 대한 예측. 이번에도 스페인은 칠레에게 2대 0으로 완패하면서, 스페인은 전년도 챔피언답지않게 무기력하게 조별리그 탈락을 하고 만다.

"끈적끈적한 이탈리아가 우직한 잉글랜드를 괴롭힐 것".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2대1로 이긴다."
▷조별예선 D조 이탈리아 VS 잉글랜드의 경기에 대한 예측. 그리고 마리오 발로텔리가 후반 5분에 결승골을 넣으면서 승패 여부는 물론, 스코어까지 맞혔다.

"머리는 일본이라 말하는데, 가슴은 코트디부아르를 응원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가 일본은 2대1로 이길 것."
▷C조 코트디부아르 vs 일본 경기를 앞두고 내놓은 예측. 전반 16분 혼다 케이스케가 선제골을 넣으며 일본이 주도권을 가져갔으나, 후반 17분에 드록바가 투입된것만으로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 투입 2 분만에 윌프리드 보니의 동점골이 터지고, 또다시 2 분 후 제르비뉴가 역전골을 넣으며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그렇게 또 한 번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히는 예측을 보여주었다.

"경기 70분쯤부터 기회가 날 것이다"
"이근호가 한 건 할 것이다."
▷H조 대한민국 VS 러시아의 경기의 예측. 0대 0으로 흘러가던 도중, 68분경 이근호의 슛을 기름손 이고르 아킨페프알까기 놓치면서 그대로 골이 들어갔다!

"잘못하면 브라질이 대패할 것"
▷4강전인 독일 vs 브라질 경기에서는 경기 결과까지는 예측에 실패했지만[23] 2번째인 클로제의 골이 터진 직후 위와 같은 예측을 했고[24] 이에 대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연속적인 골이 터지면서 예측능력을 과시했다.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보다 강한 팀, 반드시 네덜란드를 이긴다."
▷4강전인 아르헨티나 vs 네덜란드 경기가 벌어지기 직전에 예측한 내용이다. 물론 이영표는 2-1로 아르헨티나가 이길 것으로 예측했으나 거기까지 맞추진 못했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끝에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제압했다. 다만 이영표는 자기가 좋아하는 앙헬 디마리아가 출전했을 때를 기준으로 예측한 거고 실제 이 경기에서 디마리아는 결장했다.

5.1.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1:0 으로 이길 것 같다."'
"승부차기까지 안갔으면 좋겠고, 1분 안에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남자 축구 결승전인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에서 남긴 말. 경기 전 1대 0으로 이길 것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4강전인 이란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실축 경험 때문에 "1분안에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창우의 결승골이 터졌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5.1.3 2015 AFC 아시안컵

"우즈벡전 연장전 가능성 있다."'
▷우즈벡을 쉽지 않은 상대로 본 이영표 해설위원은 8강전에 대해 연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8강 경기에서 두 팀(한국, 우즈벡) 모두 수비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연장전까지 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과 우즈벡이 치른 총 6경기 중 5경기는 1점 차로 희비가 갈렸다.

실제는 한국은 연장끝에 우즈벡을 2대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영표 “우즈벡전 연장전 가능성” 예상한 이유는?(아시안컵 축구 8강)"

5.1.4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제골을 넣는다면 5골 이상 넣을 수 있다."
"32분대에 선제골이 나올것이다."
▷남자축구 한국 대 피지 전에서 나온 예측. 5골차 이상 승리는 KBS 9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이고, 32분대에 선제골이 나온다는 것은 중계 도중 했던 발언이다. 그리고 31분 18초경에 류승우가 선취골을 넣었는데, 공식적으로는 32분으로 기록된다. 또한 경기결과는 8대0이 되면서 이것도 적중했다.
▷남자축구의 최선의 시나리오로 피지에게 승리, 독일과 멕시코에게 비겨서 승점 5점을 챙기는 것을 꼽았는데, 피지에게 8:0으로 승리하고 독일에게 3:3으로 비긴 상황이다.그것도 막판에 들어가서 비긴 거다. 이영표의 말에 맞추기 위해 우주가 변했다
그리고 멕시코는 이겼다

"최소 6명은 우리 진영에 남아있어야 상대의 역습에 대비할 수 있다."
▷온두라스 전을 앞두고 했던 말. 한국의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영향때문인지 윙백들이 계속해서 상대 진영쪽으로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선수가 부족해진 틈을 타 역습을 허용하면서 52분에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했다.

