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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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임재범(任宰範)
출생1962년(?) 10월 14일[1][2], 서울특별시
본관풍천 임씨
신체177cm, 78kg, O형
학력서울고등학교
데뷔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크게 라디오를 켜고'
가족아버지 임택근, 배우자 송남영, 이복동생 손지창
소속예당엔터테인먼트
종교개신교
홈페이지팬카페페이스북

1 개요

대한민국의 국보급 보컬리스트

대한민국의 R&B, 발라드, 가수이자, 한국 최초 헤비메탈 밴드의 1집 보컬.

1986년 서울고 동문인 신대철의 밴드 <시나위> 1집에 참여하여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면서 대중 음악계에 데뷔를 했다.[3] 참고로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탈 음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 스스로를 헤비메탈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맹수의 표효를 연상케 하는 가창력은 풍부한 성량과 두터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성량에 있어서는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넘사벽스러운 스탯을 보여주는데, 고음뿐만 아니라 중저음에서도 악기의 사운드 따위는 씹어먹어 버리는 데다가 야외 콘서트에서도 관중석을 압도해버리는 무시무시함, 거기에 허스키한 음색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파워가 전부 성량이다.[4] 파사지오 구간에 진입할수록 터져나오는 듯한 강렬한 고음역 성량도 백미.

임재범의 전성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은 아시아나 외인부대에서의 활약을 위시한 강력한 락보컬로써의 전성기. 이 당시의 임재범은 거칠고 강렬한 벨팅과 국내 가요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성량, 파워풀한 샤우팅을 기반으로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헤비한 메탈 록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괴물같은 보컬이었다. 특유의 낮은 톤으로 3옥타브 후반대를 발성하는 강력함과 폭발적인 스크래치를 보여주었으며, 한국 록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락커로써 평가된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성대에 팽팽한 내전율과 탄성력이 필요한 파사지오 구간에서의 음이탈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임재범에게 리즈시절의 락커 모습을 기대하는건 무리다.
그래서 임재범은 본격적인 감성보컬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고해>,<너를 위해>,<비상>을 비롯한 발라드 명곡을 잇달아 발표하며 파워풀한 로커에서 부드라운 발라더로써의 전환을 시도하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통해 감성보컬로써의 포텐을 제대로 터뜨렸다. 특유의 애절한 음색을 이용한 매력적인 중저음,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고음에 몇몇 사연이 만들어낸 불세출의 감성이 더해져 정상급 발라더로써의 면모도 제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이렇게 대중은 물론이고, 평단에게도 충분히 인정받는 보컬이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2006년 조선일보에서 김연우 등의 보컬 트레이너들에게 물어본 최고의 보컬리스트에서 조용필, 이승철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고[#], 음악 전문가 20인에게 질문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에서도 조용필, 이승철, 인순이에 이어서 4위[#]]를 차지 하는 등 한국의 국보급 보컬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또한 한밤의 TV 연예에서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김형석이 프로듀싱 도중에 녹음실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던 임재범을 두고 "가수 10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임재범의 반만큼만 노래할 줄 알면 좋겠다"는 평을 할 정도.[#]
근데 애초에 락보다는 소울이 임재범에게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런 평가를 한 이들은 바로 백두산의 유현상김도균.[5] 그리고 음악취향 Y에서 선정한 [Ballad Best 100]에서 "너를 위해"가 13위,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17위를 차지하고, 여기에는 선정되지 않았지만 "고해"나 "그대는 어디에" 같은 매력적인 발라드곡도 다수 보유한 뛰어난 발라드 가수이기도 하다. 또 "[백만번째 환생]"을 통해 보사노바 곡도 부르는 등 여러 장르를 섭렵하는 가수로 평가된다.

2 성격

나가수 출연 전까진 TV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공연과 음반활동 위주로 가수 생활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엔 활동 도중에 매니저조차 따돌리고 홀연히 잠적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송 펑크가 잦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최고의 주말예능 프로그램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도 펑크를 냈다고 한다.[6]

예측 불가능한 면모 때문에 같이 음악하는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는 경우도 많았고, 본인도 대인관계에서 많이 잘못을 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MBC 예능 '바람에 실려' 방송에서도 한 차례 잠적을 하였다. (다만 바람에 실려 이후 정말 진실된 모습으로 변신 아닌 변신을 하여, 팬들이나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는 조금씩 변해가는듯.)


3 디스코그래피

1980년대 후반 한국 Rock의 르네상스 시절 이후로 철저히 외면당한 국내 Rock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이다.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1세대 메탈 보컬 한국 Rock의 사관학교 시나위의 1집 보컬로 활동하며, 한국 최초 헤비메탈 앨범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요 활동은 임재범/디스코그래피 문서를 참고할 것.


3.1 듀엣곡

임재범의 정규앨범은 6집까지밖에 없으나, 유난히도 듀엣곡이 많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With 박정현), 재회(With 박진영),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With 서영은), 겨울이 오면(With Tei), 사랑에 아파한 날들(With 윤하) 등등.

특히 유명한 것은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 특이하게도 이 곡은 보통의 남녀 듀엣과는 달리 남자 보컬이 원음을 부르고 여자 보컬이 화음을 쌓는다. 몇몇 부분에서는[7] 남자 보컬이 여자 보컬보다 높은 음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커버할 때 여자보컬들은 편하게 부르지만 남자보컬들은 힘겹게 성공하거나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실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애초에 듀엣곡으로 기획된 곡이 아니기 때문. 임재범이 2집에서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고, 박정현이 후에 자신의 파트를 따로 녹음해서 하나로 합친 것이다. 원래 임재범의 음역대에 맞춘 곡이다보니 남자들에게는 힘들고 여자들에게는 편한 것. [8]

2015년 9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태연과 듀엣곡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대중들의 평은 임재범과 태연이 옛날부터 훌륭한 보컬이어서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2009년 눈의 꽃 사건때문에 염려스럽다는 이야기도 있다.


