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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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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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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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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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로
  • 방문 제한, 금지 지역 : 이라크 국경 지역. 이라크는 여행금지국가로서 일반인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월경할 시 여권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는다.

Kuwait-CIA_WFB_Map.png

면적17,820km²
인구2,788,534명(2015 통계)
수도쿠웨이트시
공용어아랍어 (공용어), 영어 (국가어)
정치체제반입헌군주제(사실상 전제군주제[3][4] )
국왕(에미르)사바 알 아흐마드 알 자비르 알 사바
임기2006년 1월 29일 ~
총리자비르 알 무바라크 알 하마드 알 사바
1인당 GDP명목 45,824$(2012), PPP 58,080$(2011)
통화쿠웨이트 디나르
시간대UTC +3
인터넷 도메인.kw

1 소개

중동에 위치한 아랍의 소국이자 국가의 경제기반을 오일머니에 의존하는 국가. 정식국명은 '쿠웨이트국(دولة الكويت, Dawlat al-Kuwayt)'이다. 영어발음인 쿠웨이트(Kuwait)로 알려져 있지만 아랍어로는 الكويت(알-쿠와이트)인데, 이는 근처에 세워진 요새라는 의미다. 수도는 쿠웨이트시(Kuwait City, مدينة الكويت)로 싱가포르, 과테말라 등 몇몇 나라와 더불어 수도와 국명이 일치하는 나라 중 하나다. 국토면적은 18,000㎢, 인구는 약 290만 명이다. 사실상 에미르가 통치하는 전제군주제이지만 일단 입헌군주제의 형태는 취하고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영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작은 크기와 달리 세계적 석유 부국이며, 걸프전과 월드컵 축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라크 전쟁 이후로 막대한 군비를 여기서도 부담하면서 수백억 달러를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백억 달러를 부담해도 경제적으로 아무런 타격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부자 나라다. 인구 백만의 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삼백만에 이르고, 대부분의 성인 남성은 별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많이 받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물론 모든 교육도 공짜다.

20세기 초 영국이 이 땅을 점유하면서 운명이 엇갈리게 되었다. 영국이 강제로 침탈한 땅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보호해달라며 부족들이 자진하여 영국 휘하에 든 것이다. 1961년에 독립하였으며, 막대한 오일 머니로 엄청난 국부를 획득하였다.

1990년, 이라크이란-이라크 전쟁의 실패로 막대한 국가 부채가 쌓여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갖춘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병합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걸프 전쟁을 일으킨다. 소국인 쿠웨이트는 그 간의 전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하게 쌓인 이라크 군에 순식간에 점령되어 이라크에 강점되어 "쿠웨이트주"로 편입되었으며, 당시 국왕이었던 자베르 3세와 쿠웨이트 왕가는 사우디로 도피하였다.

이듬해 미국이 주도한 UN 다국적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 이후 미국의 對이라크 전진기지로 사랑받았다.

옆나라인 이라크, 바다 건너 있지만 꽤 가까운 이란 등 주변국들이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어 그 여파로 은근히 언론보도에서는 묻혀버린 나라. 과거 한국 공군 소속 제58항공수송단 일명 '다이만' 부대가 이 국가에 자리한 미국, 영국 그리고 쿠웨이트가 합동으로 사용하던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미 철군한 상태.

2 경제

3 역사

서아시아의 역사
레바논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아랍에미리트
예멘오만요르단이라크이란
이스라엘카타르쿠웨이트키프로스터키

3.1 고대 ~ 쿠웨이트시의 성립까지

쿠웨이트는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꼽히는 수메르부터 시작해서 고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를 거쳐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 파르티아, 사산 왕조를 거쳐 이슬람 제국시대인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를 맞이한다. 따라서 현대의 국가들 중 쿠웨이트 지역을 지배했던 가장 오래된 국가를 굳이 꼽자면 페르시아 제국의 후손인 이란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을 거쳤다고 여겨지지만 별 의미가 없는게, 쿠웨이트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곳이라 정주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쿠웨이트는 전국토가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어 농사를 짓는게 거의 불가능해 정주민이 거의 없었다. 의외로 비슷한 사막지대라 생각하기 쉬운 이라크 같은 경우는 경작 가능 면적이 800만 헥타르가 넘으며[5], 지금도 500만 헥타르에서 농사가 지어지고 있어 충분한 인구를 지탱해온 것과 비교된다. 다만 쿠웨이트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긴 한지라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던 곳은 아니었던듯 하다.

