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65px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55px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65px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50px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65px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300px
팀 엠블럼팀 마스코트[1]
브리스키 베어(좌, 약칭 B.B[2]) & 폴리 폴라리스(우, 약칭 P.P[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北海道(ほっかいどう)

日本ハム(にっほんハム)

ファイターズ
구단 법인명㈜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株式会社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창단1945년 11월 6일
연고지홋카이도 삿포로
현재 연고지로 이전2004년
구단 연고지 변천도쿄 도 (1946~2003)
홋카이도 (2004~)
구단명 변천세네터스 (1946)
도큐 플라이어스 (1947)
규에이 플라이어스 (1948)
도큐 플라이어스 (1949~1953)
토에이 플라이어스 (1954~1972)
닛타쿠홈 플라이어스 (1973)
닛폰햄 파이터스 (1974~200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4~)
홈 구장고라쿠엔 구장 (1948~1953, 1964~1987)
코마자와 구장 (1953~1961)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2~1963)
도쿄돔[4] (1988~2003)
삿포로 돔 (2004~)
2군 구장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1997~)
모기업닛폰햄
모기업 변천도큐 전철(1947~1953)
토에이(1954~1972)
닛타쿠홈(1973)
닛폰햄(1974~)
감독쿠리야마 히데키 (栗山 英樹)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62, 2006, 2016
퍼시픽리그 우승
(7회)
1962, 1981, 2006, 2007, 2009, 2012, 2016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4회)
2007, 2009, 2012, 2016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1, 2006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1회)
2007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6
공식 홈페이지
1962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61-요미우리 자이언츠도에이 플라이어스1963-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5-치바 롯데 마린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007-주니치 드래곤즈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5-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2017년 우승팀
2006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 팀
2005-치바 롯데 마린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007-주니치 드래곤즈

1 개요

닛폰햄 산하 스포츠단
세레소 오사카
(축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야구)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홋카이도. 모기업은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주로 니혼햄이라고 하지만[5] 일본인은 모회사 이름에 따라 닛폰햄이라고 한다. 실제 발음은 닛폰하무(日本ハム(にっほんハム)
)다. 줄여서 부를 때는 보통 ハム(하무) 혹은 日ハム(니치하무)라 부른다. 팀 명칭인 파이터즈는 싸움꾼이란 뜻으로, 팬 공모로 지은 팀 명칭이다.

성우 겸 가수인 카사하라 히로코가 응원가를 부른 적이 있다. 도저히 야구 응원가 같지 않지만...보러가기

2 구단 역사

2.1 창단부터 2003년까지 - 안습의 비인기구단

메이저리그 워싱턴 세네터스의 팀명을 본 따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존재했던 야구단인 세너터스의 부흥을 위해 1945년 11월 6일에 세너터즈의 중심인물인 요코자와 사부로가 세너터즈 재건을 목표로 창단한 구단이다. 그 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1947년 철도회사인 도큐에 매각되어 도큐 플라이어즈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재정난은 이후로도 계속되어 돈줄이 말라붙자 1954년 영화회사인 토에이에게 구단이 매각되어 토에이 플라이어즈, 1973년 1월 부동산회사인 닛타쿠홈에게 매각되어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973년 11월 19일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에게 매각되어 닛폰햄 파이터즈가 되었다가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초창기의 스타로는 '푸른 배트' 오시타 히로시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팀 최대의 레전드는 장훈. 장훈의 활약으로 1962년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오스기 카츠오, 오자키 유키오, 백인천 등이 활약하여 1960년대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첫 우승을 안겨준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의 사퇴 이 후 싸인없는(...) 야구를 표방한 오시타 히로시 감독이 취임하면서부터 전력이 급강하, 오사와 케이지 감독 시절에 '우승 청부사' 에나츠 유타카가 사상 첫 양대리그 MVP세이브왕을 따내는 맹활약으로 일궈낸 1981년 리그 우승[6]과 1982년 플레이오프 진출[7]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밑바닥에서 지냈다.

장훈을 영입하려던 당시의 일본프로야구 규정상 외국 국적자는 드래프트 지명으로 영입할 수 없어서 구단주가 나서서 직접 그 규정을 고치는데 애를 썼다. 결국 외국인도 일본에 오랫동안 살았으면 일본인과 똑같이 드래프트 지명를 할수 있게 규정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재일교포혼혈인 선수들이 꽤 많이 거쳐간 팀 중 하나. 1990년대 후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가네무라 사토루와 이와모토 츠토무, 중심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수비의 핵심 카네코 마코토, 모리모토 히초리 등이 재일교포로 유명했고, 다르빗슈 유도 아버지가 이란인이다. 외국인 선수도 예외가 아닌게 2000년대 말 중심타자였던 미국인 용병 터멜 슬레지는 한국계 혼혈이었다!

