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완

(장포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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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張泰玩)
1931년 ~ 2010년
복무대한민국 육군
기간1950년 ~ 1980년
임관육군종합학교 11기
최종계급소장[1]
최종보직수도경비사령관

1 개요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니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2]
암흑의 시대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진정한 참군인.

대한민국의 군인. 1931년 9월 13일 ~ 2010년 7월 26일. 예비역 육군 소장. 새천년민주당 소속 전직 국회의원. 종교가톨릭으로 세례명은 다미아노.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하여 11기로 임관했다. 이 당시 장태완은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갑종으로 분류되어 장교로 임관하였으나, 같이 갔던 인원 중 중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을종으로 분류되어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물론, 군복무를 하는 기간 동안 조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서 졸업을 했기 때문에 최종 학력이 대졸인 것은 맞다.

그는 전쟁 당시 거의 총알받이 취급이었던 육군종합학교 소위 가운데 살아남았다. 1973년 윤필용 사건이 터진 이후, 준장 계급으로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이 되었다. 이 때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고 갑종장교 출신인 자신을 깔보고 항명하던 김상구 포병대대장을 영창에 보냈다. 이 일로 김상구의 손윗동서인 전두환이 장태완에게 악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79년 11월 16일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에게 수도경비사령관 직위로 보직이동을 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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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 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된 장태완(오른쪽 찻잔 든 이)이
부임 나흘 만인 79년 11월 20일 청와대를 지키는 근위 부대인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현 제1경비단의 전신)을 초도 순시,
단장인 김진영 대령으로부터 부대 현황을 브리핑 받고 있다.

2 군인 시절

살신보국(殺身報國)을 몸소 실천한 참 군인.

갑종 출신임에도 당시 소장 보직 중 최고의 요직이라는 수도경비사령관(지금의 수도방위사령관으로 현재는 중장이 보임된다.)에 올라갔을 정도로 능력있는 참군인이자 야전 군인 그 자체였다. 어느 누가 보기에도 非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에 적합한 인물었다는 평이 주류였으나, 하나회12.12 군사반란을 주도함으로 인해 승진이 정체되었다.

훈련을 상당히 빡세게 시키는 것으로 악명높았으며 특히 부하들을 체력단련 시키는 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확실했다. 체력이 우수한 병사에게는 포상휴가와 자력표에 유리한 평점을 줬고 훈련성적이 좋은 장병들은 그만큼 대우를 확실히 해줬다.

이에 비해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여 사적으로는 헐렁하다 못해 물렁할 정도로 자상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이 육군 소장임에도 일개 병장의 풀어진 전투화끈을 몸소 묶어주며 격려하는 모습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부임했다 하면 그의 휘하 병력들의 식단이 확 달라졌는데 특히 쇠고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게다가 당시에는 먹기 힘든 귀한 음식에 해당되는 계란찜, 깻잎 무침 등 특식을 자주 내렸다. 장태완은 자기 휘하의 병력들이 먹는 식사에도 엄청나게 신경썼다. 그러면서 자신은 불시에 사병 식당에 와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급양관들이 요령을 피울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휘하 병력들의 체력을 불리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휘하에서 군 생활을 했던 사람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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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스스로에게 엄청나게 엄격한 인물로 유명했는데 칠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육질 몸매를 유지할 정도로 스스로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3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정권의 12.12 쿠데타 당시, 서울에 있던 부대 중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함께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한 군인이다.

전두환의 간계에 의해 연희동에 있는 요정(고급 술집)으로 초대받아 가볍게 몇 잔 기울이던 중,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불법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수경사령부로 달려 간다. 그러나 그가 부대에 도착했을 때에는 사전에 치밀하게 작당한 대로 움직인 반란군에 의해 상황은 순식간에 태반이 넘게 기울어 가던 중이었다. 기선을 잡고 득의양양하여 자신마저 회유하려 드는 신군부 측에

마, 너거한테 선전포고다 인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반란군에게 전화통화로 한 말이며 절대 후대의 윤색이 아니다.

2010년 7월 27일 SBS <8시 뉴스>의 보도자료

물론 말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반란군들을 어떻게든 진압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다. 정승화 육참총장 관저에 즉각 경비병력을 보내 구출을 시도하는 한편, 육본에서 피난(…)온 육군 수뇌부와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작전을 논의하고, 휘하 전차중대를 기습적으로 보내 경복궁에 모여 있던 반란군 일당을 쓸어 보려고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보안사령부의 공작에 의해 지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하여, 끝내 진압에 실패하고 체포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저항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전세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받아 들이고, 부하들의 안위를 생각하여 치욕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라고.

