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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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독립장(單章)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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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趙炳玉, 1894년 5월 21일 ~ 1960년 2월 15일)

1 소개

대한민국독립운동가, 교육자,경찰, 정치가. 호는 유석(維石). 충청남도 천안 출생이다.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진압을 주장하여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도록 한 자이기도 하다.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2 생애

2.1 조선 말기 ~ 일제강점기

숭실중학교, 배재전문학교(이 때, 한자 시간강사를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고는 1925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받고 귀국했다. 1919년 4월, 아버지 조인원은 유관순의 아버지와 함께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지휘했으나 에 맞아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조병옥은 아직 유학중이었다.[1]

1925년 신간회 총무부장을 맡아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빌미가 된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 당국을 규탄하는 대회를 열어 한용운 등과 함께 배후 혐의로 수감되어 년간 옥살이를 했다. 1932년 조만식과 함께 경영난에 시달리는 조선일보 인수운동에 참여하여, 조만식이 사주가 되고 그는 조선일보 전무 겸 영업국 국장이 되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2년간 복역하였다. 이후에는 보인광업회사를 경영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한편으로는 일제말기에 부역 혐의가 있다고 손가락질 받기도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지나친 지적이다. 조병옥은 수양동우회 사건때 전향서를 쓰고, 광산업을 불하받으면서 거의 칩거생활 지내다시피 했었다. 조병옥이 가장 부역혐의를 받는것이 1941년 '임전대책협의회'라는 총독부 관제 단체에 참여해 내선일체를 지지하는 강연을 1차례 했다는것이 전부인데, 그런거 1~2건 정도로는 '친일파'라고 단정짓는데 상당히 무리가 있다. 조병옥이 일제말에 반대급부로 광산업을 불하받고 지냈다는것으로 통해 보면 그가 전향서쓰고[2] 편하게 지냈다는점으로 사람들로부터 '유휴분자'라고 비난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3]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하는데는 너무 지나친거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해도 적극성,지속적으로 수십여 차례 활동했는지 여부를 따져야한다.

2.2 미군정

광복 직후에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한민당으로 활동하면서 안재홍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맹렬히 비난했는데, 조병옥은 한반도에 막 입성한 미군 고위 장교들에게 '여운형과 안재홍이 이끄는 건준위는 일제 총독부로부터 돈을 받아먹은 친일파 집단'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4] 이에 대해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송건호는 '조병옥을 비롯한 한국민주당세력은 전형적인 기회주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역사왜곡을 주도한 집단'이라고 대차게 비판했다.

미 군정기간에 군정청 경무국 국장으로서 치안을 담당했으며, 4.3 사건서북청년단을 보내 진압하게 한 것이 훗날의 비판을 샀다.[5] 또한 이 기간에 친일경찰 채용파동이라고 친일경찰을 그대로 등용할 것을 주장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가 남긴 명언은 그들은 pro-jap(친일파)이 아닌 pro-job(전직)[6] 사실은 조병옥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의 기틀을 제대로 잡는다거나 인력이 필요했던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친일파를 어느 정도 기용하고 받아들이긴 했다. 조병옥을 포함한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국제사회/현실의 쓴맛을 알면 잘 알았지 결코 민족주의/사회주의 등에만 경도되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2.3 대한민국 제1공화국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을 포기하고 포위된 대구내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버티었다. 인천 상륙 직전 인민군의 9월 대공세때 빨치산및 일부 정찰대의 대구 시내 포격때도 피난을 가지 않고 대구역을 비롯한 대구 각지를 돌며 피난을 막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열변으로 민심 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잠시 자유당 소속이 되었으나 이승만6.25 전쟁 포로 문제를 병맛스럽게 처리하자 이를 비판, 상대편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폐인이 될 뻔한 적이 있었고 붕대를 감은 상태에서 체포돼서 곤욕을 치루었다. 1990년대말 당시 테러에 참가한 KLO 출신의 이창건의 수기가 발표되었다.(조박사 테러 관련은 138페이지) 이 수기에 따르면 테러는 경찰서장이 혼내주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 최종적인 목적은 조박사도 일부러 자기 집을 부수어 달라고 했고 약간 손을 봐줬다는 이야기다.흠좀무. 이걸 믿느니 북한군의 광주개입설을 더 사실적으로 믿을 정도이다. 자국의 극우반공인사이자 유명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좌익(혹은 이라고 간주되는 사람)이나 타인들에게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생각하면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다(사실 조병옥도 제주 4.3 사건 강경진압한걸 생각하면…). 참고로 KLO는 조선일보 기고에서도 조박사 테러를 아주 아주 자랑하고 다녔다.

그는 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하여 민주당 구파가 되었다. 이후 당권을 민주당 신파의 리더 장면에게 넘긴다는 조건으로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대적한 야당쪽 대통령 후보로 나왔는데(장면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병이 나서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수술 중 사망하였다.

후보등록을 하고 나서 위병이 심해져서(이미 위병과 다리병 증세가 있긴 있었는데 비밀로 붙였다고 한다)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으로 가서 복부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발병증으로 사망. 2월 12일까지만 해도 증세가 회복되고 있었고 건강상태가 상당히 양호했기 때문에 병원측 대변인도 "뜻밖의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

신익희도 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가 선거를 앞두고 사망[7]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병옥의 죽음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선 이승만이 암살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다고.[8] 암튼 이 때문에 이승만은 단일후보로 자동 대통령에 당선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3.15 부정선거가 일어났다(...)

3 자녀

전직 국회의원인 조윤형조순형의 친부이기도 하다.

