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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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甫嵩
(? ~ 195년)

1 개요

황보 숭은 안정군(安定郡) 조나현(朝那縣) 출신으로, 후한 말기에 활동하였던 장군이다. 문무를 겸비하였고 충직하였던 그는 부정부패가 만연하였던 후한 한나라에 드물었던 충신이었다. 그는 황보규의 조카고, 황보력의 삼촌이며, 황보견수의 아버지다. 그의 증손으로 침구학가로 알려진 황보밀이 있다.

황보숭의 는 의진(義眞)이며, 그의 성은 황보씨로, 이는 복성이다. 성은 황씨가 아니라 황보씨이다.

연의 속 입지는 좁고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당-송대에 황실에서 무성왕 태공망의 묘에 제사를 지낼때, 무성왕의 묘 주변에 세울 무인석을 만들때 반드시 꼽히고는 하던 명장이었다. 여기서는 총 70명의 명장들을 뽑았는데, 황보숭은 한대의 명장 중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인이었으며, 그를 포함한 열한 명의 삼국지 관련 인물[1] 중에서는 위, 촉, 오 삼국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

2 생애

2.1 황건적의 난에서

그의 재능은 그가 젊었을 때 이미 조정에 까지 널리 알려져 그는 일찍이 효렴과 무재로 천거되었으며, 낭중을 역임하여 패릉과 임분의 현령에 승진했지만, 그는 곧 아버지의 상 때문에 관직을 사퇴하였다. 그는 대장군 두무와 태부 진번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영제 때 의랑에 임명되었고 곧 이어 북지태수로 전임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은 황보숭을 좌중랑장에 임명하어 노식 그리고 주준 과 함께 황건적을 토벌에 나설 것을 명하였다. 그는 장사를 수비할 때 화공을 베풀어 당시 파재가 이끌고 있던 황건적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고, 때 마침 장사에 도착한 조조와 협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황보숭은 도향후에 봉해졌고 계속 황건적 소탕에 공을 세웠다.

그가 올린 전과는 그야말로 대단하였다. 그는 파재를 양적까지 추격하하였고, 곧 이어 여남 그리고 진국의 황건적들을 토벌하였다. 또한 그는 서화의 팽탈을 격파하고 복사(卜巳)가 이끌던 동군의 황건적을 격파하고 우두머리 복사를 생포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그리고 장각 부대와 싸우던 노식은 연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좌풍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벼슬에서 쫓겨났는데, 그 뒤를 이은 후임 동탁은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하여 황보숭이 조정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동탁을 대신하여 장각의 본진을 상대하게 되었다.

황보숭은 안평군 광종에서 야습으로 장량 부대를 대파해 장량을 참하였고, 이미 병사한 장각의 사체를 발견했다. 또한 장각의 동생인 장보의 세력도 격파하고 장보를 살해하였다. 이렇듯 황보숭은 연달아 큰 공적을 세워 기주목 겸 좌거기장군이 되었고 괴리후로 봉해져 식읍 팔천 호를 하사받았다.

후한서》에 당시 황보숭의 대인배적인 모습이 잘 기술되어 있다. 그가 기주목이 되었을 때 한해 간의 조세를 백성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황제가 이를 허락하여 백성들은 황보숭의 은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더불어 그는 부하 사졸들의 식사가 끝난 후에야 식사를 하는 등 솔선수범을 행하였다. 특히 그으 주변에는 뇌물을 받은 부하가 몇명 있었는데, 이를 파악한 황보숭은 도리어 자신이 소지하던 금품을 그 부하들에게 내어줬다고 한다. 이를 받은 어떤 부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2.2 벼슬을 박탈 당하다

한양 사람 염충이 황보숭에게 고하기를, "장군님의 기세는 한신보다 더 강하며, 지금 황제유방 발끝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니 한신과 같은 참혹한 말로를 걷지 마시고 장군께서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고 새 왕조를 여십시오"라며 권유했다. 조정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던 황보숭은 이런 제안을 물리쳤다.

그러나 그는 조정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장양은 황건적을 토벌하던 중에 황보숭에게 뇌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고, 조충은 대저택을 지었다가 황보숭이 이를 조정에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장양과 조충은 황보숭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미워하였다. 결국 황보숭은 장양과 조충이 벌인 공작에 의하여 모함당하였는데, 이로써 그는 좌거기장군의 인수를 조정에 반납하게 되었고, 식읍은 이천호로 그 수가 줄었다.

