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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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현역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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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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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그냥 냅다 퍼올리게"
SK 와이번스 No.99
정경배(鄭慶培 / Kyeong-Bae Chung)
생년월일1974년 2월 20일
출신지인천광역시
학력창영초 - 대헌중 - 인천고 - 홍익대
포지션내야수(2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6년 2차 6라운드(전체 37번, 삼성)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6~2001)
SK 와이번스(2002~2009)
지도자 경력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2010)
SK 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2011~2011.9.)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2011.9.~2011 시즌 종료)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2012~2013)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2014~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1번
김민우(1994~1995)정경배(1996)정회선(1997~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이중화(1996)정경배(1997~2001)김승권(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6번
정경배(2002~2006)김태균(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9번
정경배(2007~2009)임훈(2010~2013)

1 소개

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현 SK 와이번스 코치. 포지션은 2루수. 등번호는 41번(삼성, 1996) - 9번(삼성, 1997~2001) - 6번(SK, 2002~2006) - 9번(SK, 2007~2009).

2 프로 선수 시절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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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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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출처 : 포토로)

1996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백인천의 팀 리빌딩 주축 중 하나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삼성의 철벽 내야진이었던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로 대표되는 선수 중 하나였으니...

1997년 5월 4일 대구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장문석(1회말)과 차동철(2회말)을 상대로 연타석 만루홈런을 쳐낸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이때 세운 1경기 8타점 또한 2015년 9월 20일 박석민이 9타점으로 경신하기까지 한국야구에서 한 선수가 올린 한 경기 최다타점 기록이기도 했다. 정경배 이후로 12차례의 타이 기록이 나왔는데, 그 중에는 이용규, 강민호, 최정 등이 있었다. 그리고 LG의 천보성 감독은 삼성이 부정 배트를 사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고, 백인천 삼성 감독도 그에 맞대응하며 한동안 LG와 감정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럴만도 한 게 3연전에서 홈런 17개 포함 49점이나 두들겨 맞았으니…. 게다가 정경배의 방망이는 톱으로 잘려지는 비운을 당했다. 하지만 배트 제조사인 미즈노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것. 그냥 갑자기 필을 받아서 방망이가 잘 맞았다는 것밖에......

2.2 SK 와이번스 시절

2001년 시즌 종료 뒤 6:2 현금 트레이드(오상민, 틸슨 브리또김기태, 김동수, 김태한, 김상진, 정경배, 이용훈)로 고향팀SK 와이번스로 이적, 2009년까지 활동했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 4악장에서 가져온 "정경배 정경배~ 안타 정경배~"라는 응원가를 사용했는데 이종범 또한 이 곡을 응원가로 사용하면서 SK와 기아팬들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먼저 사용한 쪽은 정경배 쪽이지만 네임밸류에서 밀려서 안습. 그런데 이 응원가의 원조가 태평양돌핀스라고한다! 94년한국시리즈영상에 나온다고 하는데 찾은사람은 추가바람. 그 외에도 한국시리즈 영상에서 종종 들렸는데 다른 팀도 사용했던 모양이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SK의 타격코치가 되었으며, 2011년에는 2군 수비코치로 시작했다가 김성근 감독 해임 후 1군 코치로 올라왔다. 2012년부터는 2013년까지 수비코치직을 수행하였다. 이만수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코치직을 유지했으나 해가 갈수록 SK 야수들의 수비 능력이 떨어짐에 따라 [1] 희대의 간신배, 공무원이라고 까였다. 팬들 중 일부는 구단 공식 페이스북에 이만수 감독의 퇴진을 주장하며 무능함의 상징 정경배도 함께 잘라달라고 요청하는 상황.

2013 시즌 후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별다른 성과랄게 없었기에 팬들로부터 여전히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는중. 타격이 바닥을 치던 2015시즌 초반에 1군 메인타격코치로 올라가며 김무관코치의 자리를 대신 했다.인고불변의 법칙

정의윤의 활약에는 정경배 코치의 조언이 있었다고 한다[2].

