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親朴[1]

친박비박
진박(眞朴)가박(假朴)멀박(멀어진 친박)
원박(原朴)복박(復朴)반박(反朴)
홀박(忽朴)범박(汎朴)탈박(脫朴)
강박(強朴)온박(溫朴)짤박(짤린 친박)
옹박(擁朴)신박(新朴)찍박(찍힌 친박)
월박(越朴)종박(從朴)친이(親李)
용박(用朴)쪽박(쪽朴)
친박과 비박의 분류

1 개요

21세기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왕당파, 카오스 로드

자유당의 재림[2]이자 보수의 경기동부연합[3][4]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집단

박근혜측근 정치인들로 구성된 집단을 뜻하는 말. 비판자들에게는 '박근혜의 호위무사, 내시, 십상시[5], 간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친박과 반대되는 세력은 바로 비박('非朴', 대통령 측근이 아닌 사람)이다. 비박 중에서도 박근혜를 적대하는 사람이 반박(反朴)[6], 박근혜에게 찍힌 사람이 찍박(친박근혜에게 찍힌 인사)이다.

친박계가 몇 년 동안 유지되면서 별별 박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 측근이었다가 이를 벗어난 탈박(脫朴)[7], 친박에서 비박으로 돌아섰다 회개와 용서를 받고 다시 돌아온 인물을 돌박 혹은 복박(復朴),[8] 이외 친박이었다가 짤리거나 멀어진 사람을 이르는 '짤박', '멀박'[9] 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새로 친박계에 영입된 사람들을 두고 신박(新朴)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박 대통령이 2015년 진실한 사람이란 표현을 쓴 이후 20대 총선에선 '진실한 친박' 또는 '진짜 친박'이란 느낌의 '진박(眞朴)'Real Park이란 용어도 나와 각종 풍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친박 관련 용어들을 정리한 기사도 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17년 3월 10일 탄핵이 인용되면서 구심점을 상실힌 쪽박이 되었다. 탄핵소추 이후 인용까지, 집회를 통해 친박을 지원하며 탄핵에 반대하던 이들이 있었으니 이런 광신도컬티스트가 바로 박사모다.

2 성향

사실 근본적으로 볼때 친박은 정치적 성향상의 분류로 만든 계파가 아니다. 단순히 박근혜 일가와의 친분 및 정치적 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계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성향을 분석하면 대략적인 공통분모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일단 박근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아버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개발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한 추종 성향을 보인다. 반대파나 야당은 모두 종북좌파로 취급해버리는 매카시즘적 성격도 강하게 띄고 있다. 즉, 과거 유신시대-냉전시대의 자유진영 수호논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친박계의 정치성향을 정치적 보수주의 혹은 이념적 보수주의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으며, 굳이 정치적 스펙트럼에 놓는다면 극우에 가깝다.

3 역사

3.1 참여정부 시절

참여정부 시절 친박의 주류로는 박사모친박연대, 그리고 어버이연합이 있었다. 박사모와 어버이연합의 경우, 박근혜 정부 집권기까지 꾸준히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어버이연합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이명박에게 패배하자, 당시 무소속이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게 대선에 출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당시 경향신문이 ‘이회창 지지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어버이 연합’이라고 자신들을 묘사하자 “우리는 박근혜 지지자가 많은 보수단체”라며 정정보도를 요구해 기사가 수정되기도 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 경선을 치르면서 친이와 친박이란 한나라당내 계파정치가 시작됐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었고, 고건 전 총리마저 불출마하면서 열린우리당은 마땅한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이라[10] 한나라당에서 대권후보로 확정되면 바로 대통령 직행이라는 생각에 한나라당내 경선은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친이계 수장이었던 이명박 후보는 자수성가한 기업인 이미지로 다소 권위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박근혜 후보에 비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었다. 대신 박근혜는 한나라당 당원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전면에 나선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무소속 후보들에게 줄줄이 패하며 당원들의 지지가 줄어드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쯤해서 이명박 후보의 요구로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크게 높인 경선을 하는데 실제로 당원 투표는 박근혜가 이겼지만 여론조사를 이명박 후보가 크게 이겨서 대선 후보가 되었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다.

3.2 MB정부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친이계가 당권을 잡았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계 공천 학살'이 일어났다. 자세히는 2007년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의원들을 2008년에 친이계가 당권을 잡자 이방호 당 사무총장을 위시로 해 줄줄이 낙마시킨 사건. 김무성, 이규택, 서청원, 홍사덕, 박종근 등의 친박 중진들이 줄줄이 잘려나갔는데, 이들은 친박연대(서청원 주도)와 친박'무소속'연대(김무성 주도)로 흩어져서 상당수가 당선된다.

그 후 많은 친박계의 정치인들이 탈당해 무소속 출마하거나 당을 만들었다. 이때 박근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탈당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자유선진당에서도 친박 낙선자의 영입을 시도했지만 한명 밖에 못 얻고, 서청원홍사덕을 중심으로 한 상당수가 17대 대선 때 참주인연합으로 등록했다가 미래한국당으로 개명한 정당으로 들어가 친박연대로 다시 개명하는 신박한 정치 기획을 선보인다. 그리고 친박연대에 입당할 경우 복당이 힘들 것으로 판단한 나머지 세력은 김무성 의원을 좌장으로 한 '친박무소속연대'를 결성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두 세력은 선거에서 연대를 하였고 친박연대는 비례대표를 8석, 지역구를 6석이나 얻는 선전을 거두었는데 친이 vs 친박 진검승부가 벌어진 영남권만 보면 당시 친이가 당권을 가진 한나라당이 압승하긴 했다. 친박연대는 지역구 대구 3석, 부산 1석, 경북 1석에 그쳤다. 나머지 1석은 경기. 그나마 친박학살을 주도한 이방호를 낙선시킨게 위안이었다. 이 때 같은 친박 성향 단체인 박사모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제는 참주인연합 때부터 빚만 있었는데 선거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 결국 공천헌금을 받게 되었다는 것. 과거에는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헌금'을 내고 공천을 받는 관행이 여야 막론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얄짤없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결국 돈을 준 양정례, 김노식과 당 운영비를 요구한 서청원 대표가 기소되어 의원직을 잃었다. 친박 세력은 무소속 출마자를 시작으로 복당했으며 친박연대에는 비례대표만 남았다.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그 의원직은 후순위 비례대표에게 승계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승계규정도 남은 임기일 수라거나 꽤 복잡하긴 한데, 기본적으로 비례대표 의석은 사람이 아니라 당에게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박연대는 미래희망연대로 개명했으며 독자생존론과 한나라당 복당론의 갈등 끝에 지방선거에 불참하기로 되어 이규택 대표가 사퇴하고 미래연합을 만들었다. 이때 친 박정희라는 친박연합이 생기기도 했다. 이들은 놀랍게도 일부지역에서 당선자를 냈지만 이후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춘다. 여튼 미래희망연대는 공천헌금에 대한 증여세 부과이 더욱 늘어났고, 결국 2012년 초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기 직전 합당한다.

