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정치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주요 관련 인물박근혜 김기춘 · 우병우 · 정호성 · 안종범 · 이재만 · 안봉근 · 조윤선
최순실 정윤회 · 정유라 · 장시호 · 고영태 · 차은택
관련 사건전개 과정사건의 배경 · 타임라인 · 대통령 해명
주요 내용문제점 · 국정 개입 · 인사 개입 · 재단 활동 · 의료 논란
수사 · 재판검찰수사 · 특별검사 · 국정조사 · 재판 · 탄핵
기타 관련기타 관련 인물 및 단체
기타 관련 사건 · 관련 집회
기타 관련 문화 및 여담 · 박근혜 퇴진 운동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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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정현 (李貞鉉)
출생1958년 9월 1일,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본관성주 이씨
학력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소속 정당무소속[1]
의원 선수3
의원 대수18, 19, 20
가족3남 1녀 중 장남
종교개신교
약력前 한나라당 광주 서구 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前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지원특별위원회 위원
前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
前 청와대 정무수석
前 청와대 홍보수석
前 새누리당 최고위원
前 새누리당 당대표
링크[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폐쇄)

1 개​​​​​​​​​​​​​​​​​​​​​​​​​​​​​​​​요

한때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에서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인물

새누리당 대표였고 現 3선 국회의원이다. 18대 비례의원이였으며 이후 19대(곡성-순천 보궐) 및 20대(순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의해 당 대표에서 사임 후 2017년 1월 16일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 현재는 무소속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정치입문기

1958년 9월 1일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동암리 출신으로 그나마도 13가구가 떨어져 사는 두메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2] 이정현의 부모님은 아들에게 특별히 간섭을 하지는 않았지만, 큰 목소리로 국어책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을 숙제로 시키고 잡지와 신문을 정기 구독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곡성 목사동초등학교, 순천주암중학교,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양회수국회의원 등 정치인 합동유세 현장 보고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곡성군 목사동면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은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라는 손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대통령비서실에서 이 편지를 받아보고 전남교육청을 통해서 목사동초등학교 교장에게 뭔가 다른 아이니 잘 키우라는 격려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광주로 유학오면서 성적도 중하위에 머물렀고, 목욕탕에 가는 것을 비롯해 아무도 없는 공중전화박스에서 수화기에 대고 혼자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회고한다. 웅변학원을 다녔고 전국 웅변대회에서 고교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 관련된 기사를 꾸준히 봤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으나 1차 시험에서는 합격했으나 2차 신체검사에서 시력이 나빠서 낙방했다.[3] 그 뒤 재수를 한 끝에 권노갑, 김동영, 최형우, 황명수 전 의원 등 정치인들을 배출한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1980년 군대에 입대하여 육군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대학교 4학년 때인 1985년,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역임했던 구용상 전 의원이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담양군-곡성군-화순군에 출마하자 '정치 좀 똑바로 하라’는 6장짜리 손편지를 보냈는데, 생각지도 않게 구용상 전 의원이 이정현에게 자신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여 영입하게 된다. 처음에는 구용상 의원의 전화받는 비서, 사모님 수행비서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서울 비서관을 따로 두는 것이 상례인데 이정현은 항상 구용상 의원을 따라다니면서 비서관 역할을 했고, 의원 집에서 잠을 자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때로는 구용상 전 의원에게 인간적으로 모욕적인 얘기를 들으면서까지 혼이 나서, 화장실에서 하루에 3번 운 적도 있었다고 토로한다.억울해서 화장실에서 울다가도 세수를 하고 기어코 돌아갔다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때, 호남에서 평화민주당의 돌풍으로 구용상 의원이 낙선하자, 이정현은 민정당 특채로 입사했다. 당직자 최말단인 간사 ‘병’으로 당직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공채들 사이에서는 호남 출신이라고 근본 없는 놈이라는 눈초리를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영남이 기반인 당에서 호남 출신인 그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다.