백인천도 이 팀에서 데뷔했다. 1959년에 데뷔한 장훈의 뒤를 따라 1963년 1군으로 입성하여 포수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바꾼후 그럭저럭 활약을 보이다 1974년 시즌 종료 후 닛폰햄을 떠나 다이헤이요클럽 라이온즈(지금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된다.[8] 그 뒤 롯데 오리온즈(1976~1980)[9] - 긴테츠 버팔로즈(1981) 순으로 이적했다가 1982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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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절 닛폰햄 파이터즈의 구단기.

특히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쓰던 1990년대의 닛폰햄 파이터즈는 그야말로 안습. 성적이건 흥행이건 풀리는 게 없는 만년 비인기 구단이였다. 그나마 도쿄돔 시대 후기에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카타오카 아츠시, 셔먼 오반도, 다나카 유키오, 나이젤 윌슨 등 강타자들이 포진한 '빅뱅 타선'이 위력을 발휘했으나, 에이스 카네무라 사토루 정도를 빼면 안습하기 그지없는 투수진 탓에 신통한 성적은 못 거뒀다. 대놓고 안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표방하며 도쿄 안팎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팬베이스를 확보하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는 달리 그냥 붕 떠있는 구단이었다. 비록 퍼시픽리그에서 도쿄를 대표하는 구단이라는 상징성은 있었지만, 상징성만으로는 팀 운영을 할 수 없었다. 연식글로브의 파쿠만사가 교진을 좋아는 여자와 같이 경기를 보러 갔더니 하필이면 닛폰햄 경기였다 카더라.

예전에는 요미우리와의 비교는 커녕 야쿠르트와 비교해도 미안할 정도의 비인기 팀으로, 홋카이도 이전 전인 2003년 총동원 관중수가 131만에 불과했다. 이는 2011년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135만)보다도 못한 수치. 도쿄돔사직구장의 두 배인 55000명이 수용 가능한 구장인데다 일본은 경기수도 한국보다 더 많고, 일본의 수도라는 거대 세일즈 시장이 연고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비인기팀이었는지 알 만하다. 참고로 동시기 요미우리는 376만, 야쿠르트는 184만. 그나마도 경기장을 찾은 열혈팬은 있었지만, 일반 팬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10] 반면, 2011년에는 199만으로 일본 양대 리그 전체에서 5등 정도의 나름대로 중상위의 인기팀이 되었다.

도쿄돔 시기 파이터즈에서 뛴 경험이 있는 선수는 닛폰햄 소속으로 다케다 히사시, 이이야마 유지, 다나카 겐스케가 있고, 그 외에 츠루오카 신야(現 호크스 소속), 사네마츠 카즈나리(現 요미우리 소속), 코야노 에이이치(現 오릭스 소속), 쇼다 이츠키(現 독립리그 소속) 등 2016년 기준 총 7명이 남아있다.

2.2 2004년 홋카이도 이전 이후

닛폰햄은 이를 타파하고자 2004년에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에 지어놓은, 축구장과 야구장 변신이 가능한 경기장인 삿포로 돔이 비어 있는 것[11]을 보고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는 용단을 내렸다.[12]

그리고 이 선택은 닛폰햄의 역사를 다시 쓴다고 봐도 될 정도로 매우 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야구에 별 관심이 없거나 TV에서 중계해 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면서 미지근하게나마 그 쪽 팬이였던 홋카이도 주민을 단번에 자신들의 팬으로 흡수하였고, 이 시기에 모기업 지원까지 빵빵하게 받아 리빌딩을 거친 뒤로는 일약 퍼리그 3강에 들어갈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됐다.

2004년의 연고지 이전 이후 트레이 힐먼 감독(現 SK 와이번스의 감독) 체제 아래 다르빗슈 유, 모리모토 히초리, 다나카 켄스케, 다카하시 신지 등 젊은 선수를 중용하면서 팀 리빌딩을 시도한 것이 결실을 맺고,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카네코 마코토 등의 기존 핵심전력과 신조 츠요시, 페르난도 세기뇰. 이나바 아츠노리 등 영입 전력들이 가세했다. 2006년[13] 마침내 1962년 이후 44년 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오르게 된다.[14] 닛폰햄이 구단을 인수한 후 처음 경험한 일본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7년에도 주니치 드래곤즈와 다시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하였지만, 이번에는 작년과 정 반대의 성적으로 주니치 드래곤즈가 우승한다.[15]

이처럼 홋카이도 이전 후에는 거의 매년 우승권에 발을 걸칠 정도로 성장하였고, 60년 간 두 번밖에 못한 파리그 우승을 불과 13년 사이에 다섯 번 이룩하였다, 여기에 44년만에 팀의 2번째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때문에 지금은 홋카이도 주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깍두기의 대 반란 이러한 닛폰햄의 성공은 지방 도시 야구단도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고, 닛폰햄이 홋카이도로 이전한 다음 해 창단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센다이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 홈구장 - 삿포로 돔

삿포로 돔 항목 참조.