결국 한나라당 내에서 마땅한 차기 대선 주자가 없던[11] 친이계는 점차 친박계에게 당권을 빼앗겼고, 2012년 열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번에는 친이계가 공천학살을 당한다. 이후 박근혜는 18대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친이계/비박계 후보 7인과 경쟁하지만 별 어려움 없이 대선 후보에 선출되고 이후 대선에서도 당선된다.

3.3 박근혜 정부 시기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이후 새누리당은 대표에 황우여, 원내대표 이한구, 최경환, 사무총장에 홍문종 등 친박계 인사들이 핵심 요직들을 차지하며 당을 지휘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인기가 시간이 가며 떨어지고,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면서 친박계 일색의 국정운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선거에 출마할 친박계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대놓고 밀어 주고, 이례적으로 새누리당 전당대회[12]에 참석하여 친박계 서청원 의원[13]에 대한 지지를 암묵적으로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인지 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 친박계가 상당히 밀려났으며, 당의 대표최고위원에도 비박계인 김무성 의원[14]이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친박계는 서서히 당의 주도권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의 원내대표는 여전히 친박계인 이완구 전 충남도지사[15]가 맡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아주 나쁘진 않아서 김무성 대표도 대표 취임사에서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당대표가 되겠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웬만하면 청와대와 친박계와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하여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행보를 보이곤 했다. 이후 김무성 대표가 7.30 재보선과 4.29 재보선을 모두 새누리당의 승리로 이끌며 새누리당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올라서고, 이완구 원내대표가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원내대표직을 두고 원조 친박이었다가 비박계로 돌아선 유승민 의원이 친박계 이주영 의원을 꺾고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비박계가 당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이주영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에 원내대표 후보로만 세 번 출마했는데 모두 졌다.

3.3.1 성완종 게이트

게다가 경남기업의 창업주이자 새누리당의 국회의원이었던[16]성완종 회장이 친박계 핵심 인사들에게 여러 차례 뇌물을 주었고, 2012년 당시 대선에도 본인이 부정한 대선 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밝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면서 친박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 일로 국무총리에 오른지 얼마되지도 않았던 이완구는 바로 국무총리직에서 떨어져 나갔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게 된다.

3.3.2 국회법 개정안 파동

그러나 이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2015년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소위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대놓고 비박계인 유승민 원내대표를 직접 공격하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초반에는 친박계가 비박계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고, 유승민 원내대표(입법부)가 박근혜 대통령(행정부)에게 과도한 간섭을 받아 억울하게 당한다는 여론이 강했고, 김무성 대표도 사실상 유 원내대표를 지키려고 해서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할 뚜렷한 방법이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점점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는 쪽으로 기울었다.

거기에 김태호, 이인제 등 비박계 중진[17]들이 여럿 동참하면서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진사퇴한다. 특히 이때 나팔수 역할을 자임한 김태호는 이후 대표적인 신박으로 불린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 이후에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비박계 인물들을 앉히는 대신, 공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 사무총장직[18]에는 친박계를 앉히기로 함으로서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일단 보기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하지만, 두 번의 총선 정국에서 서로를 공천 학살했던 전적이 있는지라 이후 20대 총선에서 제3차 공천 학살이 일어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3.3.3 20대 총선

20대 총선을 진박, 비박 타령하다 쪽박 치며 새누리당 참패로 이끈 주범 어디서나 트롤러들이 문제야

공천심사위원장에 친박계 인사인 이한구 의원이 앉으면서 공천 과정에서 친박 대 비박의 힘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공천살생부 논란으로 비박계가 궁지에 몰리는가 하면, 뒤이은 친박계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대표 욕설[19] 파문이 이어지며 다시 친박계가 뒤로 밀리는 등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결론적으로 20대 총선에서도 친박에 의한 비박계 공천 학살이 일어났으며, 그나마 비박계 중 김무성 대표의 측근들은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친이계와 친유승민계를 비롯한 비박 인사들은 대거 탈락했다. 그나마 막판 김무성 대표의 당직인 파동으로 이재오, 유승민, 김영순 후보의 지역구에는 새누리당이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인사들은 얄짤없이 공천 학살을 당했다. 참고로 이런 행태는 대구에서도 불만이 컸으며 이를 안 새누리당은 사죄 퍼포먼스[20]를 했지만 이미 민심은 폭발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결국 야권 분열로 완벽한 어부지리 상황이 조성되어 151석 이상은 기본이고 180석에서 운 좋으면 200석 이상까지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았던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의 공천권 다툼과 박근혜 대통령이 대놓고 친박을 지원하는 역대급 추태를 벌인 대가로 과반 의석(151석 이상)에 한참 못 미치는 122석을 얻는데 그쳤다. 일부 보수성향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해 2여2야가 된 지역도 있지만 현실은 텃밭인 PK조차 대거 내줬을 정도니 빼도 박도 못하는 대참패.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되는 레벨을 넘어 급기야 100석 이상만 얻어도 성공이라고 했을 만큼 패색이 짙었던 더불어민주당에게 123석이나 내줘 원내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기고[21], 김을동, 이인제 등 당 지도부 인사들과 오세훈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대선 주자급 후보들까지도 줄줄이 낙선하는 참사가 벌어진 건 덤.

야당이 국회 다수파가 되었으니 박근혜정부가 추진해온 노동개혁, 테러방지법,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안 등의 정책도 존폐 위기에 놓이는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대재앙이 벌어지게 됐다. 노동개혁은 이견이 있지만, 테러방지법과 국정교과서, 그리고 위안부 합의안은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의 입장이 크게 고치거나 폐기한다는 데 확실히 일치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위 4가지 정책에 대하여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새누리당의 총선 전 과정을 총괄했던 계파이니만큼 총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하는 터라 잠시 몸을 추스리고 행동거지도 조심하는 듯 보였지만 비박계 공천 학살로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수가 비박계보다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지라 비박계가 다시 치고 올라오는 것도 녹록치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일단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중도성향의 정진석 의원이 당선되긴 했지만 정진석 의원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의 비박계 중심으로 짜고, 혁신위원회 수장에 강성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을 지명하면서 당권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가 다시 들고 일어난다.

바로 2016년 5월 17일,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를 인준받기 위해 열린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서 친박계가 집단 불참한 것. 바로 전날엔 친박계 초재선 의원들이 김용태 혁신위를 재고해달라며 원내대표에게 집단성명을 내는 막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의원들에게 전화까지 돌려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방해 행위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나 결국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는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사태에 이르고 만다.

