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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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상비사단 (기계화보병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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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느냐 그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정의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곳에 정의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적진(월남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백마가[1]

대한민국 육군 제1군단 예하 제9보병사단. 일명 상승백마부대. 심볼은 백마.
반란사단[2]

1 역사

6.25 전쟁 발발 뒤인 1950년 10월 25일 28, 29, 30연대로 창설된 사단급 부대. 부대가 창설된 시점에 북한군은 38선 이북으로 밀려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초창기 9사단의 활동은 주로 충청-전라도 지역에 남은 북한군 빨치산 토벌전에 집중되었다. 이때 초대 사단장은 장도영 준장이고 참모장이 박정희. 그런데 장도영 소장부터 6대 최석 준장까지 평균 재임기간이 2달이 채 안된다!! 초대 사단장은 31일까지 단 6일간 재임했다. 2대 사단장인 김종오 준장은 2주 남짓한 임기에 한이 맺혔는지 52년에 8대 사단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이 신편사단은 현리 전투에서 제3보병사단과 함께 포위된 상태에서 부대원 절반 이상이 전사, 실종되는 참패를 당하며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3] 그러나 1952년 강원도 철원의 395고지에서 2배가 넘는 중공군 제38군단과 12차례나 고지를 내주는 공방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떨쳤다. 이 당시 395고지는 온산의 수목이 사라지고 고지가 1m나 낮아질 정도로 수많은 포격을 당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하여 이 전투를 백마고지 전투라 부르게 되었고, 9사단 역시 백마부대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과 함께 파병된 3개 전투사단중 하나로서, 이후의 명성과 지명도에는 베트남에서 얻은 것도 한 몫 한다. 원래는 부대마크 자체도 간지나게 생긴 덕분에 해외 군사연구자양키 밀덕들에게도 화이트 호스(White Horse)라고 불리며 유명해진 듯하다. 같은 의미로 백마와 함께 블루 드래곤(청룡부대)나 타이거(맹호부대) 등등도 해외 군사연구자들이 한국군이라 하면 떠오르는 부대들이 되었다.

실전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다고 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상승(常勝, 항상 승리) 칭호를 받았다.

창설 초기는 루비마크로 루비부대로 불렸고, 백마고지 전투 이후 백마로 변경되었다.

2 12.12 군사반란 투입

12.12 군사반란 당시 사단장이 전두환의 절친 보통사람 노태우였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쿠데타에 동원되었다.

사실 반란군들의 원래 계획은 특전사보안사 만으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었으므로 아무리 사단장이 반란에 가담하고 있었더라도 부대 자체는 반란에 직접 동원되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계획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지체되어 결국 사태가 발각되고 육군본부와 수경사가 전투부대를 투입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려하자 노태우가 전방에 배치되어있던 9사단 예하 29연대를 동원시켜 중앙청임의로 재배치한 것.
심지어 이는 12.12를 주도하던 전두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위기를 직감하고 노태우가 혼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원래는 보안사령부, 헌병, 특수전사령부 외 나머지 일선 부대장들은 유사시에만 자신의 부대를 호출하기로 되어있었다. 때문에 일반 전투부대장 중에 12.12사태 초반에 예하병력을 불러온 이는 노태우와 국방부·육군 분부를 점령한 당시 1공수여단장 박희도 정도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12.12 군사반란은 하룻밤만에 대성공했고, 노태우는 이 반란의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예하병력을 동원한 덕에 이후 제5공화국정부에서 승승장구하여 결국 정권의 2인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이는 결국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초석이 된다.

무엇보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최전방 부대를 부대장이 제멋대로 전용하였다는 점에서 가장 치욕적인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진압군 측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전방부대를 차출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었다.[4] [5] 게다가 최전방 부대는 모두 한미군사동맹협정에 따라 주한미군 사령관의 허가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 더군다나 당시 9사단 참모장이었던 구창회 대령은 사단장 명령으로 출동시킨 29연대를 철군시키라는 제3야전군 사령관 이건영 중장[6]의 명령에 연대 출동 안합니다며 상관을 속이고 명령 불복종을 저질렀다. 그러므로 애초에 기본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해버린 행동이다. 어차피 반란 상황이었지만… 이 사람 역시 육사 18기 하나회 소속이며 기무사령관과 대장계급으로 3군사령관으로 재직 중 93년 4월에 하나회 숙청으로 전역당했다.

