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중화민국 역대 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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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대14대15대
마잉주차이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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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0일 총통 취임식에서



모에화 캐릭터 샤오잉(小英).

蔡英文(채영문) / Tsai Ing-wen / Chhoà Eng-bûn

인물 개요
중화민국(대만) 총통부 홈페이지의 공식 프로필 사진
이름차이잉원(蔡英文)
로마자 표기Tsai Ing-wen
생년월일1956년 8월 31일 (61세)
출생지타이베이
국적중화민국
직업정치인
당적민주진보당(2004년 5월 27일 ~ )[1]
경력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2000~2004년)
입법위원(2005~2006년)
행정원 부원장(부총리)(2006~2007년)
민주진보당 주석(2008년~2012년, 2014년 ~ )
중화민국 총통(2016년 5월 20일 ~ )
별명샤오잉(小英)[2]
서명
공식 페이스북

1 개요

중화권 최초의 선출직 여성 지도자[3]

중화민국(대만)의 정치가로 2016년 1월 제14대 총통에 당선되면서 중화민국 최초의 여성 지도자로 등극했다. 또한 2000년 천수이볜의 당선 이후 8년 만에 두 번째 민주진보당 정권을 탄생시켰다.

2 생애

2.1 생애 초반

1956년 8월 31일생. 대만섬 남부의 핑둥현은 그녀의 본적지이고, 그녀의 저서 "보통사람의 특별한 인생"에 따르면,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본적지가 핑둥현이라 사람들의 오해가 있다고.

의외로 순수 본성인이 아니라 반산(半山)이다. 차이잉원의 저서 "보통사람의 특별한 인생"에 따르면, 차이잉원의 증조부때까지는 대만에 거주했으나 할아버지아버지일제강점기 시절에 대륙[4]에서 활동하다가 2차 대전 일본의 패망 이후 대만에 돌아와서 차이잉원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객가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대만 원주민(파이완 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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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차이잉원의 부친은 자동차 수리업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부동산, 건설, 호텔업으로까지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아니 도대체 수리점을 어떻게 연거야 하긴 한국에도 어느 불타서 망한 자동차 정비소 사장이 있긴 하다 이복 자매형제 포함해서 아홉 남매들중 막내였는데, 부친이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녀들 중 누군가 법학을 전공하길 기대했다. 이를 배경으로 차이잉원은 역시 훗날 대만 총통선배들이 되는 천수이볜마잉주도 거쳐간, 최고 명문 대만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부친의 사업이 나름 성공한 편이어서 집안이 꽤 유복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차이잉원이 교수가 된 후, 아버지가 못 보던 최고급 외제차를 끌고 오더니 "막내야, 이건 네 차다!"라며 선물했다고 하니 어지간히 잘살기는 했던 모양. 국민당 측에서는 이를 빌미로 차이잉원의 부친을 "일제 식민통치 시절 특혜를 누린 친일파"로, 차이잉원은 "부모 잘 만나 세상물정 모르는 인물"이란 식으로 비난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물론 차이잉원 측은 "근거 없는 흑색 선전"이라고 반박했지만. 오빠와 언니들은 다 결혼해서 분가했는데 차이잉원 본인은 미혼으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이미 차이잉원이 정치에 발을 들일 때 쯤(행정원 부원장 시절) 세상을 떴다.

학부 졸업 이후에는 미국 코넬 대학교 법학 석사,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법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 시절 중국어를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아서 귀국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그녀의 중국어를 어색해 했다[5]고 한다. 1984년 대만으로 돌아와 불과 27세 나이에(!!) 국립정치대학 법학과 부교수로 임용되어 1991년까지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둥우 대학 국제무역학과 대학원과 법학과에서 교수를, 1993년부터 2000년까지 국립정치대학 국제무역학과 교수를 지냈다.

2.2 정부 관료 시기

차이잉원은 리덩후이 총통시기(1988년~2000년)에 행정원 경제부의 국제경제조직부서의 수석법률자문을 맡았다. 그녀가 국제경제조직부서의 법률자문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주 전공이 국제무역과 통상법이었기 때문이다. 수석법률자문역을 맡으면서 GATTWTO 대만측 수석협상대표를 맡았고 각종 경제협상을 주도하게 된다. 또한 1998년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 자문위원과 국가통일위원회 연구위원직을 맡았는데, 리덩후이가 임기 만료를 앞둔 1999년 중국과 대만을 '특별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고 규정한 일명 '양국론'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차이잉원이었다.

2000년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민주진보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2000년 5월 행정원장으로 임명된 탕페이(唐飛)는 차이잉원을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6]으로 지명하였고 탕페이 내각에 입각하였다.[7] 탕페이 내각은 5개월만에 탕페이가 사직함으로써 장쥔슝(張俊雄) 1차 내각이 구성되었지만 유임되었고,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을 하면서 소삼통 구상을 현실로 실현시켰다.[8]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2년 여우시쿤(游錫堃) 내각에서도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유임되어 2004년 민주진보당 입당 전까지 활동하게 된다.. 소3통 성사 과정에서 중화민국군이랑 엄청 친하게 지내서[9]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 출마 전에는 중화민국군 측에서 직접 차이잉원에게 국방부장직을 제의한 적이 있다(역시 차이잉원의 자서전 "보통사람의 특별한 인생") 차이잉원이 이 때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방부장직에 올랐으면 동양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이 될 수도 있었던 대목.

2.3 정계 입문

2004년 민주진보당에 정식으로 입당하면서 정계로 진출했다. 원래는 리덩후이를 명예주석으로 모시는 대만단결연맹에서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차이잉원을 영입하려 하였으나 천수이볜 전 총통이 직접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해줄 것을 요청하여 9월에 민주진보당에 입당하였다. 그해 12월에 있었던 총선거에서 차이잉원은 지역구 후보가 아닌 비례대표 후보 6번을 받아 당선되었다. 2005년 2월에 정식으로 취임하자마자 민주진보당 원내부대표를 지냈다. 하지만 2006년 1월 23일에 새로 구성된 쑤전창(蘇貞昌) 행정원장 내각에 입각하면서 입법위원직을 사직하였고, 1월 25일에 행정원 부원장[10]에 지명되었다. 행정원 소비자보호위원회 주임위원까지 겸직한 차이잉원은 쑤전창 내각 구성원 중에서 국민의 최고의 신뢰를 받게 된다. 하지만 행정원장 쑤전창이 2007년 민주진보당 총통후보 경선에서 전 가오슝 시장이자 전 행정원장인 셰창팅(謝長廷)에게 패하자 내각 총사직을 발표했고 차이잉원 역시 동시에 사직하여 본적지인 핑둥 현으로 낙향한다. 낙향 이후에 정계에서 멀어지자 2008년에 잠시 제약회사의 회장(무급이다.)을 맡기도 한다.

2.4 민주진보당 주석 1기 (2008~2012)와 2012년 총통선거

화려한 학력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요직을 두루 거쳐온 엘리트 여성 정치인이다보니 야권의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었으며 민주진보당 내부에서도 혁신의 요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차이잉원은 당 주석 선거에 출마하였고 쟁쟁한 당 원로들을 꺾고 주석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민진당은 2008년 1월의 입법위원 선거와 3월의 총통 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고 천수이볜 부패 파동까지 겹치면서 완전히 힘이 꺾여버려[11] 차이잉원 주석은 이를 시민들에게서 소액의 기부를 받는 운동으로 지지층을 재결집함으로서 위기를 벗어났다.[12] 존립이 위태로워진 상황. 그러나 차이잉원 주석은 마잉주 정권의 지나친 친중 행보와 여러 국내 실정을 파고들어 선명 야당을 주창했고, 그 결과 이후의 보궐선거 및 지방선거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2010년 제13기 당주석 선거에서 90.29%라는 경이로운 지지율을 얻으며 민주진보당 주석에 연임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녀를 야권의 대표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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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ECFA 토론회 영상(1번). 마잉주 총통과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의 1:1 TV토론이다. 토론이 길어져서 14개로 나누어진 버전이 있다. 이 링크로 가면 1~14번 전부 다 볼 수 있다.

