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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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왠지 학자같은 포스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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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이름최희암(崔熙岩)
생년월일1955년 12월 2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북도 무주군
출신학교휘문고-연세대학교
포지션가드
신체사이즈177cm, 82kg
실업입단1977년 현대전자 입단
소속팀현대전자 (1977~1982)
지도자연세대학교 감독 (1986~2002)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감독 (2002~2003)
동국대학교 감독 (2005~2006)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감독 (2006~2009)

1 소개

한국의 농구인이다. 1955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태어나서 휘문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 선수 시절

1977년 현대전자 남자 농구단에 입단하였으나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1982년 은퇴하였다.

3 지도자 시절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해 중동에서 일하다가 귀국해서 삼일중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와중인 1986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농구부의 김동원 감독이 갑작스레 물러나자 감독대행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여 정재근, 이상범, 오성식, 문경은, 이상민, 김훈, 우지원, 서장훈, 황성인, 조상현 등의 선수를 거느리고 연세대학교 농구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의 감독 커리어에서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연세대학교 감독 시절 그는 철저하다못해 극단적인 분업 농구의 신봉자였다. 이 시스템 하에서 연세대 선수들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분담하며 무시무시한 포스를 발휘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선수들은 자신에게 특화된 역할 이외에는 큰 발전을 보이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슛하는 기계 취급을 받던 문경은우지원. 또한 고교시절 194cm 장신가드로 대활약하며 당시 국대 장신화에 목매던 농구계가 기대한 유망주 김택훈을 파워 포워드로 전향시킨뒤, 단순한 리바운드나 수비만 맡기면서 또한 에이스킬러 역할을 하기도(...) 결국 전체적 기량을 퇴보시킨 과오도 있다.[1]

이후 2002년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현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강동희, 김영만 트레이드와 우지원 영입 등의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색깔 지우기 작업으로 비난을 받았다. 감독을 맡자마자 실업 기아자동차 시절부터 팀의 주축이었던 중앙대 출신들을 모두 정리하면서 사실상 팀을 공중분해시키고 그 자리를 자신의 제자들인 연세대 OB들로 채워버린 것인데 결과는 폭망이었다. 2002~2003 시즌에는 6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3~2004 시즌 초반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리고 그 시즌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는 시즌 꼴찌를 하였다.

이후 야인으로 있다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동국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8~2009 시즌까지 팀을 지휘하였다. 단 이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성적이라서 그런지 전자랜드팬들에게는 존재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편. 로 말아먹은 포스가 너무 쎄서 말이지.

4 지도자 은퇴 이후

이후 전자랜드의 계열사인 고려용접봉(KISWEL)에서 스카우트되어 중국 지사장으로 갔다가 2014년 고려용접봉 사장으로 영전하면서 귀국하였다.[2]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간만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에서 '그 전엔 연대 감독이었는데 지금은 고려XXX 사장으로 있습니다'라며 셀프디스(?)를 했다.

5 여담

전성기였던 연세대 감독 시절 경기때 보여주던 학자풍의 인자하고 침착한 이미지와는 달리, 연습과 훈련때만큼은 욕설과 구타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다. 연세대 체육관에 농구부 연습을 보러갔다가 최희암이 선수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마치 지킬과 하이드같다며 쇼크받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 그 천하의 서장훈조차도 입학 직후 최희암의 폭언과 기합을 견디다못해 '차라리 농사나 짓겠다'며 농구부를 무단 이탈했을 정도였다.[3] 다만 경기때는 나름 선수들에 대한 배려로 절대 욕설과 손찌검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당시만해도 대부분의 대학농구 감독들이 경기중에도 욕을 입에 달고 작전타임때 선수들에게 방송카메라 앞에서도 대놓고 폭력을 행사하는게 흔했던 시대라는것을 감안하면 그렇게라도 배려해준게 이례적이었다고 봐야할지...
  1. 후에 김택훈은 프로에 들어오고 몇년뒤 다시 가드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지만 나이도 30대가 된데다이미 파워포워드 역할을 한지가 오래되어 더 어정쩡하게 되어버렸다. 김택훈의 기량퇴보는 골수 농구팬들이 최희암을 제일 싫어하는 이유중 하나.
  2. 정확히 말하면 전자랜드의 모기업이 고려제강이다. 고려제강그룹 산하의 계열사 중에 전자랜드가 있는 것. 흔히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대기업 계열사 사장단이동 형태라고 보면 된다.
  3. 서장훈의 경우 연세대로 진학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최희암의 인자해보이는 이미지였다고 회고했을 만큼 그 충격이 더더욱 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