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루

解婁

(기원전 55년 ~ 34년)

백제 온조왕, 다루왕 대의 대신.
시대를 앞서나간 노익장의 표본

해루는 전씨세보에 의하면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남쪽으로 옮겨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개국할 때 공을 세운 10명의 십제공신(十濟功臣) 중 한명이다.[1]

또한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해루는 본래 부여 출신의 사람이었으나 온조왕이 고구려를 떠나올때 함께 남하해왔다. 이 말이 맞다면 해루는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할때 함께 따라나섰다가 온조왕이 남하하자 이를 또다시 따라 나서 백제 건국을 도왔으니 무려 두 나라의 건국을 도왔다고 할 수 있다(...).

23년(온조왕41년)에 우보 을음이 죽었는데 이에 온조왕은 해루가 지식이 많고 나이가 70세가 넘도록 힘이 줄지 않는다며 그를 우보로 삼았다. 우보는 당시 좌보와 함께 백제의 재상직이자 최고위직이었다.

34년(다루왕 7년) 2월에 해루는 90세의 나이로 죽었다. 70세가 넘어 재상직을 지내고도 죽지 않고 무려 1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킨 샘(...). 온조왕은 동부 사람인 흘우로 하여금 뒤를 이어 우보의 관직을 내렸다.

백제의 대성팔족 가운데 하나인 해(解)씨 가문의 사람들 가운데에는 가장 먼저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로, 해씨가문의 시조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해루가 부여출신이며, 그 성씨가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부여 왕실의 성씨인 해(解)씨라는 사실 때문에 초기 백제의 건국 세력이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달리 고구려 계통이라기보다 부여 계통에 더 가깝다는 설도 있다.
  1. 십제공신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 가운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간, 마려, 을음, 해루, 흘우 등이며 나머지는 전씨세보에서만 이름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