홋카이도에서 삿포로 다음으로 큰 도시인 아사히카와, 오비히로, 하코다테 등에서도 홈경기를 치른다. 2013년 조명탑을 설치한 아사히카와 스타르핀 구장 이외의 곳은 야간경기가 불가능하다. 한편 스타르핀 구장은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야간경기 개최 구장으로 기록되었다.

4 시즌별 성적 및 이야깃 거리

4.1 2008 시즌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나시다 마사타카를 감독으로 영입한 첫 시즌. 치바 롯데 마린즈반 게임 차로 극적으로 제치고 정규리그 3위를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 1스테이지에 진출하여 정규리그 2위 오릭스 버팔로즈에 1차전 4:1, 2차전 7:3으로 승리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까지 진출했지만, 퍼시픽리그 정규리그 1위로 1승 어드밴티지가 부여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2승 4패(1승 어드밴티지로 인한 1패 포함)로 패해 일본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6차전에서 세이부의 선발투수와쿠이 히데아키에게 완봉승을 허용하는 등 철저히 발렸다.

4.2 2009 시즌

팀의 주축 선수인 외국인 용병 터멜 슬레지 등 6명의 선수가 2009년 8월 19일경에 인플루엔자 A에 감염되어 몇몇 경기에 못나왔음에도 불구하고 82승 60패 2무의 성적으로 거뜬히 퍼시픽리그 1위를 확정지으며 클라이막스 시리즈 2스테이지에 직행하고 1승 어드밴티지도 가져가게 되었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이번에는 2스테이지에서 한창 상승세를 타고 올라온[16]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를 4승 1패(어드밴테이지 1승 포함)으로 잠재우며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센트럴 리그 우승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1981년 이후 28년 만에 만나 혈전을 벌였고, 끝내 2승 4패로 우승에 실패했다.

4.3 2010 시즌

전년도에 비해서 타선이 전체적으로 변비기미(...)였으며, 투수도 다르빗슈 유 혼자 분전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요 몇년간 강호였기에 시종일관 우승권에 발은 걸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즌 막판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 불과 0.5게임차로 4위에 그쳐 클라이막스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참고로 08년에는 정 반대 상황으로 닛폰햄이 롯데에 0.5게임차로 클라이막스 시리즈에 진출한 역사가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것(...).

4.4 2011 시즌

드래프트에서 주목을 모은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를 경합 끝에 뽑기에 성공하여 영입했다. 공인구가 저반발구로 바뀐 탓에 투고타저가 되었는데 득을 본건지 실을 본건지 모를 미묘한 상황. 여전히 다르빗슈에게 득점지원은 미미해서 1.44 ERA의 무시무시한 성적을 뽑아낸 다르빗슈에게 6패(18승)씩이나 안겨줘서 사와무라상을 또 놓치게 하였다.

다만 투수력 버프는 제대로 받아서 일본프로야구 기록인 팀 52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변태스러운 기록을 내면서 초중반에 괴수모드를 보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호각으로 1, 2위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9월 이후 페이스가 완전히 떨어지면서 1위와 경기차가 크게 벌어지며 결국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위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2연패로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만년 2위의 주범(...)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이 자진퇴임. 다르빗슈 유는 포스팅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이러한 전력누수로 다음해 DTD를 시전할 유력 후보로 꼽히면서 12년 시즌을 맞이한다.

4.5 2012 시즌

새 감독으로 쿠리야마 히데키TV아사히 해설자를 감독으로 앉혔다. 전 야구선수 -> 해설자 -> 감독 테크야 일본에서 일반적이긴 한데, 쿠리야마의 경우는 선수시절 그리 특출난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9년만에 은퇴한 선수라는 점과, 1990년에 은퇴하고 바로 해설자로 들어가서 근 20년간 단 한번도 코칭스태프 경험을 해본적 조차 없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대단히 우려되던 인선이였다.

게다가 드래프트 1위 덕후인 양반이라 사실 여러모로 역부족으로 여겨지던 사이토 유키를 개막전 선발로 꺼낸다던가, 거포 유망주 나카타 쇼가 .190 아래 타율을 밑돌아도 4번 타자로 우겨박는등 요상한 기용이 많았다.

그런데 나카타는 6월부터 페이스를 찾고 타율은 그냥 그랬지만 장타를 양산하고 강견을 앞세워 좌익수비도 곧잘 해내며 4번 타자 값을 하기 시작했고, 6년차라 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파이어볼러 좌완 요시카와 미츠오를 발굴해서 ERA 1위와 14승(5패) 활약으로 다르빗슈의 공백을 메울정도로 활약시키는 등, 시즌 끝나고 보니 잘 맞아떨어진 인선을 했다고 하여 평가가 많이 뒤집어졌다 다만 사이토 유키망했어요

