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1956년 5월 15일1960년 8월 12일[1]1963년 10월 15일
제3대 대통령 선거제4대 대통령 선거제5대 대통령 선거

1 1960년 3월 15일정·부통령 선거

더 자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3.15 부정선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한국 역사상 유일하게 부정선거로 무효화된 선거이다.

자유당은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기도 한 이승만 후보가 4선에 도전하며 나왔다. 그리고 부통령으로는 이기붕이 다시 후보로 출마했다.

야권에서는 진보당 사건으로 진보당이 해체되고 조봉암이 사형된 야권탄압이 역설적이게도 야권을 민주당으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당 당내 경선 결과 조병옥이 단 3표차로 장면을 꺾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장면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2월 15일,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에 건너갔다 죽으면서 2회 연속으로 선거운동기간 도중에 야권 유력후보가 병사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제3대 대통령 선거때와 달리 이때는 제2야당의 후보가 없었던 관계로 이승만의 당선은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부통령 선거도 동시에 시행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 역시 예정대로 치뤄졌다.

그러나 문제는 1960년 당시 이승만은 85세의 고령이라서 임기 도중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는 것에 있었다. 이럴 경우 부통령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는데 1956년의 예를 보아 대통령 유고시 민주당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경우가 충분히 가능했다. 결국 자유당과 이기붕은 대대적은 부정선거를 계획하게 되니 그것이 3.15 부정선거였다. 그 결과는(…)

1.1 결과

대한민국 제4대 정·부통령 선거
구분기호후보명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선유무
대통령선거1[2]조병옥민주당---유세기간 중 사망
2이승만자유당9,633,376100%1당선
부통령선거1이기붕자유당8,337,05979.19%1당선
2김준연통일당249,0952.36%3낙선
3임영신대한여자국민당97,5330.92%4낙선
4장면민주당1,843,75817.51%2낙선

대통령 선거에서 무효투표수는 1,228,896표로 1956년 대선때처럼 죽은 야당후보에 대한 추모표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3.15 부정선거와 이에 맞선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은 붕괴, 이승만은 국외망명했으며 이후 대한민국 국회는 3.15 선거를 무효화했다.

2 1960년 8월 12일의 대통령 선거

3.15 부정선거대한민국 국회에 의해 무효화되면서, 4대 대통령 선거가 다시 치뤄졌다.

제2공화국의원 내각제를 선택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통령 선출은 국민직선제가 아닌 의회에 의한 간선제로 이루어졌다. 당시 상·하원이던 민·참의원 합동투표에 의해 치루어졌으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자끼리 결선투표를 하는 것으로 법에 규정되었다.

특별히 후보가 따로 출마하는 것은 아니고 국회의원간의 자유투표로 아무 동료의원에게나 투표하는 형식이었으나, 당시 절대적인 집권여당이던 민주당 내부에서 윤보선대통령으로 추대하기로 합의된 상태였기에 결선투표는 치뤄지지 않았다.

2.1 결과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득표수순위당선여부
윤보선2081당선
김창숙292낙선
백낙준33낙선
변영태33낙선
김도연25낙선
허정25낙선
김병로17낙선
김시현17낙선
나용균17낙선
박순천17낙선
유옥우17낙선
이승철17낙선
  1. 3월 15일의 선거는 뭐냐고? 위에 있지만 무효처리되었다.
  2. 당시 선거기호는 특별한 부여순위가 있던게 아니라 무조건 추첨이었기 때문에 같은 당 후보인 이승만-이기붕, 조병옥-장면의 기호가 제각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