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地域感情, Regionalism

1 개요

비뚤어진 애향심이나 역사적, 경제적 등 여러가지 이유로 지역과 지역 사이의 경쟁구도로 인해 일어나는 적대감정을 말한다. 가까운 사례로는 대한민국영남 VS 호남이나, 일본간토 VS 간사이 간 지역감정을 들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각 나라마다 흔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다.
지역감정은 세대/성별/종교/계층/이념 갈등 등과는 또 다른, 주로 한 국가 안에서의 지역적인 반목을 말한다.

후삼국시대로 분열되는 시기도 넓게 보면 지역감정으로 인한 내전으로 볼 수 있고, 고려시대 무신정권시기의 각 지역들의 봉기[1]라던가 조선시대의 함경도평안도의 반란들(이시애의 난이나 홍경래의 난 등)처럼 지역감정으로 인한 내분 및 봉기도 넓게 보면 지역감정으로 인한 내전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아예 범죄자가 발생한 지역 전체를 반역의 고장으로 낙인찍어 지역차별을 유도하는 반역향 제도가 존재했다. 그리고 탐라가 조선에 통합된 이후에도 조선은 함경도, 평안도 만큼은 아니지만 제주도도 차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2] 물론 현재에도 지역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와 한반도의 대립은 없다.

한편으로 서로 다른 민족 사이의 반목, 즉 민족 감정과 연결되는 지역 감정도 있다.[3] 또 오랫동안 조그만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다가 통일된 나라들의 경우[4] 그 작은 나라들 사이의 갈등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한 나라가 2개 이상의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던 경우(예를 들면 벨기에)에도 종주국의 언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 대결 양상은 지역마다, 그리고 국가마다 달라서, 라이벌 수준에서부터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인 수준까지 다양하다. 한국도 지역대립 문제는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떡밥이지만,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항목에 언급된 예시(같은 나라지만 실질적으로 이웃나라나 다름없는 상태인 예)들을 보면 아예 국가 차원으로 갈라서자는 얘기가 나올 만큼 지역감정이 극대화된 예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가 그렇다.

2 원인

특히 역사가 길고 농경사회에 가까울 수록 다른 요소 대신 지역 기반으로 파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것들이 발생하는데는 고대의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연유하는 역사적인 지역감정도 있으나, 현대의 지역 갈등은 단기간 내 급격한 개발이라는 특성상 지역의 경제적 성장 배분의 문제와 관련있는 경우가 많다. 산맥이나 강으로 구분되는 큰 단위의 지역 뿐만 아니라 지역 내의 도시들, 심지어 레벨의 작은 행정단위까지도 이러한 크고 작은 끼리끼리 경향이 존재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교통의 발전으로 타 지역간 왕래가 수월해지면서 타 지역사람을 만나볼 일도 매우 많아졌다. 하지만 과거만 해도 평생 살던 마을을 못벗어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때문에 타 지역에서 오는 뜨내기들은 차별당하는게 일상적이었고 이런것이 쌓이며 지역감정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역감정이 발생하는 이유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이 지역감정을 정치인들이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2.1 지역 발전의 불균형

도농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후술하겠지만 같은 지방이라고 해도 동네에 따라 경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 이것이 지역 감정이 되기도 한다.

3 폐해

지역감정에 민족주의까지 개입할 경우 분리주의 운동이 생겨나고, 극단적인 경우 내전으로 비화될 우려까지 있다. 후술할 항목들처럼 "같은 나라지만 실질적으로 이웃나라나 다름없는 상태인 예"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식견을 가졌다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온라인에서 함부로 지역감정을 가지고 어그로를 끄는 것은 인터넷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실 정치학적 관점에서의 지역감정은 인간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갈등(=균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이기심, 그리고 지역간의 역사적/경제적/지정학적 대립이 있는 한 지역감정은 많든 적든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형제, 친구, 연인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듯, 균열과 갈등은 억지로 억눌러 둘 때 훨씬 위험하게 폭발하기 십상이다. 존재하는 갈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심탄회하게 토론 및 협상과 조정으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개방적 환경 조성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비 온 후에 땅 굳는다"라는 속담도 있듯, 적절한 갈등은 공동체에 의외의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인류 사회가 지속되는 한 영원한 떡밥인지, 근미래먼 미래를 다룬 창작물에서도 보통 지구 본성[5]과 식민지 행성간의 지역감정(?)을 갈등의 떡밥으로 제시하는 클리셰도 있다. 설사 식민 행성 없이 지구 내에서만 세계가 통합된 경우라 해도 현재의 국가 단위 지방에서 반기를 들어 내전이 빚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지역감정으로 인해 지방인구 증가 속도가 느려서 도시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폐해도 있다. 수도권의 경우 애초에 토박이보다는 타 지역 출신이 많기 때문에 지역출신간의 갈등은 심각하지 않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들의 경우 지역감정으로 인한 기존 주민들의 텃세를 두려워해서 이주하기를 꺼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6] 이것도 폐해라면 폐해라고 볼수 있다.

4 유형별 사례

4.1 도농간의 갈등

지역감정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례로 시도 내에 있는 시군의 도농간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도농의 관계는 실제로 봐도 상반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편으로 도시에서는 공동체 생활이 매우 드물고 개인성향이 매우 짙어있는 반면 농촌의 경우는 공동체 생활이 활발하면서 개인성향이 매우 드물어 보이는 편이었다.

이렇게 도농간의 인식과 생활문화 등이 다르다보니 이들이 행정구역을 통합하고자하면 서로 뜻이 맞지 않는다며 반발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도시에서는 저따위 천박하고 미개한 촌놈들과 한 지역에서 일심동체를 할 수 있겠냐며 불만이고 농촌에서는 도시놈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농촌 공동체가 깨지고 도시의 혐오시설들이 농촌으로 몰려올 것을 우려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또 시역 및 군역에 있어서도 분쟁이 있는 편이며 지역간의 경계를 두고 서로 분쟁과 갈등이 오가는 경우가 있다.

4.2 도산간의 갈등

산자락이 많은 한반도의 특성 때문에 도시에서는 교통 발달을 위해서 산자락이나 산허리에 터널을 뚫게 되는 편인데 일부 산촌이나 환경단체 등에서 반대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도시와 산촌간의 갈등도 있다.

4.3 농어간의 갈등

매우 보기 드문 사례지만 농어간의 갈등도 미묘하게 존재한다. 농어간의 관계는 도농 관계와는 달리 같은 시골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갈등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부분적으로 미묘한 갈등관계도 있다. 농촌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어촌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기 때문에 다른 편인데 조선왕조 때만 봐도 농촌은 그나마 평민급 대우를 받아온 반면 어촌은 천한 취급을 받아 '뱃놈', '바닷놈' 이라는 멸시를 듣는 수준이었다. 고려왕조 때도 도민(島民)은 하류층 상놈으로 분류되었을 정도였다.

4.4 농농간의 갈등

같은 농촌이라도 땅 면적이 넓은 농촌 사이에서도 서로간의 동족갈등이 있었다. 특히 농촌마을간의 갈등과 분쟁이 있는데 읍면이나 마을간의 사이에서 미묘한 농농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농작물 문제, 농업용수 문제, 전답 면적문제, 농산물 생산관계 등에 있어서 농농갈등의 원인이 된다.

5 국가별 사례

  • ※표는 민족간 갈등 사례다.
  • ★표는 제1의도시 VS 제2의도시 간 갈등이다. 아직 추가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추가바람.
  • 해외 사례는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항목과도 관련이 깊다.

5.1 아시아

5.1.1 대한민국

문서 참조.

5.1.2 북한

5.1.2.1 관서(평안도) VS 관북(함경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도함흥을 중심으로 하는 함경도 사이의 지역감정이다.

사실 그 전에는 평안도함경도 두 지역이 크게 다툴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남북 분단 이전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경기도평안도 사이의 지역감정이 제일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 분단이 지나고 두 지역 사이의 지역감정이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대체로 북한의 최대도시 평양과 그 다음으로 큰 도시인 함흥의 라이벌 관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른 행정구역인 양강도자강도 또한 대립이 있는데, 자강도는 친평안도계고 양강도는 친함경도계라고 한다(어차피 원래는 자강도는 평북, 양강도는 함남의 일부였으니...). 또 황해도도 친평안계에 속한다고 한다.

두 지역 사람들의 성격이나 특징도 꽤나 다른 편이라 이러한 감정의 골이 깊은 부분도 있다. 평안도황해도비록 춥긴 하지만 평야지역이고 환경도 좋은 편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유순하고 나긋나긋하며 느긋한 편이라고 한다. 이것은 평안도 사투리만 봐도 그러하다. 물론 남한 사람들이 듣기에는 평안도 사투리도 억세게 느껴진다. 반면 함경도 지역은 험준하며 가파른 산 지대에, 굉장히 춥고 척박한 지역이다. 실제로 함경도의 대도시들은 모두 함흥, 청진과 같이 해안 지대의 평야에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드세고 생활력이 강하다고 한다. 함경도 사투리만 들어봐도 굉장히 억센 스타일을 보여준다. 게다가 서로간에 부르는 명칭도 특화되어 있다. 평안도 사람들은 함경도 사람들을 '찔락이', 함경도 사람들은 평안도 사람들을 '북데기'라고 비칭한다고 한다.

