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한국시리즈


역대 KBO 한국시리즈
1988년
해태 타이거즈
1989년
해태 타이거즈
1990년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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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한국시리즈 4연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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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1 개요

1989년 10월 26일에 시작하여 11월 1일에 종료된 한국시리즈로 해태 타이거즈가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다. 해태는 이 우승으로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및 전무한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반대로 빙그레 입장에서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우승을 놓치면서 1999년 우승 전까지 가장 우승에 가까웠던 순간을 아깝게 놓쳤다.사실 빙그레 전력으로 보면 이때보다는 92년이 더 아까웠다.

시리즈 MVP는 18타수 8안타를 치면서 활약한 박철우.

2 시리즈 전 상황

1989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시즌 체제가 도입된 시즌이었다. 이미 1988년에 돌풍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빙그레는 1989년에는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켰다. 정규시즌 운용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영덕 감독의 시즌 운용에 더해 이정훈, 유승안, 고원부, 장종훈, 이강돈을 비롯한 막강한 타선이 시즌 내내 위력을 보이면서 타격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가져간 상황이었고, 마운드에서도 이상군한희민의 원투펀치가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었다. 이 빙그레의 전력에 천하의 해태가 한 수 접고 들어가 2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 해 PO 일정이 좀 묘했는데, KBO가 짜 놓은 PO 일정은 10월 14일부터 10월 21일까지였고, 한국시리즈는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였다. 즉, PO가 5차전까지 가도 PO 승자는 5일을 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1위팀은 경기 감각적인 면에서 불리할 수 있었다. 과거와 다른 단일시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데, 이 때문에 해태는 2위로 올라가 경기 경험을 쌓고 한국시리즈에 임하면 불리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마침 PO 상대도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태평양 돌핀스였고, 태평양은 이미 준PO에서 삼성과의 혈투 속에 그 해 19승을 거둔 박정현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투수진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해태는 가볍게 태평양을 3:0으로 스윕하며 올라갔지만, 그 속에서 타선이 생각보다 터지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였다. 반대로 빙그레는 껄끄러운 해태가 올라왔고, 경기 감각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그 해 가장 강력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우려했던 경기 감각이 시리즈 내내 빙그레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3 엔트리

당시의 엔트리를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4 경기 결과

4.1 1차전 : 빙그레, 선동열을 넘다.

1차전 10.26(목) 18: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123456789RH
해태선동열00000000006
빙그레이상군10000003X45

중계방송사는 KBS 1TV.

해태의 1차전 선발은 당연하지만 선동열이었고, 빙그레는 이에 맞서 팀의 에이스 이상군을 올렸다. 경기 시작과 함께 묘한 기운이 흘렀는데, 1회말 공격에서 이강돈이 선동열 상대로 백스크린을 넘기는 선두타자 홈런을 날린 것. 그 뒤로 빙그레는 선동열의 공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선동열 상대로 8개의 볼넷을 얻으면서 지독하게 괴롭혔다. 점수를 많이 뽑지 못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공격을 길게 가져가면서 이상군에게 여유를 준 것은 소득이었다. 이상군도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해태 타선을 요리했다.

해태는 8회초 2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백인호의 플라이로 물러났고, 위기를 넘긴 빙그레는 곧바로 8회말 공격에서 선동열 상대로 2사 1,2루의 찬스를 잡은 후, 김상국의 2타점 2루타와 한대화의 실책을 묶어 3점을 뽑으면서 시리즈의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4.2 2차전 : 빙그레, 통한의 실책

2차전 10.27(금) 18: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123456789RHEB
해태조계현113010000610
빙그레한용덕400000000410

중계방송사는 MBC TV.

해태의 선발은 조계현, 빙그레의 선발은 한용덕이었다. 해태가 1회초에 2사 2루에서 박철우의 내야안타와 상대 송구 실수를 틈타 이순철이 홈을 파면서 먼저 선취점을 냈다. 그러나 빙그레는 조계현 상대로 1회말에 안타 4개와 볼넷 2개를 묶어 단숨에 4점을 내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해태도 정말 끈질겨서 2회 바뀐 투수 김대중 상대로 1점을 만회했고, 다시 3회초에는 빙그레의 3번째 투수 송진우 상대로 1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백인호의 타구는 유격수 앞 땅볼이 되면서 찬스가 날라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유격수 장종훈알을 까고 말았다. [2]

이 통한의 알까기로 동점을 허용했고, 이어지는 찬스에서 희생플라이가 나오며 간단히 역전. 그리고 5회초에 다시 유격수 황대연이 병살 타구를 받아 1루로 송구한 것이 뒤로 빠지면서 또 실점했다. 반대로 해태는 1회부터 나온 신동수가 꾸역꾸역 5회 1아웃까지 막았고, 그 뒤에 나온 이강철이 빙그레 타선 상대로 8회말 1사 2,3루의 찬스를 내주기는 했지만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면서 결국 경기는 해태의 승리로 끝났다. 이 날 빙그레가 저지른 3개의 실책은 모두 득점과 연결되고 말았다.