심지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당 출입 기자들에게조차 반말을 들으면서 심부름까지 했다고 한다. [출처]

오기가 발동한 이정현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 주말도 평일과 똑같이 일하는 습관을 무려 15년간 했다고 한다. 이정현은 매일 출근길에 신문과 라디오의 기사와 뉴스를 꼼꼼히 파악한 다음 그것을 정리해서 분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늘상 정치 사례들을 분석, 정리했고, 그런 사례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경험을 토대로 현실 정치에 다시 적용해서 분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에게 매일 3장짜리 정세 분석 및 전략기획 보고서를 전달했고, 그 분석 자료 때문에 지도부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할 것이 보내달라고 해서 당의 고위직 사람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한 단계 한 단계씩 승진하면서 전략기획, 정세분석, 대변인실, 여의도 연구소 기획팀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그시절 이정현의 위치를 잘 알 수 있는 사진 중 하나. 왼쪽 구석에 깨알같이 등장한다. 박근혜 대표 왼쪽의 인물이 바로 당시 한센병자 지원 재단인 한빛복지협회장이자 박근혜의 심복으로 이 사진이 찍힌 2007년 5월에서 1년이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 2번을 받았다가 전과 12범의 과거가 드러나며 의원직을 상실당한 임두성. 육영재단 폭력사건에 한센병 환자 조폭을 동원한 인물이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 항목 참조.

2.2 국회 입성기

당에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향인 호남에서는 ‘영남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깔끔하게 떨어졌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으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 을에 출마하였으나, 당시에 노무현 탄핵 사태로 한나라당의 인기가 바닥을 기는 상황였는 지라 1.05%(720표)라는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혹독하게 패배를 겪는다.[4] 다른 전라도 지역이나 경상도 지역에서는 그나마 각각 한나라당이나 민주당계 후보들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민주정의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이 깃발을 꽂기 어렵다.

당시 이정현이 출마 원서를 냈을 때도 당에서는 이정현이 나가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이 무렵 박근혜가 당 대표 시절이었는데, 이정현의 연설을 관청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다. 박근혜는 이정현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서 낙선을 위로했고 밥을 사겠다고 했고, 총선이 끝나고 한 달 뒤, 여의도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던 무렵인지라, 당 내에서는 어차피 후보를 내도 되지도 않는 호남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될만한 곳에 당의 지원과 유세를 총집중시키자는 얘기가 나돌던 때였다. 이정현은 당 대표인 박근혜를 만난 자리에서 작심하고 "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 주십시오." 라면서 열변을 토했는데, 박근혜가 "어쩜 그리 말씀을 잘하세요?" 라고 하면서 그를 마음에 들어했고 곧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제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여 대변인과 특보를 지냈다. 소위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가 패하고 난 뒤, 많은 이들이 박근혜의 곁을 떠났지만 이정현은 계파를 바꾸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으로부터 선대위 고위직을, 김문수 경기지사 측으로부터 경기도 정무부지사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모두 고사했다. 심지어 박근혜가 이정현에게 경기도 정무부지사직은 수락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런 얘기를 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18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후보 22번으로 공천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가 평의원이던 시절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복심',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까지도 친박 타이틀을 유지한 채 박근혜의 측근으로 지내는 중이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 다시 출마했다. 비록 또 다시 낙선했지만, 39.7%라는 고무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일명 '총선 스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비슷한 맥락으로 민주통합당[5] 신분으로 새누리당의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대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낙선한 김부겸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6]이후 청와대의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으로 근무하다가, 얼마 안 가 선거 출마를 위해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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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유세하는 모습. 왕의 남자? 사진 속에서 이정현이 입은 복장은 폐백 옷이라고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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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시민 여러분! 저 이정현 손 한 번만 잡아주십시오!
7.30 재보선 당시 이정현식 스킨십을 대표한 자전거 유세
참고로 이 때는 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비를 맞아가며 자전거를 타고 유세하고 있는 것이다.


7.30 재보선 전라남도 순천시,곡성군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에서 발언 장면

선거가 진행되는 중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을 고려하여 중앙당 차원의 지원사격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자전거로 시내를 누비는 소탈한 컨셉으로 바꿨다. 위에 있는 광주 서구 을 선거유세 당시와의 차이점에 주목.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의 서갑원[8]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고향인 곡성군에서는 70%의 몰표를 얻고[9] 순천시에서도 선전하면서 본인으로선 4번의 선거 끝에 당선되었고,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계열 소속의 첫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 와중에 언론에서는 '박빙의 승부', '지역주의를 타파할 것인가?'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서갑원 개인 차원의 역량 논란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으로 인해 지역의 민심은 애초부터 이정현에게 기울고 있던 참이었다. 지역 사정을 잘 알지 못한채 '전남에서 새누리당이 당선'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한 나머지 전국 언론과 지역 여론에 괴리감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정작 지역 주민은 예상보다 적은 표차에 더 놀랐을 정도.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보궐선거순천시/정치 항목 참조.

