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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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국(曺國)
출생1965년 4월 6일
출생지부산광역시
본관창녕 조씨
신체185cm
학력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직업대학 교수
가족부인과 1남 1녀
링크트위터

1 개요

부산 출신.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울산대학교 법대, 동국대학교 법대에서 강의하였다. 2002년부터는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학부로 적을 옮겨 현재 동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자로서의 전공은 형사법. 그리고 부산 출신 답게 진성꼴빠다...(...)

1982서울대 법대 입학[1]
1989-90석사장교 복무
1992울산대 교수 (최연소 임용[2][3])
UC 버클리 박사 후 귀국
2000동국대 재직
2001서울대 법대 임용

2 정치 성향

반독재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는데, 1980년대말에는 서울대 82학번 동기생인 진중권(!?), 이진경[4], 이창휘 등과 함께 서울사회과학연구소를 만들어서 학생운동 PD그룹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당시 진중권, 이진경과 함께 '주체사상비판'이란 저서를 통해서 말그대로 '주체사상'의 반지성주의, 맹목성, 정신승리론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전직 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인 김성주와도 서울대학교 1982학번 동기인데, 김성주 의원에 대한 글을 최근 페이스북에 업로드 하여 주목받은 바 있다.

이수성(정치인) 서울대 법대 교수의 지도로 대학원에 다니던 도중에 박노해, 백태웅이 주도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약칭 사노맹) 사건에 가담했다. 이 때문에 후에 1993년 5월, 울산대 교수로 재직중에 구속되어 11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현직 교수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례적인 사건이어서 서울대, 울산대, 민교협 교수 1000여 명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유학길에 올라 박사학위를 받는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소위 '강남 좌파'의 대표자 격으로 언론매체상에 오르내리지만 그 전에는 비주얼로 유명했다. 서울대학교의 비주얼 담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유학 당시에는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집안일까지 하는데 너는 뭐냐' 식으로 한인 부부들의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고도 한다.

성향은 상당히 진보적. 일례로 강간죄의 '폭력'의 의미에 대해 학계의 다수설은 최협의, 즉 '항거곤란한 유형력의 행사'로 보고 있으나 조국 교수는 협의, 즉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보고 있다. 김보은 양 사건에서도 긴급피난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국 교수의 주전공은 형사소송법이며 긴급피난 역시 형법관련 쟁점이다.

사법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말이 많지만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야합해서 소위 육법당으로 군사독재정권을 지탱해나가는 정치현실을 보고 판사에 대한 꿈을 버렸다고 한다.

종종 조국(祖國)의 의미로 말장난에 쓰이기도 한다. '조국은 내 친구다'라든가...[5]

2012년 정규재 TV '아 나의 조국' 편에서 통계를 잘못 해석한 조국 교수의 무지에 대해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실장의 공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2012년 대선 이후 소설가 공지영과 함께 지나친 정치 성향과 무지에 대한 직접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 트위터 등에서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팬심을 여러번 나타낸 적이 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직 야구장에서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6월항쟁의 불길을 당긴 박종철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대학교 선배이기도 하다.근데 나이로는 동생이다. 박종철은 1982년 혜광고 졸업후 재수하여 서울대 입학했고, 조국은 1982년 혜광고 졸업후 그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따라서 고등학교는 동창이고 대학교에선 선후배 관계. 출생년도와 학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년 빨리 대학에 입학했다. 본인의 저서에 적힌 바에 따르면 지금처럼 유치원 단계의 보육시설이 많지 않던 시절, 또래들이 학교에 가는 시기가 되자 본인 역시 학교를 따라가게 되었고 입학연령이 맞지 않았지만 또래들과 같이 있기 위해서 수업을 받게 되었고 학교 측도 1년간의 수업과정을 잘 밟는 모습을 보며 2학년으로 월반시켜주었다고 한다.[6]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시구 당시 착용했던 운동화가 외국 브랜드 아식스 것이라며 비판했다. 네티즌들이 같은 아식스를 박원순 서울 시장이 신을 때는 왜 지적하지 않냐고 반문하자 공식 석상에선 좀.. 이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기사트인낭

3 논문 표절 논란

변희재동아일보의, 파상공세라고 해도될만큼 집중적인 논문 표절 의혹 제기로 곤욕을 치뤘다. 서울대 석사논문에 대해 제기된 표절 의혹은, 서울대는 일부 부적절행위는 있지만 미미한 것이며 부정행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버클리대 박사논문에 대해 제기된 표절 의혹은, 버클리대와 서울대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동아일보는 조국 교수의 버클리대 박사논문 문제에 대해서 승복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조국 교수의 학술지논문들에 대해서도 시비가 일었으나 서울대는 역시 별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마치 법무부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를 미리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한 인터뷰에 따르면 조국 교수도 검증 자체는 쿨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일단 공방을 지켜보면 될 듯.