결국 초반에 반짝하던 치바 롯데 마린즈와 FA 유실 출혈로 헤롱대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막판 뒷심을 발휘해서 꼴찌에서 1위까지 치고올라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모두 제치고 막판 5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4년만에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우승이 결정되는 시합 당시 닛폰햄은 시합이 없었고, 매직넘버 1을 남긴 상황에서 2위 세이부가 지는 바람에 우승이 결정됐다.당시에는 이를 대비한다고 연습을 공개로 돌리고 삿포로 돔을 개방했는데, 시합이 없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1만명 넘는 관중이 찾아왔다고 한다. 때문에 초라할 줄 알았던 우승 세레모니 현장이 매우 훈훈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퍼시픽리그 우승 어드밴티지로 1승을 안고 홈에서 6경기를 모두 치루게 되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탄탄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3연승 스윕하며 3년 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한수 위라고 평가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끝까지 호각으로 싸웠으나, 예상대로 타력의 부족으로 패배하였다. 결과는 2승 4패. 하지만 쉽게 내준건 5차전 한 번 뿐이고 나머지는 끝까지 뒷심을 발휘하면서 저력을 보여줬다. 아쉬운건 4경기 다 더블에이스인 요시카와 미츠오와 타케다 마사루로 졌다는 점. 그리고 6년간 3번이나 일본시리즈 가서 다 준우승 깔아줬다는것도 비극 여담으로 5차전에서 일본시리즈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오심이 일어났었다. 타다노 카즈히토 항목을 참고할 것.

4.6 2013 시즌

괴물 유망주 오타니 쇼헤이가 입단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최종적으로는 5위 오릭스 버팔로즈와 3.5게임차로 꼴찌를 차지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모두에서 다듬어지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였고, 중심타자 이토이 요시오가 오릭스로 떠난 여파를 메꾸지 못했다. 결국 투-타 지표에서 모두 꼴찌를 차지하며 오릭스[17]에게마저 밀리게 되었다. 나카타 쇼가 28홈런으로 분전했고 쿠바 출신의 망명선수 미첼 어브레이유가 31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대만 출신의 중견수 요 다이칸도 도루왕을 차지하면서 제 역할을 다했지만 그게 다였다. 투수진은 전년도 리그 MVP 요시카와 미츠오가 공인구가 바뀌자마자 귀신같이3.31의 방어율로 리그 6위를 차지했지만 7승 15패로 양리그 통합 최다패를 기록하며 안습한 시즌을 보냈다.

4.7 2014 시즌

오타니 쇼헤이가 드디어 투타 모두에서 포텐이 폭발한 게 가장 큰 뉴스거리였던 시즌.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 시즌 10승-10홈런 선수가 되었다.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치며 1위 다툼을 하다 나가떨어진 오릭스 버팔로즈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를 치르게 되었다.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7회까지 뒤지다가 역전을 이루어내며 오릭스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FS 최종전인 3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위 오릭스를 물리치고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진출했다.

클라이맥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끝까지 괴롭혔으나, 결국 투수진이 무너지며 패퇴했다. 안그래도 쓸만한 선발이 적은 닛폰햄이 오릭스전이 장기전이 되면서 투수들이 휴식할수 있는기간이 사라졌고, 덕분에 닛폰햄 수뇌진은 울며 겨자먹기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우와사와나 오타니 등을 등판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종전 선발인 우와사와가 4이닝 2실점으로 강판, 후속인 중간계투 에이스 카기야도 솔로홈런을 얻어맞고 무너져내리며 점수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패배했다.

시즌을 리뷰하자면, 2014년 쓸만한 선발이 우라노, 오타니, 우와사와의 3명뿐이었던 닛폰햄은 2014년 루이스 멘도사를 영입하고, 사이토 유키의 부활을 시도했으며 타케다 마사루의 선발전향을 시도했다. 헌데 멘도사는 7승 13패로 영 좋지못한 결과를 냈고, 사이토 유키는 시즌종반에서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서 시즌중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타케다 마사루는 변함없는 두부멘탈을 피로한 덕분에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변경[18]. 4, 5 ,6위 팀이 알아서 자멸해준 덕분에 3위까지는 올라왔지만 결국 만성적인 쓸만한 선발부족이 원인이 되어 튼튼한 투수층이 생명선인 단기결전에서 무너져버린 시즌.

4.8 2015 시즌

올해의 크라잉 팀

2014 시즌 종료 후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나바 아츠노리카네코 마코토를 비롯한 노장들이 대거 은퇴하고, 주전 유격수 오오비키 케이지, 2010년 타점왕 코야노 에이이치 등이 FA로 이적했으며, 작년 팀 최고의 타자였던 요 다이칸은 부상을 당해서 장기이탈하는 등 타선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되어서 강제적으로 야수진 리빌딩을 해야 하는 시즌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게 웬걸....