과연 이정현 의원의 당선이 정당 지역주의 타파인가 하는 점에 대해선 논란이 조금 있다. 이정현은 정당 대결이 아닌 지역인재론+고향인물로 경쟁하여 당선된 것이기에 이것을 지역주의 타파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당장 소개에 적혀있지만 한 선거구인 곡성군 목사동면이 고향이고, 여기는 순천시 주암면이 코앞인 곳이다. 이와 함께 선거구 당시 지역선거 유세 사진을 보면 다른 선거와는 달리 새누리당이란 당명은 구석에 작게 써놓고 빨간 배경에 이정현이라고 큼직하게 새겨놓기도 했었다. 바로 2014년 재보궐선거 당시 사진처럼 자신의 홍보 조끼의 구성을 보면 빨간색 조끼에 하얀색으로 이름 이정현만 큼직하게 붙이고 선거유세를 했다. 이를 고려하면 2014년 당시 선거구도는 곡성군 목사동면 출신의 이정현 개인 VS 새정치민주연합 구도였기 때문에 이것을 지역주의 타파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 존재한다. 즉, 이정현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지역의 정치색이 변한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이정현 의원이 순천과 곡성에서 선거유세를 할 당시 새누리당 중앙당과 당시 김무성 신임 대표의 지원을 거듭 거절했다.(이는 20대 총선 때의 김부겸도 마찬가지) 당연한 말이지만 이정현 개인으로 지지세를 잘 잡았다가 전남 동부권에서 반 새누리당 분위기가 가장 결집된 곳에서 새누리당이 더 커다랗게 강조되면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형국이 될 수 있었기에, 당시 새누리당을 숨기고 이정현 개인을 내세운 것이 좋은 선택이였다고 선거 후 정계분석에서 평가한 반응이 꽤 많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뿌리내린 정당색 지역주의가 쉽게 타파되기는 어려운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여러 번의 도전으로 이러한 결과를 냈다는 것은 어쨋든 지역주의를 약화시켰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게 보는 견해가 중론이다. 애당초 완전한 무연고에 반지지정당이 뽑히는 것은 특히 지역색이 강하고 각 당 텃밭의 성지로 볼 수 있는 전라도와 TK에서는 사실 0%에 가깝다. 비슷한 포지션으로, 민주당 출신으로 대구에 계속 도전중인 김부겸 의원도 고향은 TK니까 지지율을 높게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받는거지, 다른 지역 출신이라면 장담을 하기 어렵다. 애당초 고향에 출마해도 반지지정당이면 거의 안뽑히는게 현실이고 물론 지역주의가 더욱 해소된다면 고향 관계 없이 반 지지정당도 인물론으로 뽑힐 기반이 생기겠지만, 첫 술에는 배부를 수 없다. 조금씩 나아질 수 밖에 없다는 걸 고려하면 이러한 도전이 점점 지역을 불문하고 열매를 맺을수록 우리나라 정치에 분명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한계점으로 이정현 의원에게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고, 5.18 민주화운동 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고 국회의원이 된 이정현 국회의원은 14년 8월 11일 당시 선거 이전에 당 대표였던 김무성이 당선되면 업혀드린다라고 말해서 당 최고회의에서 약속대로 업혀드렸다. 그런데 표정이 가관이다.... 그 후에 익살스러운 표정은 이정현을 까고 박근혜의 연인(...)등 좋은 패러디 요소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

2.3 3선 성공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된 것을 계기로 본인은 다음 총선에서도 출마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비록 공약은 전반적으로 지키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지만[10], 성실한 지역관리와 2014년을 기점으로 호남에 퍼져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나름 건재한 지지율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여론조사에서 세 명의 예비후보들과 1:1로 맞붙었을 때, 오차범위 이상으로 앞설 정도로 꽤나 강세를 보이는 중. 새정치민주연합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노관규순천시장이 공천되었다.

