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 혹은 분류:종교의 하위 분류를 함께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는 기독교를 포함한 각 종교들의 교리에 대해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과학 이론이라고 주장하는[1] 유사과학인 창조'설'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인류의 창조를 다루는 각국의 신화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인류창조신화로 이동해 주세요.
창조설 문서가 따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믿음을 넘어 과학 이론이라고 주장되는 '창조설'에 관련된 내용은 삭제하거나 창조설 문서로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1 개요

創造論, Creationism.
Theologies of Creation(창조에 관한 이론이 아닌 창조에 관한 신학론. 외국 신학서적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본 항목의 본래 뜻에는 이게 더 가깝다.#) 우주 만물은 특정한 존재가 창조했다는 교리이자 신학이론. 즉 과학과 맞먹을려고 하는 창조설과 달리 여기서 설명하는 이론은 과학 이론이 아니라 신학 이론이다.

1.1 이 문서의 제목에 대한 설명

이 문서의 제목은 '창조론' 이다. 진화(the theory of evolution)과 창조(the doctrine of creationism)이 다른 의미에서 사용되는 '론' 이긴 하지만 '론(論)'이라는 한자어는 담론, 공론, 의논, 논문 등의 단어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는 창조론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의 신학적 의미로서의 원어는 Theologies of Creation 이고, 일반적 의미에서의 원어는 Creationism이다. 이는 각각 번역하자면 전자는 '창조에 대한 신학' 이고, 후자는 '창조주의' 정도가 된다. 이 단어들은 '종교적, 신학적 의미에서의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창조설' 문서는 Theory of Creation. 즉 '창조이론' 말 그대로 지금 이 문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일반적인 의미 대로의 '창조론' 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는 '창조과학' 정도가 있다. 이 단어들은 '과학적 의미에서의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오해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단어 '창조론'이지만 일반적으로 '창조론' 이라고 불리며 창조설과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다수 위키니트들은 '특정 존재가 만물을 창조했다.' 라는 관념에 대응되는 단어로서 '창조론'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문서가 작성되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생각하는 창조론의 개념은 창조론이 가진 의미의 일부에 불과할 수 있다.

1.2 창조론에 대한 설명

창조론은 창세 신화로부터 기반하며, 창조 신화를 종교의 교리로서 적용한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창조 신화가 어떠한 '이야기' 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창조론은 '창조에 대한 교훈과 해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신학과 종교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전에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하는 것처럼 세계의 법칙들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현대는 과학이 이를 대체한 상태이다.

과학의 역할 이외에도, 창조론은 '절대자가 세상을 창조한 이유와 방법' 등의 요소를 들어 인간이 살아야 할 방향과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 법칙 등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였다.

1.3 창조신화와의 차이

창조신화와 창조론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를 기반으로 철학 체계가 구성되었느냐' 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신화' 들은 세상이 창조된 이야기를 표현하였고, 세계의 법칙에 대해서 설명하였으나, 사람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철학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였기에 이는 신화로서 취급된다. 반면 기독교의 창조론은 유대인의 창조신화로부터 출발하였으나, 이를 기반으로 중세 시대에 종교 철학이 형성되었으므로 이를 창조론으로 부른다. 이렇든 창조신화와 창조론은 기반은 같으나 발전 정도에 따라 구분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조악한 예를 들어보면, 곰이 쑥과 마늘을 먹어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창조신화이다. 왜냐면 이것은 단순히 신화적 이야기에 대한 전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호랑이, 즉 짐승과 인간의 차이가 괴로움을 참고 인내하는 것에 있으므로 사람은 마땅히 자기절제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이것은 창조 신화로부터 종교적 해석이 가미된 창조론의 형태로 볼 수 있다.[2]

이후 추가로 다루겠지만 특히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한 관점이 합리적인 과학관과 충돌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미리 단군 신화에 덧대 비유하자면, 곰이 쑥과 마늘을 먹어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신화적 이야기로서 어떤 상징적인 비유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톨릭의 창조론에 가깝고[3],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면 실제로 인간이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입장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일부 개신교 교파들이 지지하는 창조론이라고 할 수 있다.

