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량

項梁
?~BC 208

1 개요

진말 초한쟁패기의 인물. 진승을 초한쟁패기의 계기가 된 인물이라면 항량은 초한쟁패기를 실질적으로 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항우의 숙부로 전국시대 말기 초의 마지막 명장 항연의 아들이라고 한다. 항백은 동생. 살아 생전 전국시대의 종언과 진의 통일, 몰락을 본 드라마틱한 일생을 보냈다. 하상(下相)출신[1]으로 초나라 멸망 후 어떤 성장과정을 보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초국 멸망 후 그 행적이 기록되는 곳이 관중일대의 역양으로[2] 아예 어린 시절을 유랑하며 살았던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역양에서 사람을 죽여 옥에 갇힐 뻔하나 친분있는 옥리 조구, 옥연의 연줄로 책임자 사마흔과 닿을 수 있었고 그 덕에 도주할 수 있었다. 다만 <초한지> 등의 창작 매체에선 시황제의 행렬을 본 항우가 "저놈 죽이고 내가 황제가 되어야지."라고 사고치는 바람에 도주한 것으로 그려진다.[3]

도주하여 회계 오중일대에 정착하여 그 일대 제일의 명사가 되어 신망과 명성을 두루 얻었다. 시바 료타로는 자신의 저작 항우와 유방에서 항량은 관과 향촌 사이의 이해를 잘 조율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라고 묘사하는데 사기에서 항량이 오중일대의 요역과 상사(喪事)를 관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대체로 그런 조정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이러면서 항량은 그 일대의 선비, 호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준군사적인 무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황제가 죽고 전국이 혼란해지자 기회가 온다. 각지의 난리에 회계군수 은통도 역심을 품게되고 일대의 명사 항량을 불러 자기 휘하로 포섭하고자 했다. 이때 초정된 항량에게 은통은 같이 포섭하려 하는 환초의 행방을 묻게되고 이에 항량은 조카 항우만이 안다고 나가 항우를 불러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항우의 첫번째 참살극.
은통을 죽이고 자신의 명망과 항우의 무용으로 좌중을 압도해 항량은 회계를 접수한다. 이후 1년간 항량은 회계에 웅거해 화북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이는 세력을 다지려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시 제일 반군 세력으로 장초(張楚)를 건국한다던지 진왕(陳王)을 자칭한다던지 하는 진승과의 관계에서 고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던 중 BC 208년.운명의 해 진승 세력의 소평이란 인물이 와서 항량에게 초의 상주국 관직을 내린다는 진승의 령을 내리고 이에 항량은 북진을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항량은 진영, 포장군, 영포 등의 세력을 흡수해 강성해진다. 그러나 항량군이 진출할 즈음 상황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천지를 호령하면 진제국을 멸망시킬 것 같던 진승은 대패해 세력은 분열되고 진승은 살해되어 경구[4]가 초왕이 되어 팽성에서 웅거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 항량에게 범증이 가담하는데 범증이 제시한 방략에 따라 항량은 옛 초왕국을 재건하는 방침을 정한다. 그 방침에 따라 구 초의 왕족 웅심을 회왕으로 옹립하고 경구의 세력을 격파한다. 이후 우이로 새 도읍을 정하고 자신은 무신군(武信君)에 올라 설현[5]에 근거를 두게된다.

진승군 와해 후 최대세력으로 부상한 항량군은 회왕옹립 후 초국재건이라는 명분을 얻어 유민세력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 항량군은 서진해 항보, 동아 등에서 진군을 격파했고 병력을 분산해 항우, 유방에겐 성양으로 자신은 복양으로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즈음 항량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승과는 별도로 장한이 이끄는 진군의 주력 대군은 건재한 반면 항량군은 우방 병력의 지원이 부족했다. 당시 항량은 제왕을 자처한 전담 사후 내분으로 도주해온 제왕 전가[6]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를 몰아낸 전영[7]이 그 제거를 요구했다. 항량은 이를 거절했고, 그리하여 제의 원군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항량은 병력을 분산해 항우군을 더 멀리 떨어진 옹구, 외황으로 진출시키고 자신은 운명의 땅 정도로 나아가 양군의 연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항량 자신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해진 것이었다.[8]

이런 문제를 회왕의 사자로 온 송의가 지적하지만 자신감 과잉상태인 항량은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병력부족이 조금이나마 걸린 탓인지 송의를 제로 사신으로 보냈다.[9] 제로 가던 송의는 마침 초로 사신으로 오던 고릉군 현을 만나게 되는데 송의는 여기서 고릉군에게 늦게 가라고 조언하면서 이리 말한다.