2010년 양안FTAECFA의 조인 당시에 민진당 당론으로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고, 협상 타결을 앞둔 같은 해 4월 당 주석 자격으로 마잉주 총통과 TV 공개토론을 갖기도 했다. 2011년 총통선거 출마때는 "당선되면 ECFA 지속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공약했지만, 마잉주가 재선되면서 무산되었다. 현재 ECFA에 관한 차이잉원 본인과 민진당의 입장에 관해서는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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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신베이 시장 선거에 직접 출마했다가 중국 국민당주리룬(朱立倫) 후보에 밀려 떨어지면서 기세가 꺾이는듯 했으나[13] 민진당의 총통 후보로 선출되어 마잉주 총통과 대결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성애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현재까지 미혼이다보니 저런 해프닝이 있었는데 차이잉원 본인은 과거 연애를 했었으나 사별한 뒤 정계 입문을 하면서 기회가 없었다고 담담하게 해명. # 사실 개혁 성향이 있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대한 시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긴 하다. 여담으로 이 의혹을 제기한건 대만 민주 세력의 대부이자 전 민진당 주석 스밍더(施明德)였는데,[14] 웬만해선 정치권으로부터 욕을 안 먹던 양반이 차이잉원을 향해 동성애 여부를 밝히라고 촉구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동성애자들의 표심이 차이잉원에게 쏠렸다는 분석도 있는지라...왠지 짜고치는 고스톱 같다.[15]

2012년 1월 14일에 치러지는 총통 선거의 판세는 전반적으로 초박빙이었다. 4년 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민진당의 위세가 강력했으며, 여론조사 결과 5%P차로 마잉주 총통의 재선 가도에 바짝 따라붙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투표 전날에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전격적으로 지원 유세를 해주면서[16]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80만표(6%P)차 패배.[17] 그나마 입법위원(국회) 의석수는 지난 선거보다 늘어서 선전하긴 했지만 결국 총통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민주진보당 주석(대표)직을 사퇴, 그렇게 정계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2.5 민주진보당 주석 2기 (2014~ )

하지만 차이잉원은 당 주석과 총통 후보까지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마잉주 총통 집권 2기 초반부터 불어닥친 소고기파동과 마잉주의 입법원장(국회의장) 도청 의혹 등이 터지면서 마잉주는 국민들의 신임을 잃어버렸고 양안서비스협정을 급속하게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써 차이잉원은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으며 2014년 3월에 민주진보당 당 주석 선거 출마선언을 하게 된다. 2014년 5월 당 주석 선거에서 무려 93.71%라는 압도적인 표를 얻으며 제15대 민주진보당 주석으로 당선되었다. 차이잉원은 주석직에 취임한 이후부터 그해 11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총력을 쏟기 시작했으며, 홍콩우산혁명이 고조되자 홍콩 시위현장에 직접 방문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보여주었다. 11월 29일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대의 대승을 거두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차기 총통후보로써 압도적인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3 2016년 총통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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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모토. 대만의 불을 밝히자(Light up Taiwan)


차이잉원 후보의 선거 출마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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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림이 이해하기 쉽다

마잉주 총통의 친중 정책과 경제부양책의 한계, 그리고 홍콩에서 터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반감이 거세기 때문에 대만 독립을 내세우는 민진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게다가 천수이볜 전 총통이 당선될 때 그랬듯 대만 독립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기보다는 대만이 주권 국가임을 강조하는 교묘한 구호[18]를 내세울 경우, 독립은 반대하지만 개혁 성향을 지닌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에 더더욱 국민당 입장에선 불리한 상황. 민진당이 진짜 고마운건 사실 중국 공산당이라카더라

결국 2015년 5월 유력 후보였던 왕진핑 입법원장(국회의장)이 출마를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에서 주리룬 신베이 시장마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성인 훙슈주 부주석의 단독 경선이 유력한 상황인데 만일 정말로 이 사람이 국민당 후보로 선출되면 사실상 선거는 하나마나일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주리룬 같은 중량급 정치인이 나가도 선뜻 차이잉원에게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운데 인지도가 높지도 않은 훙슈주는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 한편 민진당 전 주석 스밍더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서 다소 차이잉원의 표가 잠식될 우려가 있지만 이 사람이 친민당 쑹추위와의 연합을 저울질하고 있는지라 선거판세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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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2015년 6월 29일호 표지를 장식했다. "중화권의 유일한 민주체제[19]를 이끌게 될 수 있는 인물"(She could lead the only Chinese democracy)이라고 소개되었는데, 다분히 2014년 11월 홍콩 민주시위를 겨냥한듯한 제목. 게다가 그 뒤에는 그리고 베이징을 긴장케 한다(And that makes Beijing nervous)는 의미심장한 문구로 중국과의 대결 구도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국제사회의 시각을 표현했다. 이렇듯 해외에서도 차이잉원의 집권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중국 대륙의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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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보도지침을 내려 인터넷에서 글자를 모두 가려버리면서 심기가 매우 불편하심을 인증했다.(...) 근데 가리는 것도 어설프게 해서 라틴알파벳 아는 사람이 좀만 살펴보면 다 읽힌다. 참고로 위 표지를 달고 출간된 타임지 6월 29일호는 중국에 수입 금지까지 먹었다.(...) 링크. 근데 제목에 'Chinese democracy'라고 적은 걸 감안했을 때 대만독립진영에서도 어그로가 끌리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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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트위터에서는 이런 식으로 패러디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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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랑 닮았다는 평도 있다.(...) 어? 대만에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않던가?

3.1 진행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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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라이벌인 집권 국민당의 총통선거 후보에 훙슈주가 확정되었다. 대만 언론들은 두 후보의 정치역정, 활동 및 성장배경의 차이를 들어 "공심채 고추 볶음(辣炒空心菜) 요리 대결"이라고 부르는 중. 공심채(空心菜)는 속이 빈 야채 요리를 뜻하는데, 차이잉원이 양안정책을 비롯한 주요 선거 쟁점에서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빗댄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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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15년 8월 6일, 친민당쑹추위도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대권 3수 쑹추위의 출마 선언 직후, 대만의 유력신문 <연합보>(聯合報)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쑹추위는 24%의 선호도를 얻어 민진당의 차이잉원(36%)보다는 낮지만, 국민당의 훙슝주(17%)보다는 높은 2위로 나타났다. 기본적으로는 쑹추위의 출마로 인해 주요 정책상의 공통성(예: 친중국 성향)이 높은 국민당 훙슈주의 표가 많이 잠식되긴 했지만, 차이잉원 역시 그동안 40%대를 웃돌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쑹추위와 훙슈주의 선호도를 합칠 경우, 차이잉원을 앞지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여유있게 선두를 달리던 민진당과 차이잉원에게는 바짝 긴장할만한 소식.

앞으로 쑹추위가 2000년과 2012년처럼 선거를 완주할지, 아니면 2004년처럼 러닝메이트(부총통) 자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국민당과 단일화를 선택할지의 여부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결정될 전망이다. 나중에 가면 쑹추위가 총통/훙슈주가 부총통으로 쇼부칠 수도 2015년 8월 5일 친민당의 입장은 단일화는 가능하나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이다. 주리룬 중국 국민당 대표는 비공개 회담을 통한 단일화를 주장하는 중.

2015년 8월 20일 연합뉴스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씽크 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차이잉원이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서 당선될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수위가 거칠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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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6일 나온 대만의 여론조사에서 쑹추위와 훙슈주를 합친 것보다도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다시 높아졌다.기사 일장춘몽 이렇게 되면 쑹추위 후보는 단일화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차이잉원의 당선 가능성은 더욱 올라가는 것.

2015년 8월 말 기준으로 차이잉원은 가오슝 시장인 천쥐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하려 하나 민진당 내부에서 남녀 성비 균형을 맞추라며 2012년 쑤자취안 부총통 후보처럼 남성 후보를 지명하라고 압박받고 있다.

한편으로 민진당 내부에서는 차이잉원 후보의 대세론이 유지되는 상황이 자칫 예상외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민진당 지지층이 '당연히 차이잉원이 이기겠지...'라고 안심한 나머지 적극적으로 투표하려는 의지가 낮아지고, 반면 위기감을 느낀 국민당 지지층이 결집해서 적극 투표한다면 실제 선거에서의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민진당은 차이잉원의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걍 쉽게 말해서 다 필요없고 선거 끝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2015년 10월 9일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을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사 양측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만난 것으로 보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측이 반발하였다. 아베 신조와 차이잉원은 이전에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잉원이 대만 총통에 당선되면 대만-일본 관계가 훨씬 가까워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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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중국 국민당의 대선후보가 주리룬 신베이 시장으로 교체될 경우와 훙슈주 입법원 부원장으로 유지될 경우의 여론조사에서도 차이잉원 후보가 1위를 유지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기사

2015년 11월 7일 시진핑마잉주 양안의 정상회담강력히 비판했다. 대만의 여론과 제도적인 참여를 배제한, 불과 2개월 앞둔 차기 총통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목적이라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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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천젠런(陳建仁)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부원장을 러닝메이트, 즉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천 부원장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전염병 관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천수이볜 총통 시절 행정원 국가과학위 주임위원(한국의 과학기술부 장관격), 위생서장(한국의 보건부 장관격) 등을 역임한 질병 전문가다. 특히 2003년 중화권을 휩쓴 사스 대란에 대처하는 데 활약하여 대만인들의 신망을 얻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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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를 앞두고 민주진보당의 지지자가 함대 컬렉션키리시마와 차이잉원의 오너캐를 합성한 물건을 민진당 당사에 기부했다. (...)



