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조지 워커 부시에서 넘어옴)
미국 대통령
42대43대44대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조지 워커 부시버락 후세인 오바마
공식 초상화
풀네임George Walker Bush
출신 정당공화당
생몰년1946년 7월 6일 ~ (70세)
재임기간2001년 1월 20일 ~ 2009년 1월 20일
서명
182cm
2000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00
2004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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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조스[1]
1999
조지 워커 부시
2000
루돌프 줄리아니[2]
2001
미합중국 군인
2003
조지 워커 부시
2004
착한 사마리아인[3]
2005

1 개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부정적 평가를 받는 대통령들 중 하나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다면 그 이상의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제 43대 대통령. 1946년 7월 6일 생이며, 풀 네임은 조지 워커 부시(George Walker Bush).[4][5] 2001년부터 2009년까지 8년간 미국 대통령으로 있었다. 미국의 43대 또한 1990년대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아들.
석유 백만장자이자 전 텍사스 주지사다.

2 취임 이전 생애

조지 워커 부시는 부시 가문이 대대로 다니던 미국 최고 명문 보딩 스쿨인 필립스 앤도버(Philips Andover)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시 가문이 대대로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고 학교에 기여를 했기에 기여입학제의 혜택을 보면서 예일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부시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여서 대학 학점은 매우 나빴고 겨우겨우 졸업했다.[6] 한국에서도 도입 논의중인 기여입학제를 이용해 쉽게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대표적인 상류층 가문의 바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텍사스 대학교 로스쿨에 지원했으나 낙방했으며, 1973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하여 2년 뒤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학업 능력이 관건인 로스쿨에 비해 비즈니스 스쿨(경영대학원)은 학업 능력보다 직장 경험, 인격, 출신 가문 등에 비중을 많이 두기 때문에 입학이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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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의 주방위군 장교 시절의 조지 워커 부시.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에 빠져 헤로인이나 코카인에 손을 댔으며 주방위군 공군 조종사로 복무한 것도 당시 베트남 전쟁 징집을 피하기 위한 병역비리라는 의혹을 받는 등 하여튼 그의 젊은 시절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다. 주방위군 공군 조종사의 임무라고 해봐야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를 한 바퀴 도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베트남 전쟁은 지지했다고 한다. 대조적으로 2004년에 부시의 재선에서 맞붙은 예일대학 선배 존 케리 의원은 베트남 전쟁에 비판적인 시각이었으나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케리 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그 어떤 곳에서도 피를 흘린 적이 없다" 며 본인은 전쟁을 회피하면서도 대통령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는 부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부분이 고위층의 병역회피가 판을 치는 한국에서는 무덤덤할 수도 있지만 존 F. 케네디가 어린 시절부터 지병을 앓고 있어 입대조건에 미달되는 몸이었으나 젊은 시절 대통령에 대한 야심을 품고 가문의 파워를 동원해 자신의 진단 기록을 바꿔 억지로 제2차 세계대전에 최전방에 참전할 정도로 미국에서는 지도자의 조건으로 전시참전과 같은 사회적 책무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7] 앨 고어존 케리역시 참전했다.[8]

하지만, 부시에게도 변호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병력 부족으로 주방위군도 대거 현역소집된 상황으로 주방위 공군의 경우도 4개 비행대 이상이 현역소집되어 베트남과 한국(한국에 파견된 현역 정규 공군이 월남 차출되면서, 그 땜방으로 일시 파견)으로 파병되었다. 주방위공군이라도 재수없으면, 아니 높은 확률로 파병될 가능성이 있었다. 부시 입장에서는 운 좋게도 그가 속한 텍사스 주 방위공군이 차출 대상에서 빠진 것일 뿐, 비교적 옆동네인 뉴멕시코 주 방위공군 비행대는 베트남에 차출됐었다. 물론, 베트남에서 해군 고속정장으로 극히 위험한 남베트남 강의 협수로에서 베트콩과 싸운 케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거고... 참고로 케리는 전역 후 반전행사에 참가해 자신의 메달을 강에 던져서 참전병들의 어그로를 좀 끌었다. 그나마도 뒷날 다른 사람 것을 던지고 자기 것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대선 당시 상당히 마이너스로 작용했다고 한다.

1989년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공동 대표로 취임 후 구단 경영을 흑자로 전환시켜 이름을 알렸으며[9] 이 기세를 이어가 93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2000년 부시는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경선 당시 당내에서에서 독보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부시에 맞서 후보직에 도전한 인물이 바로 존 매케인이다. 매케인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부시에 승리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였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 패배하면서 사실상 부시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패배 이후 위기감을 느낀 부시 진영에서는 매케인 진영을 상대로 "입양한 딸이 실은 혼외정사로 낳은 딸이다" 등의 악성 흑색 선전을 퍼부음으로서 세간의 빈축을 샀다.

본선에서는 진보적이면서도 강한 포용력을 보여주었던 젊고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부활시킨 부통령미국 민주당앨 고어와 격돌하게 된다. 이 선거에서 부시는 유권자 득표에서 고어에게 50만 표(0.5%) 이상 뒤졌으나 선거인단 확보에서 271 대 266으로 앞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조지 부시의 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재직 중이던 플로리다에서 무효표[10]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고, 이에 따라 실시된 재검표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중단되었던 것이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반대자로부터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 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다. 앨 고어 항목 참조.

어쨌든 조지 W. 부시는 클린턴의 전임이었던 그의 아버지 부시(조지 부시)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름으로써 미국 역사 두번째 부자 대통령으로 기록된다.[11] 대통령 당선과 재임 당시 부시의 주요 지지 세력은 미국 공화당의 양대 최대 지지세력인 전미총기협회(NRA)와 전통적인 보수 우익세력인 기독교 우파, 다시 말하자면 미국 중남부 시골의 빈곤하고 무식하며 열등감 많은 푸어 화이트(Poor White)들이었다. 헌데 정작 부시 자신은 온정적 보수주의자(Compassionate conservative)임을 자처했다.

3 임기 - 전쟁과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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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후
이라크 침략 후
허리케인 카트리나 후
고문, 도청 사건 후
경제 와해 후
부시의 퇴화 과정.
A fool thinks himself to be wise, but a wise man knows himself to be a fool.

우둔한 이는 자신이 현명한 줄 알지만, 현명한 이는 자신이 우둔하다는 것을 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부시는 재임 기간 동안 다음과 같이 나라와 세계를 망가뜨려 놓았다. 임팩트가 필요한 부분은 임의 강조.

3.1 9.11 이전

대통령 선거 당시 전체 득표에서는 엘 고어에게 밀렸지만 플로리다 주의 결과에 따라서는 지지율에서 밀리더라도 선거인단 수에서 역전하여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플로리다에서 부시가 승리했는데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조지 부시의 동생이었던 점, 투, 개표 방식에서 석연치 않은 문제점들이 여럿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되었다.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재검표 논란 끝에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 법원의 명령을 취소하고 재검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간신히 대통령이 됐지만 결국 민심은 분열되었고 추임식에서는 부시의 당선에 반발한 단체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아예 헬기를 동원해 연설 도중 헬기의 소음으로 부시의 연설을 방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주위에 내세운 참모진들 역시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콘돌리자 라이스 등 보수적이고 머리 굳은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들. 같은 편이라도 콜린 파월[12] 같은 중도파나 자기 목소리 내는 사람들은 아예 바보로 취급해서 왕따 취급했다. 결국 파월은 공화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2008년도 대선에서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해서 존 매케인에게 엿을 먹인다.

그 외에도 대외적으로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보다 훨신 강경한 정책을 펼치며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도 부시의 일방적인 행보에 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까지는 아직 취임한 지 1년도 안 된 터였던 지라 내부에서는 부시의 말실수들에 대한 조롱과 선거 결과에 대한 반발 정도르 뺴면 무난한 행보를 걸었다. 2001년 9월 11일에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3.2 테러에는 멀뚱멀뚱

당선 이후로 경기는 계속 나빠지고 정치적 업적도 별로 없이 알 카에다가 미국에 테러를 할 것 같다는 CIA의 보고도 씹고 세월을 보내던 중 9.11 테러 발발. 이후 한동안 벌어지는 대혼란과 부시의 어리벙벙함은 한도 끝도 없었다. 반정부의 상징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원제 "Fahrenheit 9/11", 2004년작)에서 테러공격 보고 직후 부시의 행동에 대해 잘 나와있다. 원래 그날 유치원생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기로 되어있었던 부시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동화를 한참 읽어주다가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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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 대통령님! 우리가 공격받았습니다!(Mr. President, America is under attack!)

부시 : ...(묵묵부답)

이러한 모습을 보이며 계속 동화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흠좀무. 이걸 무서운 영화 시리즈 중 하나(무서운 영화4)가 패러디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이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올바른 행동이긴 하다. 다만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어났어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이라는 점에선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게 맞다.

그리고 안전한 벅스데일 공군 기지로 피신했다. 원래는 백악관으로 가려 했으나 에어포스원도 안전하지 않다는 보좌관들의 강력한 만류 때문에 가까운 안전지대로 이동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 일신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과감한 행동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한데 그런 모습은 영화나 만화에서나 찾으면 되지 현실에서 찾을 수도, 찾아서도 안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부시 임기 후반에서 9.11 피해자들이 분노하는 것에 대해 테러에 대한 복수한답시고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켰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 조사에는 인색했다. 조사위원회의 구성도 사건의 중요도에 비하면 미흡했고 구성비용은 전임인 클린턴의 성추문 조사 위원회에 비해 1/3인 1500만~2000만 달러만 사용했다. 게다가 사전 테러경보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최후에는 이런 삽질 때문에 9.11이 부시의 계획이라는 음모론이 나왔다. 어찌 보면 고지식한 면이 잘 드러난 순간이지만 뉴욕에 자폭 테러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어도 저랬다니 음모론에 시달려도 할 말이 없다. 자업자득.

