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1953년 2월 28일 생.

미국경제학자이자 프린스턴대학의 경제학 교수[1]. 뉴욕 타임스 컬럼니스트이다.

1 저서

저서로는 옵스펠드와 공저한 <국제경제학>, <크루그먼의 경제학>(경제학 원론 내용)이 있으며, 에세이나 경제논평에 속하는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등이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함께 유명한 리버럴 진영의 경제학자로, 저서가 많이 번역되었다. 논평을 많이 쓴다. 간단명료한 비유가 일품. 해외의 경제학자를 인용할 때 언론에서 주로 인용된다.

주요 분야는 지리적 불균등성을 토대로 한 국제경제학 분야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도 이 논문으로 했다. 그러나 국제경제학 학부수준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내용. 반면 대중서는 주로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논의를 주로 한다.

2 학문적 업적

전공은 국제무역론이며[2] 국제금융위기에 대한 연구 및 금융-거시경제학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불완전경쟁시장에서의 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단순 비교우위 무역으로는 공업이 발달한 선진국끼리의 무역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예일 대학교를 수석 졸업하였고 MIT에서 석,박사학위를 3년만에 취득하였는데, 이때 나이가 24살이었다. 오늘날 국제무역론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된 표준무역이론을 박사학위를 수여받을 당시에 생각했다고 한다(...)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John Bates Clark Medal)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둘을 모두 받은 경제학자는 지난 70년을 통틀어서 단 12명에 불과하다.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당시 나이가 만 55세로써, 이는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의 51세에 이어 두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대표적인 학문적 업적은 국제무역에서의 표준무역이론[3], 국제금융에서의 AA-DD 모형, 거시경제학에서의 유동성 함정이나 신용제약 등이 있다.

크루그먼 이전의 국제경제학은 헥셔-올린 모형(Heckscher–Ohlin model)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딕시트-스티글리츠(Dixit-Sitglitz) 모형을 국제무역론에 적용하여 그리하여 크루그먼은 어떻게 수확체증과 일반 균형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이후 국제적 경쟁에서의 규모 수확체증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그 이후 크루그먼은 국제무역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이후, 엘하난 헬프먼(Elhanan Helpman)과 함께 연구하여, 불완전 경쟁의 개념을 국제 무역 이론에 적용하는 것에서 큰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수확 체증과 경제 지리(Increasing Returns and Economic Geography)" (1991)는 신경제 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 분야에서의 중요한 논문으로 취급된다. 이후 계속 발표한 논문과 저서를 통해 크루그먼은 신경제 지리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리고 크루그먼은 다시 한 번 많은 학문적 공로를 세운 경제학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크루그먼은 복잡계 경제학 분야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Complexity and Emergent Structure in the International Economy" (1993)과 <자기 조직의 경제>에서 드러난다.

폴 크루그먼은 냉전시절 구 소련의 경제성장에 대해서 연구한 적이 있었다. 폴 크루그먼은 구 소련의 경제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양적요소 투입량 증가의 결과일 뿐이라는, 따라서 이러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대담한 결론을 냈다. 비유하자면 하루 종일 일해서 10,000원을 벌던 사람이 시간당 임금을 높이는 노력을 한것이 아니라 단순히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버는 돈을 늘린 것인데, 아무리 잠자는 시간을 줄인다 한들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로 폴 크루그먼은 큰 명성을 얻는다. 이것이 대단한 업적이라고 찬사를 받은 이유는, 지금은 구 소련 경제가 엉망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정보가 없던 냉전시절에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구 소련의 초창기 경제성장율은 오히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앞설 정도였고, 서방의 경제학자들 조차도 공산주의와 경제성장의 놀라운 비결에 대해 감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대담한 결론을 냈고, 또 그것이 나중에 정확하게 맞았다는 것이 판명되자 유명해진 것이다.
1990년대에는 개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쪽의 연구가 이뤄졌다. 경제 성장과 관련하여 "The Myth of Asia's Miracle" (1994)에서는 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허구적이라고 주장하여 지적 충격을 던졌다. 이 때의 논리도 위에서 설명한 것과 비슷했는데, 폴 크루그먼은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리던 4개 국가의 경제성장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양적요소 투입의 증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1997년에 국제금융 위기로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에 빠지고 한국은 IMF 관리에 까지 들어가게 되자, 폴 크루그먼의 지적이 이러한 사태를 예언한 것처럼 받아들여져서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하지만 저 논문에는 아시아 지역에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예언같은 것은 들어있지도 않았고 크루그먼도 예견한건 아니라고 인정했다. 참조1거시경제학적 연구의 결과물로 "It's Back: Japan's Slump and the Return of the Liquidity Trap" (1998)과 <불황의 경제학>이 나왔다. 그는 케인즈주의유동성 함정을 상기시키면서, 구조개혁, 재정정책과 비상식적 통화정책(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을 일본의 불황에 대처할 방안으로 내놓았다.

