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대한민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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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전문은행*(설립준비중)케이뱅크* ‧ 카카오*
외국은행의 국내지점중국중국공상 ‧ BNI ‧ 광대은행 ‧ 중국교통 ‧ HSBC
† 개인금융 미취급,
명칭은 대외명 기준, 정렬은 지로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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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銀行. The Bank of Korea. 대한민국의 금융을 담당하는 중앙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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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舊 남대문로3가 110번지) 소재. 앞쪽의 건물은 1910년대 일제에 의해 건립되어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본관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화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적 제280호. 현재 본관은 1987년 건립된 뒤쪽의 신관이다.
한국은행 공식홈페이지

1 개요

한국은행법
제1조(목적) ①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

제2조(법인격) 한국은행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한다.

제3조(한국은행의 중립성)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제4조(정부 정책과의 조화 등) ①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②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시장기능을 중시하여야 한다.

제5조(한국은행의 공공성·투명성) 한국은행은 업무를 수행하고 기관을 운영할 때에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6조(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의 수립 등) ① 한국은행은 정부와 협의하여 물가안정목표를 정한다.
② 한국은행은 매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수립하여 공표하여야 한다.
③ 한국은행은 제1항에 따른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제7조(사무소) 한국은행은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며, 업무수행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정관(定款)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사무소(支事務所) 및 대리점을 둘 수 있다.

제47조(화폐의 발행)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

제48조(한국은행권의 통용)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法貨)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

제49조(한국은행권의 권종 등) 한국은행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어떠한 규격·모양 및 권종(券種)의 한국은행권도 발행할 수 있다.

제49조의2(위조·변조된 한국은행권의 집중 관리) ① 한국은행은 위조되거나 변조(變造)된 한국은행권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끝난 후에는 그 위조 또는 변조된 한국은행권을 한국은행에 집중하여 관리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위조 또는 변조된 한국은행권의 집중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한국은행이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정한다.

대한민국의 통화정책[1]을 결정하는 경제학오타쿠들의 성지 중앙은행이다. 한국은행권 원화를 발행하며,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물가 관리'가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한국은행의 최우선 목표...이긴 한데 최근에 다소 제정신이 아닌 행보를 보인다는 의견도 있으니 판단은 개인이 알아서. 어쨌든 발권력 남용 논란이 상당히 거센 상황. 통화량 조절(물가 관리)을 위한 가장 큰 권한은 지급준비율과 금리결정. 이와 함께 최근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행사한다. 화폐의 신뢰성을 위하여 위조지폐에 대한 대응도 담당하고 있다. 다만 화폐의 디자인과 발행권은 가지고 있지만, 화폐 제조는 기획재정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조폐공사에서 전담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와 달리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

본점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 16개의 지역본부가 소재한다. 본점에서는 화폐 금융 화폐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짐바브웨 달러 같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돈도 있다.다만 짐바브웨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때문에 자국 발행을 포기했다.

근 몇 년 사이 오만원권 지폐 인물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대로 기획재정부와 그리 좋지 않은 사이를 보여 왔다. 광복 직후부터 2공화국 까지는 한국은행의 인적자원이 재무부보다 월등하여 고위층의 파견근무 등이 잦았고, 이로 인해 재무부를 '한국은행 세종로 출장소'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3공화국 출범 이후 수출을 통한 고도 성장을 목표로 세우고 일사불란한 경제정책 집행을 위해서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독립성이 크게 약화되어 재무부와의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후, 한국은행이 확실한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기획재정부의 한 부서로 인식할 정도였다. 실제로 1997년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불렸던 별칭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였다. 나름흑역사.