12·12 당시 장태완 장군 육필 수기

이거가지고 장태완 장군을 패장이라 폄하하는 몰상식한 이도 있는데 당시 상황을 안다면 이보다 무식한 소리가 없다. 일단 당시 수경사 내부 통화는 보안사령부에 의해 감청되고 있었다. 게다가 수경사 헌병단과 핵심 전투병력인 30, 33경비단을 맡은 장세동과 김진영이 쿠데타 주축이었다. 수경사 내에서 회유당하지 않은건 비전투부대인 포병단과 방공포병단 뿐 이었다.[3] 유사시 수경사령관이 자신의 휘하로 배속받을 수 있었기에 가장 먼저 찾았던 수기사26사단은 출동준비명령은 받았으나 국방부장관 노재현의 출동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출동하지 못했고 종국에는 보안사와 하나회의 공작에 넘어가 출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4] 부천 IC까지 다다랐던 9공수여단[5]은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에 의해 주둔지로 원복당했다. 그 외 1, 3, 5 공수여단은 쿠데타군 주축이었고 9사단20사단도 사단장이 노태우와 박준병이니 말 할 필요도 없다.[6] 제2기갑여단은 여단장 이상규가 이건영 3군사령관의 병력출동 금지 지시를 무시하고 예하 16대대를 출동시켜 쿠데타에 합류했다. 11사단은 국방장관 명령이 없어 출동하지 못했으며 30사단은 사단장 박희모가 보안사에 협력하여 행주대교를 차단하고 구파발 검문소의 병력을 증강하여 1공수여단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라는 육군본부 정식 명령을 무시하고 길을 열어줬을 뿐 아니라 90연대를 쿠데타에 합류시켰다. 한 마디로 고립무원이었다.

수경사령관으로 부임한지 겨우 24일째였던 장태완 장군은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 이남에 있던 야포단을 도강시키려 시도하였으나 1 공수여단이 행주대교를 장악하여 여의치 않게되자[7] 사령부 행정병, 취사병들까지 긁어모아 맞서보려 했다. 그러나 취사병, 행정병 다 합쳐도 100여명 이었고 김진영이 수경사 전차대대장 차기준 중령이 보낸 33경비단의 전차 1개 중대를 도로 회군시켜버려 사령부내에 있던 전차 4대가 기갑전력의 전부였다. 즉, 방법이 없었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믿고 따라준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치욕을 감내한 것 이다. 만약 거기서 싸우기로 했다면 보안사에 의해 수경사 통화가 모두 감청당하는 상태에서 9사단 29연대, 30연대 1개 대대, 30사단 90연대, 1, 3, 5 공수여단, 2 기갑여단 16대대, 수경사 30&33 경비단을 비전투 병력 100여명으로 상대하는 그림이 나오는데 이게 가능할거 같은가? 이때나 그 후에나 국민의 안위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쿠데타 세력과 달리 장태완 장군은 서울시민들의 안전도 신경써야 해서 몇 안되는 중화기 사용까지 제한받았다.[8] 설사 9공수여단 병력이 중도에 복귀하지 않았어도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군인의 의무를 저버린 장교들과 공관 근처에서 총소리 들리자 단국대 캠퍼스로 달아나 숨어 버리고 겨우 육본 B-2 벙커로 끌고왔더니 충정부대 출동명령을 내리긴 커녕 어떻게든 싸워보려던 장태완 소장에게 말로 하라며 윽박지르던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이다. 이 사람이 도망가는 대신 신속하게 수기사, 26사단, 9공수, 11사단들을 출동시켜 장태완에게 딸려줬으면 그 사단 안났다. 그러니까 국방장관을 노재현이 아닌 채명신이 했어야[9]

3.1 각종 매체에서 그려진 모습

등장작품마다 맡으신 배우분들이 극강의 연기력을 발휘해주셨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성우 김기현씨가 맡으신 부분이고, 비장함에 있어서는 김동현씨의 연기도 상당히 수준급이다.

이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본 인물의 인격에 감화되었는지 '리턴 1979'라는 소설에서는, 1026 이후 국군 측 2인자(1인자는 정승화 대장)로 주역 3인방(주인공과 최규하, 정승화)의 보좌역으로 국가 개혁(당연히 1212사태 같은 건 없었다)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3.1.1 제4공화국

26분 8초부터.

