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KBS 대하드라마
왕과 비태조 왕건제국의 아침

1 개요

여기서 모든 오프닝들을 감상할 수 있다.[1]

최고 시청률이 가장 높은 KBS 대하드라마.[2]

KBS 1TV에서 방송한 전 사극. 2000년 4월 1일 ~ 2002년 2월 24일까지 방영.[3] 대한민국 사극 역사상 최초로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4] 이환경 작가의 작품. 본격 주인공이 주인공같지 않은 드라마. 하지만 진짜로 주인공이 주인공같지 않은 드라마는 이것이 최강. 역대 한국 사극 최장기간 방영된 최장편으로 총 200회.

왕건 역은 최수종[5]이 맡았으며, 견훤 역에 서인석[6], 궁예 역을 김영철[7]이 맡았다. 이전까지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최수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무난하게 소화하면서 이후 오히려 최수종은 사극 주인공 역할을 많이 맡게 되었다.[8] 방영 전 광고영상에서 최수종이 비명을 지르는 똥간지를 보여줬다.

초중반에는 궁예, 중후반에는 견훤이 너무 부각되었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럭저럭 무난한 성장형 영웅인 왕건에 비해 드라마틱한 면이 많은 궁예나 견훤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애당초 궁예와 견훤은 후삼국의 한 주축이 되는 나라들을 밑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낸 군주들이고, 왕건은 이미 만들어진 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자리를 넘겨받은 군주이다. 전자의 과정이 더욱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다. 작가도 이 사실을 인지했던지 아직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이전인 아역 시기부터 왕건을 등장시켜 비중을 높이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거기다가 둘의 일기토는 비겼다. 궁예의 패서 병합으로 시작해서, 궁예의 죽음과 졸기로 1기가 끝나고, 견훤 왕의 죽음과 훙기로 종결되는 드라마다. 제목만 태조 왕건이지 실제적으로는 궁예와 견훤이 더 부각된 작품인 것. 특히 궁예는 전반부 출연 기간에는 이견이 없는 진 주인공이었다.[9] 그래도 주인공인 왕건이 성장하면서 궁예와 견훤을 결국 꺾는 과정을 보면 전체적으로 성장형, 만능형 군주인 왕건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맞다. 그래봤자 궁예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이긴 하다.

후삼국 시대의 비주류적 인물을 재조명했다는 면에서 호평을 얻었고, 예전에 주로 제작됐던 조선시대 사극들의 궁중 음모와 정치가 주를 이루는 내용과 비교하여 전쟁영웅적인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는 점이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려 등 고대 ~ 중세사 사극, 대조영 등의 전쟁 사극 위주로 사극 역사를 바꾸는데 아주 큰 물꼬를 틀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당시 공식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이 엄청나게 활발했다. 그 당시는 댓글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한 글에 새 글로 리플이 줄줄이 달리면서 계속 페이지가 넘어갔고, 전성기때는 하루에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건 기본이었다. 또한 사극의 고증과 개연성 문제에 대해 일반 시청자들끼리 키배를 뜨는 최초의 사극이 되었다.[10]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도 가지가지였는데, 단순한 소감이나 잡담 외에 키배도 자주 벌어졌다. 그리고 자주 올라오던 글의 패턴들이 몇 개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잊을만 하면 꼭 올라오던 장수들의 삼국지 게임식 무력 추정[11], 닉네임 "드라마 킹"이라는 정체불명의 유저가 항상 올리던 미리보기, "다시보기 왜 안 뜨나요?"라며 징징거리는 글, "태조 왕건 주제가 가사" 혹은 "용의 눈물 주제가 가사"라는 제목이고 클릭해 보면 아~ 아~ 아~아아~(...)가 가득 써 있던 글 등등. 근데 실제 주제가 가사가 이게 맞기 때문에 반박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천재교과서의 문학(상)교과서에 2화의 대본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지는 후속작으론 같은 작가가 집필했고 시대도 그대로 이어지는 제국의 아침이 있었다. 배우들만 교체되었고 시대상으로도 드라마적으로도 태조 왕건 마지막화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내용이며 세계관도 같이 공유한다. 작가도 같고, 태조 왕건과 제국의 아침의 관계는 이를테면 야인시대 1부와 2부의 관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왕건이 죽는 시점부터 시작해 2, 3대를 거쳐 고려 4대 광종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한이지만, 광종을 너무 미화한데다 진행도 하도 루즈해서 전작에 비해 인기는 별로 없었다… 거기에 전작에서 등장한 인물 중 몇몇은 제국의 아침에서도 등장하는데, 배역이 한 명도 유지되지 않고 전부 교체되었으며 동일 배역임에도 태조 왕건 때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성을 보여주어서 시청자들에 큰 위화감을 준 것은 덤이다.[12]

제국의 아침 뒤로는 고려 초중기를 건너뛰고[13] 무신정변기를 다룬 무인시대를 방영하였다. 그러므로 태조 왕건은 고려사 3부작의 시작인 셈이다. 하지만 2부 제국의 아침은 밝혔듯이 시종 루즈한 전개로 망했고, 이환경이 손을 뗀 3부 무인시대는 작품성을 인정받음에도 태조 왕건만큼 화려한 주목은 받지 못했다. 이들 3부작 이후 2005년 신돈, 2009년 천추태후, 2012년에는 무신 등이 고려사를 조명했다.

사실 최초 기획 당시에는 고려사 드라마로 10년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원래 설정이라면 태조 왕건 → 제국의 아침천추태후[14] 등으로 이어나갈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제국의 아침이 시청률이 너무 저조해서 좀 더 선굵고 남성적인 무인시대로 방향을 틀었으나, 무인시대 이후에는 고려를 포기하고 조선 임진왜란기인 불멸의 이순신이 편성되는 바람에 4년을 가는 것으로 끝났다.[15]

