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융(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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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融

1 개요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맹획의 아내, 대래동주의 누나, 삼황오제 축융의 후예.

2 연의

축융은 비도의 명수로 비도를 잘 던져 백 번 던지면 백 번 다 겨눈 바를 맞혔다고 한다. 축융은 한창 촉군에게 발리던 남만군의 남자들에게 "사내가 되어 어찌 그렇게 슬기가 없냐"고 꾸짖으면서 한낱 여인이지만 당신을 위해 나가 싸우겠다면서 종족 맹장 수 백 명과 힘을 조금도 빼지 않은 동의 군사 5만을 이끌고 은갱동을 나와 촉군과 맞섰다.

촉군의 장억과 싸우다가 달아나는 척 하면서 비도로 왼팔을 맞춰 떨어뜨려서 사로잡거나 장억에 이어서 말이 밧줄에 걸려 넘어진 마충을 사로잡는 등의 촉군을 개발살내는 활약을 보여준다. 이 때 붙잡은 장억과 마충의 목을 곧바로 베라고 했지만, 맹획이 "제갈량은 날 다섯 번이나 놓아줬는데, 그랬다간 쫌생이 소리 듣겠어"라고 해서 살려둔다.

후에 조운위연의 격장지계에 걸려 마대가 밧줄을 쳐놓고 매복했다가 축융부인이 오면서 줄을 당겨 걸어 넘기자 말에 굴러 떨어져서 붙잡혔으며, 포로가 된 뒤에 풀려난다. 이 때문에 이후의 창작물에서는 묘하게 '조운 > (넘사벽) > 위연 > 축융 > 장억 = 마충'같은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 솔직히 맹획보다 강해 보인다(…).

맹획과 함께 여기저기 떠돌면서 촉군과 대항했지만, 그 뒤로는 남편 따라 다닐 뿐 특별히 출전은 하지 않고 활약상이 없다. 병력이 없어서 그런지.

맹획과 함께 번번이 실패하고 일곱 번 용서받은 뒤로는 심복한다. 이 때 맹획은 항복의 뜻을 표하기 위해 모든 종족 무리와 함께 윗옷을 벗어 맨살을 드러냈다고 한다.[1] 물론 축융부인도 함께 항복했고, 이를 본 제갈공명은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껄껄 그렇게 할 것까진 아닌데 허허 껄껄껄

3 정사

정사에서 모티브로 추정되는 여성은 찌에우 부인이다.

삼국시대사섭 사망 이후 베트남은 오나라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찌에우 부인(조구)은 오빠를 따라 오나라에 대항하는 봉기에 합세하다가 비록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용맹하여 항쟁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찌에우 부인(조구)은 직접 코끼리를 타고 전장을 누볐고 전술에 능해서 6개월이나 오나라의 군대를 격파했다. 오나라의 육윤은 조구가 젊은 처녀임을 이용하여 병사들에게 조구 앞에서 나체로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조구가 이를 보고 부끄러워서 당황하자 육윤은 이 틈을 타서 전투에서 승리했고 패배하여 막다른 길까지 몰린 조구는 23세의 나이로 자결했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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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로 이는 고대 중국에서 사죄하는 예법으로, 다른 방법으로는 '등에 회초리/채찍을 가득 메고 가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