4 근황

임재범이 다시 재조명받게 된 계기가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사실 아내가 암투병 중임에도 폐인생활 덕에 저작권료 외 마땅한 수입이 없었던 그에게 나가수 출연 제안이 왔고 끝판대장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여[9] 대표곡인 '너를 위해'를 열창. 선호도 경연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약간 음정이 어긋난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기술보다 감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청자들의 눈에서 눈물까지 뽑아냈다. 즉 전성기는 이번 공연보다 더 대단하다는 사실. 꼭 전성기 시절 '너를 위해'를 들어보자. 정말 죽여준다.[10]

무대 전 인터뷰에서 "내가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매니아 수준의 가수라고 생각한다"는 망언(…)이나 꼴등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본다는 등 의외로 예능성 멘트도 날려 토크에서도 빛을 냈다. 윤도현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대선배님이시고 카리스마가 넘쳐서 만나기 전부터 두근두근했었는데 의외로 이야기해보니 너무 편안하고 재미있는 아줌마 스타일이라고. 임재범 역시 윤도현과는 공통스런 장르에 종사했다는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여 처음 만났을 때도 주먹을 맞부딪히며 Rock & Roll Baby! 라고 외치기도 했다.[11] 윤도현의 트위터(@ybrocks)에는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윤도현 갤러리에서는 임재범을 임대디(아빠...), 윤도현을 윤베베(...)로 부른다.

경연 1차전에서는 남진의 트로트곡 빈잔을 편곡해 들고나왔다. 장르적으로 보면 한국 전통 사운드에 하드락을 결합한 형태로 마치 시나위나 아시아나 시절에 보여주던 음악을 연상시켰다.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인 장기호 교수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 하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결과는 생각보다 낮았던 4위. 하드했던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컨디션도 최악이었던지라 보컬 운영에서 아쉬운 점이 있던 것은 사실이나 특유의 카리스마와 놀라운 편곡은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젊은 층 가수나 아이돌 천하나 다름없는 KBS 뮤직뱅크에서 4집 앨범의 타이틀 곡 '너를 위해'가 발표 11년만에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상대는 박재범. 범의 전쟁 디지털 음원, 방송 횟수, 시청자 선호도에서 임재범이 박재범을 앞섰으나, 음반판매량에서 박재범이 앞서서 결국 박재범이 1위를 차지했다.

5월 16일에 맹장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흘이면 퇴원할 수는 있지만 당분간 노래는 자제하라는 의사의 당부 때문에 나가수 제작진과 향후 출연을 논의하겠다고 했고 결국 23일 녹화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0일, 드라마 시티헌터의 OST곡인 "사랑"이 공개되었다. 임재범 특유의 감성에 순식간에 멜론 실시간 차트 3위를 기록중. 그리고 5월 21일 1위로 올라섰다. 도시락, 엠넷닷컴, 벅스뮤직, 소리바다, 싸이월드 등 다른 음원사이트에서도 실시간 1위 기록 중, 본방이 시작하기도 전에 OST가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OST가 시청률 올릴 기세

나는 가수다 23일 녹화에는 참여했지만 결국 건강 상 노래를 부를 순 없었고, 최종적으로 하차를 결정했다고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 하차 후에는 건강을 추스리며 콘서트 준비에 들어간다고.[#]

5월 22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 최종경연에서는 다시 한번 최종보스 모드로 각성, 거기다 경연 순서도 7번째라는 이점과 1차 경연보다 나아진 목상태로 완벽히 편곡한 여러분을 선사했다. 청중단은 기립박수 및 눈물바다. 과장 좀 보태서 임재범도 울고, 동료가수들도 울고, 청중 평가단도 울고, 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자문 평가단의 평가 역시 극찬 일색. 이후 원곡자인 윤복희는 "임재범은 내가 왜 이 가사를 썼는지 정확히 알고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감상평을 남겼고, 작곡가 윤항기 목사 또한 "내가 남자라 그런지는 몰라도 윤복희가 부른 원곡보다 훌륭하다"며 언플극찬했다.

임재범 역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대신 불러준 것이라 스스로 겸손해 했지만 각설하고 2차 경연 순위는 무려 28.9%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8.9%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계산을 하면 이는 청중평가단 500명이 각각 3표씩을 행사해 나온 총 1500표 중에서 433표(28.8666…)에 해당하는 것으로, 청중평가단 전체의 86.6%가 임재범을 선택했다는 의미.

참고로 이날의 경연은 다른날도 아닌 522대첩이었다.

사실,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전성기적의 보컬 운용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고 이들의 비판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죽은 듯이 살았다고 회고하는 것처럼 목관리 안한 티도 좀 나고(...)[12] 나이도 분명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는 기술이 아닌 감성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아님 맹장 때문이거나 사실 본좌급 치곤 임재범의 라이브 기복은 컨디션에 따라 상당히 들쑥날쑥하는 편이긴 하다.

이런 가운데 나가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각종 루머에 휩싸이게 되었고 루머를 제작진에서 부인한 후엔 뜬금없이 몇몇 매체에서 임재범의 난동설을 풀기 시작했다(...) 5월 23일 녹화에서 임재범이 하차인사를 길게하다가 이소라와 언쟁을 벌여서 결국 이소라가 충격을 받고 진행을 못해 윤도현이 대신 사회를 봐야 했고 임재범은 의자를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라는 게 난동설을 푼 몇몇 매체의 기사. 윤도현은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오늘은 내가 사회본다라고 했다. 방송용으로 편집된 영상만을 실제 사실인 것처럼 믿는 이도 있으나 임재범 측은 실제로 다툼이 있던 것은 사실이고, 다만 난동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표현이라고 밝혔다.

2011년 5월 31일 자신의 팬카페에 심신과 영혼이 지쳐 영국으로 떠난다라는 글을 올리고 돌연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가수다로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어난 엄청난 관심과 부담에 본인이 지친 듯. 6월 11일에 있을 돔아트홀 공연 연습을 위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돔아트홀 공연이 취소되면서 또 도마에 올랐다. 임재범이 영국으로 멋대로 떠나버려서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썰을 퍼트렸지만 공연 기획사에서는 회사 내부사정으로 취소되었다고 해명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한 임재범의 인생(...)

그런 가운데 최대 음반사로 꼽히는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하광훈이 예당과 계약했던 걸로 볼때 하광훈의 연결이 있었던 듯.