3.3 "테러와의 전쟁"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테러 직후 미국은 알 카에다오사마 빈 라덴이 배후에 있으니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이들을 내놓으라고 발표. 그러나 이를 탈레반 정권이 거부하자 아프간을 침공한다. [13] 그리고 9.11 테러를 구실로 미국을 애국주의 광풍에 몰아넣는 한편 국민 통제를 위해 인권침해적 요소가 다분한 법률들을 입안했으며 전 세계는 현재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며 전 세계를 '우리 편, 우리 편이 아닌 편' 으로 나누기 시작하며 전 세계가 대 테러 전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이라크 전쟁 1주년 기념 백악관 연설에서 나온 내용으로 정확한 문장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략)...우리는 우리 삶과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생명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 관용과 자유, 양심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의 가치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선과 악, 자유와 압제, 생명과 죽음 사이에 중립 지대란 없기에 문명과 테러의 싸움에 중립 지대는 없습니다...(후략)"

원문: We do love live, the life given to us and to all. We believe in the values that uphold the dignity of life, tolerance and freedom, and the right of conscience. And we know that this way of life is worth defending. There is no neutral ground-no neutral ground-in the fight between civilization and terror, because there is no neutral ground between good and evil, freedom and slavery, and life and death.

그러나 세계의 반응은 시큰둥. 또한 기존의 CIAFBI 등의 정보 분석 체계를 전부 뒤흔들어놓고 국토안보부라는 최종 결정기구를 따로 만들어서 자기가 컨트롤하기 쉽게 만들어두었다. 정보당국 간 협력 실패가 9.11 테러의 주 원인이었기에 국토안보부 자체 창설은 나쁜 결정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국토안보부의 과도한 권한 남발에 대한 경계심이 부족했던 데다 부시 정권의 실세들이 자기가 원하는, 듣고 싶어하는 정보만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관점으로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라는 국가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이상 매우 강경한 외교를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있다지만 상술했듯 CIA가 그렇게 경고했는데 테러에 대한 일말의 대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은 까여 마땅하다. 대비만 제대로 했더라면 테러와의 전쟁 더 나아가 테러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공산이 크다. 다만 CIA의 경고 무시는 중동 파트만 제외하면 CIA 수뇌부도, 그 전임자인 빌 클린턴도 신경쓰지 않아 부시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3.4 두 번째 전쟁 - 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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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들 = 종파간의 상잔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좀 마무리될 때쯤 갑자기 이라크에 마구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 뭐든지 이라크가... 이라크가... 라면서 핑계를 대기 시작하다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더니만 결국 이라크를 본보기로 조지려고 이름답게 조지고 더블로 부시는 이라크 주변에 미군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다만 이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차 걸프전 이후 사담 후세인은 생물병기, 화학병기에 재래식 무기를 틈만 나면 쟁여놓고 생산하고 했던 전력이 있었던 데다 경제봉쇄 등의 조치로 국가적인 괴로움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무기 생산 여부를 조사하는 UN시찰단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다. 미국이나 다른 서방 세계의 상식으로는 이라크가 결백하면 굳이 UN 시찰단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담 후세인을 의심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14] 여튼 적어도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해서는 아마 이슬람 문화권의 상식과 서방세계의 상식의 차이가 오판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나중에는 이라크가 압박에 못 이겨 사찰단 받아줄 테니 말로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였고 대통령궁까지 뒤졌지만 별 거 없었다. 거기에 구형 미사일 하나 나오긴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해체했다. 쳐들어간 것은 삽질. 게다가 이라크에 파견된 UN 무기사찰단이 대량살상무기 없다고 주장한 것을 씹은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대표적으로 UN 무기사찰단장이었고 전 IAEA 사무총장이었던 한스 블릭스는 2차 이라크 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해버렸다. 어떤 이들은 "만약 후세인 정권이 정말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후세인이 극단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책임감과 자제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라고 평했다. 막말로 이라크전 터졌을 때 사담이 대량살상무기 같은 게 있었으면 터트리지 않고 뭐했겠냐는 이야기.

사담 후세인은 《블랙 호크 다운》 같은 미군의 뻘짓을 다룬 영화(...)를 시청하며 어떻게 하면 미군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인가를 연구를 시작했고, 결국 이라크전 발발. 전쟁은 예상대로 2달만에 "충격과 공포" 를 슬로건으로 한 미군의 압승으로 완료. 그런데...

이라크 상황은 전쟁도 아니고 분쟁도 아니고 내전인 것 같지만 뭔가 아닌 여태까지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한 형태로 전개. 계속해서 늘어가는 자폭 테러와 미군에 대한 공격 속에서 처음부터 전략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여론이 점차 늘어갔다.

훗날 미군 장군들이 이야기한 증언들 속에는 자신들이 처음부터 "이라크 침공에는 수십 만의 병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초기 전투가 아니라 이라크 점령 후의 치안 유지를 위해서 필요하다. 또한 항복한 이라크군을 해산시키지 말고 될 수 있으면 그대로 유지시켜 함께 치안 유지에 나섰으면 좋겠다" 라고 무수히 건의했다 한다. 하지만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그런 의견을 개무시하고 소수의 빠르고 잘 무장된 병력으로 다수의 이라크군을 때려부수는 데만 전념하고 그 뒤의 수습 과정은 별 고려도 안한 작전 계획을 강요하여 결국 그 넓은 이라크에 수만 명의 전투 병력만 방치된 상태였다. 이 전략은 상당히 평가가 자주 바뀐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일명 바그다드 레이스가 무모한 전략이라고 까였고 성공한 듯 보인 순간에는 희대의 전략가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이게 '후세인과의 전쟁' 이 아니라 '이라크인과의 전쟁'이 되면서 다시 까이기 시작했다.

결국 넓디넓은 이라크 전토를 수만에 불과한 미군이 요충지만 장악하러 가는 사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이라크군과 저항세력은 자기 무기를 들고 그대로 사복으로 갈아입고 민간인 속으로 합류해 버린 건 물론 국경이 무너진 틈을 타 지원까지 받아냈다. 저항세력은 한때 그 수가 한때 40만이 넘었을 정도고[15], 이렇게 몇 년에 걸쳐 미군 사상자가 차츰차츰 쌓여 수만명에 이르게 된다.[16]

그러나 부시는 "이라크전 끝났네요" 라고 미 해군 항공기에 파일럿 복장으로 탑승하여 항공모함 링컨호 위에 내리는 쇼를 보여주며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형식적인 게 아닌 실제로 전쟁에 참여했던 경력을 가진 대통령들도 있었지만 이런 노골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대통령은 유래가 없었다며 비판이 일었다. 그런데 그 종전 선언 당일에도 테러가 나 미군과 이라크인 수십 명이 사망했다. 여담으로 이 쇼를 벌일 당시 기류가 좋지 않아서 잘못되면 항모에 내리지도 못하고 바다로 빠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근데 부시가 빠져 죽으면 러시아하고 전쟁하자던 딕 체니가 대통령된다(...)

그 후로도 미군 사상자는 계속 급증했지만, 그럼에도 2004년 대통령 재선 때는 이라크를 지가 평화롭게 만들었다고 망상하면서 올림픽에서 4강에 오른 이라크 축구선수들 사진을 홍보물에 써먹었다. 그리고 이라크 축구선수들은 우린 축구가 없었다면 저항세력으로 들어가 미군을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런 사실에 경악과 증오를 내비쳤다(...)

게다가 자폭 테러를 벌이는 세력은 그냥 미군만 죽는 게 아니라 미군 한 명 잡으려고 이라크인 수십 명을 같이 폭사시킨다.[17] 이런 공포의 효과로 미군에 협력하거나 주변에서 일하는 거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전쟁 빌미였던 대량살상무기는 흔적도 못 찾고 그냥 어물쩡 넘어갔다.

2014년 ISIS가 겨자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 가스가 후세인이 숨겨두었던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담 후세인이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쿠르드인들을 상대로 인종학살을 벌이고 남은 것을 바그다드 근처에 파묻은 것이었다. 즉, 이미 만들어진 지 20~30년은 된 것. 무엇보다도 미국은 이라크 점령 기간 동안 이런 구식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했었다. 문제는 이미 침공 당시로부터 10~20년 전에 만들어진 걸 세상에 공표해봤자 이득도 없고 욕만 먹을 게 확실했기에 그냥 쪽팔려서 알리지 않은 것이다.

3.5 계속되는 외교적 실수와 반미 국가들의 준동

한편 정보기관에서 이란을 비롯한 다른 중동 국가들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에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그 후 부시는 그 유명한 악의 축 발언으로 이란, 시리아, 북한을 지목, 그리하여 조지 부시와 럼즈펠드의 미군 공격 투어 다음 예정지로 확정. 처음에는 이란, 이라크, 북한이었는데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는 시리아로 바뀐다. 북한과 이란과 폭풍 갈등이 벌어지며 주변국들에게 "또 전쟁 터지는 거 아니냐"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대표적 반미 독재자였던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가 여기에 겁을 먹고 2004년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선언하며 데꿀멍하는 바람에 부시는 '역시 내가 옳았어!'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북한과 이란을 칠 것 같은 분위기가 심각하게 조성되기도 했다.

2010년 11월 9일 출간한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2003년 2월 장쩌민 중국 주석에게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수 없을 경우 북한을 공습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론 더 이상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천문학적인 국방 예산을 이라크 전쟁에 소모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 미군 전투력의 대부분 역시 여기에 투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3.6 신이시여(Oh God), 재선이라니

"안보"와 "도덕성"을 등에 업어 중간에 존 케리를 꺾고 자기 아버지도 못한 재선에 성공하지만 플로리다에서 다시 부정투표 의혹이 나오더니 이제는 오하이오에서도 부정투표 의혹이 나왔다. 선거인단 결과는 부시 286 : 케리 252, 즉 오하이오(선거인단 20명)가 뒤집어진다면 역전은 가능했다. 표차도 10만여 표 차이. 만약 뒤집어졌다면 2000년 대선에서 적은 득표수를 기록한 부시에게 승리를 안겨준 선거인단 확보 방식이 2004년 대선 당시 300만 표를 더 득표한 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오하이오는 이 선거가 아니더라도 미국 대선의 주요한 캐스팅 보더였다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었다(역대 미국 대통령 항목의 각주 참조). 케리가 비록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넘어갔지만 결국 부시 행정부의 이미지는 실추. 이 부분은 《심슨 가족》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인 번즈"아무도 우리가 오하이오에서 뭉치표를 공화당에 넣은 것을 모를 거야" 라는 말이나 "할로윈 데이 스페셜" 에서 44대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투표하던 호머 심슨이 자신의 표가 존 매케인으로 투표되었다고 하면서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자 "아악!! 이럴 수는 없어!! 여기가 오하이오도 아니고!!(...)" 라고 외치는 장면 등을 넣는 등 까이는 소재가 되었다.

3.7 카트리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게다가 부시가 다음 임기에 일을 제대로 했으면 그나마 좀 나은 평가를 받았겠지만, 결론은 삽질의 연속.

