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당

Black-Panther-Party-armed-guards-in-street-shotguns.jpg

Black Panther Party
미국의 실존했던 무장단체이다. "흑인의 강인함과 존엄을 표현하기에는 검은 표범이 가장 알맞다"는 주장 아래 조직되었으며 1960~70년대 히피열풍과 反문화적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흑백차별금지, 흑백 분리 정책을 추구하며 무장투쟁을 추구하였다. 맬컴 엑스의 급진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마오이즘, 안티 파시즘, 반제국주의도 주장하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버클리 등지에서 시위가 잦게 일어나는 중에 그 지역 경찰들로 남부 출신자들(KKK의 잔당들)을 특채로 대거 뽑아버리자 이에 자극을 받아 창단됐다고도 한다.

흑표당의 창립자는 바비 실과 휴이 뉴턴으로, 1966년 10월 15일 캘리포니아 주의 오클랜드에서 흑표당을 세웠다. 당의 지도부 중에 사회주의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마오주의에 가까웠다. 마오쩌둥 어록에 나온 마오쩌둥의 혁명 조언에 영감을 받은 휴이 뉴턴은 '생존주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름은 매우 거창하지만 생존주의 프로그램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어린이들을 위해 공짜 아침식사를 제공해주는 것과 어린이들이 등하교 버스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할까봐 자체적으로 카풀을 운영한 것이다.

다른 생존주의 프로그램들은 의류 분배, 정치와 경제의 계급, 무료 의료업, 자신방어와 응급 치료에 관한 수업, 피수용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지방 교도소 등을 포함한다. 또 1971년 흑인 청소년들을 위해 교육 기관 "상호 청소년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히피운동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쇠퇴하였다. 공식적으로 1982년 해체하였다. 안그래도 60년대의 각종 반전 시위, 신좌파의 부상 등에 골머리를 싸매던 당국 입장에서는 감히 깜둥이가 총들고 자기 밥그릇 챙기겠다고 개기는 행위를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집중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 탄압 과정의 백미는 시카고 흑표당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프레드 햄프튼과 그 동지들을 FBI가 직접 나서서 시카고의 그의 집에서 쏴 죽인 사건이었다. 이 작전의 주 책임자였던 FBI 그레그 요크 요원의 말을 들어 보자.

"We expected about twenty Panthers to be in the apartment when the police raided the place. Only two of those black niggers were killed, Fred Hampton and Mark Clark."

"우리는 그 아파트에 흑표당원 한 20명은 있을거라 생각하고 처들어갔는데, 막상 가보니 프레드 햄프튼과 마크 클라크 두 흑인 깜둥이만 죽이고 나왔다."

쇠퇴 이후에도 진보적 성격의 NGO들이 이들이 제기했던 일부 의제들을 계승해서 도시빈민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검은색 베레모와 총기가 상징이다. 총기 같은 경우는 사실 시위현장[1]이나 흑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등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습격할까봐 무장경호를 한 것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등장한다. 파월병사인 검프를 당연히 아니꼽게 보고 검프에게 공격적인 발언을 해대며, 바비 실을 모델로 한 캐릭터도 등장한다.

조금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총기를 들고 무장투쟁을 중시한 것 때문에 나중에 흑표당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아 흑인 스트리트 갱스터 (Street Gangster)들이 창건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립스나 black p. stone 등이 있으며 블랙 게릴라 패밀리 같은 교도소 갱단들도 흑표당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주체사상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한다.#1 #2 흑표당의 정보국장 엘드리지 클레버는 1969년 평양의 반제국주의 기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당시의 주체사상은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수준이었고, 주체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받아들인 것 같다(...). 흑표당을 북한식으로 쓰면 흑인팬셔당이 되는 듯

마블 코믹스블랙 팬서가 이 단체에서 이름을 따왔다.
  1. 당시 시위진압 방식은 잔혹하기 그지 없었다. 곤봉으로 찍어버리는 것은 예사이고 들을 풀어서 시위대를 물어 뜯게 하는 일도 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