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역대 동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17회[1]18회19회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第十八回オリンピック冬季競技大会
XVIII Olympic Winter Games In Japan
대회기간1998년 2월 7일 ~ 2월 22일
개최국가/도시일본/나가노
대회 이념自然との共存
Coexistence with the Nature
(자연과 함께 공존)
공식 주제가(추가바람)
마스코트스노렛츠
참가국73개국
참가선수2,176명
(남자: 1,389명, 여자: 787명)
경기종목14개 종목, 68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자아키히토 천황
선수 선서오기와라 겐지
심판 선서히라마츠 준코
성화 점화이토 미도리
주경기장나가노 올림픽 스타디움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개최된 18회 동계올림픽. 역대 동계올림픽 중 가장 남쪽(위도 36 ° 34')에서 열렸다. 바로 직전 4년 전의 올림픽인 릴레함메르 올림픽이 가장 북쪽에서 올린 올림픽(61° 06' 53”, 동하계 포함)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압권.

1 선정 과정

1991년 영국 버밍햄에서 있었던 IOC 총회 투표에서 미국솔트레이크시티와 4차투표까지 가는 경쟁끝에 개최권을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솔트레이크 시티는 다음회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지만. 1차투표에서 이탈리아아오스타와 함께 4위였던 솔트레이크시티가 생환하여 깜짝 2위를 한 스페인자카는 물론 5수에 나선 스웨덴의 외스터순(Östersund)까지 가볍게 밀어내며 46:42로 따라 붙는 장면은 정말 일본으로서는 조마조마한 순간이었으리라. 스웨덴은 늘 안습

2 이모저모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 오페라 장면이다.

  • 이 대회에서 비에른 델리(Bjørn Dæhlie노르웨이)는 크로스 컨트리에서 3개의 메달을 추가로 획득하여 역대 메달개수가 금 8개, 은 4개로 총 12개가 되어서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의 주인공이 된다. 이 기록은 2013년까지 깨지지 않고 있었으나, 이 대회에서 처음 금메달을 딴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바이애슬론 선수이자 이름도 거의 비슷한 비에른달렌(Ole Bjørndalen)이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더 따며 총 13개로(금8은4동1)최다메달의 타이틀이 옮겨갔다.
  • 컬링이 1924년 이후 다시 정식종목이 되었으며, 스노보드(남녀 하프파이프/대회전)가 정식종목으로 추가되었다. 아이스하키의 여자부도 이 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
  • 또한 NHL의 적극적인 협조가 돋보이는데, 올림픽 시즌 동안은 정규 시즌을 잠시 중단하였고, 그 덕분에 NHL선수들이 참가가 가능해져서 대회의 질이 상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건, 각국이 NHL 스타를 대거 투입했는데, 정작 우승은 NHL 스타가 상대적으로 적은 체코가 우승했다는 사실.[2] 물론, 그 적은 스타 중에서 하키에서 가장 중요한 보직인 골리(골텐더)를 맡은 '도미네이터' 도미닉 하섹이 미친듯이 활약했다는 점은 체코 우승에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사실, 체코팀은 수비는 좋았지만 야로미르 야거가 중심이 된 공격진들의 득점력은 당시 상당히 빈곤한 편이었다. 한편, NHL의 본산 미국 팀이 토너먼트 1라운드 '광탈' 당한 것도 이색적이다. NHL 올림픽 브레이크의 최대 수혜자가 될 듯한 미국 팀이었지만, 예선리그부터 영 좋지않은 기량을 보이더니만,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이 '체코'와 격돌해 1대 4로 역전패했다. 이후로도 NHL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하지만 미국은 그 이후로도 좀처럼 우승을 못하고 있다. 그나마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는 솔트레이크와 밴쿠버에서만 좀 활약했을 뿐.뭐 Big 7의 말석인데 뭘 더 바라겠어(...)
여담으로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관중 동원은 거의 유일한 구기종목 팀스포츠(컬링은 포함시키지 않고 판단할때)인 아이스하키다. 한국도 평창 올림픽에서 하키 팀이 출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2006 토리노 대회 이후로 개최국 자동출전권이 사라진 상태라 알 수 없다. 당장 나가노 대회에서 개최국 일본팀은 참가국 중 뒤에서 두 번째로 꼴찌만 면했다. 그 뒤로도 일본팀은 다른 대회에 참가조차 못하고 있다. 이게 카자흐스탄을 뺀 아시아권 아이스하키의 현주소이고,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하키팀을 볼 수 있다면, 올림픽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출전하게 된다면 꼭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그 전에 IIHF 디비전 1A에서 생존이라도(...) 일단 평창에서 출전하려고 아이스하키빠인 한라그룹을 중심으로 엄청난 투자 중이고, IIHF도 이를 불쌍히여겨 세계 18위까지만 올리면 참가권 주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중이다.
  • 타라 리핀스키는 15살 257일이란 나이로, 사실상 불멸로 남을 올림픽 여자 싱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다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가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15살 249일의 나이로, 가장 어린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다만 리프니츠카야의 기록은 단체전 성적이며, 앞으로도 여자 싱글에서 리핀스키의 최연소 기록이 깨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 한편 프랑스의 흑인 스케이터 수리야 보날리는 피겨계의 뿌리깊은 인종차별[4]로 인해 늘 자신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ISU공인대회에서는 금지된 기술인 백플립을 선보여 공개적으로 심판들을 능욕했다. 이 대회는 그녀의 은퇴 무대였으며 직후 그녀는 프로로 전향, 아이스쇼들을 돌며 백플립을 선보이고 있다.



