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민국의 10대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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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기준은 창간일자 순.


정식명칭주식회사 한국일보사
영문명칭HANKOOK ILBO
창간일1954년 6월 9일
설립일1977년 12월 14일
업종명신문 발행업
상장유무비상장기업
기업규모중견기업
본사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7[1][2]
홈페이지[3]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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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부터 2015년 6월 8일까지 사용한 제호

대한민국신문. 1954년 창간. 태양신문이라는 신문을 인수하여 지금의 사호로 바꾸었다고 한다. 창업자는 한때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장기영. 현 사주는 동화기업의 회장인 승명호.

기득권층에 대한 태도가 조중동의 그것보다는 비판적이면서 한경오의 그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편. 한마디로 중도 성향의 신문이었으며 신문사 스스로도 국내 유일의 중도 신문임을 내세웠다. 대한민국 언론사들 가운데서 물의를 빚은게 비교적 적었던 편이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말에 들어 아래의 2013년 한국일보 사태를 비롯한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중도를 내세울 때보다는 진보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중도성향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식 중도. 서술의 앞뒤가 안맞는 원인사실 원래부터도 정치부보다는 사회부 쪽이 강한 신문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1970년대 당시에는 동아일보와 함께 부수 1~2위를 다툴만큼 메이져급 신문으로 명성을 떨쳤고 90년대 초반까지도 조중동과 함께 4대 신문사에 들었을정도나, 이후로는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10위권으로 추락했다. 안습. 언론계에서는 1993년 고 장강재 회장의 별세 이후 형제들간에 벌어진 경영권 다툼으로 한국일보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

국민일보세계일보는 종교 계열에서 운영하는 신문이고 조중동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소재선정을 이끌어 내기 때문에 고정 독자층이나 지지층이 많은 반면, 다른 신문에 비해 중도 성향이었던 이 신문은 아무래도 충성도 높은 독자가 적어서 인지도나 위상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진보성향으로 바뀐 지금에는 중도 유지하려 한다며차츰 인지도가 늘어나는 추세이나 대표적인 진보 매체라 할 수 있는 한경오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많이 부족하다.

창업자인 장기영씨가 자매지를 내면서 여기저기 손을 뻗기도 했는데 코리아타임즈, 서울경제신문, 소년한국일보, 서울경제TV, 주간한국, 엘르, 톱모델, 프리미어, 일간스포츠, 스포츠한국, 학생과학 등이 있다. 그 이전까지로 가본다면 HLKZ-TV를 인수해서 2년 정도 운영했던 일도 있었고 소년한국일보에서 만화출판업을 겸했던적도 있었다. 이중 코리아타임즈와 서울경제신문은 완전히 독립된 별도 법인이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곳으로 보면 되고 주간한국은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시사주간지였다가 문화주간지로 전환되었다. 스포츠한국은 무가지로 한국일보 신문에 같이 끼어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의 신문이라고 봐도 된다. 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에 넘어갔다.

또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른 신문에 앞서 견습기자 공개채용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기자를 양성한 곳으로도 유명하고 최초의 주간지 주간한국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주간지 붐을 일으킨 시초가 되었다. 1998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출범했다.

중앙일보와는 악연이 좀 있는데 1965년에 중앙일보가 창간될 당시 다른 신문사에서 기자들을 스카우트할때 한국일보는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어 편집국 인원 25명과 업무, 광고 분야 인원 상당수를 잃어서 사주의 경제부총리 입각과 더불어 큰 타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런 기자 빼가기는 21세기 들어와서도 한동안 이어지면서 사세 약화에 꽤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어판과 영어판이 있으며, 2002년 한국 ABC협회에의 신고에 따르면 발행 부수는 100만부 이상이다. 뉴욕타임즈나 LA타임즈로부터도 기사를 제공받고 있다.