아무튼 쿠웨이트가 과거에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은 건 맞긴 하지만, 8세기에서 13세기까지에 불과하고 이후 몽골,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된다. 하지만 당시 역사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정식으로 이라크의 영토라고 할 수는 없고, 느슨한 종속관계 정도였던 듯하다. 어차피 이 당시 쿠웨이트에 살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착민이 아니라 사막의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쿠웨이트 민족은 17세기 이후에 이주해온 아니자족(عنزة, `Anizzah)[6] 이 중심으로 사실상 주인없는 땅에 정착한 것과 같다(당시 이 지방의 지배자였던 오스만 제국이 이들의 정착을 인정했다). 지금의 정착된 쿠웨이트 지방은 이 아니자족이 발전시킨 것으로 그 전까지는 떠돌이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던 지역에 불과했다. 때문에 이라크와는 민족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이 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애당초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어차피 이라크도 이 때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였으니까. 그래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인과는 전혀 민족적, 문화적 동질감을 갖지 않는다. 현재 쿠웨이트의 사바흐 왕조(آل صباح)는 이 아니자족의 지도자 가문출신이다. 1752년 쿠웨이트시의 지도자 였던 사바흐 1세가 바스라를 다스리던 오스만 제국의 총독에게 찾아가 오스만 제국 술탄에 충성을 바치는 대가로 정당한 지배자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현재 쿠웨이트 정부에서는 이 때부터 독립국이었다고 주장하나 물론 오스만 제국에서는(그리고 현대 학자들도) 자치령 중 하나로 보았다.

3.2 쿠웨이트의 독립 ~ 현대

이렇게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 되었는데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이 행정구역을 현대적으로 정비하면서 행정구획을 에얄레트(Eyalet)에서 빌라예트(Vilayet)로 바꾸면서 쿠웨이트도 바스라 빌라예트에 속하게 된다. 빌라예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오스만 제국 항목 참고바람. 다만, 이것도 행정구획 상으로만 설정된 것뿐 실제로는 여전히 자치령으로 오스만 제국의 관리는 쿠웨이트에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비록 속령이었지만 자기네들끼리 살아온 쿠웨이트인들이 바스라령에 속하게 되니 당연히 불만이 없을리 없었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오늘날 쿠웨이트 사람들로부터 대왕이자 국부로 불리는 무바라크 알 사바흐(الشيخ مبارك بن صباح الصباح)였다. 무바라크는 쿠웨이트의 지배가문인 사바흐 가문 출신으로 통치자가 되기 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기병장교로 공도 세워 작위도 받고 훈장도 받았다. 그러다가 1896년 계승 과정에서 이복형을 죽이고 쿠웨이트의 통치자가 된다.

무바라크는 1899년 이란에 주재하던 영국 대령에게 찾아가 영국의 보호령이 될 테니 독립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7] 구체적으로는 영국 정부의 승인 없이 외국의 대표자를 받아들이거나 영토를 매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은 원래 쿠웨이트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8] 제 발로 보호령이 되겠다는데,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는지라 콜.

이 협정은 원래 비밀 협정이었으나 쿠웨이트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높아지자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고 괘씸해 했지만, 20세기 초의 오스만 제국에는 골치아픈 문제거리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 그깟 변방 속령 따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1913년 오스만 제국 - 영국 - 무바라크 3자간에 회담이 이루어졌는데 무바라크를 오스만 제국의 총독(kaymakam)으로 인정하고 쿠웨이트를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보나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역으로 인정해주고 1899년 협정도 인정해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과 쿠웨이트의 영역이 획정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이라크-쿠웨이트간의 국경이 된다.

1914년 오스만 제국이 독일의 동맹국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오스만 제국과 싸워라! 그럼 독립시켜줄께."하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아랍인들의 반란을 유도했다. 무바라크도 여기에 적극 참여해 먼저 쿠웨이트의 국기부터 갈아치우고는[9]바스라 속주를 점령하고 오스만 제국을 쫓아냈다. 이 공로로 영국으로부터 '영국 보호하의 독립국'(Independent government under British protection)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게 중요한건 쿠웨이트는 영국의 우호국 대접을 받아서 영국 보호령이면서도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무기등을 지원 받는다. 영국이 전쟁때 이라크의 독립을 약속했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질질끌다가 1932년 독립시켜주고 나서도, 이것저것 간섭하다 이라크인들의 반감이 높아져서 2차 세계대전 때 이라크가 추축국으로 참전한 것과 비교된다.

