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군인)

이재수
복무대한민국 육군
기간1981년 ~ 현재
임관육사 37기
최종계급중장
최종보직제3야전군 부사령관

1 개요

대한민국군인. 前 육군 제3야전군 부사령관.

2 생애

1977년, 박지만과 함께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 37기로 입교했다.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군내 인사 전문가로서, 대령시절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기획과장, 선발관리실장을 역임했고, 2007년 11월에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본부 인적자원개발처장, 육군 제2작전사령부 인사참모처장을 지냈다. 2010년 6월 소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육군 제53향토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지냈으며, 2013년 4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인사사령관과 국군 기무사령관을 지냈다.

국군 기무사령관으로 취임한지 1년만에 전격적으로 물러나 한직인 육군 제3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 일각에서는 군단장을 거치지 못한 이재수 중장을 야전으로 한바퀴 돌려 대장진급을 위한 커리어를 쌓게 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군인사를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애초에 중장 2차 진급, 군단장급 지휘관 미역임에 더해 직능까지 작전이 아닌 인사였기 때문에 대장 진급은 원래 힘들었다. 되려 병과가 기갑임에도 불구하고 군단장급 지휘관을 이 단계 최고의 알짜배기인 제7기동군단으로 역임한 박찬주가 이재수를 제치고 대장에 진급했다. 이재수가 대장 진급이 안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군단장 미역임이고 직능같은 건 다른 것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당장 임국선 중장을 보더라도 군단장급 지휘관 보직 중에서 최고의 진급코스인 7기동군단장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대장급 지휘자 미역임[1]이 발목잡혀서 중장으로 전역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장교진급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게 바로 해당 계급별 지휘관 이수 여부이다. 대장에 진급하려면 소대장(1회), 중대장(2회), 대대장(1회), 연대장(1회), 사단장(1회), 군단장(1회) 중에서 한개라도 비어있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재수는 이 중 제일 높은 게 없다.

육사 37기 동기로는 신원식, 양종수, 전인범, 조보근, 박찬주, 엄기학, 고명현, 김영식 등이 있다. 육사 한 기수당 보통 6~7명의 중장 진급자가 나오는데, 37기는 8명의 중장 진급자가 나오는 바람에 박지만 덕 아니냐는 항간의 눈총을 받은 바 있다.

여담으로, 박정희 前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육사 시절부터 절친[2]이라고 한다. 베프 누나가 대통령[3] 그런데 오히려 대통령 일가와의 친분이 군인사에서 불리하게 작용을 했는지, 기무사령관 취임 1년만에 전격적으로 물러나 전역 대기직인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으로 전보됐다. 2015년 9월 장성 인사에서 동기인 엄기학, 김영식, 박찬주대장으로 진급한 반면 이재수는 탈락했고, 거기다 김영식은 1군사령관, 엄기학은 직속상관인 3군사령관으로 취임하게 되어[4] 어쩐지 군 수뇌부에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이다.

덕수 이씨라고 한다. 덕수 이씨하면 보통 이분의 본관이지만, 이재수는 덕수 이씨 충무공파가 아닌 문혜공파다.[5] 이재수가 준장으로 진급하자 덕수 이씨 문중들이 크게 축하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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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위와 중위시절 내내 특전사에서 일반 전투원부중대장을 했다.
  2. 고교시절부터 절친이라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고교시절에는 몰랐던 사이였고, 육사에 진학한 유일한 동창이어서 육사에 입학한 이후부터 친해졌다고 한다.
  3. 실제로 사적으로는 박 대통령을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4. 한국군에서 동기나 후배를 직속상관에 앉힌다는 건 거의 틀림없이 "이제 슬슬 갈 준비 해야지?"라는 뜻이다. 판·검사의 세계에서도 동기 및 후배가 상급자가 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변호사가 된다.
  5. 충무공파는 덕수 이씨의 많은 분파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전 설명에는 충무공파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고 분파가 멸문된 것마냥 서술되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