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언어별 명칭
한국어죽음
중국어 (Sǐ; 쓰)
영어Death (데스)
일어()
(시)
독일어Tod (토트)
라틴어Mors (모르스)
프랑스어Mort (모흐)
스페인어Muerte (무에르떼)
이탈리아어Morte (모르떼)
러시아어Смерть (스몌르찌)
그리스어Θάνατος (싸나또스)
터키어Ölüm (욀륌)
쿠르드어Mirîn (미린)
에스페란토Morto (모르또)

1 개요

"그럼 제 가슴이 언젠가 뛰기를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럼, 네게 지정된 시간도 멈추게 되지, 아가. 네가 살아 온 시간, 다시 말해서 지나 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해들을 지나 되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너는 너의 일생을 지나 되돌아가는 게야. 언젠가 네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던 둥근 은빛 성문에 닿을 때까지 말이지. 거기서 너는 그 문을 다시 나가게 되지."
"그 문 바깥쪽에는 뭐가 있는데요?"
"그럼 너는 네가 가끔 들었던 나지막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게 되지. 거기서 너는 그 음악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 하나의 음이 된단다,"
미하엘 엔데모모》 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 귀천

"만약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 계셔 이문서로 들어와 보았다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정의

의 끝
긴 여행의 종착역
내인생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중요한 때
과학적으로 죽음은 의식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기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영면이라 하여 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잠은 자는동안 이라도 꾸는 반면 기절은 꿈도 꾸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절과 다른 점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데 있다.[1]

그런 죽음은 모든 삶의 종착점이며 불가피하게 여겨지므로 삶을 어둡게 바라보게 하며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데 이것이 심화되면 '죽음 공포증'에 걸리기도 한다. 허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이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공포에 괴로워하는 사람 또한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의식이 없는 죽음 뒤의 공포는 가짜라는 것. 내가 존재할 땐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으므로 공포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이 순간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하며 아무런 결과 없이 괴로워하는 것보단, 나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죽음 공포증의 치료법은 그저 이것을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유한하고,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설령 과학기술이 발달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되었더라도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고로 치닫는 순간 죽음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기피 대상이 된다. 그것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 그 이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하게 모르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같은 것들 때문일 것이다.[2]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감정이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혼란과 두려움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여러가지 과정을 겪는다. 그것은 죽음에대한 미성숙한 과정 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이 잘못 되면 위에서 말했듯 타나토포비아나 네크로포비아 등의 정신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한 것이고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죽음을 완전히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퀴블러로스는 5단계로 나누어,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순으로 설명한다.[3]

간혹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목숨보다도 명예나 자존심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오히려 죽음을 환영하며[4] 적극적인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은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이는 예전에도 그러하였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존재가 더욱 불분명하였기에 죽음을 완전히 수용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고대인들은 영혼 불멸설을 믿기도 하였고 사후세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시작하기 이래로 수많은 종교가 탄생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오시리스아누비스[5]의 심판을 받아 심장[6]을 깃털과 함께 저울에 재는데 이때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죄를 많이 지은 걸로 판정되어 암무트에게 심장을 먹혀 영원히 구천을 떠돌고 착한 사람은 오시리스의 왕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고 믿었다. [7] 그리고 인도인들은 모든 생명체들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다가, 제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고 믿었는데 그곳에서 태양신 미트라가 죽은 자의 삶의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하여 저울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으며, 심판을 받은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나가게 되는데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계곡 너머의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 같은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계곡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는데 이는 후에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에 영향을 미쳤다.[8]

그렇다면 죽음은 모든 생물들에게 절대적인 것일까. 예로부터 죽음은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음으로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늙어서 죽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이며 생물체에 따라서는 이를 극복하여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하다.[9] 트랜스휴머니즘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불로불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열심히 연구하는 중이다. 애초에 생명이란 것은 죽어있는 유기물들로부터 비롯되었다. DNA를 보존하는 데에 유리하다면 미토콘드리아처럼 죽은 채로 번식을 할 지도 모를 일이다.[10]

인간의 의식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뇌를 수명이 유한한 생체에 의존하는 대신 무한한 것으로 대체한다면 죽음을 회피하고 영원히 사는 것이 가능하다.[11]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죽지 않는 여러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한 예로 러시아의 재벌 드미트리 이츠보프가 밝힌 '아바타 프로젝트' 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 2015년~2020년, 사람의 뇌파로 로봇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12]
  • 2020년~2025년, 사람의 뇌를 이식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든다.
  • 2030년~2035년, 인공두뇌를 가진 아바타를 만들고 여기에 인간의 개성과 의식을 이식한다.
  • 2040년~2045년, 홀로그램 아바타, 즉 불멸의 존재를 완성한다.정화자

영어에서 '자유의 여신' 을 그냥 "Liberty" 라고 부르듯 사실 "Death" 라는 단어에도 저승사자 혹은 사신이라는 의미가 있다.[13] 밑에 나오는 디스크월드의 죽음이 저승사자의 외관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

의외로 경험해 본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기 전이랑 비슷할지도? 철학적인 요소가 없진 않지만 '삶→죽음' 이 아니라 '죽음→삶→죽음' 으로 태어나기 전을 죽음으로 해석하면 말이 된다. 이런 해석에서 죽음은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14]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2.1 죽음의 정의의 문제점

그러나 위의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의 정의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어느 시점부터 기능이 되돌릴 수 없게 정지된 것이냐는 점.