1995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확실한 독립기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통령 및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한국은행법을 통해 독립이 되었지만, 그동안의 관습적인 운영 원리를 보면 정부의 간섭이 상당히 잦은 편이다. 한국은행 총재, 부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통화운영위원회 구성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앙은행은 특성상 정부와 항상 독립성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므로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최근엔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 일부 정신나간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을 제외하곤 독립성이 크게 확보된 편. 요즘엔 기재부, 금융위 등과 같은 급끼리 회의도 하고 인사교류도 하는 등 중앙은행으로서의 지위도 정상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최근 몇년간 경기 침체를 핑계로 선제적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현재의 고물가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2] 그러나 이는 2011년을 전후한 시기의 이야기이고, 2014년 기준으로는 물가 등을 핑계로 저금리 시대에도 금리 인하를 하지 않아 경기 부흥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수장의 명칭은 한국은행'장'이 아닌 한국은행 '총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총재'라는 단어가 너무 권위주의적이라 바꾸자고 했었는데 현실적인 이유[3]로 일단 놔두기로 했다. 관련기사 화폐 개혁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은 못 바꾼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총재나 은행장이나 뭐 다를 것도 없잖아?

대한민국GDP통계청이 아니라 한국은행에서 작성하여 발표한다. 지방자치단체별 GRDP는 통계청 소관.

2 금융통화위원회

내부 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사실상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7명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한국은행 총재가 겸하고, 나머지 6명은

  • 한국은행 부총재(당연직)
  • 한국은행 추천 인사
  • 기획재정부 추천 인사
  • 금융위원회 추천 인사
  • 대한상의 추천 인사
  • 은행연합회 추천 인사

로 구성된다. 대한상의, 은행연합회 추천은 정부(특히 기획재정부)의 추천이나 다름없다. 총재, 부총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추천 인사는 사실상 정부의 경제 관료 낙하산 인사 몫. 따지고 보면 전부 정부 사람들. 그래서 법적으로만 독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3 과거

한국은행의 전신은 일제 수탈의 한 도구였던 조선은행이었다는 흑역사가 있다. 저 서울역 구역사스러운 건물 모양만 봐도 보이는 사실. 도쿄역일본은행, 구 부산역의 건축가인 다츠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했다. 다만 서울역은 다츠노 긴고의 제자가 설계에 참여했을 뿐 건축을 총괄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여튼 한때 일본의 자랑 중 하나였던 만큼, 한국은행 바로 앞의 사거리는 역시 한때 일본인 거리이자 당대 모던뽀이의 거리였던 명동[4]의 코앞에 있었고, 일본어로는 센긴마에(조선은행앞, 鮮銀前)라 불리웠다. 정확히는 현재의 소공로가 구한말에 '하세가와쵸(長谷川町)'라는 이름으로 뚫리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인들이 구한말부터 거대한 차이나타운[5]을 형성하고 있던 걸 눈꼴시러하던(...) 일본군이 군사용 목적[6]으로 차이나타운을 반 갈라놓는 목적으로 짓고 거기에 조선은행을 떡 박아놓은 것.(...)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명동, 충무로와 함께 일제시대 최고의 번화가[7]였으며, 1950년 한국은행이 되어 수탈셔틀 신세를 벗어난 현재도 이곳은 한국은행사거리로 불리며 주요 광장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사거리 한복판에 분수대가 있는데, 일제적의 일본인들이 깔아놓은 분수대의 후계자쯤 되는 녀석.

4 관련 문화재

참고로 저 사거리에는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별관, 서울중앙우체국, 신세계 본점 본관, SC은행 제일지점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별로 변한게 없는 사거리라고 볼 수 있다? 완전히 새로 지어진 우체국을 제외하면 모두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항목에서 거론된다.

  • 한국은행 본관. 사적 제280호.
  • 한국은행 소공별관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유리로 덮인 건물. 사진을 저렇게 찍어놔서 그렇지 여기도 일단은 한국은행 건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한국상업은행 본점이 있었는데, 광복 이후 주요 은행으로 성장하면서 그때 그건물 위층으로 하얀 콘크리트 건물을 증축했다. 후에 IMF를 지나면서 상업은행은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합병되었고, 상업은행 본사는 한은에 팔리고 리모델링되어 유리궁전이 되었다. 다만 2015년부터 한국은행 본점 부지 전체를 리모델링하면서 매각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기도 원래는 서울역풍의 건물이 있었다. 1915년에 일본이 처음으로 우체국을 지을 당시에는 당연히 벽돌건물. 그러나 6.25 전쟁으로 우체국이 뼈대만 남아버려서 이후 복구할 때는 뼈대에 콘크리트만 덧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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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81년 헐리고 성냥갑(...)이 지어졌으며, 이는 2003년까지 쓰이고 현재 마징가, 바지타워포스트타워로 불리는 사옥이 지어지게 된다. 사실은 신한카드타워 한국에 있던 근대건축물 중 제일 크던 건물이라 근대건축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뭇 아쉬운 감이 있다.

