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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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흥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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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6일 병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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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3일 퇴원. 엄청 아파보이는데 나았단다.
뒤에 있는 노지심을 신경쓰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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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맥심 코리아 화보.

한국프로레슬러.

1 프로필

본명이왕표(李王杓)
별칭나는 표범, 슈퍼 드래곤
생년월일1954년
신장190cm
체중약 90kg[1]
출생지충청남도 천안
피니시드래곤 스페셜, 파워 밤
테마곡Super Drangon
어떤 사람들은 레슬링을 짜고 한다고 말하지. 각본에 의해 기술을 부린다는 거야. 우리는 진짜 피와 땀방울을 흘리는 거야. 아무런 고통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지. 그래서 내 챔피언 벨트는 더욱 더 값진 거야. 진짜 피와 땀방울이 묻은 챔피언 벨트이기 때문이지.
-CB MASS - "진짜" 뮤직비디오 中.

2 개요

김일의 제자이며 한국 프로레슬링의 선수이자 상징. 1980년대 중반에는 K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할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3 커리어

젋은 시절에는 꽤 잘 나갔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했으며, 오니타 아츠시와의 데뷔전이나 후치 마사노부에게 거뒀던 승리 등을 보면 꽤나 유망주였을것으로 사료된다. 게다가 이노키가 나는 표범이다! 라고 해서 별명도 플라잉 쟈갸. 사실 김일의 직계 제자이다보니깐 입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신일본 시절 헐크x건과 경기하여 액스 봄버를 맞고 기절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이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이왕표가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는 날조된 루머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기 기록 잘 남아있다. 프로레슬링 경기 기록 사이트인 케이지매치넷. 재규어 리가 이왕표이며, 그 태그팀 파트너인 양승희는 역발산이다.

그 후 신일본에서 별 다른 푸쉬라든지 역할을 전혀 못받다보니 역발산과 함께 김일이 세운 한국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하여 태그팀으로 주로 출전해 이왕표가 당한다 → 역발산과 어렵게 태그 → 승리 패턴으로 명줄을 이어갔다. 한국 텔레비전 공중파가 명절이나마 마지막으로 프로레슬링을 중계했던 시기가 이 때였다. 그래서 이왕표가 코미디언 취급을 받는 1990년 이전에는 영 비실비실해서 힘도 제대로 못 쓰던 레슬러로 기억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좀 흥행이 되나 싶더만 한국 프로레슬링이 금방 문을 닫아버려서…. 이후의 행보로 봤을 때 이왕표가 잡을 한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신일본 최강의 태그팀중 하나인 슈퍼 스트롱 머신 출신인 역발산의 위치는 당시의 이왕표가 어찌할 짬이 아니였다.

그 후 1990년대 한국 프로레슬링이 GWF로 흡수되어서 그 쪽으로 옮기는데 이 때가 이왕표의 리즈 시절. 당시 미국 남서부의 최강자였던 로드 프라이스를 꺾고 GWF 챔피언이였던 빅 쟈니 호크를 물리치며 커리어 첫 세계 챔피언이 된다. 그 후 이왕표는 비록 유명해지기 전이였지만 부커 T를 꺾었고, 거기에 모자라 ECW 세계 챔피언으로 그 당시에 어느정도 이름빨을 날렸던 故 마이크 어썸까지 꺾으며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GWF는 25번 타이틀 방어를 한 이왕표를 영구 챔피언으로 앉히며 한국 프로레슬링의 불안감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후 2000년, WWA가 부활하고 타이틀 매치에서 자이언트 커간을 물리치며 WWA 세계 챔피언에 등극. 이후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후계자 양성은 커녕 길게는 8년 이상 타이틀을 방어하며 장기집권으로 한국 프로레슬링을 점점 막장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2004년 종합격투기 열풍을 타고 "울트라 FC"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밥 샙과의 종합격투기 경기를 발표하여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올라가는등 엄청난 흥행을 예고했고 어느정도는 성공했다. 더구나 시합에서 밥 샙을 이긴 후 전적 1전 1승 0패로 울트라 FC의 초대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이후에도 밥 샙과 연계하여 WWA 흥행에서 밥 샙에게 패해서 벨트를 넘겨주었다. 하지만 밥 샙이 레더페이스의 배신으로 위기에 몰리자 밥 샙을 도와주는 스토리로 선회했다가 밥 샙이 입국금지 당하는 바람에 애매하게 되었다. 한때의 흥행을 위한 성급한 결정이 수틀리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 다행히도 2010년 지방 흥행을 울산에서 개최하면서 밥 샙을 대놓고 이기며 또 다시 챔피언에 올랐다.