1995년에는 MBC의 제4공화국에서 이영후 씨가, 비슷한 시기에 SBS 코리아게이트에서는 김동현 씨가 연기했다. 이영후 씨는 특히 장태완 장군 특유의 가래 끓는 목소리(…)를 잘 재현하기도 했고처음 들으면 김기현 성우인줄 연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동 시점의 김동현씨나 뒤에 나온 김기현씨의 포스가 너무 강하기도 했고, 당초 계획보다 축소된 제4공화국 드라마에서 12.12사태를 1회 반 정도의 분량으로 압축해서 방영하다보니 출연 장면 자체가 많지 않았다. 여기서 그가 유학성 중장에게 전화로 외친 대사는

"얘기? 얘기는 무슨 놈의 얘기를 하란 말이고?! 역적 놈들캉![10] 오냐, 좋다! 거기 딱 기다리고 있거래이! 내 땡크를 몰고 가가 마 싹 쓸어 뭉개뿌고 말끼라!"

하지만 출격 직전 부대원들을 앞에 두고 훈시하는 장면은 그 어느 장태완 배우보다도 호소력이 쩐다(58분 4초부터). 이영후씨의 연기가 김기현씨나 김동현씨의 연기처럼 '내리 누르는 포스' 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효과를 발휘한 장면.

의외로 주목받지 못한 장면은 동지들을 잃고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부분(2분 59초부터)인데, 특히 가장 마지막으로 전두환 일당에게 포섭된 장세동을 닮은 헌병부단장 신윤희에게 눈물을 흘리며 고함을 지르고 자신을 쏘라고 하는 장면(5분 25초부터)이 백미이다.

장태완: 너그 이노무 짜슥들, 무슨 짓들이고? 어이? 어데다 총질이야?

신윤희: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장태완: 도대체 어케 된 놈이, 누구 부하고? 니, 소속 부대가 어데고?

신윤희: 저는 사령관님의 부하이며, 수경사 소속입니다.

장태완: 그런데...!

신윤희: 하지만 지금은, 전두환 합수본부장님의 명령에 따르고 있습니다.

장태완: 세상에... 네같은 군인이 어데 있노? 전두환이 글마가 , 글마 명령에 따라서 상관 가슴에 총구를 들이댄단 말이고?

신윤희: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장태완: 뭣이 우째!? 내가 누고? (신윤희에게 다가간다) 니, 똑똑히 함 봐봐라. 느그 사령관 장태와이란 말이다. 장태와이이!! (신윤희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신윤희: ...죄송합니다.

장태완: 군에서 상관이라 카믄 느그 애비란 말이야 이노무 짜슥아! (잡았던 신윤희의 멱살을 놓는다) 긔래... 자슥같은 놈 한테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느니보다 (뒤로 되돌아가다가 신윤희를 바라보며) 차라리 여[11]다 쏴삐라.

신윤희: 사령관님.

장태완: 쏘란 말이야아아아!!! 아아으끄흐흑...

(카메라가 신윤희가 쥐고 있는 권총을 비춘다. 장태완이 흐느끼길 멈추고 신윤희를 노려보자 신윤희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신윤희: (고개를 돌리며)뭣들 하고 있어! 사령관님 모시라고!

(장태완이 헌병들에게 붙들려간다. 문을 나오면서 장태완이 한번 더 신윤희를 노려보고, 신윤희는 미안하다는 듯이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떨군다.)

3.1.2 제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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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12]

"여보세요? 야!!!!부분의 목소리가 굉장히 우렁차시다.[13]

유학성: 에이씨! (책상을 쾅 치며) 장관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전두환: 형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장관이 없으니 장관 없이 대통령 재가를 받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문제는, 대통령이 정 총장 연행조사를 합수부 독단적인 판단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는 여기 계신 분들께서 저와 함께 대통령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황영시: 자 그럼, 나하고 같이 대통령한테 가 보자고.

백운택: 나도 가겠습니다.

(유학성이 세 번째로 일어설 때[14] 전화가 걸려온다.)

장세동: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장태완: 야, 장세동이 바꿔. (대답이 없자) 야! 장세동이 바꾸라니까!!