2015년 12월 13일 충격과 공포홍보영상을 만들었다.(...)

3.2 선거 쟁점

천수이볜 이후 8년만에 민진당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이 지들 덕분에 높아지자 중국에서는 또 다시 대만에서 분리독립을 추진할까 바짝 긴장하는 상황이다. 차이잉원과 민진당을 상대로 "양안정책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도 대만 내부와 국제사회에서 높아질 전망. 이에 차이잉원은 "대만의 안정, 평화를 최우선으로 추구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에 그치고 있다. 위에도 언급했듯 차이잉원은 과거 대륙위원회 주임위원(한국의 통일부장관에 해당)을 역임한 바 있어서 양안관계에 대해서 무지하지는 않기 때문에[20] 천수이볜처럼 무리하게 분리 독립을 추구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중국과 국민당처럼 92공식(九二共識)[21]에 입각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며, 이 점에서 중국과의 마찰 여지는 여전하다. 애초에 뭔 짓을 해도 중공이 만족할 일은 없다.

결국 중국이 원하는건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특별행정구 하나뿐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중화민국을 없는 존재로 여기며 무조건 자신들의 휘하에 들어오라는 소리. 그렇게만 한다면 현재의 정치 체제는 물론이고 화폐를 비롯한 경제 정책도 그대로 유지하며, 대만인들이 원한다면 중화민국군의 존치도 보장해주겠다고 나름대로의 약속을 하고 있다. 허나 홍콩에 적용된 일국양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황을 대만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1996년 리덩후이 총통이 재선될 당시 중국측에서는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므로 대만인들이 투표로 정치 지도자를 뽑는 행위 역시 용납할 수 없다."라는 개드립까지 날렸기에 사실상 중국에 협력할 세력은 대만에 없다. 그나마 국민당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사이가 민진당이나 범록연맹등과 비교했을때 상대적으로 원만한 편이지만, 결국 국민당 역시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이다."라는 대원칙을 계속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대만 정권을 누가 잡든 중국과의 관계가 특별히 좋아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 뭐, 이건 국민당의 마잉주 현 총통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국민당과 민진당의 TPP 추진안에 차이는 있다. 바로 국명. 국민당안은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으로, 민진당안은 Taiwan(대만)으로 가입하자는 것. ROC니 Taiwan이니 양쪽 다 중국 대륙정부가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에 반하는 안이라는게 공통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화민국은 중국과의 연결을 어느 정도 인정한 반면, 대만은 아예 부정한다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중국 대륙에서는 대만한테 Taiwan, Province of China(UN에서의 대만 지칭 표현)이라 쓰라 하고 있지만 이 점에서는 범람연맹이든 범록연맹이든 위 아 더 월드반대한다.(...) 다만 TPP 조약 자체는 대만이 수정을 할 여지가 거의 없다. 이미 P4 국가들은 협정을 맺은 상태고 미국이나 일본도 형식 상으로는 TPP에 가입하는 거라서 협상이 질질 끌려도 협정 변경여지가 적은데 TPP가 완성된 이후에 가입하려는 대만(+ 한국)한테 수정의 여지는 거의 없다.

천수이볜중화민국군 수뇌부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차이잉원은 대륙위원회 주임 시절 중화민국군 측과 친하게 지낸 이력이 있어서 당선 되고 나서도 민진당 정부와 중화민국군 측이 사이가 안 좋은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有溝通(유구통 : 소통함)、不挑釁(불도흔 : 도발없음)、沒意外(몰의외 : 의외의 이벤트 없음)

2015년 12월 22일, 드디어 양안관계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였다. 총통에 당선되고 나서도 중국대륙과의 대화는 지속하고, 무력충돌은 없으며, 마잉주 - 시진핑 간 깜짝 정상회담같은 의외의 이벤트 없이 예측 가능한 양안관계를 이끌겠다고 발표하였다. 기사 한국어 이는 민진당이 재집권하면 과거 천수이볜 정부처럼 대만의 분리 독립을 재추진하여 중국과의 관계 악화, 안보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국민당의 비판, 대만 내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중국에도 도발의 명분을 주지 않으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22]

총통 선거 당일인 2016년 1월 16일에는 쯔위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과 관련하여 "쯔위가 중화민국 국기를 들고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는 건 억제돼선 안 된다"는 발언을 했는데,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대만 독립세력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만 독립을 추구하기보다는 중화민국이라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현재로서는 중화민국 정체성 또한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긴 하나 대만 공화국이라는 극단적인 독립주의보다야 훨씬 낫기 때문에(...) 과연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건. 이미 마잉주 - 시진핑간 정상회담으로 인해 중국이 내세운 일국양제(하나의 중국 두 개의 체제)보다는 그 동안 대만이 내세워 왔던 일국양부(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정부) 원칙이 급부상한지라.....

4 총통 당선과 정권교체 이후

선거 승리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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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6일 총통선거 승리를 확정지은 후 지지자들에게 답례하는 모습. 왼쪽으로 민진당 원로인 뤼슈렌 전 부총통, 오른쪽으로 선대위원장인 천쥐 가오슝 시장이 보인다. 뤼슈렌, 천쥐 두 사람은 모두 민진당의 창립 계기가 된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주동자 출신이다. 이외에 린자룽 타이중 시장, 러닝메이트천젠런 부총통 당선인도 있다.

유권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1월 18일, 대만의 한 주간지의 인터뷰에서 양안관계에 대해 대륙의 불간섭에 감사한다는, 다소 친중적인 발언을 하였다. 대만독립 문제에서도 오히려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표를 얻어내려고 사기쳤냐 는 국민당 측의 반발을 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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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0일 열리는 팬시 프론티어 27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오타쿠 인증'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의 FF27 방문에 따라 FF는 사상 최대 방문인 기록을 갈아치웠으며[23],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의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컨벤션 이벤트가 매우 중요하다며 임기 중에도 FF 방문을 1회 이상 추진한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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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사건 69주기 추도식에 참석, 연설을 통해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방식과 유사한 과거사 청산을 모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6년 2월 28일, 위의 차이잉원이 대만 독립에 대해 모호한 표현을 하자 왕이(王毅)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장(장관)이 중화민국 헌법을 언급하면서 화해 제스쳐를 보냈다. 급격한 경색이 우려되던 양안관계가 조금 진정 국면에 들어가는 듯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16년 3월 3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 첫날부터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92공식과 '대만 독립 반대'란 정치적 기초 위에서 양안 교류를 확대해 나갈 것"(기사)이라고 발언하여 역시나 다시 긴장국면에 들어가는 모양새다.기사 3월 4일 현재 민주진보당과 차이잉원 총통 당선인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즉답은 피하고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는 중.

2016년 3월 1일중화민국 입법원에서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일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24] 민주진보당 고위 인사가 "달라이 라마는 대만 국경일인 10월 10일 쌍십절 때 대만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대만을 방문하더라도 아마도 차이잉원 새 총통 등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으로 양안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 차이잉원 총통 당선인 역시 경계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기사

2016년 3월 6일,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이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 당선인을 겨냥한 연설을 했다. 시진핑 주석 曰 "우리대만정책명확하고 일관적이다. 대만 정국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이른바 대만독립 분열 행동도 결단코 굴복시키겠다"라는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기사 민진당의 재집권을 앞두고, 과거 천수이볜 시절과 같은 분리 독립노선으로의 변화를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3월 9일 쑹추위 친민당 주석과 만나 1시간 이상 대화를 가졌다. 이를 두고 양안대화에 적극적이고, 중국 정부당국과도 다수의 회담 경험이 있었던 쑹추위를 해협교류기금회[25] 이사장으로 기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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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이 취임할 때 첫 행정원장으로 천수이볜 정부 시절 재정부장(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린취안(林全) 신경계문교기금회(新境界文敎基金會: New Frontier Foundation)[26] 사무총장을 지명했다고 한다. 기사 린추안 내정자는 차이잉원 정부 출범과 동시에 취임하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장산정(무소속) 행정원장이 직을 유지한다.