4 비판

사실 대한민국 레슬매니아치고 한국 프로레슬링에 관심 안 가져본 사람없고 한국 프로레슬링에 관심가져 본 사람치고 이왕표 욕 안해본 사람 없다. 2007년 이후 왕표 Suck! 이라는 챈트가 공공연하게 WWA 흥행 때 나올 정도로 단체운영이나 처신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4.1 시대착오적인 발상

방송에서 프로레슬링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패널 등으로 꼭 출연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희화적인 모습으로 대중에 접근해 가뜩이나 열악한 한국 프로레슬링에 대한 인식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거기에 계속해서 리얼리즘만 강조하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WWF에서 WWE(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꾸고, 경기 시작 전 "각본에 의한 것이지만 기술은 진짜다."라며 엔터테인먼트임을 강조하는 미국의 단체와 정 반대 길을 가고 있다.

스토리 진행도 거의 80년~90년대 초반에나 유행하던 빅맨이 나쁜 짓을 하면 자신이 혼내준다는 권선징악적 애국심 마케팅. 애들도 외면하는 주제를 몇 년째 계속 우려먹고 있다. 물론, 이런 마케팅이나 각본 자체는 나쁜 것도 아니고, 심지어 WWE에서 마저 쓰이는 일종의 클리셰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존 시나. 다만, 이왕표가 비판받아야 할 점은, 이런 선악 대결 구도에서 이왕표 자신에 의한 1인 독재, 한국인 선수들의 무조건적 선역 시스템으로 인해 후계자 혹은 젊은 선수들 육성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악역을 수행하는 외국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선역으로 환호받고 한국선수는 철저히 무시당하겠는가.

"울트라 FC"의 경우 또한, 막상 흥행이 열리니 MMA가 아니라 종합격투기의 모습을 한 프로레슬링이였다. 일종의 이노키즘인데, 사실상 이왕표의 "프로레슬링은 진짜다!"라는 컨셉에 맞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종합격투기 컨셉의 프로레슬링 경기는 해외 프로레슬링계에서도 제법 펼쳐진다. 쉽게 설명하면 종합격투기처럼 보이도록 합을 맞추고 각본을 짠 프로레슬링 경기인데, 해외에서는 관중들도 무늬만 종합격투기란 걸 다 알고 본다. 그러나 프로레슬링에 대한 이해도가 바닥을 치는 국내 현실에서 이왕표는 무작정 실전이었다고 우기니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두 사람은 짜고치기가 아니였다고 극구 부인하지만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셔독의 전적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이 대전으로 잠시나마 기대했던 사람들은 또 실망하고, 안 그래도 웃음거리가 된 한국 프로레슬링은 꿈도 희망도 모두 잃어버린 상태다.