3 특징

3.1 부대마크

외곽의 삼등분 된 백색 원형은 결백숭고한 백의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강철같은 단결을 의미하며 3개의 전투부대(도깨비, 황금박쥐, 독수리)가 단결됨을 상징.

청색 바탕은 평화, 대한남아의 백절불굴의 기상, 항구불변한 우국충정을 상징.

백마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발휘한 감투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최선봉이 되어 백두산 연봉을 향하여 용약 돌진함을 상징.

-백마 신병교육대대 제공 훈련병 가이드북 中 발췌-

2006년부로 시인성이 높은 각 부대의 전투복 부대마크를 위장색(검은색, 검녹색)으로 교체하였는데, 백마부대의 경우 검은색 바탕에 우중충한 색깔의 백마, 그리고 검녹색 띠로 바뀌었다. 병사들은 농담삼아 흑마라고 부른다. 원조 쪽이 더 멋진지 전역하는 병사들 중 상당수가 흑마 대신 백마 마크를 전투복에 박고 나간다.

별 쓸데없는 특징이지만 말갈기의 뾰족한 부분이 9사단답게 9개라고 한다.

3.2 경례구호

부대 경례구호백마다. 죽어라고 악을쓰는 경례의 특성상 희안하게 변질된다.때문에 여기서 훈련 받고 다른 사단으로 배치받는 병력들 중 개념이 없는 병사들은 사단에 도착한 첫날에 씩씩하게 백마라고 경례하고 고문관 확정되는경우가 있다(...) 또 습관이란게 그리 쉽게 고쳐지는게 아닌데다 가장 흔한 구호가 '충성'이다 보니 백마라고 하다가 중간에 아차싶어 정정하다 스스로 백성임을 자처하는 왕국민들이 종종 탄생하곤 한다(...)

경례구호를 강하게 발음하면 빽마, 팽마, 더 나아가 흑마로까지 들리는 괴현상 때문에 경례구호는 우렁차면서도 정확하게 할 것을 추천한다. 사실 장교들도 쉽게 구분을 못하기 때문에 병사들끼리 장난 칠때는 뱅마, 얌마(야 임마), 뭠마(뭐? 임마)까지 나온다... 1호지간으로 경례구호를 해야 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3.3 유명세

전국에서 대통령 부대표창을 가장 많이 수상한 부대이다(15회 수상).

대한민국의 유명한 메이커 부대 중 하나이며, 호국훈련이나 KCTC 훈련 등이 연례행사로 둘 중 하나는 꼭 있고, 그 외 각종 훈련들을 군생활 내내 즐길 수 있다.[7]

그리고 아마도 대한민국 군부대 중에서 가장 영상물에 많이 등장한 부대일 것이다. 소설이자 영화화되어 유명한 하얀전쟁에서 주인공이 몸담는 부대인 것은 물론, 머나먼 쏭바강(1993년 SBS)에서도 주인공의 소속부대로 나왔다. 그리고 하필이면 12.12쿠데타군의 선봉으로 출격한 탓에 MBC 드라마인 제5공화국 등 12.12를 다룬 드라마나 영상물에서는 반란군으로 나온다.(…)

2013년 MBC 일밤의 2부 코너인 진짜 사나이에서 출연자들이 군생활을 체험하기 위한 첫 자대배치를 이 곳으로 받았다. 그동안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리얼 병영 체험 스타일의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군부대 촬영 섭외가 쉽지 않았을텐데, 아마도 MBC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일산 드림센터에서 이뤄지다 보니 근방에 가장 섭외가 용이한 부대라서 처음 선택한듯 하다.