카페라떼 CF도 찍었다.정작 카페라떼 생각은 안나고 노래만 귀에 감기는게 함정

2015년 11월 29일에 히든싱어로 4년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중간중간에 아재개그도 터트려주고, 예능감을 멋지게 드러냈다. 우승한건 덤. 히든싱어에 나와서 잃어버린 초심을 다시 찾은듯한 기분이라며 흡족해 하였고, 참가한 모창능력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후배들이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나 모창 대상가수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가수답게 모창능력자들도 후덜덜한 실력들을 선보였으며, 20분이나 연장된 방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날 방송 시청률은 6.838%를 기록하였다. 이는 '히든싱어 4' 방송분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을 뿐 아니라 동 시간대 지상파와 종편의 다른 프로그램 시청률을 넘긴 수치였다.

12월 5일부터 30주년 전국 순회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5 나치 복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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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실황을 담은 영상.]

2011년 6월 26일 콘서트에서 나치스 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13] 이후 [나치식 경례]를 2회 관객들에게 한 이후, 관객 중 일부가 히틀러를 연호하자 "Don't say Hitler, He's dead"이라고 멘트하고, 이어 입었던 제복을 벗으며 "Heil Freedom"이라고 말한 후 아시아나 시절의 락 곡인 PARADOM을 불렀다. 이후 이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일었다. 좀 더 나치식으로 하려면 "Spricht nicht Hitler, er ist tot. Heil Freiheit!"라고 말하면 된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don't say hitler, he is dead, Heil Freedom 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나치 제복을 입고 그 자체로 나치를 찬양하는 제스쳐인 나치식 경례를 한 것이 괜찮은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서양의 록 밴드 퍼포먼스의 경우 SS 제복을 찢고 불사르거나 조롱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식의 퍼포먼스는 심각한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결국 이런 퍼포먼스는 그 의도가 뭐가 되었든지 간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는 측면에서 자칫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한 내용이다는 점과 설사 나치즘을 비판하려는 의도이더라도 목적을 전달하기에 부족한 퍼포먼스를 펼쳤기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끝까지 모자는 벗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한편 임재범에 대해 옹호적인 의견은 나치 복장을 할 때 부른 곡이 'PARADOM'이라는 반전, 반압제의 메시지가 담긴 곡이었다는 점과, 콘서트 순서에 이 곡이 애초부터 포함되어 있었다는, 즉 해당 퍼포먼스가 "즉흥적 방어"같은 것이 아니라 연출된 '반전/반압제'퍼포먼스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임재범 측의 해명이 설득력 있다고 주장한다.

팬덤에서의 문제도 있는데 정작 문제가 크게 불거지기 시작한 27일 심야 전까지는 팬들도 군복 간지 쩌네여 ㅎㅎ 이런 반응을 보이다가[참고 링크] 이후 문제가 불거지자 허겁지겁 다시 복습해서 반전메시지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것으로 실드를 쳤다.

임재범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나치는 죽었다, 자유다라는 의미의 퍼포먼스라고 밝혔다. [임재범측의 공식반응].

사실 음악인의 잣대로 보아도 용인될만한 범위의 표현은 아니다. 콜드플레이의 경우는 공연때 집어넣은 일본군 영상조차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만약 해외 밴드가 일본 군국주의 시절 군복을 입고 공연한다면 그걸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은 '풍자'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에 그 나치복장이 명확한 연출로 (위에 나온 찰리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처럼) 모든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비판의 장치로 인정받았다면 애초에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능력 부족의 연출이였다.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의 판단에 맡긴다. 다만 소재 자체가 매우 민감한 소재이고 이런 논란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임재범의 퍼포먼스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 애초에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닌 사안을 애매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옹호의견 측에서도 경솔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6 폭행사건?

예당엔터테인먼트 산하 케이블 회사 직원 김모씨가 8월 20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지난달(7월) 29일 임재범과 두 경호원에게 집단으로 맞았다"며 세 명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임재범과 엔지니어 간의 다툼의 발단은 서로의 업무 방해 때문이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프로그램 업무를 보던 엔지니어가 옆 녹음실에 있던 임재범에게 "방해가 되니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예의가 없다" "적반하장이다"라며 시비가 붙었다고.

예당엔터테인먼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임재범에게 경호원이 붙은 이유는 전국 투어 이전에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까봐+임재범이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막을 사람이 필요해서.(...) 경호원 측은 자신들이 강하게 나가야 임재범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인정했지만 폭행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예당 관계자는 냉정을 되찾은 임재범씨가 엔지니어와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화해했고 같이 밥먹고 배드민턴까지 쳤다며 한달 후에 고소당한 것에 모두 당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옹호하는 쪽은 '굳이 한달이나 지나고 나서 얘기 꺼내는 진위가 이상하다', '전치 3주는 쉽게 받아낼 수 있다', '공인인 임재범에게 뭐 좀 뜯어내 보려는 거 아니냐' 정도로 반응하고 있고 비판하는 쪽은 '진위 여부를 떠나 공인으로써 행동 조심을 너무 안 한다', '그동안 임재범을 둘러싼 루머[14]를 보면 이것 역시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 등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고소인은 3번 말을 바꿨다고 하는데, 1단:임재범이 나를 팼다 → 2단:임재범과 경호원 셋이서 나를 팼다 → 3단:사실 경호원 셋이서만 나를 팼다 로 이어지는 3단고소법(...)을 구사하는 비범함을 보였다. 결국 김모씨가 고소를 취하해서 일단락된다.그래도 한번 경찰서에 출석한건 함정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자.

여담으로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을 말리기 위해 경호원이 붙는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영국의 오아시스가 있다. 이쪽은 아예 대놓고 '우리 경호원은 우릴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지키기 위해 있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이 일이 있은 후, KBS 남자의 자격의 전 연출자이자 이후 CJ E&M으로 이적한 신원호 PD가 트위터에 "임재범은 수시로 주먹질하는 또라이"라는 내용을 올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허나 이후 '응답하라'시리즈가 빵 뜨면서 묻혔다. 애초에 연예인도 아니었고


7 고해 파문

나가수로 2011년을 뜨겁게 달군 임재범은 2011년을 얼마 안남겨두고 다시 논란의 도마에 오르니.. 바로 고해 파문 되겠다.