과거에는 심장이 정지하면 당연히 살릴 방법이 없었으므로 심장의 정지가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이 개발된 후 심장이 정지해도 빠른 처치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기게 되면서 죽음의 정의는 심장의 정지에서 뇌의 기능 정지 혹은 더 안전하게 모든 세포의 기능 정지 정도까지 후퇴하였다.[15] 모든 세포가 죽은 사람은 현재로서는 살릴 방도가 전혀 없으므로 이 정의는 현재 합당하다. 그러나 만일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죽은 세포 하나하나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이 정의는 한 번 더 확대 재구성 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누군가가 죽은 후 수십억 년 후에 고도로 발달한 인류의 후손이 조상의 몸을 구성하다가 조상이 죽은 후 우주 전체로 흩어진 원자들을 모두 모아 생전의 상태대로 조립한다면[16] 이미 죽어서 화장을 해버린 사람이라도 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17]

즉, 죽음의 기준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변화한다.

3 죽음 관련 통계

4 죽음의 종류(사인)

4.1 자연사

  • 신체의 노화로 인하여 숨을 거두는 죽음을 칭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인 동시에, 가장 낮은 확률의 사인이다.

4.2 병사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은 부지기수이지만, 그 중에서도 암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 사람의 주요 사인인 심혈관 질환, 교통사고, 자살 등을 모두 합쳐도 암으로 인한 사망보다 적거나 거의 같을 정도다. 암은 신체 중요 장기에 침범하여 그 기능을 교란하고 결국 장기의 기능 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 본인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 고약한 질병이다. 현대 의학 연구의 대부분이 암의 예방과 치료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당연한 일.

심혈관계 질환(순환기 질환) 역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주범인데, 막상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잠잠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심각한 장애를 가져다 주는 기습적인 형태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암과는 달리 일이 터지기 전에 발견만 할 수 있으면 웬만큼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 30~40대에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50대부터는 관상동맥 조영술이나 심초음파 등의 특화된 조기진단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암과 심혈관계 질환을 제외하면 대개 고만고만한 병들이 사인으로 포진하고 있다. 고혈압, 당뇨 등 소위 성인병에 속하는 만성질환들, 얕봤다가 죽기 딱 좋은 폐렴 등의 급성질환들, 혈관기형이나 자가면역질환처럼 타고 나는 병 등등이 그것이며, 대부분이 현대의학의 도움과 본인의 건강관리 노력을 통해 극복 가능한 질환들이 많다.

4.2.1 돌연사

4.3 외인사

의사가 사망판정 시 사망원인이 외인사가 될 경우 장례절차가 일반적인 병사와 조금 달라진다. 외인사가 확인되면 장례절차 진행에 필요한 서류가 사망진단서(사체검안서) 이외에 검사지휘서라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 검사지휘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일단 사망자가 발견된 장소 및 사건사고 발생 장소의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여야 하며, 관할지역 법원의 사건 담당 검사가 검사지휘서를 통해 시신을 유가족에게 인계한다는 내용이 확인되어야 장례절차를 계속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시신을 유가족에게 인계한다는 내용 대신 사망원인이 불명확하니 부검을 의뢰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으면 유가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부검을 진행하여야 한다. 부검을 하는 국과수는 사건관할지역에서 가까운 곳으로 경찰이 배정해주며, 운구차량은 경찰 측에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장례식장 또는 사설 구급차와 상의하여야 한다. 장례식장 중 시설이 고급화되어 부검에 필요한 설비가 완비되어있는 곳이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간혹 부검의사가 장례식장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검사지휘서가 발급되기 전에는 사건담당 형사의 승인 없이 시신을 다른 장소로 옮기거나, 시신을 이용하여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행위(염습, 입관 등)를 진행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변사체검시방해죄로 벌금 700만 원 처분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내 가족, 내 친척이라는 생각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다가 범법자가 될 수 있으니 이 경우에는 경찰 및 장례식장의 장례지도사가 안내하는 대로 따르는 편이 낫다.