이에 김용태 의원은 친박을 비토하면서 혁신위원장 자리를 사퇴했고, 비박계는 '친박계가 (당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를 벌였다', '양아치 패거리 독재 정당'이라는 소리까지 하며 크게 반발하고 나서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모양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칩거를 끝내고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형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새누리당의 내홍은 수습이 되어가는 듯 보였지만, 이 비대위가 탈당 무소속 의원들, 특히 유승민 의원까지 모두 복당시키기로 하자 여기에 친박계 의원들이 또다시 집단 반발을 일으키면서 아무는 듯했던 새누리당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다만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서청원 의원이 비대위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드러내면서 혁신 비대위의 복당 결정을 친박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지난 전국위원회 무산 사태도 있고 하니 여론을 의식한 탓인 듯하다. 대신, 복당 실무를 처리했던 친이명박계 권성동 사무총장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고 있다.

친박계의 요구를 권 사무총장과 비박계는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가 결국 권 사무총장이 사퇴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친박계인 김태흠 사무부총장도 함께 경질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봉합되나 싶었던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은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2016년 7월 18일에는 친박계의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윤상현 의원이 경기도 화성시 갑 선거구에 한 번 당선된 적이 있고, 고로 20대 총선에서도 이 지역에서의 출마를 준비하던 친이계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출마 지역구를 다른 곳으로 바꿔라. 대통령의 뜻을 내가 안다. 바꿔주기만 하면 '친박 인사'로 만들어서 본선 진출을 보장하겠다.

내가 별의별 것(약점)을 다 갖고 있으니 말 들으라'는 식의 협박과 회유를 한 것이 녹음된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최경환 의원도 이 협박성 회유를 같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화성시 갑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은 친박계의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다. 즉, 서청원 의원이 그 지역에서 당선되기 전에 이미 18대 총선에서 해당 지역에 당선된 적이 있었던 김성회 전 의원이 만에 하나라도 경선에서 서청원 의원을 이길까봐 출마 지역구를 바꾸라고 압박한 것이다.

결국 김성회 전 의원은 지역구를 바꿔 출마하였지만 경선에서 패해 결국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사건이 불거지자 친박계 이우현 의원은 '녹취는 남자 세계에서 가장 인간 쓰레기 같은 짓이다"라면서 되려 김성회 전 의원을 비난했다. 지역구를 바꾸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공천 개입이 아니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자꾸 나가려고 하니깐 그걸 옆 지역에 (출마하라고) 아마 최경환 선배나 윤상현 (의원이) 그렇게 양해를 구한 것”이라고 해명해줬다.

3.3.4 8.9 전당대회

당원들 덕분에 구사일생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과 총선 참패, 공천 개입, 보도 개입 등 친박계의 삽질이 엄청난 상황 속에서도 2016년 8월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고 최고위원 5명 중 4명을 휩쓰는 등 친박계가 예상 외의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외부에서 아무리 욕을 먹고 삽질을 해도 일찌감치 비박은 4.13 총선때 공천 학살을 당하면서 소수파로 전락했고, 초선 친박 의원들의 대거 유입으로 친박이 과반수를 넘어 2/3에 이르는 당내 최대 계파가 된데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에 몇몇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대선 가도에 올인하느라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한 비박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의 당 장악으로 현시점의 새누리당은 심하게 말하면 박근혜 사당 수준의 인적 구성을 가진 거대 단일 계파 정당이 되었으며, 차기 대선 구도에서 유일하게 친박에 설 수 있는 후보인 반기문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에 힘이 실리게 되었으며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된 비박계의 분당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당선된 새 당대표이자 계파 청산을 외쳤던 이정현 의원은 "대통령과 맞서는 게 정의라고 생각한다면 여당 의원의 자격이 없다"는 발언을 하는 등 비박계를 향한 견제를 오히려 강화해 이 대표가 말한 계파 청산이 비박 학살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 연유인지 친이계 좌장 이재오 전 의원은 총선 이후 새누리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도를 표방하는[22] 보수 정당을 따로 창설했다. 가칭 '늘푸른한국당'.

3.3.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23] 최악의 흑역사&친박 몰락의 신호탄&새누리당 분당 사태의 원흉

그렇게 친박 위주로 당이 운영되던 찰나에, 2016년 10월 말 박근혜정부 최악의 흑역사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친박은 계파 생존까지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지지층까지 박근혜에게 등을 돌리게 만든 범국민적 분노에 새누리당 친박들은 대부분이 모르쇠로 침묵하거나 최순실은 알았지만 이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인물이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현실도피했다. 하지만 당연히 친박들은 최순실의 존재에 대해 알든 모르든 둘 다 큰 문제에 봉착했는데, 최순실의 존재에 대해 알았다면 그런 인물과 공조하는 대통령 후보자를 정당의 얼굴로 내세움으로써 국정을 농단한 것이고, 최순실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면 자기 계파의 수장에 대한 신상정보조차 알아보지도 않고 대통령 후보자로 내세운 것이다. 즉, 이들은 무능하거나 박근혜와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공범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의 대선을 도와줬다 이후 그녀에게 낙담하고 국민의당으로 자리를 옮긴 이상돈 의원조차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다면서, 친박 의원들이 제17대 대선 당시에도 이명박 후보의 공세가 있었는데도 최순실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친박세력의 몰랐다는 변명에 대해 확인사살을 하였다.# 탈박인 전여옥 전 의원 역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일부 친박들은 정신 못차리고 대통령 옹호를 하려 했으나, 현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에 새누리당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2016년 11월 각종 여론조사 기관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선 새누리당의 텃밭인 TK에서조차 민주당에게 1당 자리를 내줬다. 그동안 박근혜와의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당을 사당화시키고, 안하무인식 갑질행태로 보수세력내에서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던 친박세력이 최대의 위기를 맞은 셈.

비박 계열에서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했고, 친박계의 대통령 심복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책임 추궁 이전에 일단 국정 수습이 먼저라고 주장하며 대표 사퇴를 미뤄 당내의 분열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친박세력이 주도하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총사퇴는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어느 시점에 총사퇴하느냐만 남았다. 게다가 친박세력의 구심점인 박근혜 대통령 또한 국정 동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상황[24]이기 때문에 친박이라는 계파는 사실상 해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와중에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정신 못차리고 11월 5일 촛불집회 당시 골프를 치러가서 논란이 되었다. 골프 칠때 가명을 썼다는걸 보면 자기들도 논란이 될걸 알긴 안 모양이다.

2016년 11월 12일, 6월 항쟁 이후 최대집회인원인 100만 촛불집회가 열리며 성난 민심이 확인되자 비박계는 다음날인 13일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를 모으고, 친박계가 주축이 되어 있는 최고위원회는 조기전당대회를 밀면서 그야말로 한지붕 두가족 형태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제 무엇이 되던, 누군가가 반드시 나가떨어질 처지다.

