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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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팀보다도 돈 없고[1] [2] 문제많던 구단을 AFC 챔피언스 리그 챔피언과 리그 4회 우승의 명문으로 도약하게 한, 그라운드 바깥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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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하, 단알하

장님, 장님이 다 아서 잘 시겠지!

대한민국의 전문 경영인. 전북 현대 모터스 단장으로 현대자동차의 직급은 전무이사.

1 소개

출생 : 1953년 (경기도)

경력

  • 1982년 : 현대자동차 공채 입사
  • 1995년 ~ 1998년 : 울산 현대 사무국장
  • 2003년 ~ 2005년 : 전북 현대 사무국장
  • 2005년 ~ 현재 : 전북 현대 단장
  • 2009년 : 현대자동차 이사
  • 2011년 : 현대자동차 상무이사
  • 2014년 : 현대자동차 전무이사

일선 지점장 시절에 이미, 앞선 지점장들의 무덤이자 본사 차원에서도 포기했던 서울 모 지역의 판매실적을 전국 1위권으로 올려놓은 먼치킨 전적을 갖고 있다. 울산 현대 사무국장 시절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한 아프리카 친선활동이 현대차 매출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2003년부터 전북과 인연을 맺는다.

2 단장 시절

매년 구단 사무실과 서울 양재동 본사를 직접 오가는 운전거리 8만 km

2005년 최강희 감독을 영입하여 전임 조윤환 감독을 따라 입단했던 부천파와 비부천파 선수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한다.

기적과도 같은 2006년 ACL 우승을 자력으로 이뤄낸 뒤, 국내 축구단으로도 충분한 홍보효과를 거두는데 놀란 본사[3]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본격적으로 지원을 받아내며 팀을 성장시킨다. 전북에 대한 구단주느님과 본사의 전폭적인 투자는 강팀으로 도약해야 하는 필요성과 부족한 여건, 본사에 더 크게 공헌할 부분 등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만들어낸 이철근 단장과 프론트,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 더 나아가 전북 지지자들이 한 몸으로 이루어낸 결실인 것이다. 시간이 오래되면서 맨시티처럼 물주의 간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게 안타까울 지경.

현대차 전주공장에 신세지고 있던 인프라 환경 역시 개선되기 시작하는데, 훈련장은 아챔우승 이후 4계절 전용잔디로 거듭났으며 숙소는 2009년 리그 첫 우승 이후 300억이 투자된 월드 클래스의 클럽 하우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2011년부터 4년간 현대차 새 공장이 지어지는 브라질에서 겨울 전지훈련을 가졌으며 이 과정에서 팀훈련 + 용병자원 탐색 + 현지 축구마케팅을 통한 본사공헌 3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된다. 2010년 3%대이던 현대차의 브라질 시장 점유율은 최근 7%로 올랐다고 한다. 2015년 봄에는 같은 취지에서 장소를 중동권으로 돌려 기름쟁이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축구본토인 유럽에서의 활동도 결실을 맺어, 스폰서를 통해 자매구단이 된 올림피크 리옹과 전북의 경기가 유럽에 생중계되며 주한 프랑스대사가 전주성을 찾기에 이르렀다.

중국 슈퍼 리그의 도약과 함께 K리그 전체가 셀링 리그로 전락할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 전북이 대한민국과 K리그의 리딩 구단 역할을 해내는데 큰 공로를 세우고 있다. 연맹 등에 납치되시면 안되는데 이 덕분에 2015 시즌 전북은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 구단들을 제치고 시즌 내내 평균관중 1위를 다투는 위업을 달성 중이다.

3 전북 현대의 미래 청사진

전력급 유스 120명대, 보급형 유스는 도내 전역으로

평균관중 4만 시대, 아시아급 구단 도약으로 흑자내고 자생하는 구단으로

2013년 발표한 2020 비전을 착실히 시행 중이다. 팀의 운명이 바뀐 지난 10년에 이어, 2020 비전의 성공을 통해 K리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구단으로 도약하는 전북 현대를 기대해보자.
  1. 애당초 전북 현대 모터스의 창단은 정몽준 회장 등 축협을 이끌고 있던 현대가에서 떠맡은 사안에 가까웠다. K리그 차원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전북 버팔로의 도산과 이에 따른 전무후무한 연맹직영(일반기업으로 치면 법정관리) 상황에서, 모처럼 생겨난 리그 제7구단이자 유일한 호남연고 구단을 없애버릴 수 없다는 당위론이 여론의 대세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철근-최강희 체제 이전의 전북은 가끔 중위권과 FA컵에서 사고만 쳤을 뿐, 쉽게 말해 대우 로얄즈 시절이 무색한 지금의 부산 아이파크보다 많은 면에서 더 열악했다고 보면 된다. 왕자의 난 이전 구 현대그룹의 역량이 울산 현대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더 분명해진다.
  2. 같은 호남 연고팀이지만, 늦은 창단과 상징성 그리고 역대성적 정도만 뒤쳐질뿐 포항 스틸러스와 엄연히 포스코의 동등한 가족인 전남 드래곤즈와 넘사벽의 신세였던 셈. 이 덕분인지 MGB는 한동안 모 시민구단들과 함께 K리그 최고 강성 서포터로 유명했었지(...)
  3. 해당 항목에도 있지만, 초기의 아챔은 일본이 아예 개최권을 사기도 했고 06년 대회의 주요 스폰서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