어느 탈북자의 주장에 의하면 김일성조차 생전에 함경도 지역을 경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7] 심지어 반란 기도까지 있었다. (6군단 반란사건) 정은이고모부(청진 출신)를 죽인 이유가 요기잉네?[8][9]

이 같은 극렬한 지역감정은 김일성 정권 구축 초기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등의 대립과 연관이 있지 않나 보기도 한다. 특히 평안남도함경북도 간의 감정골이 특히 심한 편.[10] 그런데 북한 지도부에서 의도적으로 동서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하위계층을 의도적으로 동부에 고립시켜 왔다고 한다. 북한 지도부에게 두려운 것은 대부분의 인민이 단결해서 정권을 타도하려 나서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분열시키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함남지방(양강도를 제외한)이 지정학적으로 북한에선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동해가 아니면 탈출할 구석이 없기 때문에 적대계층을 격리시키기엔 알맞은 조건인 것이다. 지역드립 문서 중 북한 항목도 참조. 참고1 참고2 (4분 50초부터)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함경도 지역을 마냥 방치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이라서 회령을 선전 도시로서 기능하게 하기 위해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김일성함흥옥류관 못지 않게 큰 식당을 건립하도록 지시해서 대형 식당을 지었고 직접 신흥관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에서 평양 다음으로 큰 도시들은 함경도 동해안 지역에 있다. 물론 함경도 동해안 지역이 발전하기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발전한 면이 있지만.

다만 통일 뒤에는 이 두 지역 사의 지역감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북한 지도부가 일부러 평양 위주로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북한 자체가 워낙 폐쇄적인 나라라서 도시가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지만 통일이 되고 개방이 되면 대외 무역을 하기 좋은 함경도 동해안 지역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5.1.2.2 평양직할시 VS 그 밖의 지역들

북한의 수도인 평양과 그 외의 지역들과도 은근히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략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기득권층과 나머지 지역들의 인민들 사이의 지역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남한처럼 수도 위주로 개발을 했다. 현재 남한서울 공화국이라면 북한은 사실상 평양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한남한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평양시민들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 전체적으로 전력이 부족하지만 평양 중심부만큼은 계속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의 각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들은 평양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북한 지도부가 지방 인민들의 피땀을 계속 평양 꾸미기에만 집중해서 지방 주민들이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약 북한에서 내전이 일어난다면 사실상 기득권층이 모인 도시 평양을 상대로 저항하는 나머지 지역들의 인민들의 봉기로 인해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5.1.2.3 기호 vs. 서북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반 천년이 넘게 지속된 대한민국지역감정의 주축이자, 현재 남북관계로까지 계승된 남북한 통틀어 지역감정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어? 이거 이미 대한민국 지역감정 항목에 있잖아?'라고 반문하는 양반들이 있는데.... 지금 현재 북한 영토 내에 지방이 있다.
특히 남북 분단 이전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경기도평안도 사이의 지역감정이 제일 심했기 때문에 지금의 개성특급시, 개풍군, 장풍군의 경우에는 김일성의 생전의 경계와 조선시대 이전의 차별에 대한 보복이 맞물려 현 북한 영토내 기호지방을 함경도보다 더더욱 차별했다.

어쩌면 남북통일 이후에 가장 걱정해야하는 지역감정일지도 모르는데 이유는 애초에 남한지역 기호지방은 인적 물적 교류가 너무 오래전에 끊겼고 어차피 경제력부터 차이가 크니 애초에 적대감정을 가질 여유조차 없겠다만 이쪽은 둘 다 못살기 때문에 그동안 박대당했던 북한 지역 기호지방이 복수심으로 평안도에게 앙갚음을 할게 뻔하다.

5.1.3 일본

에도 시대수도를 현재의 동경(에도)으로 옮기면서 1000년 이상 수도 역할을 해왔던 교토 인근의 간사이 지방과 지금의 도쿄 부근의 간토지방 사람들 간의 묘한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다. 간사이 지방 사람들은 간토 사람들을 무식한 시골뜨기라 놀리기 일쑤였다. 현재는 오사카도쿄가 이런 경쟁관계를 보여주는데 확실한 예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알 수 있다. 도쿄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오사카의[11] 한신 타이거즈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두 도시간의 야구 응원은 어느 경기때보다 뜨거워지며 승패에 따라서 소비지출수준이 달라질 정도로 경쟁관계가 뜨겁다. 또한 에로게 업계에서는 엘프앨리스 소프트를 일컬어 관동의 엘프, 관서의 앨리스(또는 "동쪽의 엘프, 서쪽의 앨리스")라고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또 음식적인 면에서도 우동스키야키를 가지고 서로 해먹는 방식의 차이에서 서로 물어뜯고 있다. 사실 관동 VS 관서는 일본의 대표적 라이벌로서 유명하지만 갈등의 정도는 그렇게 심한 건 아니다. 한국의 영호남처럼 그냥 투닥거리는 라이벌 수준.
막부 말기, 유신의 바람이 불고 있을때 대부분의 번들이 사라지거나 혹은 신시대를 만드는데 앞장서거나 묵인한 반면, 아이즈(지금의 후쿠시마 현)는 반드시 막부의 장군을 지켜내야한다는 숙명을 짊어지고 끝까지 유신세력들과 맞서싸우게 된다(보신전쟁). 이 때문에 아이즈는 보신전쟁 최후의 저항지로 유명한데, 이후 아이즈 지방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부터 출세길이 완전히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막혀버렸다. 현대에도 일본, 특히 신정부를 세우는 데 주도적이었던 조슈번(長州藩, 현재의 야마구치현)에 대한 이 지역 사람들의 반감은 상당히 강했다. 스스로 '일본인'이라 칭하기보다는 '아이즈인'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1986년 보신전쟁 120주년을 기념하여 야마구치현의 한 도시에서 자매결연을 제의하자 '보신전쟁 때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며 거절했을 정도. 그러나 야마구치현 출신 전 총리인 아베 신조의 재임 당시의 사과와 세대의 변화 등으로 예전의 악감정은 서서히 변화할 조짐을 보였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이젠 역사적 경위에 더해서 원전 피해로 인한 원한까지 더해질듯. 또한 이 문제로 인해 일본 굴지의 음료업체중 하나인 산토리는 전 사장이 지역비하 발언을 한 이래 도호쿠 사람들은 산토리라는 브랜드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음료 브랜드이기도 하다. 상세는 항목 참조.
사실 오키나와는 '독립국이었는데 일본에게 먹힌 케이스'로 인식되기도 하고 이제 '실질적인 일본의 문화권'이라 인식되기도 해서 논란이 많다. 일본 열도에서 미군기지 설립을 꺼리자, 오키나와에 몰아 세우고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자세한건 오키나와 참고. 하여간 류큐 독립당도 있고, 일본 자체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도 많이 있다. 실제로 기미가요 제창을 하지 않는건 기본에 덴노를 같잖게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12] 특히 직접 수백년간 오키나와에 대한 가혹한 수탈을 벌인 역사가 있는 가고시마 현[13]에 대한 감정은 최악을 달린다.
후쿠오카 현, 나아가 큐슈의 제일 도시를 둔 경쟁과 눈치 싸움이 있다. 양쪽 모두 후쿠오카 현에 위치해 있지만 거리적으로나 교통적으로나 사실상 별개의 생활권과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현에 위치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감정이 좋지 않다... 두 도시 모두 몇개의 시를 통합해서 정령지정도시에 임명되었는데, 우선 임명 시기 자체는 기타큐슈 쪽이 빨랐고, 인구도 후쿠오카보다 많았으며, 원래 일본 역사에서도 기타큐슈 쪽이 큐슈 지역 제일 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상업이나 무역을 주로 담당하던 곳인 후쿠오카(및 하카타)는 일본의 경제 성장을 통해 점점 성장했지만, 광공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던 기타큐슈는 산업의 발전에 따라 광산이 사라지고 공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경제력도 인구도 후쿠오카에 완전히 역전당한 상태다. 현재도 후쿠오카는 인구가 계속 증가 추세에 있지만 기타큐슈는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이래저래 안습.
큐슈 지역 콩라인 싸움. 후쿠오카가 이쪽 지역에서는 워낙 넘사벽급으로 크기 때문에 제2의 도시 자리를 둔 경쟁이 있다. 사실 기타큐슈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3위 싸움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구마모토를 비롯한 다른 큐슈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구마모토를 우위로 치고 있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가고시마에서만 유독 구마모토에 라이벌 의식 비슷한 걸 느끼고 있는 것. 그러나 2012년에 구마모토 시가 먼저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면서 가고시마는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다.
오코노미야키 원조 문제로 서로 물어뜯는다. 히로시마에 가서 타지역에서 타 지역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広島焼(히로시마야키)주세요" 라고 하거나 지역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음식 이야기가 거론되면 판이 흉흉해지는 수준. 또 오사카에서 이걸 밥반찬으로 먹는다는 것 때문에 더 흉흉해진다.
근래 주목받기 시작하는 소재. 다만 이쪽은 실제로 지역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엄연히 말하면 인터넷 지역드립에 가깝다. 미개의 땅 군마참조.
둘다 도쿄의 위성도시고 고만고만하다. 치바를 무대로 하는 라노벨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에서 스쳐가듯이 언급되었다.