하지만 친박 정우택 의원은 김무성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자 이를 비판하는 등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사실 탈당 뿐만 아니라 탄핵도 비박계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거론되는 상황.

2016년 11월 17일 특별검사&국정조사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면서 친박과 박근혜정권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2016년 11월 19일에도 전국 각지에서 100만명에 이르는 촛불집회가 열리며 박근혜정권 퇴진을 외쳤다. 심지어 친박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에서도 2만명에 이르는 집회인파가 모여 충격을 주었다.#

2016년 11월 20일 검찰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이에 청와대와 변호인은 항변하며 스스로 약속했던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거부했고, 향후 중립적 특검에서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리고 더이상 버티지 못한 친박과 박근혜 대통령이 상의 끝에 2016년 11월 29일 질서있는 퇴진이란 명목 아래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그 일정에 따라 퇴진하겠다는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고, 새누리당은 2017년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결정하였으나, 피의자 대통령의 시간끌기 개헌 꼼수라는 비판 아래 오히려 국민들 화만 돋구었고, 2016년 12월 3일엔 전국 232만명이라는 역대 최대 촛불인파가 몰리며 국민의 뜻이 대통령 즉각 퇴진에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그리고 비박이 탄핵 찬성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결국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가결되었다.[25] 이는 중립성향 의원 뿐만 아니라 친박 의원 중에서도 일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압도적 찬성으로 친박 지도부는 여러모로 당내 주도권을 많이 잃게 되었다.

2016년 12월 11일, 한동안 잠잠하던 친박계들이 박근혜 탄핵 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회동을 갖고 친박 50명 심야 회동, 모임 결성…김무성 유승민과 결별선언을 하였다. 이 모임의 이름은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으로 공동대표로는 피닉제이인제 전 의원, 김관용 경상북도도지사, 정갑윤 국회의원이 맡기로 했으며 친박계 국회의원 51명이 참여한다. 현재 상황에서 친박이 이런 모임을 결성했다는 것은 난 탄핵 반대파라고 인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알아서 순장조로 들어간 거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덕분에 탄핵반대한 의원들 찾기 쉬워서 낙선운동 전개하기 좋아졌다 일부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선 이들이 그나마 숨은 지지층이라도 기대하고 TK판 자민련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냔 분석도 나왔다.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의 긴급 회동에 참석한 명단은 아래와 같다. 관련기사. 시·도지사를 제외하고 지역이 표시되지 않은 의원들은 비례대표이다.

서청원(경기 화성 갑), 최경환(경북 경산), 조원진(대구 달서구 병), 홍문종(경기 의정부 을), 이장우(대전 동구), 윤상현(인천 남구 을), 김진태(강원 춘천시), 김태흠(충남 보령/서천), 정우택(충북 청주 상당), 유기준(부산 서구/동구), 원유철(경기 평택 갑), 김석기(경북 경주), 박완수(창원 의창), 정종섭(대구 동구 갑), 김정재(경북 포항시 북구), 최연혜, 이만희(경북 영천시 청도군), 윤상직(부산 기장군), 김순례, 민경욱(인천 연수 을), 강효상, 장석춘(경북 구미 을), 추경호(대구 달성군)), 백승주(구미 갑), 강석진(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유민봉, 이종명, 이우현(경기 용인 갑), 박맹우(울산 남구 을), 이완영(경북 고령/성주.칠곡), 이헌승(부산 부산진구을), 김명연(경기 안산시 단원구 갑), 홍철호(경기 김포시 을), 윤영석(경남 양산시 갑), 조훈현, 곽상도(대구 중구/남구), 권석창(충북 제천 단양군), 윤재옥(대구 달서구 을), 성일종(충남 서산/태안), 김성원(경기 동두천 연천군), 박덕흠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 김관용 경북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26]

2016년 12월 16일, 탄핵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진석 전 원내대표를 대신할 새로운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친박계 정우택 의원이 당선되었다. 55표를 득표한 비박계 나경원 의원보다 7표 많은 62표의 신승으로, 국민의 신뢰는 잃어버렸지만[27] 여전히 당내 세력에선 우위에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비박계의 분당 속도도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친박 원내대표 당선에 안도한(?) 이정현 당 대표와 친박 최고위원들은 동일 일괄사퇴했다.

그리고 결국 새누리당 분당 사태까지 이끌었다. 12월 27일에 비박계 29명이 집단 탈당함에 따라 의석수가 99석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무제한 토론도 못하는 상황이다.[28] 한마디로 야4당이 공조하면 어떤 법안이든 통과가 가능한 상황까지 몰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당을 수습하기 위해 인명진 비대위원장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비판하는 분위기이며 새누리당 내부의 강성 친박세력과 청와대도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인적청산, 개혁정책에 반발하는 모양새이다.[29] 결국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새누리당 붕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며 마땅한 대선후보도 없는 상황이라[30] 당을 더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쯤되면 그냥 경기동부연합과 다름없다. 물의를 빚어 놓고 뻔뻔한 태도하며, 그 좀비같은 생존력까지. 진보에겐 악의 축 보수에겐 최악의 트롤러

인명진 비대위윈장이 친박 인적 쇄신을 주장하고 실제로 이정현 전 대표와 정갑윤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탈당 하기도 했으나[31]서청원, 최경환 같은 친박 핵심 세력들은 탈당을 거부해 새누리당이 개혁보수신당에 이어 또 분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4 박근혜 파면 이후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됐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서 개명한 자유한국당 안에서 친박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삼성동계, 새누리당(2017년)를 결성하는 등 친박 자체는 파면 전과 딱히 달라지지 않았고 계파 보스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신분은 민간인이여도 친박의 등뒤에서 정치력를 가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강성친박 김진태가 지지율은 홍준표에게 밀리지만 나름 선전하는 등 박근혜의 5% 콘트리트 지지층도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2017년 4월 재보궐선거 상주시ᆞ군위군ᆞ의성군ᆞ청송군 지역구에 친박계 김재원 전 의원이 공천됐다. TK지역에 농촌,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선거인 만큼 보수후보에게 유리한 곳인데 만약 바른정당 후보에게 밀린다면 현 자유한국당과 친박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인 TK판 자민련조차 힘든 일이 될 듯 하다.