1989년 여름 첫 방송을 시작했던 "우정의 무대" 1편도 백마부대에서 시작했으니 공중파의 단골손님 부대... [8]

Tvn 시트콤 푸른거탑도 백마부대 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였다. 또한 초기 푸른거탑에서는 백마부대 마크를 단 군복을 입었다가 3화부터는 마크를 바꾸었다.

2009년 부대에는 역대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사단이라는 자체광고도 있었다. 물론 그 중 한 명은 대통령직이 박탈당했다.

3.4 신병교육대

306보충대에서 분류 이후 신병훈련소가 9사단이라고 되어있다면, 일단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를 바란다. 겉으로 내색은 금지! 다른 데 가는 애들에게 미안하잖아.

2007년 말에 완성되어 200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말그대로 초A급 훈련소가 기다리고 있다. 명품 백마신병교육대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다. 정훈 교육장에는 에어컨이 있고 훈련병 주제에 정수기 물을 마실 수 있으며, 1개 소대 가량을 소화할 수 있는 세면장(이 세면장에 세탁기가 비치되어 있는데 보통은 훈련병과 동숙하는 조교들이 사용하나 건의 등을 통해 단체로 세탁할 만한 보급품을 세탁할 수도 있다, 중대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과 2개 분대 가량을 소화할 수 있는 샤워장, 그리고 2개 소대 가량을 소화할 수 있는 화장실이 중대당 2군데, 게다가 관물대고 뭐고 죄다 새것이다.[9] 물론 방탄 같은 개인 장구류는 아니지만... 훈련병 내무반은 구막사 스타일이지만 조교들은 신막사 스타일로 되어있다. 하지만 훈련기간 중에는 조교가 훈련병과 함께 숙식을 해결한다. 그리고 훈련병에게 자기를 시간 맞춰 깨우라고 한다.(...)[10]그래도 부조리가 많이 없어졌다 보니 생활하기는 좋은 편이다. 신병교육대라면 으레 따라온다는 욕설조차 개념찬 신병교육대 대대장이 금지를 먹여놓은 상태다.[11] 물론 그렇다고 성깔 있는 녀석들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9사단 신교대 출신의 말에 따르면 취사장 시설이 좋은건지 취사병들 실력이 좋은건지 밥도 어지간한 부대보다 맛이 괜찮다고 한다. 만약 자대가 9사단이고 보충대에 배치된다면 갈수록 좋아지는 시설(306보충대-9사단 신병교육대-후반기 교육)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물론 2X연대는 제외하고. 야! 신난다~(보충대는 신병교육대에 비해 하는 일은 매우 적지만 같은 막사를 사용하고 있다).

안 좋은 점이라면 정수기는 배치되어 있지만, 부지런하지 못하면 냉수를 마실 기회가 적다. 그리고 청소 담당구역이 로테이션으로 돌아가지 않는 소대도 있다. 지못미. 하지만 힘들땐 306보충대에서 지낸 3일을 생각해보면... 저놈의 몸에 절로 생기가 돌아온다!!!

9사단 신병교육대의 특징은 바로 일산신도시 시가지 근처 고봉산 밑에 있다는 것. 특히 훈련을 위해 다 해진 훈련복 입고 수십 명의 훈련병이 몇 미터 되지도 않는 횡단보도를 일사분란하게 건너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훈련장 가는 길에서 9사단 신교대를 거친 인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가장 힘든 길은 황금박쥐고개인데 상당한 경사길로 이루어진 언덕이다.훈련장까지의 길은 꽤 먼 편이지만,걷는 것 졸라 싫어하는 신병들에게는 논산 훈련소에 비하면 천국인 편.

