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한민국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1 개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동조합 연맹이다. 줄여서 한국노총이라고 부르며, 한국노총으로도 검색할 수 있다. 홈페이지

2 성향과 역사

민주노총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보수우파에 가깝다. 정부와 관계가 상당히 험악한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정부에 다소 협조적이며, 규모에 비해 정치적 투쟁력은 적다. 다만 민주노총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일뿐, 노동조합이다보니 노동자 중심 정책을 많이 펼친다.

한국노총이 온건한 정치 노선을 띄게 된 것은 탄생 배경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해방 직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부분 좌파 계열의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가 지배적이었고, 이에 위기를 느낀 김구와 우익 계열의 인사들이 대한독립촉성협의회의 산하 단체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조직하게 된다. 이때 깊이 관여한 인물들이 바로 초대 사회부 장관이었던 전진한이다.[1] 대한독촉노동총연맹은 약칭 대한노총이라 불렸고, 초대 위원장이 전진한이었다. 대한노총은 초기에는 전평에 대항하는 우익 노동조합이었지만, 얼마 안가 이승만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변 단체가 되었다. 대한노총 간부로 그 유명한 김두한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 1954년에는 아예 이름을 대한노총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1960년 한국노총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민주화되기 전까지 한국노총은 어용노조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오랫동안 한국은 복수노조 설립 금지에 관한 법이 있어서, 복수 노조는 물론 복수 전국단위 노동조합 연맹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국가적 효율을 위해 노동조합을 통합해서 하나의 기구만을 두도록 한다는 취지때문이었다.[2] 정부 통제 하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 보니, 노조 내부의 민주화 요구에도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노동운동 자체에도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3] 그래서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어떻게든 중앙위원에 들어가서 노조를 바꿔보려는 전술을 쓰기도 했고, 아예 대기업 노조 하나가 통째로 탈퇴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생겨난게 민주노조 건설운동이다. 1970~80년대에는 각 사업장별 민주노조 건설운동이 일어났고, 70년대에는 기업별 노조운동이 일어났다. 80년대에는 구로동맹파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연대파업이 일어났다.

물론, 이는 한국노총과는 무관하게 개별 작업장에서 조직된 노조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이로 인해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이 생겨났고, 뒤이어 조직된 전노협은 1987년의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중심에 있던 단체다. 이 흐름은 90년대에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소속의 금속노조로 이어진다.][4] 하지만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총 내부에서 개혁 요구가 높아지면서, 어용 노조 성향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타협주의와 협동주의적 성격이 만연해 있다.

민주노총이 주로 진보정당과 연대한다면, 한국노총은 양대 정당과 연대하였다. 김대중새천년민주당과 연합하여 비례대표 후보를 내고 당선자를 얻었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과 대립,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국사회민주당을 만들었으나 망했고(...) 2004년 총선 당시에는 녹색사민당으로 고쳐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시도했으나 소수점대 득표율(...)로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5] 하지만 한국노총은 이명박 정부 초창기부터 노동과 복지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으며, 결국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통합당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지역 본부별로 지지한 후보가 달랐다.

2013년 12월 23일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뜻에서 정부의 사죄가 있을 때까지 노사정 위원회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의한 것을 시작으로, 기사

2014년 12월 3일, 국내 제3노총인 국민노총[6]과 조직 통합을 선언했으며, 민주노총과 규모 격차가 더 커졌다. 기사

2015년 9월 노동개혁과 관련된 내용으로 노사정위원회가 파행을 겪었다. 이를 잘 수습하여 통과 되는 듯 하였으나.... 한국노총 중집위에서는 분신을 시도하는 등 파행이 있었다. 한국노총 전체로 볼 때,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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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사정 대타위 파탄을 선언,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자들을 죽이는 짓이라면서 올해 총선 새누리당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 이에 극우단체에서는 한국노총민주노총 2중대이뭐병 반응을 보였다. 그런다고 한국노총 니네가 어용으로 2중대 소리 안 듣는거 아니다 사실 제 20대 총선에서 말과는 다르게 새누리당에 비례대표로 한국노총 인사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용확정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故 전태일의 여동생 더불어민주당 전순옥 비례대표 의원은 한국노총이 1960~70년대의 흑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꺼냈다. 과거 한국노총이 중앙정보부의 통제 하에 있었던 이야기, 한국노총이 정부의 어용 노동단체이자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관리 단체, 지도부의 부패에 대한 관용, 그리고 그러한 것을 통제하던 중앙정보부의 행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 한국노총은 올라오는 이야기는 막고, 위에서 내려오는 정부 정책을 지부 노조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만 했다고 깠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조합 대표의 선택권도 제한되었고, 그렇게 뽑힌 노동조합 대표는 안기부에 가서 사상교육을 받은 후 보상을 받았음도 밝히고 있다.

3 반정부 투쟁 돌입

당초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한국노총의 성향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더니, 2015~2016년에 이르러서는 새누리당 심판, 노동개악 반대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에 극렬히 반발하고 민주노총과 공동대응하는 등 투쟁적 성격을 보였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전·현직 간부 7명이 무더기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면서 그 진의를 의심받고 있다. 역시 어용새끼들

2015년 한국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1988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 전진한은 일제시대부터 민족주의 협동조합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이자 조합주의자이다. 전진한의 조합주의는 우익적 협동주의 내지는 생디칼리즘이었다. 그는 민족주의자 김성숙, 사회민주주의자 장건상, 무정부주의유림독립노농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중도 우파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2. 이러한 점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의 노동조합 정책을 파시즘협동주의적 방식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3. 물론 1960년대와 70년대의 임금인상 투쟁에 어느정도 조직력있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의 개별 사업장 노조의 투쟁에 그칠 뿐이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상급 단체가 없는 노조가 많았고, 무엇보다 노조 자체를 구경하기 힘든 시대였다.
  4. 여담으로 1970년대에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경기도지사 김문수다. 나 노조위원장인데
  5. 근데 이명박 정부에서 내세웠던 경제 기조가 신자유주의였고 거기에 비정규직 고용기간연장(실패로 돌아갔지만)을 추진했었기때문에 진보 세력으로부터는 어용노조이니 귀족노조라는 온갖 비난을 받았다. 뭐, 나중에 와서 이문제때문에 관계가 끊어지긴 했지만
  6. 2011년 11월 출범했으며, 통합 전 노동조합원 비율이 전체에서 1%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