발단은 임재범의 노래를 선곡한 박완규가 고해를 선택하면서 임재범에게 조언을 들으러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임재범은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

  • 고해의 "그녀"는 사실 절대자다.
  • 앨범은 내야겠는데 어찌 할바를 모르고 방황하다가 20분만에 곡을 썼다.

라고 말한 것.

방송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간 이야기였으나, 방송 이후 고해의 공동 작곡자로 알려진 송재준(a.k.a. 캡틴퓨쳐)[15]이 나가수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기면서 논란과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송재준에 의하면 본래 고해는 딱히 어떤 가수에게 주겠다는 생각없이 자신이 먼저 작곡하기 시작한 곡이었다가, 이후 임재범에게 주기로 하고 완성한 곡이라는 것. 이후 자신이 미국에 간 사이에 임재범의 소속사에서 이곡을 공동작곡으로 저작권 등록을 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새 이곡의 공동 작곡자로 임재범과 자신이 올라있는걸 보고 놀랐으나, 임재범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는것. 그런데 임재범이 나가수에 나와서 고해가 전적으로 자신이 뚝딱 만들어낸 곡 이라고 말해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해는 작사 채정은, 작곡 송재준.임재범으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송재준은 "곡의 멜로디 라인 완성을 위해서 가수에게 도움을 받긴 하나 고해는 전적으로 자신의 작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관해 당시 음반 제작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현재 임재범의 소속사인 예당 측의 입장이 아니다)가 입장을 밝혔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고해’ 음반 제작 담당자“송재준이 거짓말 하고 있다”] 이 제작자는 오히려 송재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해라는 노래의 컨셉과 멜로디라인은 모두 임재범이 만든 것이며 송재준은 임재범이 악보를 그리지 못해서 악보를 그려준 것 정도 + 약간 덧붙인 것 정도밖에 기여한 바가 없었다는 것.

논란이 커지자 임재범의 소속사측은 나가수의 편집으로 인해 생긴 오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편집으로 인해서 잘못 전달된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즉 임재범 측이나 송재준 측 중에서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진실은 저 너머에

송재준이 나가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나가수 관계자들이 방송 전에 이미 자신과 사전 접촉했다며, 그러면서 제작진이 고해를 임재범 혼자 쓴 곡이라고는 결코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송재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임재범의 발언을 실언으로 여기고 편집해 내거나 최소한 자막으로라도 바로잡았어야 했다. 송재준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면 이건 제작진이 엄청난 실수를 한 셈. 하지만 방송 이후 양측 주장의 진위 여부는 불분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병크를 터뜨렸다고 확정하기엔 이르다.

[“멜로디 썼다고 작곡이라 하지 않는다”]라는 송재준의 다른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 내용만 보면 송재준도 멜로디 라인의 일부를 임재범이 만들었다는 것은 인정한 듯 보인다. 송재준은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임재범이 멜로디를 일부 만든 것뿐이다"며 "임재범이 영감을 얻어 부른 멜로디 라인과 내가 생각한 라인을 함께 조율해가면서 만들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송재준은 "그러나 마치 혼자 멜로디를 다 만들었고, 작곡의 대부분을 본인이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함께 곡을 만드는 과정에도 땀 흘린 아티스트와 뮤지션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작사가 채정은은 '임재범 난치는데 송재준 먹갈았다'라고 비유했다."]

일단 송재준은 나는 가수다 측과 화해를 한 상황이다. 나는 가수다 측은 방송 내용에 대해 정정하지 않았지만, 공동작곡가 표기를 해주었다. 여전히 임재범, 송재준 양측의 입장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8 가족사

배우이자 가수인 손지창과 이복형제다. 이미지를 보면 형제와 거리가 멀다고 하는데 임재범의 아버지임택근 전 MBC 아나운서[16]가 외도로 인해 낳은 자식이 임재범과 손지창이다. 손지창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보면 그 아픔이 어땠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후 손지창은 방송을 통해 아버지와 재회. 방송분만 보면 삼부자가 완벽하게 화해한 듯 보이지만, 이후 손지창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건 방송사의 편집이며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도 없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 라고. 무슨 아침드라마도 아니고 게다가 더 무서운 사실은 임재범은 세컨드, 손지창은 써드의 자식이라는 것…사실 족보가 너무 개같이 꼬여서 정확한 정의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의 발언을 봐서 손지창도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가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대학교 합격한 후에 첫 등록금만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었기 때문에 찾아간 적은 있었는데[17] 문자 그대로 넌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문전박대했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결국 대학교는 자기 돈을 구해서 갔다. 이후로도 손지창은 임지창이 될 생각도 없고 오연수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들도 임씨로 살게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손지창에게 손씨라는 성을 준 사람(호적상의 아버지)은 손지창의 이모부고, 손지창은 이모부를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18]

첫 번째 결혼에서 자식을 얻지 못한 아버지 임택근은 이 사이 이미 바람을 피워 사생아인 임재범, 손지창을 얻었다. 이후 임재범은 한 살 때 생모가 거의 버리다시피 맡기고 일본으로 떠나, 어쩔 수 없이 키웠지만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숨겨 키웠다.

이후 이혼하고 2번째 결혼을 한 뒤에야 호적에는 올려줬다고 한다.[19] 임재범도 자신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방황했다고.[20]첫 번째 부인하고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워 자식을 낳았는데 호적에는 두 번째 부인 아들로 들어가 있다. (…) 이딴 출생의 비밀은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들 듯.