5.1.5 기타

"우리 팀이 한 골 더 넣어서 비겼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7월 25일 '팀 박지성'의 일원으로 K리그 올스타전에 참가하였는데, 교체아웃되어 인터뷰 중 발언하자마자 2초만에 박지성이 골을 넣는 신기를 발휘했다. 이를 눈 앞에서 본 해설진과 리포터, 해당 발언의 당사자인 이영표도 믿기지 않아 웃기만 했다.(...) 그리고 경기 결과 역시 6대6으로 비겼다.

"손흥민, 2~3년후엔 유럽에서 최고 선수가 된다"

▷2016년 3월, 한국과 태국의 평가전을 중계하기 위해 KBS 해설위원으로 태국을 찾은 이영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아주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어린 나이에 이미 훌륭한 선수가 됐기에 토트넘이 영입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2~3년 후에는 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최고 중 하나로 꼽히는 측면 공격수가 되리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6-2017 시즌인 지금 3경기 연속 mom이 되면서 문어영표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점집 차려야 할듯 과연 토트넘 레전드


"조우종, 2년안에 프리선언 할 것"

▷이영표는 2014년 7월 31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에서 "조우종에 대해서 예측 한 번 하겠다"고 말했고 이어 "조우종은 2년 안에 프리선언을 할 것이다. 그간 경기 결과는 장난으로 예측했지만, 이번 예측은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조우종이 실제 사표를 낸 것은 저 발언 후로부터 2년이 더 지난 2016년 9월이었는데, '원래 상반기에 제출하려던 것을 KBS의 만류로 리우 올림픽 이후로 미룬 것 뿐이다'라고 밝혔다. 상반기라면 7월이 되기 이전이니 아무리 늦어도 6월 30일이라는 뜻이고, 결국 정말 2년이 지나기 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한 것이다. 이젠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적중 이 사람도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 저주 날리던데, 영표 형도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 적중한다

6 논란

6.1 종교색

K리그 승부조작에 가담한 두 명의 전 국대급 축구선수들과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며 이들을 옹호한 모 선수, SNS로 감독을 디스한 사건, 박주영등 문제를 일으킨 개신교 선수들과 성남 일화 천마와의 종교 대립 문제와 옹호문제로 인해 비난을 사기도 한다.