4.2 운영 미숙

행정만 보더라도 WWA 최고 회장님이였던 AAA의 故안토니오 페냐도 WWA에 신경을 전혀 안썼으며, 신임 회장이 된 압둘라 더 부처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형편없는 각본과 운영, 돈 들여 티켓을 구매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막장 흥행으로 한때는 NWA와 자웅을 겨루며 최고의 전통을 가진 단체인 WWA를 한국으로 타이틀이 넘어오자 마자 유령단체로 전락하게 만들었으며, 건강이 나빴던 말년의 故 김일을 반억지로 끌고다니면서 한편으론 김일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다른 단체들의 성장 자체를 막아버려 국내 프로레슬링을 빈사 상태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생전 김일이 안토니오 이노키도 자이언트 바바도 차지하지 못했던 타이틀이라며 자랑할 정도로 WWA 헤비급 챔피언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 그 유명한 역도산의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 세계 타이틀이기도 했던 유구한 역사의 WWA는 이제 프로레슬링 비인기 국가 지방 단체 타이틀보다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예전의 그 WWA의 후계를 자처하는 단체들은 우리나라의 WWA 이외에도 존재한다. 이름도 모두 World Wrestling Association으로 동일하다. 과거의 WWA 월드 챔피언쉽은 NWA 월드 챔피언쉽에 흡수 된 이상 이제 정통성은 그냥 입김 센 놈 거다. 그런데 정작 과거 WWA의 선수단이나 프런트 등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NWA Hollywood는 지금도 독자적으로 성업 중이다. (...)

또한 "울트라 FC"의 경우 당시 돈 프라이라든지 이종 격투기에서는 잔뼈만 굵은 퇴물들을 긁어 모아 어떻게든 열어보려 했지만 부실한 운영으로 한때 흥행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돈 프라이를 제외한 모든 선수는 모두 구두 계약이었고, 인터파크가 가져가는 티켓 수수료를 생각하지 않고 가격을 책정해서 티켓 발매중에 입장료를 수정하는 등 너무나도 미숙한 운영을 보여주었다.

4.3 후계자 양성

후계자 양성 면에서는 지나치게 빅맨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으며, 후배들을 믿지 못하는지 자신이 직접 간섭하고 직접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보니 밑에서 묵묵히 훈련하던 훈련생들도 거의 모두 나갔고, 대표적으로 WWA의 미래라고 국내팬들이 그나마 많은 희망을 걸었던 한대호 선수마저 싸이월드 홈피에 'WWA의 현실'이라는 글을 올리고 탈퇴했다. 이후 한대호는 천규덕옹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바란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여건에서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젊은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혜택이 돌아가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라며 프로레슬링 KOREA를 출범시켰다. 이렇게 이왕표와 쌓인게 많은 한대호였지만 이왕표가 담도암으로 투병한 이후에는 이왕표의 쾌유만을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5 은퇴

2013년 8월 담낭암으로 수술 후 위독한 상태에 빠졌지만 다행히 회복하였다. 2013년 11월 15일 KBS2 여유만만에 출연했는데, 담낭암 수술을 받기전 죽을 각오로 사후장기기증을 서약했고 특히 안구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실명한 방송인 이동우에게 기증하기로 했었다고 밝혔다.

2014년 10월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리운전 사업 중. 2015년 5월 25일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치뤘다. 관련인터뷰 다만 27일 고향인 천안의 유관순 체육관에서 치룰 예정이었던 은퇴경기는 본인의 건강 문제로 취소되었다.

2016년 5월 현재, 대리운전 사업을 계속 하며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1]

6 기타

일본에서는 어느정도 인정을 받는거 같다. 故 미사와 미츠하루도 이왕표에게 선배님이라고 대우해주고, 프로레슬링 NOAH와도 어느정도 교류가 있다. 그 예로 그의 은퇴식때 무려 마루후지 나오미치를 섭외 해왔다.

프로레슬링을 바탕으로 격기도라는 무도를 창설하기도 했었다. 이왕표 측 한국 프로레슬링 계열이 주구장창 주장하는 것은 바로 프로레슬링은 이 격기도라는 무술을 베이스로 펼쳐지는 실전이라는 것. 물론 아무도 믿지 않는다. 김병만을 비롯한 몇몇 프로레슬링 좋아하는 개그맨들이 격기도 수련 경력이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통일교 재단의 선문대학교 체육학부 무도학과의 교수를 하였다.
  1. JTBC 뉴스룸 2015/5/25 인터뷰 중. 전성기 체중은 120kg 정도. 지금은 병상 생활로 체중이 많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