장세동: 저…장태완..수경..사령관님이십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황영시: 이리 줘, 내가 받을 테니까. (전화를 건네 받고) 어, 장 장군이야? 어, 나 황영시야. 저, 이리 와서 나하고 얘기 좀 하자고.

장태완: 아니, 선배님은 왜 남의 부대에 와 계십니까? 장세동이하고 김진영이는 내 직속 부하들인데 지금 거기서 그놈의 자식들하고 무슨 작당을 하고 있습니까? 내 들어보니, 그 쪽에서 총장님을 납치했다 카는데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어떻게 총장님을 그럴 수가 있습니까?

황영시: 아니 장태완이 너 왜 이래, 다 알 만한 사람이! 나하고 다 통할 수 있는 처지 아니야?!

장태완: 뭐가 통합니까? 지금 당장 총장님을 원상복귀 시키세요!

황영시:(시선을 돌리며) 아니, 너무 흥분해서 말이 잘 안 통하는데..

유학성: 아, 이리 줘 봐요. (헛기침을 한다.)

장태완: (유학성이 전화 받기 직전에) 여보세요?! 야ㅡ!!!

유학성: 장 장군? 나 유학성이야. 왜 흥분부터 하고 그래? 우리 얘기를 들어 보면은, 장 장군이 충분히 이해할 거야.

장태완: 아니, 형님은 또 왜 거기서 그라고 계십니까? 거긴 내 부댑니다! 형님이 거기서 나오십시오! 아 그라고, 형님이 나더러 총장님을 잘 모시라고 했잖습니까. 그런 형님이! 총장님을 납치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더 말할 거 없습니다. 지금 당장 총장님을 원상복귀 시키세요!

유학성: 장 장군! 그럴 수는 없어. 이건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야.

장태완: 정말 이러깁니까?

유학성: 이봐! 정총장을 수사해보고 혐의가 없으면 풀어주면 될 거 아이가!

장태완: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15]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16] 내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수화기를 전화기에 아무렇게나 처박고) 역적 놈의 새끼들! 둠 둠 둠 빠~ 밤밤밤밤밤~

유학성: (전화를 끊으며) 장태완이가 전차로 우릴 날려버리겠다는데 어쩌지?

전두환: 미친 놈…!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김기현이 연기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드라마 제5공화국의 제7화 30분 쯤부터 반란군을 꾸짖는 장면. 급하면 2분 58초부터 보면 된다. 조금 더 긴 버전(영어 자막 있음) 위 영상에 해당하는 내용은 3분 49초부터, 하이라이트는 6분부터.

장태완 장군이 그려진 매체 중 가장 유명세를 탄 영상이 이것이다. 중장년이 주로 즐기는 게 공식이 되다시피 한 것이 이런 정치 드라마인데, 김기현 씨의 이 막강한 포스 때문에 인터넷을 즐기는 젊은이들까지 단박에 매료(?)시킨 것. 이후 여러 합성에 등장하며 '장포스'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ex)
은하제국에도 등장하신 장포스[17]야이 반동 놈의 새끼야! 내가 지금 AT-AT워커를 끌고 가서 네놈들의 대가리를 다 날려 버리겠어!
루크:다스베이더가 워커로 우릴 날려버리겠다는데 어쩌지?[18]

잠금 해제

이제는 저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한다.[19] 자가라 : 제라툴이 우릴 거신으로 날려버리겠다는데 어쩌죠? 케리건 : 미친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알포스. 스타크래프트 에피소드 4 8번미션 참조.깨알같은 그거 내 대사인데

이제는 K리그에도 나타나셨다.부르사포르가 아니라 부르사스포르인 게 함정

은영전에도 나타났다.

이젠 직접 공허의 구도자를 끌고 가서 아몬 이 혼종 놈의 새끼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하신다.#

사실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20][21]

심지어는 엘소드까지...

여기서의 장태완 장군의 일갈은 위에 링크된 장태완 장군의 육필 수기를 참조한 대사다. 제5공화국은 물론 제4공화국과 코라아게이트에도 나온 "전차를 몰고 가서 박살내버리겠다"는 일갈은 모두 이 수기가 근거. 장태완의 육필 수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야, 이 똥뙤놈 같은 놈아!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 인격자, 배신자인 더러운 놈아! 너희놈들 거기서 조금만 더 기다려! 내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의 대가리부터 깔아뭉갤 것이다!"