재선 직후 벌어진 2005년 여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이미지는 대 실추, 2기 중반에 들어서는 의회고 뭐고 사회 전반에서 조지 부시 까는 분위기가 극심해졌다. "이게 전부 다 부시 때문이다" 정도? 그리고 99% 맞는 말이었다.

부시를 강력하게 밀어주던 의회도 아마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를 당하며 민주당으로 교체된 것은 물론 민주당이 돌아온 의회에서 통과된 첫 안건은 이라크전을 말아먹는 럼즈펠드부터 짜르기였다. 그 후로 조지 부시가 하는 행동에 일일이 태클을 건 것은 물론 심지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금융권의 잇따른 부도를 막기 위해 국가 예산을 풀어야겠다고 했다가 의회가 "안 되는데?" 라고 해서 조지 부시가 버로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사태를 방지하지 못했다. 애초에 유가를 유래없게 폭등시켜 유가 100달러 시대를 열어놓고 경제 불황의 시초를 닦아놓았다. 그나마 유가는 중동에서 이슬람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한다는 광신도들이 일으켜대는 분쟁으로 좀 낮아졌지만, 경제불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경제가 회복될 때마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도 골칫거리. 현재의 한국에서 보듯이, 후일 다시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극복할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경제위기가 한 번 찾아올 때마다 1%대씩 날아가고 있다.

4 결과 - 메울 수 없는 삽질의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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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기념비
깃발 = 임기 완수
아래의 쓰레기 산더미들: 이라크, 카트리나, 경제, 지출비, 시민자유

그리고 아래는 그 업적(?)들의 결과.

4.1 개망신류 갑

미군의 군사력과 경제가 모조리 악화 일로를 치닫고 있어 이후 미국의 행보는 예전같은 '슈퍼 파워' 로서의 독주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병력 부족을 이유로 건강, 연령, 심지어는 범죄 경력조차도 상관 안하고 병력을 무리하게 증강한 탓에 현재 군 내부의 갱단 형성 문제나 병력의 질 저하 문제가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하며 M1 전차 800여대가 미군 소속인데도 불구하고 수리비가 없어서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을 더하고 있는 실정. 게다가 경제는 끝도 없이 계속 악화되는 중이다.

물론, 미국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최강대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압도적인 보급과 화력으로 자국 군인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면서 이기는 방식의 전쟁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18] 사실 미국이 러시아처럼 '인권 따위 장식 깝ㄴㄴ' 하면 상대할 수 있는 나라가 없지만 그런 전쟁은 미국의 이념이나 국가 시스템상 외계침공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하다.

다만 미군의 전투력이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다. 미군 전체의 병력을 놓고 보자면 140만 명 내외로[19] 병력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닌데 미 해군미 공군의 규모가 크고 보급이나 지원 임무에 봉사하는 병력 등이 많은 까닭에 실제로 전쟁시 일선에서 적과 싸우는 지상 전투 병력은 대략 15~16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이라크에 가있는 실정이고 지속되는 자살 공격과 테러에 대한 손실 역시도 대부분 이 얼마 안되는 핵심 전투병력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재 전사자만 4000명을 넘었는데 부상자는 3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자료도 있다. 사실상 전투 병력 5명 중 한 명은 죽거나 다쳤다는 이야기로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 셈. 자국 내에서도 심각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라크 파병 미군의 사망은 미드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 중 하나. 오죽하면 멕시코가 미쳐서 미국을 치면 미국이 고전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런데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점점 악화되어 더 많은 병력과 장비가 필요해진 탓에 사실상 다른 지역에 여력을 쏟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결과적으론 다행이지만 이때문에 이란, 북한에 미군 방문 투어 취소.

거기에 덤으로 전쟁 비용에 국방 예산을 다 날리느라 차세대 무기 개발 계획까지 줄줄이 취소크리를 맞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XM8 소총, ACSW XM307[20], 랜드워리어, DDX 줌왈트(2척만 만들고서(예정) 취소), 크루세이더 자주포, 코만치, F-22 생산수 반토막 등등.

4.2 추락한 미국의 권위

관타나모 기지의 이라크 포로 문제나 유럽 이곳저곳에 CIA 등이 테러리스트 용의자를 납치, 감금하는 비밀 감옥이 있던 것으로 밝혀져 미국이 인권 국가라는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또한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지지도도 하락. 프랑스 등에서는 미국과 조지 부시 반대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결정적으로 냉전 시절에는 러시아에 대항해 미국과 한 팀이라고 생각을 해오던 유럽 국가들이 정작 미국 혼자의 문제에 피를 흘리며 동참하라고 하는 상황에선 등을 돌리거나 생색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 한국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했고, 한미 FTA에 대해서는 진전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앞에서 나열한 미국의 동맹국들이 하는 행동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평가의 외교 항목 참조.[21]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방국이라 생각했던 나라들 중에서는 이제 이스라엘밖에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 내부의 진짜배기 보수주의자들한테 대차게 욕 먹은 원인 중 하나. 아프간 전쟁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프랑스를 향해 "프렌치 프라이프리덤 프라이"(...) 로 바꿔야 한다면서 자랑스럽게 진상을 부린 공화당 의원이 나오질 않나, 지나친 국수주의 테크로 전통적인 동맹국들, 특히 아시아의 대한민국일본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Fucking USA라는 노래까지 나왔을까. 때마침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미선이 효순이 사건까지 겹치면서 반미 감정이 크게 일어났으며 아프가니스탄 파병식도 대대적으로 열지 못하고 소규모로 열었다. 일본 역시 MD에 참가하라는 일방적인 요구사항에 상당히 불쾌해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도 욕을 꽤 먹긴 했다. 같은 편한테도(...)[22]

심지어 영국에서도 "우리가 왜 양키들 쫄따구 노릇이나 한다는 비웃음을 들어야 하나?" 면서 안 그래도 불편했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 애시당초에 영국이 미국을 달갑잖게 보는 분위기도 강했는데 이렇게 나오니...[23]

특히 교토 의정서 비준에 대해 "미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 면서 보이콧. 국제연합 결의를 무시하고 전횡. 당시 UN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은 부시 2세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미국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정의로운 국가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추악한 짓도 저지른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지만 전임자들이 그래도 국제사회를 어느 정도 의식하고 행동했던 데에 비해 이 사람은 "우리 미국이 짱인데 니들이 감히 우리한테 개기냐? 이제부턴 슈퍼파워 미쿡느님 마음대로 할 테다" 를 대놓고 저질렀다. 옛날에는 세계 경찰을 자처했다면 조지 부시 대에는 세계 일진(…)을 자처했다고 해야 할지도

심지어 NATO동유럽 국가들을 일방적으로 가입시켜버린 처사는 러시아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너네가 사실상 대장인 건 알고 있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다. 유럽을 무시하기냐?" 하는 반발마저 일었다. 분명히 NATO 세력이 늘어나면 유럽 국가들 자신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데도 나온 게 저 반응이다.[24]

결국 이런 꼴을 보다 못한 동맹국들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게 되고 심지어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자였던 유대인 백만장자 조지 소로스도 "부시는 미국만이 아니라 이스라엘까지, 나아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고 비난하면서 민주당 쪽으로 등을 돌렸다.

4.3 주변국의 부상을 방치하다 - 러시아, 중국, 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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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어이 블라디미르... 내가 네 초상화를 그렸어...
푸틴: 재미있는 우연이네[25]. 나도 내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거든...
참수된 용 = NATO
푸틴의 그림 문구: 제국의 역습

냉전 이후 한동안 맛이 갔던 러시아의 경제를 고유가 시대를 통해 부활시켜주었다. 천연 자원이 많은 러시아인 탓에 자원 장사를 통해 점차 경제력을 회복한 러시아가 다시 예전 같은 패권 국가로 성장하며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게다가 미국 군사력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묶인 상황.

이미 푸틴 정권은 구 소련 시절 같이 산업을 통한 경제 발전이 아닌 자원 수출을 통한 경제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런 호재를 만났던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네 마네 하면서 러시아는 지정학적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사실상 이런 고유가 환경을 조성한 것이 러시아의 힘을 길러주는 꼴이 되어 결국 우크라이나 같이 미국 쪽으로 기울던 러시아 주변 국가들이 다시 바로 옆의 러시아와 친해져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경제력의 회복도 회복이지만 푸틴은 핵무기 전력의 강화와 MD체제 비난 등으로 계속해서 군사적 파워의 강세를 천명하여 경제, 군사적으로 과거 소련에 걸맞는 위상을 가지려 하고 있다. 이렇게 또다른 슈퍼 파워가 성장하면 결과적으론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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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침공에 반격하여 박살을 내놓은 남오세티야 전쟁은 부시 외교 실패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바로 옆에 조지 부시가 있는 상황에서 전쟁 사실을 전파한 건 대표적인 사례였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방금 연락을 받은 푸틴이 조지 부시한테 귓속말을 하는 저 사진에서 조지 부시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 역력한데, 그게 조지아 침공에 대한 소식을 전한 것이라고. 물론 조지아를 침공했다는 게 아니라 조지아가 침공했다고... 어차피 어느 쪽이던 조지아는 망했잔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군을 미군에 비교해보면 미군이 압도적인 전력과 효율적인 전술, 교리, 군사적 기량으로 적들을 털어버린 데 비해 여기저기서 미숙하고 부족한 점들을 내보였다. 그러나 미군이 전략 단위의 실책으로 베트남전 시즌 2를 아프가니스탄에서 11년째, 이라크에서 8년 동안 찍은 것에 비해 러시아군은 전쟁도 금방 끝냈고 전략, 정치적 목적도 모두 달성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막겠다고 함부로 손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미국은 결과적으로 러시아 견제에서 점점 불리해졌... 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발 경제위기 때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국가가 러시아였다. 석유하고 가스 내다 파는 걸로 고유가 시대에 돈을 벌었던 러시아가 국제 경제 위기가 오면서 석유가가 폭락하자 깨갱하고 있는 것.

