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슈퍼게임

아시아권 국제 야구 대회
한일 슈퍼게임(91, 95, 99)아시아 시리즈(05~08)한일 클럽 챔피언십(09~10)
한국-대만 클럽 챔피언십(10)
아시아 시리즈(11~)

1 소개


1991년 한일 슈퍼게임 일본 측 중계방송. 장훈(하리모토) 씨가 해설하고 있다. 일본 투수인 사사오카 신지는 1991년 사와무라상 수상자.



1995년 한일 슈퍼게임 우리측 중계방송

1990년대대한민국일본 양국의 프로야구 시즌이 마감된 뒤 열린 한/일 야구 정기전. 1991년/1995년/1999년 이렇게 세 차례 열렸다. 대한민국일본 양 쪽의 프로야구 올스타팀끼리의 대결이었다.

대회는 한국프로야구 발족 1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일본야구기구(NPB)가 공동으로 주최한 1991년 대회가 시작이었다.

2 역대 전적

경기는 모두 일본에서 열렸으며, 한국의 역대 전적은 1991년 2승 4패, 1995년 2승 2무 2패, 1999년 1승 1무 2패.

3 대회 소개

3.1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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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전, 이라부 히데키의 공을 홈런으로 만들어낸 김성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일간의 야구실력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났기 때문에 처음 슈퍼게임이 열린 91년만 하더라도 1승이라도 하면 대단한 거다 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경기에 참여한 대한민국 타자들은 일본 투수들이 작정하고 던지면 컨택도 힘들다고 토로할 정도로 실력차이가 많이났다. 특히 일본 투수의 정교한 변화구(주로 포크볼)에 그야말로 폭풍삼진 퍼레이드. 이 슈퍼게임의 영향으로 한국 투수들도 포크볼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하고, 재일교포가 아닌 순수 일본계 코치들이 프로야구에 등장한다.

한국대표는 프로야구 올스타팀이었지만, 일본은 조금 달랐다. 1991년 도쿄돔에서 열린 1,2차전은 일본도 올스타 팀이었고, 한국 팀은 그야말로 개발살났다. 하지만 지방구장을 돌면서 열린 3,4,5,6차전에서 일본팀은 해당 구장의 홈팀을 주축으로 다른 팀 주전을 몇명 끼워넣는 어정쩡한 구성이었다. 일본 선발로 10승도 하지 못한 투수가 나오기도 했고, 이런 경기에서 2승을 거두었다.

이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해태 선동열이 대회 직전 발목부상으로 시작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 탓에 1차전에선 이 해 포스트시즌에서 경이적인 피칭을 보여줘 주가가 오른 롯데 박동희가 선발로 나섰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한국팀은 장단 14안타를 두들겨맞으며 3-8로 완패당했다. 박동희가 7피안타를 얻어맞으면서도 4이닝 3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했지만, KBO에서는 이 해에 압도적인 구원왕에 등극 했던 조규제 조차도, 나오자 마자 오치아이를 비롯한 일본 타자 들에게 연타석으로 홈런을 얻어 터지는 등, 구원투수들이 줄줄이 털렸다. 유일한 위안거리가 김성한이 훗날 메이저리그로 진출 하였으며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강속구 투수이던 이라부 히데키를 상대로 통쾌한 홈런을 기록한 것. (김성한은 슈퍼게임 경기 동안 3 홈런을 쏘아 올리며 자존심을 살렸다.)

2차전은 롯데 윤학길이 선발로 나섰으나 3이닝도 못 버티고 4실점으로 두들겨맞는 등 1차전과 다르지 않게 2-8로 완패를 당했다. 3차전은 빙그레 송진우가 선발로 나서 6이닝동안 무실점 호투에 힘입어 2-0으로 앞서가다가 7회말 5실점의 빅이닝을 허용하며 2-5로 역전패. 3연패로 몰린 한국은 4, 5차전을 잇달아 잡아내며 기세를 올리는데 특히 부상으로 등판하지 못했던 선동열이 5차전 선발로 나서 5연속타자 탈삼진을 기록하며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줬다. 보기 드물게 투수전으로 벌어진 6차전은 1-2로 아쉽게 패하며 6경기동안 2승 4패를 기록했다.

3.2 1995년

▲ 1995년 도쿄돔에서. 주형광, 박경완, 이종범, 심정수, 이광환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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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이치로이종범.

1995년 2회 대회땐 1차전에서 나름 정예로 나온 일본과 0:0 무승부, 지역팀 주축으로 나온 2,3차전에서 내리 승리하여 일본에서도 말이 나왔고 결국 4차전에서 정예로 임한 일본에게 완패. 이후 5차전 무승부 후 6차전에서 지면서 2승 2무 2패로 마무리. 일본은 1, 4차전에서 나름대로 정예 선수들을 내보냈고 여기서 한국은 1무 1패를 하였다.

3.3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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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마지막 올스타팀

1999년 3회 대회는 이전 대회가 6경기씩 치른 것에 비해 4경기로 축소되어 치러졌다. 한국팀은 1, 2차전을 연달아 패하였지만 3차전을 가까스로 잡아내 첫승을 거두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4차전은 8:8무승부로 끝난 화끈한 타격전으로 전개.

이 대회에서 마쓰이 히데키가 타율 10할을 기록하며 한국 투수진을 개발살냈다. 1차전과 4차전에 출전하여 8타석 7타수 7안타 1홈런 1볼넷(고의사구).

4 이후

이후 아시아 시리즈(舊 코나미컵)이나 한일 클럽 챔피언십이 한일 슈퍼게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들 참조.

5 기타

2009년에 열린 WBC의 이상한 대진표로 인해서 WBC가 아니라 한일 슈퍼게임 또는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