대규모 물량을 동원하여 전쟁 장면을 묘사한 소위 블록버스터 사극의 시초이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주말 드라마 시청률 1위(60.5%)를 자랑하고 있다. 2위는 파리의 연인(57.4%) 그 다음부터는 50%가 되지 못한다. 2000년대2010년대를 지나면서 미디어의 발달로 전체적으로 드라마 기대시청률이 낮아졌다 보니 앞으로도 태조 왕건의 60.5%가 깨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작 이 사극 이후로는 대규모 물량을 동원한 스펙타클한 전투 신을 보기 어려워졌다. 1화에 나오는 전쟁 장면을 찍기 위해 2달에 걸쳐 세트를 지었는데 이걸 하루 만에 홀랑 태워먹었다(…). 그 이후에는 조령 관문을 이용해서 대야성 전투를 찍었는데 역시 화염을 이용하다보니 성 군데군데가 그을리는 바람에 욕을 대차게 먹고(…) 그 이후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전투 신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원래는 지역 한인들을 위해 편성한 프로인데, 미국인들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고 한다.[16] 펜실베이니아뉴저지주를 비롯해 뉴욕워싱턴 D.C의 일부까지 커버하는 필라델피아의 공영 채널인 WYBE방송(채널 35)에서는 이 드라마가 대박을 치자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려 6시간이나 '태조 왕건 쇼'를 돌려댔다.[17] 한 자원봉사자는 기부행사에서 궁예처럼 한쪽 눈을 가리고 기부 전화를 받기도 했다.(…) 물론 2003년이니 꽤 된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먹히는 삼국지 오마쥬 사극이었던 것. 대장금보다도 빠른 한류의 선구자라고 할 수도 있다.## # 'Emperor Wang Guhn'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는 증거. 미국에서 의외의 인기를 끈 이유는 전투씬이 의외로 웅장(...)하고 박진감 넘쳐서. 우리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을 지 모르지만, 서구권의 사극은 제작비 문제로 간단하게 넘어가거나, 주몽급(...) 수준으로 몇 십명이 소박하게 치고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괜히 HBO에서 밴드오브브라더스 방영하고 우와왕~하게 된 게 아니다.

주인공이 마지막회까지 살아있는 몇 안되는 정통 사극이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개경에 돌아와 왕건이 신하들에게 환호받는 장면[18]에서 끝이 나며 왕건은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 2화에서 사망한다.[19] 이후로는 대왕 세종 등 결말까지 주인공이 죽지 않는 드라마가 늘어났다.

얼마나 대박을 치고 화제가 되었는지 가족오락관, 출발 드림팀에서 각자 '왕건오락관', '왕건 드림팀'이라는 이름으로 태조 왕건 출연진들만 모은 특집을 방영했을 정도이다. 심지어 MBC 주말 예능 브레인 서바이버에서도 직접 드라마 제목만 언급 안 될 뿐이지 출연 배우를 왕창 데려다가 사실상 태조 왕건 특집을 방영한 적도 있다.

간접적이지만 발해의 멸망에 대해 언급되었다. 145회에서는 발해가 멸망하면서 신덕이라는 장수가 부하 500을 이끌고 고려에 귀순하고, 그 과정에서 발해가 거란의 침입과 내분으로 인해 멸망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리고 왕건 역을 맡은 최수종은 본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몇 년 후 드라마 대조영의 주인공이 된다(...).

한편, 이 작품은 원래 2000년 1월 초 첫 방영 예정이었으며 김재형 PD가 연출자로 낙점됐으나 수뢰 혐의로 연출에서 손을 떼자 KBS는 전작 왕과 비2000년 3월 말 끝냈고 이 과정에서 왕과 비는 담당 PD 김종선씨가 <태조 왕건> 연출자로 발령되어 하차하는 대신 윤용훈씨 연출로 변경됐으며 김재형 PD한테는 용의 눈물이 KBS에서의 마지막 연출작이 됐고 99년 11월 26일 배임수재죄가 적용되어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1612만원이 선고된 바 있었다. 아울러, 당초 2001년 12월 말 끝낼 계획이었지만 후속작으로 기획된 제국의 아침의 주연급 연기자 캐스팅 문제로 인해 2002년 2월 막을 내렸다.

2 비판

방영 이후 막장 사극이 많아 추억 보정으로 많이 미화되었으나 방영 당시에도 많은 비판에 휩싸였다. 주로 작위적인 전개, 화수 때우기용 에피소드, 지나치게 단순한 캐릭터 등이 많이 지적받았다. 이것은 KBS와 각본가의 전작인 용의 눈물보다 퇴보한 요소로 훗날 다른 전쟁을 다룬 사극에도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 2000년 이후 제작되는 사극의 문제점들이 태조 왕건 스타일을 계속 수용했다는 점에서 현재 제작되고 있는 사극의 문제가 발생한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보면 왕건이 나은 수준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어디서 본 듯한 내용(특히 삼국지연의)에서 내용을 베꼈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걸 대조영(드라마)이 그대로 베꼈지 그걸 다시 광개토태왕(드라마)이 베끼고... 막장

여담으로, 대본에 비문(非文,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상당히 많이 쓰였다. 비문이 들어가지 않은 편을 찾기가 힘들 정도. '~라 보여지옵니다'와 같인 이중 피동은 물론이요, '도선 대사께서 쓴 책이시옵니다', '신이 듣건대 ~라 들었사옵니다' 와 같은 웃지 못할 문장도 많이 보인다.[20] 장수나 왕이 휘하 병졸들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에는 항상 "○○들은 뭘 하는가!"라고 하는데, 처음 지시를 듣지 않았을 때 부하들이 무시해서 반복해서 지시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맨 처음 지시를 내릴 때조차 이렇게 말하니 이 세계관의 병졸들은 시키지 않아도 뭔가 알아서 실행해야 하는 억울한 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그러게나 말입니다.'나 '그러게나 말이오'를 남발하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말버릇인 듯하다.

아울러, 눈알을 빼먹는 장면을 내보내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었으며 강비 역의 김혜리용의 눈물, 왕과 비에 이어 연달아 투입시켜 무책임한 비난을 받았다. 강비 역에는 당초 강수연 이영애 김지수 김혜선 이태란 김혜수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개인사정으로 고사했다.[21]
특히,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 중 김지수이태란이 수절녀 서씨 역으로 나온 MBC 드라마 홍국영에서 여옥(정소영 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22].

그 밖에 나레이션에서는 학계 일부의 견해를 '학계에서는 ㅁㅁㅁㅁ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라며 정설 내지 중론인 것처럼 소개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진태봉이라는 국호에 대한 문제인데, 극중에서는 '대동방국을 뜻한다' 라고 못박았으나 이것은 일부의 견해일 뿐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견훤의 경주 공격 에피소드를 찍으면서 포석정 유적을 실제 밟고 다니며 촬영을 해서 비난을 듣기도 했다. 용의 눈물 때에도 실제 왕궁에서 촬영했으니

2.1 작위적인 전개

현대의 사극이면서도 운명론, 도술같은 요소를 지나치게 끌어들였으며 지나친 우연의 의한 사건 전개가 심했다. 때문에 별로 개연성도 없이 형미는 궁예가 나라를 세우기도 전에 운명을 끌어들여 궁예를 비판하며, 도선이나 석총, 형미 같은 고승들의 모습은 삼국지연의의 좌자우길같이 묘사되었다. 또한 현지의 전설에 따라, 꿈에서 나온 도인의 말대로 견훤이 지렁이로 괴질을 고치는 고소설급의 막장 에피소드가 있다. 다만 이런 개입들은 시청자 취향 나름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남북국 시대 말~후삼국시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미륵신앙과 풍수지리설에 기초한 온갖 예언과 도참/비기, 운명론에 기초한 각종 반정부 세력들의 발흥이 나타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적절하게 작품에 반영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참설, 운명론은 실제로는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가진 것들이었고, 그것을 당대의 언어로 표현한것 뿐이다. 중세인들이라고 그렇게 미신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극은 '진짜 운명론'을 주장했다는게 문제이다.