추가바람

5.1.4 중국

중국은 그 거대한 땅덩이만큼이나 여러 갈래의 지역감정이 상존하고 있고, 이는 현재 중국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과 '56개 민족'을 대단히 강조하는데, 역설적으로 중국 내 뿌리깊은 지역감정은 공산당 1당체제 하에서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뿌리깊다는 말이기도 하다. CCTV의 '삼국지 강의'로 알려진 학자 이중톈은 아예 중국의 지역문화를 다룬 '독성기'라는 저서에서 "중국 인민은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충성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애초에 중국공산당부터가 상하이방,저장방 등 주요 계파에 지역 모임이 있다. 그리고 개혁개방이 주로 되었던 연해 지역과 그외 지역의 빈부격차 , 도농간 격차가 심하다보니 농민공 같은 문제도있고

황하 유역 지방과 장강(양자강) 유역 지방간에는 역사적으로 꾸준히 대립관계였고, 중국 제왕조가 붕괴할 때마다 꼭 남북으로 분단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그리고 역사상 장강 유역이 황하 유역을 몰아낸 적이 나라 이외에는 없다. 1920년대 국민당의 북벌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전통적인 지역대립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때문에 북부에 대한 남부의 반골성은 두드러지며 이러한 대립구도가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던 사건이 바로 태평천국의 난. 지금도 화북과 양자강 남부 지방 사이에는 서로간에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다. 물론 같은 남부인 광둥, 쓰촨, 복건성끼리도 서로간에 은근히 알력이 있다.[14]
본래 위구르족은 중국의 한족들과는 달리 과거 돌궐이라 불렸던 민족으로 돌궐이라는 말이 바로 터키의 옛 지명인 투르크의 한자어에서 나온 것이었다. 위구르 지방에서는 이슬람교를 믿고있는 가구가 많으며 한족과는 생활방식부터가 다른 편이라 중국 내에서도 한족과 마찰이 끊이지 않고있다.
당나라때부터 서로에게 침략당하고 서로를 학살했다보니 감정이 좋지 못하다.
  • 티베트 vs 위구르 ※
조명되지 못했지만, 중국 정부와 한족이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서도 서로를 엄청 싫어한다. 특히, 티베트인들은 위구르인들을 두고 '열등하고 미개한 야만인들'이라고 멸시할 정도이다.
중국 본토의 블로그에는 이런 것도 올라와 있다. 그냥 '중국인들도 이런 지역적 편견들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로만 보자. 혹시 그럴듯한 문헌적 근거를 보고 싶다면 한국에도 번역된 '독성기(讀城記)'를 참조할 것. 심지어 친중적인 위구르인이나 티벳인들조차 허난 사람은 경기가 일어날 정도로 싫어하며, 한족우월주의자들 조차 허난 사람을 중국의 수치로 취급한다.
개혁개방 당시에 중국 당국에서 특정 도시들을 집중적으로 육성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중 상하이선전이 대표적이다. 특히 상하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전부터 열강의 조차지가 되는 등 세계적인 도시였고, 따라서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광저우와 상하이는 홍콩만큼이나 독자적인 의식이 강해서 타 지역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며, 타 지역 사람들은 상하이 사람이 거만하다고 싫어한다고 한다. 홍콩은 1997년, 마카오는 1999년이 되어서야 중국에 편입되었는데 급증하는 중앙과의 마찰 및 본토인들과의 동질성 부족으로 갈등이 심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아예 독립하겠다고까지 하는 상황.

5.1.5 대만

대만도 지역감정이 적지 않다. 이쪽은 역사적 배경이 분명한데, 중화민국국공내전 당시 중국대륙 본토에서 쫓겨난 장제스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가서 세운 거고 그 과정에서 국민당은 대만인들을 상당히 탄압하고 학살했다.(2.28 사건) 꼭 저 사건 때문은 아니라도, 이른바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지라 중국본토에서 온 외성인과 원래부터 대만섬에 살아오던 본성인 간에 상당한 감정의 골이 남아있으며, 여기에 객가인 같은 소수 집단과의 문제까지 겹쳤다. 지금도 선거때만 되면 외성인과 객가인이 많은 북부는 중국 국민당 몰표, 본성인이 많이 사는 남부는 민주진보당 몰표가 계속 되고 있다. 언어도 남부는 중국어방언대만어를, 북부는 표준중국어를 많이 사용한다.
타이완 성 사람들의 중화인 의식이 희박해지고 대만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정도 갈등이 있다.

5.1.6 말레이시아

그닥 알려지지는 않지만, 사실 한국의 '전라디언'이나 '개쌍도'는 저리 가라이고, 스페인 못지 않은 수준이다. 대게 서말레이시아(주 11개, 연방특별시 2개)와 동말레이시아(주 2개, 연방특별시 1개) 간의 갈등이지만, 서말레이시아 안에서도 나름의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지역감정은 정치적 대립과 인종, 문화간 대립이 교묘하게 섞여있어 더 복잡한 양상이다. 종교적 대립이나 정치적 대립은 주로 서부와 동부간의 대립이지만, 인종적 대립은 서부 내에서도 심하면 심하다.

일단 종교적 대립을 보면, 서말레이시아의 경우는 평균 인구의 50% ~ 60%가 무슬림이다. 반면 동말레이시아의 경우는 평균 30%가 기독교인이며, 특히 동부의 사라왁은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대부분인 주이다.[15] 그러나 사라왁은 기독교 중심임에도 무슬림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고, 사바는 아예 무슬림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하지만 나름 정치적 대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정치적 이유와 함께 설명하겠다. 원래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시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으나, 1963년 싱가포르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가입했다. 하지만 둘이 말레이시아에 가입한 것은 사실 싱가포르 때문이었으며, 심지어 사바의 총리(한때는 총독)였던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싱가포르의 총리였던 리콴유친구 관계였다. 만약에 가입 안했으면 독재 브라더스? 하지만 2년만에 싱가포르가 나가면서 문제가 불거지는데, 이는 싱가포르가 인종적 대립에 의해 쫓겨난 것이었고, 싱가포르 때문에 가입한 둘은 결국 주체가 쫓겨나면서, 고로 말레이시아에 잔류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원이라곤 하나도 없고 온통 정글 뿐이기 때문에 쫓아낸게 오히려 '득'이었지만, 나머지 둘은 천연자원이 가득한 점 때문에 쫓아내면 뻔한 '실'이었다.[16]

어쨌건 10년동안은 홍콩과 마카오처럼 영어를 사용하고 기독교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상태를 그나마 유지시켜 주었다. 하지만 1973년 10년이 이미 다 되었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되는데 마침 서부에서는 말레이화를 명목으로 중국인과 인도인 등을 차별하고 외국인을 '쫓아내는' 수모가 벌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게 동부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라왁과 사바의 공용어가 갑자기 말레이어로 바뀌고, 차츰 말레이인[17] 우대가 시작되면서 원주민인 카다잔, 이반[18] 등의 반발이 심했다. 게다가 기독교 중심이던 이들에게 이슬람이 전도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여기에 강제개종의 의혹이 있었다는 것이다. 폭로된 바에 따르면, 뇌물로 유도하며 개종시켰다던가, 심지어는 개종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던가...

1976년 6월 6일 현충일 사바의 총리였던 스티븐스가 코타키나발루의 슴불란 구에서 의문의 사고로 사망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호주산 비행기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에 호주 정부에서 비행기 검사단을 보내면서 혹시 비행기의 결함이 아닌 가 했었다. 하지만 비행기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고, 그 이맘때부터 중앙정부의 개입이 심해지자 스테픈스 자신이 이에 대해 불평을 종종 했었는데다가 본인이 독립파였기 때문에, 결국 중앙정부의 소행이라는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더블 식스 트라제디 참조.

사바의 서부, 브루나이 근교에 있던 라부안이 연방정부로 넘어가고, 1990년 일련의 정치 테러로 중앙정부가 사바 지역 정치인들을 대규모로 탄압하는 사태가 벌어져, 문제는 더 심해진다. 그리고 이제, 동말레이시아의 정치도 지역정당이 아닌 본토의 정당들이 활개치는 실정이다.[19] 사실 말레이시아가 나름의 독재국가인데다 이들의 분리주의가 썩 알려진 편도 아니라 이들의 상황을 잘 알 순 없지만, 자칫하면 아군과 협력해 무장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점은 곧 종교적 대립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단체인 SIB는 이슬람 전도를 막으려는 시도를 한다는 게 밝혀졌고, 한 외국인 학생의 폭로에 따르면 어느 카다잔 출신의 기독교인 과외선생이 무슬림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막 매도하는 발언들을 본인에게 했다는 게 밝혀졌다는 점.

쓰잘데기 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는 인종적 대립으로 가겠다. 인종문제는 서말레이시아 내부 자체에서도 흔한 일인데, 특히 말레이인과 중국인간의 대립이 그렇다. 원래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의 땅이었지만, 중국인들이 대거 밀려든 뒤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어, 5.13 사건과 같은 최악의 폭동까지 일으켰다. 싱가포르가 쫓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제2의 아파르트헤이트. 문제는 이 타겟이 아무련 관련 없는 외국인들한테도 쏠리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실제로 직원을 구할 때 대놓고 '자국민만 받겠다'고 써놓는 경우는 말레이시아 말고 없다. 이는 곧 '외국인 사절'의 뜻이고, 아예 '외국인 사절'을 대놓고 적어놓는 경우도 흔하다.[20] 게다가 대학들의 불편한 위치 등으로 학교 앞에 집을 빌려 사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내국인 학생에게만 빌려주겠다'고 적어놓는 것도 흔하다.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철수가 늘어나고 있고,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말레이시아를 대놓고 욕하고 보이콧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 것은 곧 지역감정의 큰 원인이 적용된다.

