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병

淸州兵

1 개요

호표기와 함께 조조 세력의 특수 병과로 알려진 부대. 청주(淸州)의 황건적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렇게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192년 황건적의 활동이 다시 극심했을 때, 조조연주 구원전에서 청주에서 넘어온 황건적을 토벌하고, 100만 명(가족 포함)의 황건적중 젊은 자를 뽑아 30만 명의 청주병이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 학계에서는 30만 명은 말도 안 되고,[1] 조조군의 군량 기록을 토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3만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황건적 출신이어서 그런지, 심심찮게 약탈을 일삼았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우금이 군법을 엄정히 세운답시고 이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기록을 보면 처벌 수준이 아니라 마치 적군을 토벌한 것처럼 되어 있다.

청주병은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에게 그 병역이 이어졌으며, 조조가 죽을 때까지 28년간 존재했다고 한다.

청주병을 지휘한 장수는 장패가 알려져 있다.

3 창작물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는데, 그 중 삼국지 10에서는 오리지널 부대로 등장하며, 오로지 조조의 세력에만 귀속된다.

삼국전투기에서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과 함께 최강의 특수부대로 언급되며 얼굴에 특수분장을 하는 병졸로 그려진다. 정확히는 브레이브 하트에서 묘사되는 대청 특공대로 보인다. 조조가 연주 구원전이 끝난 뒤 하후돈에게 지휘를 맡겼으며, 작중에서 우금, 장패의 지휘를 받기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조가 사망한 뒤 스스로 군을 떠나는 모습이 나온다.

창천항로에서는 규모가 연의 설정 그대로 황건적 출신 백성 100만에 정병 30만으로 나오는데, 처음 조조의 성을 공격할땐 황건적 장로 여러명이 지도했으나[2] 조조와의 대담에서 진의를 파악하고, 자신들의 군대가 조조의 밑에서 싸우겠다는 계약을 한 이후 모두 자결을 한다. 관도 대전에서 원소군을 도륙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등 연출로 보면 그야말로 조조의 비밀무기라는 느낌이 든다. 조조 사후에는 그대로 자진해서 해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나온다.

화봉요원에서 십상시를 깊이 증오한다는 설정이 붙었다.
  1. 원소, 유표 군의 잔당을 합친 적벽대전에 참전한 조조군 총 군세도 30만을 넘기가 힘들다고 한다. 100만은 허풍. 연의에서도 조조군 81만을 100만으로 불려서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으로 나온다.
  2. 이때 마치 도술로 구름을 타고 몰려오는 것 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연기를 피우고 병사들로 만든 인간 탑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