2.2 화수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전개

넣을 내용이 없다 싶으면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의 시트콤식 개그장면이나 왕건의 부인들이 걱정하는 모습[23]으로 시간을 때웠다. 다만 이 부분은 변호를 해줄 만한 부분이 있는데, 일단 아자개의 경우 극 중반부까지만 등장[24]하는데다가 정통 사극인 관계로 시종일관 진지하고 경직되어있는 분위기를 완화하는 데 적지 않게 활약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실제로 아자개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현재 상주 지역의 영농조합법인의 이름은 아자개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왕건의 부인들이 걱정하는 장면은, 물론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기는 하지만 전장에 나가 있는 왕건의 상황을 황궁에서 볼 때의 시각으로 다시 한 번 해설해 주며 빠진 부분이나 앞선 화면들에서 전달이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해준다. 또한 갑작스럽게 공간적 배경이 전환될 경우에도 쓰인 장면이 많은데, 예를 들어 신라의 조정이 등장해야 할 경우 곧바로 신라로 넘어가기보다 왕건의 부인들이 신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넣고. 그 다음에 서라벌 왕궁을 비추는 식으로 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2.3 지나치게 단순해진 캐릭터

현재까지 정통사극의 주류를 이루는 "주인공느님 VS 사악하고 멍청한 " 구도가 이 작품에서 완성되었다. 물론 사서에서도 왕건 찬양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방식이기는 했으나, 주변 인물도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나 욕망에 휘둘리고 번뇌하며 나쁜 면도 가감없이 보여주었던 용의 눈물[25]과 달리 진지한 능력자, 개그 캐릭터, 열폭하는 악역이라는 단순한 패턴만 남았다. 최수종의 연기 자체는 호연이었지만 왕건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성인군자로 고정되어 실제 행적과는 상관없이 욕망에 초탈한 선인이 되고 악행은 본인이 꺼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밀어붙인 걸로 처리되거나 아예 생략해버리는 전개가 많아졌다. 이 부분은 이후 거의 모든 사극에 충실하게 계승되어 고질적인 문제점이 되었다.

이후 반역전에 오른 난신적자들의 이야기인 무인시대를 제외한 사극들은 방송사, 시간대, 퓨전, 정통 불문하고 거의 예외없이 이 루트를 밟았다. 기성작가들 말고 젊은 축에 드는 작가들도 이러한 실수를 반복했다. 대표적으로 불멸의 이순신대왕 세종의 윤선주. 그녀가 만들어낸 이순신과 세종은 욕망에 초탈하고 이상을 추구하며 가슴에 상처를 간직한 동일한 캐릭터성을 보였다. 그리고 여기에 역사 왜곡까지 겹쳐 오지게 욕 먹었다. 물론 불멸의 이순신김명민의 호연과 때 마침 터져 나온 일본의 독도 망언 버프로 흥행했지만 대왕 세종은 채널이동크리로 망했다. 이환경 본인도 연개소문무신에서 이런 전개가 결과적으로 최악의 평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신을 배신하고 후백제로 투항한 호족의 가족들을 참살하라고 왕건이 명령을 내리는 냉혈한 모습은 보여주었다.# 심지어 극 중에서는 이 때의 왕건을 궁예와 비교하는 대사까지 나왔다. 어쨌든 후기작에 비하면 미화의 강도가 낮은 편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없이 착하고 무르기만 한 캐릭터에 억지로 역사에 등장하는 냉정한 일면을 쑤셔넣으니 제대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당초 입체성이 부족한 캐릭터가 문제였다.

어쨌거나 태조 왕건에서 왕건 및 고려측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삼한통일을 위해 일치 단결된 식으로 좋게 묘사[26]하다 보니 바로 다음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고려의 왕자들과 호족들이 피튀기는 권력투쟁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다. 그나마 궁예와 견훤이 입체적인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궁예는 얼마 안되는 기록 속의 복잡한 면모가 배우의 호연과 합쳐져 제법 잘 드러났고 견훤도 저돌적이고 대가 센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용맹하고 호탕한 무장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이유로 왕건의 경우 이 둘에 비해 매력이 없어보이는 캐릭터로 취급받아 페이크 주인공으로 내몰리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2.4 삼국지연의 차용

삼국지연의의 패러디 같은 장면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도 있다. 간략한 예시들을 보자면