하지만 손지창을 끝까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이런저런 소문이 나게 되고 기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서 '아들아!'라며 감동의 재회 따위를 연출한다. 아버지인 임택근이 MBC의 유명 아나운서 출신 간부에다가 파워까지 있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 연출에 응했던 손지창이지만 이후 '그건 다 연출이고 난 그 인간 아버지로 인정할 생각 없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촬영 멈추고 쉬는 시간에는 그곳 분위기가 대체 어땠을 지 ㄷㄷ 그래도 임재범과 손지창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21] 손지창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길 더 블루 재결합을 했을 때 손지창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 사람이 임재범이었다고 한다. 제수씨인 오연수도 임재범의 팬인 듯.[관련 기사]

하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은 '두 아들을 둬서 행복하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있으니 임재범과 손지창만 불쌍하다. 정작 두 아들께서는 각자의 2세를 위해 호적 정리를 할 예정이라고. 이미 손지창의 혈연 관계가 임택근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임재범의 경우 호적정리가 이미 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단, 아버지 임택근이 최근 "임재범이랑 교류 안 하고 산 지 몇년이 된다."라고 인터뷰 한 것으로 봐선 호적정리 유무를 떠나 거의 담 쌓고 사는 사이임은 분명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꼬인 호적 덕분에 1962년생인 임재범과 빠른 1967년생인 신대철은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결국 시나위를 결성하였다. 다만 임재범이 실제 62년생이라는 증거는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나가수 출연 전에는 63년생으로 활동하였다. 데뷔 초기 62년생 최민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기사가 나온걸로 봐선 62년설은 근거가 좀 더 필요해보인다.근데 나이 속여서 동갑한테 언니누나 형오빠했다는 일화는 연예계에서 흔하지 않나 어 흔하긴 하다 [22]

이후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임재범 본인과 아버지 임택근, 이복동생 손지창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놓았다. 동생인 손지창의 경우 자주 연락하며 만나고 있는 듯 하며 삼촌인 손지창이 임재범의 딸을 무척 귀여워한다는 듯. 임재범은 자기에게 동생이 있다는걸 모르고 있었지만 집안내에서 '지창'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손지창이 스타가 되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자 그것을 보고 임재범이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내게 숨겨진 동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 지창이가 내 동생인거 같다'라고 털어놓았다. 그 기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는데, 왜냐하면 기자는 손지창에게 그 이야기를 이미 듣고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그 기자를 통해 이복형제가 만나게 되는데, 손지창은 임재범을 만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워하는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형인 임재범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23]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서로 나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가슴의 상처도 적잖이 아문 듯.

아버지인 임택근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손지창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었다고는 하나 아버지에게 대놓고 '아버지는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100점짜리일지 모르나 집에서는 0점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니... 지금은 임택근과는 더이상 왕래가 없다고 한다.

현재 임택근은 이전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당한 목이 부러지는 사고[24]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담석 수술 등으로 이미 몸이 크게 약해진 상태. 이런 아버지에게 임재범이 메세지를 날렸는데, '아버지가 지금 굉장히 힘들고 어려우며 몸과 마음도 많이 망가진것은 알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버스기사 탓?라며 냉정하게 채찍을 들었다. 이것만 봐도 임재범이 임택근에게 쌓인 한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을듯. 그래도 언젠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될 때가 올 것 같다고 담담히 털어놓기는 했다. 손지창과의 이복 형제이며, 그 아버지가 임택근 아나운서라는 점이 최초로 밝혀질 당시 한 TV연예뉴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도 임재범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일이고, 그 분(임택근)의 인생에 대해서 어찌되었건 자식이 이렇다 저렇다 제 3자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9 트리비아

그가 한 말 중 "폼 잡을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해라.", "즐기면 즐기는 거지 판단하는 게 아니거든요…. 음악은…."이 있다.

[외국어 성대모사]에 일가견이 있다.

영어 실력이 상당한데, 김도균과 영국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영어 한마디도 못했으나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김도균이 아궁이에 출연했을 때, "미국인이 임재범의 영어를 들으면 네이티브 영국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영어발음과 실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자칭 한국 소몰이창법의 창시자. 한번은 수요예술무대에서 '저도 웃긴 놈이에요. 헤비메탈하다가 소몰이창법인지 소머리국밥인지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했잖아요? 제임스 잉그램이 헤비메탈하는 거 봤어요?'라는 자학드립을 치기도 했다. 뭐 근데 창법은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밴드하다가 발라드 가수로 바꾼 마이클 볼튼이 있기는 하다.[25] 사실 솔로 데뷔 후 한국의 마이클 볼튼 소리를 듣기도 했다.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故 신해철이 말하길 리즈시절 임재범은 롤플레잉 게임 들어갔을 때, 전사이면서, 마법배우고, 아이템 긁어모아서 칼 바꾸고, 갑옷 바꾸고, 투구 바꾸고, 할 수 있는건 모조리 다 손에 넣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 같았다며, 영국적인 보컬리스트들의 흉내내기를 통해서 목소리를 단련시켜 나가고 있던 젊은 보컬리스트가, 또 그 이후에 아시아나 등의 여러 락밴드들을 거치게 되면서, 이제 정제되고 단련되고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올라간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 이후에 소울이라든가 뭐 발라드에 여러 팝을 소화하는 여러 가지를 집어 삼켜 버리고, 그리고 또 원래 임재범씨가 소유하고 있던 음역대 훨씬 이상의, 거의 한 옥타브에 가까운 음역대를 손에 넣어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무기들을 손에 넣고 나서는, 마치 이제 이 앞으로의 행보는 이 아티스트에게 있어서는 "내 맘인데 뭘 하면 좋을까?".. 왼손에는 포크 300개, 오른손에는 나이프 15개, 그리고 발에다가는 국자 차고.. "도대체 뭘 요리를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 보여진다고. 그 동년배 또래의 가수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제 언더그라운드 혹은 헤비락 씬에서 탈출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몰라, 난 노래 연습해" 이러고 지리산(오대산이라는 말이 있다. 농사를 짓다가 바다가 보고싶어 나왔다고)들어가버리고... 가끔 수련의 결과물로 앨범을 내어주시고는 앨범에다가 "내공과 외공을 겸비하면 이렇게 되느니라, 아이들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선희는 20대 시절 시나위의 임재범을 보며 저렇게 부를 수 없어서 절망했다고 한다. [참고링크.] 다만 임재범보다 노래실력이 부족했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워낙 전성기의 임재범은 기교를 떠나서 타고난 음색과 성량 자체로 유니크한 보컬이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라도 '내가 저렇게 부를 수 있을까'라는 기분을 불러일으킬 만 하다. 사실 이선희 역시 성량, 기교 면에서 독보적인 가수 중 한명. 이선희나 박정현처럼 맑은 음색을 가진 가수들이 허스키톤 보이스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쪽으로 해석해볼 여지도 존재한다.