이러한 문제로, 중국인 중심의 피낭 주는 한국의 평양과 유사한 위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나 함경도보다 더 낙인이 찍혀, 오죽하면 피낭이 싱가포르처럼 쫓겨날 것이라는 얘기까지 있으나 알 게 뭐야.

참고로 서부와 동부가 서로 욕하는 건 흔에 빠진 일이고, 사실 쿠알라룸푸르 한복판에서(서부) 동부 방언(예: 사라왁 방언, 사바 방언)을 사용하는 건 그리 문제삼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잘못하면 현지에서 먹던 밥상이 제삿상이 될 수도 있다.[21] 그러나 그 중에서도 사바는 서부에 많이 동화되서 그런지, 너무 그럴 일은 없으니 다행.

외국인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종종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중국계들에게 말레이어를 쓰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비영국계에게도 영어를 쓰는 등의 특징 때문인지 말레이시아에서도 중국인들은 말레이어를 쓴다고 오해를 하는데, 동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서부에서는 잘못하면 끝장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부에서 중국계 친구들에게 말레이어를 쓴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절교한다. 때문에 이 점을 주의.

추가로, 한국의 반도인(한반도 주민)이 제주도를 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서부인이 동부를 갈려면 별도의 입국 허가가 필요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손가락 아프게 서술한 지역감정이 요인이 되는 것 같다. 동부인이 서부를 갈 때는 여권만 있으면 되고, 가서 아예 살고 취직하고 학교 다녀도 문제가 없는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들어갈 때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냥 관광할 거라면 외국인처럼 90일 무비자로 돌아다니는 것. 만약에 아예 살거나 취직하거나 하려면 현지 영주권이 필요하다.[22] 동부인들은 출생과 동시에 말레이시아 국적과 함께 영주권이 주어지지만, 서부인은 말레이시아 국적만 주어진다. 영주권은 신청하면 된다고 하지만, 혹시나 지역드립을 하거나 그러면 박탈당할 수도 있고, 재수없으면 영주권이고 나발이고 그냥 단순히 왔다가도 입국금지 목록에 오를수도 있다. 일례로 술루 테러리스트[23]와 접촉해 물의를 빚은 서부 출신의 누룰 이자 안와르는 이 일로 사바에서 입국 금지당했다. 흠좀무.

근래에 떠오른 새로운 지역감정.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그야말로 말레이시아의 중심쿠알라룸푸르 일대와 제2의 도심인 조호르바루 일대 간의 대립이다.

원래 조호르는 15세기 포르투갈의 침공으로 믈라카가 함락되자 이때 쫓긴 세력들이 남부의 조호르로 피신하면서 대대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19세기 페락에서 주로 일하던 탄광촌들이 지금의 쿠알라룸푸르 일대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발견되었음을 알고 이쪽으로 밀려들면서 대대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고로 말레이시아의 제1의 도시를 넘어 수도로서 명실공히 떠올랐다. 뭐 그렇다고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민족주의적 공통점 때문에 처음에는 둘이 싸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조호르의 경우는 싱가포르와 바로 붙어있는 문제가 있는데 1965년 싱가포르가 원치 않게 쫓겨나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말레이시아에는 다소 위협이 되었다.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조호르바루 일대에 "탄중푸트리"라는 대규모 도심을 건설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 풀라우피낭조지타운을 뺨치고 제2의 도시로 떠오른다.

쿠알라룸푸르의 경우는 외국인 투자 및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자발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 데 반해 조호르바루의 경우는 싱가포르에 사실상 의존하는 상태이다. 게다가 광부들의 노력과 피땀으로 발전한 쿠알라룸푸르와는 달리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가 발전하니깐 이에 따른 질투심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발전했다... 뭐 이런 식이다.

당연히 쿠알라룸푸르가 제1의 도시이자 명실공히 수도로서 그 위상은 막강하고, 쿠알라룸푸르와 그 주변에서 쓰이는 말은 이제 전국에서 통용되며 모르면 걍 간첩인 꼴이다. 반면 조호르에서 쓰는 말은 근래에는 싱가포르 방언에 크게 물이 들면서, 쿠알라룸푸르 쪽에서는 "너네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라고 묻는 식. 오죽하면 "조호르는 당장 우리나라에서 나가라"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까지도 있다고.

풀라우피낭의 주도인 조지타운은 근래에는 조호르바루에 밀려 제2의 도시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위상은 쿠알라룸푸르 다음으로 제2이다. 1957년 말레이시아 최초의 특별시가 되었고 당대에는 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정치적 위상만큼은 제1이었다.

그런데 1972년 쿠알라룸푸르가 특별시로 떠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위협을 받았고, 싱가포르가 쫓겨난 것도 인종문제 때문인데 여기가 바로 그 다음의 대상이 되었으니 나름의 갈등이 생기는 건 어쩌면은 당연지사. 2015년 조지타운뿐 아니라 풀라우피낭 주 자체가 특별시로서 인정을 받았지만평양특별시?[24] 얼마 안 된 이야기라 그런지 피낭 자체를 도시로 표기하는 지도들은 없다.[25]

두 지역간의 대립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서울과 평양간의 대립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왜냐하면 두 지역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 쿠알라룸푸르는 외국인들도 많이 유치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데 반해 풀라우피낭의 경우는 되려 외국인을 쫓아내려는 뻘짓들이 지속적으로 행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쪽에서 나름 개방적이고 높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풀라우피낭을 "네오나치", "파쇼"라고 부를 정도.

게다가 인종문제도 엮여, 일부 말레이인 우익들은 "짱깨들이 판치는 피낭은 당장 우리나라에서 나가라"라고 떠들어 대기도 한다. 뭐 한때는 싱가포르처럼 독립하기를 원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검증할 방법도 없고... 하지만 적어도 피낭 사람들은 독립을 원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 서부(직할시 2개 및 주 10개) vs 북동부(클란탄)

북동부에 고립되어 사실상 따로 노는 동네라고도 불리는 클란탄의 골수적인 성향에서 생긴 지역감정.

1990년 이래 클란탄은 이슬람 극단주의 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가 집권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정권을 내놓은 적이 없다. 이웃한 트렝가누만 해도 한때 집권한 적은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이 클란탄의 골수적인 성향은 타 지역에서도 눈엣가시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사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적용하기는 하나 클란탄은 상대적으로 그 범위가 넓다. 예를 들어 클란탄에서는 남녀가 줄을 따로 서야 하고, 같은 벤치에 앉을 수도 없으며, 여성의 권리가 다소 제약을 받는다. 타 지역에서는 이러지 않는다.

여하튼 이러한 골수적 성향이 떠오른 계기 중 하나가 바로 후두드. 굉장히 잔인한 처벌법으로 이슬람 내에서도 논쟁을 부르는 처벌인데 클란탄에서는 도입하려고 했으나... 연방정부가 거절하여 실패했다.

5.1.7 베트남

한반도처럼 베트남 역시 남북분단 국가였기 때문에 이 경우는 과거 사회주의의 북베트남과 자유주의의 남베트남의 영향이 있다. 현재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북베트남 시절까지는 북베트남의 수도였으며 호치민 시는 남베트남 시절의 수도로 과거에는 사이공으로 불렸다.
1975년 베트남 전쟁 종전 후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어 하노이가 통일수도가 되었고 사이공은 부도시로 격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지금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부로부터 감정이 있다.

5.1.8 인도

  • 아리안계 북부 VS 드라비다계 남부
아리안인들의 인도 침입으로 인도 북부 지역에서 살던 드라비다계 민족들이 인도 반도 남부로 밀려나는등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단순히 지역감정을 떠나서 언어,문자도 북부와 남부가 서로 다를 정도로 인도 역시 같은 인도인데도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끼리 민족적 이질감이 심하다.
동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중국 계통과 가까운 측면이 크고 그래서 외양이 다른 인도 지방과 차이가 심하다. 그래서 그들도 같은 인도인이지만 다른 지역 인도인들로 부터 멸시가 심한 편이다. 여기에 세 지역 모두 지역 독립운동까지 겹쳐 있는 상태.