2 종교의 신학으로서의 창조론

2.1 기독교의 창조론

기독교의 창조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대로 성경을 바탕으로 신이 세상과 인간과 동물 등을 각각 만들어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특히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며 과학적 사실과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초기에는 기독교 거의 전체가 창조론을 맞다고 주장하기 위해 진화론을 부정했으나, 애시당초 실제하는 자연을 관찰함으로서 그 원리를 밝혀내는 과학의 영역을,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 방식으로 작성된 기독교의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들어서까지 창조론은 진화론을 부정해왔으나, 과학과 종교의 영역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두 개념이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등장하고, 그리스도교 일부는 창조론을 실체적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관념적인 서술로서 받아들이는 동시에 진화론을 합리적인 과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일부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창조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5]

현재 가톨릭을 기반으로 한 보편교회와 개신교의 입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따로 작성한다.

2.1.1 가톨릭의 창조론

창조론/가톨릭 참조

2.1.2 개신교의 창조론

개신교는 교파별로 창조론에 대한 입장이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는 대체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형태의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으나, 각 교파의 공식적인 입장과 무관하게 진화론을 긍정하는 개신교 신자는 꽤 있다. [6] 실제로 개신교를 믿는 과학자도 많고 그들이 모두 종교적 진리가 과학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국의 경우, 가톨릭와 비슷하게 과학은 과학의 영역에서 현상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그러한 현상이 바로 신앙의 신비라는 식으로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구분하는 개신교 교회도 많이 있다.

여기서는 임의로 개신교의 창조론을 보수적 개신교진보적 개신교이라는 명칭으로 진화론의 인정 여부를 구분하겠다. 원래 개신교의 성격이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를 구분짓는 엄밀한 구분은 진화론의 인정여부는 아니지만, 딱히 적절한 표현이 없어 그나마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창조론/보수적 개신교: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의 입장. 창조설 항목 참조


창조론/진보적 개신교: 진화론을 인정하는 개신교의 입장.[7]

진화론만 해도 관련 논문이나 책이 쏟아지는데, 창조론 역시 교회에서 강의도 하고 책도 권하는 등 신도들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많은 편이다.[8]
여기서 교회측이 내놓는 논리 중엔 진화론에 대해 공부해본 적이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파충류가 조류로 진화를 했다고 치면 그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 생물은 파충류로서의 장점을 버렸지만 아직 조류로서의 장점(비행, 깃털 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인데 이런 '연약한' 종은 중간에 도태되는 것이 맞지 않은가"와 같은 주장은 관련된 과목을 공부해 본 일이 없는 일반인 대다수가 반박을 하기 어려우며, 아예 개념 자체에서 컬쳐 쇼크를 받고 '그런가?'하는 쪽으로 넘어가기 쉽상이다.

양 이론 모두의 내용을 전문적으로 알진 못하고 대략적인 내용만 가볍게 아는 신도의 경우, 머리로는 뭔가 이상하단걸 알아도 교회를 지탄하거나 신앙 생활은 그만둘 생각도 없는데 거기에 대해 반박하자며 진화론을 공부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창조론을 받아들이자니 쉬이 믿기가 힘든 경우 이쪽이 된다.[9] 게다가 교회 내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다간 공공의 적이 되기 쉽상이고 자칫하면 시험을 받느니 뭐니 하며 입장이 곤란해진다.
이 경우 '아몰랑'식이라기 보단[10] '괜히 따지지 않는다.'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개신교 신도들이 전부 그런 것은 절대 아니며, 전공상의 이유로 이미 진화론에 잘 알며 지지하고 있었거나 혹은 스스로 정보를 더 찾아보고 창조론보다 진화론에 기울게 되었지만 신앙을 그만둘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저 묻어두기로 하는 경우도 있다.

각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세계가 창조된 것은 맞지만 창조된 이후 진화가 별개로 일어났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11]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거나, 규모는 작더라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긴 했으나 구전되면서 스케일이 커졌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종교는 저마다 생각하기 나름으로 얼마든지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혹시 상기된 것과 생각이 다르거나 별도의 입장을 가진 위키러가 있다면 추가바람

2.2 이슬람의 창조론

2.2.1 창조된 것들

이슬람에서는 꾸란에 의거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을 알라[12]로 본다. 꾸란에 따르면, 알라는 인간과 우주를 창조 했으며 인간들에게 다른 피조물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신은 천사(43:19), 진(55:15 - 진은 연기 없는 불로 창조), 하늘과 땅(14:19), 태양과 달, 낮과 밤(41:37), 천둥(13:3), 나무, 과일, 곡식과 향기로운 꽃(55:10~12), 수중 생물(24:45) 등을 창조했다고 한다..