2.3 동탁과의 갈등

한수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2], 조정에서는 황보숭을 좌장군에 임명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동탁도 이 토벌에 참여토록 명하였다. 전투에 앞서 작전회의 중 공격시기에 대한 그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렸다. 결과적으로 양주(涼州)의 왕국(王國)이 이끄는 퇴각하는 적을 섬멸하는 공을 황보숭이 취하였는데, 이로써 그는 동탁과 사이가 나빠졌다. 사실 동탁은 총 4만의 군세 중 2만을 거느렸으며,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서 이 군세를 고스란히 자신의 세력에 편입시켰다.

여하튼 그동안 동탁이 숨겨왔던 악한 본심을 알게된 황보숭에게 조카 황보력이 동탁을 제거하자며 강하게 주장했지만, 황보숭은 조정의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며 이를 조정에 보고 했다. 조정은 동탁을 책망하며 그의 휘하에 있던 부대를 황보숭에게 넘기고 황보숭의 부장으로서 황보숭의 명령을 따르라는 내용의 칙서를 내렸다. 그러나 동탁은 그 병졸들이 자신을 따르기를 원한다고 답하며 조정의 명령에 수긍하지 않았다. 동탁은 이렇게 크고 작은 군세를 흡수해가며 훗날 하진에게 소환당할 때까지 버티다가 마침내 스스로 재상의 자리에 올라 국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훗날 동탁이 무소불위릐 권력을 손에 쥔 이후에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모두 동탁에 의해 제거되거나 또는 환란을 피해 도망쳤는데, 190년에 황보숭은 성문교위 직을 맡으라는 동탁의 강압에 의한 조정의 명을 받았는데, 이는 도성으로 황보숭을 불러들여 죽이려는 동탁의 계책이었다. 이러한 속뜻을 감지한 황보숭의 주변 사람들은 동탁을 공격해야 한다고 황보숭을 설득했지만, 황보숭은 순순히 낙양으로 향했다. 황보숭은 동탁에 의해 감옥에 갇혀 죽음의 위기에 몰렸는데, 동탁과 친분이 깊던 황보숭의 아들 황보견수가 장안에서 급히 낙양으로 달려와 동탁에게 부친을 사면해줄 것을간절하게 빌어 황보숭은 목숨을 건졌다.

이후 황보숭은 의랑에 임명되었고 이후 어사중승으로 승진하였는데, 동탁이 장안에 도착할 때 어사중승 이하 모든 관원에게 명하여 동탁 자신에게 인사하도록 해 황보숭을 굴복시키려 했다. 이때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는 다음과 같다.

동탁: "아직도 내게 복종하지 않을 텐가?"

황보숭: "공께서 이렇게 되실 줄 차마 몰랐소이다."
동탁: "홍곡(鴻鵠)의 큰 뜻을 참새가 어찌 알겠나?" (홍곡- 기러기와 고니를 말한다.)
황보숭: 과거에는 저와 공 모두 홍곡이었으나, 공만이 오늘에 이르러 봉황이 된 것뿐이지요."

이는 나름대로 황보숭 본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동시에 동탁도 치켜세워 주어 동탁의 비위에 맞춰주는 현명한 처사다.

동탁이 죽고 나서 황보숭은 거기장군 그리고 태위에 올랐으나, 그해 겨울에 별똥별이 떨어져 그는 면직 되었고, 다시 황명에 의해 광록대부와 태상의 직까지 올랐다가 삼보의 난이 일어날 무렵에 병으로 죽었다. 아들 황보견수도 명성이 있어 시중에 임명되었지만, 사관을 거절했다고 한다.

3 미디어 믹스

창천항로에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현실지향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조정 내의 정치적 입지에도 신경쓰느라 전투에 전념하진 못하고 있으나 전장의 상황을 제대로 궤뚫어보는 등 결코 무능하지 않고, 자신이 전란의 숨통을 끊는 능력은 되지 못하나 대신 그럴 능력이 있는 조조손견 등을 기용할 정도의 양식을 갖추었다. 나름의 융통성은 있는 높으신 분 기믹.

삼국지 가후전에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황보숭(삼국지 가후전) 항목 참조.

