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광기

太平廣記, (영어)Taiping Guangji (981년)

1 개요

북송송태종 때 편찬된 설화집. ≪태평어람≫과 동시에 편찬되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태평흥국 연간에 완성되었다. 이방, 후몽, 이목, 서현 등 12명이 978년에 1년에 걸친 편찬 작업을 마쳤고, 981년에 목판을 새겨 출판하였다. ≪태평어람≫, ≪책부원구≫, ≪문원영화≫와 함께 송사대서(宋四大書)라고 불렸다.

2 내용

초판 인쇄 뒤, 후학들이 급히 필요로 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추가 인쇄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민간에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명나라 시기에 들어와서야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1566년에 담개(談愷)가 당시에 전해지던 필사본을 바탕으로 교열을 본 뒤 간행한 것으로, 이를 '담각본(談刻本)'이라 부른다. 이후에 나온 판본들은 전부 이 담개의 판본에 의거해 간행한 것이다. 판본으로는 명가정담각본, 명활자본, 명만력허각본, 명심씨야죽재초본, 청건륭황각본, 청가경방각본, 민국필기소설대관본, 민국소엽선방석인본, 왕소영점교본 등이 있다.

내용으로는 당나라가 대부분을 할애하고 그 다음은 남북조시대가 어느 정도 비중이 있지만 당나라와는 분량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 책에 수록된 일화, 야사, 인용된 항목 등은 후대 사람들이 고치거나 추가한 부분이 많으며, 이미 유실된 책을 출처로 끌어오는 일화가 많고 책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역사서로의 가치는 낮을 수 있지만 각종 고전 소설을 모아놓은데다가 다양한 시대의 일화를 모아놓아 그 당시의 생활상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당시 사회 상황에 대한 연구에서의 가치가 있다.

고대 문학이나 후대의 문학에 크게 영향을 준 책으로서, 청나라 때의 기윤은 ≪태평광기≫를 소설가의 깊은 바다라고 칭송했으며, 설화인(說話人)[1]들은 반드시 어려서부터 ≪태평광기≫를 익혔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서 이름이 보인다. 경기체가 <한림별곡> 2장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태평광기≫ 400여 권을 열람하는 광경이 어떠하냐고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히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보면 고려의 고종 이전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 축약본으로 조선 시대에 들어와 성임이 세조 때 ≪태평광기상절≫, 성종 때 ≪태평통재≫를 간행했지만 한문이라 백성들을 읽을 수 없어, 명종 때 명나라의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것이라고 추정되는 ≪태평광기언해≫가 간행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구해볼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학고방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있다. 색인 포함 총 21권, 각권당 약 800 페이지, 가격 27,000원이라는 위엄 넘치는 형태로 완역되었다. 번역 기간만 3년 6개월 이상 되는 무시무시한 물건으로 전문연구자가 아니면 개인이 소장할 물건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압박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 옛날 이야기를 대중에게 들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던 사람. '설화'는 오늘날에는 '평서(評書)'라고 부르는데, '소설 등의 이야기 거리(話本)'를 감칠맛 나게 들려주는 민간 예술이다. 판소리 사설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