사실 러시아 관계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아버지 부시 시절에 소련은 무너졌으되 무너졌다고 그들을 너무 자극하지 않는 방침이 아들 부시 시절에 이르러서 망한 러시아 눈치 따위 알게 뭐냐고 막나간 것이다. 아버지 부시는 우크라이나 등지의 분리주의에 지지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며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았지만 아들 부시는 과거 러시아의 영향력을 받던 동유럽을 일방적으로 나토에 합류시켜 동서 대립의 중심을 독일에서 러시아 코앞으로 밀고 들어와 러시아를 크게 자극했고 우크라이나, 발트 3국[26], 조지아같은 친러 국가들을 죄다 자기네 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러니 러시아인들은 열받지 않을 수가 없고 푸틴은 미국 믿고 까불면 재미 없다고 조지아를 두들겨 부쉈다. 유로마이단 사태에서도 러시아는 크림 반도먹어버리면서 오렌지 혁명 때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완전히 태도를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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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이 짓으로 우리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
용 = 중국

또한 중국의 성장을 가만히 지켜만 보아서 잠재적인 미국의 라이벌로서 크도록 방치했다. 사실 방치했다기보다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데다가 원래부터 이 지역에서 왕초 노릇을 했기 때문에 부시가 삽질하든지 말았든지간에 경제는 계속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삽질만 안 했어도, 중국의 성장속도는 상당히 둔화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발전은 계속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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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군사력이 중동 지방에 묶인 덕에 미국의 뒷마당 라틴아메리카[27]에서 베네수엘라가 고유가로 힘을 얻고 나서, 불거진 반미 정서에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28] 심지어 백악관이 지지한 반 차베스 쿠데타도 금방 진압되었다. 그 외에도 미 대사관의 존 코레아 해군 대위를 스파이 혐의로 추방하였고, 군사협력 중단, 미 마약단속국과의 협력 중단을 하였고, 미국 위주였던 석유 수출선을 다른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갈등을 겪어왔다. 이 와중에 우고 차베스가 부시를 ‘살인마’, ‘마피아 두목’, ‘위험한 인물(Mr.Danger)'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반미 기조가 더 공공화되었다.

손가락만 쭉쭉 빨고 있는 사이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상당수가 줄줄이 친미우파정권에서 반미적인 좌파 정권으로 바뀌고 말았다. 물론 이건 조지 w 부시의 탓은 아니고 80-90년대에 미국이 남미에 했던짓을 이자를 쳐서 받은것에 까깝지만 그렇다해도 충격과 공포인건 맞다.[29] 지금 이 국가들은 옛날에 비해 미국의 영향력을 덜 받고 있다. [30] 예전 같으면 그레나다, 칠레처럼 군사적 정치적 패권을 이용하였겠지만, 군사력이 중동에 몰려있고 명분도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하는 중.

그나마 다행인 건 라틴아메리카가 고질적인 내부 문제를 고치지 못하고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도 부시가 잘해서가 아니라 적이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중국은 여전히 고도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4.4 분열된 조국과 법 질서 - 아마겟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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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맞았는데.
문구 = 뭉치면 산다.[31]

미국을 분열시켰다. 취임 초부터 부시는 플로리다의 부정선거 의혹으로 말이 많은 상황이었다. 9.11 테러로 잠시 이러한 비난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는 있었지만 결국 이라크전으로 인해 미국 내의 여론은 안 좋게 돌아갔고 더군다나 재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터진 데다 카트리나 직후의 부적절한 처신은 부시와 공화당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 덕분에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현재까지도 공화당 vs 민주당의 "아마게돈" 형 정치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잘하는 짓이다.

그리고 2011년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원인으로 미국 정치권의 치킨게임식 극단주의 정치판이 일조를 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으니 부시는 더더욱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심지어 자국 내 법질서까지도 망가뜨려 놓았다. 9.11 테러 이후 만들어진 애국법은 미국 내 인권 운동가들에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상당히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슨 가족》에서는 이를 바트 심슨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깠다.

"괜찮아! 헌법은 애국법이 죽였거든!!!"

게다가 이 시기 부시를 지지하는 안보지상주의자들은 부시가 물러난 뒤 애국법보다 더한 국방수권법이라는 법을 제정해 놓았다. 참고로 이 법은 한국에서조차 문제가 너무 많다고 보류시킨 테러방지법보다 훨씬 심각한 법률이다!

4.4.1 대통령 서명 선언 남용

2010년이 돼서야 서서히 알려지고 있는 내막에 따르면 부시는 임기 중 전통적 권한인 "대통령 서명 문구(Presidential Signing Statements)" 들을 심각하게 오남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건 대통령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서명할 때 그냥 "이것은 좋은 법이다" 라든가 덕담을 적는 선언문인데 가끔씩 글귀 중에 "법안의 내용 중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으므로 서명은 하되 그 부분은 이행하지 않는다" 라는 뉘앙스를 적는 경우가 있다. 만일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하원과 상원에서 2/3 다수결로 대통령을 씹고 강제 통과시킬 수 있는데 서명은 해주는 대신 저렇게 입장 표명을 해놓으면 법이 있기는 있는데 아무 효력이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행정부가 이행하지 않는 법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게 당연하다). 거기다가 거부권을 행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의회가 다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것이다. 즉 개꼼수 중의 개꼼수. 이게 합법적인지에 대해서는 미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저 옛날 앤드루 잭슨이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이 아주아주 가끔씩 이 꼼수를 이용했다. 그런데... 부시는 임기의 처음 4년 동안 이 짓거리를 435번 했다.[32]

대통령이 이 권한을 남용하면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본인 마음대로 짜깁기할 수 있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현대 정치학에서 죽어라 싫어하는 행정부입법부 노릇을 하는 꼴이 된다.[33] 거기다가 당연히 대법원이 결정해야 할 법안의 위헌 여부를 대통령이 판단하고 있으니 곧 사법부의 권한까지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시의 책상 위로 올라오는 법은 대부분 통과되었고 덩달아 대통령의 권한 자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같은 공화당 의원들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으나 자신들 당 소속 대통령이다 보니 손 쓸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서명선언의 남용은 미래에 오히려 더 문제가 된다. 부시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자신의 이념에 따라 법안만 통과시켜 놓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철저히 무시하면 됐지만 항상 대통령이 공화당이란 법은 없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이라도 그때 통과된 법을 바로 이행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거꾸로 오바마 역시 이런 식으로 서명을 쓸 수 있는데 실례가 바로 막장법인 NDAA을 (부분적으로) 막을 때이다.

4.4.2 기타 인권, 환경 정책 실패와 위법행위

부시는 저런 권한 남용 말고도 위법 행위도 많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리크 게이트인데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대사가 부시의 이라크전을 비난하는 발언들을 하고 다니자 언론에다가 윌슨의 아내 밸러리 플레임이 사실 CIA 요원이라고 폭로하였는데 문제는 이게 위법이라는 것이었다. CIA 요원은 신분상 법에 의해 정체가 밝혀지지 않도록 보호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정보를 백악관 고위 관료들이 흘렸음은 물론 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대통령도 연루되어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34]

이것 말고도 연방 검사 해임건에서 나온 법적 시비나 전쟁을 벌이면서 일어난 각종 인권 침해와 환경 평가 보고서 조작(!)[35] 뇌물수수 의혹 등 본인과 보좌진들 대부분이 여러가지 위법 행위에 대한 의혹이 있으며 이와 관련한 몇몇 관련 문건들이 조작되거나 삭제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는 이 시기 삭제된 E메일 2200만 통을 복구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앞으로도 파고들면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니미츠급 항공모함 10번함인 조지 H. 부시는 진수된 뒤에도 한동안 공사를 받아야 했다. 이유야 당연히 이 사람이 자기 아버지 이름을 딴 항모를 자기 임기 안에 진수시키려고 일정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결국 목적 달성을 위해 지나치게 위법을 저지르는 모습을 일반 국민도 아닌 백악관의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보여주면서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특히 미국처럼 사소한 을 어겨도 크게 난리가 되는 나라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줬으니 더더욱 까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2001~2009년을 Decade from Hell 잃어버린 8년 이라고 부를까?[36]

5 평가

좆까라, 난 집에 간다

2016년 현재에도 미국인들에게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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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재선이 확정된 날, 영국 더 가디언[37]지의 표지
오, 신이시여.
데일리 미러[38]의 돌직구
어떻게 59,054,08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렇게 멍청할 수 있지?[39]

결과적으로 미국을 다 말아 쳐먹었다. 이렇게까지 나라를 말아먹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강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이란 나라의 특성상 다른 국가들도 그 여파에 휩쓸리고... 그의 재임기에서 딱 2백년 전에 재임한 대통령딱 백년 전에 재임한 대통령은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었는데 이 분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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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재앙들
수단 = 가뭄, 인도네시아 = 산사태, 칠레 = 화산 폭발, 미얀마 = 사이클론, 중국 = 대지진, 미국 = 이하생략(...)

부시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만평.

여기까지 읽으면 "좀 지나치게 까기만 한 거 아니야?" 라고 의심할 만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으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는 공화당이 조지 W. 부시의 이미지와 엮이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 걸 한 번 생각해보자. 당장 부시가 퇴임할 당시 다음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갔던 매케인 자신도 불과 몇 년 전까지 토크쇼에서 자기 주머니를 뒤지더니만 "잠시만 기다려봐요, 대량살상무기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라며 부시를 놀려댔다. 사실 유명한 역사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들 거의 대다수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부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중 하나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결과적으로 국민들도 공화당과 부시를 외면하게 되었으며 2008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를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킬 정도다. 물론 패배를 100% 부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조금 오버겠지만. 하지만 매케인이 선거 기간 동안 공개적으로 매케인 지지를 선언한 부시와의 접촉을 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위상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심지어 선거기간 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매케인에 대한 지지연설을 하겠다고 하자 매케인측이 부시의 연설시간을 줄여달라고 요청해 자신의 연설시간이 8분으로 줄어버리는 굴욕까지 당했다. 이라크 전쟁의 병크와 미친 듯이 늘어나는 재정 적자, 큰 위기를 맞은 경제... 이런 걸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고충이 눈에 선하다. 덧붙여서 이런 압도적인 부시의 인기는 젊은 층 대상으로 두드러지는 편이다.
후술하겠지만 2016년 현재의 공화당 분위기와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에 비하면 적어도 인종이나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도 있으나 공화당이 이모양 이꼴이 되고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게 된 이면에는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인과 기성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감이 있고 이러한 불신감의 원인은 당연하지만 부시정권 같은 기존 정치인들의 삽질 덕분이다

여담으로 한 유력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유능한 미국 대통령과 가장 무능한 미국 대통령을 뽑는 앙케트를 했었는데 가장 유능한 대통령으로는 故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뽑혔고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뽑힌 게 이 사람이다. 저 앙케트가 실시된 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직 대통령 후보였을 때. 대통령 선거가 다가와도 언론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과연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것인가?" 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음은 그의 대통령으로써의 행적의 안타까운 부분만 모아둔 도표.