프리미어리그를 보러가다라는 책자에 따르면 농담조인지 몰라도 불교 신자인 후배 박지성을 교회에 나오게 하려했다는 말을 했다가 영국에서도 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잉글랜드 기자가 당신은 축구선수인가? 선교사인가? 하며 아리송해했다고... 아무래도 종교 때문에 전쟁을 벌였던 곳이라 이런 농담(?)에 대하여 안 좋게 볼만하다. 근데 그도 자서전에서 밝히길 자신도 믿기전에는 무신론자였었고,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이해를 한다고 언급했으나 정작 본인은 이래놓고 PSV 아인트호벤에서 같이 뛸 때 불교 신자인 박지성을 계속 전도하려 하여 같이 식사할 때마다 기도를 해서 박지성과 그 가족이 상당히 불편해했는데도 그만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글러먹은 강요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2006년에 측면 수비수를 구하던 AS 로마미도와의 맞트레이드로 이영표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계약 막판에 이영표가 종교적인 이유[25]로 거부하면서 이적이 불발, 토트넘 운영진의 미움을 받게된다. 이 때 국내에서는 이탈리아가톨릭 국가라서 안 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힐랄 이적을 볼 때는 그런 건 아닌 걸로 보인다. 이영표가 쓴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 중에는 만약 내가 오늘 로마에 안간다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마음에서 이전의 불안감이 없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알 힐랄로 가면서 벌인 짓거리로 결국 종교 꼴통 인증에 국제적 분쟁을 일으킬 뻔한 일을 벌였다. 알 힐랄로 이적하면서 계약조건으로 이영표는 자기가 지정한 사람들에게 입국 비자를 받아내달라는 조항을 내걸었다. 구단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는데 알고보니 이영표가 지정한 사람들은 개신교 목사와 선교사들이었다. 이슬람 국가의 본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개신교 선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안다면 충격과 공포...[26] 만약 알 힐랄 구단에서 이를 알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조건이었다. 심지어는 이 사실을 방송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영표의 저런 뻘짓은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알게되었고 이 관련자들은 즉각 추방당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영구입국금지를 당했다. 이후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측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방지하고자 해당 선수 지인들에 대하여 신분조사 및 종교 조사를 엄격하게 하게 만들어 이런 꼼수는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항목에 대해서 반기독교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표현되기도 했는데. 이영표 선수가 인격적 훌륭함 및 축구에서 보인 대단한 능력에서 존경을 받을만 한건 사실이지만, 축구 선수가 불법 선교 문제로 문제가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을 굳이 반기독교인들만 하는 것인지, 건전한 종교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게다가 이런 일이 터지면 해당 나라에서 소리죽여 사는 극소수 기독교인들은 더더욱 분노하고 긴장한다. 이걸 빌미로 극단파들이 자기들을 탄압하거나[27] 정부에서 이런 해외 선교랑 연결된거 아니냐며 그러한 현지 기독교인들을 조사하고 숨통을 조여온다. 이걸 봐도 이런 짓은 현지 기독교인들에게 민폐다. 더불어 이런 일이 터지면 거기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및 관련 직원들도 비상걸린다. 사우디아라비아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현지 거주하는 블로거 증언을 봐도 한국인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돼지고기와 술판을 벌이다가 걸려 회초리로 맞고 추방당하고 이런 일이 터질때도 국내 기업들은 두근거리며 이걸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뻐질까봐 긴장하는데 종교적이라면 말이 더 필요할까? 반기독교적을 떠나 현지 기독교인, 한국 기업, 한국 이미지에도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이영표의 자서전에 나온 추천을 보면 박지성이 말한 다음과 같은 추천이 달려있다. 대강 내용 상 "영표 형은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인 중 가장 성실한 사람 중 하나이다. 나는 불교란 종교를 갖고 있지만 영표 형의 하나님 사랑에 감동받았다." 그는 다소 모두에게 애매한 사각지대인(정치, 종교 논쟁 같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애매한 문제 등)... 요런 문제에 연관된 걸 제외하면 축구계와 일반 팬들에게 실력과 인격 모두에 있어 매우 존경받는 선수로 평가된다.

6.2 FC 서울과의 관계

2011년 알 힐랄 퇴단 후 무적 시절 국내에 거주하면서 구리의 FC 서울 연습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이때 서울 영입설이 나돌기도했는데 이때문에 서울 입단 타진하다 계약조건이 안 맞으니까, 바로 튀었다는 근거없는 루머가 나와 FC 서울 팬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이영표가 자기 팀에 온다며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감에 서울의 연습시설을 이용하기만 하고 실리를 찾아 해외팀과 계약 했다며 FC서울의 팬들에게 비난 받은것인데 더 나아가 그 동안 K리그에 대해 말로는 K리그에 대한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K리그에서 선수경력을 마치치 않는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일반 K리그 팬들에게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K리그 복귀 없이 밴쿠버 이적이 확정된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FC서울팬과 K리그팬들

2012년말 K리그 복귀없이 밴쿠버에서 1년 더 선수생활 후 은퇴가 확정되자 다시 한번 K리그팬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며밴쿠버에서 은퇴 확정 후 이영표를 비난하는 아이러브사커 축구커뮤니티의 K리그팬들 이에 대해 이영표는 "많은 팬들에게서 K리그로 돌아와 달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수로 돌아와 도움을 주는 것과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나중에 도움을 주는 것 중에 후자가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여 K리그 복귀를 안 한것이란 입장 표명을 하였다.기사링크

