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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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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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김상철27대 이원종28대 우명규
역대 대한민국 충청북도 도지사
25대 이동호26대 이원종27대 김덕영
29대 주병덕30~31대 이원종32대 정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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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鐘
1942년 4월 4일 ~

1 개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처음에 저도 기사 봤을 때 실소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중략)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그런 것이 밖으로 활자화 되는지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최순실이 연설문을 고쳐준다는 기사에 대해 반박하며

대한민국의 전 관료, 광역단체장, 자문기관단체인이다.

1942년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태어났다. 제천고등학교, 국립체신대학 통신행정과,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우체국 서기보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주로 서울특별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관선 충청북도 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93년 3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으나,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1994년 10월 서울특별시장직에서 경질되었다.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1998년 3월 자유민주연합에 입당,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 도지사에 출마해 무려 74%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1] 매우 무난한 행정으로 지지도가 높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2] 58%가 넘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으며 2006년 6월 말 퇴임했다.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서 국정관리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2 대통령비서실

이후 박근혜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을 역임하다 2016년 5월 15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날 청주시의 어느 개인택시 기사가 임명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를 범퍼 쪽에 스티킹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되어, 최순실이 연설문을 고쳐준다는 의혹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처음에 저도 기사 봤을 때 실소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라며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잘라뗐었으나 JTBC의 취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실상을 몰랐거나 아예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실상을 몰랐다고 해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의 행적과 청와대 내부 사정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게 가당치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실상을 알았다면 알면서도 국정감사에서 위증을 한 셈이 되어 스스로 게이트의 공범임을 자인하는 꼴이므로 어느 쪽이든 심각한 일이다.

이후 본인의 발언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내가 알면 그런 말을 했겠나"고 답하면서도, 지금이 봉건시대라고 생각하냐(즉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침묵했다.

또한 국감 중 안종범 수석에게 질문을 마친 박지원 의원과 잠깐의 설전이 오고 갔는데, 이 때 그에게 "국민의 지도자와 대표라면 이러한 일을 잠재워야지 왜 자꾸 증폭시켜서 국민에게 손해를 끼치고 국익을 해치느냐"며 은폐를 정당화하고 의혹 제기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였다. #[3]

지난 2016년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다음 날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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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게도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주병덕 지사는 직전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선되었다가 불과 반년 만에 탈당한 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했었다. 차라리 당적을 바꾸지 않고 쭉 유지해서 자민련 공천을 받았다면 재선 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던 것.
  2. 이 때문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눈밖에 났고, 그 결과 그 해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종필이 중립을 선언해버리기에 이른다. (...) 이회창과 노무현 두 후보중에 김종필과 성향상 맞는게 누군지는 너무나 자명한데도 저랬다는 것은 그만큼 이회창에 대한 김종필의 적개심이 엄청났다는 것을 반증.
  3. 7분 35초쯤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