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공

1 진나라의 34대 군주

역대 진나라 군주
33대 진경공(晉頃公) 희기질(姬棄疾)
34대
진정공(晉定公) 희오(姬午)
35대 진출공(晉出公) 희착(姬鑿)
(姬)
진(晉)
오(午)
아버지진경공 희기질(姬棄疾)
생몰기간음력기원전 ?~ 기원전 475년
재위기간음력기원전 511년 ~ 기원전 475년

진정공은 아버지 진경공이 512년에 죽자. 진나라 군주 자리를 이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중항인(中行寅) 일명 순인(荀寅)이 기회를 보아 조씨를 척살하고자 했다.[1] 진정공 12년인 기원전 500년 진의 경인 조간자 조앙은 가신 동안(董安)으로 하여금 진양성을 쌓게 했는데, 그 튼튼함이 태원에서 제일이었다. 그곳이 조씨 일가의 근거지가 된다. 진정공 15년인 기원전 497년 조간자 조앙은 진의 정경이 되었을 때, 조간자 조앙의 동족인 조오를 감금했다. 그뒤 조오를 살해했다. 진정공 19년인 기원전 493년 조앙은 병사를 거느리고 범씨와 일전을 벌였다. 범씨와 같은 편인 중항씨는 정나라의 원군에게 맹세했다.
"이긴 자는 상대부는 현을 다스리게 할 것이고, 하대부는 군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2] 선비들은 10만전을, 평민들은 상공업으로 이득을 보게 해줄 것이고, 노비들은 면천시키겠다."[3]
조씨의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승리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발린 범씨와 중항씨 세력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진정공 30년인 기원전 482년 진정공은 오왕 부차와 황지에서 패자 자리를 다투었다. 부차가 말했다.
"내가 주나라 왕실 혈통으로 보면 내가 위다."
진정공이 대답했다.
"내가 희성을 쓰는 이들 중에서 내가 짱이다."[4]
진정공 37년인 기원전 475년 사망했다.

2 의 최후의 군주

역대 진나라 군주
39대 진효공(晉孝公) 희기(姬頎)
40대
진정공(晉靜公) 희구주(姬俱酒)
멸망
(姬)
진(晉)
구주(俱酒)
아버지진효공 희기(姬頎)[5]
생몰기간음력기원전 ?~ 기원전 349년
재위기간음력기원전 356년 ~ 기원전 349년

진나라의 마지막 군주. 진효공의 아들. 진효공이 죽은 뒤 그가 즉위했다. 사기에 의하면 그 해는 제위왕 원년인 기원전 356년이라 한다. 기원전 349년 조나라에게 진나라의 땅을 몽땅 빼앗겼다. 그리하여 진정공은 한나라의 둔류 땅에 거주하게 되었다. 죽서기년에 의하면 그해에 한나라 군주가 한기(韓玘)를 보내 군주를 죽였다고 하는데, 그 살해당한 군주가 진정공으로 의심된다.나라 망한 것도 서러운데 죽임을 당하니 얼마나 서러울까?

자치통감의 기록에 의하면 진효공이 죽은 뒤 아들 희구주가 즉위했는데, 그 때가 주안왕 24년인 기원전 378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안왕 26년의 일이라고 한다. 기원전 376년에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가 진정공을 폐위시키고, 진나라 땅을 나눠 가졌다고 한다.만약 이게 사실이면 2년만에 땅을 빼앗겼다는 소리다. 캐안습
  1. 중항씨는 진나라 공족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그를 시킨 것. 헌제동승에게 조조를 척살하게 한 것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같은 조씨다. 한자가 다르다.
  2. 군현제의 이치로 보면 군이 커야 맞지만, 춘추시대에는 군이 현보다 작았다.
  3. 이렇게 상을 주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 싸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4. 이것은 진나라가 오래도록 패권을 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5. 진환공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