5.1 긍정적 평가

위와 같이 미국 국내로 보나 세계적으로 보나 대체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지도자이나 의외로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이걸 본 조지 부시의 안티들은 까무러쳤다 카더라.

우선 미국 국내에서의 긍정적 평가로는 적어도 사생활은 깨끗한 편이었다는 것. 특히 전임 대통령인 클린턴은 당시의 섹스 스캔들로 대통령 개인의 도덕적 이미지가 추락한 상황에서 이전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개인의 도덕관에 있어서는 크게 흠잡을 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2004년 대선 승리의 큰 원동력이 되어 당시 부시가 상대인 존 케리에 비해 무엇이 낫냐고 생각했냐는 물음에 가장 많은 수의 지지자가 "도덕성"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부시가 세계적으로 저지른 짓과 정반대로 개인적으로는 무척 친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로 2009년도에 안동풍산고등학교를 방문하여(교장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 2005년에는 아버지 부시가 풍산고를 방문했었다) 연설을 했는데 당시 풍산고등학생의 말에 따르면 경호원도 뒤로 물리고 학생들의 악수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체로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왔던 기존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젊은 시절에 마약을 하는 등 방황이 있었다는 점도 까이긴 하지만 반면 좋은 인상도 준다. 결국엔 엘리트 코스지만. 그의 방황을 끝낸 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것이 계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도덕성에 대한 비판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들은 다 기독교적 성향과 관련된다.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에 와서 간증까지 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을 잘 믿고 아주 정의감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항목에서 몇 안되는 그에 대한 좋은 평가들은 물론, 나쁜 평가들조차도 어지간한 미국의 거물 정치인들은 굳이 건들지 않으려 하는 문제에 뛰어든 정의감의 발로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일례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정의한 배경에는 탈북자들 지원 행사를 위해서 관련 서적을 읽은 연유라는 뒷 이야기가 있다. 보통은 유감을 표명하며 사진이나 찍고 악수나 하면 그만이지만, 탈북자들을 만나기전에 그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탈북자 수기와 관련 서적을 읽었다는 것이다. 허나 이 양반이 정의감 만큼이나 공감 능력과 섬세함도 뛰어났던 탓인지 연설에 앞서 다소 감정적이게 되었고 그 수기의 나타난 북한의 끔찍한 인권탄압에 대해 표현한 것이 바로 "악의 축".

도널드 럼즈펠드딕 체니가 실권을 잡은 것도 그가 자신의 참모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탓이 크다. 물론 두번째 임기 말에 가서 이라크전의 처참한 결과(상이군인들이나 유족들의 항의)를 직접 대하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체니와 럼즈펠드의 몰락이 시작되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


(조지 H. W. 부시의 손자, 조지 W. 부시의 조카이자 젭 부시의 아들인 조지 P 부시의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 당시 모습. 1976년생으로 지금은 텍사스 지역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나 그의 지지자들에 비하면 인종이나 종교문제에 대해 훨씬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즉, 소수민족을 포용하여 "하나의 미국"을 지향하려고 했다는 것. 모두를 포용해서 다함께 지옥으로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부시가 대선 후보였을 당시 공화당은 민주당에게 완전히 빼앗긴 흑인표에 대한 대항마로 급격히 증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민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생 젭 부시의 부인 역시 히스패닉계였기 때문에 부시 가문은 공화당 내에서도 더 히스패닉에 우호적인 축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아예 하루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히스패닉 유명인사들이 연사로 나오고 조지 부시의 조카이자 히스패닉 혼혈인 조지 P. 부시가 영상메세지를 보내는 등 히스패닉 테마로 치루어졌다.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를 방불케 하는 2016년 전당대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놀라서 까무러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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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대한 무분별한 전쟁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무슬림이나 이슬람교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 자체는 2016년 공화당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이다. 위 사진은 9.11 테러 가 일어난지 단 6일 후였던 2001년 9월 17일 부시가 워싱턴 DC모스크를 방문한 장면으로, 이 때 부시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무슬림계 미국인들 역시 소중한 미국의 국민이다" 라고 말하면서 당시 팽배했던 무슬림 혐오 분위기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 이후 기나긴 테러와의 전쟁을 치루면서도 늘 적은 이슬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었다. 물론 정책적으로 이사람이 한 짓을 고려하면 무슬림계 미국인들은 결코 부시에 대해서 호의적일 수만은 없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9/11 직후 분위기가 차라리 지금보다는 나았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도널드 트럼프테드 크루즈에 비하면 말은 온화하게 하고 다녔다. #

위에서도 언급된 그의 친절함과 인간적인 매력 역시 도널드 트럼프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고, 친동생을 포함하여 당 최고의 유망주가 16명이나 나섰다가 갑툭튀한 초짜에게 탈탈 털린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비교해 봤을때 2000년, 2004년 두 번의 어려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부시의 정치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국외적으로는 사실 그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평가에 대한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은데 위에 언급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들 외에 유달리 그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알바니아가 있다. 부시가 동유럽의 강자인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압력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코소보(알바니아계 민족이 대다수)의 독립을 지지하였기에 이 곳에서의 인기는 실로 엄청나다. 알바니아 크루야에는 그가 방문해 2층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었던 카페에 "조지 W. 부시"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수도 티라나에도 같은 이름의 거리가 있다. 정확하게는 국회와 INFOSOFT 건물, 몇 년째 공사 중인 고층 빌딩이 있는 바로 그 거리.

이외에 미국의 한 사서가 찾아낸 독도 표기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정부의 방침을 바꾼 일도 있으며, 또한 탈북자 문제에도 도움을 준 편이다.

그러니까 인격적인 면의 장점은 많으나 일에 대한 장점이 없다

5.2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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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신뢰하는 참모들에게 의존했지만 그 참모들이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망했어요. 애초에 참모진들을 잘 뽑을 능력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부시 행정부 시기에 일했던 관료들의 회고록이나 부시 행정부 시절을 다룬 저서들에 의하면 조지 워커 부시는 의외로 일반 시민 수준의 도덕관념은 분명 있는 인물이었고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얼간이라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정 수준의 상식과 판단력은 가지고 있었으며 네오콘의 꼭두각시도 아니었다. 말도 안돼. 부시는 체니와 럼스펠드와는 달리 이라크 전쟁이나 러시아와의 갈등에서 해결한 능력은 없었어도 문제가 생길 때 상식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세간의 상식과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최고 통수권자이자 최고 권력자임을 확실히 하며 통치했기에 체니에게 휘둘리는 얼간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부시는 자신이 행정부를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보인 정치인으로서의 재능은 분명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제 아무리 가문빨이 있다 하더라도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미국 역사에서는 부시보다 능력이 더 떨어지는 대통령들이 분명 있었다. 이러고도 최강대국 된 사기 국가 클라스.

문제는 그가 주요 요직에 임명한 네오콘들이 자기들의 이념을 반대하면 나쁜 놈밖에 외칠 줄 모르고 잘 하는 일이라곤 공무를 이용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법 밖에 모르는 얼간이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그나마 유능했던 인재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었지만 네오콘들은 정치적 술수로 이러한 유능한 인재들을 내쫓고 요직을 차지해 자기 멋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부시는 이러한 네오콘의 폭주를 제대로 제어하기는 커녕 오히려 네오콘에게 휘둘려 그들의 막장 행각을 방조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그 결과 미국에는 재앙이 펼쳐졌다. 나중에야 네오콘의 삽질을 깨닫고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

부시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조직을 갖춰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듯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아는 능력은 분명 있는 편이었으나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 결단을 내릴 때는 감정적인 충동이나 흑백논리와 같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쁜 버릇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고 자기 부하들도 흑백논리만 구사할 줄 아는 머리가 굳은 인사들을 중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렀다. 나중에 잘못 된 결정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인재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나빴는데 그를 지지한 능력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들은 네오콘들의 견제를 받았고 실리보다는 명분론과 충성심에 더 혹한 면모를 보인 부시는 뒤로는 돈을 받아먹으면서도 뻔뻔하게 도덕주의를 외친 네오콘들에게 지지를 보내 그나마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유능한 인재 다수도 떠나보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똘마니들이라도 제대로 관리했으면 다행이었겠으나 부시는 부하 직원들에게 자율권을 준답시고 그들이 마음대로 깽판치게 내버려 두고 일이 잘못 돌아가도 제대로 통제하려는 노력은 커녕 관심조차 제대로 가지지 않았다. 자율권을 허용하는 리더십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해야한다는 큰 교훈. 차라리 반미주의자나 극좌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로지 미국의 패권만을 위해 행동하는 교활한 제국주의자였다면 이정도까지 미국과 세계를 망쳐놓지는 않았을 것이다.[40] 결국 현실적인 시각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어설픈 정의심으로 나라를 운영한 셈이다.

타국을 증거 하나 없이 짓밟는 건 물론이고 애국법등 자국민의 헌법적 권리마저 짓밟는 부시 행정부의 폭압적인 국정운영 때문에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Freedom)와 민주주의는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이전에도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 및 위선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반미운동가들이 '미국의 자유'라는게 결국 미국의 패권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사례가 있지만, 조지 부시는 이걸 확실하게 증명(...)해버렸고 자유란 가치는 단순히 반미 운동가뿐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조차 조롱거리로 삼게 되었다. 결국 Free나 Freedom, 그리고 민주화"폭력으로 상대를 짓밟는다"는 비아냥조의 유행어로 쓰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을 상징하는 매가 산유국을 노려보며 "저 나라는 자유랑 민주주의가 좀 필요하겠군"한다거나, 미국의 단점을 꼬집는 사람에 대해 "너를 존나 자유롭게 해버리겠어"라고 하는 등의 개그요소가 있다. 비슷하게 폴란드공에서는 Freedom™이라는 미국공의 트레이드마크(..)로 나온다.
그냥 대통령만 아니었으면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6 어록

부시는 문법 파괴적이거나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발언을 반복하여, SNL(Saturday Night Live Show) 등 여러 코미디 쇼에 소재거리를 제공했다. 한 예가 바로 misunderestimate. 직역하면 "잘못 과소평가하다"(...) 당연히 이런 단어는 없으니까 "역전(역 앞) 앞" 에서 만나자고 한 친구를 떠올리며 피식 웃어주면 되겠다. "해외에서 들어온 수입품이 증가하고 있다"도 유명하다. 이런 문법 파괴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어법이 얼마나 많이 나왔냐 하면 9.11 테러 이전에 이미 부시의 언행에 대해 비판하는 책이 나왔을 정도이다. 참고로 9.11 테러 당시 부시의 임기는 고작해야 8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이러한 발언을 부시즘(Bushism)이라고 한다.