4 명단

2016년 기준 서청원(8선) 의원이 맏형, 최경환(4선) 의원이 계파의 좌장으로 불린다. 다만 이들의 실제 영향력이 가장 커서라기보단 현재 친박계 중에서 당내 서열이 가장 높기 때문에 맏형, 좌장 취급해주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서청원 의원은 20대 국회 기준으로 무려 8선 의원으로 현역 국회의원들 중 최다선이다. 18대에서 당 운영비 35억 원을 비례 1, 3번에게 받은 것이 걸려서 당선 무효가 됐지만(...), 어쨌든 8선 의원으로 취급한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 친박 주요 인사로는 이정현 의원(3선), 윤상현 의원(3선)[32], 감별사 조원진 의원(3선), 홍문종 의원(4선), 유기준 의원(4선), 김광림 의원(3선), 이장우 의원(2선), 김태흠 의원(2선), 김진태(2선) 의원, 원유철 의원(5선)[33], 민경욱 의원(초선) 등이 있으며 의외로 바둑기사 출신인 조훈현 의원(초선/비례대표)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에 이름을 올리거나 표창원 리스트에 작성되거나 하는 둥 친박을 넘어 진박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34] 은퇴한 인사로는 X맨 이한구 전 의원,[35] 이완구 전 국무총리, 홍사덕 전 의원 등이 주요 친박계 인사들로 꼽혔었다. 김태호[36], 이인제 전 의원[37]도 원유철 의원처럼 예전에는 친박계 인사로 꼽히지 않았으나 2015년 유승민 사태 이후 소위 신박으로 분류되었고, 희한하게도 얼마 안 되어 다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청와대 내부에선 과거 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전 비서실장이 있다. 또 동교동계의 중진이었으나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계와 연을 끊고 친박으로 넘어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비서실장이 된 한광옥 비서실장이 있다. 광역자치단체장에서는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서병수 부산광역시장이 있다. 원외인사로는 김재원 전 정무수석,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있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과거엔 친박으로 꼽혔지만, 당선 이후 계파 갈등을 봉합한다고 스스로 '낀박'을 자처하며 여러모로 비박계 손을 많이 들어주어 친박 지도부와 거리를 뒀다. 그리고 2016년 12월 탄핵사태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를 사임했다. 1월 말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조윤선 전 여성부 장관도 친박으로 꼽혔지만, 유승민 의원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정무수석직에서 물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렸다. 다만 다시 신뢰를 회복했는지 2016년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이에 엮여 문체부 장관에 간 경위를 의심받기도 한다. 한선교 의원의 경우는 보통 친박계로 분류되나 간혹 언론에서 비박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8.9전당대회 당시 친박후보로 사실상 이정현 후보가 낙점되어있는 상황에서도 친박계 조언을 무시하고 당대표 선거에 나간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정진석, 한선교는 중립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청년층에서 새누리당/박근혜의 지지가 낮은 것을 만회하기위해 박근혜가 발탁하여 정치적으로 키운 젊은 청년 정치인들이 있었다. 손수조, 이준석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소위 "박근혜 키즈"로 불렸는데, 정치적 업적이나 실질적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선전용 광고모델이였다. 다만 이준석은 얼마 안가 가치관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차이를 보이며 유승민 의원을 두둔하는 등 본인 스스로 멀박이라 지칭하며 친박에서 멀어졌다는 평.

그리고 손수조의 경우는 여성인데다 박근혜 키즈라고 불리니 친박계에서 대놓고 공천을 밀어줘서 20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텃밭인 부산 사상에 2번 연속 공천받았다. 이 때문에 첫번째 출마 때에는 문재인에게 부산 사상을 내주면서 문재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키워버렸고, 과거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었지만 2번 연속 무공천 받은 결과에 빡친(...) 비박계 장제원 후보가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해 두번째로 출마한 손수조를 누르고 당선되기도 했다.[38] 심지어 손수조 후보의 경우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의 적극적 지원 유세에도 불구하고 장제원 후보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후보에게도 밀려 3위로 낙선하며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분위기.

기타 언급되지 않은 친박들은, 대체로 그냥 존재감 없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명단들을 보면 없는게 나을지도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부턴 친박이란 타이틀 자체가 거의 국민밉상급으로 전락해서 대놓고 친박이라고 하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국민을 절망케 한 친박 부역자들' 이 글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2016년 12월, 새누리당내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 구성되면서 사실상의 친박 명단이 작성되었다.

4.1 진박? 진실?

하지만, 상술된 친박내 주요인사들보다도 더 친박내 영향력이 강하다고 꼽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들이다. 이 세 사람을 언론에선 일명 '문고리 (권력) 3인방'[39]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친박 중에서도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었다.

사실 이 세 명의 비서관들은 박 대통령이 98년 보궐선거 당선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인물들로 친박계의 2인자들이라고 불리는 서청원, 최경환 의원보다도 훨씬 '친박 군번'이 높은 인물들이라고 한다. 사실 서청원 의원은 본래가 YS가 데려온 상도동계 출신으로 공화당 - 민정당계 인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때는 박 대통령보다 앞서서 한나라당 대표도 지냈으며, 16대 국회 전반기 때는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장으로 옹립하려고 시도했던 인물로 박 대통령보다도 정치적 영향력이 컸었다. 그리고 최경환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정계에 입문시킨 인사가 아니라, 이회창 총재가 데려온 사람이었다.

즉, 새누리당 핵심 친박들조차 믿지 못했는지 제대로 된 대면보고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했던 박근혜를 눈앞에서 직접 모신 환관정치의 시발점인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박근혜 당시 의원을 처음 보좌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서 이 3인방의 상사였던 사람이 정윤회씨라고 한다. 2014년 세계일보를 기폭제로 국내를 한바탕 뒤흔들어 놓았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도 쉽게 말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떠나 정계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정윤회씨가 실제로는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 곁에 남아 이 문고리 3인방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장관 임명 등 박근혜정부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사건이었던 것. 참고로 정윤회 씨는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비서실장이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전 남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은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다시 회자된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언론을 화려하게 수놓은 끝판왕 최순실씨는 1970년대부터 박근혜 당시 영애와 피붙이나 다름없을 만큼 가까이 지내던 사이였으며, 최순실 씨의 아버지인 사이비 교주 최태민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한 뒤 멘붕에 빠져있을 무렵 '육 여사가 자기 꿈에 나타나 당신을 도우라고 했다'는 사기꾼 스멜이 짙은(...) 소리를 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어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의 관계를 탐탁치 않게 본 모양인데, 오죽하면 노태우 정권 당시 박근혜의 친동생인 박지만박근령노태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저 사람이 언니를 속이고 조종해서 악행을 저지르니 제발 언니 좀 저들과 떨어트려 구해달라는 탄원서를 냈고, 군사작전을 방불게 하는 물리적 구조작전까지 실행 했을 정도.

결국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하여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전 부속/수석비서관은 구속되었다. 심지어 문고리 3인방 등을 비롯한 최측근들을 박근혜가 아닌 최순실이 직접 지휘한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막강한 비선실세였다는 점이 드러났는데,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항목 참조.