급한사람들은 3분 40초 주목

  • 개막식이 낮에 열린 마지막 올림픽 대회이다.[5]

3 대회 성적

개최국 일본갑자기 미친듯한 버프를 받으면서 금 5개, 은 1개, 동 4개로 종합 7위를 마크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프리스타일 스키에서 약진도 돋보였지만 이 메달의 반은 스키점프에서 나온 것(금 2개, 은 1개, 동 1개)이라서 스키점프계의 다크호스로 급 부상 그러나 한국 대표팀들은...하는듯 했으나 결국 스키 길이에서 제제[7]를 먹고 실력이 급속도로 낙하.

게다가 그나마 가능성이 보였던 스피드 스케이팅도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시미즈 히로야스의 뒤를 이을 선수를 양성하는데 실패해서[8]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때는 은1개, 동1개만 땄으며[9]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피겨스케이팅에서 딴 1개의 메달(금)이 유일한 메달이 될 정도로 쇠락해졌다. 홈경기 버프를 너무 심하게 받은 결과물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종합 9위에 랭크된다. 하지만 메달은 전부 쇼트트랙에서만 나왔다. 김동성전이경의 합작품. 이 때 전이경이 500m에서 딴 동메달은 결승전에서 선수 한 명이 실격되고 또 다른 선수가 레이스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바람에 결승전에서 동메달을 받을 선수가 나오지 않아, 순위결정전에서 1위로 들어온 전이경이 동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은 이 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에 있던 제갈성렬, 김윤만, 이규혁이 1990년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스피드 스케이팅 팀이 뭔가 일을 내서 쇼트트랙 편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성렬과 김윤만은 지는 해였고 이 때 이규혁은 아직 루키 수준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과도하게 쏟아진 관심을 자기가 극복하지 못 하고 무너진 케이스.

  1. 1986년 IOC총회에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의 개최 주기를 변경하기로 하였고, 이 해부터 하계와 동계올림픽이 2년 단위로 번갈아 개최된다.
  2. 다만, 어디까지나 NHL선수가 적은 편이었다는거지 체코는 아이스하키의 세계구급 국가대표팀인 'Big 7' 중 하나로 명문팀이다. 실속만으로 본다면 NHL선수들이 즐비한 미국이상급이며 실제로도 예선 2위로 올라간 8강에서 반대편조 3위인 미국상대로 4-1로 완승을 거두었다.
  3. 미셸 콴은 지독히도 올림픽이랑은 인연이 없어서 올림픽에선 항상 콩라인이 된다. 자세한건 그녀의 항목 참조.
  4. 그녀의 낮은 점수가 꼭 인종차별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물론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체조 선수 출신답게 탄력이 좋았으나, 표현력과 스케이팅스킬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평을 듣지 못하는 선수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은, 94년 치바에서 사토 유카가 홈빨로 받은 세계선수권 금메달의 원래 주인은 보날리여야 했다는 것이다.
  5. 하계대회는 1988 서울 올림픽이 마지막
  6. 착공 자체는 선정되기 전인 1990년 개시, 이 당시에는 나가노 신칸센이라 불렀다.
  7. 스키의 길이는 선수 몸의 1과 1/2를 넘어서는 안된다라는 규정이 이 대회 이후에 생겨났다. 일종의 견제
  8. 시미즈 히로야스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인데다, 월드컵에서 34회 이상, 세계선수권에서 3번 이상 우승하고, 500m 세계신기록을 4번이나 경신하는 등 일본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의 전설이다. 2014년 현재 그의 뒤를 이을 만한 선수로는 가토 조지 정도 밖에 없는데, 이 선수는 슬럼프가 길었는데다 기껏 슬럼프에서 벗어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후로는 다시 성적이 하락세다...
  9. 게다가 그것도 전대회 금메달리스트들이 딴거다. 스피드 500m(은)하고 프리스타일 모굴 여자부(동)...