2.2.2 이론적 쟁점

이슬람 신학에서 다루는 창조론에서 생기는 이론적 쟁점은 다양한데 그 중 하나는 꾸란에서 '알라'를 배타적인 창조주로 취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있다. 수라 (13:16)의 아래와 같은 구절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러가로되 천지의 주님이 누구이뇨 일러가로되 하나님이라 일러가로되 스스로를 위하여 유용함도 해악도 없는 그분 아닌 다른 것을 보호자로 택하였느뇨 일러가로되

장님과 보는 자가 같을 수 있으며 암흑과 빛이 같을 수 있느뇨 또한 그들은 그들이 만든 우상을 그분이 창조한 것처럼 숭배하여 창조된 것이 그들에게 혼돈됨인가 일러가
로되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그분은 홀로 전능하심이라 - 사우디 국왕역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수라 (13:16).

여기서는 알라와 다른 '샤리크'(타 종교의 신)에게도 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듯한 언급이 있다. 일반적으로 꾸란에서 창조의 능력은 알라(유일신)에게만 귀속되나 이 구절만이 예외이다.

이는 아래의 번역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말하라. 하늘들과 땅의 주님은 누구인가? 말하라. 알라 말하라. 왜 너희들이 그 분(알라)이 아닌 (다른) 보호자를 취했니? 그들 자신에게 유익과 해로움도 주지 못한다. 말>하라. 시각 장애자가 시각 정상인과 동등하냐? 또는 깜깜한 어둠이 빛과 동등하니? 또는 그들이 알라의 슈라카(동반자들, 샤리크의 복수)를 만들어 알라가 창조한 것과

유사한 것을 슈라카가 창조한 것이 알라의 것과 구별이 안 된다는 말인가? 말하라. 알라는 만물의 창조주이다. 그 분은 한 분이시다.
- 공일주, 《꾸란의 이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122쪽

그러나 이는 정통 교리를 따르는 한 심각한 쟁점이 되지는 않는다. 신 자체의 존재론, 또 이에 의거해 신이 이룬 창조의 특성과 꾸란의 존재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할 것이냐가 보다 중요한 쟁점이 되는데,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개진하느냐에 따라 신학의 학파가 무으타질라파, 아슈아리파, 마투리디파 등으로 다양하게 갈리게 되었다.

2.3 힌두교의 창조론

힌두교의 가정 오랜 경전이며 모태인 리그베다(B.C.1500)에 근거한 힌두교 문헌에서는 여러 가지 창조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이러한 베다의 언급을 근거로 세계의 창조 문제를 논하는데 힌두교의 창조론은 매우 신화적이며 창조에 관련된 신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으나, 힌두교에서 정의된 신은 결코 유대교나 기 독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창조자가 아니다. 신은 항상 어떤 사물이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창조하며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부터 창조하지는 않는다. 초창기의 힌두교가 후기 로 나가면서 힌두교의 교리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3.1 일신교적 창조론