5.1.9 인도네시아

  • 자바 VS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발리, 이리안자야 등 나머지 도서 지역
자바섬과 자카르타만 인도네시아냐며 하소연할 정도로 같은 이슬람권에 같은 인도네시아인데도 자바와 수마트라등 나머지 도서 지역 대립이 존재하다. 그나마 수마트라나 칼리만탄은 종교적으로 자바와 같은 이슬람이지만 발리의 경우 이슬람교가 아닌 힌두교를 믿는등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는 전혀 딴판이다. 술라웨시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한 지역 안에 섞여 있으며, 이리안자야(서파푸아)의 경우 멜라네시아 계통에 기독교를 믿는 등 종교, 민족도 달라 아예 인도네시아에서 분리독립하겠다고 무장독립단체들이 기세를 부려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수카르노, 수하르토, 메가와티, 조코 위도도등 인도네시아 역대 대통령들 모두 자바 섬 출신의 자바인들이다.[26] 요즘은 인프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정부 주도의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현실은 시궁창 실질적으로 주요 5개 섬 중 가장 작은 자바섬에 인도네시아 인구의 80%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나머지 섬에는 인구가 적고, 노동력이 부족하다 보니 공장을 짓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무엇보다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자바섬에만 교통 인프라가 발달을 하다 보니 기형 성장을 한 것이 지역 간 갈등을 더욱 유발을 한 것이다. 수하르토의 병크 중 하나인 자바인 강제 이주로 인하여 지역을 넘어 민족간 갈등을 일으킨 것도 그 이유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5.2 오세아니아

5.2.1 오스트레일리아

이 문서의 다른 경우와는 달리 진짜로 서로를 미워하는 지역감정은 아니다. 그런데 시드니와 멜버른은 호주를 대표하는 두 도시이고 그 규모도 거의 비슷하다보니(시드니-480만명,멜버른-440만명) 서로 경쟁의식이 장난이 아니다. 요컨대 시드니 사람과 멜버른 사람은 서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기네 도시가 낫다고 유치하게 싸운다. 예를 들자면,
  • "너넨 오페라 하우스 없지?" vs "너넨 오스트레일리아 수도가 된 적이 한번도 없지?"(멜버른은 한 때 호주의 수도였다. 과거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수도하겠다고 다투다 다투다 지쳐서 만든게 캔버라)
  • "호주 수상 관저는 시드니에 있어." vs "우리는 시드니보다 올림픽을 40년이나 일찍 개최했어."
  • "시드니는 호주에서 외국인 관광객 1위인데? ㅋ" vs "정작 호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는 멜버른이 1위인데?ㅋ"
  • "멜버른에는 예쁜 트램이 있어요."[27] vs "시드니에는 더 세련된 경전철이 있어요."
  • "우중충한 멜버른 말고 시드니에 놀러오세요."vs"물가 비싼 시드니 말고 멜버른에 놀러오세요."[28]
뭐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 유치하게 다툰다(...) 가끔 캔버라,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끼어들지만 쪽수가 밀려서 사뿐히 무시당한다. 이 논쟁이 호주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호주의 TV쇼나 유머에서 줄기차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만약 이 논쟁을 종식시키고 싶다면 "그럼 오클랜드와 비교하면 어때?" 하고 물으면 된다. 잠시 쳐다보다 사이좋게 오클랜드를 깔 것이다.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의 오세아니아 항목에 나와있듯이 호주사람들은 대동단결로 뉴질랜드를 놀린다. 물론 뉴질랜드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5.2.2 솔로몬 제도

  • 과달카날 VS 말라이타
미국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말라이타 섬 주민을 과달카날 섬으로 이주시킨 이래 두 섬 사이는 엄청난 대립이 이어졌으며, 내전과 폭동으로까지 치달았고,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이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

5.2.3 미국령

태평양 전쟁 때 각각 미국편과 일본편으로 싸웠기 때문.

5.2.4 파푸아뉴기니

  • 부건빌 VS 부건빌을 제외한 파푸아뉴기니 본토
부건빌 사태가 일어났었던 곳이기도 하며, 1988년에서 2001년까지 유혈사태 및 내분이 일어났던 곳이다. 부건빌 섬은 파푸아뉴기니로부터 자원 착취, 분리독립 탄압, 여러가지 차별들을 당했고 대우가 좋지 않았던 부건빌 지역 사람들은 결국 내전을 일으켜서 13년까지 내전을 일으켰다. 사실 부건빌 섬은 파푸아뉴기니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차이가 났으며, 문화적으로도 솔로몬 제도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부건빌 전쟁 당시 솔로몬 제도는 부건빌 독립군들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2001년 전쟁 이후 파푸아뉴기니는 부건빌 자치권을 인정했다. 결국 2019년 6월 15일 부건빌 독립투표가 실시된다.

5.3 유럽

5.3.1 네덜란드

역사적으로 아예 민족과 언어 자체가 달랐고(바타비족+프랑크족 vs 프리시족[29])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굉장히 적대적인 관계였다. 홀란드군에 대항해서 싸운 전설적인 영웅 흐뤼터 피어르의 무용담이 지금도 전해질 정도이다. 현대에도 프리슬란트는 독자적인 언어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신들을 홀란트인으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 홀란트를 비롯한 개신교 7개주 VS 노르트브라반트+림뷔르흐주
밑의 독일 북부 VS 남부와 비슷한 사례, 노르트브라반트는 말 그대로 옛 브라반트 백국 영역이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되어 북쪽 절반이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편입된 것이며, 림뷔르흐도 원래는 독자적인 공국이었지만 19세기 네덜란드 왕국에 강제합병당했다. 이 때문에 이 두 지역은 나머지 7개주와 달리 전통적으로 가톨릭 지역이며, 18세기~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암암리에 차별받는 등 불이익을 받는 형편이었다가 산업화와 세속화, 탈종교화 분위기를 타고 20세기 이후에야 지역감정이 거의 완화되었다.
  • 홀란트 북부 VS 홀란트 남부★
같은 홀란트지만 노르트홀란트와 자위트홀란트 간 감정도 은근히 심한 편으로 AFC 아약스 VS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이라는 두 도시 축구팀의 대결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북부는 상업적, 문화적 기능을 떠맡아오면서 자유분방하고 관용적인 분위기가 일찍 정착한 반면 로테르담, 헤이그, 델프트로 대표되는 남부 지역은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서 기능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종교분포에서도 노르트홀란트는 마르켄 섬을 제외하면 1970년대 이후 도시권과 농어촌을 막론하고 완전히 세속화되어 개신교의 씨가 말라버린 반면 자위트홀란트는 여전히 도시, 농촌 막론하고 개신교가 20% 남짓 차지하며 네덜란드판 바이블벨트를 이루고있는 지역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5.3.2 독일

1945년 동서 분단이 되었다가 1990년에 통일의 결실을 이루게 되었지만 통일 이후에도 구 동독의 풍습과 구 서독의 풍습간 충돌과 지역간 언어소통과 이념문제의 잔재 등으로 여전히 대부분 상호간의 괴리감과 불신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동서 분단시절 남아있는 고질적인 사회주의 성향과 자본주의 성향이 충돌하기도 하여서 통일 이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일부 옛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보고 공산당에 물든 새X들, 사회주의에 미쳤더니 민주주의도 모르는 바보들이라고 하고 옛 동독인들도 자본주의와 돈에 빠져 환장한 것들이 뭘 알아, 부자놈들만 살찌웠던 자본주의 놈들이라며 헐뜯고 비방하였을 정도였다. 참고로 나중에 남북한이 통일을 이룩하게 될 경우 꼭 알아두어야 할 본보기이기도 하다. 남북한 역시 동서독의 사례와도 같고 특히 70년 이상의 분단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통일 이후 남북한이 이러한 사례로 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 독일 남부 VS 독일 북부
독일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바이에른주로 대표되는 남부독일과 북부독일간의 지역감정이 꽤나 강하다. 축구경기에서도 드러나고(바이에른 뮌헨 VS HSV라든가 바이에른 뮌헨 VS 베르더 브레멘 등) 서로서로 아니꼽게 생각하는 듯. 타 지역과 달리, 바이에른 지방의 텔레비전에서는 바이에른 가(歌)를 먼저 연주한 뒤에 독일 국가를 연주한다.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 의하면, 바이에른 사람에게 독일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바이에른 사람이라고 대답할 정도라고 한다. 이는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기로 그를 지지한 북부 독일지역(프로테스탄트)과 가톨릭을 사수하는 남부 독일로 양분된 것에서 비롯된다. 중세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웃 영국이나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통일되어갔지만 독일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틈을 이용하여 프랑스 등은 독일이 통일왕국으로 이루지 못하도록 개별 영주들의 주권을 모두 인정해 주는 바람에 독일은 수백개의 영방국가가 난립하게 되었다. 이후 북동부의 군사 강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당시 독일에서 프로이센 다음으로 큰 나라[30]였던 바이에른 왕국은 통일 이후 완전 찬밥 신세가 되면서[31] 북부 독일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지역은 좀 사정이 특이한데 바이에른주는 독일에서도 상당히 경제력이 뛰어난 주로 유명하다. 게다가 한때 남부독일을 대표하는 왕국이었고 주가 된 역사를 따져도 바이에른이 뷔르템베르크보다도 앞서는 상황일 정도로 바이에른의 자존심은 강한 편. 반면 뷔르템베르크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종교개혁 이래 독일 개신교의 남방한계선을 이루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모든 면에서 앞서는 만큼 바이에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바이에른 대표로 BMW가 있다면 뷔르템베르크 대표로는 벤츠가 있다. 바이에른 뮌헨VfB 슈투트가르트도 있다[32] 과거에는 프로이센으로 대표되는 북부와 오스트리아로 대표되는 남부의 극심한 대립이 있었고, 그 중간지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양 국가가 모두 몰락하면서 망했어요.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과 손잡았다 하면 망하기 일쑤라서, 한때는 같은 독일인이라고 했다가도 지금은 굉장히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프랑켄 지역 VS 그외 바이에른 지역
프랑켄 지역은 본래 바이에른에 속하지 않았던 곳이나 바이에른 공국이 프랑켄 지역을 합병하면서 현재 독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바이에른에서는 바이에른 방언이 쓰이지만 프랑켄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동프리슬란트의 경우 역사적으로 다른 북독일 지방과 달리 도시가 상대적으로 덜 발전해있어 깡촌으로 무시당하던 역사가 있었다. 여기에 언어적, 종교적으로도 주변과 매우 달라서[33] 더더욱 별종 취급을 당하곤 했다.[34]