  • 당대의 석학 최승우를 참모로 맞이하기 위해 견훤이 그의 집을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가는 수고는 당연히 삼고초려짝퉁이다.
  • 문신이 참모가 되어 전쟁상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계략을 짜는 것도 삼국지의 군사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승우나 최응 같은 문신들이 제갈량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 나주 전투 이후 갈대밭에서 견훤이 고려군의 매복을 만나 고생하는 장면은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뒤에 겪은 그 고생과 판박이인데다 그 매복군을 이끈 건 신숭겸, 신숭겸=관우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더구나 견훤이 퇴각하면서 자기라면 그 갈대밭 즈음에 매목군을 두겠다고 하며, 거기까지는 왕건이 생각하지 못했는가라고 말하고 나서 곧이어 신숭겸이 이끄는 매복군을 만난 것은 완전히 적벽대전에서 퇴각하는 조조의 행동과 판박이 수준이다.
  • 견훤의 아들 금강은 공성전 도중 화살에 눈을 맞자 화살을 빼 촉에 박힌 눈알을 먹었다. 심지어 부모에게 받은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소리까지 한다. 이쪽은 아예 '하후돈이 그랬다는데 맞는 말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정작 하후돈이 그 말을 한 것은 연의 한정이고, 드라마의 배경인 후삼국시대에는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은 있지도 않았다. 물론, 금강이 눈을 잃었다는 설정 역시 허구.
  • 나중에 팔공산 전투에서 사망한 신숭겸의 수급을 견훤이 보는데 수급이 담긴 상자의 뚜껑을 열자 눈을 부릅뜨고 견훤을 노려다보는 신숭겸의 수급도 삼국지에서 조조가 관우의 수급을 보고 식겁하는 장면과 같다. 심지어 옆에서 최승우가 속았다며 하는 말이 '고려 왕은 언월도를 잘 쓰지 않는데 어젯밤 고려 왕은 줄곧 언월도를 들고 있었사옵니다.'였다. 극 중반부터 신숭겸이 언월도[27]를 주로 사용하긴 했지만, 어쨌든 시청자 입장에서는 "신숭겸 = 관우"로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 부분은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도 있다. 조조가 관우의 목을 보고 놀라는 것은 오랫동안 아꼈던 사람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을 받은 것인 반면, 견훤이 신숭겸의 목을 보고 놀란 것은 틀림없이 '왕건 아우'의 목일 거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전혀 엉뚱한 사람의 목임이 밝혀졌기 때문. 즉, 서로 전혀 다른 상황이다. 적국의 왕이나 장수를 베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수급을 베어오는 것이고, 예상과는 달리 전혀 엉뚱한 사람의 수급이 도착하여 놀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의문점이 남는데 이 장면 전까지 신숭겸은 언월도가 아닌 검을 주로 썼다. 언월도를 쓰는 모습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공산 전투 직전부터였던 것[28]. 게다가 초반에 '능산'일때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던 길이의 수염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 걸 보면 관우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소한 포인트지만 신숭겸이 죽는 전투에서 그는 녹색 갑옷을 입었는데 이것 역시 대중문화에서 관우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극중에서 왕건은 다양한 형태의 갑옷을 입었다. 그러나 대부분 오프닝에서 최수종이 입었던 검은 색 갑옷을 주로 입었으나, 공산전투 전부터 녹색과 흰색이 섞인 갑옷을 주로 입었던 것. 이후에는 갑옷을 견훤에게 빼앗겼다는 설정으로 이어졌는지, 예의 그 갑옷과 더불어 다른 갑옷을 입고 등장한다.

사실 중국의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와 구도가 비슷하기는 하다. 북쪽에 위치했으면서 세력이 가장 강성했던 궁예의 태봉이 조조의 위나라와 비슷한 포지션이고, 이를 뒤집어 엎고 건국한 왕건의 고려는 사마의의 서진과 비슷하며, 고려에게 잡아먹힌 신라는 위나라에게 잡아먹힌 촉한과 대비되며 제일 마지막에 망한 후백제는 손권의 오나라와 배치되기는 하다. 사실 삼국지의 위오촉 삼국이 후한이 망하면서 갈라져 나왔듯이 후삼국시대의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신라에 반기를 일으키고 나온 걸 생각해본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후삼국시대가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행간을 채워넣기 위해 삼국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너무 지나치게 따라하다 보니 눈에 밟히는 부분과 모순이 적지 않고, 작품의 창의성 및 작가의 자질까지 문제시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번외로 무력(武力)과 인덕(人德)의 대비가 극명한 견훤과 왕건의 대립은 삼국지보다는 초한지와 닮아있다. 실제 후삼국시대도 그렇기도 하고. 이 점에 대해서는 초한지도 일부 차용했다고 보는게 좋을 듯.

2.5 고증

고증 측면에서도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신라 말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가까운 건축양식[29]을 보이며, 시대와 국가의 양식이 뒤섞인 데다가 허술해보이는 재질의 갑옷이나 인건비를 아끼려다 보니 지나치게 늘어난 야간 매복 전투[30], 창 대신 검을 휘두르는 기병이 등장한다. 진형의 개념은 무시되었고, 공성전에서 기병어택땅함은 물론(...), 전투마다 난전이나 삼국지연의를 연상시키는 일대일 대결 장면으로 해결하는 장면 등은 먼저 방영된 삼국기, 용의 눈물 등의 전투신보다 퇴보한 것이다. 이것은 태조 왕건의 영향을 받은 다른 사극들이 고치지 않고 답습하여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리고 전투는 거의 항상 야간만 고집하는데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 심지어는 왕건과 수달의 일기토는 낮이었는데 왕건이 일기토에서 승리한 후 공격 명령을 내리자 갑자기 밤으로 변하면서 전투가 전개되는 부분을 보면 헛웃음이 날지경이다.

다만 세트 고증의 문제는 사실 세트장을 문경시안동시에 거창하게 지어놨는데 고증이 맞지 않다고 또 허물고 다시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후 사극들은 잘(?) 지어놓은 기존의 세트장을 이용하게 되고, 고증의 문제는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두는 무한반복의 형태이다.

몇 안 되게 남아있는 사서 내용마저 대놓고 무시하거나[31], 일부 장수들은 너무 일찍 리타이어시켰다. 후백제 계열 인물들 중 몇몇은 끝이 유야무야해 나오지 않거나 다르게 전개되기도 했다. 초기 멤버인 추허조는 배우 강재일과 견훤의 배우 서인석과 마찰이 있어 12년이나 빠른 대야성 공략전에서 전사해버렸고 이어 꽤 비중있던 공직, 지장형 에이스가 될 신강 등은 어느새인가 사라져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배우들의 문제가 겹친 것으로 신강은 그 역을 맡은 故 태민영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출연이 없고, 공직 역의 이정웅도 건강 문제로 중도 하차해 대사상 전사 처리되었다고 한다. 공직은 적절한 시점에 고려와 후백제를 각각 배신함으로서 후삼국 시대의 구도를 흔들어놓은 장본인인데도 배우 문제로 하차해 후반부 내용이 중심을 잃는 모습이 보인다.[32] 덕분에 신강은 견훤이 그를 얻기 위해 1화를 꼬박 소비해 버리고서 그 뒤부터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몇몇 캐릭터의 미화도 문제가 되는데 궁예, 환선길, 이흔암의 최후 등이 대표적인 예. 그런데 궁예, 환선길, 이흔암은 '폄하됐다'라고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는 것이고 솔직히 이 정도의 재해석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사극으로서 필요하다는 평도 있다. 그리고 적어도 궁예는 문서에서 보듯 궁예의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민담이나 가설도 있으니 무조건적인 미화라고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궁예에 대한 묘사가 일방적인 미화라고 하기는 무엇한 게, 그를 간지폭풍으로 묘사하는 한편으로, 그 잔혹함과 광기도 묘사했다. 그리고 최후를 맞은 이후 내레이션으로 정사에서 궁예의 죽음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나름대로 설명해주기도 했다.[33]

용어 사용에서도 오류가 있다. 먼저 나레이션에서 자꾸 '실록' 드립을 치는데,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사》는 실록이 아니라 정사(正史)이다. 전통적인 사서에서 실록과 정사는 분류 자체가 다르다. 사서에 속하는 서로 다른 서브 카테고리라고 보면 된다[34]. '마마'라는 호칭도 문제인데 극중에서 계속 '황후 마마'라는 등의 용어가 쓰인다. 이는 고려 후기 의 간섭을 받으면서 들어온 중국어 '媽媽('엄마'라는 뜻)'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말이다. 마마 대신 폐하라 하는 것이 옳은데, 동일 작가의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도 그대로 '마마' 호칭을 써먹는다.