2013년 밴쿠버에서 은퇴 후 FC 서울에서는 이영표의 14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이영표를 위한 은퇴 기념 행사를 마련했고 이영표는 이 행사에 참석하여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서 FC 서울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짧은 은퇴소감을 전했다.기사 링크

그러나 이영표는 FC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시절에만 뛰었고 서울로 연고이전한 후에는 뛴적이 없었던지라 축구 커뮤니티들에선 한바탕 분란이 일어났고, FC 서울 팬 사이에서도 찬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아무래도 과거의 앙금이 남아있는 팬들도 있는지라... 참고로 이때 등번호는 이영표의 상징과 같은 번호인 12번을 마킹해서 줬다. 사실 이영표는 PSV로 이적하기전에 12번을 달고 안양에서 뛰었다. 이영표가 PSV로 이적한 후 안양 LG는 비어있는 12번을 팬들에게 헌정했다. 그리고 연고를 서울로 옮겨 FC 서울이 된 이후에 등번호 12번은 서포터인 수호신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에 대해 FC 서울에 적대적인 축구커뮤니티에서는 서울팬들이 이런 행사에 화를 내야 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울팬들이 환호로 일관했기 때문에 이는 구단의 정체성이 '서울'이라는 연고지가 아닌, 모기업에 있음을 프런트와 선수와 팬이 함께 입증해준 거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하며 비판의 의견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FC 서울 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스포츠의 모든 대기업 구단이 마찬가지이며 한국 실정에서 대기업이 프로스포츠 구단을 창단하고 막대한 적자를 보아가며 운영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대기업 구단들의 정체성이 그 구단의 모기업과 같이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이해해주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축구팬들 역시 많은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도 특히 미국 스포츠에서 연고지 즉 프랜차이즈가 바껴도 과거 전신 구단과 당시 선수들을 기리는 행사가 아무 거리낌 없이 개최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영표 본인이 무직으로서 FC 서울 연습장에서 몸만들기 훈련을 하던 당시 이영표는 국내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은 내가 프로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준 고마운 팀이다."라며 서울을 친정팀으로서 예우 했으며기사링크 이후로도 우리동네 예체능/축구편 등 여러 경로로 FC 서울 출신으로 서울 구단에 대해 계속해서 애정을 보였다는 것인데 이러한 본인의 의사가 무시된채 제3자들이 "이영표의 친정팀은 FC 서울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왈가왈부하는것에 대한 비판의 의견 역시 많이 존재한다

한편 위에처럼 이영표가 FC 서울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기사해설을 통해 FC 서울을 친정팀으로 생각하고 우호적인 발언 내지 과거 FC 서울에서 활약하였다는 발언을 하면 KFOOTBALL이라는 축구 커뮤니티에서 특히 FC 안양팬들이 주축이 되어 개영표는 예사이고 소시오패스 등등 인신모독성 패드립을 포함한 욕설과 비난을 하고 있다. 덧붙여 안양공고 축구부도 도와주고 계속해서 안양 축구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FC 서울을 친정팀으로 생각하고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해설 중 단지 안양 FC라고 잘못 팀명을 호칭한것 가지고도 FC 안양팬들에게 찢어 죽일 놈, 근본 없는 놈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먹기도 하였다. 이영표에게 인신모독성 욕설을 하고 비난하는 KFOOTBALL 축구커뮤니티 게시물 캡춰 근거자료

그러나 2004년 이영표는 FC 서울의 연고이전 당시 A매치를 위해 입국한 자리에서 "선수를 떠나 학창시절부터 계속 팬이라서 애석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며 연고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었고기사, 이후에도 꾸준히 안양 연고 축구팀의 부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다.[28]

즉 요약하자면 고향팀인 안양 LG 시절부터 이어져오는 LG-GS 계열 축구단으로서의 현재 FC 서울을 친정팀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연고이전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3 말말말