5.3.3 러시아

  • 유럽 러시아(우랄산맥을 경계로 서부지역) VS 시베리아 혹은 북아시아 지역(우랄산맥을 경계로 동부지역)
러시아의 경우 땅이 워낙 넓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지역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이 발전한 곳과 발전하지 않은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유럽 쪽의 러시아(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는 유럽과 가깝기도 하고 대도시들이 몰려 있으며, 중심지도 유럽에 속하는 지역에 있다보니 이곳이 조금더 잘 산다. 하지만 시베리아, 우랄 지역 및 극동 지역에는 중심지와 거리가 멀거나 소도시 및 농촌 등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다보니 대표적인 도시 정도를 제외하면(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첼랴빈스크 등) 경제적으로는 확실한 차이나 나타난다. 그리고 몇몇 시베리아 출신 사람들은 시베리아 지역주의 운동이라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래봤자 극소수인데다가 많지 않아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시베리아 지역주의는 19세기 때 나타났으며 역사적으로도 죄수들의 유배지이기도 했고,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이 심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는 적백내전 때도 그 성격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특히 적백내전 때는 몇몇 백군들이 시베리아에서 분리 독립을 시도하려고 하기도 했었으나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지면서 1918년 분리독립은 실패로 끝났다. [1]. 유럽 러시아 VS 러시아령 북아시아 지역 주민들의 감정은 소련시절에도 달라진 점은 없었으며 이는 현대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소수민족 분리주의 및 러시아의 지역감정 중 최악으로 좋지 않은 곳. 체첸 등을 포함한 북카프카스의 여러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반러 감정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도 반러 항쟁이 2000년 이전에도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북카프카스 지역은 탄압을 하면서 다스렸고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못지 않게 대우가 안 좋았고 차별도 심했다. 지금은 치안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분쟁이 끝나지 않았고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다가 지금도 가끔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만큼 위험한 곳 중 하나이다.

5.3.4 벨기에

아예 서로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달라 문화적인 유대감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고, 모직물과 무역으로 번성하던 플랑드르(플란데런)가 산업 혁명을 계기로 급격히 추락하고, 석탄과 철광석 등이 몰려있던 왈로니가 발전하다가, 중공업이 몰락하며 왈로니가 추락하고, 반대로 플란데런은 금융과 관광업으로 다시 뜨는 복잡한 경제상황을 거치면서 양측의 대립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역감정의 사례들 중에서 당장 독립할지도 모를 곳을 꼽으면 단연 1순위에 오를 만한 지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농담조로 이들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 3가지가 있는데, 브뤼셀(수도), 왕실, 그리고 벨기에가 진 막대한 외채 때문이라고.

5.3.5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19세기 초부터 섬유산업을 주축으로 하면서 근대공업이 발달하여 시민사회의 형성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하여, 카스티야 및 안달루시아의 두 지방에는 교회 ·지주 ·귀족의 지배하에 반봉건적 농촌사회가 유지되었고, 역대 정부의 권력기반이 되었다. 그 때문에 카탈루냐 산업이 필요로 하는 국내시장을 확보할 수 없는데다가 정부가 지주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관세장벽은 값싼 외국산 곡물의 수입을 막아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카탈루냐가 수출하는 공업제품에 대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하였다. 그렇게 되자 도시노동자의 생계비 상승과 실업률의 증가 등으로 카탈루냐의 산업가(産業家)와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반정부 ·반중앙집권의 기운이 조성되어 외교 ·군사 ·통화를 제외한 국가주권의 대폭적인 카탈루냐로의 이양에 의한 고도의 지방자치권 획득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연방공화정의 수립과 카탈루냐어의 공용화(公用化)를 요구하였으나,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1920년대 반정부운동은 아나키즘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카탈루냐의 노동운동의 영향으로 사회혁명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산업가층은 정부와 손을 잡기에 이르렀고, 1930년대 이후도 지방적 요인과 계급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대립구도를 형성하였다. 1977년에는 1938년 이래로 총통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의하여 박탈되었던 자치권이 회복되었다. 특히 프리메라 리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FC 바르셀로나 간의 더비 매치엘 꼴라시코엘 클라시코가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엘 클라시코 항목 참조. 스페인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우승하자 카탈루냐가 분리독립을 요구하여 분리 출전 떡밥이 나왔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에 걸쳐 있는 바스크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터줏대감이다. 이들은 중세까지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국가를 유지했으며 언어도 독자적인 바스크어를 사용하고 있다.[35] 20세기 들어서는 스페인 내전에서 국민군에게 얻어터지고, 전후에 전개될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강압 통치에 반발, 망명 정부를 수립하고 꾸준히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6년에 스페인 정부와 영구 휴전을 체결했지만 1년만에 파기되었다. 일단은 1979년부터 자치중인 상태.

5.3.6 영국

각 지방사람들 모두가 다른 나라지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영제국 시기를 거쳐 하나의 나라라는 유대감이 생겨났지만, 현대에 와서는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이후, 제조업이 집중되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경제적 몰락으로 수도권이자 밀집지역인 잉글랜드에 대한 반목감이 증대되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사이는 좋은 편. 잉글랜드는 내부에서도 북쪽-남쪽 지역간 지역감정이 있고, 북쪽이 남쪽을 싫어하는 이유는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상대적 낙후 수준에 대한 불만이 크다. 남북갈등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대처 시기 석탄산업 정리. 사실 네 지방 모두 동군연합이라면 모를까 서로를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으로 묶어 생각하지 않는다. 괜히 월드컵에 '잉글랜드'로 나오겠나 그래서인지 이중 가장 존재감이 약한 웨일스도 독립할까? 라는 여론이 주기적으로 나온다.
이에 더해 런던이나 대도시 내에서는 우편번호를 가지고 차별하는 일종의 소지역주의가 존재한다. 몇 십년 전만 해도 구직자들은 좋은 우편번호 동네의 주소지를 얻기 위해 사투를 벌였을 정도. 이건 정확히 말해 집값의 차이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으로 사실 어디나 다 그렇지만 현대 영국의 대부분의 지역주의는 돈의 분배에 대한 문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36]
북아일랜드의 가톨릭 교도들과 아일랜드 공화국 출신은 80년대 까지만 하여도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취업, 결혼 등에도 차별을 겪었다. 이는 정확히 보자면 지역감정이라기 보다는, 인종차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잉글랜드 남부 vs 북부
잉글랜드 간에도 남북 간 격차 및 지역감정 존재한다. 이를 영국에서는 The North-South divide라 한다. 수도권(런던)이 있는 남부 지역과 공업지대가 밀집한 북부 지역은 언어[37], 문화, 소득수준 면에서 차이가 존재한다.[38]
  • 스코틀랜드 남부 vs 북부
같은 스코틀랜드이긴 하지만 잉글랜드의 언어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온 스코틀랜드 남부지역(로우랜드)와 게일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남부에 비해 스코틀랜드 고유 문화가 더 짙게 남아있는 북부지역(하일랜드) 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5.3.7 우크라이나

  • 서부 VS 동부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폴란드 분할 이전까지 폴란드령이었던 서부 VS 러시아령이었던 동부의 갈등이 극심하다. 서부는 친서방, 동부는 친러시아 경향을 띄며 선거 때마다 정확히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서남부 5주는 1945년까지도 소련 영토가 아니었다. 언어 쪽에서도 서부는 폴란드어의 영향, 동부는 러시아어의 영향을 강하게 띄는 편. 여기는 결국 폭발했다. 유로마이단, 2014년 크림 위기,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참조.

5.3.8 이탈리아

  • 지역 전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탈리아는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후 중세를 거쳐 도시국가로 꾸준히 분열되어 왔었기에 이탈리아라는 한 집단체로써의 인식이 매우 적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통일의 일등공신인 카밀로 카보우르가 통일 이후 "이탈리아는 창조되었다. 이제는 이탈리아인을 창조할 차례다." 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근데 그게 고작 백여 년 전이다! 중세에 중부 이탈리아에 교황령이 생기면서 북부와 남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단절된 역사가 오랜동안 지속되었다. 현재도 북부와 남부의 소득 격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39] 지역 감정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축구의 열기가 매우 강하기때문에 지역감정이 매우 심하다. 어떤 이탈리아 만평에는 조각난 이탈리아 국기를 실로 겨우 꿰매놓은걸 가지고 현재의 이탈리아라고 묘사했을 정도.
  • 북이탈리아 VS 남이탈리아 VS 로마
통일 이전 북이탈리아는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볼로냐, 베네치아 등등의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던 반면 남이탈리아는 나폴리와 양 시칠리아 왕국 등 통합된 역사가 길어 서로간에 유대감이 적고, 북이탈리아가 발달된 상공업으로 남이탈리아보다 부유해 경제적인 갈등도 극심하다.[40] 실제로 북이탈리아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정당까지 있을 정도이고, 더 흠좀무한 것은 북이탈리아 지역에서는 지지도가 꽤 높다는 것. 게다가 이런 지역 감정을 중부에 위치한 수도 로마에서는 별개의 일이라며 무시하고 있다.
  • 이탈리아 본토 VS 시칠리아,사르데냐등 섬 지역
심지어 이탈리아는 같은 이탈리아 본국 안에서 남부,북부끼리 갈등이 있는것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 본토 지역과 시칠리아,사르데냐등 섬 지역과도 갈등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 남부 본토 지역은 그나마 개발이 되는 등 나은데 반해 시칠리아,사르데냐는 늦게 개발될 정도로 본토와 차이가 극심하다.