사주가 도박을 하다가 구속된 사건이 있는데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이 회장 재직시절이던 1990년대 중반에 라스베가스에서 큰 돈으로 도박을 하여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물론 이 신문사의 흑역사(...).
회장이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 되었고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전통있는 신문사답게 이런저런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많이 휘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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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옥(서울 중학동 사옥)

건축학적으로 보면 한국일보 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걸작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철거되어 건축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4] 이후 한진그룹 본사 건물에 세들어 산다고 한다.
그 철거된 부지에 새 건물이 다 지어졌는데 김수근만큼은 못해도 나름 건축에 신경쓴 건물인 듯하다.[#] 그런데 한국일보가 이 건물에 들어갈 권리가 있었는데 포기했다.[5]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사옥 짓고 있다고...[#]

저 건물이 있던 시절에는 커다란 크기의 한국일보 사기(社旗)가 게양되기도 하였는데 초대형급이라 바람에 날려도 쉽사리 휘날리지 않는 크기였다. 나중에는 사기와 함께 같은 크기의 태극기도 게양하였다. 허나 저 건물이 철거된 후로는 볼 수 없게 되었으며 폐기처분 되었는지 이후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후에 지을 신사옥에 게양할 일도 없을 듯 싶다. 참고로 지금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옆자리에 별관 사옥도 있었는데 이 건물에는 작은 크기의 한국일보 사기가 게양되었다. 현재는 이 건물도 철거되어 없어진 상태.

참고로 이 건물이 철거되고 트윈 트리 건물이 들어선 이후로 그 동안 저 건물에 가려져있던 주한 일본대사관 건물 뒷모습이 경복궁 건너편 길가를 통해서 보여지기도 하였다. 트윈 트리 건물에는 주한 요르단 대사관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춘문예를 받는 곳중 하나고[6]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7], 미스코리아 대회의 주관사이기도 하다[8]. 1973년부터 창간 2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대한산악연맹과 공동으로 한국 에베레스트 등반계획을 세워 1977년 고상돈의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미주한국일보를 발행하고 있어 미국 한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유명한 신문이다. 미주한국일보와 같은 계열이 LA의 라디오 서울이다.

2012년 6월 17일 20000호가 발행 되어 7월 19일 리셉션을 열었다.

경영 실적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창업주보다는 아들들의 역량이 좀 떨어지는 듯? 아들들의 역량이 너무 떨어져서 자본금까지 까먹고 있는 듯? 이 정도면 파산 준비해야 할텐데? 결국 이 문제로 사단이 났다. 장재구 회장의 배임의혹이 전면으로 드러난 것. 뉴시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으나 아래의 사태 이후 머니투데이에 매각하였다.

장재국, 장재구 두 아들이 들어선 이후 사내의 분위기가 복잡하다. 자세한 것은 [기사]를 참조.그리고 결국 일이 터졌다.

여담이지만 한국 언론 최초로 해외에 파견된 종군기자가 순직한 사건이 벌어진 언론사가 이곳이다. 진먼 포격전이 한창이던 1958년 9월 26일 故 최병우 기자가 다른 기자들과 함께 조난, 순직당했으며 그의 이름은 진먼에 있는 충렬사에 안치되었다.


2 2013년 한국일보 사태

2013년 6월 15일, 사측이 용역 업체를 동원해 기자들을 내쫓고 회사 방침에 따를 사람들만 출입을 허용해 복종을 강요하고있다. 이에 따라 직원과 사측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다. 한편 이시각 그리스 ERT에서는

한국일보 노동조합은 여느 노조가 그렇듯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맞물려 일어난 언론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됐다. 한국일보의 논조 특성상 극렬한 노조는 아니었다. 하지만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최근 해먹은(....) 200억을 가지고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고 고발하면서부터 회장이 인사에 개입을 했고, 부당인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노조가 반발 할 수 밖에 없었고, 노조는 회사의 인사조치를 거부하면서 신문을 정상적으로 제작해왔다. 그런데 한국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회장이 용역(이라고 쓰고 깡패라 읽는다.)들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했다. 신문을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측에 동조하는 기자가 10명이 채 안된다는 것과 논설위원들이 이 사태에 반발, 집필을 거부했다는 걸 감안하면 어떻게 신문을 만들지 참 궁금하다. 사설은 논설위원이 쓰게 되는데 사설이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거나, 논설위원이 아닌 기자들이 사설을 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예정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내용을 연합뉴스통신사의 기사로 땜질하고 있다. 심지어 사설도 연합뉴스의 연합시론 걸 그대로 싣고 있다(...) 그래서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더군다나 사측의 편집국 폐쇄는 직장폐쇄로서, 엄연히 위법이다. 왜냐면, 직장폐쇄는 노조측이 파업을 할때 이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 가능한것이기 때문. [고용노동부 링크] 즉, 기자들이 파업하지도 않았는데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직장 폐쇄한것은 요건부터 성립이 안된다. 참고로 우리나라 노동법상 파업의 성립 요건 자체가 사측에 상당히 유리하다. 그런 파업에 돌입도 하지 않았는데 직장 폐쇄라니 그것도 한국 정도의 민주주의 국가의 메이저 언론사라는 곳에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노조측의 주장과 이야기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싫다에서도 들을수 있다. [에피35a 한국(퍼가염~♪)일보], [에피 35b 언론사 2종 벤치마크 - 한국일보 vs. 딴지일보]