그 외에도 제5화 59분쯤에서 수경사령관으로 부임할때 육본을 찾아갔더니 정문 근무를 서는 헌병 병장의 전투화 끈이 풀어지자 고쳐매주며 수고하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장면인데… 물론 그만큼 장태완 장군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는 장면이겠지만, 현역이나 예비역의 눈에는 본인의 의도치 않은 헬게이트 개방의 순간일지도. (…) 이 때가 똥군기 가득하던 1979년임을 감안하면 흠좀무. 그나마 병장이라서 간부들한테만 까이면 그만이지 만약 이병이나 일병이었다면 초대형 이벤트가…..[22]

육본 지휘관들을 일갈하고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기 전에 하는 연설 등등 명장면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연단에서 내려온 이후, 장교들은 죽음을 각오했으나 누가 배신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차대가 배신하기라도 한다면 장태완 장군만을 믿고 있는 부하들의 목숨을 어찌할 것이냐는 부관의 피맺힌 호소에 절규하면서 싸움을 포기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장태완 장군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지만 반란 참여자들에게 외치는 일갈이 너무 유명해지다 보니 장태완 장군을 민주 혁명을 반란이라 매도하고 탱크를 끌고가 잔인하게 진압한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오해한 사람들도 생겼다. 물론 5공 일행들 입장에서는 하극상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지금 현 체제의 입장으로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했던 진정한 군인이다!

3.1.3 코리아게이트

한편, 코리아게이트김동현씨는 김기현씨와 거의 맞먹는 포스를 보여주었다.[23] 장태완의 불 같은 성격과 경상도 사투리[24]도 잘 재현했지만, 무엇보다도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제5공화국의 김기현 씨마저 압도한다. 특히 마지막에 50명 남짓 남은 자신의 부하 장교들을 모아놓고 훈시하는 장면, 국방장관 노재현의 "상황 종료하라."는 명령을 받고 복명복창하는 장면이 백미. 12.12 사태를 다루는 회차의 마지막 컷은 항상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명령을 내리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전화로 외친 대사는 흔히 알려진 대사(드라마 제5공화국 기준)와 거의 유사하지만, 비슷한 대사를 두 번 연타로 날린다.

(유학성 중장에게)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니들 꼼짝 말고 거기 있어! 내가 말야, 전차 끌고 가가지고 내 니들 싹 쓸어버릴 거야! 이놈의 시끼!"

(황영시 중장에게) "그래 좋아, 이놈들아! 니들 말야, 꼼짝 말고 거기 있어! 내가 포 끌고 가 가지고 느그들 다 싹 쓸어버릴 기야, 이놈의 시끼야!!"

참고로 장태완 장군이 유학성, 황영시와 통화하는 장면은 이 버전이 실제 장태완 장군의 증언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또한 통화하는 순서의 고증도 잘 맞는다. 제5공화국에서는 먼저 황영시 → 유학성 순서로 나오지만, 장태완 장군의 전화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실제 순서와 대사 내용은 그 반대.[25] 코리아게이트에서는 실제대로 잘 지켰다고. 황영시는 차규헌에게도 전화를 바꿔주려 했지만 장태완 장군은 듣지 않고 끊어서 차규헌은 현장에 있던 중장들 중 유일하게 장태완과 대화를 못한 중장이 되었다.

이때 김동현 버전의 연기 덕에 장태완이라는 이름이 일반인에게 최초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은 제 4공화국이 3일 빨랐다

4 군사반란 이후

이후 서빙고에서 45일 간의 조사를 받은 뒤, 5년 후배인 전두환[26]에 의해 강제적으로 예편되고 6개월간의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등 많은 곤욕을 치렀다. 12.12 군사반란 직후 당연히 수경사령관(현 수방사령관)직에서 쫓겨났는데, 수경사령관이 된 지 1달여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후임은 노태우.

가족들도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수난을 겪어야 했다. 아들의 강제 예편 소식을 들은 그의 부친은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은 모반자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 없는 일." 이라며 곡기를 끊고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다 1980년 4월에 결국 별세하였으며, 1982년에는 외아들 성호(당시 20세)씨가 행방불명됐다. 장성호씨는 12.12 군사반란 당시 고등학생이었으며 가택 연금에 보안 요원들이 수시로 상주하는 와중에도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입학했고 그 해 자연대 수석을 차지했다. 성호씨는 평소처럼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대문을 나선 지 한 달 만에 칠곡군 왜관읍 근처에 있는 산기슭[27]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28] 아들의 묘비명은 장태완이 직접 썼는데, 그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고 장성호의 묘.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1학년생. 모범 우등생. 여기 채 못다 핀 한 송이 꽃이 최고의 선을 위해 최대의 인고로 향학하다 수석의 영예를 안고 1982년 4월의 짧은 인생을 마치고 고이 잠들다.