"무신군은 필히 패할 것입니다."

결국 항량은 대군을 모아 맹공해온 장한의 진군에게 정도에서 패사(敗死)하고 만다.
보통 항량은 항우와 유방의 들러리 취급을 받아왔다.기실 여기에서 항목 작성도 상당히 늦었다. 항우의 무용에 가려져 초한쟁패기 스타터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사기의 기록처럼 갈등이 큰 관민 사이를 상당히 원만히 조율했고 도주해온 회계에서 금새 신망을 얻은 것을 보아도 범상치 않은데가 있다. 특히 안목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계 접수후 아는 지인, 호걸들에게 한자리씩 내렸는데 어느 한사람에게만 별 자리를 주지 않았다. 그 사람이 항의하자 항량은 "당신은 지난 제사 때 내가 시킨 직무를 잘하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 그대를 임용하지 않은 것이오" 라고 답했다. 이에 사람들이 그 기용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항우의 자질을 잘 길러낸 것만 보아도 상당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항우의 오만함과 잔학함을 생전 통제하지 못한 것[10]만 보아도 그 한계 또한 분명했던 것 같다.

1.1 매체에서 표현되는 항량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에선 사기에서의 행적을 따른다.[11] 보통 현인에 가깝게 묘사되는 기존 매체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풍파를 다 겪은 은사 분위기의 인물 그러면서 깊은 야심의 소유자. 그런 한편 조직 조율 능력과 기지가 탁월한 지도자이고 구 6국과 진제국 사회를 냉정히 분석하는 안목도 있다.
그러나 하루에 자기만의 사색시간을 갖지 못하면 정신이 황폐화되며 간혹 장시간 몽상과 공상에 빠져사는 노망끼 있는촌로. 회왕 옹립 후에 그에 따른 왕실과 귀족들에한 갈등, 권력욕도 잘 묘사된다. 한편 각지의 자기만의 여자를 두고키잡도 있다. 있는데 말없고 배시시 잘 웃는 여성을 좋아하는 듯. 다만 불임자명문 항씨가 고X라니!. 이것과 방랑벽에 때문에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고 한다.[12]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항우와 유방에선 전형적인 항량의 이미지. 건방진 아들을 돌봐주는 현명한 아버지같은 인상. 하지만 한신의 간언을 무시하고 장한과의 싸움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그를 유인하려고 연일 주연을 열다가 진짜로 전군이 방심에 빠지게 만드는 사태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결국 장한의 기습으로 병졸의 칼에 죽음을 당한다.

중국드라마 초한쟁웅에서도 마음씨 좋은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등장. 그러면서도 야심있는 모습도 보이는 등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에서 등장한 모습과 비슷. 장한에게 패해 사망하는 전투에서도 항량이 교만해져 패한 것이 아닌 장한의 끈질긴 유인책에 넘어가 패하는 걸로 나온다.
  1. 지금의 장쑤성. 삼국지의 회남일대
  2. 진시황의 구 6국 출신 부호, 귀족 강제 이주책에 의한 것 같다.
  3. 이 사건은 창작이 아니라 사기에 그대로 실려있다. 다만 이것 때문에 항량이 도망치지는 않았다.
  4. 경씨(景氏)는 초나라 방계 왕족이기에 추대된 것이다.
  5. 지금의 산동성. 전국시대 맹상군의 근거지
  6. 전담 사후 비(非) 전담파벌이 옹립한 왕
  7. 전담의 아우
  8. 총사가 이러니 초군 전체도 나태해져 갔다. 송의의 말에 따르면 "장수는 교만하고 병졸은 게을러 지고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창작매체에선 한신이 이 상황을 지적하지만 면박 당하면 씹힌다.
  9. 송의가 상황이 막장인 걸 알고 일부러 사신으로 자원했다고 보통 그려진다.
  10. 가령 항우가 항량 생전 양성에서 적군 포로를 학살해 버리자 이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1. 다만 역양사건은 다루지 않는다.
  12. 혹은 조카 항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결혼하지 않는 것으로 나올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