일부 잡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면 안되는 것이, 조국 교수는 2015년 국내 학술지 논문 피인용 횟수에서 법학 분야 1위를 차지한 학자다. 물론 논문 피인용 횟수가 많다고 해서 곧바로 위대한 학자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7], 대략의 연구 성과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인 만큼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8] 변희재저 피인용횟수 문제도 까고 나섰지만, 조국 교수에 대한 최악의 스토커(?)조차도 조국 교수가 논문을 활발히 발표해온 학자라는 것만큼은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문단에선 지나칠 정도로 편파적으로 서술했으나, 조국 교수의 논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전혀 아니다.

서울대의 조국 교수의 논문에 대한 판결은 다음과 같다.

  1. 합계 15군데에서 거의 동일한 문장을 사용하였음에도 인용표시를 하지 않았다
  2. 연구부정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
  3. 그러나 적절한 인용표시 없이 타인의 문장을 사용한 행위는 연구부적절행위에 속한다

연구자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연구결과를 왜곡하는 행위는 연구부적절행위에 해당된다. 서울대학교 연구지침

4 여담

여담으로 굉장히 호리호리한 장신에 목소리도 상당히 중저음톤에 어체도 공격적인 편이라 사진만 보고 훈훈함을 기대했다간 포스에 눌리기 십상... 하지만 일단은 상당한 훈남. 캠퍼스를 걷고 있으면 타 과 여대생들도 저도 모르게 안녕하세요 하고 눈인사를 하게 된다는 증언이 있다. 그 여학생들이 공대에서 법대까지 왜 걸어내려왔는지 신경쓰면 지는 거다

젊을 때도 엄청나게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본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괴로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크게 신경쓸 일이 없었는데, 대학 입학 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화장실에 갔다오면 자기 자리가 여학생들의 많은 고백쪽지와 캔커피 같은 작은 선물들로 깽판엉망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에 큰 충격을 받고 오히려 자기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에 약간 소심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부인을 만난 건 그런 쪽지를 보낸 여학생들과 달리 부인이 직접 다가와서 커피 한잔 하자고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교제가 시작된 것이라 한다. 역시 직접 말해야 되는 구나 잘생기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안생겨요

오상방위 관련해서 흑역사가 있다. 트위터로 "조국에게 오상방위란?"이라고 묻는 순간 바로 차단할 정도의 흑역사. 서울대 커뮤니티가 시발점이고 조국교수 본인도 위에 대하여 부인한 적이 없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명백한 허구이다. 정작 사건이 일어났다던 해당년도 2학기에 형법개론 수업을 한적이 없다. 그리고 조국 교수에게 무슨 원한인지는 몰라도 위키에 잘못된 내용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역시 너고소가 답인가? 경찰서 정모는 진리

이 잘못된 내용은 강용석의 인터뷰(박용팔 인터넷 신문사)로 크게 알려졌는데, 당시 장하성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함께 까다가 몰매를 맞았던 인터뷰. 장하성, 박원순을 깐 후에 양념삼아 조국 교수도 깠는데...
  1. 초등학교를 2년 일찍 들어가, 서울대 입학 당시 만16세 11개월
  2. 임용 당시 만26세 11개월
  3. 지금은 박사 학위 없이 교수 임용되는 것이 극히 드물지만 90년 전후만 해도 서울법대 석사 정도면 지방대 교수 임용이 충분히 가능했음
  4.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 에서 따온 필명이며 본명은 박태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으로 1987년《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이라는 당대 좌파운동권의 이론가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5. 아닌 게 아니라, 조국 교수의 트위터 계정 이름도 라틴어로 '나의 조국'이라는 뜻이다(...).
  6. 현재는 정확한 주민등록체계와 입학 연령 규정준수에 따라 이런 상황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60-70년대 행정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유치원 같은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종종 일어나는 일었다. 가수 김창완 역시 이러한 케이스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7. 국내 학술지들의 경우에는 학술지간 인용 맞교환같은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등 공신력에서 문제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8. 실제로, 연구실적을 보면 전공논문을 의외일 정도로 많이 써 내는 교수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논문이라는 것이 개수가 능사가 결코 아니기는 하지만, 논문 자체를 도통 안 쓰는 법학교수도 허다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