5.3.9 터키

전통적으로 '이스탄불'사람들은 그리스인이 많았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비무슬림 인구가 50%에 육박하는 국제도시인데다가 메흐메트 2세가 이 곳을 정복했을 때에도 기존 그리스 주민들을 쫓아내기는 커녕 이들을 더 육성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곳의 문화는 기존의 아나톨리아 지방과는 문화나 풍습이 달랐고 -외국인 들은 거의 구분해낼 수 없지만, 이스탄불에는 고유 터키어 사투리까지 있다 -꽤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기능한지라 다른 지방 사람들을 촌놈취급 하는 바람에 다른 지방 사람들이 이스탄불 출신들을 보면 "저런 깍쟁이들" 취급을 한다. 어째 한국의 서울 촌놈이 떠오른다. 흑해 출신 사람들의 경우 특유의 벽창우같은 고집쟁이로 통한다.
  • 서부 VS 동부
터키 서부는 고대부터 그리스인들이 거주해왔고, 문화적인 연결고리도 발칸반도남유럽에 훨씬 가깝다. 반면에 동부지방은 쿠르드족, 아랍인을 비롯한 민족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니 문화적 연결고리는 아랍과 이란에 훨씬 더 가깝다. 특히 터키 독립전쟁이후 성립된 터키 공화국에서 적극적으로 서구화정책을 펼치다보니 도시지역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별반 다를바 없게 되었지만 농촌이 많은 동부는 여전히 전통적인 대가족, 가부장 사회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또 터키는 남미에 버금가는 민족의 용광로인데다가 지리적으로 상이한 문화권과 맞닿아 있는 영향 때문에 서쪽과 동쪽은 아예 사람들 생김새부터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스와 발칸과 가까운 서부에 사는 터키인은 유럽 백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고 이슬람 문화권과 접한 동부는 아랍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더 나아가 이스탄불오스만 제국시기부터 오랫동안 터키의 중심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새로 수도가 된 앙카라사람들을 영 껄끄럽게 여기는 경향도 없잖아 있고... 때문에 서부에서는 동부사람들이 여전히 비문명화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동부지방 독실독실한 사람들은 서부사람들이 돈가지고 자신들을 무시하는데다가 무슬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동부지방 사람들중에서도 대도시에 거주하는 서양물 먹은 사람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동부의 시골주민들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특히 동부지방 사람들의 이런 경향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에 잘 묘사되어 있으므로 추천한다. 소설에 보면 카르스의 부자나 공무원들 그리고 의사나 경찰 같은 사회지도층 계층과 가난한 빈민들과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특히 빈민들은 전기를 도둑질 해서 쓰고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것으로 묘사되어 터키의 지역불균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빈민들이 훗날 정의개발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사실 동부지방의 부자들은 이미 서부로 많이 갔다. 동부는 깡촌에다가 서부에 비해 낙후되었고 PKK테러도 있고 1970년대에는 공산당이 설쳐서 더 했다. 게다가 동부는 최근 에르도안에 의해 PKK와 전쟁으로 황폐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부자가 남아있을 매력이 없다. 독일이나 터키 서부로 많이 갔다.
터키 공화국시기 아타튀르크에 의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게 되었다. 이스탄불은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이렇게 하루 아침만에 수도를 옮기게 되니 이스탄불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 앙카라 사람들을 촌놈취급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앙카라 사람들을 졸부취급하고, 앙카라 사람들은 이스탄불 사람들을 가진거 없이 허세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터키 남동부에 위치한 이 세 지방은 서로 라이벌관계이다. 마치 터키와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케밥가지고 원조논쟁하듯이 이 지방들도 터키에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방 향토요리들(가지케밥, 양파케밥, 치으쾨프테 등등)이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이 세 지방의 라이벌관계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있던 일인데, 세 지방 모두 주로 교역에 종사하면서 먹고살던 지방이고 지금도 샨르우르파에는 아랍, 쿠르드 계열이 다수고, 가지안텝은 튀르크멘이 다수이고, 카흐라만마라쉬에는 현재는 많이 줄거나 튀르크화 되었지만 아르메니아 계열이 다수였던 지역이었다. 덕분에 인접한 지방임에도 사투리나 문화가 눈에 띄일정도로 다른걸 볼 수 있다.
디야르바크르는 쿠르드족의 수도라 불릴만큼 쿠르드 인구가 많은 곳이다. 또한 쿠르드 인구가 도시의 90%를 차지할 만큼 쿠르드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은 서로 원수지간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땐 둘 다 쿠르드족이고, 인민민주당을 지지하는 등 딱히 갈등의 요소가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부족이 다르기 때문. 심지어 이들이 사용하는 쿠르드어는 서로 의미조차 통하지 않을만큼 사투리 차이가 심하다. 특히 반을 비롯한 동북부 지방의 쿠르드인들은 PKK를 극도로 혐오하는 입장인데, PKK가 처음 일어난 지역이 디야르바크르 도의 리제 군이기 때문에 "디야르바크르 놈들이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디야르바크르 북서쪽에 위치한 엘라즈으(Elazığ)의 경우 극렬 튀르크 민족주의자 비중이 높은 지역이라 쿠르드와는 극단적으로 사이가 나쁘며, 마르딘의 경우 애초에 인구 다수가 시리아 정교회를 믿는 아랍계 주민들이고, 그곳의 쿠르드들도 디야르바크르의 쿠르드와는 부족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다.

5.4 아메리카

5.4.1 미국

  • (동)북부 VS 남부
독립하기 이전부터 먼저 상륙한 사람들(버지니아 제임스타운 계열/남부)과 나중에 상륙한 사람들(메이플라워호 계열/북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후 남북전쟁의 영향과 경제적 격차 때문에 본격화되었다. 남부 사람을 놀리는 말로 레드넥이 있다. 반대로 남부사람들은 북부사람을 양키라고 부르면서 경멸한다. 대체적으로 북부 + 서부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을 찍어주는 반면 남부는 거의 항상 공화당을 지지한다. 특히 서부의 캘리포니아주는 아예 민주당이 거저먹는 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편 공화당에게는 텍사스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랑 텍사스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데, 게다가 인구도 미국내 1, 2위다. 항목 참고.
  • 동부 VS 서부
서로 최강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동부는 뉴욕을 위시한 메갈로폴리스로 인해 우리가 최고다! 라고 말하고 있고 서부는 동부 퇴물 놈들의 시대는 갔고 이제 서부의 시대라고 드립을 치고 있다.NCR 또한 1932년과 1984년 서부의 로스엔젤레스에서 두 차례 하계 올림픽이 열린 점이나 영화 터미네이터의 흥행[41]까지 강조하면서 올림픽 개최로 서부 지역이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힙합계에서도 동서부 갈등이 심했던 때도 있었고, Notorious B.I.G.2pac의 사망도 이때문이다.[42] 중부? 그거 밀밭 아닌가?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스포츠도 동부 서부 나눠서 붙을 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스포츠 시즌에는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어디까지나 라이벌 경쟁이란 의미로 서로를 비방하고 있기는 하나 그 본질은 순수하기 때문에 이쪽은 그나마 양반이다. 서부의 LA 레이커스와 동부 보스턴 셀틱스가 결승전에라도 올라 오면, 농담 보태 국가내전이라도 벌일듯이 분위기가 고조된다고. 30년동안 일어나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뉴욕 양키즈가 월드 시리즈에서 만난다면 양쪽의 열기는 실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그래봤자 뉴욕 양키즈와 보스턴 레드삭스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다.
  • 뉴욕 vs LA vs 시카고★
위의 동서부 갈등의 범위를 좁혀 최대 도시들의 갈등만을 이야기한다면 여기에 시카고가 추가로 끼어든다.(...) 모두 세계구급 대도시들인데다 서로의 특색도 독특하다보니 자존심이 강하다. 시카고 vs 뉴욕은 중서부가 발전한 이래 전통적으로 있었던 라이벌 감정[43]에 뉴욕과 LA는 상술한 동서부 갈등, 거기에다 LA와 시카고는 서로 자기네가 미국 제 2의 도시라고 우기는[44] 완전 콩가루 집안 수준의 난장판을 보여준다.
  • 뉴저지 vs 나머지
뉴저지 사람들은 뭔가 재수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실제 차별의 정도는 거의 없으며 농담따먹기의 소재로 차용될 뿐.
종교, 정치, 문화 등의 면에서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다, 인구 및 경제력이 미국에서 가장 크고 빠른 규모로 성장하는 주가 두 주라서 미국 내 1등 주란 타이틀을 걸고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5.4.2 캐나다

캐나다 퀘벡 주는 본래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였으나 7년 전쟁(프렌치-인디언 전쟁)의 결과 영국에 양도되었다. 이 때문에 퀘벡에는 프랑스계 주민이 많고,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일 정도로 캐나다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강하다. 심지어 분리독립 투표까지 진행되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부결된 사례도 있을 정도. 자세한 것은 퀘벡 주 항목 참조.
위의 '퀘벡 주 vs 나머지' 지역감정의 축소버전. 각각 캐나다를 대표하는 두 도시이며, 규모도 비슷한 수준인데다가, 토론토는 영국계, 몬트리올은 프랑스계의 최대도시인 점에서 경쟁의식이 심하다. 자세한 점은 추가바람.