4.3.1 사고사

4.4 기타 및 불상(D.O.A)(사인에는 포함되지 않음)

  • 고독사(孤獨死) : 외로이 죽음. 이미 일본에서는 이렇게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업체도 있을 정도. (국내에도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업체가 존재한다.)
  • 뇌사
  • 아사(餓死) : 굶어 죽음.
  • 자살(自殺) :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음.
  • 즉사(卽死) :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5 죽음을 일컫는 말들

  • 고사(枯死): 나무, 풀들이 말라 죽는 것을 일컫는 말로 식물의 죽음을 의미한다.
  • 골로 가다
  • 궂기다: (완곡하게) 윗사람이 죽다. 다만 활용은 "~를 궂기다" 라고 한다. 한겨레 신문의 부고란 '궂긴소식' 이 여기서 따온 것이다.
  • 귀천(歸天)/귀토(歸土) : 하늘/흙으로 돌아감.
  • 급서(急逝): '급사(急死)' 의 높임말. 갑작스레 죽음을 맞을 경우 쓴다.
  • 돌아가시다: '죽다' 의 높임말 및 완곡한 표현. 비슷한 표현으로는 영어의 'Pass Away', 일본어의 '亡くなる[18]' 가 있다.
  • 뒈지다: 죽음의 속된 표현. 주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인간 쓰레기인간말종들의 죽음을 지칭할 때 쓰인다. 거의 욕설이므로 웬만하면 쓰지 말자. '뒤지다' 라고도 하는데 아직까지 표준어는 '뒈지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뒈지다' 를 자주 쓰고 나이가 적은 사람일수록 '뒤지다' 를 자주 쓰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영어의 'Kick the Bucket[19]', 일본어의 'くたばる' 가 있다.
  • 몰(歿/沒): 어떤 이의 약력을 쓸 때 '~년에 죽었다' 는 뜻으로 쓰는 단어. 예를 들면 '19XX년 생, 20XX년 몰' 혹은 '생몰년 XX년~XX년' 이런 식으로 쓴다. 졸과 비슷한 의미.
  • 떠나다: '현세에서 몸이 아니라, 영혼이 저승으로 떠난다' 라는 정도 의 의미로 생각하자. 예를 들자면 '아, 아, 그는 떠났습니다'
  • 무지개 다리를 건너다: 기르던 애완동물의 죽음을 표현.
  • 반진(反眞) : 도교에서 죽음을 일컫는 말.
  • 별세(別世):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 높임말로 서세(逝世)가 있으나 거의 쓰이진 않는다.
  • 불귀(不歸):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뜻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불귀의 객(客)이 되다"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 불록(不祿): 녹을 타지 아니하고 죽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죽음을 이르는 말.
  • 붕어(崩御): 황제의 죽음. 짧게 '붕' 이라고도 한다.
  • 사거(死去): 죽어서 세상을 떠남. 주로 저명한 외국인의 죽음에 사용되는 표현인데 서거로 대접하기에는 좀 과하고 사망으로 하기에는 미흡한 중간급 저명인물의 자연사에 따라붙음.
  • 사망(死亡): 보통 사람의 죽음을 일반적으로 이르는 말. 다만 비슷한 의미를 가진 '타계'나 '별세'에 비해, 비교적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나 질병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다'라는 뉘앙스를 담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20]
  • 상(喪): 본인이 아닌 친족의 장례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장례 자체가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거다보니 죽음을 일컫는 완곡 어법으로도 쓰인다(ex. 부친상, 모친상).
  • 서거(逝去): 사거의 높임말. 자신보다 높은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인데 주로 국가원수에게 쓰인다(ex.대통령 아무개 서거).
  • 선종(善終): 천주교 신자의 죽음.[21]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 의 준말(ex.교황 아무개 선종)
  • 소천(召天): 개신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 개신교에서의 죽음(ex.목사 ○○○ 소천) 개신교에서는 널리 쓰이는 용어다.[22]
  • 순직(殉職): 일을 하다가 사망하는 경우이다. 계급이 있는 직업의 경우 특진을 하거나 국가유공자로 지정된다. 보통 소방관, 경찰 등에 주로 쓰인다(ex.데커드 순직).
  • 숟가락 놓다: 사람이 살려면 밥을 먹어야 할텐데 숟가락을 놓는다면 밥을 먹지 못하게 되니 죽게 된다는 뜻에서 나온 표현. 조선시대부터 쓰이던 말로 소설 장길산이나 추노에서도 나온다.