S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현우의 뮤직 라이브'를 진행할 당시 이현우는 처음 음반사에 오디션 보러갔을 때 마침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있던 임재범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아, '내가 과연 가수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무척 고민했다고 밝혔다. '하필이면 임재범이야~!!!'라고.[관련 기사]

젊은 시절 헤비메탈 보컬로서의 자신을 회고하길 느낌은 화이트 스네이크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닮고 싶었고, 중음은 DIO의 로니 제임스 디오를, 고음은 그레험 보넷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한 훗날 헤비메탈 씬을 그대로 잇지 못하고 자신은 변절한 거 같아서,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악기 연주 실력이 아예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부분의 밴드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비록 보컬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기타는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고 기타 이외에도 베이스나 드럼 같은 악기를 조금씩이라도 칠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춰볼 때 꽤나 의외인 일. 30여년 가까운 음악경력에 비해 악기 하나 제대로 못다룬다는 점이 뮤지션으로서의 부분은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항간에는 강간을 하거나 마약을 했다 등의 얘기가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나는 가수다 갤러리에서 임재범을 까기 위해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강간 관련은 당시 현진영을 스토킹하던 광팬이 현진영의 집에 쳐들어갔다가 우연히 그 집에 묵고 있던 임재범에게 누명을 덮어씌운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현진영이 아니라 이현우라는 얘기도 있다. 조사 결과 무혐의가 나왔으나 당시 임재범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기자들은 정정 기사를 내주지 않았고, 그래서 강간 기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는 변론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임재범이 성폭행으로 방송중지 처분을 받았다는 실명 언급 기사는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박기사나 정정기사는 없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나온 기사 중에는 무슨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일절 없는 기사들도 꽤 된다.

또, 젊었을 때 가정사와 아버지의 냉대 등 힘든 시절을 보내며 마약에 손을 댔었고, 그것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잡지 맥심 7월호 기사) 그런데, 이것도 약간 미심쩍은 게 시나위 활동 중 임재범이 군 입대를 해서 김종서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카더라의 분위기가 풍기는 잡지 내용과는 달리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26] 정확히는 병역면제가 아니라 방위로 복무했다. 비슷한 시기에 임재범과 같은 곳에서 복무했던 백두산의 멤버[27]가 멀리서 임재범이 노래하는 걸 듣고 CD를 틀어놓은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고, 그게 임재범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여담으로 방위복무를 하며 가발을 쓰고(...) 시나위 활동을 하다가 탈퇴하여, 짧은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부활의 기타리스트 이지웅, 그리고 당시 무명이었던 손무현과 '외인부대'란 밴드로 활동하였다. 앨범도 한장 냈지만 망했다고 한다.

<고해>는 한때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멋있어보이고 싶을 때 부르는 노래 1위였다. 사랑 고백용으로도 엄청 쓰였다. 다만 요즘은 곡이 나온지도 오래 돼서 예전보단 선호도가 낮고, 오히려 여자들이 '남자들이 부르면 싫은 노래'로 뽑고 있다.(...) 고해란 곡 자체가 마초적, 남성 시각적인 분위기가 짙어서 애초부터 곡 자첼 별 감흥없어 하는 사람도 있고, 곡보단 보컬빨로 노래들이 실제보다 더 좋게 들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임재범의 창법은 독특하게도 엄청난 성량을 보여주지만 가성의 사용 빈도가 굉장히 높은[28] 괴악한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에 흉내내기가 매우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결과적으로 임재범 노래는 노래방에서 웬만하면 자제하는 게 좋다. 이렇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에.(...)
130622428622.jpg [29]

팬카페에 올라온 인증으로 봤을 때 와우 유저인 것 같다. 콘서트에서 인증했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는 상태[30] 사용 캐릭터는 트롤남캐(…). 이소라에게 낚였다는 말이 있다. 와갤에서 그를 어떻게 찾아낸 후 가방을 주는 훈훈한 모습이 일간베스트로 올라가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당시에 모종의 이유[31]로 삭발을 했는데, 이 때문에 삭발을 고민한 남성들도 있었다고. 허나 잘 생각해보면 결국 임재범이 잘생겼기 때문에 멋있게 보이는거다.(...) 이 글을 보는 남자들은 삭발하는 건 잘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미 했다면? ▶◀애도 군대 가면 강제로 할텐데 뭐하러

나는 가수다로 인기를 얻으면서 현재 암투병 중인 연극배우 송남영[32]의 남편이라는 점과 슬하에 10살짜리 지수란 딸이 있는 사실도 부각이 됐다. 특히, 나는 가수다 인터뷰 도중 투병 중인 아내가 남편이 1위를 했다는 사실에 전화상으로 매우 좋아하자 10년만에 아내가 행복해 했다며, 눈시울을 훔치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터뷰 속에서 묻어 난다. 특히, 지하철에서 시비를 걸던 남자가 급기야 딸을 울리자 내 딸을 울리다니 하며 야수처럼 격변했다는 일화가 인터넷까페에서 공개되면서 딸내미바보(…)로 강림하셨다. 사실 딸내미바보 속성은 이미 2004년경 5집의 홍보때 그 기미를 보여준 적이 있다. 뜬끔없이 딸의 사진을 내보이며 딸이 명령하는대로 따르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야수돌변 사건은 어찌 보면 예견된 사건인 셈.

조울증에 시달렸을때 김연우의 노래를 듣고 조울증을 극복했다고 한다. 나가수에서 김연우를 칭찬하고 챙겨준 이유.[#]

MBC 나도 가수다에서 개그맨 정성호가 정재범이라는 가명으로 임재범을 패러디한 개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성호에게 임재범이 직접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자고 했는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안갔다고 밝혔다(…) 물론 이건 개그고, 실제로 임재범이 나도 가수다 패러디 무대에 대해 직접 조언을 해주는 등, 두 사람은 연락도 하고 굉장히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자세한 내용은 정성호의 인터뷰를 참조해보자.]