회사측에서는 SNS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일보의 [트위터]와 [페이스북]계정은 편집국의 일선 기자들이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직장폐쇄사태 이후 SNS에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결국 법원에서 한국일보 재산보전 처분을 내리면서 장재구 회장은 경영권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그와 동시에 한국일보는 법정관리를 받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일보 사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구 편집부와 신 편집부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과제가 되었다.


3 2014년 이후

2014년 2월 24일 삼화제분에 [인수]될 뻔했으나 [무산]되었다.
이후 다시 인수 절차가 진행되었고, 9월 18일 [동화기업]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다. 오는 11월에 본계약을 체결하며 법정관리를 졸업할 예정이다.

아직 법정관리 상태이긴 하지만, 장재구 회장으로부터 벗어난 이후 신문 발행은 빠르게 정상화되었다.[9] 이와 함께 온라인 부문(한국일보닷컴)에 크게 투자하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예전 한국일보의 명성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온라인 부문에서는 국내 언론사 중 가장 혁신적이고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그와중에 새 사옥의 첫 을 떴다. [기사] 2014년 11월 3일 동화기업과 M&A를 [체결했으며 ] 2015년 1월 9일 동화기업에 [인수됐다].

2015년 6월, 메르스 대란이 한창일 때 삼성서울병원 소속 의사가 [뇌사상태]라고[10] [오보]를 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교체 사건 이후로, 경향신문, 한겨레, 시사인 등에 대한 절독운동이나 절독글이 디시, 오유, 진보당 당원게시판등에 올라올 때 대체제(?)로 무엇을 볼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한국일보를 권하는 사람들도 소수 있기도 했었다. 물론, 한국일보가 명확하게 어느 한쪽 편을 든 것은 아니고, 또한 메갈리아나 워마드에 대한 보도내용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비판하는 기사를 쓴적이 있어서인듯.[#] [#] [#]

  1. 2015년 5월 말 와이즈빌딩(구 YTN타워) 16 ~ 18층으로 이전,
  2. 원래는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근처에 있었으나 구 본사 건물이 철거되고 2015년까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118 한진빌딩 신관 12층을 사용했었다.
  3. 2014년 5월 중순까지 [한국아이닷컴]에서 인터넷판 기사를 볼 수 있었는데, 장재구 전 회장의 지분매각으로 관계가 꼬여서 한국일보에서 2014년 5월 19일부터 한국일보닷컴을 따로 운영하면서 한국아이닷컴에서 한국일보 기사를 전부 지워버렸고, 이로 인해 한국일보 기사가 전부 날아가버렸다(...) (스포츠서울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무위키에서 이쪽이 링크돼 있다면 찾아서 수정해 주자.
  4. 재개발하고 고층 빌딩이 무슨 상관이냐 하지만...해당된다.
  5. 한국일보가 그 권리를 포기한건 아래 나오는 한국일보사태와도 연관이 있다.
  6. 유명한 인물이 최인호 작가.
  7. 봉황대기 대회는 2010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가 2013년 부활했다. 2010년 고교 야구부에 참가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확실한 내용 추가바람.
  8. 이 때문에 미스코리아 대회 상 중에 "미스 한국일보"가 있다.
  9. 그러나 이 사람들이 회생절차 직전 구성원들 몰래 인터넷한국일보(현 한국미디어네트워크) 지분 50%를 매각하면서(...) 이쪽과는 남남이 되었고, 한국일보는 결국 온라인부문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자세한 사정은 [여기에].
  10. 현재 기사는 수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