2016년 3월 17일 차이잉원에 대한 견제로 중화인민공화국감비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해버렸다. 기사 천수이볜 시절처럼 중국대륙이 마잉주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 휴전했던 수교국 쟁탈전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2016년 3월 20일, 시대역량이 본격적으로 타이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고 ECFA 폐기 등의 구호를 내걸자 차이잉원 당선인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기사

3월 21일, 당 원로이자 2008년 총통선거 후보로 출마했던 셰창팅 전 행정원장을 사실상의 주일 대사인 '도쿄 주재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로 임명했다. 한국 기사

2016년 3월 22일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에서 대만인 연출가의 경력 표기를 문제 삼았다. "국립 타이베이 예술대"를 나왔다고 했는데 국립 자를 빼라고 한 것. 기사 외견상 개인 차원 활동에 관한 충돌로 보일수 있지만, 차이잉원의 총통 취임을 앞둔 상황에서 다분히 중국측의 압력, 견제 성격으로 해석되고 있다.[27] 차이잉원 당선인 측은 "중국대륙 측의 선의를 먼저 보이고 압박을 가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발언을 전해들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2016년 3월 24일, 국무원 대만판작공실 주임(북한의 통일전선부 부장에 해당)을 통해 "우리(대륙)의 선의는 대만 신정부(차이잉원과 민진당)가 '하나의 중국'을 먼저 인정할 때나 가능하다"며 맞불을 놨다.

2016년 3월 23일 마잉주 총통(인수인계 레임덕 기간이다)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중화민국이 실효 점유중인 곳 중 제일 큰 다이핑다오(大平島, 이투 아바 섬)에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자국의 영유권을 과시한 이벤트가 있었다. 기사 여기에 대해 차이잉원 당선인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마잉주 총통은 차이잉원 당선인한테 당선인 신분 중(5월 20일 이전)에 다이핑다오 방문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2016년 6월 제2파나마 운하 개통을 앞두고 파나마 정부(중화민국과 수교중이다)에서 시진핑과 차이잉원을 동시에 초청했다. 이에 2015년 11월 시진핑-마잉주 정상회담에 이어서 7개월만에 시진핑-차이잉원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기사

2016년 3월 28일 중화민국(대만) 타이베이 시 한복판에서 4살 여아가 참수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에 차이잉원 총통 당선인은 용의자를 비난하고 사건 조사를 당부했으며, 마잉주 총통은 애통하다며 사회안전망 강화를 지시했다. 그리고 훙슈주 중국 국민당 주석은 "이래도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것이냐"며 만 12세 이하 아동 살해범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는 입법안에 찬성하고 사형을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끔찍한 사건으로 사형제도까지 부상했다. 기사

2016년 3월 30일 마잉주 총통과 함께 현 총통(마잉주)과 당선인(차이잉원) 자격으로 총통부에서 만남을 가져 외교문제를 논의했다. 기사 양안관계 문제는 제외했다고 한다.

2016년 1월2월 중국-대만 양안 무역액이 15.4%나 급감했다고 한다. 기사 중국의 대외무역액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급격한 양안 무역 감소는 중국 측에서 차이잉원 총통 당선인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있다.

2016년 파나마 페이퍼즈에 차이잉원의 오빠인 차이잉양(蔡瀛陽)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폭로되었다. 일단 당사자의 변호사측은 단순히 투자를 위해 설립되었을뿐 계약 부진으로 해산한 이후에는 어떠한 불법적 행위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차이잉원에게 안 좋은 사건임은 분명하다. 기사

2016년 4월 14일 케냐에 체류하던 대만인을 전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송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기사 차이잉원 총통 당선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제 차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2016년 4월 16일에는 차이잉원 총통의 새 정부의 내각 인선이 거의 완료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2016년 4월 19일에는 OECD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중이던 대만 대표단을 중국이 쫓아내는 일도 일어났다. 기사.

2016년 5월 12일, 마잉주 총통 내각이 총 사퇴했다. 기사 총사퇴의 발효일은 차이잉원이 취임하는 5월 20일이다. 정권 인수인계도 거의 끝난 셈이다.

차이잉원 첫 행정원장인 린취안무소속(민진당 탈당)이고, 대부분의 요직은 민진당이 차지했으나, 외교부 장관(외교부장)으로 내정된 사람은 리다웨이(李大維)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중국 국민당 소속이다.기사 기사2 리다웨이 관련 링크 중화민국 정치에서는 민주화 이후 한 당이 내각을 독식할 수 없고 야당에게도 최소한 1석의 각료를 보장해야 하는데, 차이잉원은 중국 국민당한테 외교부 장관을 준 것. 사실 린취안 내각에 무소속이 많다. 신임 타이완 성, 푸젠 성 주석도 무소속. 단, 타이완 성 주석인 스쥔지는 원래 민진당 중앙위원이었다. 린취안처럼 내각에 들어가게 되면서 탈당한 것. 전임인 마잉주 총통 때도 대륙위원회 주임(한국의 통일부 장관)은 대만단결연맹 소속이었다. 펑준난[28] 중화민국중앙은행 총재(1998년 취임)도 논란 끝에 유임이 결정되면서 무려 18년동안 중앙은행 총재가 안 바뀌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 중 최장수 총재 기록을 세웠다.(...) 물론 펑준난도 중국 국민당 소속이라 실질적으로 차이잉원 정부에서 국민당도 2석의 고위직을 확보한 셈.

5 2016년 5월 총통 취임 이후

(차이잉원의 취임연설 영상)

연설 전문(중국어) 연설 전문(영어)

5월 20일 총통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차이잉원은 취임식 본행사에 앞서, 전통에 따라 국부 쑨원의 초상화 앞에서 총통 취임 선서를 했다. 동시에 같은 민진당 소속의 쑤자취안 입법원장으로부터 총통의 상징인 옥새 국새를 전달받는 의식도 진행했다. 취임선서 영상.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중화민국 국가를 완창하였다.

이날 차이잉원의 취임연설은 '경제 체질의 전환'(經濟結構的轉型), '사회안전망의 강화'(強化社會安全網), '사회 정의의 공평 실현'(社會的公平與正義), '동아시아 지역질서, 양안관계의 평화 안정'(區域的和平穩定發展及兩岸關係), 그리고 '외교와 글로벌 문제'(外交與全球性議題) 등 5개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국내외의 관심을 집중시킨 양안관계에 대해서는 "1992년 이후 양안이 꾸준히 대화, 협상을 해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92공식에 대한 부정, 인정을 모두 명확히 하지 않는 모호함을 보인 것.

취임식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총 3시간 동안 거행되었고, 식전 행사로 대만의 역사를 요약하는 현대무용이 펼쳐졌다. 여기에는 일본군의 원주민 탄압인 우서 사건, 대만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 1947년의 2.28 사건, 민진당의 기원을 제공한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1990년의 야생백합화 운동, 그리고 마잉주 전임 총통에 정치적 타격을 가한 2014년의 해바라기 운동에 관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외견상 대만의 정치/사회적 민주화 성과를 보여준다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국민당을 공개적으로 디스한 것이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당시 행사 풍경 물론 가짜 대만인진짜 대만인의 땅을 뺏고 진짜들은 가짜를 피해 높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장면은 안 나왔다. 그리고 차이잉원의 취임 연설 후에 소년 합창단, 참석 청중들과 함께 민중가요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함께 부르면서 정점에 달했다..[29]

중국은 차이잉원이 취임사에서 92공식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자 핵심을 우회하지 말라거나 '92공식'을 '92사실'로 대체했다면서 반발했다. 한국에서는 한국-대만 FTA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오는 중이다.


취임식 직후, 린취안(林全) 행정원장(총리격), 린비자오(林碧炤) 총통부 비서장(대통령 비서실장격), 우자오셰((吳釗燮) 국가안전회의 비서장(국가안보실장격) 등 내각 주요 인사들의 임명에 관한 공문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총통 업무를 시작했다.