  • 2011년 국가대표 축구팀이 부진하자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박지성 복귀 가능성을 말했지만 박지성측에서 바로 부인했다.
  • 2012년 병역연기를 한 박주영을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로 두둔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 윤빛가람 이적 문제와 관련해서 뜬금없는 훈장질로 비판을 샀다.(이적거부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 2012년 6월 14일에는 트위터에 개신교가 진짜 종교라고 말해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 2012년 축구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 올랐던 안양시 시민구단 창설에 대해서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정작 K리그에서는 고양 Hi FC를 지지하겠다고 한다. # 모종의 계약이 있었던건지 고양 Hi FC에서는 이영표의 얼굴이 박혀 있는 2013 시즌권을 판매했다.
  • 2013년 2월 이번에는 K리그 시즌권이 자기가 뛰는 캐나다보다 싸다는 이유로 K리그를 깠다자기 소속팀의 시즌권 가격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모 스포츠 일간지에서 이 떡밥을 물어서 K리그 공짜시즌권[29]을 깠다. 이에 팬들은 왜 그런 트윗을 해서 언론에 K리그를 깔 소지를 제공했느냐며 또다시 이영표를 까기 시작했다.
  •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와 안양 LG(현 FC서울)의 경기를 했을 때 이임생 선수와 갈등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수정바람.#
  • 본래 한국 선/후배 문화가 본인도 있었지만 2003년 이후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면서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고 한다.
  • 리우올림픽 8강에서 올림픽대표팀이 온두라스에서 패한 경기에서 "완벽한 골찬스가 났는데도 골을 못넣는것은 저로써도 뭐라 해설을 할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그랬던 본인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이란전 승부차기에서 홈런을 갈겼다. 대박애비 부들부들[30]