파일:Attachment/태조 왕건/Goryoface.jpg
이것이 바로 노숙패이수 라는 갑옷이오
"장군. 적군들이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하하하! 미개한 오랑캐 놈들!"

드라마 제작 당시 갑옷으로 고려 패딩이라느니 혹은 머리에 이글루를 쓴 고려 장수라고 돌아다니는 짤이다. 1화의 장면으로 궁예군(미륵군)의 철원성 함락을 다룬 화로 철원성 전진방어 기지의 신라측 장수들이다. 사실 철원의 혹한의 추위를 버티려면 패딩은 필수이기 때문에 저 고증은 맞는 거라 카더라 이후 닥돌해오는 궁예군에게 '활을 쏴라', '공격하라!'를 외치며 방어하다가 불타는 세트장과 함께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35] 그 외에도 찰갑옷을 묘사했지만 자세히 보면 고무조각을 붙여놓거나 비닐을 네모나게 꿰매서 갑찰 모양을 내서 만들어 놓는 등 부족한 예산의 비애(...)를 여러 번 엿볼 수 있다.

사실 고증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부족한 예산의 압박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앞서 언급된 고무 찰갑은 무게를 가볍게 해서 배우들의 체력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전에 방영한 용의 눈물 때도 고증해서 만든 금속 갑주에 대해 고 김무생 옹이 "노인네 깔아 죽이려고 작정했냐?"며 투덜거려서 결국 바꾸었다.[36] 방영 당시에는 한국 사극에 본격적으로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연히 소품 면에서 들어가는 비용이 적었을 뿐더러 경험이나 노하우가 여러모로 모자랄 수 밖에 없었고, 실제 일부 소품은 삼국기때 썼던 것을 재활용 하기도 했다. 그런 소품 재활용은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거기다 이글루(...) 투구나 어설픈 신라의 갑옷도 재질과 색상 문제 때문에 그럴 뿐,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고증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최소한 후대에 만들어지는 사극에 등장하는 판타지 RPG스러운 갑옷들에 비하면 최소한 실존하던 과거 갑옷의 모양을 내려는 노력은 했다는 점에서 무작정 비판하기는 어렵다.

2.5.1 제국 표현에 대해

KBS 대하드라마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작품으로 이후의 사극들이 황제와 제국, 폐하와 같은 단어를 남발하게 만든 계기를 마련했다. 극중에서 후고구려, 후백제에서 자기 국가 안에서 황제, 제국이라는 호칭을 사용[37]하는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물론 실제로도 외왕내제 식으로 내부적으로 황제나 그에 준하는 칭호들을 사용한 건 사실이지만, 대외적으로도 황제와 제국을 칭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극 중에서도 외왕내제라며 타 국가의 군주는 황제라고 안 부르고 왕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여하튼 이 작품 이후로 조선시대 이전을 배경으로한 사극에서 제국의 호칭이 남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폐하는 오류가 아니다. 고려 이전의 문헌부터 폐하라고 부른 예가 여럿 발견된다.[38] 백제의 금석문에도 '대왕 폐하'라는 말이 나온 예가 있고 김부식이 쓴 글에도 성상 폐하(聖上陛下)라는 말이 버젓이 나온다. 다만 대내외적으로 칭제 했던 때는 고려 광종, 경종 시대 정도에 국한되는 것으로 보이고[39], 다른 때는 태왕이나 대왕 등 '왕'이 들어간 칭호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제국'이니 '왕국'이니 하는 표현들은 근대 이후에 서양의 empire, kingdom 등을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전근대에는 보기 힘든 표현이다.

사실 폐하가 문제가 아니라 '형님 폐하'라는 정체불명의 호칭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사석에서는 형님이라 부르고, 공식 석상에서는 폐하라 불렀다면 그나마 사극상의 표현으로 이해라도 할 수 있지, 형님 폐하는 이도 저도 아니다. 이환경 작가는 태조 왕건 이전에 각본을 담당했던 용의 눈물에서도 "형님 전하"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그 빈도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태조 왕건에 들어서는 이런 정체불명의 표현을 너무 남발하는 바람에 몰입감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많았다.

3 미디어믹스(?)

3.1 만화 태조 왕건

동명의 만화. 작가는 강기연. 애초에 패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듯 하지만 인기가 없어서 궁예의 이야기가 나온 후 묻혔고, 후에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연재를 시작한 듯 하다. 2권 마지막 화부터 그림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패왕에서는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의 모습이 나오고 왕건이 어릴 때 도선대사를 만나며 궁예가 자기의 정체를 알고 광분하는 등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다시 연재된 이후에는 드라마와 별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물론 드라마와는 다르게 견훤의 경우 수달과 1:1 데스매치를 무려 하루종일 벌이면서 겨우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최견, 최필, 종훈 등의 캐릭터가 백제 건국의 기반이 되는 모습이 나오고 궁예의 경우 부하로 나오는 신훤이 같은 줄의 스님이었고 서로 연적 다툼을 하는 모습, 미륵으로 각성하는 모습 등에서 드라마와 큰 차이를 보이긴 한다. 중반 이후 거의 궁예에 관련된 사건과 내면 갈등이 나오는데 상당히 볼 만 하다.

견훤이 수달, 추허조 등과 도원결의를 하는 모습이나 양길의 휘하에 은부,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등 드라마와 똑같은 구성을 보이는 모습, 양길의 딸이 궁예에게 반하는 것, 종간의 역할 등에서는 드라마와 거의 같다. 다르다면 전투가 거의 장수 한 명의 활약이나 일기토로 끝나는 건데 이건 만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거기다 마지막에 신숭겸, 박술희가 갑자기 나타나서 유금필과 대결하고 유금필이 왕건에게 부하가 되기를 자청하는[40] 고속 전개를 보이더니 결국 궁예와 왕건이 만나는 부분에서 연중.

