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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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써 이오랑캐 이제압할 제오랑캐 이

1 개요

... 訓擁衛稽故,令不得戰。議者,咸以羌胡相攻,縣官之利,以夷伐夷,不宜禁護。

(... 등훈은 병사를 보내 호족(胡族)를 보호하여, 강족(羌族)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주위의 책사(策士)들은, 강족과 호족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한나라 조정에 유리한 것이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니, 호족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 그들을 지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여겼다.)
- ≪후한서≫ 권 16ㆍ열전 제6ㆍ<등구열전>[1]

중국고사성어. 말 그대로 오랑캐를 오랑캐로 제압한다는 뜻으로, ≪후한서≫의 <등구열전(鄧寇列傳)>의 <등훈전(鄧訓傳)>에 나오는 구절인 '이이벌이(以夷伐夷)'에서 비롯하였다.

비슷한 사자성어(四字成語)로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이 있다. 이독제독은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독공독(以毒攻毒)'과 같은 말이다. 기미(羈縻)[2](회유) 정책과 함께 중원에 자리잡은 제국들의 기본적인 대이민족 정책이었다. 원교근공 전략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상세

중국중원 북쪽에 자리잡은 이민족 세력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단발적인 약탈은 있어도 제대로 된 중원 침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민족들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중원의 제국들은 이민족들의 분열을 고착시켜 그들을 제어하려 했다. 그 결과 이민족들은 북방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받는 과정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며 중원을 위협하는 세력이 되지 못했다. 칭기즈 칸 등장 이전의 몽골이 그랬고 누르하치 이전의 만주가 그랬다.

물론 이이제이의 사례는 중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대 로마의 경우에도 북방의 게르만족을 취급할 때 이이제이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각지에서 사례가 많다.

2.1 이점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면 대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대에게는 어찌되었건 대단히 효율적인 책략이다.

  • 위험요소가 성장하는 것을 막는다 :
보통 상대방에 위험이 될만한 세력이 집결하면 곧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에서는 이런 과정이 크게 느려질 뿐 아니라 보통 이런 싸움중에 해당 세력이 전멸은 아니라도 상당히 손실을 겪으므로 강대해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이이제이를 실행하는 측에서 적절한 군사개입까지 가하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자국의 안전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 직접 싸우는 것보다 물량 및 비용의 소모가 훨씬 적다 :
말 그대로 적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므로 적당하게 적들을 싸움붙일 미끼로서의 전력이나 비용만 소모해서 이득을 볼 수 있고, 외교능력이 높고 언변이 뛰어나며 사교술이 좋은 인재가 있을 경우 극단적으로는 세치 혀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실행이 가능하다.
  • 전력증강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
적들이 서로 충돌하는 동안 아군은 병력을 늘리고 훈련시키며 장비를 추가로 생산하고 식량등 군수물자도 많이 비축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다음에 다시 이이제이를 쓸 경우에도 성공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2.2 유의점

어디까지나 지속적인 상황파악이 힘들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개 비롯되는 문제들이다.

  • 기본적으로 자국에 어느 정도의 힘이 없으면 생각하기도 어려운 전략이다 :
이이제이를 걸더라도 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아군쪽으로 일제히 화살을 돌려버리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이제이를 거는 국가의 국력이 약하다고 느끼면 서로 어렵게 싸우기보다는 공격방향을 선회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서로마 제국은 이이제이를 써서 훈족의 아틸라까지 물리쳤지만, 자국의 국력이 날로 저하하고 있었던 탓에 자국의 영토에서 준동하는 게르만족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훈족의 패배로 인해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어진 게르만족에게 망하게 된다.
  • 실행하려다 역으로 자기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
보통 군웅할거같이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난립했던 유럽에서 흔히 벌어진 일으로, 이이제이를 사용해서 어떤 세력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하면 위험성을 느낀 주변의 세력들이 일제히 동맹을 맺은 후 그 세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전력을 충실하게 쌓은 세력이라도 중과부적으로 괴멸당한다. 어설프게 하다가 들키면 마찬가지로 털리기 십상이며,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는 2015년 5월 기준 여성시대라는 사이트의 해명글 조작 사태가 있다.
  • 상대방도 머리가 있기에 언제까지나 멍청하게 아군의 계략에 속는다는 보장이 없다 :
아무리 야만족이라도 지속적으로 혼란상태가 이어지면 그걸 획책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며 일단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이이제이를 당한 쪽은 서로 싸우느라 전투경험이 엄청나게 축적된다. 이이제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국력이 위태로울 정도라거나 애초에 수준 차이가 크다면 몰라도 어중간하게 붙은 경우에는 이이제이가 틀어진 그 순간 상대는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정예병을 이끌고 이이제이에만 치중해서 전쟁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상대에 맹공을 가하게 된다.
  • 잘못하면 여우를 잡자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 된다. :
그 예로 남송금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원나라를 끌어들이다 정복당했으며. 5세기 경 영국 잉글랜드를 주름잡던 켈트족스코트족을 물리치려고 앵글로색슨족을 끌어들이다 앵글로색슨족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신라는 그 호랑이를 두들겨 패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한제국러시아 제국일본제국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다가 을미사변을 겪고 러일전쟁(쓰시마 해전)결과로 망했어요.
  • 그 상대가 원하는 다른 상대와의 적의가 한 쪽이라도 없다면 불가능. 다시 말해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
이순신의 자살설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 중에는 살아생전 유명수군도독. 명에서는 선조와 계급상 동급인 상황이 발생되었다. 전혀 당대 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조선사 통틀어 전무후무한 점에다가 세계사적으로도 문제될 기록에 대해 남기지 않거나 태운 경우도 있다. 니미츠 미 해군 원수도 그러한 편이란 걸 염두하면 자살설 역시ㅗ 엄청난 생명력이 연장된 셈이다.