하지만 이와 함께 큰 변수가 생겼는데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의 개편여부다. 자세한 내용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선거구 획정에서 전라남도 문서와 순천시/정치 참조. 헌법재판소 판결로 인해 선거구 분할 기준선이 바뀌어서 순천시-곡성군 선거구가 인구를 초과하여 선거구 변동 대상지역이 되었다. 순천시를 따로 독립하고 곡성군을 다른 지역과 묶는 방안과 자치시/군의 경계를 만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예외로 하여 순천-곡성을 묶은 채 갑과 을로 2명을 선출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중이다. 후자의 경우 순천시 신도심에 속하는 왕조1동/2동+덕연동+해룡면(금당지구+신대지구)을 강력한 진출기반으로 삼은 야권 후보와 구도심-농어촌-곡성군에서 유력한 이정현이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지만, 전자의 경우는 이정현의 선거구 여부가 다소 묘연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관측에서는 순천시의 선거구가 1개로 된다 하더라도 이정현 의원이 순천시에 출마해서 승산이 있도록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곡성군 목사동면이 도농통합 이전에는 승주군 생활권이였다는 점도 작용하고, 순천지역 농어촌과 구도심 지역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20대 총선 순천, 곡성 지역 여론조사 결과는 이정현 후보가 상대적으로 앞서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20대 총선의 선거구 분구로 곡성군광양시, 구례군과 묶이게 되었다. 외지인구 유입이 많은 광양시는 새누리당 지지율도 상대적으로 높고 순천과 곡성의 영향을 받은 구례군에서도 이정현의 지지율이 꽤 높은 편이라서 유리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었다. 하지만 곡성 쪽 몰표는 기대하기 어려운 대신 순천에서도 지지율 관리를 꽤 한 만큼 순천시로 나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1:1 구도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후보와 3자 구도에서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의 경선이 끝나고 후보가 확정된 시점에서는 여론조사에서 3자 대결에도 불구하고 1위 노관규에게 8% 뒤지는 표차를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다만 19대 총선에서만 봐도 노관규 후보가 초반 여론조사는 박빙 내지 우세로 출발했던 것과 달리 실제 결과는 통합진보당 김선동의 압승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뚜껑을 열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순천시의 복잡한 최근 정세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사실 여론조사 결과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유권자들이 보통 선거 2~3일 전에 결정하기 때문이다. 숨은 표심이 절대 반영이 안 되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표심을 정하는 게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부동층이 무서운 변수인 이유다.

결국 2016년 4월 13일에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순천시 선거구에 당선되며,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보수정당 소속 정치인으로서는 최초로 호남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2선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대 총선에서 텃밭이 제대로 털린 새누리당에게는 전주시 을선거구에서 당선된 정운천과 함께 그나마 위안.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던 건 보궐 선거 당선 이래로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사는 물론 설명회를 열고는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접수, 직접 수첩에 받아적어서 이를 해결해줬을 뿐만 아니라 주말이면 마을회관에서 파전과 막걸리 파티를 하고 심지어는 마을회관에서 숙박까지 하는 등, 주민밀착 스킨쉽예산증액 공약[11]덕분이었다고 한다. 한 여름에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선거 후에도 새누리당의 당권을 두고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호남의 유일한 새누리당 재선 의원이란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로서[12] 지독한 친박-비박 계파 갈등이 일어난 새누리당 내에서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기 때문. 예상대로 탈당한 유승민 및 당내외의 비박계 인사에 대해 매우 강경한 발언들을 내며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2.3.1 새누리당 대표 선출

2016년 7월 새누리당대표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8월 9일 전당대회에서 당초 주호영 비박단일후보와 접전을 벌일 것이다는 예상과 달리, 꽤 큰 표차로 승리하며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의 당 대표 선출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최초의 당직자 출신 정당 대표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같은 인생승리+친박이란 딱지를 갖고도 많은 이에게 호평받던 그의 커리어가 여기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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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영상 : [TV조선] [네이버 뉴스])

대표 선출 후 9월 6일 파주시의 제1포병여단[13] 산하 대대를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이 방문은 '민폐'라고 논란을 낳았는데[#], 사병들부터 시작해서 간부들까지 높으신 분 온다고 온갖 준비를 다해야 하므로, 그에 따르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정현 본인이 장병들을 다 내 아들뻘이야라며 격려한 걸 생각하면...... 특히 육군을 현역으로 만기전역한 이정현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 참고로 같이 만기제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군부대에 자주 가는 것은 사병들에게 민폐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대표활동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여파로 친박의 당내 퇴진론이 당내외에서 비상하고 당이 분당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오자 여러번 대표직 사퇴 의사를 말하다가 12월 15일 친박 의원인 조원진 최고의원이 지도부 동반 사퇴 의사를 외부에 표명한 것을 보아, 곧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16일 당 대표직을 최고위원들과 함께 사퇴했다.


