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의 역사
Histoire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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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150px
국기국장
250px
1848년 ~ 1852년
국가지롱드당의 노래
위치오늘날의 프랑스
수도파리
정치체제공화정
국가원수대통령
언어프랑스어
종교가톨릭
주요사건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1848년 건국
1852년 폐지
통화프랑
성립 이전7월 왕정
멸망 이후프랑스 제2제국

1 개요

프랑스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 1세를 몰아내고 세워진 정권이다.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1851년 친위 쿠데타로 인해 1852년에 폐지된다.

민중 혁명으로 세워졌지만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보이다가 쿠데타로 뒤집어졌다는 점에서 한국의 이름도 같은 모 공화국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2 역사

1848년 2월 파리의 시민들은 투표권을 요구하면서 봉기를 일으켰고, 몇일에 걸친 시가전 끝에 루이 필리프 1세가 퇴위하면서 7월 왕정은 무너진다. 온건좌파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과 급진좌파인 루이 블랑 등이 고루 참여한 임시정부는 공식적으로 공화정을 선포한다. 투표권을 둘러싼 시위가 혁명의 출발점이었던만큼 모든 성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1] 한편 국가의 상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는데,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적기를 국기로 쓸 것을 요구했지만 이때 처음 썼으면 소련보다도 70년 먼저 적기가 국기로 사용될 뻔 했다. 임시정부의 수반이었던 라마르틴은 이를 거부하고 삼색기를 계속해서 국기로 유지했다.[2]

그렇지만 새로운 공화정은 민중들의 피로 쟁취한 공화정이었기에 정부는 기본적으로 대중들[3]의 눈치를 많이 볼 수 밖에 없었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은 진정될 모습을 보이지가 않았다. 실업 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설치한 직업 알선소(ateliers nationaux)에서 노동자들이 자주 소요를 일으켰던 것. 이런 상황에서 급진좌파세력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기 짝이 없는 사상으로 여겨졌던, 노동조합의 허용, 근로시간 제한, 노예제 철폐[4]와 같은 제도를 시행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보수적이었던 농민과 부르주아 계층을 자극했고, 중도보수 계열들이 의회를 장악한다. 중도보수 계열들이 장악한 의회는 원내와 정부 내의 급진좌파들을 축출해 내는 한편, 치안 불안의 온상이었던 직업 알선소까지 폐쇄해버리는 초강수를 둔다.[5][6]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6월 폭동이라고 불리는 무장봉기를 파리 시내에서 일으키지만 정규군에게 진압된다.[7] 6월 폭동 이후 의회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프랑스 사회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이후 새로운 정부를 이끌어나갈 수반인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1848년 12월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데...

“어디선가, 헤겔은 세계사적으로 몹시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씩 나타난다고 썼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어야 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에는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듣보잡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 하나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은 '나폴레옹'이라는 그의 성에 열광하면서 그가 삼촌처럼 다시 한 번 프랑스를 위대한 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몰표를 던졌으며, 부르주아 계층 역시 반 사회주의 적 경향이 강했던 그를 밀어주었다. 심지어 노동자들 역시, 6월 폭동 당시 자신들을 진압한 공화정부에 분노하여 나폴레옹에게 표를 던질 정도(...)

공공연히 반공화주의 사상을 표출했던 그가 공화정의 기틀을 다져야 할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으로 이미 프랑스 제2공화국의 운명은 끝장이었다. 나폴레옹은 끊임없이 의회를 탄압하더니 집권 3년차인 1851년 친위쿠데타[8]를 일으켜 대통령의 임기를 10년으로 늘려버린다. 이어 다음해에는 자신의 황제 즉위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결과는 당연히 압도적인 찬성.[9] 그렇게 프랑스 제2공화국은 4년만에 끝장나고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3세로 황제 자리에 즉위하면서 프랑스 제2제국이 시작된다.
  1. 덕분에 24만명이던 유권자가 하루아침에 940만명으로 40배 가까이 늘어났다.
  2. 라마르틴은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본업이 낭만주의 계열 시인이어서 엄청난 웅변을 자랑했는데, 사회주의자의 반대를 깔아뭉개고 삼색기를 국기로 유지할 것을 선언했던 연설은 오늘날까지도 '황금 하프'라고 불릴 정도로 명연설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3. 심지어 이 당시 파리의 민중들의 수중에는 무기가 있는 상황이었으니...
  4. 물론 프랑스인들을 노예로 썼던 것은 아니고 흑인 노예를 말하는 것이다.
  5. 다만 직업 알선소의 경우 단순히 치안뿐만이 아니라, 실업자들에게 국가가 모든 생활비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는 엄청난 금액이 부담으로 돌아왔던 탓이 크기도 하다.
  6. 또한 직업 알선소의 노동자들이 국비로 일도 안하고 먹고 사는 주제에 계속 반정부적 언행을 보이니 정부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 밖에(...)
  7. 다만 이로 인한 사상자가 1만명이 넘어갈 정도로 많은 피가 흘렀다.
  8. 여담으로 이 친위쿠데타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전일에 이루어지도록 일부러 계획했다고 한다.
  9. 734만 표가 찬성, 60만표가 반대. 근데 기권이 150만 표나 됐다. 뻔히 결과가 보이는 짜고 치는 고스톱에 대중들이 기권표로 조소를 보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