빙그레가 기록한 3실책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단순히 이날 경기에서 패한 것 뿐만 아니라, 1차전을 선점해서 분위기를 탄 빙그레의 팀 분위기를 한순간에 흐트러뜨림은 물론 해태와 빙그레 양팀의 분위기까지 바꾸고 말았다. 결국 그것이 이후 빙그레의 4연패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이 2차전이 1989년 한국시리즈 전체를 결정한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 3차전 : 3차전의 남자 문희수

3차전 10.29(일) 14:00, 무등 야구장
선발123456789RHEB
빙그레한희민00000000005
해태문희수01010000X27

중계방송사는 KBS 1TV.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을, 해태는 1988년의 영웅 문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기선은 빙그레가 잡을 뻔 했다. 1사 3루에서 고원부의 플라이 때, 이정훈이 홈을 파고 들다가 그만 김종모의 송구에 아웃되면서 선제점을 뽑을 기회를 놓쳤다. 반대로 해태는 2회말에 한대화의 적시타로 박철우가 득점했고, 4회말에는 김종모의 적시타로 다시 박철우가 득점하면서 점수를 내 먼저 2:0으로 앞서 갔다.

문희수의 투구에 7이닝 무실점으로 철저하게 눌리던 빙그레는 8회 선두 타자가 나갔지만, 치고 달리기 때 허무하게 주루사를 당하면서 찬스를 날렸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빙그레는 9회초 선동열 상대로 무사 2,3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았지만 여기서 고원부가 삼진, 유승안이 땅볼, 강정길이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동점 찬스를 허무하게 날리며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4.4 4차전 : 홈런 4방으로 힘을 과시한 해태

4차전 10.30(월) 18:00, 무등 야구장
선발123456789RHEB
빙그레이상군00000100127
해태김정수00210201X610

중계방송사는 MBC TV.

빙그레는 1차전의 영웅 이상군을 선발로 내세웠고, 해태는 가을의 남자 김정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빙그레는 이상군을 믿었지만 불행히도 이상군은 사흘 휴식 후에 제 컨디션은 아닌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응용 해태 감독은 이상군의 변화구를 노리기 위해 타자들에게 타석 앞으로 좀 더 나갈 것은 지시한 상황이었다. 3회말 공격에서 해태는 이순철 선제 2점 홈런으로 먼저 기선을 잡았고, 4회말에는 한대화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벌렸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1회 1사 2루에서 이중화가 3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잡힌 것과 2회 2사 1,2루에서 조양근의 타구를 잡아낸 해태 김종모의 호수비가 뼈아팠다.

6회초 빙그레는 유승안의 안타로 1점 추격했지만, 해태는 곧바로 6회말 공격에서 김성한의 2점 홈런으로 달아났고, 8회말에는 김성한의 연타석 홈런으로 승부를 완전히 굳혔다. 빙그레가 9회초 공격에서 장종훈의 솔로 홈런으로 1점 추격했지만 경기는 이미 뒤집을 수 없었다.

4.5 5차전 : 전대미문 4연패

5차전 11.01(수) 18:00,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123456789RHEB
해태신동수20210000059
빙그레한희민01000000015

중계방송사는 KBS 1TV.

해태는 선발로 신동수를,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을 내세웠다. 그러나 시리즈 도중 부상을 입은 한희민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고, 해태는 그런 한희민을 가볍게 두들겼다. 1회초 공격에서 1사 만루의 찬스를 잡아 한대화의 희생플라이와 백인호의 2루타로 가볍게 2점을 냈다. 2회말 공격에서 빙그레가 전대영의 홈런으로 추격하자, 곧바로 3회초 공격에서 박철우의 2루타와 백인호의 스퀴즈로 다시 2점을 더 냈다. 그리고 4회초에는 빙그레의 실책으로 다시 1점 추가.

4회말 빙그레는 신동수를 상대로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이 때 등장한 것은 해태의 절망의 벽 선동열. 이미 3차전에서 무사 2,3루의 위기도 넘긴 선동열에게 무사 1,2루는 위기도 아니었다. 선동열은 4회 무사 1,2루에 등장해 9회까지 던지면서 삼진 10개를 잡으며 빙그레 타선을 침묵시켰다. 빙그레가 7회 무사 1,2루와 9회 1사 1,2루의 최후의 찬스를 잡았지만 결국 무득점으로 경기가 끝났고, 해태는 사상 초유의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5 트리비아

  • 1차전 종료 후, 김응용 해태 감독은 신문을 보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의 부고. 한국시리즈라는 대사를 앞두고 자식이 일을 그르치는 것이 싫다는 김응용 감독의 부친의 의사로 소식을 전하지 말라는 엄명 때문이었다. 신문을 보고 소식을 접한 김응용 감독은 그 날 부산으로 내려가 상주 역할을 잠시 한 후, 다시 광주로 돌아와 덕아웃에 앉았다.
  1. 전무후무라고 쓰여있었으나... 그 말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 참고로 2차전에서 장종훈의 실책을 보고 해설진이 한 말이 "유격수 땅볼 병살 코스. 아, 놓쳤습니다! 알을 깠습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 홈인! 4대 4 동점! 그리고 주자 3루! 1루! 유격수의 더블 플레이 코스에서 결정격인 실책입니다."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10인 장종훈 편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