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호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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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촬영

홈페이지

1 개요

仁川都護府廳舍
Incheon Dohobu[1] Office
사실 인천도호부 청사라는 표현보다는 인천도호부 관아라는 표현이 한국의 전통에 더 부합된다.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에 있는 유형문화재. 관교동 편입이 시급합니다.[2][3] 도호부청사 바로 옆에 인천향교가 있으며, 길 바로 건너편에 문학 야구장이 있다.

2 역사

1413년 인주군이 인천군으로 개칭되었고 1460년에 인천도호부 청사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인천도호부의 관할구역에 대해서는 인천광역시/역사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근대(개항) 이전까지의 '원인천'은 제물포 일대가 아니라 도호부청사가 위치한 문학동(관교동)이다.[4]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 문학산에 비류때 쌓아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문학산성이 있으니, 관교동 일대는 미추홀 시절부터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셈.

조선당시 행정구역 체계는 도 밑에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이 있었고, 도호부는 중앙에서 파견된 도호부사 아래에 이, 호, 예, 병, 형, 공방의 6방을 두어 사무을 분담케하였다. 건물 구성으로는 객사, 아문, 동헌, 중문, 공수, 삼문, 사주문이 있다.

3 복원

현재 문학구장 건너편에 있는 것은 원래의 건물이 아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사료를 토대로 2001년에 복원한 건물이다.[5] 원래 위치인 문학초등학교 자리로 복원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별도의 부지를 복원 부지로 마련하였다. 원래의 건물 두 채는 문학초등학교에 있다.

4 행사

문화체험 등 여러가지 행사가 펼치고 있고, 특히 인천지역 초중고생의 소풍(체험학습) 장소가 되기도 한다.[6]

5 교통

문학구장 바로 건너편에 있으니 문학구장 교통편을 따르면 된다. 아니면 다리품을 팔아야하겠지만 남인천여중 앞 정류장에 내려서 관교중 앞을 거쳐서 가는 방법도 있다. 참고로 인천향교 아래 쪽에 주차장이 있다.

111-2 버스를 타면 수인선 인하대역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6 문학초등학교에 있는 원래 건물 두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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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원래 건물 두 채는 인천문학초등학교에 있는데, 객사의 일부는 146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동헌은 19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건물들이 헐리게 되었고 1950년에 도호부 청사 자리에 문학초등학교가 세워지면서 지금 남아있는 동헌, 객사 건물의 위치가 이전되었다.

이 건물은 1914년 부군현 통폐합 이후로 부천군청, 인천시 문학출장소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1. 이 도호부라는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기가 상당히 난감하다. 일단 대강 metropolitan county나 metropolitan prefecture 등으로 의역할 수 있겠지만 영문자료에서도 이런식의 표현은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의역하기에는 사실 인구가 많고 행정구역이 큰 군현만 도호부로 지정된 게 아니라 인구가 적고 면적이 좁은데도 군사적 요충지라는 이유때문에 도호부로 지정된 곳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 원래 그런 목적으로 도호부를 만든 것이기도 하고.(대표적으로 지금의 김포 지역인 통진군).
  2. 몇 년전까지만 해도 문학초에 있는 원래 건물 앞 안내판에는 문학동이 아닌 관교동이라고 표기되어있었다 (현재는 수정된 상황). 관교동이라는 명칭이 인천도호부 아와 인천향에서 유래된 것이라, 인천도호부 청사 복원 부지와 인천향교, 그리고 문학초 교정 중 원래 도호부청사 부지의 관교동 편입이 타당하긴 하다. 다만 남구측 질의 답변에 따르면 인천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는 문학동의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관교동 편입은 힘들다고 한다.
  3. 행정구역상 문학동에 있지만 편의상 관교동에 있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 사실 원래는 지금의 문학동 북부는 관교리(관교동)로 불렸었고 지금의 문학동 남부(문학산 및 문학구장)는 문학리(문학동)로 불렸다. 지금의 관교동은 예전의 관교리보다는 승기리 지역에 가까웠다.
  4. 다만 근대(개항) 이후부터는 제물포 일대가 시가지로 발전되면서 원인천이 되었다.
  5. 단순한 복원차원이 아니라 없어졌던 것을 아예 새로 만드는 식의 복원이다 (숭례문 복원의 경우처럼 기존의 자재의 일부라도 재활용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한성부, 시흥현 청사도 이런 식으로 복원해주면 안되나? 근데 KT 때문에 한성부 건물 복원은 안될거야 아마... 이 때문에 문학초에 있는 건물 2채와 달리 문학구장 건너편에 있는 건물들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지 않다.
  6. 부평, 계양지역에서는 학생들이 부평도호부청사에 탐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