일본의 백화점인 미츠코시 경성점으로 지어졌다. 이상이 소설 날개에서 "날자, 날자꾸나."라고 했던 곳이 이 백화점의 옥상이었다. 일제 패망 후에는 미군 PX(...)였던 흑역사가 있으며, 이후 설립된 동화백화점을 삼성그룹이 인수하여 신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원래 4층에 사거리를 따라 ㄱ자형으로 되어 있던 건물이었던 것이 증축되어 5층 사각형 건물이 되었고, 원래의 외장재도 몇번 교체되었기 때문에(최근 리모델링은 그나마 원본에 가까움) 문화재는 못된다. 그러니 이상을 따라하려면 옥상 말고 5층에서 따라하자.
조선저축은행 본점으로서 지어졌고, 해방후 제일은행이 되어 본사는 종각으로 가고 제일은행 제일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영국스탠다드차타드에 팔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내 장식을 근대에 준하게 꾸며노았기 때문에 다크나이트의 고담시 은행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5 입행

한국은행 입행은 종합기획직원(G5)와 일반사무직원(C3)로 나누어진다. G5는 통화신용정책, 경제동향조사, 금융시스템 관리 등 주요핵심업무를 담당하며 C3는 국고, 발권, 출납, 환전 등 사무보조를 담당한다. 시중은행으로 치면 G5는 본사 근무자이고 C3는 지점 여수신 담당 정도. 일반적으로 한국은행 직원이라고 하면 G5를 말한다. (C3도 시중은행 직원들 상대로는 나름 갑의 위치에 있다는 듯?)

종합기획직원(G5)의 경우, 대우도 공공기관 중 최상위고 그만큼 들어가기도 힘들다. 다만 서류전형은 비교적 널널한(?) 편. 필기 시험에서 대부분의 합격 여부가 결정되며 경제학 필기 시험의 난이도는 행정고시 재경직렬 이상으로 어려워 국내에서 출제되는 모든 경제학 시험 중 최고 난이도이다. 외부인사 총재시절에는 쉽게 출제되는 경향이, 내부인사 총재시절에는 어렵게 출제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행시 재경직렬과 한국은행을 같이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요즘에 그랬다간 둘 다 말아먹기 쉽상이다. 재경직이 한은으로 돌려 합격하는 케이스는 매우 소수이며, 그것도 경제학 고득점자였던 사람들. 앞서 말했듯 총재의 출신에 따라 난이도가 급변하는데 현 한은총재 취임 이후 매 시험마다 불지르고 다녀서 재경직 준비자들이 플랜B로 한은을 노리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행시에서는 직관을 가지고 글로 서술하는 형식의 문제를 수리적으로 꼬아서 출제하고 계량적 지식을 전임 총재 때보다 훨씬 많이 요구하고 있다. 보통 학부 책에서는 실마리만 던져주고 끝내고 마는 내용도 적당히 변형해서 내기 때문에 석사 1학년 과목을 듣는 준비생도 많다.

그리고 실제 업무에도 고수준의 경제, 경제학 지식이 필요하며, 신입행원들은 경제학과 출신이 상당수(약 70%)이다.

경제직렬 시험과목은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국제경제학, 화폐금융론, 계량경제학이다.