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몇몇 시리즈를 제외하면 통솔력이 90대이다. 통솔본좌이지만 무력, 정치가 매우 안습한 무장. 단 지력은 무관계열중 무난히 높은 편이고, 매력은 거의 전 시리즈에서 80대를 찍으며 동탁군에 매력 높은 장수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등용셔틀로 쓰기도 좋다. 동탁군으로 플레이할 경우 등용셔틀, 나머지로 황보숭을 손에 넣었다면 동탁군 잔당들 등용셔틀.

삼국지 3에서는 이 게임이 만들어질 당시 황보숭에 대해 장각을 부관참시했다는 것 이외에는 널리 알려진 게 많지 않아서였는지 그냥 잡무관으로 등장한다. 육지63 수지30 무력68 지력64 정치72 매력74의 아주 좋은 문관으로 등장한다. 뭐? 저 능력치에 대해 생각해볼 게 좀 있다면 매력과 무력을 맞바꾸고 정치와 수지를 맞바꾸면 똑같은 스텟총합으로도 장군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삼국지 9에서는 85/56/76/72의 능력치로 등장한다. 돌파, 제사, 덫을 가지고 있다. 나쁘지 않긴 한데 통솔이 90대인 것도 아니고 무력도 낮아서 병법 위력이 안 나오고.. 시대를 생각해보면 좀 애매한 장수. 후기작에서의 뛰어난 능력치를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굴욕.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93/62/78/45/82의 본좌급 통솔력에 매력도 훌륭한 명장으로 나온다. 돌격, 화시 특기가 없이 일제특기만 있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통솔력이 워낙 본좌라 전장에선 잘 써먹을 수 있고, 내정쪽으로도 치안, 징병 특기가 매우 유용하다.

삼국지 11을 기준으로 통솔 87에 지력 75라는 괜찮은 스탯을 지니고 나오지만, 하필이면 특기가 잉여인 화공이다. 고증에 맞기는 하지만.

삼국지 12에서는 92/61/73/51으로 상승되었다. 전법은 의외로 화계가 아니라 창군견수다. 다만 지력을 생각하면 화계보다는 창군견수가 더 나을수도 있긴 하다. 자연사가 되어서인지 같은 중랑장인 주준보다 오래못산다. 주준같은 경우 PK에서 추가된 시나리오인 패왕원소 시나리오까지 살아있는 반면 황보숭은 군웅할거까지만 등장한다.

삼국지 13에서 89/61/73/57으로 통솔이 약간 깎이고 정치가 상향되었다. 다만 황건의 난 시나리오로 시작할 때는 도독 상태이기 때문에 +3의 관직 보정을 받아서 통솔은 여전히 92가 되고 무력도 64로 상향된 상태로 쓸 수 있다. 전법은 이번작에서도 화계 계통 전법 대신 아군의 방어력과 사기, 이동력을 올려주는 '속방채배'를 받았다. 같은 전법 보유자는 두예, 조비, 유찬. 통솔이 높고 훈련7이 있어서 내정에서는 훈련만 돌려줘도 밥값을 하며, 중신특성으로 신중견수가 있다. 하진군이라면 전장에서는 당연히 에이스. 그 외에는 창병 적성이 S급, 궁병 적성은 A급을 자랑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황건의 난과 동시에 짤린 줄 알았으나 에필로그에서 황건의 난을 다뤄주면서 막판에 가서야 등장했다. 황건적 토벌의 공신 3인이 모두 삼대장으로 패러디 되었고 황보숭은 그 중 사카즈키로 등장한다. 화공을 썼다는 것 때문인 듯. 하후돈이 황보숭을 특히나 높게 치며 자신은 그에 비해 발끝도 못따라간다고 평한다. 그러자 조조는 오히려 앞으로 하후돈이 더 대단해질거라 추켜세워준다. 이유는 황보숭과는 달리 하후돈에게는 조조 자기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1. 이 중 무인은 관우, 장비, 여몽, 육손, 육항, 주유, 장료, 등애, 양호. 총 9명이며 제갈량장량, 한신 등과 함께 상석에 배향되는 10명에 뽑혔다.
  2. 위에 나온 염충은 이 한수의 반란에서 한수에 의하여 억지로 황제로 추대되었는데, 그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자신이 처한 신세를 한탄하다가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