가능성만 보여주었던 콘도 켄스케와 스기야 켄시 등의 포텐이 터지고, 야수진의 빈자리를 채운 1-2년차 신인들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주면서 작년과 거의 차이가 없는 타격성적을 찍으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수위싸움을 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OPS는 리그 평균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는 장타력을 채워주어야 할 외국인 타자 두명이 매년 그래왔긴 하지만 다 폭망한 탓. 게다가 그 OPS도 센트럴리그에 들어가면 1위를 찍을 수 있는 성적이다. 그리하여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돌아온 타나카 켄스케를 제외하면 26세인 나카타 쇼가 주전 야수 중 가장 노장일 정도의 싱싱한 야수진을 보유한 팀으로 변모, 타구단 팬으로부터 호크스와 함께 가장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는 팀이 되었다. 특히 라인업에 노인네들만 즐비한 세리그의 교진, 한신, 주니치의 물빠따 3팀

9월까지 성적만 놓고 보면 한 때 승률 5할 +20까지 찍을 만큼 잘 나갔다. 이 정도면 예년같으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성적이건만...[19]

하필이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이름에 들어가는 동물답게 레알 날았다

그 나는 놈이 9월 초까지 무려 승률 5할 +40을 찍는 역대급 정규시즌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무지막지하게 날아가는지라, 닛폰햄은 이겨도 이겨도 게임차는 벌어지기만 할 뿐... 승률 5할 +20을 찍고도 1위와 10게임이 넘는 승차에 좌절 중이다. 결국 9월 초 맞대결에서 싹쓸이 3연패를 당하면서 우승다툼에서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다만 3위권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와도 거의 10경기 차이가 나고 있어 시즌 막판 대형 연패만 없으면 현재의 위치를 지키는 건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9월 20일 세이부와의 홈 경기에서 6회 초까지 5-0으로 끌려가다 6회 말에 대거 7점을 뽑으며 7-9 승리를 거두었고, 같은 날 롯데가 소프트뱅크에게 0-1로 패하면서[20] 파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이후로는 순위가 일찌감치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경기를 치루다가(...) 10월 정규시즌 마지막에 졸지에 3위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었다.[21] 10월 4, 5일 롯데와의 원정 2연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큰 영향이 갈 수 있다.

결국 롯데와의 원정 2연전을 싹쓸이 당하며(...) 79승 62패 2무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10월 10일 삿포로 돔에서 열린 롯데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선발 오타니 쇼헤이가 2.2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며 9-3 패배를 당하였다. 다음날 열린 2차전에서는 8회 초까지 2-1로 끌려가다 8회 말 브랜든 레어드의 동점 2루타와 야노 켄지의 역전 적시타를 엮어 3득점 하면서 2-4로 승리, 다행히도 3차전으로 끌고 가게 되었다. 그러나 3차전에서는 수많은 찬스를 날려버리며(...)[22] 2-1로 패배,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올라간 롯데는 소뱅에 대압살

4.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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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와의 11.5게임 차를 뒤집은 기적의 리그 우승!


2연패 뒤 4연속 역전승으로 달성한 10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메이크 드라마 2016

시즌 초부터 팀의 에이스 오오타니 쇼헤이가 지독하게 승운이 없었다. 좋은 평균자책점에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패만 쌓고 있었다. 이에 대해 빡친 스트레스를 타석에서 홈런으로 풀었다 카더라 김태균보다 홈런 잘 쳤다 그래도 4,5,6위 팀들이 워낙 이라 B클래스로는 떨어지지 않는 상황. 그러나 교류전 막바지부터 미친듯이 승을 쌓아 2위 지바 롯데 마린즈를 3위로 끌어내렸다! 7월 8일, 치바롯데를 상대로 3대12 대승을 거두며 12연승 질주 중. 그 다음날 7월 9일도 롯데에 영봉패의 수모를 안기며 13연승을 달성, 승률 6할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매가 너무 높이 날고 있다. 다음 날은 일요일, 선발투수는 일요일의 남자 오오타니 쇼헤이.

7월 10일 지바롯데와의 경기에서는 9회말 다나카 켄스케의 동점포 + 12회말 브랜든 레어드의 끝내기홈런으로 승리, 14연승까지 달성하며 2007년에 달성한 구단최다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23]

7월 11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요시카와의 5⅓이닝 무실점 호투를 앞세워 4-1로 승리, 15연승을 기록하며 구단 통산 최다연승기록을 경신하였다!

그러나 12일 경기에서 오릭스에게 패했다. 13일 경기를 역전승으로 다시 잡으며 국민호구 오릭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따내고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했다. 하지만 작년처럼 여전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너무 멀리 나간 탓에(...) 15연승에 6할 승률을 마크하고도 시즌 성적은 여전히 2위. 7월 13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8경기에서 7승 1패를 기록하며 호크스를 바짝 추격중이다.

투수진은 오타니 쇼헤이아리하라 코헤이가 1점대에 근접한 방어율을 찍으며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도쿄 대첩(야구)허용투수 마스이 히로토시는 망했지만 타니모토 케이스케, 미야니시 나오키, 마무리 크리스 마틴이 버티는 불펜진도 강력한 모습. 타선에서는 역시 오타니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리그 및 팀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외국인 타자 브랜든 레어드, 3할 타율의 양다이강, 다나카 켄스케, 기복은 있지만 여전히 장타를 생산할 수 있는 나카타 쇼,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두터운 젊은 선수층이 고르게 활약하고 있다.