부친과 아들의 연이은 죽음에 장태완은 그 둘을 죽게 만든건 자신이라며 매우 슬퍼했다. 부친의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불효를 탓하며 전국을 유랑했고, 아들이 죽은 후에는 "성호는 내가 죽인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전두환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던지(…) 그를 공기업한국증권전산 사장에 임명하였고, 그는 어쩔수 없이 사장직을 수락하였다. 또한 1995년부터는 훗날 직원학대와 사기분양 사건으로 유명해진 르메이에르 회장직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29] 물론 르메이에르의 각종 병크가 터진것과 장태완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1993년에 <12.12 쿠데타와 나>라는 회고록을 집필했으며 현재 절판[30]되었기에 국회 전자도서관에서 원문보기가 가능하다.읽고 내용추가바람.

이후 1994년에 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재향군인회장 경선에서 승리한 후 2회 연속으로 재향군인회장에 당선되었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이 5·6공 정권 비리 및 12.12 군사반란, 5.17 내란의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를 잡아들이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두 사람과 같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때 증언을 마친 후 두 사람을 향해서 "한때는 함께 국방에 열심을 다하던 입장이었는데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소"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물론 두 사람은 데꿀멍.

2000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때 그는 국회에서 386세대 국회의원들을 만나 "12.12 쿠데타를 내가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러분이 그간 고생 많았다."라고 하기도 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집권여당 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2002년 6월 북한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북한측 경비정을 격침시켰어야 한다. 어망 때문에 초계함 접근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평상시에 기동훈련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훈특보를 맡기는 했지만 노무현 후보와는 껄끄러운 관계였고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태완 장군은 6.25전쟁을 경험한 군인 출신이었고 보수적 정치관을 갖고 있으신 분이었다. 그가 민주당계열 정당에 들어간 것도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유사한 예로 신군부로부터 탄압받은 강창성 보안사령관 역시도 꼬마민주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지역구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그런데 강창성 장군의 경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통합민주당(꼬마민주당 2기)이 DJ의 정계복귀와 3김정치로의 회귀에 반대하면서 이회창의 신한국당과 합당을 선언하면서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공천되었다.

이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5 별세, 그리고…….

2008년에는 폐암으로 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다고. 이후 몸을 추스르며 <12.12 군사 반란>이라는 책을 쓰고 있었다고 알려졌으나, 2010년 7월 26일숙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79세.[31]

그런데 장례식장에 장세동이 방문했다. 위 영상에도 나오지만, 장세동은 당시 수경사 30경비단장으로서, 장태완 소장의 '직속 부하'였다. 장태완 장군이 비록 수경사령관에 취임한지 1달 여밖에 안되었다고는 하나, 직속 상관과 부하 사이에는 대개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32] 대한민국 국군이다.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이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체포를 그토록 망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걸 두고 신군부 인사, 故 장태완 前의원에 '화해의 손길'이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났는데, 각자 알아서 판단하자. 화해가 아니라 사죄를 해야지 그런 분별이 있는 놈들이면 반란과 그 이후 행태를 했을리가 없지

그리고 2011년에 또 논란이 되었는데, 6월에 작고한 안현태 前 청와대 경호실장이 대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는데 이 사람은 육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한 하나회 출신으로 12.12 쿠데타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뼛속까지 전두환의 심복이었다는 점 때문에 현충원 안장이 거론될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조성한 죄로 구속되면서 군 형법상 반란수괴 혐의 등으로 먼저 구속된 그를 지칭하며 "이제 각하를 옆에서 모시게 돼 너무 기분이 좋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런 인물이 현충원에 들어가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 논란 자체도 벌어졌고, 5.18 구속부상자회가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33] 앞에서 안현태 전 경호실장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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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태 전 경호실장의 묘는 하필이면 장태완 장군의 묘와 가까이 있다. 사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닌게, 먼저 세상을 떠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묘 옆에는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유학성이 묻혀있다. 그나마 장태완 장군처럼 신군부에게 맞섰던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은 아예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도 못했으니,[34] 장태완 장군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차라리 다행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 와중에 가슴 아픈 소식이 하나 더 들려왔다. 2012년 1월 17일, 홀로 남은 故 장태완 장군의 부인이 강남구 대치동의 아파트 화단에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된 것. 집 안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을 보아 자살로 추정되었다. 관련 기사