국방부장으로 예비역 공군 장성 출신의 펑스콴을 임명했다. 징궈 전투기를 비롯한 대만의 항공기 제조사인 한상항공공업(漢翔航空工業股份有限公司)의 사장을 역임한 인물인데, 방위산업의 활성화를 강조한 차이잉원 총통의 정책 의지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현역 고위장성을 퇴역 직후 국방부장으로 임명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전역한지 10년이 넘은 인물을 국방부장으로 임명했다는 점에서 문민통제를 고려한 인사로 평가된다.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하자마자 마잉주 정부 시절 결정된 '중국인 정체성 교육과정'을 전면 폐기하고, 천수이볜 정부 시절의 '대만인 정체성 교육과정'으로 회귀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기사 마잉주 정부의 색깔을 지우는 것은 물론 대만 독립 성향을 취임 직후에 곧바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첫 외빈 회담에서 중화민국이라는 언급을 안 하고 대만 정부(Taiwanese government)라고 언급함으로써 대만 독립 성향을 많이 보이고 있다.기사 이 소식을 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대만 측과의 대화와 연락 기제(메커니즘)를 계속할 수는 없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여기에 중국은 차이잉원 총통 취임에 즈음하여 대만 점령을 가정한 군사훈련도 실시하는 등 차이잉원의 민진당 정부가 분리 독립에 나설 가능성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6년 5월 23일 총통부가 신임 주미대표로 가오스타이(高碩泰)를 임명했는데, 직함을 기존의 '대표'(代表: representative)가 아닌 '대사'(大使: ambassador)로 발표했다.[30] 한국 기사 원래 대표는 차관급으로 파견하는데 이번에 차이잉원이 주미'대사'를 지명하면서 장관급으로 승격시켜 보냈다. 일단은 주재국인 미국은 기존의 '대표' 직함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적인 외교 관계로 규정 및 승격시킬 의향을 드러낸 것. 이는 1979년 미국과 대만의 단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31] 당연히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차이잉원 정부가 취임 직후부터 독립 성향의 행보를 실천에 옮겨나가자 중국 관영 언론은 "대만 신임 총통이 정치 문제에 있어 보다 극단적인 것은 결혼을 안해 사랑과 가족 생활에서 경험하는 감정적 균형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감행하고,[32] 그래서 세번 결혼한 마오쩌둥 주석은 유연히 문화대혁명을 일으킨거구나 <환구시보>[33]"중국은 대만독립 세력에 대해 경각심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수단이 있고 반분열국가법에 따라 이들을 근원적으로 타격할 능력이 있다"고 경고했다."라며 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극단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34] 중국 정부 차원에서도 대만 수출입을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서(검역 강화 형식) 경제 제재에 가는 등, 양안관계 경색은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비슷한 시기에 마잉주 전임 총통이 퇴임 직전 일본의 오키노도리시마 인근에 배치했던 순시선을 철수한다는 보도가 일본 언론으로부터 나오면서, 일본과의 타협 가능성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민당은 물론, 민진당까지 "대일 저자세"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순시선 철수는 없다"고 발표했다.

5월 25일 펑스콴 중화민국 국방부 신임 장관은 입법원(국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버틸지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후의 한 명까지 싸울 것"이라는 군사적으로도 강경한 발언을 했다. 중국보고 배째라를 대놓고 선포한 것. 지금까지 내용이 취임 후 딱 일주일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찾아보면 더 있다

총통 취임 일주일째 되는 날인 2016년 5월 26일에는 기존 중화민국(대만)이 대외적으로 쓰는 명칭인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TPE)'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국제 무대에서 '중화민국대만(Republic of China, Taiwan: ROC(TWN)'이라는 본국 국명을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대만 기사한국 기사 하나의 중국이라는 힘의 논리를 앞세워 '중화민국'이나 '대만' 어느 쪽으로도 국명을 쓰지 못하게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 압박을 스스로 견디겠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행정원이 그렇게 쓰겠다는 것일 뿐 중화민국이란 국명이 바뀐 것은 아니다.[35]

5월 26일 같은 날 장샤오웨(張小月) 대륙위원회 주임(한국의 통일부 장관에 해당)이 자기가 무슨 위원회의 수장인지를 까먹은 채 "중국대륙우리이웃나라"라고 표현하였다. 대만독립이라기 보다는 차이잉원이 예전에 리덩후이 시절에 디자인하였던 양국론(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특수한 관계의 별개국가)에 가까운 입장표현이었으나 기사 이 소식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보도되자 대륙 네티즌들이 장샤오웨 주임에 대한 신상털이페이스북 테러에 나서고, 웨이보바이두 등에서 "'이웃'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양국론'을 뜻한다", "중국은 당신의 이웃이 아니라 바로 조국",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을 뿐"이라는 등의 중국 공산당 입장중화민국 헌법에 충실한 알바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대륙위원회는 불과 9일 전에, 마잉주 퇴임 전이긴 하지만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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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30일에는 동부 화롄의 공군 기지를 방문했다. 총통 취임 후 최초의 군부대 시찰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나는 3군 총사령관으로 지금 이후 국군의 영광과 불명예는 나의 영광과 불명예. 앞으로 항상 국군과 함께 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고 국가를 보위할 것"이라며 영토/영공 수호 의지를 밝혔다. 기사 문제는 이 날 차이잉원이 군부대를 시찰하러 간 사이 대만의 사기, 절도 전과가 있는 40대 실업자가 흉기를 들고 총통부 청사에 침입을 시도하는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016년 6월 1일 차이잉원 정부가 TPP 가입 및 FTA 확대를 위해 미국돼지고기 수입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들이 의장석과 발언석을 점거하고 국회 공성전이 벌어졌다.[36] 린취안 행정원장(총리)의 시정연설도 무산.

2016년 6월 4일 천안문 사태 27주년을 맞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이 중국을 전진시킬 수 있다", "대안'(對岸·중국)의 집권당만이 중국 국민의 과거 상처를 없앨 수 있다", "톈안먼 사태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이 영원히 말하지 못할 일로 만들지 마라", "언젠가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양측의 견해가 일치하기를 희망한다" 등의 중국 공산당 비판 논조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대해서는 전임 마잉주 총통도 "중국이 톈안먼 사태를 제대로 평가하면 세계로부터 존경을 얻을 것", "양안 국민 간 거리를 좁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대파를 잘 대우해 양측의 공통된 핵심 가치를 만드는 것"이라며 차이잉원의 중국 공산당 공격을 지지했다. 본격 위 아 더 월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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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4일에는 동북부 이란(宜蘭)현 쑤아오(蘇澳) 해군기지를 방문하여 대만이 독자 개발, 건조한 투오장(沱江)급 스텔스 초계함에 승선했다. 이 자리에서 "국산 군함들의 건조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외교적 방해로 외국산 무기의 수입이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고, 방위산업 활성화를 국내 경제의 부흥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를 반영한 것.

2016년 6월 들어서 대만과 일본 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 기사 셰창팅 주일대표가 일본 식품의 대만 수입 규제한 것을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이에 일본에서도 대만에 교향악단 파견 등을 거론하는 등 본격적으로 대만-일본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이고 있다.[37] 기사

이런 와중에 린취안 행정원장은 6월 3일 "(위안부 동원은) 자원일 수도 있고, 강제일 수도 있다. 여러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여야와 언론을 막론하고 비판이 이어지자 하루만에 "여성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체제 폭력과 사회 구조적 요소로 인해 심신의 자주와 존엄에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며 사과를 표했다. 이러한 대일 저자세 외교 행보에 대해 대만 유력 신문 <연합보>는 "A=0&lu=&vu=&iu=&du= "미국처럼 법령으로 대만에 방위공약을 약속하고, 무기를 판매하지도 않는 일본에 저자세를 취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런 반중-친미-친일 노선을 노골화하자 중국에서는 계속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만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폭스콘을 통한 애플이 부각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대만으로의 무역액을 9%나 줄이고 요우커 방문을 15%나 줄여버리는 등 본격 대만 경제에 대해 조이기 공격에 나서고 있다. 이에 차이잉원 정부는 6월 9일 중국에 진출했던 대만 기업들을 대만으로 돌아오게 하는 추진책을 발표하는 등 "중국은 필요없다"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2016년 6월 3일 총통부가 셰창팅의 주일대표 임명을 정식 발표했는데, 지난 5월의 주미 '대사'처럼 이번에도 주일 '대사'라는 호칭으로 발표했다.[38] 역시나 중국의 반발이 전망되고 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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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에는 일명 '형산지휘소'(衡山指揮所)로 알려진 타이베이의 비밀 군 지하벙커에 설치된 대만군 합동작전지휘센터(聯合作戰指揮中心)를 방문, 중국의 군사 동향을 현장에서 보고받았다. 이날 방문은 총통 취임 이후에 실시된 육-해-공 3군의 주요 부대 시찰을 마무리하고, 중국의 군사적 압력 가중에 대한 대응 의지 표명에 의미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6월 9일 급진 친일단체 회원이 중일전쟁에 참전한 노병에게 폭언을 퍼붓는 사건이 일어났다. # 극우 단체들이 반일 시위를 벌였으며, 국민/민진 양당 지도부도 한 목소리로 비판하면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2016년 6월 18일 취임식에서 중화민국 국가를 부른 원주민 합창단이 중국으로부터 이미 확정되었던 초청을 취소당하자, 자서전 인세 50만 NTD(약 1800만원)을 기부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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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하순부터 취임 후 첫 해외순방으로 중남미 방문에 나섰다.[39] 중간에 마이애미를 경유하면서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경제교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이후 파나마에서 파나마 운하 확대 개통식에 참석했는데, 방명록에 자신을 "대만(중화민국)의 총통"(President of Taiwan [R.O.C])이라고 서명했다. 이에 대해 '중화민국'보다 '대만'을 앞서 강조했다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당 측에서는 자신의 직위를 분명히 하라며 공격하였고, 이에 시대역량측은 중화민국과 대만 모두 국제무대에서 쓰는 명칭인데 무엇이 문제냐면서 반박하였다. 뭔가 바뀐 것 같은데? 한편 이번 방문이 종료된 직후 관련 예산이 다 떨어져 더 이상의 해외순방은 불가능하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어차피 갈 만한 나라도 별로 없잖아 전임 마잉주 총통이 퇴임 직전 순방을 간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고.