  • 숨지다, 숨이 끊어지다, 숨을 다하다: 말 그대로, 숨이 다하여 죽다.
  • 승하(昇遐)/등하(登遐)/예척(禮陟)/척방(陟方): 먼 곳에 올라가다.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 승화(昇華): 원래는 고체가 곧바로 기체가 되는 현상을 뜻하는데 통일교에서는 죽음을 승화라고 하며 장례식을 승화식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용례.
  • 열반(涅槃): 불교,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비롯한 고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 영면(永眠): 영원히 잠들다는 뜻으로 죽음을 뜻하는 말. '영면에 들다' 등의 용법이 있다. 유명한 사람의 죽음.
  • 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근래에는 40대, 50대에도 쓸 수 있는 듯. 비슷한 말로는 '단명' 이 있다.
  • 운명(殞命):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을 이르는 말.
  • 유명(幽明)을 달리하다 : "죽다" 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 ‘유명(幽明)’이란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 임종(臨終): 죽음을 맞이함. 또한 이 단어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 자식이 그 곁을 지키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 입적(入寂): 불교, 수도승의 죽음. 중이 죽는 것을 뜻함. 입멸(入滅), 귀적(歸寂), 적멸(寂滅), 원적(圓寂), 멸도(滅度) 등도 있음
  • 작고(作故): 고인(故人, 옛날 사람)이 되었다(ex.작고시인들).
  • 장서(長逝): '영영 가고 돌아오지 아니한다' 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 전사(戰死): 군인 등을 비롯한 전투원이 전투 중에 공격을 받아 사망함. 이러한 죽음을 당한 사람을 가리켜 전사자라고 한다. 영어로는 KIA(Killed In Action).
  • 절명(絶命): 위에 적힌 '운명' 과 같은 뜻이지만 좀더 강렬한 뉘앙스. 운명이 보통 조용한 분위기에서 서서히 맞게 된 죽음을 의미한다면 절명은 갑작스런 사고나 급성 질환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죽음을 당할 때 쓰이는 편이다.
  • 조천(朝天) : 대종교에서, 도가 높은 이의 죽음을 이르는 말.
  • 졸서(卒逝): 죽어서 멀리 감. 졸거(卒去)나 '~가 졸(卒)하다' 라고도 쓴다. 주로 옛날 역사서에서 관료의 죽음을 칭할 때 쓰인 단어로 어떤 신하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졸기(卒記)' 라고 한다.(황희의 졸기, 류성룡의 졸기 등) 요즘 '졸' 자만 쓸 경우 위의 '몰' 처럼 어떤 이의 약력을 적을 때 의례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 콩 팔러 갔다 : 서해안 지방(충청도, 전라도)에서 사람이 죽은 것을 에둘러 말할 때 쓰는 표현. '깨 팔러 갔다'고도 한다.
  • 타계(他界): 다른 세계, 곧 저승. 어른이나 귀인의 죽음. 일반적으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죽은 경우에 쓰인다.
  • 폐사(斃死): 주로 짐승이나 어패류가 갑자기 병들어 죽는 것을 의미한다.
  • 화거(化去) : 다른 것으로 변한다는 뜻.
  • 환원(還元) : 천도교,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
  • 훙서(薨逝) : 황제가 아닌 이나 제후의 죽음. '훙거(薨去)' 나 그냥 '훙(薨)' 이라고도 쓴다. 옛날 역사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지만 음이 매우 낯설기 때문인지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 flatline: 영미권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속어. 병원에서 사람이 죽으면 모니터에 뜨는 심전도 그래프가 ────── 모양으로 수평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실제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는 특유의 '삐이이이이이~→' 하는 효과음이(그것도 적절한(?) 톤으로, 정확히는 '삐' 말고 뭔가 다르게 들리는데 이걸 어떻게 한글로 적을 방법이 없네(...) 들어보기. 이 삐 소리는 1200Hz이다참고로 주식시장에서도 이걸 구경하는 날이 올 수 있다.
  • 요단강 익스프레스
  • 황천행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마미루
  • 으앙 주금
  • 마티즈가 배달됨
  • 미국 갔다
  • 인생 마감