그의 콘서트 때 화환 중에 섞인 것들이 있다.
롸큰롤 베이비 YB - 임대디! 퇴근할 때 까까 사오세요!
나가수 탈락자 김연우 - 이시대 최고의 소리꾼 재범형 짱[33]
롸큰롤대디 외로울 때면 누가 위로해주지? - 바로 나는 가수다 [34]

승승장구에 등장했을 때에는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사실 사석에서나 자기 콘서트에서나 자주 성대모사를 한다.개그 욕심

해피투게더에서 박수홍의 진술에 의하면, 1990년대 초에 방송국 근처 여의도 락카페에 놀러 간 김수용과 눈이 마주치자 시비가 붙었는데[35], 담배로 완전히 기를 죽였었다. 임재범이 먼저 노려보며 다가가서 "(눈)깔어.."라고 했고 김수용이 "이런 C"라고 하며 맞서자, 임재범이 담배를 자기 몸에 비벼 꺼버렸다고 한다. 이에 김수용은 기가 죽었지만 눈은 절대 깔지 않으며,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죄송했습니다. 제가 여의도 출신인데요. 제 친구랑 닮으셔서 제가 잘못 알아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하고 끝났다고 한다. 김수용 본인이 첨언한 바로는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한다.[36]

SBS 좋은아침 출연에서 아내가 본인을 "아줌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아젓..마

그리고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 듯 하다. 잠적했을 때는 이니그마의 음악을 일 년 내내 들었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고, 나는 가수다에서도 대기실에 있던 내내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음악매니아

주다스 프리스트의 월드 투어 서울 공연에 게스트로 출장해 Rock in Korea와 Paradom을 열창했다.

2011년 7월 8일에 방송된 MBC 스페셜 - 나는 록의 전설이다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보컬 유현상, 시나위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신대철,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그리고 부활 초대 보컬이자 시나위 2집 보컬인 김종서, 부활 5대 보컬인 박완규, 그리고 YB의 리더인 윤도현과 함께 출연했는데[37][38] 사실 중심이 1980년대 한국 록을 주름 잡았던 3대 록밴드인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 맞춰져 있던 만큼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정작 한국 록의 스피릿을 결정지은 들국화와 한국 록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신중현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중현은 아들 신대철이 나왔으니 좀 나은거 아닌가?? orz

임재범의 팬카페는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약칭 임알락)'으로, 임재범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동호회 성격을 띤 다음 카페이다. 이와 관련해서 임재범은 자신의 팬카페를 2번 탈퇴했다가 결국 2번 복귀한 이색적인 경험의 소유자이다. 처음은 나가수 촬영 도중 맹장수술로 하차한 과정에서 탈퇴한 것으로 2일만에 복귀했다.[39] 두번째는 루리웹 만지소 인증사건의 임재범 버젼에 가까웠다. 임재범 갤러리에 임재범이 직접 글을 남겼는데, 이에 디시 유저들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인증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분개한 임재범은 "가짜로 오인 받아 난감하다. 인터넷상에서 어느 누구라고 그런 욕을 해도 괜찮은 거냐"며 "저라고 욕을 할 줄 몰라 안하겠느냐, 음악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이 그거 밖에 안되는 거냐"라는 글을 남기면서 2011년 10월 24일 팬카페를 탈퇴하게 된다.디시를 처음 접한 일반인들의 흔한 반응 그리고 이는 신문기사화[#] 되어서 디시인사이드가 얼마나 막장인가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결국 갤주를 물어뜯은 개 꼴이 되어버린 임재범 갤러리와 팬카페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된다. 결국 1주일만인 당년 10월 31일에 팬카페에 복귀한 임재범은 상처를 준 것은 사과하지만 탈퇴라는 강한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밝히며 복귀하게 된다. 여러모로 임재범 팬덤에게는 최대의 흑역사.

2013년 2월 23일, 동년 10월 26일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여전한 포스를 보여줬다.