그런데 하필 故 장태완 장군의 부인이 별세할 때, 장태완 장군을 체포한 장본인인 신윤희 당시 수경사 헌병부단장이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하고, 장태완을 비난하는 불쏘시개를 출판하였다.# 분서 해야죠!! 도둑놈이 몽둥이 들고 길 위에 오른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도 저 책의 내용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워보일 정도.
12000원이 수중에 있다면 저 불쏘시개를 살 바엔 차라리 치킨이나 뜯거나 피자를 먹자. 그렇게 책을 사고 싶다면 유머 책이나 공포 책 문구점 같은 곳에서 파는 미니북 500원짜리를 왕창 사거나.[35]

김대령장태완 장군은 김재규의 부하이며 12.12 군사반란을 장태완 장군이 일으킨 반란이라는 개소리[36]를 했다. 김대령 항목 참고 바람.
  1. 예편 당시 계급은 (빌어먹을 반란군 놈의 새끼들 때문에) 이병
  2. 후술하겠지만 이는 제5공화국(드라마)에서 각색한 내용으로, 장태완 장군이 실제로 한 발언과 차이가 있다.
  3. 황동환 수경사 방공포병단장과 구명회 수경사 야포단장은 모두 비하나회 출신이다. 역시 쿠데타군에 맞선 수경사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이나 33경비단 작전주임 김달연 소령도 마찬가지.
  4. 수기사는 보안사의 회유에 넘어가 사단장 손길남은 그냥 잠이나 잤다. 수기사 포병연대장 김도수는 쿠데타에 적극가담해 경춘국도 다리목에 바리케이드 세워놓고 있었기에 출동했으면 사단 식구들끼리 싸울 판이었다. 26사단은 사단장 배정도가 26사단 보안부대장 김현이랑 술이나 마시다 잤다.
  5. 9공수여단장 윤흥기 준장은 갑종(35기) 출신이다.
  6. 9사단장 노태우는 1공수여단의 서울 진입에 발맞춰 9사단 29, 30연대에게 서울로 진입할 것을 지시하였다. 하나회 소속임 참모장 구창회는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는데 30연대를 맡고 있던 비하나회 김봉규 대령은 이건영 3군 사령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으나 29연대장 이필섭은 군말없이 명령에 따랐다. 결국 29연대와 30연대 1개 대대 병력이 휴전선을 버리고 쿠데타에 동원된다.
  7. 먼저 제1 한강교로 향했으나 막혀서 행주대교 향했으나 30사단이 열어준 길로 들어온 1공수여단에게 장악된 뒤였다.
  8. 장태완 소장이 동원할 수 있던 화력이 전차 4대와 토우중대, 3.5인치 로켓포, 106미리 무반동총인데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은 장애물이 많은 시가지에서 사용하 경우 유도선이 끊어져 엉뚱한 곳에 떨어질 수 있다며 토우중대 투입을 반대했다. 박 대령은 그 대신 야포단을 동원해 쿠데타 수뇌부가 모인 경복궁을 타격하잔 의견을 내놓았으나 야포병단장 구명회 대령은 타격을 위해선 관측사격을 실시해야 하는데 그럼 시가지가 쑥대밭이 된다며 반대하고 조명탄만 꺼내두었다. 그나마도 조명탄 추진체가 민가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꺼내놓기만 하고 장전을 못 했다.
  9. 채명신 장군이 중장에서 끝나지 않고, 대장 진급후 육참총장,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장관이 됐다면, 12. 12 자체가 안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주월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하나회 출신 장교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벌인 추태를 다 아는 사람이었다.
  10. ~랑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11. '여기'
  12. 전화 통화 부분은 47초대, 하이라이트 부분은 2분 58초 때부터 보면 된다.
  13. 현역 군인인데도 ~요자, 선배님, 형님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성급 장교들 사이에서는 짬차이가 가까우면 이렇게 서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14. 황영시에게서 전화를 넘겨받는 사람이 3번째로 일어선 사람이고, 이름은 유학성이라 뜬다.
  15. 발음이 빨라서 "반동 놈의 새끼야"로도 들린다.
  16. 몬더그린으로도 "이제 넌 고자가 됬어!"라고도 들린다. 내가 고자라니 영상중 고자송에서 궁합이 좋아 나온 적도 있다.
  17. 영어 원문은 "You rebel scum!" 의미 상으론 완벽히 일치한다.
  18. 실제 김기현은 MBC 80년대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를 연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0년대 MBC판에서는 팰퍼틴을 맡은다.