7월 1일 중화민국 해군이 훈련을 하던 도중 실수로 초음속 대함미사일 슝펑 3호를 오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사일은 조업하던 중화민국 어선에 충돌해(폭발은 하지 않았다.) 선장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고 8시간 후 사건을 통보받은 중화인민공화국측은 왜 이리 늦게 알렸냐며 강하게 항의했다.[40] 당시 중국은 슝펑 3호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비행할 경우, 대만의 선제공격으로 간주하여 대응 공격할 방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통보가 늦은 이유는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되면서 마잉주 정권 시기의 핫라인이 끊긴 것에 있다.(...) 한편 여기에 대해서는 차이잉원 정권을 궁지에 빠트리려는 계획이 아니었냐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7월 21일 미국 유력신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독립된 국가이며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뷰 직후, 다수 언론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92공식을 정면 부정했다고 보도했는데, 정확히는 '중국이 92공식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라는 기한을 설정했다는 말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만은 이미 매우 민주적인 곳이며, 여론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기한을 설정하여' 대만 정부가 여론을 무릅쓰고 상대의 조건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시한부 조건'에 반대한 것이지, '92공식'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관련 내용. 다만 차이잉원은 92공식을 양안간의 정치외교적 '합의'가 아닌, '과거에 존재했던 논의' 정도로 의미를 희석시키는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중국 입장에선 그 정도 표현도 매우 불만족스럽겠지만.

2016년 7월 26일 중화민국 입법원에서 기어이 민주진보당시대역량의 전원 찬성으로 중국 국민당의 당 재산을 중화민국 국고로 강제 귀속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사. 국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원내 시위까지 했으나 법안 통과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민진당과 시대역량 합쳐서 74명이고 여기서 쑤자취안 입법원장(국회의장격) 한명 뺀 73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으니... 친민당은 기권했다.

2016년 7월 27일 대만 중앙통신(CNA) 등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만민의기금회(台灣民意基金會의 설문조사 결과 지지율이 출범 당시보다 14% 떨어진 56%에 그쳤다고 한다. 50%대면 높은거 아닌가 주요 원인은 정권 출범 이후의 여러 악재 발생, 양안관계 경색에 따른 불안 그거 바라고 마잉주 때 시위하고 차이잉원 뽑았던 거 아니었나? 때문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대해서 전임 국책고문 진헝웨이(金恒煒)은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대선 승리로 과장된 것이며 이것이 합리적인 수준이지만,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같은 설문조사에서 자신을 대만인으로 규정하는 응답이 80%가 넘게 나왔다.국민당 우울 기사.

2016년 8월 1일대만 원주민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400년간에 걸친 정복과 식민화와 관련해 사죄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그럼 우리 땅에서 꺼져"로 반응했다고 한다.

2016년 8월 27일에 치뤘진 지방, 보궐선거에서도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두었지만, 출범 100일에 맞춰 지지도 조사를 벌인 결과 차이 총통에 대한 불만족이 50%, 만족 43%로 취임 이래 처음으로 불만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분석으로 보면 국민당과 민진당의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

2016년 8월 29일에 대만의 천재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오드리 탕을 디지털 부문을 총괄하는 무임소장관 (특정 부처를 관장하지 않는 장관)에 임명했다. 이번에 임명된 오드리 탕은 대만의 최연소 각료이자 세계 최초의 트랜스젠더 장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IQ 180인 탕은 12세 때 학교를 중퇴한 뒤 15세 때 중국어 기사 검색 엔진을 개발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다 24세 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현재는 애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 오드리 탕은 자신은 정부와 시민이 함께 소통하고 싶어서 직책을 맡았으며, 차이잉원은 젊은 시민들부터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젊은 시민들의 민심을 잡고하는 목적도 있다. # 대만이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를 대우하는 것을 통해 소수자 대우에 대해서 크게 발전했는지 알수있는 대목이기도 한다.

8월 31일 중국과의 양안 교류, 협력을 담당하는 반관반민 기구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의 신임 이사장에 톈훙마오(田弘茂)를 임명했다. 천수이볜 정부 시절 외교부장을 역임한 인물이었는데, 같은 시기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었던 차이잉원과 양안정책에 대해 서로 공조했던 점을 반영한 인사다. 당초 중국과의 대화 경험이 많은 쑹추위 친민당 주석, 왕진핑 전 입법원장이 후보로 꼽혔지만, 둘 다 사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 9월 3일 총통부 앞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퇴직 공무원과 교사, 퇴역 군인 14만 5천명이 총통부 앞에 집결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훙슈주 국민당 주석도 이에 참여하여 지지의사를 밝혔으나 차이잉원 총통은 연금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위 주최측은 다음달에도 대규모 시위를 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 해바라기 운동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한편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호화 전용차 구매 계획 역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9월 12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백만 관광산업인 거리 시위'에서 많은 민중들이 '차이 총통은 '92 컨센서스'가 필요 없더라도 우리는 필요하다'라고 외친 것. 이에 대해서 친국민당, 경제 교류를 중요시하는 측은 '현상유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하던가 중국과의 협상에 나서던가. 행동을 해야한다.'라고 주장했고 친민진당측, 대만단결연맹은 '92 컨센서스를 인정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중단해야한다.' 라고 주장했다.

차이잉원 정부 출범 이 후 첫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관한 회담을 개최하였는데,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대만 8개 시·현(縣) 지방자치단체[41]에 한해 경제협력에 나서는 선별적인 혜택을 부여키로 한다. 이는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차이잉원 정부와 별개로 친중 계열 지자체를 선별 대우함으로써 92공식 인정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2016년 9월 29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화민국의 국명 표기를 "타이완 중국(Taiwan, China)"에서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교체하였다. 중화민국 측이 계속해서 국명 변경을 요구해왔으나 WEF 측에서 묵살해왔는데, 차이잉원 총통 취임 이후 대만 정부의 외교 노력이 먹혀든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는 반발이 예상된다. 기사

게다가 민진당 창당 30주년을 맞아 당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중국의 압력에 저항해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며 '탈중국' 노선을 천명했다. # 이에 리커창 총리가 당연히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기사

2016년 10월 4일 나온 기사에 따르면, 차이잉원 정부 하에서도 더 심해지기만 하는(마잉주 국민당 정부를 실각시킨 원동력인) 경기침체와 탈중국 노선에 따른 중국의 전방위적인 외교 압박으로 인해 취임 4개월만에 지지율이 50% 아래로 수직 하락하고 린취안 행정원장이 이끄는 내각(대만은 이원집정부제) 지지도는 30%대로 추락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40%대)보다 하위로 처졌다. 기사 차이잉원 정부 입장에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린취안 내각 성립 4개월만에 내각 총사퇴 안이 민진당 내부에서 나오는 판이다.

이 와중에 중국이 대만의 외교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바티칸과 수교를 위한 물밑작업을 하기 위해 시진핑교황한테 선물을 보내는 등의 행위를 하자 바티칸 - 대만 단교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차이잉원 정부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기사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 대만이 가지고 있는 나머지 20개국의 외교관계 단절 및 하나의 중국 수용이 완성되어 대만의 수교국은 한순간에 제로로 전멸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4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한테 공개적인 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 기사 중국과 대만이 동등한 주권국가 자격으로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 물론 중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2016년 10월 6일 APEC 정상회담 때 차이잉원 본인이 오지 못하는 중화민국의 외교 현실에 따라 쑹추위 친민당 주석(대표)을 대신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기사 쑹추위는 "현재의 양안관계를 밥솥에 비유하면 아직 덜 익어서 뚜껑을 열면 안되는 상황이다. 또한 시간이 덜 됐으니 지금은 그 어떤 추측도 필요치 않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안펑산(安峰山) 중국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대만이 APEC 관련 행사에 참가하려면 'APEC 양해각서 규정'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만이 관계 개선을 취하려는 상대는 일본으로 보인다. 기사

2016년 10월 10일 쌍십절 기념행사 때 중화인민공화국대화 제의를 다시 했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의 반응은 냉담. 또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기지를 착공했다.

