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

Dame Jane Goodall DB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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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동물행동학자, 환경운동가.

1934년 4월 3일생, 어렸을 때 소설을 읽고 아프리카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며, 한편으로는 늙었다는 이유로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을 구해 주는 등 행동력이 높았다고 한다.

195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대학에 갈 돈이 없어서 비서, 영화제작사 등에서 고졸아르바이트를 했다. 1956년 5월 케냐에 있던 학교 친구가 초대를 했고, 케냐로 갈 배삯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한 달 정도 친구네 농장에서 지내던 중, 지역 주민이 구달의 동물에 대한 관심을 알아보고 루이스 리키 박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루이스 리키 박사는 케냐 나이로비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장이었다. 구달은 그의 비서가 되었다.[2]

몇년 동안 비서일을 하던 그녀를 눈여겨 본 리키 박사는 그녀에게 침팬지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추천했고 그 제안에 기뻐한 제인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침팬지 서식지로 떠나게 된다.

헌데 침팬지가 난폭하고도 조심성이 많은지라 몇 개월 동안 모습을 감추는 통에 제인은 매일매일 숲에 가서 침팬지를 찾다가 우여곡절 끝에 침팬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침팬지 무리를 관찰하던 그녀는 차츰차츰 그들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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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 20대 중반

그간 모은 자료들을 기초로 학계에 발표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학위를 따내는 와중에 침팬지들이 위기에 처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침팬지들의 진실에 대한 강의를 여럿 열고 현지 주민들에게 숲과 그것을 둘러싼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숲과 침팬지들의 존속을 인정받게 만든다.

구달은 1962년까지 아무 학위도 없었으나 1962년~1965년에 학사 학위 없이 곧바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이걸 허락받은 사람은 그때까지 8명밖에 없었다.

1964년 사진작가 휴고 반 라윅과 결혼, 아들 휴고 에릭 루이스를 낳았지만 아들이 짐승 흉내를 내는 등 정글 속에서의 생활이 악영향을 미쳐서 남편과 자주 다투다가 결국 10년만에 이혼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1975년에 탄자니아인(귀화한 영국인)인 탄자니아 국립공원 관리자 데릭 브라이슨과 재혼했다.

현재도 침팬지의 존망과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중. 나이를 먹으면서도 침팬지에 대한 사랑과 이해,[3] 지구 생태계에 대한 헌신을 놓지 않고 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다. 구달을 다룬 여러 책에서 구달의 안면인식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4년 8월호에 젊은 시절의 사진과 이야기가 나왔다. 구글링해봐도 관련 항목에 바로 Jane Goodall Young이 뜨니...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0년 10월호에서는 그녀의 침팬지 연구에 대한 심도있는 기사를 내보냈다.

2016년 3월 8일 구글 두들 국제 여성의 날 기념 영상에 짤막하게 등장하셨다.

또,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 수컷 침팬지(...)같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1. 2004년 서훈.
  2. 제인 구달을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와 함께 '루이스 리키의 세 딸'이라 칭하기도 한다.
  3. 그 레벨이 얼마나 흠좀무한가 하면, 구달이 일본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할 당시 연구소의 실험동물 중 연구자들도 까딱하면 골리앗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성질 졸라 드러운난폭한 침팬지가 있었는데 귀한 손님 다칠까 봐 걱정하는 연구자들이 놀랄 정도로 쉽게(?) 그 침팬지의 경계심을 해제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