계량경제학의 경우 대부분의 경제학과에서 경제수학, 경제통계학을 수강한 이후 2학기에 걸쳐 가르치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기출을 보면 다른 경제학 과목의 문제도 어렵지만 계량은 기출 범위 자체가 광범위하다. 특히, 한국은행 시험에서는 시계열(time series)도 출제 대상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경우에도 시계열 수업은 2-3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하며, 계량경제학 수업에서는 보통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비슷한 시험으로 취급되는 다른 금융공기업에서도 계량경제학을 출제하지만, 시계열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시계열은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에 학부 수준에서는 상당한 고급과정으로 취급한다.

경제학 외에 경영학, 법학, 통계학, 전산학 전공으로도 필기시험을 볼 수 있다.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중 절반 정도가 경영학 전공이며, 2014년에는 24명이 합격했으며 그 중 12명이 공인회계사 가산점을 받았다. 다만 2015년 부터는 한국은행 주관 금융통화경시대회 수상실적 이외에는 (KICPA AICPA CFA FRM 등등) 가산점이 없다.

경영학 필기시험의 난이도는 공인회계사 1차와 2차 시험의 난이도 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회계사 시험의 유형과는 다른 유형의 시험이기 때문에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주요 과목은 재무회계 (고급회계는 거의 출제되지 않는다), 재무관리, 원가관리회계, 경영학이며 회계사시험과는 달리 경영학 과목 문제도 숫자를 써서 푸는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에서는 재무관리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그 중에서도 선물옵션스왑의 난이도가 악명높다.

경영직렬까지는 2자리수를 모집하지만 법학, 통계직렬에서는 1자리수만 모집한다. 그래도 이 두 전공은 거의 매년 채용하나, 전산학 전공은 인력수요에 따라 채용하지 않는 해도 있다.

입행 후에는 다음해 1월 초부터 5주간 신입연수가 있고 2월 초부터 첫 출근을 한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일이 빡세다는 평가이며 외부 시선들과 달리 내부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 다만, 외국 학술연수기회가 있다. 1년에 70여명이 입행한다면 매년 15명 내외의 직원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1~2년에 걸쳐 지원받는다.

산업화 시기에는 상고졸업 후 바로 한국은행에 입행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다. 한국은행 인사를 찾아보면 상고출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업화 시기 특성상 상고에는 가정이 불우하거나 경제형편이 좋지 않은 인재들이 몰렸고 이들이 한국은행 등 국책은행이나 사설은행에 입행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외환위기 이후 다 사라졌다.

6 역대 총재

  • 초대 구용서(1950.06.05~1951.12.18)
  • 2대 김유택(1951.12.18~1956.12.12)
  • 3대 김진형(1956.12.12~1960.05.21)
  • 4대 배의환(1960.06.01~1960.09.08)
  • 5대 전예용(1960.09.08~1961.05.30)
  • 6대 유창순(1961.05.30~1962.05.26)
  • 7대 민병도(1962.05.26~1963.06.03)
  • 8대 이정환(1963.06.03~1963.12.26)
  • 9대 김세련(1963.12.26~1967.12.25)
  • 10대 서진수(1967.12.29~1970.05.02)
  • 11대 김성환(1970.05.02~1978.05.01)
  • 12대 신병현(1978.05.02~1980.07.05)
  • 13대 김준성(1980.07.05~1982.01.04)
  • 14대 하영기(1982.01.05~1983.10.31)
  • 15대 최창락(1983.10.31~1986.01.07)
  • 16대 박성상(1986.01.13~1988.03.26)
  • 17대 김건(1988.03.26~1992.03.25)
  • 18대 조순(1992.03.26~1993.03.14)
  • 19대 김명호(1993.03.15~1995.08.23)
  • 20대 이경식(1995.08.24~1998.03.05)
  • 21대 전철환(1998.03.06~2002.03.31)
  • 22대 박승(2002.04.01~2006.03.31)
  • 23대 이성태(2006.04.01~2010.03.31)
  • 24대 김중수(2010.04.01~2014.03.31)
  • 25대 이주열(2014.04.01~현재)

7 기타

1946년부터 실업농구단을 운영하여 1970년대까지 산은-기은과 함께 금융팀 삼대장으로 군림하여 명센터이자 KBL 패밀리 초대 회장을 지낸 백남정, 김인건 등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해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삼성, 현대 등이 창단하여 거액을 들여 좋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성적이 급감하여 1983년 농구대잔치 출범 이후 오동근과 김재득이 분투했음에도 언제나 승수셔틀(...) 신세. 결국 1996년에 해체되었다. 이승학, 김상준, 김영래 3명은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하고, 다른 선수들은 그대로 은퇴.