그래도 패왕으로 연재하던 시절 견훤 초기의 부하로 추허조와 능환이 나오는 걸로 봐선 드라마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포지션도 무식한 맹장 스타일의 추허조와 모사 타입의 능환이었으니까. 계속 연재되었으면 괜찮았을 만화겠지만 학습만화가 아닌 이상 역사 만화는 한국에선 마이너 장르이다.

3.2 태조 왕건 - 제국의 아침

제국의 아침(게임) 문서 참고.

3.3 천년의 신화(?)

감마니아의 RTS 게임 천년의 신화는 원래 진짜 삼국시대를 다루는 게임이었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는 여기에 드라마 등장인물들을 베이스로 한 영웅 캐릭터를 추가하고는 고구려 진영과 조합해서 '고려' 란 이름으로 추가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게임으로 내놓았다. 영웅 캐릭터들은 단순 베이스 수준이 아니고 이 드라마의 배우들을 그냥 복붙한 수준으로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진영 자체는 고구려의 재탕일 뿐이였다.[41] 거기다 추가 미션도 꼴랑 4개[42]밖에 없으며 이 마저도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받은 순간들을 우려먹은 독창성이라곤 없는, 말 그대로 드라마가 흥하니 편승해서 팔아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날림이였다.

그래도 반대로 기존 진영을 우려먹었기 때문에 기존 게임의 밸런스는 크게 해치지 않았고 새로 추가된 영웅들이 개성이 강해서 쓰는 맛은 있는 편이다. 여하튼 큰 반향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4 등장인물

4.1 세 주인공

4.2 왕건 측 인물

  • 신숭겸(김형일)
  • 박술희(김학철)
  • 왕식렴(정국진)
  • 신혜왕후 유씨(박상아)
  • 장화왕후 오씨(혜종의 친모)(염정아)
  • 충주부인 유씨(훗날의 신명순성왕후 유씨. 정종, 광종의 친모)(전미선)
  • 왕무(훗날의 혜종)(안정훈, 아역은 서현석)
  • 홍유(송용태)
  • 배현경(신동훈)
  • 복지겸(길용우)
  • 최응(정태우)
  • 최지몽(지아니 박)
  • 유금필(강인덕)
  • 왕신(김광영)
  • 태평(김하균)
  • 김락(김기복)
  • 염상(심우창)
  • 김언(조인표)
  • 전이갑(강만희)
  • 전의갑(권혁호)
  • 윤신달(이계영)
  • 왕규(김명수)
  • 김행선(민지환) : 고려의 시중 벼슬에 있는 원로대신으로 왕건의 역성혁명 이전부터 관직에 몸을 담아왔던 인물이다. 왕건이 즉위한 이후에 시중에 임명되는데, 상당히 유한 성격의 소유자. 왕건의 장인들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신들 중에선 왕규, 추언규, 최지몽과 함께 최종화까지 등장했다.
  • 박유(훗날의 왕유)(김진태)
  • 종회(진운성)
  • 입전(오성렬) : 청주 출신의 인물로 아지태의 천거에 의해 법률을 관장하는 의형대의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아지태의 역모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궁예의 관심법과 종간과 은부가 이끄는 내원의 감시가 두려운 나머지 신방과 함께 역모를 고변한다. 여담으로, 입전 역을 맡았던 故 오성렬은 극 후반부에 박영규의 집사로 출연하여, 견훤을 금산사에서 탈출시키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 신방(김태형)
  • 금식(김옥만)
  • 박수문(김경응)
  • 박수경(김관기)
  • 추언규(김경하)
  • 장수장(장순국)

4.3 궁예 측 인물

4.4 견훤 측 인물

  • 최승우(전무송)
  • 애술(이계인)
  • 신검(이광기, 아역은 김영찬)
  • 양검(주민준, 아역은 윤동원)
  • 용검(강인기)
  • 금강(전현, 아역은 김경호)
  • 능애(전병옥)
  • 능환(정진)
  • 능창(일명 수달)(김시원)
  • 박영규(임혁주)
  • 신덕(임병기)
  • 김총(유태술)
  • 공직(이정웅)
  • 추허조(강재일)
  • 신강(태민영)
  • 상귀(김명국)
  • 지훤(박철호)
  • 최필(한정국)
  • 종훈(민경진)
  • 영순(신국)
  • 파달(기정수)
  • 국대부인(임채원[43])
  • 왕후 박씨(견훤의 첫 번째 부인이자 신검 형제의 친모)(금보라)
  • 고비(견훤의 두 번째 부인이자 금강의 친모)(조민희)
  • 방희(방형주) : 우직한 맹장 타입으로 설정된 가상 인물로 상주 전투에서는 겨울에 방심하고 있다가 조령을 넘어온 왕건의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였고, 나주 전투에서는 화공에 당한 후 퇴각하는 견훤을 호위하다 신숭겸에 의해 죽는다. 담당 배우인 방형주의 성을 따서 만든 것 같다. 방형주는 대조영(드라마)에서 돌궐인 계필사문의 부장 '퉁소'와 같은 우직하면서도 은근히 개그 캐릭터 타입인 무장 역할로 자주 출연한 배우로,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는 '여석개' 역을 맡았다. 은근히 놓치기 쉬운게 있는데, 방희는 극중 처음으로 전사한 백제군의 첫 네임드 인물이란 거다. 이전까지는 부상을 입어도 전사한 인물은 없었다. 방희를 시작으로 수달, 추허조까지 줄줄이 죽어나가서(그것도 제법 짧은 텀을 두고) 백제군의 인재가 부족하게 된다. 이후 애술, 신덕, 최필 등 능력은 있는데 뭔가 약간 아쉬운 장수들[44]로 최승우가 골머리 썩이며 커버해야 했다.
  • 훈겸(고희준) : 작중 백제의 어의로 등장한다. 지리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최승우가 어렵게 모셔왔다는 설명으로 첫 등장. 조물성 전투에서 괴질이 만연해서 고려군 백제군 모두 고생을 할때 견훤의 조상신의 도움으로 괴질을 치료하는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한창 뒤 운주 전투에서 등창을 앓으면서도 친정을 나가려는 견훤을 만류하지만 끝내 막지 못하고 대신 종군을 하였다가 패퇴하던 도중 낙마, 고려군의 기병에게 죽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견훤과 금강, 박영규와 최승우가 안타까워 하는 장면을 보인다. 실제로는 '고려사 권92 열전5 유검필'에 의하면 죽지는 않고 포로로 잡혔었다고...