4.2 기타

드립 삼아 진박으로 지칭되는 경우도 있다. 정의당 소속인 노회찬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 자신을 대놓고 진박이라고 호칭하며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하였다.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을 충실히 따른다는, 뜻이 들어간 진박이다. 이 문서의 진박과는 오히려 반대 의미의 드립성 발언이지다. 대통령 본인이 한 공약과 오히려 거꾸로 가는 세태 때문인지, 노회찬 의원의 진박 발언은 호응이 많았다.

더민주 김광진 전 의원은 2015년 국군의 날 행사 때 우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서 농담삼아 친박 의원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의전 실수는 아니고 사전에 국회의원들의 나이 및 피선 경력 등을 고려해서 자리를 배치하다보니 일어난 우연이라고 한다. 근데 정황상 실수 맞는것 같다

보이그룹 샤이니민호도 박근혜의 바로 옆에서 "대통령님이 한국화장품을 쓰셔서 피부가 좋다"고 아부성 멘트를 날리는 바람에 친박 연예인 드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당시 청와대 비선의료사건의 핵심인물인 박채윤에게 화장품을 소개받는 자리라는 주요장면이라 민호의 멘트도 최순실게이트 정국 내내 뉴스 자료영상으로 함께 출연하고 있다(...) 다만 민호는 당시 그냥 립서비스를 한 것에 불과하고 게이트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5 비판

'친(親)-'을 붙여 누군가와 친하다는 뜻을 드러내는 정파가 늘 그렇듯, 정파 안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뭉치고, 정파 밖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드러낸다는 평이 많다.

박근혜 정부에게 정정당당하게 비판을 해도, 배신의 정치라고 매도했다. 한때는 동료였던 사람조차 입맛에 안 맞으면, 여지없이 헐뜯는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를 한다는 것.[40] 2000년대 중반 박근혜 의원의 신뢰를 받던 진영 의원의 경우 2000년대 후반 들어 친박이라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이자 친박계 인사들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 2010년 탈박을 선언하기도 했으며, 2016년에는 아예 더불어민주당의 울타리조차 넘으며 당선되었다. 새누리당 내 계파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유승민 의원은 워낙에 스토리가 널리 퍼졌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대통령 눈치 살피기만 급급한 전형적인 간신배 무리들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친박 측에서는 진박 감별사라는 희대의 단어까지 등장하며 대놓고 패거리 정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순수합니다'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또한 '친박'은 박근혜가 중심인 계파인데, 박근혜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이름값이 확 떨어진다. 당장 이들과 대립관계인 친이계는 중심축이던 이명박이 퇴임하면서 힘을 잃게 되어 현재는 사실상 비박의 일환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즉, 현재 권력에 유통기한이 있으므로 새누리당은 차기에도 권력을 창출할 '미래 권력'을 준비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 권력 등장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친박계가 이에 동조하며 '차기 대권 주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면서 후계 구도의 싹을 밟아버리고 있는 상태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을 들자면 김무성, 유승민 등이 있다.

그나마 친박계에서 현재 차기 주자로 내세울 인물이라도 있다면 이런 견제가 유의미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친박계 차기 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없다. 그나마 친박 좌장인 최경환인데, 최경환이 진짜 차기주자로 오를만한 중량감이 있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배신의 정치로 찍히며 팽당한 유승민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박근혜의 의중을 헤아리고 그렇게 발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박세력에서 뚜렷한 대권후보가 자라나질 못한다는 지적. 유력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반기문이 친박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으나, 단정지을 수 없을뿐더러 본인이 대권레이스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불투명하다.[41][42] 고로 친박계에 차기 주자라고 할 만한 인물은 없는데 대통령을 상왕으로 모실 생각이라도 하는건지 오로지 대통령 의중만 살피면서 당내 주자들의 싹을 밟아 쳐내는 것으로, 대안도 없이 당의 미래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어버린다.

새누리당내 비박계 의원, 특히 수도권 의원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데, 실제로 19대 총선에서 강남3구를 제외한 지역구 중에서 서울에서 당선된 의원은 죄다 비박계다. 친박계는 전통적인 우세지역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을 동안에 비박계만 험지에서 고생을 한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당연히 볼멘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박계는 표차가 적은 수로 갈리는 수도권 지역에서 이기기 위해서 "새누리당이 더욱 더 좌향좌해야 된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서울 양천구 을 지역구의 김용태 의원이 대표적이다.[43]

2016년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소위 "진박(眞朴) 마케팅"도 제대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오죽하면 진박 마케팅의 핵심지인 TK 민심조차도 "저건 아니지 않나?" 라고 말할 정도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진박 마케팅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려는 상황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거구호로 내거는 건 상당히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보수 논객으로 유명한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 출연하면서 이런 진박 마케팅을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좀비정치라고 혹독하게 비판을 했다.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야권이 분열된 어부지리 상황 속에서도 "친박과 비박의 공천권 다툼"이라는 역대급 병크로 인해 16년만에 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데다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기면서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이는 공천권 다툼 + 탄핵여파로 수십석을 잃어버린 2004년 새천년민주당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더군다나 이후 총선패배 후유증을 제대로 겪는다는 점에서도 빼다박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8월 9일에 개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결과, 친박계가 대부분의 당직을 독식하면서 친박패권주의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했다. 이는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통해 일찌감치 비박의 싹을 완전히 잘라놓고 난 이후 발생한 결과였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44]

그리고 친박들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후 대부분 자기 몸 사리며 나 몰라라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할 땐 간쓸개라도 빼줄 것처럼 행동하던 것과는 완전 정반대의 모습.[45]

사실 나서도 도리어 국민들 화만 돋굴 뿐이라 딱히 도움도 안되어 나설 처지가 아니기도 하다. 또 친박 중에서도 초,재선들은 딱히 충성도랄게 없기도 하고. 물론 그럼에도 끝까지 친박에 남아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친박은 처참한 종말을 맞을 확률이 높다는게 어째 씁쓸한통쾌한 대목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젠 대중들이 친박으로 남아있어도 이들을 의리있는 충신으로 보는게 아니라, 쓴소리 안하고 아첨만 하다 결국 대통령을 망친 간신으로 본다는게 문제. 특히 각종 억지와 막말로 맹위를 떨친 김진태 의원의 경우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며 국민총궐기를 비하하는 등 제대로 고혈압 어그로를 대중들에게 선사하며 가히 간신 그 이상의 취급을 받고 있다. 저런 사람이 검사였다. 이런 사람도 고위공무원이었는데 뭘 새삼스레... 지역구인 춘천시 시민들이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을 들고 김진태 의원 사무실을 집회행진코스 중 한 곳으로 돈건 덤.