5.1 완곡어법

우리말에서 죽다를 '돌아가다', '목숨을 잃다', '생을 마치다', '저승으로 가다', '하늘나라로 가다',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다' 등의 표현으로 대신하듯이 나라마다 죽음을 가리키는 완곡어법이 존재한다.

  • 영어
    • Game over
    • Pass away : 한국어의 '돌아가(시)다'와 비슷한 뉘앙스의 표현. 문장에 따라서는 과거형(passed away)이 되기도 한다
    • Expire : 특히나 의료계에서 환자가 사망한 경우를 이르는 경우가 많다.
    • Depart
    • Be gone
    • Breathe one's last (숨을 거두다)
    • Go to the heaven (천국에 가다)
    • Rest in peace (RIP 혹은 R.I.P. 비석에 많이 쓰이는 말이다.)
  • 일본어
    • 亡くなる (돌아가(시)다)
    • 旅立つ (떠나다)
    • 永眠する (영면하다)
    • 命を落とす (목숨을 잃다)
    • 특이한 사례로는 예전에 세토내해 연안 지방에서 쓰이던 '히로시마에 갔다 (ヒロシマに行く)'가 있었다.
  • 터키어
    • Canını kaybetmek (목숨을 잃다)
    • Vefat etmek (영면을 취하다)
    • Hayatı sona ermek (삶을 마치다)
    • Gücünü yitirmek (힘이 다 하다)
    • şehit olmak (순교자가 되다.) :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 경찰에 대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 Azrail canını aldı (아즈라일이 목숨을 가져갔다.) : 이슬람교사신아즈라일이 등장하는 표현이다.

6 죽음과 관련된 명언

인류에게 죽음은 영원한 숙제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였다.
그에 따라 역사적인 인물들도 죽음에 대해 고뇌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충무공 이순신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몇 번이고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한 번 밖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의 극작가, 시인)
공수래 공수거 시인생(空手來 空手去 是人生) :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 나옹화상(懶翁和尙)의 누님이 읊은 시, 부운(浮雲) 中
구질구질하게 살기보다는 깨끗이 죽는 편이 낫다.

- 헝가리의 속담
궁극의 자유는 죽음밖에 없다.

- 도올 김용옥
나는 불사(不死)를 믿고 싶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

- 존 키츠(영국의 시인)
나는 죽는다.

- 레온하르트 오일러(스위스의 수학자)[23]
명예로운 죽음은 불명예스러운 삶보다 낫다.

- 타키투스(로마의 역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는 인간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 오비디우스(로마의 시인)
사느냐, 죽느냐[24] 그것이 문제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의 극작가)
사람은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 S.존슨(영국의 문학자)
산자는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 석가모니(불교의 교조)
살아야 할 때 죽는 것은 천벌이요, 죽어야 할 때 사는 것도 천벌이다.

- 양주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
새는 죽음을 당하면 그 소리 슬프고 사람은 죽음을 당하면 어진 말을 남긴다.

- 증자(중국의 학자)
아버지 왜 죽음을 두려워하십니까? 아직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 러시아의 속담
어찌 내가 편히 쉬며, 어찌 내가 평화를 누리랴? 절망이 내 마음 속에 있거늘! 내 형제가 지금 된 것을 보라, 나 또한 죽고 나면 이같이 될 것이리라... 죽음이 두렵도다!

- 길가메쉬 서사시, 엔키두장례를 치른 후 길가메쉬가 애도하는 장면. 이는 인류 역사에서 죽음에 대한 가장 오래 된 실존적 묘사로 통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숭이로 이 세상을 떠나리라.

- 이솝(그리스의 우화 작가)
의술로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지 모르나 죽음은 의사에게도 엄습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린 자기 길을 간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신만이 안다.

- 소크라테스(그리스의 철학자)
이 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대로.

- 터틀맨
인간의 일생은 구두쇠라도 양보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유언을 쓸 때이다.

- 모랑(프랑스의 작가)
인간이 품고 있는 죽음의 공포는 모두 자연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유래한다.

- 루크레티우스(로마의 시인, 철학자)
인생에게 종말이 없었다면 누가 자기 운명에 절망할 것인가. 죽음은 비운을 더없이 괴로운 것으로 만든다.

- 보브나르그(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인생이 끝나면 우리는 빈손으로 간다.

- 중국의 속담
잘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주듯이 잘 쓰여진 일생은 평안한 죽음을 준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탈리아의 화가, 공학자)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죽고 없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불쌍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않는 사람은 더 불쌍하다.

- 독일의 속담
죽은 제왕보다는 살아 있는 거지가 더 낫다.

- 라 퐁테느(프랑스의 우화 작가)
죽음은 감각의 휴식, 충동의 절단, 마음의 만족, 혹은 비상 소집의 중지, 육체에의 봉사의 해방에 지나지 않는다.

- 아우렐리우스(로마의 황제)
죽음은 돌아오지 않는 파도이다.

-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
죽음은 늙어서 갚아야 할 오랜 빚과도 같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죽음은 모든 악을 고친다.

- 이탈리아의 속담
죽음은 우리들 모두가 갚아야 하는 빚이다.

- 에우리피데스(그리스의 극작가)
죽음은 우리의 모든 비밀, 음모, 간계로부터 그 베일을 벗겨 버린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러시아의 작가)
죽음은 태어나기 이전의 나 자신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 서양 금언
죽음을 피하기보다 죄를 삼가는 것이 더 낫다.

- 토마스 아켐피스(독일의 성직자)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의 극작가)
지난 날 모든 일을 다루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된다.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파게 된다.