2016년, 인터뷰를 통해 거포를 키우겠답시고 팀 타자를 전원 어퍼스윙 시켰다라는 발언이 나옴으로 인해 다시 또 한번 솩무원이라 까이고 있다. 이명기가 약한 파워를 가지고 주구장창 퍼올려 폼을 완전히 망쳐버린 것에 대한 해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초구 타격률 최상위, 초구 스트라이크율 최상위, 타율 하위권 등 안 좋은 기록은 다 가져가면서 코치의 자질이 의심받고 있다.

그러나 6월 들어 타선이 홈런포를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6월 14일 대구 삼성전부터 1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이 13경기 동안 쏟아진 홈런포가 26개에 달하는 등 그의 어퍼스윙 지론이 적어도 거포형 타자들에게는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이론도 있다. 특히 이 홈런쇼의 중심에 위치한 6월 들어 대폭발한 최승준의 타격폼이 정경배의 작품이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팬들의 여론도 한때 호의적으로 바뀐 편이었으나... 사실 탈쥐마스터카더라 갈수록 심해지는 타격 기복과 함께 뻥야구 아니면 타선이 답이 없어지면서 다시 한 번 여론이 험악해지고 있다.

4 기타

별명은 똘배, 수염을 기른 외모 탓에 (유머1번지에 나올 법한)포졸2, 형저인[3].

대인배적인 선수이기도 한다. 이승엽은 정경배가 한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회상하였고 또 경기에 안 나가더라도 팀이 이긴다면 만족하다고도 말했다.

순수하게 2루수로 커리어를 보내며 은퇴 2루수 중에 박정태, 박종호 다음으로 좋은 커리어를 지녔지만[4] 네임벨류가 떨어져서 언급이 잘 안된다. 이래봬도 박정태도 박종호도 강기웅도 못해본 2루수 통산 세자리수 홈런(딱 100개) 기록자며 박정태, 박종호에 이어 2루수 통산 3번째로 500타점을 넘긴 타자다.[5]

여담으로 이종범과 응원가가 같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6삼성 라이온즈75134.247487211921415.320.296
1997123420.2741152531372661342.440.335
1998123357.23584171115536928.381.287
1999105398.3121241501853751648.485.385
2000102374.289108251123860542.457.358
2001105279.2476919033034237.348.332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2SK 와이번스75153.2814311121419015.405.341
2003119372.272101160125155938.411.337
2004105362.29610723094751243.434.368
2005126427.286122161116349754.405.361
200684205.2104310032119021.302.279
2007116333.2257516145030334.315.295
20083380.200161016708.250.273
20093137.18972003307.243.318
통산13223991.26610622031010052252570432.397.335
  1. 예를 들자면 에러왕이 되어 버린 최정.
  2.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은 듯하다. 정의윤이 인터뷰할 때 정경배 코치의 조언을 받았다는 것을 거의 빼놓지 않고 언급할 정도.
  3. 형저메의 파생별명으로 '형 저 인천고에요'의 줄임말. SK에서 뛰던 선수생활 말년에 노쇠화로 인해 급 저하된 기량으로도 계속 출전하자 인천고 지연, 학연으로 출전하는 거라며 까던 별명
  4. 홍현우, 김성래, 안경현은 순수 2루수가 아니다. 김성래는 89년부터 강기웅에게 자리 내줘서 1루수 커리어가 더 길고 홍현우는 데뷔 4년차까지와 99년, 딱 5년간 2루수였고 나머지는 3루수로 보냈다. 안경현은 1992년부터 김동주가 입단한 1998년 이전까진 3루수를 주로 보다 김동주 입단후에 2루수로 정착했고 말년에는 1루수로도 많이 뛰었다.
  5. 4번째로 500타점 넘긴 타자가 정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