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1 進路 (진로)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 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느 쪽' 을 향해 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 올리버 웬델 홈즈

앞으로 나아갈 길, 보통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는 워크넷을 이용해서 학교에서 진로지도를 해 준다. 대학교 진학이나 취업 쪽. 학생들의 진로에 대하여 학교에서도 진로지도를 해주기는 하지만... 태풍도 진로가 있는데 왜 나는 진로가 없는 거지 선생이 잘못 가르치면 진로방해 한다는 소리 듣는다 직업 관련 정보도 참고하기 바란다.

학창시절의 진로 고민은 남은 인생 전부의 방향을 결정하는 만큼 매우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대충 남들이 이렇다더라 하는 얘기 듣고 적당히 정했다가는 행복한 삶을 살기 어렵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직업 선택의 폭은 넓어졌고, 그런 반면 흔히들 말하는 '좋은 직장'의 문제점도 많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므로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것보다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잘 할 수 있는가'이다. 아무리 좋은 직장인들 자기 적성에 안 맞고 실력이 없으면 그냥 인생의 낙오자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의사, 교사 같은 '사'자 들어가는 특수 직종들이 이렇다. 이런 직업들은 적성을 심하게 타는 편이며 또한 일단 이 길을 선택했을 경우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도 비위가 약해서 피를 못 보는 사람이 의사가 되기에는 무리가 많다. 간호사나 교사 같은 경우는 타인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지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이것도 성격을 많이 타는 편이다.

또 '자신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어찌어찌 적당한 직업을 골랐다고 해도 그 업무가 너무 재미가 없다면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일에 미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처음엔 좋아했던 일도 막상 직업이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또 단순히 취미로 즐기는 것과 그것이 생계유지 수단이 되는 것은 무게감이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취미 수준의 관심을 착각해서 진로로 선택하는 것도 할 짓이 안 된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학생 시절에 학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직업 정보는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영 딴판인 경우도 많다. 이러면 대학 2~3학년 때쯤 극도로 힘들어지게 마련이니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보고 결정하자.

세 번째로는 '생계 유지가 가능한가'도 감안해야 한다. 어릴 때 자신감이 넘쳐 선택했다가 나중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인생도 꽤나 있다. 무슨 직업이든 성공한다면야 생계유지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거기서 확실히 성공할 수 있냐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자신이 생계 유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버는 직업을 결정해야 한다. 처음에야 밥 굶어도 이 일을 할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 달만 지나도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만약 성공할 자신이 없다면 그 일은 취미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생계를 위한 직업은 어지간히 해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편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불안정한 직업도 생각해 볼 대상이다. 사람에게 있어 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많이 크다.

2 眞露

진로(기업) 문서로.

3 프로게이머 ID

스웨덴의 前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조나단 월시 선수의 ID Jinro.

실제로 2번 항목의 진로에서 따온 ID다.

4 백제의 대신이자 장군.

眞老

(? ~ 497)

백제 삼근왕, 동성왕 대의 대신.

백제의 대성팔족 가운데 하나였던 진씨 출신의 귀족이었다.

진로는 본래 백제의 16관등 중 4등급인 덕솔 벼슬을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큰 권력을 휘두르던 좌평 해구문주왕과 대립하다가 477년 9월에 왕이 사냥을 나가 유숙하던 틈을 타서 이를 암살하고 국정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문주왕의 아들로써 뒤를 이어 즉위한 삼근왕은 세력이 미약하고 나이도 어려서 이를 막지 못하였다.

문주왕의 목숨을 빼앗고 정권을 잡은 해구는 급기야 478년 정월 은솔 연신 등의 무리와 더불어 대두성에 웅거하여 모반하였는데 이때 삼근왕은 덕솔 진로에게 명하여 이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1]

처음에 좌평 진남이 왕명을 받들어 2천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으나 진로는 정병 500명을 거느리고 반란군을 무찔러 결국 그 수괴인 해구를 격살하였다. 해구와 함께 모반했던 연신은 고구려로 달아났으나 진로는 그 처자를 잡아 웅진의 저자로 끌어내 목을 베었다. 이듬해인 479년에 삼근왕이 죽고 동성왕이 즉위하였다.

482년 정월에 동성왕은 진로를 병관좌평으로 삼아 나라 안팎의 군사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후 진로는 497년 5월에 죽었는데 이에 동성왕은 달솔 연돌을 병관좌평으로 삼았다.

비록 진로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2천 군사로도 이기지 못한 적을 500 정예병으로 공격해 무찌른 점으로 보아 군사적인 능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해씨 세력의 모반을 진압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후 최고위직인 좌평의 자리에까지 올라 군사 업무를 총괄했다는 점으로 볼때 당시 백제의 핵심 권력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름에 걸맞게 진로를 잘 잡았다
  1. 이는 당시 백제의 귀족세력이었던 해씨와 왕족인 부여씨, 진씨의 세력다툼으로 인해 생긴 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