"There's an old saying in Tennessee — I know it's in Texas, probably in Tennessee — that says, fool me once, shame on — shame on you. Fool me — you can't get fooled again."

("테네시에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 텍사스도 이 격언을 쓰는데 아마 테네시에도 있을 겁니다 - 나를 한 번 속이면, 부끄러워 - 부끄러워 하세요. 나를 속여 - 다시는 속을 수 없어요")

원래 격언은 "당신이 한 번 나를 속이면 당신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고 두 번 속이면 내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이다. 이 말은 《화씨 911》의 엔딩에 나왔고 이 말 이후 무어 감독이 "나도 이젠 안 속아!" 라고 말하며 영화가 끝난다. 이 발언이 유명해진 이유는 문장 자체는 별 문제될게 없지만 부시가 전달하는 상황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부시는 "fool me once, shame on..."까지 말하고 잠시 멈칫하면서, 그 다음이 you인지 me인지 헷갈리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약 1초 뒤 "shame on you."까지 말하지만, 그냥 그 순간 감으로 찍은건지 아직도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잠시 머뭇... 그러다가 다시 1~2초 뒤 드디어 기억이 났는지 "한번 속으면 두번은 안 속으니까요!"라고 필요없는 해설까지 달으면서 자기가 진짜 헷갈렸었다는 거 인증...
사실 중간 부분도 살짝 골때리는데, 테네시 격언이라 해놓고 확실히 모르는지 텍사스에서도 쓴다고 한다. 아니 그럼 애초에 텍사스 격언이라 하든가...
"Which state is Wales in?"

("웨일스가 어느 주에 있죠?")

2000년 크리스마스 행사 때 백악관에 초대된 웨일스 출신의 성악가 샬럿 처치가 웨일스 출신이라고 말하자 웨일스를 미국의 도시라고 착각하고 부시가 물었고, 당황한 처치가 잉글랜드 옆에 있는 영국의 한 지방이라고 설명했다. 보통이라면 뭐 미국 지명은 유럽, 특히 영국의 여러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 많기 때문에 부시가 정말 이 사람이 미국의 어느 주의 도시에 있는 웨일스에서 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다만, 해당 성악가는 백악관에서 직접 초청한 사람이기 때문에 국적을 모른체 질문했다는것 자체가 큰 결례다. 물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 영국에서 오셨군요" 할 테지만 말이다. 성악가가 아니라 정치인이었다면 반미시위를 불러일으킬 차원의 모욕을 받은 처치는 백악관 행사가 끝난 후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개 지방 중 하나의 이름도 몰랐다면서 부시를 이상한 사람(weirdo)이라고 말했다.왈도
"The great thing about America is you don't have to listen unless you want to."

("미국의 아주 훌륭한 점은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된다' 는 것입니다.")

물론 듣기 싫다고 안 들은 대가는 2008년 9월에 이자까지 쳐서 제대로 받았다. 하필 임기말에 터지는 바람에 부시는 손만 빨다가 재빨리 떠났고, 불쌍한 오바마가 그 빚 갚느라 임기 내내 고생하는 중이다.
"They misunderestimated the compassion of our country."

("그들은 우리나라의 동정심을 잘못 과소평가했습니다.")

misunderstand와 underestimate가 합쳐진 괴이한 이 단어는 각종 토크쇼에서 안 좋은 의미로(...) 대 히트를 쳤다. 다만 이 misunderestimate라는 단어는 부시가 만들어낸 단어는 아니고 1897년에도 사용된 기록이 있는 단어긴 하다. [1] 이후 부시는 이 일에 대해 "저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냈습니다. 예를 들어 misunderstanding이라든지."라는 자랑을 했다고 한다(…). 본인은 misunderestimate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으나 자랑 당시에는 misunderstanding이라고 했다고 한다.
"When Iraq is liberated, you will be treated, tried and persecuted as a war criminal."

("이라크가 해방되면, 당신은 전범으로서 취급받고, 재판받고, 박해받을 것이다.")

prosecute(기소)를 persecute(박해)으로 잘못 얘기한 것. 사실 시민사회에서 이 두 단어는 의미심장한 관계도 있어서, "검찰(prosecutor)은 박해자(persecutor)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검찰인가 박해자인가" 같은 식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Is our children learning?"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습니까?")
"Our priorities is our faith."
("우리의 최우선사항은 우리의 신념입니다.")

children과 priorities는 3인칭 복수명사이니 3인칭 단수 be동사 is가 아니라 복수동사인 are를 써야 한다. 물론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모두 수의 일치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 것은 아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도 취임 이후 수의 일치를 실수한 적이 두 번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바마는 어려운 단어와 문법, 삽입구로 도배된 아주 긴 주어가 나오는 문장에서 틀렸다는 거고 부시는 주어-동사-주격보어(SVC)밖에 없는 매우 짧은 2형식 문장에서 실수를 했다는 것.
"You teach a child to read, and he or her will be able to pass a literacy test."

("아이에게 읽기를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읽기 쓰기 테스트를 통과할 것입니다")

"he or she"라고 해야되는 걸 뜬금없이 "her"를 넣어서 기초적인 영문법도 모르는 문맹인증(...)을 해버렸다.
"I think war is a dangerous place."

("전쟁은 위험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장소"가 될 수 없다. 차라리 War is a dangerous thing나 Battlefields are dangerous places.라고만 했어도 주술호응의 측면에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관계도 의외로 헷갈리기 쉽지만 이렇게 짧은 문장에서 헷갈리면 문제가 있다.
"Our enemies are innovative and resourceful, and so are we. They never stop thinking about new ways to harm our country and our people, and neither do we."

("우리의 적들은 혁신적이고 꾀가 많으며, 우리 또한 그렇다. 저들은 우리 나라와 국민을 해치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렇다.")

과연 그래서 미국을 이렇게 후루룩 말아잡수셨다.
"They want the federal government controlling Social Security like it's some kind of federal program."

("그들은 연방 정부가 사회보장연금을 무슨 연방 프로그램처럼 관리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은 연방 프로그램이다.
"A dictatorship would be a heck of lot easier, there's no question about it."

("독재는 장난 아니게 쉽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독재였다면 훨씬 쉬웠을텐데. 레알.")

"You're working hard to put food on your family."

("가족들 위에 음식을 올려놓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족을) 먹여살린다'는 뜻의 "to put food on the table (for your family)"라는 말을 하려다가 실수해서 '가족들 위에 음식을 올려놓는다(?)'라는 요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Too many doctors are going out of business. Too many OB-GYNs aren't able to practice their... their love with women all across the country."

("너무 많은 의사들이 폐업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산부의과 의사들이... 이 나라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obgyn은 "obstetrics(산과) & gynaecology(부인과)"의 축약어로, 우리말로 치면 산부의과의다. 의료행의를 하다는 뜻의 practice 까지 얘기해놓고 gynaecology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대신 넣은게 "(practice) their love with women"(...).
"Africa is a nation that suffers from incredible disease."

("아프리카는 놀라운 질병으로 고통받는 나라입니다.")

아프리카는 지역 혹은 대륙이지 나라가 아니다. 더군다나 incredible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위처럼 부정적인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미국 대통령도 이렇게 영어를 못쓰는데 왜 우리는 네이티브 수준으로 잘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주옥 같은 망언이 있으나 여백이 부족하여 더 이상 적지 않겠다. 거짓말 아니고 취임 이후 1~3년만에 내놓은 말실수들만 모아도 책 한 권이 나올 정도. 그래서 진짜로 책도 나왔다. 마크 리스핀의 《부시의 언어장애》라는 책이다. 아예 이런 부시 특유의 어록을 부시즘(Bushism)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 한국 현직 대통령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더...읍읍 대통령 아버지를 둔 것과 무능한 것도 비슷.. 읍읍

참 대단한 게, 백악관 시절 독서량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다른 백악관 참모들의 독서량을 훨씬 넘었다고... 만화 본듯

"이제부터는 자유의 확산을 위해 폭정을 종식시키려 노력할 걸세. 물론 괴롭지만 그러자면 다소의 무력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지. 어떤가 내 계획이?"
"글쎄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백악관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시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라크 침공을 빗댄 유머.

하도 망언이 많고 여러 실책들이 많아 당시에는 별로 이상할 것 없는 말조차 망언이 되기도 한다.

Every nation in every region, now has a decision to make. Either with us or you are with terrorist.

모든 지역에는 지금이 선택을 해야합니다. 우리와 함께, 아니면 당신은 테러리스트와 함께입니다. 전 세계는 선택해야 합니다. 미국의 편에 설지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지.

발언 당시에는 당시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문구였으나, 이제 와서는 부시의 망언에 묻어가게 되었다. 사실 당시 상황에는 적절했을지 모르나 이 말 역시 깨알같이 문법이 엉망이다.
"I think we agree. The past is over."

(우리 모두가 동의한 것 같군요, 과거는 끝났습니다.)

2000년, 당시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부시가 대선을 앞두고 한 말. 한마디로 20세기를 보내고 우리 모두 자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뜻으로 한 말이다. 문명 5에서는 이 어구가 마지막 기술인 '미래 기술'의 완성 멘트로 되어있는데, 한 번 연구하면 끝인 다른 연구들과는 달리 이 미래 기술은 반복 완료가 가능해서 게임 후반부까지 가게 되면 지겹도록 듣게 되는 멘트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부시의 이런 문법파괴적인 언행은 2기 행정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줄어들게 되는데[41] 이에 대해서는 부시의 문법파괴적인 언행은 사실 지지자들의 친밀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정적들이 부시를 과소평가하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포석이라는 주장과 그냥 뒤늦게 열심히 공부해서 인간승리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양분되어 있다.

7 기타 등등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가죽 점퍼를 입고 나오는 파격적인 패션감각을 선보였는데 이게 무전기를 등 뒤에 설치해 보좌관들로부터 답안을 전달받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있었다. 문제가 제기되자 결국 토론 도중에 옷을 갈아입었다.