이후 1961년 영국이 쿠웨이트를 완전히 독립시켜 주면서 현대의 쿠웨이트가 탄생한다. 다음해, 쿠웨이트의 독립은 아랍연맹과 UN의 인정을 받아 국제법적으로도 합법적으로 독립했다. 한편, 쿠웨이트가 독립하자 이라크에서는 쿠웨이트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군대를 보내려 했다. 이에 쿠웨이트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해 영국이 항공모함까지 보내자 결국 이라크도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걸프전이 발생하게 된다.

원래 주말은 목요일금요일이었으나 21세기 들어 서방과의 교류를 위해 목요일을 주말에서 빼는 대신 토요일을 주말에 넣었다.

4 국제관계

4.1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관계

쿠웨이트의 독립이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한 분쟁이라는 것은 쿠웨이트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다시피 쿠웨이트인 스스로가 이라크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로 예를 들면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라크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 내의 소수민족이 되기 때문에 민족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10] 이 같은 사실은 이웃 중동국가들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식민지배에 우호적인 시각을 지니지 않은 아랍연맹조차 쿠웨이트의 독립을 공인해 주었다.

때문에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라는 주장은 국제법이고 민족적, 역사적 동질성이고 상관없이 800년 전에 우리땅이었으니, 무조건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그나마 이스라엘은 '벨푸어 선언'이라도 있었지, 이건 완전히 생떼와 같다. 이런 논리라면 몽골터키도 쿠웨이트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이들도 이 땅을 지배한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시오니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환빠들도 쿠웨이트도 우리땅 드립을 친다...

참고로 이라크란 나라는 현대에 탄생한 국가로 고유영토란게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라크 민족이 역사없는 민족이란 것은 아니라 수 많은 고대 제국들의 일원이었고, 이슬람 도래 이후에는 이슬람 제국의 일원으로 그 중엔 압바스 왕조처럼 이라크 민족이 주도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한민족 영역, 일본 열도는 일본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이라크라는 나라의 고유영토는 없었다. 이라크는 1932년 영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면서 오스만 제국의 모술령, 바그다드령, 바스라령을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진 국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영토로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쿠웨이트가 19세기 바스라 빌라예트에 속했다는 것인데, 이는 그저 오스만 제국이 편의상 나눠둔 행정구역중 하나일뿐, 그것도 1800년대 중반이후 부터이지 이라크 민족의 고유영토가 아니다. 게다가 영국은 제맘대로 쿠웨이트의 국경선을 책정해 독립시켜준게 아니라 오스만과의 회담을 통해 결정된 구획선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삼았다. 이라크는 오스만 제국이 설정해준 행정구역에 쿠웨이트가 있었다는걸 이유로 이라크땅이라고 주장했는데, 오스만 제국이 합의해준 쿠웨이트의 국경선은 잘못이라는 것은 이중잣대에 가깝다.

당연히 쿠웨이트 사람에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 때문에 쿠웨이트인의 이라크에 대한 국민 감정은 대단히 좋지 못하며 침략자로 보고 있다. 오죽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게 당한게 심했으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시리아,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사우디, 튀니지 등 다른 아랍국가들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할때 쿠웨이트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지지했을 정도.

미국을 지지하는 친미 아랍어 방송인 알 후드가 미국과 합작으로 세워진 곳도 바로 쿠웨이트였다. 알 자지라와 맞서기위하여 만들어졌지만 뭐 아랍권에선 알 자지라는 커녕 아랍 각 방송국 상대도 되지못하고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결국 문닫았다. 쿠웨이트에서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니 말 다했다.

뿐만 아니라 걸프전으로 인한 배상금을 더 내놓으라고 이라크를 압박하는 한편, 2013년에도 쿠웨이트 국경에서 이라크와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거의 원수로 보는 수준.[11]#하기야 나라가 침략당했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지만

하지만 이런 것과 다르게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면서 적어도 외교적으로 예전과 달리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미 2004년에 이라크와 수교했으며 침공 당시 사죄 및 피해 보상금도 두둑히 받았다. 2014년 1월까지 450억 달러가 넘는 피해 보상금을 이라크에서 내줬으며 총보상금은 525억 달러로 매해 석유를 팔면서 그 수익을 이자와 같이 이라크에서 내주고 있다. 사실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사이가 나빠진 계기인 걸프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명백한 잘못이고, 현 이라크 정권은 아무튼 후세인 정권을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 시절의 앙금은 털어버리고 쿠웨이트와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솔직히 이라크인들도 걸프 전쟁에 대하여 잘했다느니 잘났다는 반응은 그리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기자가 이라크인들을 만나 취재할때, 오죽하면 같은 이슬람 나라, 그것도 약자를 먼저 쳐들어가 뭉갰으니 개망신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4.2 쿠웨이트와 영국과의 관계