4 매체에서

해방 전후와 50년대를 풍미한 보수정객인만큼 미군정기~제1공화국 시기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거의 준주연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MBC 제1공화국(드라마)에서는 김무생이 맡아서 카리스마와 간교함(...)을 같이 겸비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좌익을 잡기 위한 활동이나 이정길이 분한 장택상과의 권력 다툼 연기는 간신배 연기의 절정.

드라마 제2공화국(드라마)에서는 병원에서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담당 배우는카멜리아 호텔 회장 김성원.

무풍지대에서는 양택조가 담당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방영한 제2공화국에서는 양택조가 신성모 역으로 나와서 김성원이 담당한 조병옥과 갈등을 빚는 모습이 나온다.자기 자신과 싸우는 조병옥

삼김시대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 전문배우로 유명한 김성겸 옹이 맡았다. 그러나 주인공이 주인공인지라 3김의 정치 입문 계기를 다룬 1회에 딱 한 컷 나오고, 그나마도 등장 씬과 성우의 내레이션이 겹치는 바람에 목소리가 묵음 처리된 채로 나온다(...) 그래도 아역 단역배우 쓸 돈 아깝다고 불혹의 배우들한테 가쿠란을 입힌 1회 초반의 병크에 비해서는 훨씬 양호하다

야인시대에서는 김학철[9]이 맡아서 레퍼런스급 연기를 선보인다. 맨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상의 싱크로율도 놀랄 만한 수준. 배우의 전작(태조 왕건박술희)의 영향인지 다소 코믹한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는 제1공화국과는 달리 아편을 팔아 운영비를 벌려고 하던 김두한을 체포해 크게 꾸짖으며야임마 너미쳤어!! 아편을 태워버리는 등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로 나온다.
궁예를 꾸짖는 박술희 하극상

해방 직후에는 우익에서 활동해왔으나, 6.25를 기점으로 야당 의원이 되어 이승만의 자유당과 대립한다. 이 시기에 자유당의 전위부대인 이정재(깡패)의 조직과도 종종 대립하기도 한다. 옛날 성질 같으면 이정재고 나발이고 철퇴 휘두르며 개박살 냈을텐데 야당 당원들과, 이전에 자유당 소속이었다가 무소속이 된 김두한과 협력하여 독재정권에 맞서고 있었으나, 갑자기 병세가 심해져 실려가나, 암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역시나 역사대로 120화에서 어처구니없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에서 수술 후에 급사. 신익희가 사망한 지 오래되지 않은 때였기에 김두한과 야당 정치인들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서울 1945에서는 남로당의 천적인 경무국장으로 주인공 최운혁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나올 만 한데, 안 나왔다(...)
  1. 조인원이 사실상 천안 만세 운동의 실질적 지휘자이다. 어른의 사정으로 우리는 유관순만 생각하지만
  2. 당시 감옥에서 수감된 이상 풀려나고 싶으면 전향서를 꼭 써야했다. 안쓰면 절대 내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이런 사례는 공산당 고참급 간부였던 정백이 있다. 정백은 일제말부터 사회주의운동을 일체 포기하고 광산업에 종사했다는거 하나만으로 공산주의운동가들 사이에서 '친일파'라고 비난받았던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백은 그래도 비밀리에 '지하조직'을 결성해 활동한 모습이라도 보이기라도 했지만...
  4. 구체적으로는 조병옥의 자서전에 나와있다. 조병옥의 자서전에는 아예 지어내는 수준으로 '안재홍과 여운형이 고이소 총독부 총독한테 찾아가 황국신민이 되겠다.고 떠들고, 둘이서 같이 주도해 흥아동맹이니 조선대중당이니 어용단체를 결성했다.'고 기술해놨는데, 실상은 흥아동맹이니 조선대중당이니 그런 단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5. '제주도 몰살론'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지나친 강경진압이라든가 온건파인 김익렬 체포에 중요한 역할을 한건 부인할 수 없다(제주 4.3 사건은 김익렬 제9연대장이 최대한 유혈사태를 줄이고자 평화협상을 교섭하는 등 노력을 했으나, 조병옥이 강경 일변도의 진압정책을 들고나와 평화협상이 깨져버리고 유혈사태가 더욱 크게 번지게 된거다).
  6. 이 발언은 1946년 대구 10.1사건 당시 군정경찰 3인자 위치에 있던 수사국장 최능진이 조병옥을 겨냥해서 '우리 경찰에게도 이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자, 조병옥이 '그들은 프로 잽이 아닌 프로 잡'이라고 맞대응하면서 말한 발언이다. 뒷날 최능진은 조병옥의 이러한 태도와 장택상의 방관하는 자세에 매우 혐오감을 느껴 경찰직에서 바로 때려친다.
  7. 호남선 타고 서울로 상경하던 중 뇌일혈과 심장마비로 사망. 신익희가 사망 전에 홍차를 마시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배를 쥐고 쓰러졌다. 그리고 시중에는 독살설이 유포되었다(...) 하지만 당시 의학계의 권위자가 사망을 확실히 인증했고 평소 가슴이 쓰릴때 문지르면 괜찮아진다고 한적이 있다는 걸 봐서는 독살설은 신빙성이 없다.
  8. 이러한 상황을 비꼬아서 이승만과 대적하여 출마한 신익희는 "아이구 머리야" 하고 쓰러지고 뒤이어 조병옥은 "아이구 배야" 하고 쓰러졌다는 개드립이 있다(...)
  9. 그런데 유지광의 자서전을 토대로 만든 1993년작 영화 대명에서는 천하의 개쌍놈 임화수를 맡았다!! 뭐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