5.4.3 브라질

추가바람

5.5 아프리카

5.5.1 탄자니아

탄자니아를 구성하는 지역중 본토인 탕가니카와 인도양의 잔지바르 섬은 제국주의 시대 탕가니카는 독일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잔지바르는 영국의 지배를 받을 정도였으며 역사적인 배경등이 서로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자니아가 독립하면서 두 지역이 합병하여 탄자니아를 세웠지만 잔지바르는 비자를 따로 받아 입국해 들어가야 했을 정도로 탄자니아 본토인 탕가니카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

5.5.2 리비아

  • 서부(트리폴리타니아, 페잔) VS 동부(키레나이카)
사실 이곳의 지역감정은 이미 왕정 시절에도 있었으며, 특히 1차 리비아 내전 이후 더욱 더 심해졌다. 키레나이카 지방은 2012년에 분리독립을 주장했으며, 2013년 후반에는 본격적으로 반정부 성향의 여덟 부족들은 키레나이카에 바르카(리비아에서 키레나이카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정권을 세워서 2014년까지 리비아 정부와 싸우기도 했다. 물론 리비아 당국은 괴뢰 정권이라며 비난을 했다. 2014년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감정이 심했고, 결국 서부 트리폴리를 쿠데타로 장악한 트리폴리 정부와 동부로 도망쳐서 키레나이카에 중심지를 옮긴 토부르크 정부의 내전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1. 신라부흥운동 등
  2. 탐라가 마지막에 한반도의 왕조들에게 흡수된 것도 있었고, 조선시대 이전에는 탐라와 한반도 각 왕조들은 서로 다른 나라로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3. 예를 들면 캐나다퀘벡, 스페인바스크 등.
  4. 예를 들면 이탈리아, 독일.
  5. 이 경우 세계정부 형태로 합쳐진 단일 정치체제의 지구.
  6. 보통 수도권→지방으로의 이주를 꺼리는 편이다.
  7. 생전 교시 중에 '함경도 사람들을 간부로 등용하지 마라'라는 게 있었다고.
  8. 사실 김정은은 강원도 원산 출신이다. 이북 5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함경남도(...) 그냥 평범한 패륜아 다만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일성은 평안남도 출신이긴 하다.
  9. 헌데 아내리설주도 함경도민이다. 이런 젠장
  10. 탈북 여배우 김혜영 또한 함북 출신으로 이와 비슷한 발언을 남한 매체에서 한 적이 있다.
  11. 사실 한신 고시엔 구장은 오사카가 아닌 효고 에 있고 오사카 연고팀은 따로 있지만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12. 히로히토가 사망했을 당시 유일하게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역언론에서는 태평양 전쟁의 전범이 죽은 것 뿐이라며 대놓고 디스했다.
  13. 과거 사쓰마 번
  14. 그리고 사용하는 방언이 달라서 서로 자기네 방언으로 얘기했을 때 의사소통이 안 되기도 하다. 중국어 항목 참고. 화북은 대체적으로 보통화로 대표되는 북방방언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반해, 남부는 북방방언을 제외한 많은 방언군으로 갈라져 있어서 통역이 필요할 정도. 지도 참조. 물론 여기서도 쓰촨, 윈난성은 오히려 표준중국어와 같은 계열인 북방방언(만다린)을 사용한다.
  15. 중국인 중심이라 싱가포르와도 비교되는 피낭도 무슬림이 대부분이다.
  16. 브루나이가 말레이시아에 가입하려다 만 것도 이 때문이다.
  17. 정확히는 브루나이계 말레이인으로, 서부의 말레이인들과는 문화적으로 같지만 엄연히 다른 민족이다.
  18. 보르네오 지역 원주민은 계통적으로는 말레이인보다는 저 멀리 마다가스카르 쪽에 더 가깝다.
  19. 참고로 사라왁은 나라 전체의 여당인 UMNO가 유일하게 진입하지 않은 지역이다. 물론 친여 성향의 정당이 존재하긴 하지만.
  20. 근데 이건 대한민국에서도 흔하다.
  21. 사라왁 방언은 마치 한국어의 제주도 방언처럼 표준어와 너무 차이가 나서, 외부인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긴 하다. 대표적인 동부 방언을 보면, 말 끝에 'bah'를 붙이고, o가 u로 바뀌거나 e가 i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반면 서부 방언의 경우는 단어를 끝내는 a나 ah가 e로 바뀌고, 'mahu'와 'cuba' 대신에 'nak'을 쓴다. 그리고 영어를 많이 섞어 써 인칭대명사는 걍 영어를 쓰고, 외부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문법을 아주 망가뜨린 슬랭을 많이 사용한다. 본래 이는 동부 방언은 브루나이 방언에서, 서부 방언은 믈라카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말로 따지면 동부 방언은 쉽게 말해서 남부 지방 방언이고, 서부 방언은 걍 북한말이다.
  22. 중국 홍콩의 영주권과 비슷함.
  23. 남한이 생각하는 북한 정권과 같은 격
  24. 이건 옛날 이름이고, 지금은 '평양직할시'이다.
  25.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전부터 피낭 자체를 하나의 도시로 여겼다.
  26.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는 제외. 이 쪽은 술라웨시 섬 출신이다
  27. 시드니의 라이트 레일도 일부구간이 노면에 오픈되어 있으나 멜버른의 노면전차는 세계 최장거리(250km)로 유명하다.
  28. 멜버른은 호주에서 날씨 안좋다고 허구한 날 까이지만(구름낀날 년간 180일, 시드니는 120일) 런던이나 시애틀(둘 다 구름낀날 년간 300일+) 같은 진짜 우중충한 외국도시들에 비하면 화창하기 그지없다. 멜버른에서는 시드니 물가가 비싸다고 자주 까지만 사실은 조금밖에 차이 안난다.
  29. 프리시족은 원래 신성로마제국에 복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던 민족이었으나 기어이 복속되어 각각 동서북으로 쪼개졌다. 그래서 독일 북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북프리슬란트라는 곳도 있다.
  30. 바이에른은 독일에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다음 세번째 강국이었지만 통일을 위한 주도권 전쟁에서 패한 오스트리아는 아예 통일독일에서 제외되었고, 독일제국으로 통일되었던 국가 중에서는 바이에른왕국이 두번째 강국이었다.
  31. 통일 후 모든 국가 시스템이 프로이센의 것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황제, 수상도 모두 프로이센의 빌헬름1세와 비스마르크가 차지했고 바이에른왕국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32. 슈튜트가르트는 아예 홈구장이 메르세데스-벤츠 슈타디온이다.
  33. 표준독일어 사용지역인 하노버와 달리 아직도 저지독일어(Platdüütsk) 방언을 쉽게 들을수 있고, 종교적으로는 네덜란드 국경을 접한 특성때문에 독일 개혁교회(reformierte)의 실질적 지주 역할을 맡는 교회가 레어(Leer)에 있다.
  34. 다만 이와 별개로 동프리슬란트에 관한 지역드립은 생각보다 늦게 생겨난 것이다.
  35. 이 바스크어는 어느 어족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고립어다. 확실한 건 인도유럽어족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거다.
  36. 돈의 분배 문제로 생긴 지역감정은 세계 어느나라나 마찬가지. 한국에서도 강남번호판(전국번호 생기기 전의 서울 52 또는 55)으로 차 번호판을 달던가 강남 주민등록번호로 신생아 주민등록번호 만들기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37.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방언과 동남 방언 간의 격차와 비슷한 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38. 잉글랜드 성공회도 잉글랜드 남부지역은 캔터베리 대교구, 잉글랜드 북부지역은 요크 대교구 관할이다.
  39. 전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와 가장 못 사는 동네가 한 나라 안에 공존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탈리아 항목 참조.
  40. 당장 밀라노는 소득수준이 스웨덴 급이지만, 나폴리체코만도 못하다. 그야말로 한 나라 안에 있는 거 맞나 싶을 정도(...)
  41. 터미네이터 배경도시가 로스엔젤레스였고 미래세계 역시 서기 2029년 로스엔젤레스이기 때문이다.
  42. 사실 동부힙합VS서부힙합보단 레이블간의 힘자랑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43. 마이클 조던뉴욕 닉스를 좋지 않게 만들던 시절에 절정이었다.
  44. 사실 도시 자체로만 보자면 이미 시카고보다 LA의 도시권 인구가 2배 가까이 많은 상황에 왜 이것이 논란거리인지는 시카고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