7 기타

  • 팬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초롱이.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미 만 25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귀엽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 상징하는 백넘버라면 12번을 들 수 있는데 처음엔 특별히 12번에 애착을 가져서 택한건 아니고 계속 달다보니 본인의 번호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팀에서 자리를 잡으면 주로 3번으로 번호를 바꾸곤 했다.[31]
  • 2014년 브라질 월드컵KBS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받은 돈 전부를 기부하였다. 조우종 캐스터의 말에 의하면, 입금이 되었다는 얘길 전해듣고, 액수를 확인도 하지 않고, 유니세프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조우종 캐스터가 이영표 해설위원에게 "왜 입금액을 확인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금액을 확인하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그리고 어차피 내가 가질 돈이 아니라 기부하기로 마음 먹은 돈인데.."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빠돌이이기도 하며 특히 앙헬 디 마리아의 열렬한 팬이다. 링크에 있는 인증샷은 이영표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에서 아르헨티나 대 스위스전에서 이영표가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찍으며 밥 내기를 했는데 디마리아의 골로 아르헨티나가 이겨서 얻어먹은 밥을 인증한 사진이다.
  • 나이키의 광고 '너를 외쳐 봐' 편에서는 각종 운동을 하는 사람들 옆에서 딴죽을 거는데,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내뱉는 한마디가 인상적. 이를 본 팬들 사이에서는 공익광고 수준이라며 대호평. 너를 외쳐 봐 공식 인터뷰
이건 시간낭비야.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운동이 밥 먹여 주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예뻐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남들 하는대로 하자.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
그런데도 끝까지 하겠다는 거야?
  • 현역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아르옌 로벤과 친했기도 했는데, PSV 아인트호벤에 있을 당시부터 그랬다고 한다. 독특하게도, 로벤이 이영표를 보고 한국어인 '형'을 붙여서 '영표 형'이라고 불렀다고.[32][33]그런데... 로벤이 축구계에서도 손꼽히는 노안이라 위아래가 바뀐 거 아니냐는 소리가 들 정도이다.(...)[34]
  1. 다만 학교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다녔다.
  2.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유명하다.
  3. 파일:/image/087/2013/10/28/213102700189 59 20131028120902.jpg 벤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이영표의 은퇴경기를 위해 제작한 티켓
  4.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 직후 인터뷰에서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하자, KBS에서 해설을 하던 이영표는 위의 말로 일침을 날렸다.
  5. 인터뷰 중 '항상 박지성이란 그늘에 가려져있는게 아쉽지 않느냐' 질문에 대해서.
  6. 다만, 헛다리 짚기 개인기를 선보였던 선수들은 이영표 데뷔 이전에도 많았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가레스 상윤으로 유명한 성남 일화 천마의 레전드 이상윤(축구인)이 처음으로 헛다리 짚기를 선보였다.
  7. 이 때 박지성은 정식 입단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영표는 6개월 임대 후 완전 이적 계약 여부 결정이었다. 때문에 이영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매우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8. 순위표를 보자. 7위가 푸욜이고 9위가 마테라치였다(...)푸욜과 마테라치 사이
  9. EPL은 에레디비지보다 수준이 훨씬 높다. 특히 킥이 발달한 EPL에서 크로스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기에 수비수는 상대방이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반면 네덜란드 리그는 크로스를 올려도 별로 위협적인 크로스가 드물기에 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막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영표는 네덜란드리그에서 하던 것처럼 상대방이 크로스 올리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였다.
  10. 데데가 다음 시즌을 끝마치고 브라질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던지라 구단측은 2년 재계약을 제안했으나 이영표 측에서 1년 재계약을 원했다.
  11. 승부차기를 잘 못찬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4강 이란전 마지막키커로 나갔다가 실축해 금메달을 날리고 이동국을 군대로 보내버린바 있다. 일명 이동국 군대가라슛!
  12. 7월 20일 기준 21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
  13. 잘 모르고들 있는게, 이영표 청소년 시절에 이영표보다 더 주목받던 선수가 있었다. 양현정이라고, 이 당시 이관우와 함께 199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우승에 공헌했고, 1997년말에 국가대표 상비군으로도 발탁되었다. 이 당시 차세대 윙어는 박진섭-양현정으로 여겨졌지만, 양현정은 잦은 부상을 겪으며 기량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십자인대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을 맞았고, 한때 무명이었던 이영표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빛을 발할 동안 K리그에서... 그것도 부상 때문에 얼마 뛰지도 못하다가(그가 남긴 족적이라고는 2000년 신인상이 유일하다.) 베트남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로 은퇴해서 지도자가 되었는데, 현재 동티모르 청소년 대표팀을 맡고 있다.