  19. 역시 김기현이 성우로 출연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제라툴이 반란군은 저그로, 전차는 거신으로 바꿔서 패러디하였다. 하필 패러디 대사가 추가된 것이 2014년 12월 12일이었던 것은 덤.
  20. 아들을 되찾고 싶다면 1000만원을 달라고? 내 아들은 그렇게 싸지 않다! 1억으로 올려!
  21. 후술하겠지만 사실 장태완 장군 본인도 아들을 정말로 사랑한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22. 그런데 상술했지만 사실 장태완 장군이 사단장으로 있었던 26사단에서 복무했던 부하장교들 및 병사 출신 전역자들의 말에 따르면, 훈련은 매우 혹독하게 시켰어도 그에 따른 보상은 매우 확고했고 1970년대에 사단장었던 장태완 장군이 직접 병사들의 급양관리에 철저하게 힘썼을 정도로 병사들을 챙겼던 생각하면 아주 개연성이 없는 장면은 아니다. 단지 저 장면에서 병장의 울음소리 섞인 목소리와 장군이 직접 병사의 전투화끈을 매주는 장면 자체의 임팩트가 무지막지해서 그렇지.
  23. 앞서 코리아게이트의 방송국이 MBC가 아닌 SBS라서 김동현씨의 장태완 연기가 덜 알려져 있다는 문장이 있었으나, 방영당시 10.26에서 전두환 집권까지의 전반부는 MBC의 제4공화국 못지 않은 화제성을 불러오며 두 프로그램이 시청률 경쟁을 벌였다. 자신을 회유하는 전두환 세력과 답답한 군수뇌부에 시원하게 일갈하는 김동현의 연기는 큰 화제가 되었으며, 실제 장태완 장군이 12.12 에피소드 방영후 김동현에게 양아들 삼고 싶다고 연락할 정도였다. 김동현 또한 이를 감사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24. 장태완의 고향경북 칠곡군이다.
  25. 대사 내용과 순서는 동일한데 전화 받는 순서만 정확히 반대로 바뀌었다. 정리하면, 유학성이 맨 처음 전화를 받아서 장태완에게 왜 남의 부대에 들어와 있냐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황영시가 받았을때 장태완에게 총장하고 제일 친한사람이 형님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26. 참고로 둘은 선후배 관계이기는 하지만 나이는 1931년생으로 동갑이다.
  27. 공교롭게도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 근처였다.
  28. 시신을 수습해 서울로 가는 동안 아들의 코와 입에 있던 얼음을 혀로 녹였다고 한다
  29. 르메이에르의 역사 등을 볼 때 직접적으로 경영했다기보다는 잠시 얼굴마담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30. 참고로 그의 고향인 칠곡군에 있는 공공 도서관과 군립 도서관 모두 없으나 순심 고등학교 도서관에는 2009년 기준으로 한 권 존재했었다.발견 당시 고서적들 사이에서 방치되어 있어서 별 다른 훼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31. 공교롭게도 그의 사망 이틀 전엔 윤필용 사건윤필용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사망했다!
  32. 영관급 위로 올라갔을 경우.. 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 계급에서는 무한한 쪼인트와 싸닥션으로…
  33. 현재는 세종시로 이전하였다.
  34. 사실 이는 '금고 2년 이상 선고받은 자'는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 때문이다. 사면은 받았으나 실형을 선고받은 신군부 인사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으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법안이었는데 80년에 신군부에서 탄압받는 과정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강창성 사령관도 여기에 해당되었던 것(…). 그런데 안현태 전 경호실장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면서 법안 적용방식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35. 실제 리뷰 내용 중 하나이며 당연히 리뷰 대부분이 장포스의 그 대사로 도배되어 있다. 중간중간 욕하는 리뷰도 있다.
  36. 정말 개소리인게 저 주장대로 장태완이 김재규의 명령에 의해 일으킨거면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장관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명백히 최 대통령을 공격한 것은 대머리 내란수괴이며 장태완 장군은 최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한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