이후 새누리당을 개혁하기 위해 영입된 인명진 비대위원장[46]에 대해 친박계의 좌장인 서청원이 2017년 1월 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쟁이 성직자 인 비대위원장이야말로 악성종양의 성직자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라고 폭언을 퍼붓었다. 그래도 바뀌겠지라는 생각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보수지지자들의 얼마 안남은 희망의 여지를 발로 걷어 차버린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양박, 즉 양아치 친박이라 불리게 되었다.# 홍준표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친박이 아무 이념도 없이 국회의원 한 번 해보려고 치마자락만 붙들었던 이익집단이라는 일갈은 진심 통쾌하다. 하지만 박사모들은 지나가는 홍준표에게 태극기를 손에 들려주고는 자기네를 극찬했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하고 있다.# 이미 이들은 인지부조화에 이른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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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도동계, 동교동계처럼 부른다면 삼성동계가 된다.
  2. 극우라는 이념+시스템 따윈 없는 후진적 조폭정치. 2017년 현재 친박으로 분류된 자들이 소속된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다.
  3. 국가전복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같으며, 정도로 따지면 더 심각하다(이석기 사건의 경우, 강연에서 과격한 발언 및 북한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한 점이 유죄근거가 되었다. 내란음모죄 관련해서 중요하게 입증해야 할 2가지인 1.구체적인 무기확보 실행의지 및 능력 여부 관련에서 입증조차도 없었고, 2.북한과의 연계성 여부 관련도 검찰이 입증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언자체만 놓고 문제가 있다고 인지해 당시 법원은 내란선동죄로 확정판결하게 된 것). 친박을 옹호하는 측은 그들도 원래는 국가를 뒤집을 의도가 없다고 헛소리를 늘어놓지만, 나라는 비상사태를 맞이했고, 의도가 없다는 말도 거짓일 뿐이다. 국정이 멈췄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경기동부연합도 국가를 엎지 못했는데, 친박은 대통령 파면 사태를 이끌어서 대한민국을 파괴했다. "박근혜처럼 나라를 굴리면, 얼마 못 간다."는 사실은 꼬마도 안다. 암군이 강력한 통치권을 쥐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으면 나라가 기운다. 더 놀라운 문제는 박근혜가 무능하다는 사실을 친박도 이미 알았다. "불쌍하니까, 여자니까 지키자, 그대들도 훌륭한 대통령을 낸 적이 없다."는 식으로 어불성설만 늘어놓거나, 본인이 최순실과 엮여있다는 의혹보도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볼 것도 없이 친박들이 계엄령 선포를 언급한 것 자체가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수준이다. 청와대와 군내 사조직 알자회도 한통속이라는 의혹마저 있어서 사안이 심각하다. 더군다나 경기동부연합은 작은 조직이라서 특정한 정당에 악영향을 줬지만, 친박은 대통령에게 엄청 총애를 받은 계파다. 실제로 여당을 집어삼키고,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메이저리티로 자리를 잡는다. 친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까지 한국정치권 최대계파였다. 친박이 저지른 폭거는 대한민국을 끝내 도탄에 빠뜨렸다. 2017년 시점에서는 직접 집회로 나서, 내란을 선동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보였다. 본인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던 경기동부연합보다도 졸렬한 조직이다. 하는 짓은 누가 봐도 경기동부연합인데, 영향력은 남다르다. 경기동부연합은 공권력으로 박살을 냈지만, 이들에게는 공권력이 아군이다. 무엇보다도 친박에 호응하는 세력이 아직도 건재하다.
  4. 팀킬을 했다는 점도 경기동부연합과 비슷하다. 최대 15퍼센트 가까이의 지지율을 올리며 진보계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을 종북프레임으로 뒤엎어놓고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계파갈등을 청산하려고 했던 민중민주주의계열들과 참여계, 인천연합등의 온건 NL들을 당 밖으로 쫓아내어 정의당을 창당하게 만든 것 처럼, 새누리당의 친박들도 그나마 개념있던 보수들을 쫒아내 바른정당을 만들고 종박우파 프레임을 덧씌워 집권을 힘들게 만들었다.
  5. 다만 이 낱말이 신문지상에서 사용될 때는 유력한 국회의원 보좌관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예가 더 많은 편이다. 물론 누가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란으로 십상시 리스트도 오락가락한다.
  6.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가 잘 알려져 있다. 정두언 의원도 마찬가지. 다만 20대 총선에서 둘 다 낙선해 현재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 대신 2016년을 전후로 김용태 의원이 대표적인 반박(反朴) 인사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본인도 새누리당 내에서 가장 중도적, 좌파적이며 지역구인 서울 양천구 을 자체가 보수 계열 정당에겐 험지라서 당의 지역적 기반이자 친박계가 몰려있는 영남, 정확히는 TK 의원들하고는 적대적인 편이다.(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 정두언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서대문 을도 양상이 유사한 편.) 결국 탄핵정국을 기점으로 당내 현역 의원중 가장 먼저 탈당했으며 이 후 비박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바른정당의 창당 멤버가 된다. 이외에도 PK 지역구의 장제원, 하태경 의원 등도 또다른 반박 인사로 꼽힌다.
  7. 잘 알려진 경우로 원조 친박계 인사였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갈라선 유승민 의원 & 김무성 전 대표가 있고, 노인 기초연금 공약 문제로 박 대통령과 갈라섰다가 20대 총선에서 컷오프 되어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 되살아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다.
  8. 다만 사례가 드물어서 그런지 많이 쓰는 용어는 아니다.
  9. 대표적으로 이혜훈 의원과 "박근혜 키즈"로 영입되었다가 바른정당에 합류한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있다.
  10. 당시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여권에선 비노인 정동영과 실세총리 이해찬, 후일 참여계의 수장이 되는 유시민이 대권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이해찬은 잦은 골프 회동 때문에 민심이 좋지 않았고, 유시민은 당내 계파가 약했기에 결국 호남 출신의 정동영이 대선후보가 되었는데, 때문에 사실상 친노의 지원을 받지 못한 반쪽짜리 대선후보가 되고 말았다.
  11. 김태호와 김문수, 임태희가 나섰지만 모두 박근혜에게 압살당했다. 이후 김태호는 친박계로 이적했다.
  12.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을 선출한다.
  13. 2002년 5월부터 2003년 초까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었다. 과거에는 박 대통령보다도 훨씬 높은 서열에 있기도 했다.
  14. 한때는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으나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 수정안을 지지하며 미묘한 사이로 벌어졌고, 19대 총선 때도 낙천하며 갈라졌다. 그나마 대선 동안엔 다시 힘을 합쳤으나, 대선 끝나고 다시 갈라져 완전히 비박계의 대표가 되었다.
  15. 지역구 부여, 청양
  16. 사실 성완종은 자유선진당 출신 인사이다. 합당과정에서 이인제, 이명수 등과 같이 합류했다.
  17. 더군다나 김태호 최고위원은 친이 출신이며, 이명박 정부 시기에 국무총리까지 될 뻔했던 인물이다.
  18. 정당 사무총장은 자금과 인사 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공천에 영향을 주는 모든 부분에 영향력을 끼친다. 황진하 의원은 이 시기까지는 친박이었지만 결국 얼마 못가서 비박으로 갔다.
  19. 사석에서 "김무성 그 새X 죽여버려야 한다." 같은 발언을 했다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것도 총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20. 원래 20대 총선의 새누리당 전략은 대통령의 국회심판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처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국회를 심판해서 새누리당으로 국회의원을 몰아달라는 이야기. 이게 20대 총선 말기로 가면서 친박 VS 비박 대립이 너무 커져서, 친박과 비박의 사죄와 타협을 통한 반성의 정치로 변한다. 국회심판론과 비교하면 천지개벽급.