대단히 좋다. 쿠웨이트가 영국의 보호국사실상 식민지였다는것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을만큼 좋다.[12]

쿠웨이트 신문인 쿠웨이트 타임즈는 2012년 이후 영국과의 관계가 더욱더 좋아졌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이 기사에서는 1899년 이후 영국은 여러 방면에서 쿠웨이트를 도와주었고 특히 이라크의 위협에서 보호해준 점을 강조하는등 매우 우호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아랍 타임즈에서도 영국과 쿠웨이트는 정치적 친구, 가치있는 동맹, 믿을맏한 파트너이자 뿌리깊은 사이라고 기사를 낸 바 있다.#

이같은 이유는 우선 영국이 쿠웨이트를 점령해 식민지로 삼은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자 쿠웨이트가 스스로 영국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점. 영국은 쿠웨이트를 독립시켜주었다는 점. 1960년대이후 이라크의 위협으로부터 쿠웨이트를 보호해 주었다는 점.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에 참여해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는 점등이 이유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영국은 쿠웨이트의 보호령 시절에도 내정간섭을 거의 안하고 오히려 무기만 지원해줬다. 물론 영국이 다른 아랍국가들에게도 이랬던건 아니다.

물론 영국이 천사들이라 쿠웨이트를 도와준 건 당연히 아니고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속셈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쿠웨이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독립된 국가를 안겨주었으며,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국가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에 쿠웨이트 인으로서는 영국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국도 쿠웨이트를 엄청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

4.3 이스라엘과의 관계

말이야 필요없지만... 2015년 11월 1일 쿠웨이트시티에서 개막, 12일까지 열리는 아시아사격선수권에 국제사격연맹(ISSF) 기술 감독관인 야이르 다비도비치가 이스라엘 국적이라는 이유로 쿠웨이트 당국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결국 이 대회 우승 및 상위 3위권에게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참가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올림픽 출전 선수의 기본 조건인 최소기준점수(MQS)도 주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대회 참가하려던 아시아 여러 나라 선수들이 참가를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대회를 앞두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하여 IOC에게 반발하는 비난도 거세져서 부랴부랴 다른 국제 사격대회 참가비용을 부담하겠다고 IOC도 진화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여하튼 이 논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쿠웨이트가 가진 부정적인 인식을 알 수 있다.

5 스포츠

2010년 쿠웨이트의 올림픽 위원회가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2010년 이후 하계 올림픽, 동계 올림픽 등 IOC에서 주최하는 모든 경기의 출전권이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도 개인 자격으로만 출전했으며, 이 징계 조치가 계속된다면 당장 2012 런던 올림픽도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다. #기사보기 그런데 아시안 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수도 쿠웨이트시티에 있다는 것.... 런던 올림픽까지는 쿠웨이트 팀으로 출전했으나, 이후 징계가 확정되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쿠웨이트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우 올림픽 사격에서 쿠웨이트 선수가 역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사실상 쿠웨이트 첫 금메달이나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였기에 공식 기록은 쿠웨이트의 메달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다. 실력도 상당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아랍에서도 국대 축구가 몰락했듯이 리그도 아랍권에서 약체로 몰락하여 리그 우승팀도 AFC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AFC컵에나 나가는 수준이다. 그렇긴 해도 오일 달러로 밀어붙여서인지 AFC컵에선 제법 선전한다. 석유와 거리 먼 요르단과 더불어 3회 우승 타이. [13]

핸드볼에 관심이 있긴 한데, 아시아 핸드볼 연맹회장인 자국 왕자 덕에 아시아 최강 대한민국을 아주 비열하게 이기곤 한다. 뭐 세계 대회 나가면 그 힘도 못 미치는 지라, 강호들에게 줄줄이 동네북이 되면서 대한민국 핸드볼과 하늘과 땅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은 많아서인지 사막성 기후임에도 빙판 경기장 시설을 만들기도 한 탓에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에도 나온 바 있다. 물론 약체라서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에선 대한민국에게 2-14로 완패했다.

6 기타

쿠웨이트의 놀이공원에는 롯데월드에서 팔려 온 놀이기구들이 있다! 로마전차, 고공전투기, 어린이특급 3가지 놀이기구가 그 주인공.

소녀시대의 멤버 써니가 아기였을 때 부모님이 미국에서 쿠웨이트로 가 있었는데, 걸프 전쟁이 터지면서 황급히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아기 때 엄청난 폭탄 소리를 들은 나머지,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무대에서 폭죽이 터질 때 써니의 귀를 막아 주는 건 이 때문이다.