8월 5일~7일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게임 차를 3게임으로 줄였고, 소프트뱅크가 이 3연전을 계기로 4연속 루징 시리즈를 시전하는 사이 야금야금 승수를 쌓아 8월 18일 오릭스 전에서 6:1로 역전승하며 1위 소프트뱅크와 승차는 반 게임 앞서지만 승률[24]은 1리 모자란 2위가 되었다.

이 후 호크스와의 홈 3연전에서 절호의 역전 찬스를 잡았으나, 2경기 연속 펠레 스코어로 패하면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 하지만 다음 롯데 3연전을 스윕하면서 라쿠텐에게 1승 2패로 루징 시리즈를 당한 호크스를 드디어 제치고 8월 25일 1위에 올랐다.

9월 26일 오사카 돔에서 벌어진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방문 경기에서 4-3으로 신승했고, 같은 시간 소프트뱅크가 롯데에게 2-3으로 패해 니혼햄의 퍼시픽리그 우승 매직넘버는 1로 줄었다.

그리고 9월 28일 세이부 돔에서 벌어진 세이부와의 원정경기에서 오타니의 1피안타 완봉승으로 세이부를 1-0으로 꺾으며 4년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이 기세를 몰아 10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6년은 143전 87승 53패 3무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1.5게임 차를 뒤집혀 준 소프트뱅크와 대결해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부전승 포함 4승 2패로 소프트뱅크를 꺾고 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2006년 이후 3번[25]이나 준우승을 맛본 건 물론, 상대는 엄청난 전력의 히로시마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고 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선발투수로 내고도 패하는 등 초반 2연패를 당했으나, 3차전에서 오타니 쇼헤이의 끝내기 적시타로 5-4 역전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파죽지세의 4연승을 기록. 10년 만의, 팀 통산 3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다!

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2013년2014년2015년2016년
연 평균1,858,624명 (-6.6%)1,855,655명 (-0.2%)1,897,789명 (+2.3%)1,959,943명 (+3.3%)2,078,981명 (+7.6%)[26]
일일 평균25,813명25,773명26,358명27,221명29,281명[27]

6 팀 특징

6.1 드래프트 지명 방식 : 상남자 스타일

연고지 이전 이후에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더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구단이 보면 부러워한다. 다르빗슈 유, 나카타 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등이 드래프트 1라운더들.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추파를 받았을 정도로 2012 시즌 일본 고교야구의 핫이슈였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역시 이 팀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이처럼 1라운더들이 다른 팀에 비해 대박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해 고교야구 최고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를 무조건 지명하기 때문.(...)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방식 때문인데,

  • 지역 연고에서 1차지명을 뽑는 KBO 리그와 전년 성적 역순으로 드래프트를 진행하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일본드래프트에서 1차지명은 제비뽑기로 뽑는다.[28] 즉 운빨이라는 소리. 그러나 S급 선수, 원하는 선수를 제비뽑기를 통해 뽑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 일본에서는 특급선수들이 선호하는 구단이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이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돈지랄로 선수들을 사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신인들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닌데 고교야구에서 좀 날라다닌다 싶으면 거액을 주겟다며 통큰 행보를 보이고, 당연히 돈이 곧 자신의 가치인 프로세계에 발을 들이는 학생선수들은 요미우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구단에서 A선수를 지목했을때 해당 선수가 "x까 나 요미우리아니면 안가!"를 선언하고 사회인야구로 가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요미우리 가고싶어서 2번이나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거부한 오뎅장수 초노 히사요시. 이렇게 되면 구단들은 1픽을 그냥 날려버리기 때문에 선수가 대놓고 선언하면 다른 팀들은 해당 선수 지명을 피한다. 그러나 닛폰햄 파이터즈는 그런거 다 필요없고 잘하면 무조건 "너 내꺼될 준비해!"라며 지명한다.(...)

닛폰햄의 경우 일본 최북부의 홋카이도라는 연고지 위치도 그렇고,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약해서 물먹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소신있는 지명 방식 덕에 1라운더 대박이 자주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로또 전쟁: 일본의 신인지명 이야기라는 글을 참조.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1픽 날린 사례
    • 스가노 도모유키는 대학야구를 씹어먹고 2011년 드래프트에 참가, 당대 최고 선수로 많은 구단들이 탐을 냈었다. 그러나 스가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하라의 외조카였기에 "나 요미우리 갈꺼다."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1픽으로 뽑더라도 계약을 거부할 확률이 99%였기때문에 다른 구단들은 눈치를 보며 빠졌지만, 상남자의 니폰햄은 "우린 너다!"라며 지명. 제비뽑기에서 승리하며 지명권을 따냈지만 스가노 는 당연히 지명 거절을 하며 재수를 선언했다.[29] 니폰햄은 멀쩡한 1픽만 날려버린 셈.
    • 2013년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소신 픽을 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첫 제비뽑기 3연패를 달성하며 1라운드 꼴지픽을 하게 된다.(...) 이는 전년도 꼴지팀이 1라운드 꼴지픽을 한 사례이기도 하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대박친 사례
    • 다르빗슈 유는 당시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중 한명이었지만, 자기관리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30] 그러나 니폿햄은 그런거에 관심이 없다며 당당하게 소신픽 했고 단독 1픽을 뽑아내며 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20세의 나이부터 일본프로야구의 절대자로 군림하며 거액의 포스팅비로 메이저리그까지 건너간다.
    • 오타니 쇼헤이는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투수로써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투수였다. 당연히 많은 구단들과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오타니는 "나 메이저 갈꺼임 건들지 마셈"이라고 선언, 다른 팀들이 눈치보고 빠질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상남자 닛폰햄 파이터즈는 또 다시 "어쩌라고."라며 패기있게 1픽으로 지명, 결국 지명권을 따낸후 설득을 거쳐 오타니 쇼헤이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6.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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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인간들이 많다 카더라