4.5 신라측 인물

  • 진성여왕(노현희)
  • 경애왕(문회원)
  • 경순왕(신귀식)
  • 마의태자(이병욱) : 마의태자 역을 맡았던 이병욱은 극 중반부에 최승우가 사주하여 궁예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객의 일원으로 등장한 바 있다. 자객들은 왕건의 숙부인 왕평달이 사주하여 왕씨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궁예를 암살하려 했다고 진술하지만, 궁예가 국문장에서 철퇴로 동료 자객들을 죽이자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이 후백제에서 왔음을 실토하고 살아남았다.
  • 김위홍(김주영)
  • 김효종(김효원)
  • 김율(유병준)
  • 최치원(김성수)

4.6 기타 인물

  • 왕륭(신구)
  • 왕평달(장항선)
  • 변사부(왕건의 사부)(나한일)
  • 마사부(왕건의 사부)(박영목)
  • 양길(이치우)
  • 오다련(이일웅)
  • 아자개(김성겸)
  • 용개(김대환)
  • 대주도금(박윤선)
  • 강장자(김성옥)
  • 박지윤(이신재)
  • 유천궁(김진해)
  • 원극유(박승규)
  • 박질(김봉근)
  • 나종례(총례)(서상익)
  • 유긍달(민욱)
  • 이총언(김영인)
  • 도선(이대로)
  • 석총(신충식)
  • 형미(박병호)
  • 범교(안대용) : 경문왕이 즉위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극 중에서는 처음에는 화랑의 일원으로 나온다. 경문왕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크게 실망하였다. 궁예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세달사에서 그를 받아주고 길러주었다. 수행을 마친 궁예가 자신이 미륵이 되어 세상을 구제하겠다고 하자, 궁예를 나무라지만 한편으로는 종간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왕륭을 통해 갈 길을 주선해주었다. 나중에 왕건을 가르치기 위해 도선대사가 세달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궁예가 세상을 구원할 사람인지를 물었지만, 도선은 궁예가 뒷날에 올 성인을 위해 그 자리를 예비할 뿐이라고 대답하자 매우 놀라고 안타까워 하면서 열반에 들었다. 궁예의 뜻을 듣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제자를 아끼고 그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를 바라며 걱정을 많이 한 듯 하다.
  • 경보(서영진)
  • 허월(곽경환)
  • 도우(원석연)
  • 기훤(김윤형)
  • 유염(윤덕용)
  • 김응겸
  1. 오프닝들의 출처는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 1기부터 4기 오프닝까지 전부 다 잘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이야기가 흐를수록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모습 뿐만이 아니라 표정도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초반부의 궁예는 낡은 승복에 칼을 메고 인자한 미소를 짓다가 이야기가 흐를수록 옷은 화려해지지만 표정이 점점 굳어져가는데, 궁예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다. 어째서인지, CNTV측에서는 1~2기까지 오프닝을 보내다가 3기와 4기 오프닝을 편집시켜버렸다.
  2. 이 작품 다음으로 높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작품은 용의 눈물.
  3. 그 때가 후삼국시대 시작 1100주년이었다.
  4. MBC도 후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으로 맞불을 놓으려 했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5. 캐스팅 가운데 세 후보 중 한 명으로 나머지는 노영국과 윤승원이다. 노영국은 연기력이 탁월했지만 당시 49세로 청년 역할은 무리일 정도로 많은 나이의 한계로 인해서, 윤승원은 당시 연기 활동에 오랜 휴식 기간을 거치고 있었고 사업 실패로 구설수를 들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캐스팅되지 못했다.
  6. 전작 왕과 비에서 세조 역 물망에 한 때 거론되었다.
  7. 캐스팅 과정에서 이덕화도 거론되었으나, 당시 궁예의 재해석을 하려고 했던 제작진은 너무 요승 같은 이미지로 나올 것 같아 김영철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만약 이 때 이덕화가 궁예를 맡았다면 두 번이나 대머리 폭군을 연기할 뻔 했다. 당시 이덕화의 사극 대표작은 한명회였다. 결과적으로 김영철이 재해석된 궁예를 훌륭히 연기했으므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8. 궁예가 살아있는 시기는 궁예 역의 김영철의 연기력과 비중에 가려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궁예의 죽음 이후부터 견훤과 대립하면서 캐릭터가 분명해지고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1962년생이지만 동안이라 10대 후반 시절부터 커버하는 것이 가능한데다 어쨌든 중년이니 중년 가능(…), 게다가 연기력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적응도가 높았다.
  9. 이 정도 비중은 신스틸러를 아득히 뛰어넘고도 남는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는 MBC 선덕여왕미실이 있다.
  10. 이 항목에 나온 태조 왕건에 대한 비판들은 그 당시에 이미 게시판에 올라온 것들이다. 방영 당시에는 스케일 큰 사극이 보기 드물었으므로 인터넷 게시판에도 태조 왕건에 대해 옹호적이었고, 고증을 다소 무시하더라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어 수많은 막장 사극이 범람하는 원인이 된다.
  11. 이건 무인시대에 가서도 계속되었다.
  12. 다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똑같이 임진왜란 시대를 다룬 드라마인 불멸의 이순신징비록의 배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태조 왕건과 제국의 아침은 엄연히 서로 다른 작품이니만큼, 작가가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배역을 쓸 수 있다. 단, 제국의 아침은 태조 왕건이 종영된 직후부터 속편으로 방영되었으며, 태조 왕건의 바로 뒷이야기를 다루고, 같은 방송사에 같은 방송시간, 게다가 작가마저 같다. 방송사의 의도야 어땠건 시청자들에게는 제국의 아침이 태조 왕건의 후속작으로 보였기 때문에 위화감이 더 컸다.
  13. 훗날 천추태후(드라마)가 제국의 아침에서 바로 이어지는 시대를 다루었다.
  14. 광종 다음 경종 시대부터 시작했다.
  15. 당시 KBS 정연주 사장의 성향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인시대가 후반부부터 그런 이야기가 KBS 게시판에서부터 시작되어 인터넷 여러 곳에 퍼졌으나 불멸의 이순신이 흥하면서 묻혀버렸다. 이런 글 특성상 그럴 듯하면서도 실질적인 근거 자체는 부족(고려사 계획을 승인한 당시 KBS 사장직을 역임하던 박권상 사장은 정연주의 동아일보 선배였고, KBS 사장이 되기 전에 시사저널 주필직을 지냈다.)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도 있다는 정도였다.