2.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결국 터질 게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인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비리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JTBC에 의해 밝혀진 것. 민심은 완전히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정현은 친박의 수장답게 박근혜 대통령을 계속 두둔해왔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에 야당이 주장했던 2선 후퇴 및 거국중립내각에 관하여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였다면 최소한 탄핵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14] 하지만 그는 골수 친박의 의견만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고[#]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향하게 하였다. 어찌보면 박근혜 탄핵의 숨은 조력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결국 탄핵이 가결될 경우 손에 장을 지진다는 배수진을 치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가결되었다. 당연히 여론은 '빨리 장을 지져라'는 반응을 보내고 있다. 탄핵 소추 투표 결과를 보면 총 300명 의원중 234명이 찬성했는데, 야당 의원 전부가 탄핵에 찬성했다 가정해도, 새누리당 의원 수중 과반 이상이 탄핵에 찬성했는 결과가 나온다. 즉, 친박계 일부도 이미 등을 돌렸단 이야기. 친박의 수장인 이정현의 정치인생도 앞날도 이제 깜깜해졌다. 결국 비박계가 주도하는 비상시국회의에서 최순실 8적중 1명으로 지목되어 탈당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결국은 비박들이 먼저 뛰쳐 나갔다.

이정현은 당대표를 내려오고 인명진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하는 비대위 체제로 들어갔다. 그리고 인명진 목사는 인적청산이 필요하다며 1월 6일까지 친박 핵심의원은 자진 탈당을 요구하였다. 특별히 거론한 의원이 많지는 않지만, 저 핵심 멤버에 이정현 전 대표가 들어가는 것은 자명하다.

[2017년에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 자신의 탈당으로 친박 탈당 요구를 멈춰줬으면 하다고 했는데 여러 행보들로 이정현이 친박의 대명사가 되긴 했으나 이정현은 친박에서 비주류로 이정현이 책임을 떠안고 탈당한 것 아니냔 의견이 있다. 서청원이나 최경환 같은 친박 핵심 세력은 탈당을 거부했다. 실질적으로 탈당한 친박 의원은 이정현 외에 친박 핵심도 아닌 정갑윤뿐.

다른 핵심 친박과는 달리 탈당을 수락한 것은 이정현이 새누리당에서 무소속이 되더라도 가장 경쟁력 있는 의원이란 점이 작용한 듯 하다. 지역구인 순천에서 새누리당 간판은 없는 것이 더 당선 가능성 높기 때문.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새누리당보다 더 비토 가능성이 높은 친박이란 간판을 가지게 됐는데 과연 또 당선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최악의 사건에서도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여당 대표로써 오직 박근혜 바라기 모습만 보였기에 재기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정현이 호남에서 당선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유세할 때 새누리당의 색깔을 최대한 지웠기 때문이다.[15]

탈당 이후에는 갑자기 뜸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소속 정치인으로서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전까지는 박근혜의 최측근으로서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이 탈당하자마자 언론 노출이 갑자기 뜸해진 부분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 골수 친박들이 늘상 참여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고, 탄핵 인용 후에도 부친상을 이유로 친박들이 포진하고 있는 사저에도 찾아가지 않으면서 박사모 등 박근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정현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으며 심지어 좌파 진영에서 심어놓은 프락치가 아니었냐는 음모론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이정현은 철저하게 박근혜 한명에게만 충성하는 심하게 말하면 박근혜의 정치적 애완견이나 다름없는 정치로 친박진영에 있었기 때문에 당대표라는 중책을 맡았을때도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의 친박 실세들에게 근본없다는 이유로 까였으며[16] 처음부터 친박이 인적쇄신이라는 칼을 든다면 제일 먼저 정리 가능하면서 친박 세력에는 전혀 피해가 없는 총알받이의 운명이었다. 출당 이후의 이정현은 심하게 말해 정치적 유기견이나 다름없는 상태. 지역구 내 여론은 박근혜정권의 A급 부역자로 찍힌데다 당에서 버림 받았기 때문에 현 상태로는 정치적 재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3 논란 및 비판사항


4 선거 이력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5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시의회 광산구 제2선거구)민주자유당2,686 (10.05%)낙선 (2위)[17]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서구 을)한나라당720 (1.03%)낙선 (5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한나라당6,421,727 (37.48%)당선 (22번)[18]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서구 을)새누리당28,314 (39.70%)낙선 (2위)
2014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곡성)새누리당60,815 (49.43%)당선 (1위)[19]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순천)새누리당66,981 (44.54%)당선 (1위)