괴짜 야구선수로 유명한 신조 츠요시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비범한 장난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홋카이도로 막 이전한 미미한 구단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팬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똘끼의 주범(...)인 신죠 츠요시가 프로야구계에서 팬서비스를 유달리 강조한 선수이기도 했고. 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역대 모기업 중에 특촬물 제작기업이던 토에이 산하의 야구단이었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특촬물과 연관지어서 놀기도 한다.[31]

이후 신조 츠요시가 닛폰햄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난후 모리모토 히초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32] 모리모토 이후 묘한 정신세계의 외야수 계보(...)는 이토이 요시오가 이었다가,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행.

7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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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9일 새 유니폼을 공개했는데 의외로 멋지게 나왔다. 원정이 황금색과 검정색으로 도배 되어있었으며 홈 유니폼은 완전 간지! GO! GOLD RANGER! 이 유니폼 변경의 유일한 패배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9 유니폼 원정 유니폼 전면 표기가 HOKKAIDO NIPPONHAM으로 바뀌며 원정 유니폼 전면에 연고지가 표기된 제 4[33] 제 3 구단이 되었다. 그리고 보조 유니폼인 HOKKAIDO 유니폼을 매 년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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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형 보조 유니폼.

홈과 원정 때 쓰는 모자가 다른데, 홈에선 F가 새겨진 모자를, 원정에선 H가 새겨진 모자를 쓴다. F는 Fighters의 앞글자이고, H는 Hokkaido의 머릿글자. Ham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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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형 보조 유니폼, 색감이 상당히 특이한데 이는 홋카이도 후라노의 라벤더밭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쓰인 라벤더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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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형 보조 유니폼, 메인컬러로 쓰인 초록색과 보라색은 3월 26일에 개통된 홋카이도 신칸센에도 사용된 컬러이다.

8 대표적인 선수들

홋카이도 시대 이 팀을 대표했던 선수는 다르빗슈 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한타다노 카즈히토도... 공수겸장 2루수 타나카 켄스케[34],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이적한 강타자 이나바 아츠노리, 한국계 가네코 마코토모리모토 히초리, 지금은 주니치 드래곤즈에 있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이 이 팀을 빛냈다.

8.1 현역(2016년 기준)

9 OB

9.1 감독

9.2 투수

9.3 포수

9.4 내야수

9.5 외야수

9.6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

10 영구결번

특이하게도 1번째 영구결번을 구단 오너 로 지정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영구결번
No. 100
오코소 요시노리