카타르아랍에미리트에 비하면 아직 인프라가 많이 부실한 상태이며 마천루도 생각만큼 많은 축은 아니다. 그렇지만 산유국답게 지금 많이 지어대고 있는데, 아예 1001m짜리 부르즈 무바라크 알카비르를 계획 중이다.하지만 때문에 세계 최고층 마천루는 못 된다 그리고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은걸 반영해서인지 인구당 신문발행량은 아랍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세계적으로 봐도 10위안에 들정도가 된다.

  1. 전 지역
  2. #
  3. 국왕이 의회 해산권을 가짐
  4. 물론 쿠웨이트에서도 야당이 선거에서 선전해서 개혁적인 입법안을 내놓거나 할 정도는 되기 때문에 사우디같은 국가들 보다는 크게 나은수준이기는 하거나 하지만 야당인사가 국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거나 국왕에 의해서 게리맨더링이 시행되는 등 여러모로 제약받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여성참정권 또한 21세기에 와서야 도입되는 등 민주주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지않다고 평가된다.
  5. 바그다드 북부 쿠르디스탄 지역에 거대한 경작지가 있다. 비교를 위해 한국의 총 경작지는 약 200만 헥타르가 좀 넘었으나 계속 감소추세라 21세기에는 170만 헥타르 이하.
  6. 일종의 유목부족 연합체로 크게 시리아를 중심으로 살던 아니자족과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 중앙 나지드(نجد)라 불리는 곳에 살던 아니자족이 있다. 이들이 18세기 쯤 동쪽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갈라져 하나는 쿠웨이트에 정착한 바니 칼리드(بني خالد)족이고, 다른 하나는 바레인에 정착한 바니 우트비(بني عتبة, 우툽이라고도 한다)족이다. 참고로 현 바레인의 왕조인 할리파 왕가도 여기 지도자 가문 출신이다. 반면에 이라크 민족은 고대 바빌론, 크테시폰부터 이슬람 이후 바그다드바스라를 중심으로 정착해 살던 정주민들로 문화도 관습도 많이 다르다.
  7. 지금은 석유로 먹고 사는걸로 유명하지만 쿠웨이트인들은 원래 유목민족이라 쿠웨이트에 정착하기 전부터 동서 교역로를 잇는 상업의 전통이 있어서, 18세기부터 이미 아라비아 반도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영국의 동인도회사와도 거래를 많이해 동인도회사의 인도-동아프리카-쿠웨이트의 삼각 무역거점이 되었다. 물론, 사막인 쿠웨이트에 뭐 털어먹을게 없었는지라 동인도회사도 나쁜짓 안하고 순수하게 교역만했다. 이렇게 쿠웨이트인에게 영국은 아주 먼나라는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갔을 것이다.
  8. 쿠웨이트에서 석유가 발견된건 1937년의 일이다.
  9. 이때까지 쿠웨이트의 국기에는 커다랗게 터키 상징이 있고 옆에 아랍어로 조그많게 쿠웨이트라 적혀있었는데, 1915년부터 터키 상징을 지우고 아랍어로 크게 쿠웨이트라고만 써놨다. 이걸 계속 쓰다가 너무 밋밋했던 모양인지 1961년 완전 독립하면서 지금의 국기로 바꾼다.
  10. 이를테면 베트남 전쟁의 경우, 남베트남 사람들은 같은 북베트남인과 동질감을 느꼈고, 그 결과 북베트남군의 침공을 환영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침공을 환영하기는 커녕 침략자로 보았다.
  11. 이제는 쿠웨이트인들이 이라크 민족을 거지라고 멸시하기까지 한다.
  12. 홍콩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은 이게 같은 나라가 취한 정책이 맞나 궁금해질 정도로 각 피지배국마다 다르게 대우하는 경향이 있었다.
  13. 정확하게는 리그도 약체로 몰락한 것이 아니라 2009년 ACL 전면 개편으로 AFC가 요하는 클럽 라이센스 등의 출전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개편 이전 ACL에서 쿠웨이트 클럽 알 카디시야가 당시 조별리그 1위에게만 주어졌던 8강 진출권을 이따금씩 따내고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쿠웨이트와 더불어 개편 이후 ACL에서 모습을 감췄던 시리아의 알-카라마는 2006년에 준우승을 거두기도... 애초에 실력적으로 AFC컵에 나설 만한 국가가 아닌 것이다. 또한 쿠웨이트 대표팀을 서아시아권 약체라 보긴 어렵다. 단적으로 2010 서아시아선수권과 2010 걸프컵을 연달아 우승하거나 이후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모습만 봐도 말이다. 예멘, 팔레스타인 등을 제외하고 서아시아 축구는 평준화되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