조사-연구자료 섹션에 있는 자료들은 현직자들도 자주 찾아볼 정도로 방대하고 정교한 자료들이 그득하다. 이 자료들을 출판도 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재료값 수준의 돈만 받고 팔고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5천원 정도 가격에 파는데, 대학교 복사실에 가도 이 정도 가격은 안나온다. 물론 홈페이지에서 PDF파일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경제교육 플래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또 금요일에 본점에서 특별강좌를 하는데 이게 꽤 인기있는 편이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에 신청이 시작되면 30분도 안돼 마감이 된다. 특별강좌에 참가할 때마다 쿠폰을 1장씩 주는데 25장을 모으면 한국은행 경제기본과정 수료증을, 50장을 모으면 한국은행 경제전문과정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법상 다른 은행에 출자를 할 수 없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의 주요주주이며, 외환은행의 주요주주이기도 했다. 은행 이외에 출자는 허용되어 있어서 대한민국국부펀드한국투자공사(KIC)에 매년 100-150억 달러수준의 외환보유액을 출자하고 있다.(물론 KIC 출자와 동시에 외환보유액에서는 빠진다.)

글로벌 전망모형(BOKGPM)을 개발했다.

2015년부터 한국은행 본점의 리모델링이 발표되었다. 당초에는 1,2별관[8]을 재건축한 뒤 순차적으로 본관 등을 리모델링할 계획이었으나, 보안 문제 및 공사기간 단축 등을 이유로 아예 본점을 임시이전한 뒤 본점 전체에 공사판을 벌이기로 하였다. 지하의 현금을 수송하는 것도 큰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6.25 이후 한번도 명동을 떠난 적이 없다는 한국은행의 임시이전 후보지도 비범한데, 바로 태평로 삼성 본관이다. 삼성그룹이 관계사들을 싸그리 서초동으로 이전해버려서 건물이 좀 비었는데, 한국은행이 만족스러워할 정도로 보안은 철저한듯.
  1. 금융정책 전체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일부인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통화정책을 제외한 금융정책은 정부(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행법 제1조 제2항에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생겨서 금융도 신경은 쓰고 있다. 주가 아닐 뿐이지.
  2.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저금리를 원하는 정부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 고금리를 주장하는 중앙은행 간의 마찰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과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대립. 폴 볼커는 20%에 달하는 초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압했지만, 한계기업의 파산과 실업자 급증으로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참패한다.
  3. 우리가 갖고 있는 지폐를 한번 보자. 모두 '한국은행총재'의 도장이 찍혀 있어서, 이거 하나 바꾸는데만 해도 큰 돈이 들어간다(화폐도안 변경, 이로인한 ATM기 인식시스템 변경 등).
  4. 지금도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거리라지만 일제 때에 비교할 것이 못된다. 일제 당시의 명동은 그야말로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거리'였다.
  5. 이 차이나타운은 플라자호텔을 짓기 시작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도 남아있었다! 현재 중앙우체국 옆동네에 남아있는 골목은 극히 일부의 흔적.
  6. 방사형 도로는 병력수송을 원활케 하기 위한 군사도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진해의 도시구조를 생각해보자.
  7. 현재의 충무로 카메라거리인 본정통(혼마치도리)은 1930년대 당시 즐비한 전깃불 때문에 도쿄보다도 더 번화하다는 기사가 남아 있을 정도다.
  8. 사진에는 안 보이고 독자 입장에서 왼쪽에 있을 법한 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