3 사례

3.1 실제사례 (시대 순)

3.1.1 한국

3.1.2 중국

  • 진나라: 이이제이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소진의 6국 합종책을 장의의 연횡책으로 작살낸 후 약해진 나라부터 하나하나 잡아먹어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자가 됐다.
  • 위나라: 이릉대전 덕분에 황권등 촉의 명장을 얻었을 뿐더러, 촉과 오 두 적국의 국력이 쇠퇴하며 상대적으로 이득을 봤다. 허나 이때 위나라 황제 조비는 이릉대전 이후 국력이 약화된 오나라를 치러 친정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패퇴하며 그 이익을 제대로 못 살렸다.
  • 송나라: 이이제이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앞문에서 짖어대며 으르렁거리는 늑대와 승냥이를 잡으려고 뒷문으로 굶주린 호랑이를 불러들인 셈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송나라의 정책은 전통적인 이이제이와는 거리가 먼데, 전통적인 이이제이는 양세력중 한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둘다 남겨서 서로 지속적으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아래 요나라ㆍ금나라 부분 참조
    • 북송: 만리장성 인근 연운 16주를 찾기 위해서 여진금나라와 결탁해 거란족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금나라가 요나라보다 더 강해졌다. 결국 중원을 잃고 강남으로 쫓겨나서 남송으로 몰락한다.
    • 남송: 장강 이북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 몽골 제국과 결탁해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몽골 제국이 금나라보다 더 강해졌다. 결국 강남까지 잃어버리고 나라가 쫄딱 망해버렸다.
  • 요나라금나라: 북방민족인 특징상 북방민족의 두려움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요나라는 여진족을 금나라는 몽골족의 분열을 획책하면서 힘을 합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하여 간접지배를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장난질이 지속되자 부족 통합의 기운이 일어나게 되었고 요나라는 금나라에게 금나라는 몽골제국에게 멸망하게 되었다. 한편 이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던 송나라는 신흥 강자에게 어그로를 끌어 꼬박 꼬박 나라의 반쪽을 넘겨주게 되었다.
  • 명나라: 누르하치 이전 만주족도 그렇게 관리했고 특이하게도 조선에 대해서도 이를 시행한 흔적이 강허게 추정되었다. 이순신의 시호. 유명수군도독이 이것으로 대체역사소설 이순신의 나라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성조의 열폭성 주장을 통해 이이제이 가능성이 높다는 걸 가리키고 있다.

3.1.3 그외 아시아

  • 인도 제국: 영국은 세포이 항쟁이후 인도인들이 뭉치면 무섭다는 걸 깨닫고 동인도 회사를 해체하고 직접 통치하면서 각 지방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문화와 언어, 종교를 이용해 인도에 미묘한 갈등을 부추졌으며 인도 아대륙을 오합지졸로 만들었다. 이 작전은 마하트마 간디가 출현해 구심점이 모일 때까지 유용했다. 그러나 이슬람과 힌두교의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갔고 독립 이후 인도 공화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할되고 만다
  • 현대 일본: 집단자위권을 위시하여 재무장을 하고있지만 이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해 일부러 풀어준 면이 크다. 일본의 거대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추가적인 예산투입없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의도이다.

3.1.4 유럽

  • 로마 제국: 게르만족들 가운데 로마에 붙어먹은 부족도 있었는데, 로마제국은 이들을 이용하여 다른 게르만족들을 견제하였다.
  • 바티칸: 교황이 프랑크 족의 능력자 왕 피핀에 SOS 요청, 경쟁자인 롬바르드 왕국을 견제했다. 피핀도 로마 교황에 환심을 보이고자 오늘의 바티칸을 선물했다. 그리고 후에 캉브레 동맹의 전쟁 때도 비록 오랑캐는 아니라지만 스페인, 프랑스, 신성로마제국과 같은 강대국들을 끌어들여 베네치아 공화국을 공격하였는데, 교황청 자체의 군사력이 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성로마제국에 의해 로마가 박살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코 디 로마. 후에 베네치아가 토해냈던 영토들을 다시 되찾고 이 일을 기점으로 교황청의 세가 많이 약해졌으므로 이이제이의 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 이탈리아(통일전쟁 당시): 주역은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프랑스를 끌어들여 합스부르크 왕가를 몰아냈다.
  • 핀란드(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이용해 소련의 간섭을 물리치려고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가 연합국으로 기울자 나치와의 동맹을 끊고 나치독일을 몰아냈다.

3.2 창작물 (가나다 순)

  1. 출처
  2. 《漢書ㆍ郊祀志下》:方士之候神入海求蓬萊者終無驗,公孫卿猶以大人之跡為解。天子猶羈縻不絕,幾遇其真。(唐)顏師古註:羈縻,系聯之意。馬絡頭曰羈也。牛靷曰縻。; (漢)司馬相如《難蜀父老》:蓋聞天子之牧夷狄也,其義羈縻勿絕而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