2016년 10월 15일 나온 보도에 의하면,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취임 5개월도 안 되어서 40% 아래, 즉 30%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지율이 내려갈 것이라 보이는 중으로, 차이잉원 총통의 정치적 위기가 빨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기사

2016년 10월 18일 태국 국왕의 분향소에 가 조의를 표했는데 영어 국명을 잘못 작성해 망신을 제대로 샀다. 기사 명색이 영국,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아온 사람이 스펠링을 틀렸다는 개인적인 조롱을 넘어,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남향정책'(동남아권과의 관계 발전) 전반이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꽤나 곤혹스러운 일.[42] 게다가 이마저도 "옆에 메모지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보고 베끼는 데도 잘못 적느냐"며 까였다.(...)

게다가 쉬쭝리(許宗力) 사법원장(대법원장 지위가 똑같다.) 내정자가 최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동독, 서독 관계와 비슷한 '특수한 국가 대 국가' 관계라고 밝혔다. 일단은 동독, 서독 관계를 언급한 것 보면 '분단 국가'임은 인정하는 것 같다. 물론 대만 독립까지 가려면 '특수한'이란 말도 빠져야 할 것이다. 양안관계에 더욱 긴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대만 원전들을 2025년까지 폐쇄할 예정이며,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진다고 한다.#

5.1 차이잉원 총통 1기 린취안 내각(林全內閣)(2016년 5월 20일 ~)

추가바람

6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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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一直同在Together & Forever:我們和小英一起走過的旅程(우리들이 차이잉원과 함께한 여정) : 2012년 총통 선거 낙선 직후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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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리비아