2002년에 휴스턴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이때 부시가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이것은 그냥 포토샵 루머였다고. 그러나 사실이 무엇이든 간에 대중들은 "부시라면 과연 그럴 만도 하다" 고 생각하고 있다는 서글픈(?)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이 사진은 에미넴의 mosh 뮤직 비디오에서 패러디 된다.

원숭이, 특히 유인원침팬지를 닮았다는 말이 많이 나돈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부통령 딕 체니가 러시아와 싸우자!생각을 했는데 그때 부시가 말린적이 있다.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나온 미국 대통령은 발만 나왔지만 말투나 하는 짓이 어딜 봐도 부시. 《투모로우》에 나왔던 대통령 또한 아무리 봐도 약간 젊은 부시. 빙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고받은 직후 한다는 말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참고로 부통령은 아무리 봐도 딕 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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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성전기사단의 얼굴마담으로 뽑혔고 암살단의 지원을 받은 앨 고어를 성당기사단의 꼼수(투표조작)를 통해 눌러버리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대통령을 하는 동안 지나간 한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2001~2003), 노무현 대통령(2003~2008), 이명박 대통령(2008~2009) 세 명인데 2001년 방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this man' 으로 지칭하는 결례를 범했다. 부시는 대통령 당선 전부터 한국의 정치인들에 대해 상세히 보고받고 인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히 김대중에 대해서는 김정일 정권과의 관계를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카우보이 스타일을 감안하면 this man도 매우 순화된 표현이었을지도...

2002년에 벌어진 여중생 사망 사건때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아서 결국 반미시위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후 반미감정이 격화되어 이 때문에 2차 북핵위기와 2차 서해교전과 같은 사안들이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져. 결국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이회창을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시각도 있다. 자업자득 100년전 업보라고 해도 말이다. 시어도어 보고 있나?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easy man(이지 맨)' 쉬운 남자 '만만한 남자'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 이라는 표현을 써서 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버시바우 당시 대사가 회고한 바에 의하면 노무현 시절 한미관계는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으로 남아 있으며 정말 꼭 해야하는 회담만 형식적으로 가졌음에도 회담 내내 부시는 억지로 표정관리 해가며 노무현의 얘기를 흘려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노무현 5년 내내 상종을 안해주다시피 피해 다니다 본인 임기 1년 남겨두고 방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my friend가 온다"며 본인이 호칭하는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된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과물을 떠나 한국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으로 부시가와 맺어지면서 부시가 인간적으로는 무척 호인임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캠프 데이비드에 직접 초청하는 등 막역한 관계로 한미관계를 턴어라운드시킴은 물론 독도 표기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도 우리 손을 들어주었고 더 나아가 외교면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재선, G20 정상회의 개최 등을 이끌어 내는데 영향을 미쳤다. 퇴임 시에는 버락 오바마 당선자에게 특별히 한국과의 동맹에 대한 메모를 남겨 전달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김대중/노무현시절 한미관계는 위에도 적혀있지만 부시의 막나가는 행보에 대한민국 쪽이 반발하고 당시 대한민국 행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햇볕정책에 미국이 반발하면서 상당히 안 좋았다. 대중의 반미 감정이 이유로 폭발해 거의 반미국가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과는 겨우 1년간 임기를 공유했지만 위에 서술한 내용대로 한미관계를 정상화시켰고 현재도 필요할 때 아버지 혹은 본인이 내한하여 행사를 갖거나 유력인사들과 라운딩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대체역사 라노벨 《풀 메탈 패닉》에서는 죽는다(...) 정확히 이름은 안 나오지만 부시 대통령 아들내미인 관료라고 하는 걸로 봐서 확정적.

학원묵시록 HIGHSCHOOL OF THE DEAD》에서도 등장한다. 정확히 이름은 안 나오지만 좀비가된 각료들 유사모습을 보면... 결국 영부인에게 물려서 핵공격 승인을 최초로 하고 에어포스 원이 추락해서 죽는다. 감염되었기 때문에 좀비가 되었을지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연설을 하다가 실수로 엘리자베스의 나이를 200살이라고 해버리는 바람에 민망했는지 여왕에게 윙크를 날려 영국인들에게 무례하다고 까인 전적도 있다. G8 정상회담장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의자를 잡아당겨줬다(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식당 의자를 잡아당겨주는 것처럼). 독일인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키히토 국왕이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국왕을 향해서 'Japan King'이라 가볍게 발언하자 일본인들에게 까인 적도 있으며, 일본 언론과 외무성은 'King of Japan'이라 해달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라크에 깜짝 방문했다가 이라크 출신 기자가 던진 신발 두 개를 맞을 뻔한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신발투척 사건으로 우리나라 인터넷상에서 합성 소재로 한때 유행했었던 것.[42] 다행히(?) 그 신발을 피했고 그 기자는 즉시 경찰에 잡혀갔으나 이라크인들은 그를 영웅처럼 추앙했다(그의 고향 마을에 신발 모양의 동상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있나). 부시는 "나는 괜찮다. 그리고 그 기자가 관심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라고 애써 무마하려 했지만 누가 봐도 웃기는 상황일 뿐. 그리고 카타르의 알 타니 국왕은 용기 있는 처신이라며 그 기자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었다고...

이 일로 스타덤에 오른 그 기자는 얼마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후 여전히 기자 활동을 하고 있다. 더 웃긴 건 그 기자도 프랑스에 가서 똑같은 봉변을 당했다는 것. 프랑스에서 기자 회견 도중인 그에게 이라크 출신 망명인이 신발을 던졌고 그 역시 부시와 똑같이 신발을 피했다.

신발투척에서 모든 패러디들을 모아놓은 걸 볼 수 있다.

덤으로 퇴임 시기가 미국 드라마들의 휴방기와 겹치는 바람에 휴방기가 끝나면서 시작되어야 할 드라마들이 동시에 미뤄져 휴방기를 1주 더 연장해버린 셈이 되었다. 덕분에 퇴임식 보기 싫으니까 드라마나 틀어달라는 욕도 먹었다.

걸프전 때문에 '부시 2세'라고 불리긴 하지만 아버지 조지 부시와 비교하면 진짜로 가문빨로 대통령이 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남자다. 아버지 부시는 2차대전 참전용사에 하원의원, UN대사, 중국대사, 중앙정보국장, 부통령을 거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었으며, 대통령으로도 냉전 종식과 걸프전 승리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비록 마지막에 경기침체로 빛이 바래면서 클린턴한테 밀려서 재선에 실패하긴 했지만, 지금도 민주, 공화 양쪽에서 그래도 괜찮은 대통령이었다고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면...호부 밑에 견자가 났다'.

영어 위키백과에서 가장 수정이 많이 된 항목 1위로 선정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정말 극과 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한국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박정희. 그리고 출처표시 등의 이유로 목차도 제일 많다. 중국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마오쩌둥 총서기이고, 일본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원피스 등장인물 일람. 사스가 오덕의 나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신체의 일부처럼 써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그의 초상화를 그린 바 있다.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좆이 붓이.

2008년 올리버 스톤 감독, 조시 브롤린 주연의 《더블유》(W)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즉 조지 W. 부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다. 리처드 닉슨을 소재로 끝내주는 대통령 영화를 만들었던 스톤 감독답게 부시를 가지고 파더 콤플렉스강박증, 가벼움과 무거움이 휘몰아치는 비극적 인물을 표현하였다.

2004년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남우주연상 수상자이시기도 하다(...) 맡은 역할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에 등장하는 것.

세계적으로도 당연히 평가가 좋지 않은데 전 세계 대학생이 뽑은 역사상 최악의 악당 4위에 당당히 랭크되었다(...) 1위가 아돌프 히틀러, 2위가 오사마 빈 라덴, 3위는 사담 후세인이다. 참고로 마오쩌둥스탈린이 각각 부시보다 랭크가 낮은 5위와 6위이고 그 밑에 칭기즈 칸진시황도 보인다(...)

그 행적 덕분에 한국에서는 '조지고 부시고' 또는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8 퇴임 이후

2009년 한국에 방문해 잘 먹고 잘 대접받고 갔는데(...) 같은 시기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그때 북한을 방문해 억류된 여기자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거 참 묘하게 비교되네

2009년 언젠가 캐나다 에드먼턴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캐나다에서 꺼지라는 투의 포스터가 이리저리 붙고 시위를 하자는 포스터도 붙었다(...) 사실 캐나다인들은 부시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부시 행정부는 캐나다에 대단히 호의적이었기 때문. 까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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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법의 좋은 예

2010년 6.25 60주년 평화 기도회에 간증을 하러 온다고 했고 정말 와서 간증하고 갔다. 그러나 이전에 재선 기념 파티에 한국 개신교 관련 인사들은 하나도 초청하지 않고 통일교 관련 인사들을 초청하여 참가하게 함으로서 일부 개신교계에서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기도회까지 치뤄주며 지지했더니만 뒤통수를 쳐?'라고 생각했으려나...[43]

2010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4차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텍사스 레인저스 경기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나와 놀란 라이언에게 시구를 했다.


부자가 함께 평화롭게 늙어가는 것을 보면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지 호부와 견자라도 부자간에 정말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식으로 훈훈함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팬이다. 그래서인지 아들과 달리 레인저스 점퍼 대신 월드시리즈 점퍼를 입고 나왔다.

그런데 2011년 5월 23일엔 아드리안 벨트레에게 암살당할 뻔했다!


아무 일 없이 진숙이와 대화하는 천조국 폐하의 위엄...

이렇게 자주 알링턴을 방문하여 텍사스 레인저스를 열성적으로 응원하다보니 레인저스 팬들도 대통령으로서의 위업(...)과 상관 없이 텍사스의 한 어른으로서 지지를 표한다. 주지사 출신이고 구단주까지 했던 사람이니까...

2011년에도 텍사스 레인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자 시구를 했다. 다만 이번엔 많이 벗어나서 패스드볼이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전설을 저렇게 고생시켜도 되는 것인가


2012년 대선에 '오바마에 실수로 투표했다' 며 취소할 수 없냐고 물었지만 거부당했다... 는 루머가 번졌으나 그냥 루머라고 한다. 문제는 저런 말이 신빙성 있게 느껴질 정도의 이미지라는 것(...)

2013년 1월 22일에 거행된 오바마의 재선 취임식에 부친과 함께 불참했다. 부친이야 고령에 병환으로 인한 요양의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굳이 오바마의 바로 전임인 자신까지 불참할 필요가 있었을지...? 하지만 12월 넬슨 만델라 추도식에는 모든 전직 대통령 일가가 에어포스 원을 함께 타고 참석했다.

