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역대 경찰청장
15대16대17대
강희락조현오김기용

趙顯五

1 개요

역대 경찰청장중 매우 인상적인 성우급 목소리를 가진 경찰청장
전의경의 아버지
절대로 안 없어질 것 같았던 의경내무부조리를 척결한 일등공신
그러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서 일부 논란도 받고있는 인물 아까비...

대한민국의 경찰. 16대 경찰청장을 지냈다. 전임자는 강희락, 후임자는 김기용이다.

2 생애

1955년 5월 15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정외과에 진학해 정치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에 15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 기획예산담당관실 외무사무관시보로 근무했고 1982년부터 84년까지 군복무를 했다. 그후 외무부 국제법규과, 영국 연수(케임브리지 대학교 법학과), 외무부 동구과(동유럽과) 등에서 근무하다 국토통일원 통일정책실에서 근무했다. 1990년에는 고시 출식 특별채용으로 경찰에 입직해서 바로 경정이 되었다.

1998년에 총경으로 승진했고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 울산남부경찰서장, 울산지방경찰청 정보과장, 서울 종암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2005년에는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경찰청 외사관리관, 감사관으로 근무했고 2006년에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경찰청 경비국장과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 당시에는 치안정감이 아니라 치안감이 보임됐다. 이 과정에서 인사청탁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9년에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 때 유명했던 사건이 쌍용자동차 노조 시위진압였다. 그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2010년 8월 치안총감으로 승진해 경찰청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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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09년 경기경찰청장 임기 시절부터 내건 슬로건은 '부패 경찰 척결'로, 청장 직속TF를 설립하여 부패ㆍ비리에 연루된 경찰관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파면 혹은 해임 등의 조치를 행했다. 사실 그보다 유명한 것은 성과주의의 표명로, 이에 대해서 양천서 고문사건의 원인이 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받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조치, 오히려 경찰이나, 군은 물론 공기업에서도, 대충대중, 적당적당 무마하려는 식이 남발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꼭 나쁜 정책만은 아니였다.

물론 불만이 없던것은 아닌지라 채수창 전 서울강북경찰서장[1]과 청문회장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조현오 청장의 정책에 대한 반론으로 기존 경찰평가에도 실적평가 기준에 의존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 조현오 청장은 독단적으로 자기 관할에 대해서 이중평가기준으로 적용한 것에, 일선경찰들은 죽어나갔다라는 논란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서장 재직시기부터 수사비도 실적에 따라서 분배라는 독단적인 정책도 시행했다는 논란도 있다.

3 경찰청장 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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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 선임 후에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임 당시 양천경찰서에서 발생한 고문사건이 조청장의 실적주의 탓에 일어났다는 논란이 있었고, 2010년 3월에 경찰관 기동대 특강에서 조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당시 야당은 청문회 자체를 거부하려고 했고, 여당에서도 근거 없는 소리라면 빨리 사과하라는 비판이 나왔고, 심지어 조갑제닷컴에서도 증거가 있으면 내놓고 증거 못내놓을 소리라면 그냥 사퇴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인사청문회 당시에 이를 부정하지 않아 2012년 5월에 차명계좌 발언 관련 수사가 들어갔는데 증거를 제출하지 못 하였다.[2] 또한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해서 유족들에게 짐승처럼 울부짖었다라고 비판하면서 또 한 비판을 받았다. 그외에 자잘한 것으로는 위장전입문제가 나왔고, 경비구장시절 모친상 부조금으로 1억 7000만원이 들어온 것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 청문회 통과가 어려운 인물로 손꼽혔던 인물.

그러나 경찰청장이 되고 나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업적을 세웠는데, 전의경에 만연하던 수많은 내무부조리를 거의 뿌리 뽑아 버렸다! 지금은 의경 경쟁률이 수십대 일이라서 체감하기 어렵지만, 당시에 의경 내무부조리는 육군과 해병대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심했기 때문에 이를 뿌리 뽑았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구타로 인해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던 전의경 내무부조리를 거의 완전히 뿌리 뽑아버린 덕분에 현재 의무경찰로 복무중인 수많은 청년들은 구타와 같은 악습으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수많은 대책을 내놓음에도 불구하고 내무부조리가 근절이 안되는 대한민국 육군이나 아예 근절 의지 자체가 있는지 의심되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경찰청장에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난 2011년 1월 23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307 전경대에서 6명의 이경들이 집단 탈영 후 PC방에서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가혹행위를 신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접한 조청장은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말로 엄청난 분노를 에둘러 표현했으며, 그 자리에서 307 전경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307 전경대는 해체되었으며 이 여파로 전국 지방청이 실태조사를 벌여 가혹행위 전경들과 이를 방조한 경찰관들까지 줄줄이 사법처리되었다.

이렇듯 조청장의 내무부조리 근절 방법은 꽤나 무시무시했는데 사고가 터진 부대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부대해체, 해당 부대 지휘관들은 무조건 해직 후 구속수사가 원칙이었다. 사실 부대의 운영을 책임지는 간부들의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내무부조리의 해결에 가장 모범답안이라는 것을 볼때 이는 아주 훌륭하고 제일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09년 말에 모 사단에서는 직할대 대대장이 닥치는 대로 영창과 징계를 내리자 부조리가 거의 사라진 반면 같은 사단 직할대에서는 구타를 간부들이 묵인해서 폭행이 발생하기도 했다. 같은 기수의 훈련병끼리도 천당과 지옥이었다.