  14. 또 다른 기대주 박진섭은 박주영이 나타나기 전까지 천재소리를 듣던 유망주였지만, 체력이 모자라고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강판, 이후 그의 자리를 꿰어찬 선수가 바로 지아네 아빠 송종국이다. 그래도 박진섭은 양현정과 달리 선수생활 자체가 말리진 않았고 당시 K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성남 일화의 일원으로 우승도 경험하며 나름대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다.
  15. 다만, 1~2차전에는 결장했었다. 개막 전 훈련 도중 왠 기계인간과 부딪히면서 부상을 당했기 때문.(...)
  16.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17. 박지성이 선제골을 넣은 바로 그 경기다.
  18. 다만 김동진이 흥할 때는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오른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러나 김동진이 지병으로 롱런에 실패하여 다시 왼쪽으로 복귀했다.
  19. PSV 시절에는 04/05시즌 1골 10도움을 올렸을 정도로 공격에서도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었다. 특히 10도움은 14/15시즌 예트로 빌럼스가 12도움으로 갱신하기 전까지 10년동안이나 네덜란드 리그 단일시즌 수비수 도움 최다 기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빅리그(EPL+분데스리가) 스탯은 4시즌동안 2골 2도움으로 좋은 편은 아니다.
  20.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골든골을 만든 어시스트가 이영표의 오른발 크로스였다.
  21. 이영표의 이런 공격 특징의 하이라이트는 앞서 언급한 PSV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경기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풀백이라고 불리던 밀란의 우측윙백 카푸를 맞아 90분간 무한 오버래핑을 시전하여 '그' 카푸를 제대로 발라버렸다. 국대 경기에서도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사이드를 탈탈탈 털어버리면서 이영표 커리어의 역대급 하이라이트로 불릴 수 있는 경기가 있다.
  22. 당시 이근호는 국가대표팀에서 전지훈련까지 함께 하다 최종 탈락의 비보를 접했다.
  23. 다들 잘 알겠지만, 예측한 사람이 더 이상하다고 들을만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4. SBS의 차범근, MBC의 송종국 안정환도 이 시점에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25. 책에서도 언급하였는데 에이전트?(확실치 않음), 당시에는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어서 이영표는 빅 크리스천 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게 와전된 형식인 듯. 거절한 이유.
  26.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는 개신교 선교는 불법이다. 국가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하는 국가도 있다.비자를 받아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은 개신교 목사 및 선교사가 합법적으로는 입국비자를 받지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실상 구단을 속여서 이용한 셈이며 법률을 고의적으로 어긴 것. 게다가 크리스티아노포비아 항목에서 나오듯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중동지역 기독교 탄압으로 유명하다.
  27. 이에 극단적인 예수쟁이들은 심지어 이런 일이 기회라며 탄압받아서 잘못된 기독교 믿음을 버리고 올바른 기독교를 믿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그야말로 적반하장 반응을 보인다.그래서 그렇게까지 불법 선교를 한다 즉, 현지인들의 각 기독교 종파를 이단이라고 탄압받아도 된다며 자기들 기독교 종파를 선교한다는 개소리. 이럴 경우 되려 현지 기독교인들은 분노와 증오로 이슬람보다 저렇게 여기는 해외 기독교 종파와 선교사들을 증오하거나 외면한다...참고로 그들은 수백여년 아니 천년 넘게 신앙을 유지하며 이슬람 다수 체제에서 차별받으면서도 굳게 견디고 있는데 그런 그들에게 저런 개소리를 하면 과연 통할까? 이영표가 이런 말을 하거나 이럴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해당 나라에서 이영표의 이런 일로 언론이나 방송으로 보도된다면 현지 기독교인들에게도 이영표에 대한 이미지는 다를 게 없을 것이다.
  28. 2004년 FC 서울이 연고 이전을 하자 이영표가 "나의 친정팀은 죽었다" 이런 강경한 발언을 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이 발언은 FC 서울팬들이 지적한대로 국내 축구 갤러리에서 지어낸 이야기이며 링크에서 볼 수 있듯이 이영표가 아쉬움을 표현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것은 엄연히 기사로 보도된 팩트이다.
  29. 물론 "공짜시즌권"이라는 것은 없다. 공짜표 & 시즌권이면 몰라도...
  30. 물론 이동국 역시 정규 시간 내에 골찬스들을 놓쳤기에 그리 따질 입장은 못 된다.
  31. 참고로 2002년 월드컵 한국국대의 10번이다. 당시 월드컵 엔트리 규정에 따르면 골키퍼는 1번, 12번, 18번, 23번만 배번이 가능해서 김병지에게 12번을 주고 10번을 단 것이다. 10번은 엔트리 제출일에 거스 히딩크감독이 고심하다 준 것이다. 10번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대표팀 선수들이 내심 달기를 원했지만, 팀의 단합을 중시하던 히딩크는 가장 성실히 훈련에 임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영표에게 주었다고 한다.
  32. 이영표 선수의 결혼식 당시 로벤이 네덜란드에서 보낸 축하영상에서도 '영표 형'이라고 언급한다.
  33. 이건 나이도 어린 로벤이 이영표를 부를 때 'Lee' 라고 부르는게 맘에 안들어 아예 자기 이름을 '영표 형'이라고 부르게 해서 그렇다. 해피투게더 3 460화 참고.
  34. 이영표 본인의 말에 의하면, 로벤을 처음 보고 3가지 이유로 놀랐다고 한다. 축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한 번, 실력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 두 번, 나이에 비해 너무 늙어보여서 세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