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아자니

유아기. 부모님, 동생과 같이 찍은 사진.1970년, 만 15세. 영화 "작은 장작가게"에서
1973년, 만 18세.1983년, 만 28세. 로피시엘 옴 표지
1988년, 만 33세. 영화 까미유 끌로델 중.1994년, 만 39세. 영화 여왕 마고 중.
2014년, 만 59세.2016년 61세.(!!)과.. 과연 60대!

Isabelle Yasmina Adjani (이자벨 야스미나 아자니)

1 소개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이자, 가수이자 파문전사.ELS에 침식당했다 카더라 1955년 6월 27일 (61세) 생. 키는 163cm.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영화 "작은 장작가게"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 '제 2의 브리짓 바르도'[1]란 칭찬까지 받기도 했으며, 1980년대에는 세계 최고의 미인으로 인정받았으며 특히 늙지 않는 수준의 최강 동안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윗 사진들만 하더라도 누가 2016년에 61세할머니(...)로 보겠는가? 실제로 1979년생 장남에게 자녀가 있으니 할머니인건 맞다. 50대 후반의 나이로 20대 배역을 맡는 것으로 유명한데, 오죽하면 하이랜더 증후군이란 소문도 나돈다.[2]

다만 40대부터 최근 모습의 사진들과 20~30대 시절의 사진과 비교했을 때 입술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걸 보아 의술의 힘을 빌렸겠지만 50대 후반의 나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느님의 손길이 위대한 것 보다는(?) 기본적으로 피부가 좋다거나 젊어 보이는게 타고나게 쩌니까 이렇게까지 동안을 유지하는 거라고 봐야 할 듯(…) 그리고 50대 이후부터는 살이 좀 쪄서 늙어보일 때가 있는데,[3] 메이크업에 따라서 여전히 예전 수준으로 젊어 보일 때도 있다.

2 가수 활동

SBS '한밤의 TV연예'의 로고송으로 유명한 대표곡 "Ohio"

여담으로, 아자니는 딱 한번 가수로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원래 세르쥬 갱스부르[4]가 연인 제인 버킨의 음반을 제작하려 했으나, 둘은 헤어지고 말았고 결국 갱스부르는 버킨과 음색이 흡사한 사람을 찾기위해 동분서주했는데 뜻하지않게 아자니가 음반을 내고 가수가 되었다. 유럽의 가요계가 정말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진 이유가 가수의 가창력과 목소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5]

음반이라곤 이 곡이 담긴 앨범 하나 뿐인데도 연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매우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199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되기까지 했는데,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의 연예계에서도 아자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볼 수 있다.

이 음반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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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ll marine
수록곡
1Ohio7Beau Oui Comme Bowie
2Entre Autre Pas en Traitre8Le Bonheur C'est Malheureux
3Ok Pour Plus Jamis9Je t`aime Idiot
4D'un Taxiphone10Et Moi Chouchou
5C'rst Rien Je M'en Vais C'est Tout11pull marine
6Le Mai Interieur

3 여러가지 일화

젊은 시절의 아자니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다루기 힘들고 성격이 괴팍해서 종종 감독이나 제작진과 트러블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역에서 밀려나기도 했는데 대체적으로 맡는 역할을 보면 로맨틱하고 고전적이며 매우 아름답지만 좀 미친 여자 주인공이 많다. 일반 사람들도 좀 고상하고 예쁘지만 광기 있는 역할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큰 사고는 친 적이 없으며, 단지 똘끼있고 4차원 정신세계의 소유자라는 게 중론이다. 하도 맡는 역할들이 싸이코 역할들이 많다 보니 얼굴값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사생활 쪽으로는 프랑스영화 감독 브루노 뉘텡과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사귀었으며 둘 사이에 1979년에 태어난 아들 바흐나베 뉘텡이 있다. 1981년 영화 퍼제션을 찍을 때는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과 사귀었고 1983년에 세르쥬 갱스부르하고도 잠깐 사귀었었다. 미국의 배우 워런 비티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사귀었고, 영국의 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1989년부터 1994년까지 6년간 열정적으로 사귀었었다. 근데 아자니가 데이루이스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줄리아 로버츠불륜에 빠진 데이루이스가 달랑 팩스 한 장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헤어진 다음 해 아자니는 1995년에 아들 가브리엘 케인 데이루이스를 낳았지만, 팩스 한 장으로 이별을 통보했던 데이루이스는 혼자 아이를 낳은 아자니에게 아이의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프랑스의 작곡가 장 미셸 자르2002년부터 사귀기 시작해 약혼까지 했었지만, 2004년에 아자니가 프랑스의 유명 록커인 조니 알리데이의 주치의 스테판 들라쥬와 사랑에 빠지면서 헤어졌다. 들라쥬와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사귀었다. 이 후로 토니노 카카스라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화려하다!!!

