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

洪英喆
생몰년도 미상

1 일생

소공동파의 두목으로 평양 출생.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괴롭힘을 많이 당하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여 이후 깡패가 되었다고 한다.

1944년에 경기중학교를 나와 대학은 연희전문학교 (오늘날의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대학을 다니던 와중에 6.25 전쟁이 일어나 대구에서 제3대 학도의용군 총본부장을 했으며, 부산의 국제구락부 사건, 정치파동 등에 관여했다고 한다. 안경을 끼고 싸우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그의 발차기였다고 한다.

김두한이 건중친목회에 끌어들여서 건중친목회에서 일하다가 명동파와 손잡고 이정재를 견제했다. 이후 이정재가 최고 지위에 오르자, 명동파와 대립하면서 이정재와 연계했다고 한다.

5.16 이후 반공청년단 감찰부장의 경력 때문에 수감된 적이 있었을 때, 영어 원서를 읽어 형무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실력이 있었다고 하며, 대한실업협회 회장직을 7년 동안 유지하기도 하는 등, 주먹계의 조조라는 악평을 받았다.

홍영철에 대한 이 기록들은 유지광의 회고록에서 나온 것이다.

2 야인시대의 홍영철

홍영철(야인시대) 항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