오코소 요시노리가 그 주인공. 이 사람은 파이터즈의 現 모기업인 닛폰햄의 창업자이자 닛폰햄 시대의 첫 오너다. 2009년 일본 야구전당에 입성했는데 이것을 기념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 故 오사와 케이지 감독의 번호였던 86번은 오사와의 퇴임 이후 등번호를 선택한 선수나 코치가 없어 사실상 영구결번 상태이다.
  1. 도쿄 연고 시절에는 야구배트를 든 기사 모양의 로고 마스코트 #태양을 모티브로 한 교로탄, 익룡을 모티브로 한 파이티를 사용했으나 홋카이도 연고 이전 후 홋카이도 토착종인 곰과 다람쥐를 모티브로 새로 마스코트를 만들었다.
  2. Brisky the Bear, 곰을 모티브로 한 마스코트로 B.B의 경우 일본프로야구 마스코트 중에서도 독보적인 똘끼(…)를 보여주는 것으로 꽤나 유명하다. 신조한테서 배웠나
  3. Polly Polaris, 다람쥐를 모티브로 한 마스코트.
  4. 오리지널(그러니까 도쿄 시절의) 파이터즈 팬들을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파이터즈 홈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명 반대파의 근거는 하나 떨어지고...
  5. '日本'의 일본어 발음을 '닛폰'이라 표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꺼리는 경향이 있다.
  6. 참고로 이 해 일본시리즈는 전 시리즈가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렸다.(즉 덕아웃 시리즈) 요미우리와 닛폰햄이 둘 다 고라쿠엔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 아직 LG와 두산이 해내지 못한 것을...
  7. 퍼시픽리그는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전후기리그로 나눠 운영했으며, 전후기 우승팀 두 팀이 5전 3선승제로 벌이는 플레이오프를 실시했다.(전후기리그 전부 우승시 일본시리즈 직행) 1985~88년 한국프로야구 규정과 동일. 닛폰햄은 1981년, 1982년 후기리그 우승을 했다.
  8. 그리고 1975년 시즌 종료 후 장훈도 닛폰햄을 떠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갔다.
  9. 여담이지만 마지막으로 롯데에서 보낸 시즌인 1980년에 교진군에서 롯데로 이적한 사실 쫓겨난 거에 가깝지만 장훈과 다시 같은 팀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장훈은 롯데에서 3000안타를 달성. 그 뒤 1981년까지 현역으로 뛰고 장훈은 은퇴했다.
  10. 게다가 2000년대 중반 이전의 일본야구는 관중 부풀리기가 일상화되어 있었고 교진만 해도 실집계로 전환한 후에는 300만을 밑돌고 있다. 실제로 닛폰햄 경기를 보기 위해 도쿄돔을 찾은 사람이 얼마나 적었을지는...
  11. 정확히는 축구장으로 쓰고 있었다. J리그 콘사도레 삿포로의 본거지이다.
  12. 물론 프로야구 공식전(시즌 경기)가 가끔 열리곤 했는데, 이때는 세이부 라이온즈가 제2홈구장으로 사용했다.
  13. 이 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대혈투를 벌인다. 호크스의 에이스였던 사이토 가즈미는 최종전에서 패배한 이후 부상에 시달리다가 오랜 재활에도 불구하고 끝내 은퇴에 이른다.
  14. 당시 상대팀은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이끌고 이와세 히토키, 후쿠도메 고스케, 타이론 우즈 등이 활약한 주니치 드래곤즈였다. 최종성적은 4승 1패.
  15. 특히, 시리즈 최종전인 5차전은 일본시리즈 최초의 퍼펙트 게임이 나온 경기로 파이터즈가 희생양이었다. 이에 대한 뒷얘기는 퍼펙트 게임 항목 참조.
  1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이와쿠마 히사시다나카 마사히로 단 두 명의 투수로 틀어막았다.
  17. 타격은 니혼햄 바로위의 5위지만 투수진은 방어율 1위를 달성.
  18. 닛폰햄측에선 '에이스' 타케다 마사루를 층이 얇은 중간계투로 보내서 보강하는게 목적이라고 했지만, 팬중 그 누구도 방어율이 4~6점대를 왔다갔다하는 투수를 에이스라 칭하며 중간계투로 돌리는게 강화라는 구단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19. 작년의 우승팀인 소프트뱅크의 성적인 승률 5할 +18 이었다.
  20. 이 날 경기 전 순위상으로는 3위가 세이부, 4위가 롯데였으나, 양 팀이 이 날 경기 전까지 세이부는 9경기, 롯데는 15경기나 남겨두었기 때문에 2위의 가능성이 남아 있던 팀은 롯데 뿐이었다.
  21. 심지어 3위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만나야 되는 팀이다!
  22. 상대 선발인 와쿠이 히데아키6.1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무려 143개를 던졌음에도 단 1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23. 그리고 이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홋카이도로 연고지 이전 후 홈경기 500승이라는 기록도 달성되었다.
  24. 호크스 승률 0.621, 파이터스 승률 0.620.
  25. 2007, 2009, 2012시즌
  26. 구단 신기록
  27. 구단 신기록
  28. 2차지명부터는 성적 역순으로 간다.
  29. 정확히 말하면 1년 놀았다(...) 쉬는 동안 연습경기 2번 등판한게 전부였다고.
  30. 2004년 9월에는 담배피는 모습이 걸리는 바람에 일본고교야구연맹으로 부터 엄중경고를 받기도 했다.
  31. 재밌게도 위의 탈의 모티브인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최종보스인 흑십자총통을 맡았던 배우 야나 노부오 옹은 원래 그 야구단(토에이 플레이어즈 시절)의 투수 출신 배우이다!
  32. 이후 모리모토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으나 먹튀.
  33. 요코하마 DeNA가 원정 유니폼 앞면에서 연고지 표기를 오른팔로 옮기며 하나 줄었다.
  3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쳐 2015년 닛폰햄 복귀.
  35. 일본시리즈에선 작년에 4승1패로 박살낸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똑같은 전적으로 박살나면서 주니치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V2를 허용했다. 심지어 패배가 결정된 5차전은 합작 노히트 노런까지 당했다.
  36.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감독을 맡았고, 해임된 뒤 2013년 시즌까지 LA 다저스에서 돈 매팅리 감독 휘하의 코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벤치코치(한국으로 치면 수석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6년 10월 SK 와이번스 감독 선임을 위한 면접을 진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결국 진짜로 SK 와이번스의 제6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37. BECK다나카 유키오의 이름은 이 선수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