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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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華龍
(1914 ~ 1984)

1 일생

평양 출신으로 박치기왕, 검은 신사, 명동의 황제등의 별명으로 알려진 조직폭력배로 해방 이후 월남하였다.

이후 서북청년단 대동강동지회의 특공대장으로 좌익계열을 습격하는 등 백색테러리스트로 활동했다. 제주 4.3 사태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6.25 전쟁 이후 이기붕이 자유당 당원 제의를 했지만 이를 거절하였으며, 황금마차 습격사건 등으로 이정재와 대립하다가 1958년 충정로 도끼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면서 사실상 조직폭력계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영화사업에 투신했다. 여타 영화 산업에 뛰어든 조폭들과는 달리 예술적인 안목이 있었는지 진짜 '작품' 소리를 듣는 작품들도 여럿 제작했다. 이화룡이 제작한 거물급 작품으로는 소위 1대 장희빈으로 불리는 김지미 주연의 1961년작 장희빈, 한국 영화의 걸작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마부[1], 그 이만희 감독의 데뷔작인 주마등 등이 있다. 하지만 이화룡이 설립한 화성영화사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불과 8년만 존속했으며, 이후에는 공식적인 영화 제작 활동은 알려진 바 없다. 비록 조폭 출신이지만 영화 제작자로서는 유능하고 개념이 있는 인물이었기에[2] 한국영화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

5.16군사정변 직후 사회정화 구실로구악을 일소하고 잡혀가 2차례나 옥고를 치르기도.

1984년 2월 24일, 고혈압으로 사망, 묘소는 경기도 하남시(구 광주군 서부면)에 있다.

2 대중매체에서의 이화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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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KBS 무풍지대와 1993년 MBC 제3공화국에서는 이름도 비슷한 배우 이해룡씨가 역을 맡았다. 이화룡 역을 가장 많이 연기했을 뿐더러 이화룡과 상당히 많이 닮았다.그러니까 많이 연기하지

2.1 명동백작의 이화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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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최상훈. 명동의 황제라는 별명을 바탕으로 명동의 문학가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문학가들을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들로부터 명동의 문학가들을 지켜주는 조력자 캐릭터로 나온다.

2.2 야인시대의 이화룡

안승훈이 연기했다. 상세한 것은 이화룡(야인시대) 항목 참조.
  1.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작품. 사실상 한국 영화가 세계구급 유명 영화제에서 제대로 된 상을 탄 첫번째 케이스로 꼽힌다.
  2. 당시 화성영화사는 박서방, 마부, 임자 없는 나룻배 등 6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작들이 쏟아져 나온 당대의 명문 영화사였다. 또 조폭들이 흔히 제작하는 조폭미화물도 화성영화사에서는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