10 관련 항목

  1. 다만 임재범이 실제 62년생이라는 증거는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나가수 출연 전에는 63년생으로 활동하였다. 주민등록상으로는 66년생이나 본인이 몇년에 한번 한살씩 올리는 중이라고. 후술할 가족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버지 때문에 족보가 꼬인게 큰듯. 히든싱어 임재범편에서 출연진 중 한명이 자기가 호랑이띠인데 임재범 씨도 호랑이띠인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있었다. 60년대에서 호랑이띠는 62년생이라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2. 나가수 당시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장기호 교수가 당시 사석에서 임재범을 손아랫사람처럼 대했다. 알려져 있는 장기호 교수의 생년이 62년인데... 어?
  3. 어느날 그는 시나위가 보컬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시나위 연습실에 가서 슬쩍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보컬리스트가 이병문이었는데, 녹음까지 했었지만 탈퇴를 하게 돼서 보컬 자리가 공석이었다. 다들 그의 엄청난 목소리에 놀랐고, 의기기투합해서 앨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신대철의 집에서 머물면서, 연습실 청소도 해가며 연습했는데, 신대철의 아버지인 신중현이 가끔와서 연습을 봐주었다고 한다..
  4.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임재범이 성량에서만 최고수준의 보컬이 아니라는 점.
  5.  : (김도균에게) 노래는 누가 했어? /  : 재범이가 했어요. /  : 걘 록이 아니야 훵키지. 소울 쪽이야. /  : 맞다. 톰 존스(Tom Jones) 같은 거. 그런 쪽이다. - 음악취향 Y 백두산 인터뷰 중 -
  6. 당시에는 80년대 락열풍이 거셌던지라 락커들이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락에 대한 배신, 배반으로 치부되는 시점이었다. 하여간 어디든 광빠들이 문제다. 대표적인 예로 백두산의 유현상이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하면서 푸짐하게 욕을 먹었었고, 발라드 가수로 변신한 임재범 역시 마찬가지. 여기서 솔로 첫방송을 마친 임재범에게 소녀팬들의 팬레터와 기존 락 팬들의 배신자라는 반응이 동시에 들어오고 갑자기 많은 스케쥴이 잡히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잠적, 펑크를 내버린 것. 이때 오대산으로 칩거했다는 말이 있다. 이후 방송사에서 암묵적으로 임재범의 출현을 반기지 않았을 거라 추측. (다만 2004년 라디오 방송에서 임재범 스스로 '당시 방송 진행자들의 군기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게 방송에 자주 나가지 않는 요인 중 하나'라는 언급을 하였다.)
  7. '너의 미소', '사랑보다 깊은'
  8. 근데 원래 남녀 듀엣곡은 대부분 남자보컬에겐 빡세고 여자보컬에겐 편한 경우가 많다. 화음의 구조 자체가 3도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는 남녀의 원래 최고 음역 차이보다 훨씬 적기 때문. 아예 한옥타브를 돌아서 음역차이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표적으로 Way back into love) 이 경우는 남자 음이 극도로 낮아진다.
  9. 방송국에 마지막으로 도착, 무대도 마지막. 무대 등장시의 편집은 대놓고 밀어줬다.
  10. 단 기술적으로 훨씬 대단하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엄청난 이슈를 몰고 다니며 감동을 주는 것은 그의 노래에 실리는 절절한 그의 인생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듣기에 따라서 나는 가수다에서의 노래가 더 낫다고 여길 수 있다
  11. 윤도현은 자신에게 베이비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YB에서 B가 Baby의 약자라나.
  12. 2010년 출연한 김정은의 초콜릿에서는 예전과 비교해서 크게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2011년 3월 수요예술무대에서 목 상태가 안좋아진 것이 뚜렷했다. 단 아주 나빠진 건 아니고, Rock in Korea의 초고음부까지 소화해내는 것을 보면 나이 문제로 체력은 좀 후달릴지 몰라도 성대가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소울다이브와 녹음한 "주먹이 운다"에서도 녹음이긴 하나 멀쩡했다. 그런데 이후 나는 가수다 출연 때는 급격히 안좋아졌다(초콜릿에서 부른 너를 위해와 나가수에서 부른 너를 위해가 기술적으로 확연히 차이난다). 부인의 암투병으로 인한 마음고생과 그리고 맹장염이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13. 심지어 모자는 SS에서 쓰던 것이며 하켄크로이츠까지 그려져 있다.
  14. 2011년에만 3건인데, 3월 수요예술무대에서 폭행시비가 있었고 5월 나는 가수다에서도 고성사건이 있었다. 그 다음이 이번 사건. 기사가 폭행기사로 나간 후에 '다툼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주먹이 오간 건 아니고 언성을 높인 적은 있었다'는 해명은 세 번 모두 동일.
  15. 캡틴퓨쳐 명의로 90년대에 가수활동을 했었다. 가수활동을 그만둔뒤로는 작곡에 전념한듯.
  16. 아나운서계에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아나운서. 그만큼 인기도 많았지만, 이는 여성편력으로 이어져 아래에 설명할 임재범과 손지창의 유년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현재는 레전드고 뭐고 개까이고 있다.
  17. 정말로 돈이 궁해서는 아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20년 넘게 자식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회한 때문이었다는 게 정확하다.
  18. 손지창이 스스로 밝히기로, 청소년기가 되기 전까지 가족들이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고 키웠기 때문에, 이모부가 친아버지, 이모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고 이모부와 이모의 자식들을 친형제라 부르며 성장했다고 한다.
  19. 하지만 이조차도 외가 쪽 호적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꽤 있다.
  20. 사실 임재범은 방송에 나와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버지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짜로 존경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외부 압력으로 인한 발언일 확률이 높다.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런 아버지를 진짜로 존경할 수 있을까.
  21. 사이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서로 아주 애틋한 것이 당연하다. 사이가 안 좋을 이유 따위는 전혀 없다. 실제로 둘은 2002~3년 경에 둘 모두와 친분이 있던 룰라의 이상민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이상민이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상당히 화기애애하고 서먹함이 없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같은 사람에게서 받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매우 애틋한 형제관계인 것이다.
  22. 별개의 이야기지만 최민수 역시도 영화계 톱스타였으며 이혼과 재혼을 했던 아버지의 관심을 별로 못 받고 성장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어 일부분 통하는 면이 있다.
  23. 하지만 임재범도 고아원과 할머니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24. 버스에 탑승했을 때 버스가 급출발하여 크게 넘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걸로 알려져 있다.
  25. 임재범과 음색이 매우 비슷한 가수고 임재범도 마이클 볼튼의 곡들을 종종 커버했는데 사실 마이클 볼튼은 메탈밴드 블랙잭 시절에 자기 보이스가 메탈에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 상업적으로나 평가적으로나 굉장히 고생하다가 결국 소울락이나 발라드로 전향해 성공한 케이스니 차이는 약간 있다.
  26.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도 이 내용이 언급된다.
  27. 공홈에 올라왔던 것. 정확한 이름은 추가바람.
  28. 보컬의 정석은 엿 바꿔먹었다. 더욱이 이 가성이 진성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29.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동국 선수의 트위터에 있는 내용으로 이동국 선수의 자폭 인증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힐링캠프에서 이동국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이동국이 잘못했네'(...) 히든싱어 임재범편에서는 이게 너를 위해가 아니라 고해로 잘못 방송되는 일도 있었다.
  30. "여기 얼라 있어요? 트롤 남캐 조심하세요"
  31. 암투병 중인 아내가 치료관리 이유로 삭발을 해야했었는데, 아내가 그런 일을 겪는데 자기만 머리를 기르고 있을 순 없다는 이유로 자신도 삭발을 해버렸다.
  32. 영화 마고에 조연으로 출연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이 때였다.
  33. 자학개그가 작렬했다.
  34. 나가수 제작진이 보냈다.
  35. 서로 연예인인지 인식한 건지는 불분명한데, 정황상 김수용과 박수홍 쪽은 알아본 것일 수도 있다.
  36. 그러나 김수용 역시 고등학생이던 80년대에는 '의리의 여의도 용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여의도 내에서 유명할 정도로 싸움을 잘했었다.그래봤자 임재범 앞에서는..
  37. 록커 출신으로서 다른 영역에도 나섰던 인물들의 굴곡진 이야기를 그린 다큐답게 이런 멤버들로 전부 채웠다. 윤도현은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게 영향을 받았던 후기 세대라는 점과 대중적으로 유명한 보컬인 점을 감안해 등장했다.
  38. 또한 특별 게스트로 신해철, 이승철, 이윤석도 등장했다. 이승철은 알다시피 부활의 초대 보컬이었고, 신해철은 부활의 광팬으로 고딩때부터 김태원을 따라다녔다.이윤석은 인터뷰 장면에서 특별 등장한다.
  39. 사생팬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당시 임재범은 수많은 이유로 탈퇴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