분대장 교육도 이곳에서 받는다.[12]

3.5 동기 제도

1개월 동기제도 아닌 1년 동기제 [13]를 실행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2014년도 1월에 입대해서 상병 된 병사가 2014년도 12월에 입대한 이등병과 동기가 된다는 이야기. 반대로 2015년도 1월에 입대한 병사는 2014년 12월 병사와 선후임인 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14]
육군전체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9사단을 포함한 몇몇 1군단 예하 부대가 시범운용하고 있다. 현 동기제 생활관에서 소대별 생활관으로 회귀하기위한 조치임. 동기제 생활관을 운용함에 있어 전투력 유지가 어렵고 군기강이 해이해져 상병장이 되어도 주특기나 병기본에 미숙한 인원이 많아진 것이 원인이다. [15] 상병장이 상병장 생활관을 청소하고 있을 때, 일이등병들은 눈치볼 일이 없으니 생활관 개판인 상태로 누워서 티비보고 있는게 가능하단 소리다.
다만 이는 9사단 부대 사이에서도 대대별로 다르며 3, 6개월 동기제를 시행하는 부대도 존재한다. [16][17]

3.6 하위 부대

  • 육군 연대급 이하 부대는 고유명칭(예 ; 육군 제 1보병연대)을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통상명칭(예 ; 육군 제3260부대)이나 애칭(예 : 한라산 부대)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주둔지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 또한 작성할 수 없습니다. 내용 작성에 주의해 주세요.

사단본부/사단 직할대
도깨비 부대
황금박쥐 부대
독수리 부대
백호 부대 (포병 연대)

- 제7095부대
- 제7263부대
- 제7052부대
- 제8293부대

독수리부대와 황금박쥐부대는 강안 경계를 맡고있어, 대대 규모[18]로 순환.
강안경계 항목 참조.

GOP와 마찬가지로 내륙부대로 복귀함과 동시에 근무일수에 비례해 보상휴가를 받는다. 독수리 부대 기준으로 투입후 3개월이 지나면 1박이 생기고 그 다음달부터는 한달에 1박씩 적립이 된다. 2015년부터는 투입 첫달부터 2박 3일씩 준다. 강안에 있다보면 외박 금지는 물론 휴가도 근무 인원이 안 나오면 제한될수도 있다. 그래서 내륙부대로 돌아오면 모든 중대의 1/3~1/4정도가 돌아가면서 휴가를 한꺼번에 나갔다 들어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보상휴가이니 정기휴가에는 없는 TMO는 덤.

그래서 강안을 가지않는 부대가 좋냐고 한다면, 그만큼 훈련으로 갈군다. 입소해서 퇴소할 때까지 산만 죽어라 탄다. 신병교육대에서 30km 행군을 하품하며 돌았다는 인간들이 여기 훈련 한 번 받고 발에 잡힌 물집 때문에 일주일 내내 죽는 시늉을 내었다는 말도 있다.

포병연대는 보병 연대들에 비해서 군생활이 상대적으로 덜 피곤한 편이다. 피곤한 것이지 절대 편한 것이 아니다 행군도 혹한기, 유격 훈련간에만 실시하며 강안 경계나 수많은 훈련들도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전방에 위치한 포병 대대들에게는 즉각대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대대별로 돌아가면서 즉각대기를 하며 즉각대기가 있는 날이면 사필요원들인 포수, 탄흔분석조, FDCFriday Dance Club들이 많이 바빠진다. 그렇다고 나머지 비사필요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게 아니다. 포수나 탄흔분석조들이 즉각대기 때문에 바쁠 때 나머지 행정병이나 운전병 등 비사필요원들은 모두 초병으로 투입된다. 이럴 경우 주간에만 근무를 2~3번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인원이 절대적으로 적은 독립포대의 경우 거짓말 안하고 하루 종일 초병만 서게된다. 즉각대기는 현 수준에 따르므로 독립포대의 경우엔 지금 수준이 무엇이냐는 말을 많이들 묻는다.

포병 특히 독립포대는 부대의 면적이 넓은데 비하여 병력수가 적기때문에 경계근무를 많이 선다. 취침시간(8시간)에 누구도 예외없이 반드시 한번씩 야간경계근무를 서야한다. 최소 1.5~2.0시간을 취침시간중에서 경계근무를 선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취침시간이 아니면 보통 말뚝경계근무를 서는 경우가 많다. 오전내내, 오후내내, 저녁내내 이렇게 교대하지 않고 경계근무를 선다. 그리고 취침시간에 또 근무는 누구도 예외없이 선다. 이것도 부대마다 천지차별. 어떤 부대는 주간에도 매시간 교대를 하니 근무에 들어가야할 운전병들이 운행에 나가 없어서 타 운전병 혹은 정비병이 대신 투입되는 경우도 흔하다. 후교대는 덤 서무계 근무 제대로 안짜냐?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보통 특수 차량을 담당하는 운전병과 분대당 A급 운전병 한명씩은 주간 근무에서 제외된다.