  • 초기 리그베다 문헌 : 건조(建造) 또는 출산을 본뜬 원시적인 우주의 창조 설을 담고 있지만 명확한 창조신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프라자파티'가 거론되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 후기 문헌에서는 보다 분명한 언급이 보인다. 우주의 창조신을 '비슈 바카르마'라 언급하며 이 신은 천지를 창조할 때 집을 짓듯이 양팔로 부채질하여 접합시켰다고 한다.
  • '브리하스파티'(기도의 주인)를 창조신으로 하는 찬가에서는 브리하 스파티가 대장장이처럼 만물을 단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찬가에서 '유(有)는 무(無)에서 생기지 않는다.' 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 구절은 이후 철학적으로 중 요한 쟁점이 되었다. 여기의 '무'는 비존재라기보다는 혼돈 상태를 가리킨다.
  • 리그 베다의 내용 중 가장 추상적인 창조론은 우주 개벽의 찬가(10:129)에서 전 개된다. 이 찬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태초에 무(無)도 없고 유(有)도 없었 다. 공계(空界)도 없었으며 그를 뒤덮는 하늘도 없었다…' 이 찬가는 우주의 발생 원인을 중성(中性)의 근본 원리인 절대의 유일자에게로 돌린다.
  • 브라흐마(산스크리트어: ब्रह्मा) 또는 범천(梵天) : 후기에 정리되어 정형화된 창 조의 신으로 비슈누, 시바와 함께 힌두교의 삼주신을 이룬다. 브라흐마는 힌두 철학에서 우주의 근본적 원리이자 최고 원리인 지고의 우주적 정신 또는 존재인 브라만이 인격화된 남신으로 브라만을 상징한다. 브라흐마의 배우자는 배움의 여 신인 사라스바티이다. 브라흐마는 베다에서 프라자파티라 불리기도 한다.
  • 프라자파티 : 브라흐마는 세상을 만들면서 인간의 조상이라고 하는 열한 명의 프 라자파티를 만들었다. 그들은 각각 마리치(Marichi), 아트리(Atri), 아기라사 (Angirasa), 풀라스티아(Pulastya), 풀라하(Pulaha), 크라투(Kratu), 바시쉬타 (Vasishtha), 프라체타스(Prachetas, 다크샤(Daksha)라도도 함), 브리그(Bhrigu), 나라다(Narada)라고 불린다. 브라흐마는 그를 도와 우주를 만드는 데 함께할 사 프타리쉬(Saptarishi)라 불리는 일곱의 현자도 만들었다. 이들 모두는 그의 몸에 서가 아니라 정신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정신적 자식이라는 의미의 마 나스 푸트라스라 불린다. 베다와 푸라나에 실린 신화에서 브라흐마의 작업은 다 른 신들에 의해 종종 방해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한 방해중 어떤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2.3.2 범신론적 창조론

'푸루샤 숙타'(원시 찬가)에서는 범신론적 창조론을 보이고 있다. 원시의 인간 '푸루샤(Purusha)'는 천 개의 머리, 천 개의 눈, 천 개의 발을 가졌으며 신들이 푸루샤를 희생시켜 제사를 지냈을 때 거기서 말, 소, 산양, 양 등이 태어났고, 푸루 샤의 마음에서는 달이, 눈에서는 태양이, 입에서 인드라와 아그니가, 숨결에서 바람 이, 배꼽에서 공계(空界), 머리에서 천계(天界), 양 발에서 대지, 귀에서 방위(方)가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찬가는 거인 해체 신화의 한 예다.

2.3.3 힌두교 창조설의 교의적 발전 : 우주론적 교의

  • 브라흐마 신 : 힌두교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생성, 발전, 소멸을 반복한다. 브라흐마 신이 우주를 생성하고 비슈누신이 우주를 유지, 발전시키며 시바신이 우주를 소멸시킨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우주의 시간도 바뀌어 결국에는 낡은 우 주 가 소멸되고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진다.
  • 기본 교의 : 힌두교는 결국 이러한 창조 신화를 바탕으로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윤회를 근간으로 하는 교리를 발전시켰는데, 결국 인간 역시 우주 안에서 끊임 없이 낳고 죽기를 반복하며 윤회한다. 인간이라 하더라도 다음 생애에는 짐승으 로 태어 나기도 하며 천신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수없이 많은 윤회의 과 정에서 사람은 한 인생을 살면서 쌓은 업(산스크리트어: Karma)에 의해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 다르마에 따른 삶을 살다 죽으면 다음 생애에는 보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난다. 다르마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고귀한 존재라 할지라도 다음 생애에는 비천한 존재로 태어난다. 이러한 힌두교의의 기본 개념들은 대부분 이 후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인도에서 발원한 다른 종교에 도입되었다.
  • 브라만(산스크리트어: Brahman) : 우주의 진리 또는 우주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기도 하다. 힌두교의 최상위 목표는 '참된 나'인 아트만이 '우주의 진리'인 브라 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의 가장 상위 계층을 브라만이라고 칭한 것은 이들이 스스로 우주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업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 아트만 : 생명은 숨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아트만의 원래 뜻은 숨쉰다는 뜻이 다. 한국에서 생명을 목숨으로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숨쉬는 생명 아트만(산 스크리트어: आत्मञ्,Atman)은 '나'를 말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윤회하는 삶에서 지금의 나는 '참된 나'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윤회를 거치는 동안 내가 쌓은 업(산스크리트어: Karma, 業)에 의한 것이다. '참된 나'는 윤회의 과정에서 계속하여 존재하여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나 라는 생명의 본질'을 뜻 한다.