- 문무왕(신라 30대 국왕)의 유조 중에서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그것을 잃게 되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예수(요한복음 12:24,25)
태어난 자에게 죽음은 반드시 찾아온다. 죽은 자는 반드시 다시 태어난다. 피할 길 없는 길을 탄식해서는 안 된다.

- <바가바드 기타>
항상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만이 참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다.

- 디오게네스(그리스의 철학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구양수(歐陽修; 중국 철학자)
잠은 죽음의 사촌이지.

- 나스(Nas,미국의 래퍼)
죽음이란 없다. 그와 같이 보이는 것은 변화이다. 죽음의 입김이라는 이 생명은, 생명극락의 외각지대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 입구를 사망이라 부를 따름이다.

-롱펠로

7 죽음이 의인화된 캐릭터 또는 죽음이란 이름을 가진 캐릭터

7.1 뮤지컬 엘리자베트의 죽음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일대기를 그린 이 뮤지컬의 등장 인물 관념.[25] 등장 횟수는 많지 않으나 무대장악력 면에 있어서는 실제적 남자 주인공이다. 엘리자베트가 어린 시절 위험한 놀이를 하다가[26] 생사의 고비를 넘겼을 때 그녀를 처음 만난 후 그녀가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엘리자베트의 주변을 스토킹 맴돌며 유혹한다. 하지만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단순히 엘리자베트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멸망을 부추긴다고 볼 수도 있는 캐릭터.

연출을 잘못하면 절대자 포스에서 찌질한 구남친이 돼버리는 거 한순간인 캐릭터인데 한국에선...

8 가상매체에서의 죽음

픽션상에서의 죽음인 만큼 그 무게는 실제의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스토리 전개나 연출 등에 있어서 가장 파괴력이 높은 장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가상매체에서 죽음의 역할은 여러가지. 스토리를 비장하게 만들거나, 독자를 슬프게 하거나, 주인공을 더욱 강하게 만들거나, 악당을 더욱 사악하게 연출해주는 등 작품 전개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중에서도 독자 및 플레이어의 감정이입 대상인 주인공을 이끌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며 주인공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캐릭터의 죽음은 크나큰 충격이나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인 사례가 그 유명한 에어리스 게인즈버러라든가 사우스 버닝 등. 특히 이들은 작품의 초반이나 종반이 아니라 스토리가 한참 진행중인 중반 무렵에 죽는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죽으면, 클리셰 파괴가 아닌 이상 사실상 해당 작품의 종결을 알릴정도로 극단적인 스토리 전개기법이다. 주인공의 사망 참조.

8.1 게임에서의 죽음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죽음은 게임 오버로 귀결된다. 하지만 RPG의 경우 전투 중에 체력이 0이 되어 쓰러지더라도 전투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언제 쓰러졌냐는 둥 쌩쌩하게 돌아다닌다. 부활 마법 등으로 죽은 동료를 다시 살려내는 일도 비일비재. 게임오버라는 개념이 희박한 MMORPG에서는 죽으면 안전지대에서 부활할 수 있지만 사망에 따른 각종 페널티가 부가되는 경우가 많다.

체력이 0이 된 캐릭터가 치유 마법 등으로 다시 쌩쌩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졌는지 '사망' 이 아닌 '기절' 이나 '전투불능' 등으로 처리해 잠시동안 플레이에 개입시킬 수 없는 개념으로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전개를 위해 죽어야만 하는 캐릭터는 부활이 불가능한 완전사망으로 처리된다.

간혹 캐릭터가 죽을 경우 그 시점에서 진행하던 게임이 완전히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27] 이런 요소가 묘하게 스릴 있다며 이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로그라이크 게임에 도입되었던 Perma-Death 시스템을 시초로, 디아블로 2의 하드코어 캐릭터(생성시 체크해서 설정), 마인크래프트의 하드코어 모드, 헤이븐 앤 허스 등. 그리고 죽을시 캐릭터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도 죽는 초강화판

게임에서의 죽음이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을 경계해,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의 죽음과 살생에 대해 고찰할 수 있도록 게임 속의 죽음을 여타 게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게임도 있다. 생명체의 죽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Execution이나 적을 처치할 때마다 플레이어의 하드에 있는 파일이 같이 지워지는 lose/lose[28],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는 상냥한 게임"임을 캐치 프레이즈로 하지만 그 뒷면이 존재하는 언더테일 등이 그러한 경우.

8.2 나스 키노코가 쓰는 고유명사

생명체, 비생명체 등 모든 물체의 미래에 존재하는 종착점.

즉, 모든 물체는 파멸될 미래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토오노 시키료우기 시키직사의 마안으로 보는 점과 선은 뻥 좀 섞어서 말하자면 모든 물체의 미래라는 이야기가 된다. 설정상 얼티메이트 원 등의 완전히 초월해버린 존재에게는 이게 없다는듯.