비주류 경제학과는 명확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Frustrations of the Heterodox 이 글에서 비주류 경제학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엄연히 기본적 입장은 스티글리츠처럼 주류 경제학

3 정책적 입장

글로벌 대불황 탈피를 위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다. 케인즈주의자로 분류되고, 양적완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통화정책을 전공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자유 무역을 지지한다[4]

4 정견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의 원제가 'The Conscience of a Liberal'(진보의 양심[5])인 만큼 진보적이며 자신이 리버럴[6]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민주당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는데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 중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제일 좋아하는 편이다. 대공황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지지자인 그레고리 맨큐신문을 통해 자주 논쟁을 펼친다. 2016 미국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샌더스의 정책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샌더스가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크루그먼을 장관에 앉히겠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때는 21세기가 지나서라고 한다. [7]

5 기타

경제학자가 된 계기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파운데이션이다. 이 소설에는 정교한 통계분석과 수학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심리역사학(pshychohistory)이라는 가상학문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흥미를 가졌지만 심리역사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학문. 그래서 현실에서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고른 것이 경제학이라고. 참조1참조2

성향이 (사회자유주의 또는 진보주의) 성향이다보니 보수진영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전공 외적인 부분으로 덤벼들면서 많은 비판을 사고 있다. 특히 같은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을 비판하다가 역공당하기까지 하였다. 참조1 하지만 보수진영만 까는 글을 쓰는건 아니고 자신의 판단에 잘못된게 있다 싶으면 진영에 상관없이 비판한다. 앞에서 얘기한 2016년 미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샌더스 항목 참조. 애초에 크루그먼의 성향이 그 중간의 진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미국식 리버럴 성향이기 때문에 양쪽을 다 비판하는 것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조교수 시절 지쳤던 크루그먼은 자기를 격려하기 위해 "성간 무역 이론"이라는 SF적인 논문을 썼다.

실제로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입담이 넘친다 #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위키인용집에 나와 있다.

2012년에 방한하여 숭실대학교에서 짧은 강연을 했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지금의 아내인 웰즈도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딴 경제학자다. 크루그먼이 글을 쓰고 그 중 일부는 그녀가 편집을 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내용이 보다 정치적으로 과격하게 편집된다고 한다. [8] 이를테면 크루그먼은 '오바마는 위기에 대처하려 할 때, 그는 공화당 지도자들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웰즈는 여기에 더 추가한다. '그러기는커녕 방해와 사기에 직면할 것이다.' '경기부양법안은 잘해봐야 위기를 치유하지는 않고 그저 완화할 것이다'라고 했다면 이를 '추후 몇 년간 직면하게 될 경제적 곤란을 완화할 것이다'라고 수정한다. 이 외에도 '여기에 국유화를 두고 공화당과 은행가들의 강경한 반대를 구체화하자'는 식으로 지적한다던가, '다음 문단에 그냥 지나가지 말고 그들이 벌이는 허세, 공갈을 모두 까발려달라'고 한다던가. 어쩌다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보통 웰즈 쪽이 더 강경하고 단호한 논조를 주문한다고 한다.

☞읽을거리::눈에 보이지 않는 부자들
  1. 2015년 6월 프린스턴대 교수직을 은퇴하고 뉴욕시립대CUNY의 교수로 옮기기로 발표했다 [1]
  2. 실제로 그의 굵직굵직한 연구성과들도 대부분 국제경제분야이며 그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인 것 역시 크루그먼-옵스펠드의 '국제경제학'이다.
  3. 불완전경쟁시장에서의 국제무역 연구 중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으로 2008년 노벨상 수상
  4. 국내 진보 성향 인사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면. 하지만 대부분 주류 경제학자들은 불평등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자유무역은 원론적으로 대부분 지지한다.
  5. 이 제목은 1960년대 미국의 대표 보수정치인이었던 배리 골드워터(1964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의 대표적인 저작 '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에 대한 카운터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골드워터의 저작이 번역되지도 않은 만큼, 적당히 한국독자들에게 어필할만한 제목으로 대체마개조하여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아쉬운 번역판 제목이다.골드워터 책도 번역이나 좀 됐으면
  6. 자신의 진보적이고 리버럴적 경향에 대해 크루그먼은 대체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비슷한 의미로 이해한다. http://fivebooks.com/interviews/paul-krugman-on-inspiration-liberal-economist. 미국에서 리버럴이라는 의미 자체가 다소 사회민주주의와 비슷한 뉘앙스를 띈다는 의견도 있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민주당 지지자를 뜻하는것에 가깝다. CPC가 세를 불려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민주당 하원의 1/3 정도이다. 그러나 유럽의 정통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크루그먼을 사회자유주의자 정도로 보지 사회민주주의자로 보지는 않는다.
  7.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10/03/01/the-deflationist
  8.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10/03/01/the-deflation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