2.4 불교의 창조론

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은 우주만물의 창조신으로서 모든 우주만물이 이 부처에게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이 부처의 응신(應身)이다.

원시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다르마(法)로 여겼다.

  • 연기법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그러므로 연기법을 ‘관계성의 법칙’ 또는 ‘상의성(相依性)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 또는 인연(因緣: 통칭하여, 원인)따라 생겨남의 준말로, '연(緣: 인과 연의 통칭으로서의 원인)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연기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는 《잡아함경》 제12권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거나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거나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다. 저 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닫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해 분별해 연설하고 드러내어 보이신다."라고 말씀하셨다.

연기(緣起)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삼무파다(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ratītyasamutpād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의 준말이다. 한역(漢譯) 경전에서는 발랄저제야삼모파다(鉢剌底帝夜參牟播陀)로 음차하여 표기한 경우도 있다.

프라티트야(산스크리트어: pratītya)의 사전적인 뜻은 '의존하다'이고 삼무파다(samutpāda)의 사전적인 뜻은 '생겨나다 · 발생하다'이다.

연기(緣起),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 즉 '프라티트야 삼무파다'는 영어권에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2.5 조로아스터교의 창조론

3 유사과학적 의미로서의 창조론

유사과학적 의미로서의 창조론, 즉 창조설은 창조론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문서가 분리되었다.
해당 문서 참조

4 인터넷 중 하나

파일:QlOMlGs.jpg

신이 ○○○를 만들 때

"...A를 조금 넣고... B도 약간... C는 정말 조금만 넣어야 하... 으아아아아!"

특정 인물이나 캐릭터의 특징을 묘사하는 방식 중 하나. 비슷한 용법으로는 뇌구조 같은 짤이 있다.

귀요미한 할아버지처럼 생긴 이 누군가를 만들기 위해서 그릇에 정체불명의 재료들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넣는다. 문제는 마지막 재료. 신의 실수나 뜻밖의 사고로 인해, 마지막 재료는 항상 그릇 위에서 엎어버리고, 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비명을 지른다. 쉽게 말하면 이런 상황이다.

즉 여기서 조금씩 들어간 A와 B는 "적당한 수준" 이라고 여겨지는 한 개인의 특질을 의미하지만, C는 누가 봐도 너무 많다고 생각되는 특질을 의미한다. 바리에이션으로는 마지막 C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확 쏟아버리거나, C를 그릇 밖에다 쏟아버리거나,[13] 오히려 A와 B까지도 전부 한꺼번에 쏟아버리는(…) 막장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짤과는 약간은 다르지만 개인의 외모를 평가할 때에도 창조론적인 관점에서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예를 들면 신이 원빈 같은 사람을 창조할 때는 흡사 미켈란젤로처럼 정성을 기울이며 "내 필생의 역작이지!" 라고 중얼거리지만, 평범한 사람을 창조할 때는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TV를 보며 발로 치덕치덕 얼굴을 빚어내는(…) 식으로 창조했다는 것. 관련 짤도 인터넷에 종종 떠돌곤 한다. 참조

5 관련 문서

  1. 실제로는 과학적 이론도, 혹은 과학적 가설도 아니다.
  2. 실제로 이렇게 해석된다는게 아니라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
  3. 물론 그렇기에 실제로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4. 태생적으로 기독교의 창조론은 그리스의 원소설보다도 과학적인 접근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5. 진화론의 "1.6. 진화론과 종교"에 잘 설명되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6. 코리아 리서치 조사 39.6%
  7. 관련 저서로는 다음이 있다. 《신의 언어》,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다윈주의자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예수와 다윈의 동행》,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등.
  8. 다만 정보가 모두 옳은가는 제쳐둔다. 대부분의 교회가 노아의 홍수의 증거라며 방주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발표나 그 모양이 물에 떠있을 때 가장 안전한 형태라는 등의 설교는 하지만 실제 실현이 불가능한 부분이나 방주의 발견이 조작이라는 논란이 있다는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9. 이 경우 '믿음'으로 그냥 믿기로 하면 창조론을 지지하는 부류가 된다.
  10. 창조론이나 진화론이나 양측 다 이런 부류도 있긴 하겠지만..
  11. 유신론적 진화론 참조
  12. 이슬람의 교리상 야훼와 동일한 존재
  13. 이 경우는 도리어 그 개인에게 제발 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특질이 C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