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

1 개요

현존하는 한국의 의학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저자 미상의 책. 향약(鄕藥)이라는 뜻은 한국에서 나온 약재를 의미하는 것이다.[1]

2 내용

향약방이란 고려시대 당시, 중국의 의학과 고려의 의학이 가지는 차이점에 따라, 고려의 실정에 맞춘 독자적인 처방법이다. 질병들에 대한 처방법과 함께 질병에 대한 국산 약재에 대한 소개도 함께 되어 있다. 초간본은 여몽전쟁이 한창이었던 1231년, 강화도의 대장도감[2]의 주도 하에 발간됐으나 소실됐고 현재는 조선시대의 증간본(태종 17년, 1417) 중 1부만이 일본에 남아있다.[3]

상/중/하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상권에서는 주로 식중독, 졸도, 골절과 같은 응급상황에 대한 처치법을 다루고 있으며, 중권에서는 화상, 동상, 종기와 같은 각종 피부 질환 및 당뇨, 심장병, 복통과 같은 내과 질환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하권에서는 부인과 및 소아과 질환 및 각종 한약재의 동시복용 허용 여부와 민간요법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4]

3 여담

  • 사학계에서는 향약구급방을 놓고 한의학이 자주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초석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설명이고, 엄밀히 따지자면 몽골의 중국 및 고려 침략으로 중국에서 수입하는 약재의 공급선이 단절되었으므로, 그 해결책으로 국산 약재를 보완재로 삼으려고 했던 셈.
  • 본 책에 수록된 각종 민간약재들이 차자, 향찰, 이두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서 고려시대 중세 한국어를 연구하는 데도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을 연구한 국문학자들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아직 유성음 사이에서 이 w으로 변하는 현상[5]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과 모음 사이에서 이 반치음 으로 바뀌는 현상도 간혹 목격된다고 한다. 이러한 문법/발성 요소 이외에도 각종 단어들의 어원 또한 찾아볼 수 있다.
  1. 반대로 고려시기에 중국에서 난 약재는 당약(唐藥)이라는 표현을 썼다. 송약이 아니라?
  2. 이름만 봐도 감이 오지만 팔만대장경을 찍어낸 그 부서다. 불경 찍고 나서 남은 활자들로 겸사겸사 의서도 발행한 셈.
  3. 10년 정도 있다가 세종 때도 한 번 더 발간됐는데 이것도 발간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4. 원문 내용을 그대로 갖고 오자면 다음과 같다. ① 상권 18목(目) : 식독(食毒) · 육독(肉毒) · 균독(菌毒) · 백약독(百藥毒) · 별독 · 골골 · 식열 · 졸사(卒死) · 자액(自縊) · 열탕(熱湯) · 낙수(落水) · 중주(中酒) · 단주(斷酒) · 타절(墮折) · 금창(金瘡) · 후비(喉痺) · 중설(重舌) · 치감. ② 중권 25목 : 정창(丁瘡) · 옹저(癰疽) · 장옹(腸癰) · 동창(凍瘡) · 악창(惡瘡) · 칠창(漆瘡) · 탕화창(湯火瘡) · 단독은마 · 벌지창(伐指瘡) · 표저(凜疸) · 골저(骨疽) · 선개과창 · 전족목죽첨자(箭鏃木竹籤刺) · 치루상풍(痔漏傷風) · 구장통(口腸痛) · 냉열리(冷熱痢) · 대소변불통(大小便不通) · 임질(淋疾) · 소갈(消渴) · 소변하혈(小便下血) · 음라음창(陰癩陰瘡) · 비뉵(鼻衄) · 안병(眼病) · 이병(耳病) · 구순병(口脣病). ③ 하권 12목 : 부인잡방(婦人雜方) · 소아잡방(小兒雜方) · 소아오탄제물(小兒誤呑諸物) · 수종(水腫) · 중풍(中風) · 전광 · 학질(瘧疾) · 두통(頭痛) · 잡방(雜方) · 복약법(服藥法) · 약성상반(藥性相反) · 고전록험방(古傳錄驗方).
  5. '춥다'의 활용형이 '추워'로 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 물론 어느 동네는 아직도 이 현상이 안 일어났다. 아이고 추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