2016년부로 7263부대, 7052부대, 8293부대는 막사를 신막사화 하였거나 리모델링을 한 상태이다. 하지만 7095부대는 그런거 없다. 시설도 많이 낙후되어있다. 오죽했으면 9사단 본부에서 온 간부가 부대를 방문하고서 한 말이 "아직도 9사단에 이런 곳이 있어요?" 라고.. 특히 이 부대에 한 병사가 직계가족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병사의 아버지가 아들 면회로 부대에 방문했을 때 한 말이 "내가 근무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이 병사의 아버지가 80년초에 근무하신 걸 감안하면 2016년 현재까지 똑같다고 생각하면 흠좀무... 결국 2012년경 사단 본부에서 위로차 7095부대 안에 풋살장 건설을 지원했다. 타부대에서도 많이 와서 풋살장을 이용하는 모양.

3.7 훈련 전투성과

KCTC에서 최초로 3참호까지 돌파했던 사단이다. 백마부대 소속 산하 부대(2009년 11월)가 KCTC 훈련에서 최초로 돌파하였다. 당시 모 병사(그것도 이등병)가 야간 전투상황이 발생했는데 혼자서 전갈부대원 11명을 사살하는 기염을 토했다. 말그대로 레알 전쟁영웅. 이에 대해서 훈련도중 특작조임무로 숲에서 숨어 대기하고 있는데, 전갈부대원들이 앞에서 한명씩 지나가서 한명씩 죽이다보니 11명이나 죽였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 하지만 전역하면 부질없는 짓,그리고 선임을때리고 휴가를 빼앗겼다고한다.....

4 여담

  • 파주-고양 지역 개발이 활발한 탓에 육군 전체의 군사보호구역 협의 건중 20%가 넘어간다고 한다.
  •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던 시절에 지어진 사격장 주변에 각종 건축물이 들어선 탓에 관련 민원도 많은 편이다. 사단사령부 주변은 거리가 제법 된다고는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아파트 밖에 안보인다. 모 연대 주둔지는 병사들이 뭐하는지 하나하나 보일 정도로 주변 아파트들이 가깝다.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를 마주한다.
  • 백마부대는 과거 베트남 전쟁 관련 드라마였던 머나먼 쏭바강 등으로 이미 대중에게 베트남 전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대인데다가, 작가 안정효가 이 부대 출신으로 월남전 파병을 갔으며, 그의 소설 하얀전쟁의 주인공들 역시 작가처럼 백마부대였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는 가장 무난한 선택이기는 했다. 하얀 전쟁이란 제목도 백마부대란 이름에서 나왔다.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 및 동명의 원작소설 역시 작가 박영한이 참전하여 직접 겪은 일을 소설로 집필한 것이다. 소설가 등용문
  • 2008년도에는 대통령을 3명(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배출한 사단이라고 홍보했던 문구가 각 생활관 별로 붙여있었다.
  • 2013년 9월 16일 월북을 시도하던 40대 남성을 사살했다. 철책 인근에서 서성이던 해당 남성을 발견, 군 작업인원이나 인근 지역의 농민인지 확인하려 했으나 이내 그 남성이 철책을 넘었고 귀환하라고 수 차례 경고하였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남성은 남한 출신임에도 일본에 난민 망명을 신청했는데 일본에서 거부하자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5 출신 유명인물