2015년 현재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동생인 젭 부시가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올라서고 있는 듯. 개판 오분전이 되어가는 공화당에서 어느 주자들보다도 정치적 자산이 많아 유력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극우로 치닫는 공화당 속에서 중도온건파로 분류되며,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보다 더욱 보수 이미지가 옅다. 주지사 시절에 민주당 편 들어준 적도 많고.. 거기다 젭 부시는 라틴아메리카학을 전공했고, 아내도 히스패닉이며,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므로 민주당 텃밭 지지세력으로 불리는 히스패닉의 표를 잠식해올 수 있다는 강점까지 갖추고 있다. (참고기사:'젭 부시' 중심으로 '부시 패밀리'가 뭉쳤다)

만약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출마하게 된다면, 부시 가문과 클린턴 가문이 24년 만에 대선에서 리턴매치를 벌이게 된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고, 1년이라는 시간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튀어나오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왔다. 뻔히 보이는 위험 혹은 새로운 재앙 내지는 깨어난 막말

트럼프와 동생 젭 부시가 경선 기간 중 원수를 져버렸기 때문에 아버지, 동생과 함께 일제히 2016 공화당 전당대회에 불참을 선언했다. 당의 살아있는 전임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불참하는 건 굉장히 이래적인 일. "내가 공화당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라는 말을 하는 등, 단순히 동생으로 인한 개인적인 원한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 고립주의 노선이 당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깊은 것 같다. 트럼프는 부시가 봐도 막장

최근 자신이 화가로부터 그림 교습을 받고 스스로 그린 정상들 초상화 작품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부터 대한민국 17대 이명박 전대통령 초상화도 부시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1. 아마존닷컴CEO.
  2. 9.11 테러 당시 뉴욕 시장.
  3. 보노, 빌 게이츠멀린다 게이츠 부부.
  4. 미국 사람들은 흔히 중간 이름의 이니셜인 W(더블유)를 따 더브야 부시(Dubya Bush)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W의 텍사스 사투리 발음인 Dubya를 조롱하는 것
  5. 아버지 부시가 허버트가 빠지면 아들 부시는 조지 부시 주니어가 된다.
  6. 부시는 대통령 재임 시절 예일대 졸업식 축사에서 "나는 평균 학점이 C였어도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고 떠벌리기도 했다. 사실 이건 유머러스한 표현이긴 하다. 부시의 말을 정확하게 인용하자면.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잘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C학점을 받은 학생 여러분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예일대 학위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딕 체니가 생각나는데, 그는 여기서 공부하다가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일대를 졸업하면 대통령이 되고, 자퇴하면 부통령이 된다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시의 말에 졸업생들은 박장대소와 함께 열광했다. 성적 나쁘고 졸업 못해도 예일대 다니면 미국에서 잘 나갈 수 있다고 격려한 것이니 연설 자체는 괜찮았는데, 대상들이 좀 박하게 말하면 미국의 재앙 취급을 당하는 인물들이라는 게 함정.
  7. 참고로 케네디는 해군 어뢰정 정장으로 근무하다가 일본군 구축함의 공격으로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부하들을 무사히 수습하여 생환하였다. 나중에는 이 부상이 다시 도져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기도 몇 차례 넘기기도 했다.
  8. 앨 고어는 공병여단 병으로, 케리는 해군 고속정 장교로 참전했다.
  9. 다만 이에 대해 당시 부통령~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의 후광+주요 선수들을 열심히 내다 판 덕분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대통령 취임 이후의 행보를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10. 무효표가 최소 수만표가 되는데 플로리다의 표차는 고작 537(0.009%)표였다.
  11. 첫 번째는 존 애덤스(2대)와 존 퀸시 애덤스(6대).
  12. 파월은 파나마 전쟁과 걸프전의 주역으로 워낙 인기가 좋아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 1순위로 꼽히기도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쟁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취했기 때문에 부시와 척을 지는데 이전의 평도 겹쳐서 파월의 오바마 지지는 그 의미가 컸다. 여러모로 부시가 건드려서는 안 되었을 인물 중 하나.
  13. 여기까진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라크 전쟁 전 그래도 테러의 명백한 배후를 일망타진 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아프간을 침공한 것에 대해 그리 크게 뭐라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14. 북한을 보라. 시찰단을 쫓아내고는 핵무기 만들고 있었지 않은가.
  15. 이게 얼마나 엄청난 규모냐면 탈레반이 기껏해야 5~10만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탈레반은 용병과 무자헤딘이 대다수인데, 이라크 저항세력은 대다수가 전 정규군이었다.
  16. 비교 대상이 좀 그렇지만 중일 전쟁에서 일본군이 한 짓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넓은 땅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의 병력이 점(요충지)만 장악하고 면(국토)은 장악하지 못한 것.
  17. 물론 이런 방식에 반대하는 수니파 저항세력도 없지 않았지만, 시아파가 죽는 건 수니파 쪽에서는 별로 나쁘지 않은 데다 워낙 효과적이다 보니...
  18. 미국의 국방 예산은 전세계 1위(미국)가 2위부터 9위를 전부 합친 것보다 두 배가 많다.
  19. 자료가 잘 발표되지 않아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음.
  20. OCSW로 알려져 있는 무기. 25mm 공중폭발유탄 고속발사기관총. 참고로 이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XM312이라는 OCSW의 부품만 갈아끼우면 50.cal로도 쓸 수 있는 기관총을 만들었는데 결국 둘 다 취소크리... 반면 미국에서 화력 걱정으로 취소된 20mm 공중폭발탄을 현명한 꼼수(?)로 먼저 실용화시킨 한국에서는 '길쭈욱한' 20mm 공중폭발탄이 사용되는 K-11을 사라고 미국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고...
  21. 이 미국 대통령의 외교적 삽질로 인한 영향이 빠져 있으니 열람 주의.
  22. 사실 2차 대전 패전의 영향으로 일본의 극우 일부는 반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23. 2차대전시 영국 주둔 미군들한테 내려진 명령 중 몇 개를 들자면 이렇다. <영국 사람과 이야기할 때 독립전쟁에서 미국이 영국을 이겼다고 주장하지 말 것>, <이야기를 할 때는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출 것> 등...
  24. 단, 서유럽 입장에선 동유럽 중에서 폴란드 같은 강국 정도를 빼고 허약하지만 대러 강경파인 국가나 우크라이나 같이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국가도 받아들이면 문제 발생 소지가 커지는 것도 있다
  25. 영어 Funny 는 재미있네 하는 뜻도 있지만, "Huh, Funny" 이란 식으로 신기하네, 우연이네 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26. 다만 다른 구 소련 연방 출신 국가들과는 달리 이들은 러시아와 관계를 두고 싶어하는 경향이 크다.
  27. 단, 이건 먼로주의(먼로독트린)을 고려한 서술이다. 비록 라틴아메리카의 남쪽 끝인 칠레, 아르헨티나에도 미국이 내정간섭 또는 개입을 하긴 했지만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보다 남쪽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미국과 가까운 편이 아니므로 앞마당, 안마당 또는 뒷마당으로 보기 곤란하다.
  28. 사실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못했던게 베네수엘라를 토함해서 대다수 남미 국가가 엄연히 선거를 통해 국가원수를 선출하는 국가였고, 그래서 군사력을 투입해봤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니 하는 드립이나 못칠 상황이 된데다가 당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난으로 미국의 대변인으로 여겨졌던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악명이 자자했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못할수밖에
  29. 멕시코도 자칫했으면 좌파정권으로 바뀔 뻔했다. 부시 입장에선 천만 다행으로 미국 본토 멕시코인 표 덕분에 우파가 소수점 차이로 우파가 계속 집권했지만. 만일 멕시코까지 좌파가 집권했으면 미국 정계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30. 이들이 미국에 개기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소보 승인, 팔레스타인 승인 문제 등이 있다.
  31. 해당 만평은 부시의 행태로 미국이 분열된 것과 함께 미국의 비만 문제도 함께 풍자했다.
  32. 사실 이 꼼수를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사실 빌 클린턴이긴 하다. 정확히 말하면 서명하고 글 적어놓는 숫자가 더 많았다는 거지 남용의 논란거리는 더 적었다고 한다. # 더구나 클린턴은 압도적인 공화당 하원과 겨루며 임기를 치른 사람이고, 부시는 공화당이 가득한 하원에서 이런 짓을(...) 레이건은 8년간 250건, 아버지 부시가 무려 4년간 228건(그 가운데 반대는 110여건), 클린턴이 무려 381건을 했으니(반대는 그 가운데 70건) 아들 부시의 8년간 157번은 훨씬 적은 것이나, 그가 건드린 연방법의 개수는 무려 1200개에 달한다(...) # (윗 각주 역시 그 건드린 법의 숫자를 말하는 듯.)
  33. 이것과 비슷한 "항목별 거부권법(line-item veto)" 이라는 제도는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 위헌 판결이 난 바 있다.
  34. 이 사건으로 물러난 물러난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매클래런은 《거짓말 정부》라는 책을 써 부시 정부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다.
  35. 지구온난화 문제에서 발 빼려고 벌인 짓 중 하나. 앨 고어는 "불편한 진실" 이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환경운동 영화에서 이 사건을 대차게 깠다.
  36. 하필이면 그 이전 빌 클린턴이 이끌던 1990년대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최고의 황금기로 꼽히는 시기였기에 더욱 비교된다.
  37. 타블로이드판인 G2이다.
  38. 역시 영국의 유명한 타블로이드지다.
  39. 타이틀 제목 밑에 달린 문구에서 미국 대선 자체를 '재앙'(disaster)로 표현했다(...) 최상단의 글귀는 도!, 더브야가 4년 연장.
  40. 이런 면모는 사실 아버지 부시한테 나타난다. 걸프전에 드러나듯이 미국의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반미국가들과도 손잡는 철저한 현실주의 노선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이미지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반면에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소모시키면서도 패권유지는 커녕 반미정서만 폭발시킨 아들 부시는...
  41. 대개 부시의 말실수로 불리는 어록들은 1기 행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2기 행정부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42. 중동 지역에서는 상대방을 신발로 가격하는 것이 큰 모욕을 주는 행위라고 한다.
  43. 사실 미국 내 통일교가 가지고 있는 돈의 영향력을 고려해보면 지나친 처사는 아닐...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