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츠키 모토츠나

朽木元綱
(1549 ~ 1632. 10. 12)

전국시대에도시대 초기의 다이묘, 무장, 요리아이, 하타모토. 아명은 타케와카마루(竹若丸), 통칭은 야고로(弥五郎), 법명은 마키사이(牧斎).

1550년에 아버지인 쿠츠키 하루츠나가 전사하면서 고작 2살의 나이로 가독을 물려받았으며, 1553년에 미요시 나가요시에게 쫓긴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숨겨줬다. 1566년에는 아자이 나가마사가 타카시마 군을 침공할 때 인질을 보내 종속했으며, 1568년 12월에는 아자이 히사마사, 나가마사 부자와 서약문을 주고 받았지만 쇼군인 요시아키를 쿠츠키 계곡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자이 가문에게 신종한 것을 파기했다.

1570년에 카네가사키 전투에서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설득에 따라 오다 노부나가가 쿠츠키를 넘도록 하여 쿄토에 철수하도록 만들었으며, 오다 가의 시중을 들어 1571년에는 이소노 카즈마사, 1578년에는 츠다 노부스미 등에게 배치되었지만 1579년에는 대관에서 파면되는 등 노부나가에게 후대받지 못하였다. 노부나가 사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중을 들어 이세국의 아노군, 오미 국의 타카시마군의 쿠라이리치(다이묘의 직할 영지)의 대관에 임명되었으며, 1590년에 오다와라 정벌에도 참가하여 쿠츠키 고개의 2만 석의 소유를 인정받았다.

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도 참여하였는데 오오타니 요시츠구를 따라 서군에 속했다가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에게 호응하여 동군에 섰지만 전후에 서군의 형편에 대해 동군에 알려주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9590석으로 감봉되었다. 1614년에는 나가이 나오카츠의 휘하에 속하여 오사카 전투에 참여하면서 구라카리 고개를 수비했으며, 1616년에 삭발하여 마키사이라 칭하자 은거료로 3240석이 주어졌다가 1632년에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