소장 시절 사단장을 역임.
소장 시절 사단장을 역임.
중령 시절 사단 참모장을 거침.
윤석양 씨와 함께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또 한명의 내부고발자이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28연대 소속 보병소대장이었던 이지문 당시 중위는 이전까지 군인 표는 모두 여당표라는 공공연한 비밀을 처음으로 폭로한 사람으로, 이로 인해 군 부재자 투표소 영외 설치와 군 내부 인사고과에서 비밀리에 반영되던 투표율 조사 등을 종식시켜 군의 정치 중립성을 쇄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표의 공명성을 더해 대한민국 민주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
대령 시절 29연대장을 역임.
본래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대를 목표로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가 깜박 잊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바로 영장이 날아와서 현역으로 입대했다고 한다(...).
대령 시절인 1970년 29연대장을 역임.
보병제9사단 대대장 및 작전참모, 국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준장 예편, 대통령비서실 보좌관,대통령 정무 제1수석비서관, 미국 헤리테지 연구소 수석연구원, 현대사회연구소 소장, 제14대 국회의원(경북 포항 북구)무소속, 제15대 국회의원(경북 포항 북구)무소속
대령 시절 29연대장을 역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당한 후 여기에서 현역으로 복무를 마쳤는데, 보직은 81mm 박격포병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훈련소에 있던 시기에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2군 구장이었던 원당 야구장을 거쳐서 행군을 했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야구장 뒷산쪽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군면제 혜택의 일환으로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교육을 받고 퇴소함링크국대차출사건
  1. 원곡은 월남 파병가로(당장 위에 영상만 봐도 알수있다). 현재 가사를 수정한 버전은 사단가보다 9사단 내에서 더 자주 불린다.
  2. 어원은 12.12 군사반란. 가끔 항명을 때리는 후임이 있으면 사단에 반란의 기운이 있어서 그런다고 농담조로 애기한다. 물론 해당 후임은...
  3. 당시 사단장 최석 준장이 계급장을 던져버리고 숨어버리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 패전 자체가 한국에선 흑역사라 잘 안 알려져 있지만. 그나마 욕을 덜먹는게 당시 군단장이었던 유재흥장군의 판단 미스 및 돌+아이 삽질 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4. 5공화국에서도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설마 그놈아들이 전방부대까지 빼오지는 않겠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5. 아이러니하게도 12.12직후 신군부가 계엄령을 유지시킬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북한의 남침이었다.
  6. 당시에는 중장 보직이었다. 지금은 대장 보직.
  7. 6월,8월, 12월 빼고 매달이라고 보면 거의 맞고 11월은 연대마다 틀리지만 보통 진지보수공사로 훈련을 대체함
  8. 예능프로그램 게스트라면 거의 반고정 게스트쯤 될 것같다.
  9. 그렇다고 고장난 게 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니 알아둘 것.
  10. 훈련병보다 늦게자고 일찍 일어나고 심지어 근무도 나간다.
  11. 사실 이 분이 좀 흠좀무한 분이라서, 지금의 신교대 분위기는 이 분이 혼자 구축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대장 취임하자마자 조교와 교관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는 날 잡아서 죄다 불러놓고 "너네 훈련병 때, 조교들 보며 '아, 나도 저딴 식으로 욕설하고 애들 쥐어 패는 조교가 되어야지~!'하고 조교 됐냐?"라고 일갈하고, 막사 내 분위기를 신막사 스타일로 싹 갈아 엎으셨다.
  12. 아침 점호때 맨 왼쪽에서 밍기적대는 무리가 있으면 애네다.
  13. 속칭 연간동기제.
  14. 어차피 2015년 1월입대자보다 2014년 12월 입대자가 선임인걸 감안해도... 이등병하고 아버지군번인 상병하고 동기먹는건... -_-;;;;
  15. 상/병장이 되어서도 주특기나 병기본에 미숙한거면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면 이른바 '짬밥을 똥구녕으로 쳐먹었냐?'는 소리를 듣는다. -_-;;;;
  16. 그 예로 신병교육대대와 사단본부 의무대의 경우는 월동기제를 시행한다. 타 연대에서 외진을 가는 병사들이 보면 가끔 놀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는 모양.
  17. 그런데 이거도 이제 옛말인게 사단내에서 전부대의 동기제를 통합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제는 전부 같은 1년동기제가 될예정.
  18. 수송대, 의무대같은 일반 보병대대에는 없는 자원을 지원받는다. 주로 연대본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