보통명사 죽음과 차이점은 '삶이 없음'을 죽음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스 키노코의 소설에서 쓰이는 '죽음'(최소한 월희에서 직사의 마안이 관계된 부분의 설명)을 보통명사 죽음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차라리 임의의 고유명사('파이널 엔드' 같은 식으로)로 바꿔서 생각하면 오히려 이해가 쉽고 머리 속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8.3 부기팝 시리즈에서의 죽음의 개념

라이트 노벨 부기팝 시리즈에선 죽음이 일종의 에너지로 묘사된다. 남의 죽음을 뽑아서 대신 쓰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명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9 바둑에서의 죽음

바둑에서는 돌이 두 집을 낼 수 없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부른다. 단, 이 되는 경우는 제외다. 두 집을 내지 못해 죽은 돌을 '사석(死石)' 이라고 부르며 바둑이 끝날 때 잡힌 돌로 취급해서 들어낸다.

10 영화에서의 죽음

노인의 전쟁과 같은 미래 SF에서는 유체이탈과 같은 식으로 자아를 이식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11 안 죽는 방법?

만약, 신이 되어 전지전능 그 자체가 되면 죽음조차 무의미해지겠지. 그런데 말이야, 죽음은 순리요 유한함의 끝으로써 이 모든 것들의 끝이요, 삶에서 받은 고통을 다 내려놓고 쉬는 요람과도 같으니 거스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지 죽지 않는 법이란 없느니..

이 단락에서는 지금 당신의 몸 상태 그대로 유기체로서 살아가는 영생은 설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의 과학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이점이 온다로 유명한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중 영원히 사는 법이 있다. 커즈와일은 인간 수명의 증가 속도가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으며, 이 속도가 인간의 수명이 진행하는 시간(1년/년)을 초과하는 순간 영생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말로 진지하게 영생을 달성하기 위해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꼭 영생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건강관리를 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여기에서 '죽지 않는다' 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소멸하지 않는 것", 즉 정신을 만들어내는 뇌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 중에는 뇌를 수명이 유한한 생체 기관에 의존하는 대신 수명이 무한한 인공 기관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으며 뇌를 외부로 꺼내어 영원히 산다는 구상도 있다(영어로는 'isolated brain', 중국어로는 고립뇌)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기술이 발명되고 실용화될 때까지 살아남을지가 불확실하므로 뇌를 포함한 온몸을 냉동시켜버리는 냉동인간 기술을 추천한다. 냉동인간을 소생시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미래에 냉동인간 소생 기술과 위의 수명을 정복하는 기술이 모두 완성된 후에 자신을 소생하기를 기다리는 것. 실제로 이미 그런 이유로 냉동된 사람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테드 윌리엄스. 자세한 것은 냉동인간 문서 참조.호크룩스

위에 나왔다시피 영원한 죽음도 없고 영원한 삶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수천억 년을 산다고 해도 우주 자체의 수명이 끝난다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엔트로피 법칙 같은 것은 찜쪄먹는 능력을 가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대비해 우주를 새로 만드는 방법도 구상 중이라고... 미치오 카쿠의 저서인 평행우주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참고. 오래 살고 싶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 살고 싶을까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로 이식하여 영생을 누린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이는 논란이 많은데 이식된 의식을 가진 컴퓨터가 기존의 인간과 동일인인지 아니면 그 인격과 기억을 복제한 새로운 인간인지 애매하기 때문. 찬성하는 측에서는 어차피 뇌를 구성하는 물질들도 시간이 지나면 변해가니 그게 금속으로 변한다고 차이가 있냐는 입장. 그러나 의식을 복제하되 원본이 그대로 존재하는 경우, 의식을 두 컴퓨터에 동시에 복제하는 경우 등등을 사고실험해보면 이는 그렇게 단순히 받아들일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일이 실현 가능한 기술이 된 후, 오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치고 나서 인간의 생명과 개인성에 대한 정의가 재정립되고 나서야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12 관련 문서