  21. 후에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주호영 의원 등이 일괄 복당하면서 원내 제1당 자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2016년 12월 27일 비박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99석, 두 자릿수까지 줄어들었다. 180석? 풉 운 좋으면 200석? 풉
  22. 이재오 전 의원은 과거 운동권의 거물로서 한땐 진보정당인 민중당의 주축 당원인 적도 있었다. 그러다 YS정권 시절인 1996년 신한국당에 들어와 보수세력이 되었다.
  23. 다들 알다시피 처음으로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여 파면되긴 했지만, 이 항목은 몰락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본문엔 기술하지 않는다.
  24. 애초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여야에서 나온 거국중립내각안 자체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국가운영의 주체로 전혀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인 것이다. 심지어 하야/탄핵 소리까지 심심찮게 나오는 판국. 그리고 이루어진다.
  25. 재미있는 점은 전체 300표 중 234표는 78% 수치인데, 이는 전날 발표한 모 여론조사의 탄핵찬성비율 78%랑 일치한다. 그래서 국회가 민심을 따른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26.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참여했다는 기사가 있었으나, 본인이 오보라고 부정했다.
  27. 심지어 당 사무처의 신뢰도 잃어버렸다. 친박 억지 충원 논란이 일어난 윤리위 문제로 당 사무처 직원들이 지도부 즉각사퇴를 요구하며 10년만에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
  28.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무제한 토론을 하려면 의원 1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29. 새누리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박사모와 같은 친박 극우단체는 차라리 이석기, 김제동에게 당 대표를 시키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진태, 이우현과 같은 강성 친박들과 청와대인명진 비대위원장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다.
  30. 황교안, 이인제, 김관용 카드가 있긴 하지만 셋 다 반기문에 비하면 파괴력은 한참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나마 여권 잠룡으로 뽑히는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같은 경우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개혁보수신당으로 합류한 상황이다.
  31. 사실 이정현이 친박이라고는 하지만, 친박에서는 비주류 인사이다. 서청원, 최경환 같은 다른 친박과는 따로 노는 편. 동교동계의 박지원을 생각하면 쉽다. 그리고 지역구도 당의 사지 중의 사지이자 민주, 진보 계열 정당의 성지 중의 성지인 호남(전남 순천)이라 당에 남아 있으면 정치 생명이 끝장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운신의 폭을 그나마 넓히기 위해 탈당했다고 볼 수 있다.
  32. 박근혜정부 황태자로 불리며 기고만장했지만, 2016년 3월 벌어진 일명 "김무성 죽여버려" 발언 이후 탈당했고,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20대 총선이 끝난 후 다시 복당되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33. 예전에는 친박계 인사로 꼽히지 않았으나, 2015년 유승민 사태 이후 원내대표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친박 비위를 맞춰 소위 신박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총선에서 참패하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
  34. 조훈현을 영입한 장본인이 원유철 이므로, 이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35. 특히 정계은퇴와 동시에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비박계 공천학살을 주도했다. 그리고 총선을 말아먹었다. 사실 더민주에서 훈련받고 온 특수공작원이었다카더라.
  36. MB 정부 시절 국무총리로 지명되기도 했었을 정도로 원래는 대표적인 친이 인사로 거론되었다.
  37. 이인제 전 의원은 사실 국민신당 이후에 여기저기 떠돈 탓에 사실상 자신의 계파를 모두 잃은 상황이었다. 원유철 의원도 원래는 이인제 의원을 따라서 국민신당 창립 멤버로 들어간 인사였다.
  38. 이때 친박에 맺힌게 많았는지, 장제원 의원은 이후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증인의 위증을 밝혀내는 등 많은 활약을 한다.
  39. 문고리를 잡아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이 세 사람을 통해서만 대통령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나온 표현이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내 주요 인사들조차도 대통령과 연락을 쉽게 할 수 없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
  40. 어디서 많이 봤다면 바로 김정은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김정은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자기 고모부인 장성택을 살해하고, 연설 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만으로 인민무력부장을 총살했다.
  41. 사실, 김문수오세훈이 친박계로 줄을 탔다는 시각도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게다가 총선에서 맥없이 낙선하면서 대권 레이스는 커녕 정계복귀도 힘들어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오세훈은 직후부터 친박과 거리를 두며 비박으로 활동했다. 다만 김문수는 탄핵을 반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친박으로 줄을 섰다.
  42. 그리고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친박이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자 했던 반기문의 지지율도 낮아졌고,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43. 결국 당내 영남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친박내 일부의 권위적, 극우 보수적 발언으로 인해 20대 총선에서 수도권은 37석만 겨우 건지는 대참사를 겪게 된다. 특히 반 새누리 성향이 강한 2040세대가 몰려있는 서울, 경인의 지역구중 서울 근교의 위성 도시권과 최근 급팽창한 신도시가 포함된 지역구들은 거의 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갔으며 심지어 강남3구 마저도 비박계 의원들로 채워졌다. 이는 19대 대선에서도 정권 재창출에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큰데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역대 선거에서 보수 계열 정당이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우위를 보인 적은 1996년, 2008년 실시된 15대, 18대 총선 밖에 없다.
  44. 물론, 차기 19대 대선후보급 의원들이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기 때문에 당권경쟁에서 개입할 이유가 없는 비박계 중진들이 전당대회를 그다지 관심없어해서 소 닭보듯이 생각한 결과이기도 하다.
  45. 원래 이러한 사람들일수록 위기가 터지면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가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능력은 부족하여 연줄로 어찌어찌 정계에 몸을 담았는데 매달고 있던 동아줄이 끊어지려고 하는데 끊어지려고 하는 동아줄을 수리할 능력은 없으니 새 동아줄을 찾기 위해 나몰라라 내빼는, 전형적인 간신의 그것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46.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시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문제있는 행동과 발언들에 대해 융통성없이 지나치게 꼬장꼬장하다고 혹평을 들을 정도로 가차없는 징계들을 자주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던 인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