  16. 방송국 사정으로 한 회 쉬고 넘어 갔더니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17. 초반 클라이막스인 금성이 배경이라고 한다.
  18. 원래대로라면 뒷이야기인 신검과 견훤의 최후를 당겨서 보여주느라 왕건의 귀환신의 시점이 헷갈리게 한다.
  19. 사망 직전 회상신에서 태조 왕건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20. 당연히 '책이옵니다', '~라 하옵니다'라 해야 한다.
  21. 역설적이게도 국대부인 역으로 나온 임채원(당시 임경옥)은 그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초선, 무인시대에서 부용 역을 맡아 KBS 1TV 대하사극에 3연속으로 투입되었다.
  22. 공교롭게도 '홍국영'과 경쟁한 작품이자 '태조 왕건'에서 강비 역 물망에 오른 강수연이 출연했던 SBS 여인천하의 담당 PD 김재형씨는 '태조 왕건'의 연출자로 낙점되었으나 수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포기했다
  23. 말 그대로 그냥 걱정만 한다(...). 이를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24. 물론, 최후반부. 견훤이 고려로 귀부하는 장면에서 재등장한다. 다만 이 때는 '시트콤식 개그장면'과는 거리가 멀기에, 논외.
  25. 용의 눈물의 이방원은 업적도 잘 묘사되지만 이거이를 협박하기 위해 방석의 기생첩을 죽여버리는 등 필요하다면 죄없는 사람도 죽이고 누구도 믿지못해 독화살 맞은 걸 이용해 주변인들을 떠보고 권력에 대한 욕망도 미화없이 드러났다.
  26. 아예 없는 건 아니고 후반부에 왕식렴, 홍유, 유금필의 갈등이 나온적이 있다.
  27.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드라마에서 언월도를 쓴 캐릭터는 신숭겸과 홍유 두 사람이었다. 검과 활 일색인 사극을 탈피, 색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28. 다만 이 부분은 실드를 치자면 칠 수 있는데, 24화에서 신숭겸과 박술희가 왕건 일행과 처음으로 술잔을 주고받을 때 박술희가 '언월도를 아주 잘 쓴다' 라고 언급한다.
  29. 극 초반 신라시대의 왕궁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창경궁에서 촬영한 듯 하다. 창경궁 명정전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는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도 일부 반복된다.
  30. 상당수의 전투가 야간 매복 전투인데, 적군의 매복 공격으로 패배를 경험한 신검이 또 매복 공격을 당해 패배하는 어이없는 상황마저 벌어진다.
  31. 가령 견훤의 이복 여동생인 대주도금의 경우 극중에서는 '삼국유사에 보면 장군이라고 했음' 하면서 장수로 묘사하는데, 실제로 찾아보면 오빠인 용개나 소개 등은 장군이라고 나와도 대주도금은 그런 기록이 없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32. 뒷부분에 간접적으로 언급이 되기는 했다. 그가 왕건에게 항복했고, 이에 실망한 견훤이 그의 아들들의 발목 힘줄을 베어버리는 형벌을 내렸다는 자막 처리했다. 그 이후로 공직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33. 다만 '제대로' 된 설명이라고 하기는 조금 무엇한데, 보리 이삭을 베어먹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어찌 궁예 같은 인물이 그랬을까. 승자의 기록이니만큼 살펴야 할 것이다' 하는 드립을 치기 때문이다. 승자의 기록 운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소양을 쌓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며, 승자의 기록이라 하고 싶다면 그 증거부터 내놓아야 한다. 궁예의 죽음뿐만 아니라 견훤이 경애왕의 왕비를 범했다는 부분을 비롯해 곳곳에서 승자 운운하는 장면이 있으며, 이는 이후 사극들에서 충실히 답습된다.
  34. 비유하자면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모두 블리자드의 게임이기는 하지만, 스타크래프트가 곧 워크래프트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또한 공허의 유산에 보면 아서스 메네실이라는 왕자가~' 하는 드립이 계속 나오는 셈.
  35. 중앙의 장수분은 항복을 권하러 온 사신을 활로 쏴죽여 궁예군의 분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다(...).
  36. 그래서 나중에 이방원으로 분한 유동근도 왕자의 난에서는 비닐티가 많이 나는 찰갑을 입었다.
  37. 다만 서로의 군주에 대해서는(후고구려인이 후백제 왕에 대해, 후백제인이 후고구려 왕에 대해) 왕으로 지칭하였다. 사실 제법 규모가 있던 후고구려, 후백제는 양반이고 한반도 중부의 몇 십개 고을을 차지한 양길조차도 황제를 자칭하고 나선다. 물론 그야말로 쪼개질대로 쪼개졌던 후삼국 초기 정세에 양길 정도면 제법 세력이 큰 편이었지만 제국 운운하기엔 어림도 없었다. 실제로 양길은 (극 기준으로)자신의 수하였던 궁예가 강원도 일대를 평정하자 이를 기반으로 칭제를 한 것이었지만, 궁예가 그를 배신하는 바람에 그냥 기존 영토만 갖고 칭제를 한 꼴이 된 것이다.
  38. 고려 이전의 문헌에 전하로 쓴 예들도 있지만, 원문에 폐하로 적혀 있던 것들을 고려 원 간섭기 이후에 필사 과정에서 전하로 고쳤을 가능성이 크다. 왕을 부르는 호칭으로 폐하와 전하를 혼용했을 리가 없으므로 '전하'라고 돼 있는 본은 후대에 고친 걸로 봐야 할 것이다.
  39. 고려사에 광종이 개경을 황도로 부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경종 시대에 '황제'가 기재된 금석문이 발견되긴 했다. 이후 고려사 기록에 성종 때 왕의 명령을 교(敎)라고 낮추어 쓰도록 조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황제 칭호를 폐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고려왕이 황제라는 칭호를 복구시켰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다만 칭호는 강등시켰더라도 원 간섭기 이전까지는 알음알음 조공을 받기도 하고 '폐하', '성상' 등 황제에 준하는 표현 역시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40. 이 혼란한 시대에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왕건의 대사는 나름 간지 나긴 한다.
  41. 영웅들만 다를 뿐, 유닛이나 건물 등 나머지 사항은 완벽히 똑같았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광개토대왕이 없어서 공간의 문을 만들 수 없다는 것 정도.
  42. 금성(나주) 점령, 고려 건국(궁예 축출), 공산 전투, 일리천 전투(후백제 멸망)들을 소재로 한 미션들이다.
  43. 당시 임경옥이라는 이름으로 출연.
  44. 애술은 싸움은 잘하지만 머리가 약간 딸리고, 신덕은 대체적으로는 중상급이지만 그야말로 최고는 아닌 것 같고, 최필은 그야말로 평균 이상일 정도...물론 유금필을 한번 발라봤지만... 근데 그 상황은 유금필이 너무 깊숙히 들어온 상황이었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