  1. 만약 환생이 실재한다면 죽고나서 무언가 다른 존재로 환생하기 전까지는 계속 기절한 상태라 유추해 볼 수 있다.
  2. 죽음 뒤엔 사후세계가 존재하며 윤회사상이 있다고 많은 종교에서 말하지만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단정짓지 못한다. 어쩌면 그냥 완전한 무(無)인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사후세계나 윤회나 복불복이라 천국일지 지옥일지 알 수가 없으니...
  3. 이것을 GTA 5에서 트레버 필립스(!)가 써먹는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4. 대표적으로 북유럽의 바이킹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전사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겨, 병사나 자연사하게 되었을 경우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5. 둘다 고대 이집트 종교의 사신(死神)이었는데 원래 의미로서의 사신 ― 이를테면 염라대왕이나 하데스 같은 저승의 군주 ― 은 오시리스, 흔히 통용되는 의미로서의 사신 ― 리퍼나 타나토스 같은 저승사자 ― 은 아누비스다. 이집트가 그리스, 로마의 속주로 있던 시절에 아누비스는 헤르메스와 융합되어 숭배되기도 했다.
  6. 그래서 시체를 미라화할 때에도 나머지 내부 장기를 모두 들어냈지만, 심장만은 놔두거나 모조 심장이라도 넣어줬던 것이었다.
  7. 물론 여기서 심장의 질량이 아닌 죄의 무게가 재어진다. 그리고 같이 재는 깃털은 진실의 깃털.
  8. 고대 유대교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뜻하는 스올(Sheol)에서 쉰다고 생각하였다.
  9.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 라는 해파리는 번식이 끝나면 다시 미성숙 상태인 폴립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해 영원히 산다. 물론 먹히면 그런 거 없다!
  10.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기생해서 번식을 하는데, 생명 활동이 가능함에도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세포 분열을 얻어타며 번식을 이룬다. 죽은 채로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면 진화가 그런 식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식도 '진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없는 것이 더 낫다면 사라질 수 있다.
  11.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메텔과 함께 은하기차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가는 먼 여행을 떠난다.
  12. 현재 어느 정도는 실현된 기술이다.
  13. 소문자 death는 말 그대로 추상적인 의미의 죽음, 대문자가 앞에 붙은 Death는 사신이라는 뜻으로 구분한다.
  14. 한국어에서 '죽다'의 높임말(또는 완곡표현)이 '돌아가시다'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5. 그래서 뇌사 상태의 사람을 안락사시켜도 되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에 대한 찬성론에선 뇌로 인한 의식구조가 성립해야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
  16. 단 이것은 기술의 발달 이전에 여러가지 딜레마가 존재한다. 테세우스의 배 참고.
  17. 단지 원자들을 모아 조립하는 것으론 동일 개체를 복원한다고 볼수 없고 그 배치상태를 알려줄 정보도 한 요소로 간주해야 한다.
  18. 발음은 '없어지다'를 뜻하는 '無くなる'와 같다(なくなる).
  19. '죽기 전에 할 일들의 목록' 을 나타내는 '버킷리스트' 는 여기서 유래했다. 참고로 직역하면 '양동이를 차다' 정도가 되는데 이는 교수대에서 발판을 치워버리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 예를 들어, 자연사했다면 '타계'나 '별세'라 할 사람들도 사고사한 경우 '사망'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21. 이전 문서에서는 교황, 주교, 신부 등 성직자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는데 사실은 평신도를 비롯하여 천주교 신자 누구에게나 쓰는 말이다.
  22. 다만 이미 쓰이는 용어와는 별개로 첫째로 한문의 어법상 '하늘(하나님)이 부르셨다(주술관계)' 는 의미로 사용하려면 소천이 아니라 천소가 되어야 맞다. 소천이라고 하면 하늘을 부른다는 뜻이 된다. 둘째로 召는 '부를 소' 자이므로 '소천했다' 라고 표현하면 고인이 뭔가를 불렀다는 뜻이 되어 의미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하나님의 부르심' 이라는 의미로 소천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항상 '소천되다' 라고 수동형으로만 쓰여야 하며 '소천하다' 라는 표현은 틀렸다. '소집하다' 와 '소집되다' 의 차이를 생각하면 쉽다.
  23. 오일러의 유언이다.
  24. '죽느냐, 사느냐' 로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원어로 'To be, or not to be' 이므로 사느냐가 앞으로 오는 것이 맞다. 원문을 직역하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뜻에 가까운데 짧고 간결하며 힘찬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진 사례다.
  25. 관념을 의인화시켜 무대에 등장시키는 경우는 서구권에서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26. 연출에 따라 외줄타기인 경우도 있고 나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27. 주인공이 죽을 경우 세이브 파일이 삭제, 온라인 게임 캐릭터가 죽을 경우 캐릭터가 삭제되는 등.
  28. 다만 lose/lose같은 경우는 죽음에 접근하기 위해 설정한 살생의 대가가 게임과는 생판 상관없는 파일이라는, 다소 단순무식하기까지 한 비율이었던 탓에 오히려 적을 터뜨리면 파일이 지워지는 신기한 게임 정도로나 알려져 일부 도전 정신 넘치는 플레이어들의 게임 속 살생을 부추기게 되거나 심지어 악성코드 취급되었을 뿐, 결과적으로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의 죽음과 살생에 대해 고찰하게끔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