다만 MB정권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경찰청장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꾸준히 언급되었다. 노무현 차명계좌 사건부터 경찰총장이 되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2012년 4월에 수원 토막살해 사건으로 사임하였다.[3]

4 퇴임 이후

사임 이후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야당 중진들과 관련해서 말싸움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총선출마는 없었다. 총선출마를 준비했다는 평은 많았지만, 여당쪽에 악재가 될 것이다라는 평이 많아서 주저앉혔다는 평이 많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으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이 계속되어 2013년 2월 법정 구속되었고, 2014년 3월에 대법원에서 징역 8월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5년 8월 11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음이 보도되었다. 혐의 내용은 청장 임기중인 2010년 8월, 집무실에서 청탁 목적의 금품 수수. 2016년 2월 17일 1 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5천만원 제공자 진술에 따르면 5만원권으로 제공했다고 하나, 이 땐 5만원권 발행 이전.

5 기타

  • 말단 간부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행보로 야당 등의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전의경들의 생활 실태 개선에 골몰했다는데, 야당의 질타를 놓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던 자리에서 뜬금없이 전의경 복무 실태 개선 방안에 대해 말을 꺼냈을 정도였다고. 경찰청장 취임 전부터 이미 전의경 내무부조리 척결은 어느 정도 예견된 셈이다.
  • 전의경 내무부조리 척결 과정의 유탄을 맞은 간부들은 조현오라는 이름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데, 정치적 행보로 인해 실형을 살 때는 조현오 저 xx는 평생 가둬놔야 돼!라는 희대의 어그로들을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웹툰 뷰티풀 군바리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들중에 대다수는 전의경들에 대한 직접적인, 구타, 가혹행위 가해자들이였기 때문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당시 얼마나 큰 정29현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오히려 조현오 청장였기 때문에 그정도 징계를 받고 무마된 거지, 선진국 경찰조직이면, 해고구속감이다.
  • 실적위주의 정책은 당연히 어떤 공무, 사업, 군, 민, 어떤조직이든 조직을 활발하게 돌리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고, 따라서 그가 실적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발생되었다는 문제를 그에게 추궁하기는 어럽다. 반대로 실적위주를 하지 않은 전 경찰조직은, 사건을 대충대충, 적당적당 무마하려는 사고들이 더 많다는걸 감안하면, 오히려 조현오는 경찰을 포함에 공기업, 공무조직들이 가지고 있는 능률저하의 문제를 나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이 임기였던 시절은 한창 공권력 추락으로, 수많은 현장직 전의경들과 경찰관들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상황들이 멈추지 않았고, 폭력시위자들도 포함된다는 이유로범죄자 인권을 중요시해 현장경찰관들의 자위권과 피해자의 안전을 훼손시켜온, 운동권 출신 대통령의 정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등의 정권에 서운함을 넘어 억울함까지 터저나온, 피해자, 경찰관들의 불만이 결국 조현오 경찰청장을 통해 폭발한 것이 그의 논란이 있는 정치적 발언의 원인이였다고 볼수있다.
게다가 당시 쌍용차 폭력시위자들은 현장경찰관을 태워죽일 목적으로 10m까지 가까이 접근해 화염병을 던지려는 것을, 경찰관이 자기방어를 위해 급히 쏜 테이저건이 얼굴에 맞았다는 것을 가지고, 테이저건을 대테러무기로 포장해 과잉진압(...)을 주장하며, 조현오에게 책임을 추궁했고, 조현오 경찰청장은 당연히 "빗맞았다고" 해명했으나, 그것을 비웃는 뻔뻔한 모습을 보여, 쌍용차 노조들은 졸지에 국민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얻었는데, 이러한 사건이 조현오 경찰청창 퇴임은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히 현재진행형 문제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권부터 폭력시위자에 대한 검거율이 미미하게라도 올라 폭력시위는 줄어드는 실정이지만, 여전히 처벌률은 재판부의 법남용으로 저조한 상황이다.
  • 마지막으로 전의경 내무부조리 척결이라는 업적 하나만으로도, 그가 대한민국 역대경찰청장중, 최고의 경찰청장이라는 명예를 얻는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건, 의경출신들만 아니라, 육해공군 출신들도 모두 동의하는 의견이다.좀 배워라 국방부야
  1. 양천경찰서 고문사건 당시 무리한 성과주의의 결과라고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책임지고 퇴진해야 된다고 대놓고 인터뷰를 했던 인물이다.
  2. 그나마 나온 증거라는 것이 2013년 4월에서 언급된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임경묵은 자기는 그런 말을 한 적은 커녕 조현오와 단둘이 만난 적도 없다고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그외에 언급된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 역시 그런 말 한 적 없고 오히려 그런거 없다고 했다면서 조현오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3. 그런데 딱히 이 사건이 경찰측의 잘못만으로는 보기 힘든것이 당시 경찰은 자동위치추적권이 없어서 피해자의 신고 핸드폰 연락기록으로 현장위치추적을 할 수 없었다. 유족들과 경찰들이 마지못해 소방에 연락해여 대리위치주적을 부탁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는데, 이 추적권이 없었던 원인이 폭력시위현장에서 폭력시위자들 검거에도 조금 유용하다는 이유 달랑 하나 때문에 법의 심판을 두려워한 운동권 출신 진보정당과 인권단체들이 거의 억지급으로 인권침해, 과잉수사 권한이라며 경찰에게 강제로 제거한 권한이다. 어찌보면 한국의 폭력시위자들의 파격적인 엄호 덕분에 오원춘은 안심하고 느긋하고 피해 여성을 강간, 살인, 그리고 토막에 성공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