  • 중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출생시 호적에 올린 이름은 蔡瀛文이었고 족보에도 그렇게 올라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돌림자인 瀛[51]의 획수가 너무 많아 발음(한어병음: yīng, 웨이드 자일스 표기법: ying¹)이 같은 英 자로 고쳐 호적상 이름은 English 영어 英文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은 English인데 고등학교 때는 영어 성적이 좋지 않아 놀림을 받았다고 하며, 학부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여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을 할만큼, 영어를 잘 구사한다. 차이잉원 저서 '보통사람의 특별한 인생'에 의하면 유학 당시 중국어를 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학 후에 돌아와서보니 주변사람들이 자신의 중국어를 매우 어색하게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 파이완족의 피가 섞여서 Tjuku라는 파이완족 이름도 있다고 한다(출처 / 보존용).
  • 대선 2달 전인 2015년 11월 10일 밤 차이잉원의 페이스북에 갑자기 간체자 댓글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바로 대륙 네티즌들의 공격이었는데, 중요한건 중국 대륙에서 페이스북 접속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 (...) 그래서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이 페이스북 접속을 허용해도 될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소위 '댓글 부대'를 풀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실제로도 1만 명에 가까운 이용자가 중국 대륙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사실 대륙 네티즌들도 "벽"의 불편함을 알기 때문에 VPN도 어느정도 보급되어있고, 중국 네티즌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1만명 정도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그냥 VPN을 사용하는 네티즌이라 해도 해석은 된다. 한편 차이잉원 본인은 '건너편에서 접속한 새 친구들을 환영한다. 대만의 민주주의와 다원성을 마음껏 누리기 바란다.'는 말로 응수. 관련 기사 실제 페이스북 페이지 이후 양안 키배틀의 행태를 보면, 중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 유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보인다. 실제 이곳에서는 빠돌이/빠순이 응징을 빌미로 한류 연예인 포럼을 대상한 조직적인 반달리즘이 비일비재하다.
  • 홍보용 모에화 캐릭터에도 나오지만, 고양이 덕후로 여겨진다. '샹샹', '아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있다고.
  • 2016년 8월 27일. 차이잉원 관련 만화가 나오는데 심하게 약을 빨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중국어 아시는분이 해석바람 [1] 중국어 뿐만 아니라 대만 정치 판도도 제대로 알아야 할듯[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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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부기사에서 국민당 당적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링크 링크2 , 위키백과 영어판, 일어판, 중문판에 해당 기록이 없다. 해당 기록을 가지고 계신 위키러는 추가바람.
  2. 차이잉원 셀프 모에화 캐릭터 이름이 바로 이 별명을 딴 샤오잉이다.
  3. 군주제 포함 최초의 여성 지도자는 잘 알다시피 측천무후 이후 1311년 만에 나온 최초의 여성 지도자이다.
  4. 정확히 말하면 중화민국이 아니라 만주국이다. 다른 반산과는 성격이 다르다.
  5. 2016년 현재도 마찬가지다. 차이잉원의 표준중국어는 발음과 어순 모두 마잉주 전 총통에 비하면 어색하다.(이건 마잉주가 비관화권 출신임에도 표준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중화민국 역대 총통 중 관화권 출신이 하나도 없긴 하다.) 문서 내에 있는 마잉주-차이잉원 ECFA 토론을 봐도 차이가 좀 심한 편이다. 리덩후이보다는 차이잉원이 낫지만 말이다. 확실히 영국-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중국어를 안 쓴게 잔재로 남은듯. 유학은 마잉주도 했는데.
  6. 중국과의 양안관계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한국의 통일부 장관격
  7. 대만의 정부구조는 다소 복잡한데, 쑨원이 제기한 5권분립 원칙 때문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 되지만 대만에서는 행정부 수장은 행정원장이다. 행정원장은 총통이 임명하며 행정원장은 내각을 구성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내각제 국가와 비슷하게 행정원장 이름을 딴 내각으로 시기를 구분한다. 하지만 총통의 권한과 행정원장의 권한이 내각제 국가처럼 명확하게 나뉘는게 아니라서 행정원장은 내각제 국가의 수상과 같은 위치가 아니며 한국의 국무총리와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된다.
  8. 삼통이란 양안간의 직접적인 통상, 통항, 통신을 일컬으며 규모에 따라서 소삼통, 중삼통, 대삼통으로 나뉜다. 소삼통이란 중삼통을 하기 전에 이루어지는 단계이며 양쪽의 푸젠 성끼리의 교류가 중심이다(중화인민공화국 샤먼과 중화민국 측을, 중화인민공화국 푸저우와 중화민국 마쭈를 통해서 직접적인 통상과 바다를 통한 통항을 실현하고, 전세기 형태로 대만과 대륙간의 직접적인 비행항로 설정이 포함된다. 중삼통은 대륙 푸젠 성과 대만, 대삼통은 양안 전체의 교류가 된다.
  9. 거짓말이 아니라, 차이잉원 특유의 직설적이고 똑 부러지게 시원시원하며 영국미국에서 유학하면서 깨우친 합리적인 언변이 중화민국군 측에 어필했다고 한다.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차이잉원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군대식 언어를 썼던 셈이라 중화민국군 측에서도 차이잉원의 말은 잘 들었다고.
  10. 한국으로 따지면 부총리이다.
  11. 아닌게 아니라 빚이 상당해서 정당 지출조차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다고한다.
  12. 당시 차이잉원의 활약은 2004년 한국 총선에서 박근혜가 천막당사 등의 조치를 통해 차떼기, 노무현 대통령 탄핵 파동으로 존립 위기에까지 몰렸던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킨 것을 연상시켰고, 덕분에 한동안 '대만의 박근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참고로 차이잉원은 대만에서 출간된 박근혜 자서전의 중국어판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13. 참고로 중국 국민당 문서 말미에 가면 국민당 중앙위원이 총에 맞았다는 글이 있는데, 바로 이 선거에서 벌어진 일.
  14. 스밍더는 계엄령 해제 이전 대만의 최대 민주투쟁 사건인 1979년 가오슝의 '메이리다오 사건'으로 투옥된 주동인물 중 한명이었고, 1986년 민진당 창당 멤버에 이후 당 주석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부턴 2차례의 입법원 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 당선을 제외하면 제도권 정치인으로는 의미있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
  15. 대만 LGBT계열에선 차이잉원의 인기가 좋은 편으로 일부에선 2016년 총통 당선이 미국 동성결혼 법안 통과에 맞먹는 급의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본인도 동성결혼에 관련하여 찬성하고 있다. #
  16. 리덩후이중국 국민당 소속으로 총통을 지냈지만, 실제로는 친일 대만 독립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17. 정확히는 마잉주 51.6%, 차이잉원 45.6%.
  18. 한마디로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독립 국가라고 명시하는 것. 이는 하나의 중국론과 유사해보이지만, 과거 장징궈, 리덩후이가 내세운 양국론과도 유사하다. 리덩후이는 이미 대만 독립파가 되어 지금은 대놓고 친일과 대만공화국을 주장했고 이번 대선에는 차이잉원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19. 홍콩베이징의 중앙인민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싱가포르 또한 형식적인 민주체제를 갖춘 독재정권이라고 평가받는다. 중국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 굳이 '잘 알고 있다'가 아니라 '무지하지는 않다'로 표현한 이유는 차이잉원이 대륙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은 중국과 사이가 나쁜 민진당 시절이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 다만 중국과 가까운 진먼다오 일대에 한정하여, 여행과 우편, 무역을 자유화하는 '소3통'을 성사시킨 일은 있다.
  21. 1992년에 중국과 대만의 비공식 회담에서 합의된 양안관계 원칙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되, 해석은 각자의 편의대로 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민진당을 비롯한 대만 독립진영에서는 "92공식은 대만인 전체의 뜻이 아닌 당시의 국민당 정권측 의사만 반영한 것"이라면서 수용에 부정적이다.
  22. 현재 대만은 22개의 군소국가 외에는 공식 수교국이 없는 극심한 외교적 고립 상태에 처해 있고, 그나마 도와줄 능력과 이해관계가 있는 미국의 '비공식적' 방위 공약은 <대만관계법>이라는 국내법에 의존하고 있어 구속력이 현저히 적은 데다가, 이미 세계 2위의 군사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코앞에 위치한 것에 비하면 지리적으로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불리한 상황이다. 때문에 아무리 독립 선호적인 민진당일지라도, 현실적으로 중국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23. 토/일 양일 합쳐 20만명에 육박했다. 한국 코믹월드가 토/일 양일 합쳐서 5만명을 넘은 바가 없다.(...)
  24. 참고로 달라이 라마는 1997년, 2001년, 2009년에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1997년과 2001년은 독립 성향이 강한 리덩후이, 천수이볜 총통 시절이었고, 2009년의 경우 태풍 모라콧 피해에 대한 위문 차원이었다.
  25. 약칭 해기회. 대만이 중국과의 양안 대화를 위해 1990년대 초 설립한 반관반민 성격의 재단. 마잉주 정부 시절의 대3통 실현, ECFA 등에 관한 협상도 담당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대한적십자회에 해당한다. 남북 적십자 회담이 남북 정부간 회담으로 처리되니까. 애당초 해협회 - 해기회 양안회담이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협상방식을 따 왔다.
  26. 1999년 창립된 민진당 직속의 싱크 탱크로 당 차원의 주요 정책 공약을 연구, 개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국민당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정책연구기금회(國家政策研究基金會)를 운영 중이다.
  27. 중화 타이베이, 하나의 중국 항목에도 나오지만, 중국은 대만이 주권국가로 표기될수 있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철저히 봉쇄해 왔으며, 이는 친중 성향인 마잉주 총통의 국민당 집권 시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지 민진당의 재집권을 앞둔 상황이다보니, 양안 갈등의 성격이 더 두드러져 보일 뿐인 것이다.
  28. 대한민국 외국인 인명 표기법에 따라 펑'준'난으로 번역명이 결정되었다.(1999년) 실제 발음하고 전혀 딴판인 표기법. 淮(물이름 회)자를 准(준할 준)자로 착각해서 생긴 일이다. 1999년에 이 표기법으로 결정되었는데 바뀔 생각을 안 한다.
  29. 아름다운 대만섬을 칭송하는 노래다. 의미로 따지면 한국의 아침 이슬, 상록수 정도 되는 노래로, 원래 정치색을 갖고 만든 노래는 아니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고, 그로 인해 독재 정권이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메이리다오는 작곡자가 이미 죽은 뒤 유작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작곡자가 정권의 고초를 겪을 일은 없었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당 사람들도 있는데(대표적으로 훙슈주) 그 얘기가 뉴스에 나오면 금지곡으로 지정한 과거 시절의 원죄로 욕 많이 먹는다.
  30. '대표'는 미수교국에 파견하는 인물로 외교관 신분이 아니지만, '대사'는 수교국에 파견하는 외교관 신분의 인물이다.
  31. 그런데 이 일에 관해 총통부 홈페이지는 중국어판과는 달리, 영문 홈페이지에 신임 주미대표를 '대사'로 표기하는 공지 내용을 게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대사' 임명을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며, 주미대표의 '대사' 표기가 일종의 대만 내부용으로 그칠 가능성을 암시한다.
  32. 이런 식의 발언은 역시 미혼 여성인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우호적인 입장과 모순되었으며, 당연히 대만뿐만 아니라 다른 중화권 언론으로부터 "유치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33.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 <인민일보>의 해외판 자매지로 '중국 공산당의 본심'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34. 반분열국가법은 첫 민진당 출신 대만 총통으로 독립 성향이 강했던 천수이볜의 재임 시절인 2005년 중국이 제정했는데, 대만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해 '비평화적' 수단의 동원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35. 그리고 비정치적 단체, 예를 들어 올림픽같은 경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올림픽의 명분적 출전 주체는 중화민국 정부가 아니라 중화올림픽위원회이기때문.
  36. 위의 뉴스 영상에도 나오지만, 단순히 외국산 육류를 수입하는 차원을 넘어, 식품안전(인체 유해성이 의심되는 성장촉진제 검출 돼지) 문제란 점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상황으로 대입하자면, 한미FTA 체결 조건으로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내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37. 당시 일본 교향악단의 대만 방문에는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의 모친도 동행하여 차이잉원 총통과 회동했다.
  38. 앞서 발표한 '주미' 대사건과 마찬가지로 역시 총통부 중국어판 공지에만 나오며, 영문 공지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국내 발표용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39. 대만은 중국의 압력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으로 총통이 공식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중남미, 아프리카, 남태평양의 군소국가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중화민국/외교 참조.
  40. 겨우 미사일 오발사건 가지고 무슨 난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슝펑 3호는 항공모함을 격파할 목적으로 도입된 위력적인 무기다.
  41. 먀오리, 롄장, 화롄 , 난터우, 타이동, 진먼 현. 신베이
  42. 이보다 앞선 1년 전에는 미국 방문 기간에 "(대만(Taiwan)이 아닌) 태국(Thailand)에서 온 지도자"라고 소개받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타이완과 타일랜드를 헷갈리는 건 외국도 마찬가지인듯
  43. 1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문민이다.
  44. 쉬워저는 직전임 마잉주 정부에서 재정부 차관이었다. 마잉주 총통 때의 장관이 물러나자 그 차관을 후임으로 지명한 것이라 마잉주 정부 때와 예산분야에선 별 차이 없을 거라고 관측되고 있다.
  45. 몽골과 중국대륙 소수민족을 담당하는 위원회다. 마잉주 정부에서 폐지가 의결되었지만 차이잉원 총통 들어오면서 폐지가 흐지부지되고 살아남았다. 이 정권이 대륙위원회와 함께 앞장서서 없애야 하는 조직인데.
  46. 중화민국 국적의 해외거주자, 즉 화교에 대한 업무를 처리한다.
  47. 대만 원주민을 담당하기 위한 조직이다
  48. 객가인들을 담당하기 위한 조직이다
  49. 리덩후이 시절에 내각에 있어서 당시는 국민당이었다. 리덩후이가 국민당에서 축출될 때 같이 탈당
  50. 특이하게 이 환경보호서 부서장(한국의 환경부 차관)이 '대만녹당' 소속이다. 한국으로 치면 녹색당 당원이 환경부 차관에 오른 것.
  51. 바다 영. 중국 전설의 3신산(봉래, 영주, 방장)의 하나인 영주를 이루는 글자로 등장하며 무협 세계에서 동영(東瀛)이라 하면 주로 일본을 지칭한다.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준특급까지 가야 나오는 고급 한자이나 의외로 쓰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제주도의 별칭 중 하나가 영주(瀛州)이고 제주도의 명승지 10곳을 영주십경(瀛州十景)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瀛州洞)과 영도구 영선동(瀛仙洞)에도 이 한자가 쓰였다.
  52. 요약 이미지들만 보면 마잉주와의 경쟁을 싸움의 형식으로 그리는 만화 같다. 그런데 밑으로 스크롤해서 캐릭터를 보면 장제스, 주리룬, 훙슈주, 리덩후이, 쑤전창, 황궈창, 천젠런, 천쥐, 심지어는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신조,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에게 까지 약을 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