5 기타

  •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시대에도 2G폰을 계속 쓰면서 휴대전화를 처음 개통했을 때의 [018 번호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 인맥 관리 차원에서 과거 번호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는데, 실제로 2G폰이 도청, 감청이나 해킹당할 위험이 낮아 정치인을 비롯한 국가 고위 관리직 종사자나 일부 경찰들도 2G폰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전화번호 자체가 인터넷에 노출된다면 다 의미 없다. 충성문자 사건 때문에 결국 전화번호를 바꿨다. 단, 기존에도 스마트폰을 쓰던 과거 기사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2G폰만 썼던 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바쁘고 연락하거나 올 곳이 많은 날이 자주 있는 여건상, 일반적으로 핸드폰을 목적에 따라 여러대 쓰는 경우가 꽤 있다.
  • 여담이지만, 그가 당 대표가 되고 삽질하기 전만 해도 이런 일이 터지기 전만 해도, 정계에선 인생의 승리자의 예시로 쓰일 만한 정치인으로 될 뻔 했다. 노력이란 개념을 초월한 도전정신도 그렇고, 호남 출신의 영남+보수 기반 정당의 당 대표라는 점도 그렇고... 고연령층 중에선 이런 사태가 일어나자 그에 대해 인간적인 동정을 느끼는 사람도 소수지만 있다. 단순히 그가 그녀를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그의 인생의 도전이 정말 큰 뜻이 있는게 아니라 사심 가득한 야망이었던건지는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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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년 1월 2일 탈당을 선언하였으나, 당에서 보류하였다가 1월 16일 수락되었다.
  2. 곡성군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곡성은 옆의 구례군과 함께 전남에서도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3. 만약 육사 진학에 성공했다면 육사 37기, 즉 박지만, 김영식, 박찬주, 엄기학, 이재수, 전인범 등과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4. 왜인지 언론에서는 0.65%로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투표하지 않은 전체 유권자들까지 합친 수치로써. 투표를 한 유권자들로 한정하면 1.05%가 맞다.
  5. 현.더불어민주당
  6. 이 둘은 20대 총선에서 각각 대구, 순천에서 당선되었다.
  7. 근데 저것이 폐백 옷이라면 고증오류인 게, 폐백 때는 신하가 입던 복장을 입는데, 사진과 같은 용무늬 흉배익선관은 신하가 아닌 왕의 복식이다.
  8. 순천시 출신으로 참여정부 당시 민주당 원내수석대표와 대통령 비서를 지내어 소위 친노 실세로 불려지던 인물이었다. 순천시 지역구(곡성군과 지역구가 합해지기 전)로 2선 국회의원을 먼저 지냈으나, 노관규 순천시장에 대해 2010년 지방선거의 예비경선 때부터 갈등을 심하게 일으켰고 노관규 당시 시장이 추진하는 사업의 예산확보에 좋게 표현하면 미온적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훼방(...)을 자주 놓았다. 그러다가 박연차 게이트로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쓰여진 대로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탈환(?)을 노렸으나, 이전까지의 모습을 지켜 본 순천 시민들의 싸늘한 분위기에 이정현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역색은 숨길 수 없었는지 참패할 것만 같은 여론임에도 40%대의 득표율을 얻긴 했다 지역에서의 여론도 좋지 않고 유리한 여건임에도 낙선하여 앞으로 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9. 특히 고향인 목사동면에서는 83%라는 득표율을 얻었다.
  10. 대표적인 것이 순천과 곡성에 대한 예산폭탄과 순천대학교 의대 유치 확정을 이끌어내겠다는 공약인데, 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는 편이다.
  11. [실제로 지역에 대한 정부의 예산이 상당히 증액되었다.], [김광진조차도 스스로 이기기 어렵다고 인정했을 정도]
  12. 친박계가 치명타를 입은 선거였지만,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온 이정현은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었다. 사실상 이번 총선의 친박계의 유일한 승리자.
  13. 본인이 3년간 복무한 부대라고 한다. 그래도 다른 국개들과는 달리 군대 갔다온건 다행이다
  14. 하지만 박근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무시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설령 이정현이 직언을 했다라도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15. 이번 정국에서 가장 악명존재감을 어필한 두 명의 의원 중 한명이다. 다른 한 분은 이분
  16. 실제로 당 대표 시절에 당내 3선 이상 의원들과의 간담회를 마련했으나, 안상수 의원 단 1명만 참석하는 굴욕을 당했다. 비박은 물론 같은 친박마저 이정현을 무시했던 셈. 안상수는 친이계지만 당내에선 중도로 통한다고 한다.
  17. 당시 당선된 민주당 전갑길 후보가 89.94%를 얻었다(...).
  18. 비례대표 당선자 마지막 번호였다.
  19. 전임자인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총포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