아버지가 알제리인이고 어머니가 독일인인데, 아자니의 어머니는 남편이 알제리인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여겼는지 터키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독일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일어네이티브급으로 능숙하다.[6] 그런데 프랑스 국적인 프랑스 대표 여배우인데도, 정작 프랑스 혈통은 하나도 물려받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와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피를 물려받았다. 동아시아로 비유하자면 대한민국계와 중국계 출신의 부모를 두고 정작 자신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일본에서 유명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굳이 비슷하게 들자면 미즈하라 키코?

이 때문에 종종 프랑스극우파 정치인들과 긴장관계에 있다. 프랑스의 인종 문제와 관련해 프랑스 연예인 중에는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같은 알제리 혈통이자 알제리프랑스인인 지네딘 지단과 함께 이 둘은 프랑스 내에서의 알제리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외로 알제리계로서는 반 이슬람주의자다. 이슬람교라면 아주 치를 떠는 수준으로 특히 히잡 반대 시위를 주동하기까지 했다.관련기사 사실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게 알제리 혈통을 물려받았으나, 정확히 말하면 카빌리 혈통이다. 이쪽은 오히려 천주교 성향이 강한데 자세한 내용은 알제리 항목의 역사 문단 참조. 이러다 보니 알제리에서도 듣보잡 무시당한다. 그렇지만, 백인우월주의라든지 국민전선같은 반이슬람 극우 백인우월주의 단체를 혐오하고 이민 정책에 대해선 국민전선과 정반대 태도를 보인다.

1996년 영화 <디아볼릭>이 대한민국에서 개봉할때 서울 피카디리극장(현 CGV 피카디리 1958)에서 열린 이벤트로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가 있었는데, 최지우가 무명 시절에[7] 이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4 출연작

4.1 영화

4.2 음반

  • Pull Marine

4.3 기타

  1. 칭찬맞다. 리즈 시절의 바르도는 마릴린 먼로와 함께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이란 명성을 지녔다. 다만 현재에 이랬다간 오히려 아자니에 대한 모욕 수준(...) 게다가 바르도가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로 변질한데 비해 아자니가 프랑스 극우파와 매우 대립이 심한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2. 성장 및 노화가 멈추는 증후군이라는데 물론 떡밥이며, 정확한 병명도 아니다. 더구나 아자니가 하이랜더라는 떡밥에 같이 돌아다니는 사진들은 검증되지 않은 난쟁이증 환자들이다. 그냥 드립이라 생각하자.
  3.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늙어보인다는 소리가 아니라, 예전의 기대치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그 나이에 대입하면 여전히 동안이다. 그리고 저런 분들은 다시 다이어트하면 예전처럼 파문전사(...)로 돌아갈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4.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아버지였으며, 그의 연인 제인 버킨은 그의 어머니였다.
  5. 라 오레하 데 반 고흐 조차도 음색 하나로 유명 가수들을 제쳐두고 일반인을 보컬로 삼아 가수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
  6. 아자니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에 능통하다.
  7. 다만 완전 무명은 아니었다. 1994년 MBC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고 여러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영화 <귀천도>의 여주인공에 캐스팅되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한 상태였다.
  8. 샤론 스톤과 공동 주연.
  9. 더스틴 호프먼과 워런 비티의 노래가 압권이었으며 아자니까지 투입된 대작이였으나 흥행은 좆망... 아자니의 출연작 중 유일한 흥행실패작이다.
  10. 아자니가 1인 2역을 했는데 헬렌은 안나와 닮았다는 설정이기 떄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대본이 워낙 충공깽이라 이 영화를 촬영한 후 아자니는 자살 소동을 벌여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대대적인 치료를 받았다. 들리는 설로는 소피 마르소의 남자친구였던 감독 안제이 주와프스키가 라이벌(?)인 아자니를 갈구려고 일부러 저리 해괴하게 찍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기엔 1981년엔 마르소가 아직 15세로 막 데뷔한 상태였으니 근거 없는 낭설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마르소와 주와프스키는 1987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참고로 같은 감독의 1996년작 <샤만카>의 여배우 이오나 페트리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아자니는 그나마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영화계에 복귀했으나, 이오나 페트리는 복귀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혔다.
  11. 이 영화를 찍을 때 진짜 흡혈귀가 되어서 그렇게 안 늙는다는 설도 있다(….)
  12. 가장 꽃다운 시절의 아자니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이니 아자니의 팬들은 꼭 볼것. 이자벨 아자니 팬이라면 봐야 할 의무가 있는 영화 0순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